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채권 돌려막기’ 관행으로 9개 증권사가 무더기로 중징계 위기에 놓이자 금융투자협회가 이를 예방하는 지침을 마련했다.
금투협은 12일 채권형 계약을 운용할 때 업계 전체가 준수해야 할 자체 규제 장치로 ‘채권형 투자일임 및 특정금전신탁 리스크관리 지침’을 제정해 이날부터 시행키로 했다고 밝혔다. 지침에는 채권형 투자일임과 특정금전신탁 운용 등과 관련해 90일을 초과한 만기가 불일치할 경우 투자자 동의를 의무적으로 얻도록 명시했다. 또 편입자산 시가평가 의무화, 시장 급변 시 투자자 통지와 자산 재조정 등 이행, 만기·거래가격 등에 대한 상시 감시체계 구축 의무화 등을 규정했다. 금투협은 앞으로 금융 당국과 논의해 과도한 영업 관행 개선과 시장 충격 시 계약 유동성 관리 등과 관련한 방안도 마련하기로 했다.
서유석 금융투자협회장은 “관행이라는 명목으로 그간 증권 업계에 지속되었던 불합리한 점들을 재점검하고 개선하는 계기가 됐다”며 “앞으로 업계 전체가 뼈를 깎는 노력(분골쇄신)으로 신탁·일임 산업이 고객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도록 전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앞서 금융감독원은 국내 9개 증권사들이 단기 투자 상품인 신탁·랩 계좌에 유치한 자금으로 장기 채권에 투자하는 만기 불일치 전략을 활용해 불건전 영업 행위를 벌였다고 보고 지난해부터 강도 높은 조사를 펼쳤다. 만기 불일치 운용은 높은 수익률을 낼 목적으로 단기 랩·신탁 계좌에 유동성이 낮은 고금리 장기채권이나 기업어음(CP)을 편입하는 자산 관리 방법이다. 금감원은 2022년 9월부터 자금시장이 경색되고 채권형 랩·신탁 가입 고객들이 대규모 환매를 요청하자 증권사들이 법을 어기고 투자 손실을 보전해줬다고 판단했다. 증권사들은 “손실을 덮을 목적이 아니라 시장 유동성을 공급하기 위해 거래를 진행했다”고 항변했으나 금감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금감원은 이후 올 6월 하나증권과 KB증권에 대해 관련 혐의로 일부 영업정지의 중징계 처분을 내렸다. 금감원은 당시 랩·신탁 담당 운용역과 담당 임원에 대해서도 중징계를 결정하고 이홍구 KB증권 대표에게도 경징계인 ‘주의적 경고’ 조치를 내렸다. 미래에셋증권(006800)·한국투자증권·NH투자증권(005940)·교보증권(030610)·유진투자증권(001200)·SK증권(001510)·유안타증권(003470) 등 국내 증권사 7곳에 대해서도 영업을 일부 정지하는 중징계 처분을 사전 통보하고 지난달부터 제재심을 진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