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회로 선폭이 10㎚(나노미터·10억분의 1m) 이하로 작아지면서 수율에 알 수 없는 문제가 생겼습니다. 이때 현장에서는 습도가 반도체 수율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가설이 있었죠. 우리는 이 가설을 믿고 그때까지는 세상에 없던 습도 조절 장비를 만드는 데 베팅했습니다. 그 결과 반도체 공정 습도 제어 장비 분야에서는 세계 선두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임영진(사진) 저스템 대표는 30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미래를 예측해 누구도 아직 만들어내지 못한 제품을 개발·생산한 것’을 성공 비결로 꼽았다. 임 대표가 2016년 창업한 저스템은 반도체 수율을 높이는 습도 제어 장비를 세계 최초로 개발해 글로벌 주요 종합반도체기업(IDM)에 공급하고 있다. 2022년 코스닥 상장에 성공했고 지난해에는 중소기업으로는 유일하게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선정하는 ‘최우수기업연구소’로 선정됐다. 임 대표는 인터뷰 내내 미래 흐름을 예측한 후 이에 맞춰 기술을 선제적으로 개발하는 일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습도 제어 시장 개척=삼성전자 연구개발(R&D)센터 팀장을 거쳐 주성엔지니어링 부사장직을 역임한 임 대표는 반도체 생산공정을 살펴보는 과정에서 창업 아이템을 떠올렸다. 약 10년 전만 해도 반도체 수율에서 습도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당시 반도체 제조 공장에서는 습도를 45% 내외로 유지했는데 습도가 이보다 높아지면 근로자 건강에 악영향을 줄 수 있고 반대로 낮아지면 정전기를 일으켜 반도체 회선에 문제를 야기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습도 때문에 문제가 생긴 것은 공정이 점차 미세화하면서 반도체 회로 선폭이 10나노미터 이하로 작아지기 시작하면서부터다.
임 대표는 “점점 초미세 공정으로 나아가면서 현장에서는 알 수 없는 이유 때문에 수율이 떨어지는 현상을 목격했다”며 “이때 이론적으로 공기 내에 있는 습기가 수율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아이디어가 현장에서 생기기는 했지만 구체적인 인과관계를 밝혀내는 일은 쉽지 않았다”고 회고했다. 추후 규명된 바에 따르면 반도체 공정 미세화로 인해 좁아진 선로 폭을 주요 공정에서 쓰이는 가스가 공기 내 수분 때문에 빠져나가지 못하며 수율 저하로 이어졌던 것이다. 임 대표는 이 같은 메커니즘이 명확하지 않던 당시 습도 제어의 중요성을 직감하고 창업 전선으로 뛰어들었다.
수율이 사업의 성패를 가르는 반도체 산업에서 수율 개선 장비를 만든다는 아이디어를 생각하는 것은 쉬웠지만 이를 막상 실행하기는 어려웠다. 반도체 제조 기업은 보통 수백 가지의 장비를 사용하는데 각 장비마다 공기의 유입 통로와 내부 공기 흐름이 달라 이를 일정하게 제어하는 것이 어려웠던 것이다. 이 때문에 임 대표는 창업 초기 주요 연구진과 밤을 새워가며 주요 반도체 제조 장비에 최적화된 습도 제어 장치를 각각 개발하는 데 힘을 쏟았다. 임 대표는 “이때가 사업을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였다”며 “습도를 1% 이내로 제어하는 것을 목표로 했지만 이를 실현하는 것은 어려웠다”고 회상했다.
저스템은 반도체 웨이퍼(기판)를 보관·이동시키는 특수 보관함인 ‘FOUP’의 습도를 균일하게 제어하는 장비를 우선 개발하는 방식으로 이를 해결했다. 습도가 5% 이내로 유지되는 FOUP로 웨이퍼를 이동시키되 각 장비 내 습도도 조절하는 방식으로 반도체 제조 전 공정에서의 습도 조절에 나선 것이다. 이렇게 개발한 1세대 장비 ‘N2 퍼지 시스템(Purge System)’이 국내외 주요 반도체 제조 기업의 퀄테스트(성능 검증 최종 단계)를 통과하면서 우리나라와 미국의 주요 종합반도체기업에 제품을 납품할 수 있게 됐다. 이후 저스템은 꾸준히 연 수백억 원대의 매출을 거두고 있다.
