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여명]지금 이 순간 절실한 '외교적 수사'

정영현 성장기업부장

러·우크라전 등 전쟁에 무기수출 늘자

성과에 고무된 尹·여당 '살상·폭격' 거론

韓 정부·방산기업에 부정적 이미지 우려

지금은 치밀하고 신중한 발언 필요한 때


요즘 한국 방위산업은 유례없는 관심과 호황을 누리고 있다. 인공지능(AI) 드론 비행을 비롯해 라이다 센서 기반의 고정밀 지도 제작, 웨어러블 카메라를 활용한 사각지대 탐지 등 첨단기술을 확보한 스타트업에 대한 관심이 세계 각지에서 쏟아지고 있다. 방산 ‘빅4’로 불리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현대로템·한국항공우주산업(KAI)·LIG넥스원에는 기술 협력과 완제품 주문이 쇄도하고 있다.

한 예로 이달 중순 핀란드 수도 헬싱키 인근에서 열린 한국 방산 스타트업의 군사 드론 시연에는 핀란드뿐 아니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 군 관계자들이 찾아와 성능을 확인했다고 한다. 국경 너머에서 2년 8개월째 군인은 물론 민간인들이 수도 없이 죽어 나가고 있으니 적군의 무기 자원에 정밀 타격을 가하면서 아군의 인적 희생은 최소화하는 첨단무기에 대한 관심이 당연지사였을 것이다.



세간의 시선만 사로잡아도 신이 나는 스타트업과 달리 대기업은 제대로 돈까지 벌고 있다. 올해 방산 ‘빅4’의 합산 영업이익이 2조 원을 넘어설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을 정도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이스라엘·이란 전쟁이 동시에 격화하면서 불안감과 조급함에 빠진 세계 각국이 앞다퉈 무기 확보 및 비축에 나선 결과다.

우리 스타트업이 잘나가고 대기업이 호실적을 내는 것은 좋은 일이다. 3년 넘게 전쟁을 치르고도 휴전선이 그어지면서 70년 넘게 단 하루도 안보 불안에서 벗어나 본 적 없는 나라의 국민 입장에서는 방산 호황이 일종의 ‘보상’ 같다는 느낌도 있다. 경제도 예외가 아니다. ‘코리아 디스카운트’는 지금 이 순간에도 기업들의 발목을 잡고 있지 않은가. K방산의 쾌속 질주가 오랜 세월 누적된 안보 불안과 경제 불합리의 억울함을 어느 정도 상쇄해주는 형국이다.



그러다 보니 현 정권 역시 방산 호황을 최대 치적 중 하나로 내세우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 순방이나 외국 지도자 방한 때마다 방산 수출을 최우선 의제로 삼고 이를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있다. 이달 들어 윤 대통령이 필리핀을 국빈 방문했을 때도, 안제이 두다 폴란드 대통령이 국빈 방한했을 때도 방산 수출이 핵심 성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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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방산의 최대 산물인 무기는 어디까지나 무기다. 동전의 양면처럼 방어와 보호 수단인 동시에 살상과 파괴를 야기하는 위험한 도구다. 인간에 대한 정의 중 하나가 호모 파베르(Homo Faber·도구의 인간)이기는 하나 가능한 한 피해야 할 도구가 무기 아니던가. 무기를 많이 만들고 파는 게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자랑할 일은 아니라는 말이다. 민족상잔으로 300만 명이 넘는 인명 피해를 내고도 전쟁을 끝내지 못한 우리는 방산이 ‘안보’ 수단임을 언제나 강조해야 한다.

하지만 현 정권은 이제 무기 수출 성과 홍보에서 더 나아가 무기 사용에 대해서도 신중하지 못한 표현을 쓰고 있다. 윤 대통령은 24일 두다 대통령과의 공동성명 발표 이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우크라이나 전쟁에 한국도 지상군을 파병할 의향이 있느냐’는 질문에 답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살상 무기를 직접 공급하지 않는다는 대원칙을 지켜왔다”면서도 “북한군 활동 여하에 따라 유연하게 검토하겠다”고 해 살상 무기 제공 가능성을 내비쳤다.

같은 날 한기호 국민의힘 의원이 신원식 국가안보실장에게 보냈다가 언론 카메라에 포착된 문자 내용은 더 노골적이다. “우크라이나와 협조가 된다면 북괴군 부대를 폭격, 미사일 타격을 가해서 피해가 발생하도록 하고 이 피해를 북한에 심리전으로 써먹었으면 좋겠다”는 내용이었다.

현시점에서는 전쟁의 공포가 전 세계를 짓누르고 있지만 전쟁은 언젠가 끝이 나기 마련이다. 특히 11월 미국 대통령 선거 이후 전쟁 판세가 크게 바뀔 수도 있다. 전쟁 이후 평화가 찾아왔을 때 군 통수권을 가진 대통령과 민의를 대변하는 국회의원이 ‘살상’과 ‘폭격’ ‘타격’이라는 단어를 쉽게 입에 올리는 나라를 외부에서는 어떻게 바라보고 평가할까. 또 우리 방산 기업 이미지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까. 아무리 북한군 러시아 파병 이슈가 있다지만 그럴수록 더 치밀하게 대응해야 하고 신중한 외교적 수사가 필요하다. 물 들어왔을 때 노 젓는 게 상식이라지만 아무렇게나 휘젓다가는 배가 자칫 방향을 잃거나 아예 뒤집힐 수도 있다.





정영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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