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이다. 어느덧 올해도 딱 두 달 남았다. 11월(November)은 ‘아홉’을 뜻하는 라틴어 ‘novem’에서 나왔다고 한다. 원래는 9월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1년을 열 달에서 열두 달로 바꾼 율리우스력이 시행된 후 새로 1월과 2월이 추가되면서 11월로 밀렸다.
계절은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기로 접어들었지만 법원들이 몰려 있는 ‘법조 타운’ 서울 서초동에는 긴장의 먹구름이 잔뜩 몰려오고 있다. 한 법조인은 “11월을 맞이하는 게 두렵다”고까지 했다.
이달에 나올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둘러싼 재판 결과에 따라 대규모 시위 등이 벌어질 공산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이 대표의 공직선거법상 허위 사실 유포 혐의와 검사 사칭 관련 위증교사 혐의에 대한 법원의 1심 판단이 각각 11월 15일, 25일에 선고된다. 14일에는 이 대표의 아내 김혜경 씨에 대한 공직선거법 위반 1심 선고도 내려진다.
이 대표에게는 그야말로 정치적 운명이 걸린 한 달이다. 제1 야당 대표의 사법 리스크가 최고조에 다다르자 지지자들의 세 과시 움직임도 포착된다.
친이재명계의 최대 조직인 더민주전국혁신회의는 이미 ‘이 대표 사수’ 기치를 내걸고 100만 명 탄원 서명에 돌입했고 1심 판결이 내려지는 당일에는 법원 앞에서 대규모 집회도 계획 중이라고 한다.
‘검찰 해체, 윤석열 대통령 탄핵’을 공식화한 조국혁신당은 이미 10월 26일 서초동에서 대규모 장외 집회를 열었다. 이 행사에는 3000여 명이 참석했다. 이들은 앞으로 매달 서초동에서 탄핵 집회를 열겠다고 공식화했다.
진보 시민단체인 촛불행동과 유권자 대회는 10월 29일부터 11월 3일까지 전국적으로 25곳에서 집회에 나서는 등 ‘몸풀기’에 나선 모양새다.
우리는 2019년 당시 법무부 장관으로 지명된 조국 현 조국혁신당 대표와 관련된 의혹을 둘러싸고 서초동 법원 앞에서 열린 보수와 진보 간의 치열한 세 과시형 집회를 기억한다. ‘조국 사태’ 당시 보수단체들이 보낸 근조화환이 법원 앞 거리를 가득 메웠던 것도 이때쯤이다. 매 주 양 진영이 번갈아 가면서 저마다 몇 십만 명이 모였다며 참가자 부풀리기에 나서면서 사회를 극단의 낭떠러지로 몰아넣었다.
최근 정치권의 움직임을 보면 이 대표를 둘러싼 법원 판단이 무죄나 유죄 어떤 경우든 보수와 진보세력의 대규모 집회로 이어질 가능성이 엿보인다.
표현의 자유가 보장된 우리나라에서 법원 판단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다. 하지만 판결에 불복하고 항의를 위해 대규모 인원을 동원하는 것은 판사들을 암묵적으로 위협하는 ‘사법 방해’나 다름없다. 더구나 법원 판결이 나오기도 전에 으름장을 놓듯 세 과시를 공식화하는 것은 더 큰 문제다.
법원의 판단은 공정하고 냉철해야 한다. 그리고 여론 몰이를 통해 사법부 판단에 영향력을 미치겠다는 것은 법치와 민주주의에 역행하는 일이다. 판사들이 여론조사를 통해 판결을 내리지 않듯 말이다.
정치권은 얼마 전 열린 국정감사에서 이 대표에 대한 재판을 관할하는 서울중앙지법원장을 불러 놓고 자신들의 요구를 가감 없이 드러냈다. 여당은 ‘엄정 판결’을, 야당은 ‘혐의 없음’을 사실상 강요했다. 국회가 이 대표를 둘러싸고 검사와 변호인으로 둔갑한 순간이었다.
정치적 지지자들이 대규모 시위를 계획하고 입법부가 사법부를 압박하는, 이러한 비정상적인 움직임에 대해 내부적으로 경고나 자제 목소리를 내지 않는다면 민주당과 이 대표 역시 ‘암묵적 공범’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이 대표를 둘러싼 4개의 재판 결과가 나올 때마다 보수와 진보의 성난 피켓과 시위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암울하다.
가뜩이나 11월은 국내외적으로 엄청난 이벤트들이 즐비하다. 미국 대통령 선거(11월 5일)를 필두로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 반환점(11월 10일), 그리고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는 북한의 우크라이나 참전 등 국가의 운명을 결정지을 굵직한 사건들이 줄지어 대기 중이다.
한반도를 둘러싼 정세가 그야말로 풍전등화에 놓였지만 또다시 양극단의 치열한 이념 투쟁이 펼쳐질 생각을 하면 답답하다. 더구나 정치권이 극단의 이념 대립을 자제시키기는커녕 자칫 부추기지 않을까 걱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