임 대표는 “국내에서 소부장 기업을 창업하고 생존하는 것은 대단히 어렵다”고 강조했다. 어플라이드머티어리얼즈(AMAT), 램리서치(LAM), 도쿄일렉트론(TEL), ASML 등 글로벌 반도체 장비 기업이 즐비한 상황에서 시장에 진입하는 것 자체가 쉬울 수는 없다. 더군다나 반도체 제조 공정은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어 한 장비가 문제를 일으키면 전체 공정이 영향을 받기에 제조 기업이 신생 회사의 개발 장비를 도입하기는 쉽지 않다. 임 대표는 “습도 제어라는 완전히 새로운 분야에 도전했기에 시장에 안착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며 “세상에 없던 기술을 만들어서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2세대 장비 본격 시동=저스템은 최근 2세대 습도 제어 장비인 ‘JFS’를 개발해 미국 주요 반도체 기업의 퀄테스트를 통과해 납품까지 하는 데 성공했다. 연구개발과 양산 평가 과정은 지난했다. 기존 장비보다 효율을 높이기 위해 3년이 넘는 기간 동안 기술을 개발해야 했고 이후에는 2년 넘게 양산 평가 과정을 거치며 제품 완성도와 현장 적용 가능성을 점검받았다. 기술 개발 과정에서는 독자 개발한 ‘수직 층류’ 제어 기술을 적용해 습도 제어 효과를 높였고 기존 반도체 장비에 JFS를 장착만 하면 자동으로 습도를 제어하고 수율을 높일 수 있게 했다.
임 대표는 “저스템은 반도체 습도 제어 장비 분야에서 글로벌 점유율 80%를 가지고 있다”며 “1세대 장비로 점유율을 선점한 상황에서 2세대 장비가 주요 기업 퀄테스트를 통과한 만큼 매출도 큰 무리 없이 늘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저스템은 1세대 N2 퍼지 시스템 장비를 2만 대 이상 글로벌 반도체 기업에 납품해 보다 단가가 비싼 2세대를 같은 수준으로 공급할 경우 매출과 영업이익이 동반 상승할 수 있다. 저스템은 2세대 장비 관련한 특허 50건을 비롯해 창업 8년 만에 특허 약 250건을 보유하고 있다.
◇국내 소부장에 희망 있다=1962년 부산에서 출생한 임 대표는 1984년 인하대 금속공학과를 졸업한 후 1991년까지 같은 대학에서 금속공학 박사 과정을 밟았다. 그는 1991년에 들어서야 삼성전자 선임연구원으로 입사하며 사회와 연을 맺었다. 그는 그의 학생 시절이 ‘누구보다도 평범했다’고 회고했다. 추후 창업을 하게 될 것이라는 구상은 없었고 박사 과정을 밟기 전까지는 학업에도 큰 뜻이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박사 과정을 거치고 사회에 첫발을 내딛으면서부터 그는 일에 열중하기 시작했다.
임 대표는 “처음 삼성전자 연구소에 들어갔더니 박사만 수백 명인데 그 중 국내 박사는 몇 명 되지도 않았다”며 “경쟁이 치열한 조직에서 살아남고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밤을 새워가며 기술을 공부하고 일하는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이후 주성엔지니어링 부사장직을 거치면서도 그는 현장에서 몇 달씩 숙식을 해결하는 방식으로 조직에 열정을 쏟았다. 그는 “그 당시에는 일하는 기업에 뿌리를 내린다는 생각으로 일했다”며 “창업 생각은 습도 제어 장비 아이디어가 떠오르기 전까지는 없었다”고 강조했다.
임 대표는 본인의 꿈이 ‘회사와, 직원 그리고 가족이 모두 행복해지는 기업을 만드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는 진부한 말이기도 하지만 진심에서 우러나온 말이기도 하다”며 “조그마한 조직에서 시작해 코스닥 상장사, 이후 더 큰 회사로 성장해나가는 과정을 함께하는 조직원들이 행복해지는 것이 기업의 대표로서 가장 중시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힘줘 말했다. 임 대표는 이어 “조직에 합당한 보상 체계를 주기 위해 스톡옵션 제도 도입 등을 적극적으로 고려하고 있다”면서 “직원과 함께 성장해 2030년까지는 국내 4대 반도체 장비 기업으로 거듭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