미국 제너럴모터스(GM)가 올해 3월 전면 중단했던 플러그인하이브리드차량(PHEV)과 전기차(EV)의 한국 생산을 다시 추진한다. 미국 배출 가스 규제로 친환경차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면서 소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생산 거점인 한국GM의 강점이 다시 부각되는 것이다. 다만 미국GM은 파업을 거론하며 “추가 투자에 중요하게 평가될 것”이라며 노사 협력을 투자 조건으로 내걸었다.
자동차 업계와 한국GM에 따르면 글로벌 제조 부문 젠스 피터 클라우센과 제럴드 존슨 수석부사장 등 미국GM 경영진은 23일과 24일 각각 부평 공장과 창원 공장을 찾아 임직원을 격려하고 노조와 간담회를 진행했다.
3월 전격 선임된 클라우센 수석부사장의 한국GM 방문은 글로벌 제조 부문 총괄을 맡은 후 처음이다. 클라우센 수석부사장의 한국GM 방문이 알려지자 업계에서는 올 3월 미국GM이 전면 취소한 PHEV 생산 시설 투자를 재개할 수도 있다는 기대감이 나왔다.
클라우센 수석부사장은 부평 공장에서 가진 노조와의 간담회에서 “중요한 것은 온실가스 법규 문제 준수”라며 친환경차 투자를 위한 논의에 들어갔다고 밝혔다. 클라우센 수석부사장이 언급한 규제는 미국 조 바이든 행정부의 환경보호청(EPA)이 3월 확정한 ‘최종 국가 오염 기준(final national pollution standards)’이다. EPA는 2027~2032년과 그 이후 출시되는 승용차와 경트럭 및 중형 차량에 대해 강화된 배출 가스 규제를 적용한다. 이 규제를 지키려면 신차 가운데 전기차의 판매 비중을 56%까지 높여야 한다. 미국GM은 7월 EPA로부터 ‘2012~2018년 생산된 픽업트럭과 SUV 등이 배출 가스 기준을 초과했다’며 1억 4580만 달러(약 2000억 원)의 벌금을 받았다. 미국GM으로서는 친환경차 생산을 늘려 배출 가스 규제에 대응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클라우센 수석부사장은 “전기차 보급률을 확인하고 있고 PHEV도 조사 중”이라며 “한국 생산의 필요성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한국을 찾은 미국GM 경영진은 추가 투자의 조건으로 ‘협력적 노사 관계’를 내세웠다. 한국GM은 올해 8월 부품 파업 등으로 약 4만 대의 생산 차질을 빚었다. 존슨 수석부사장은 “(노사의) 교섭과 합의도 중요하지만 과정도 중요하다”며 “서로 존중하는 노사 관계를 통해 불확실성을 줄여 투자할 수 있게 해달라”고 강조했다.
미국GM 경영진은 창원 공장에서도 “추가 투자는 노사 관계에 달려 있다”고 재차 언급했다. 클라우센 수석부사장은 창원 공장에서 가진 간담회에서 “내연기관에서 전기차로의 점진적인 투자 계획이 있을 수 있지만 (지금) 특별하게 이야기할 것은 없다”며 “한국GM의 올해 임단협을 바라보며 다소 부정적인 견해가 많았던 것은 사실”이라고 언급했다. 존슨 수석부사장도 “쟁의행위의 영향으로 약 4만 대의 손실을 봐야 했다”며 “(향후 투자 때) 창원 공장이 이제까지 어떻게 해왔는지가 중요하게 평가될 것”이라고 말했다.
25일 미국으로 복귀한 미국GM 경영진은 이번 간담회에서 밝힌 대로 한국 공장에서 친환경차 생산을 위한 본격적인 검토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물론 추가 투자 여부를 올해 안에 결론 내기 어렵다는 게 한국GM과 노조·업계의 관측이다. 미국 대선의 결과에 따라 배출 가스 규제도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는 바이든 행정부의 배출 가스 규제를 철폐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서면 미국GM으로서는 한국에 친환경차 생산라인을 시급하게 투자할 유인은 줄어든다.
업계 관계자는 “트럼프가 수입차에 대한 관세를 부과할 수도 있고 배출 가스 규제를 바꿀 수도 있다”며 “정치적 불확실성이 해소돼야 투자 여부도 논의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