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분양

'제2의 레고랜드 사태' 막는다…PF 건전성 확보 칼 빼든 정부

현행 3%서 선진국 수준 상향

자기자본비율 높여 리스크 관리

토지 등 현물출자하면 稅혜택도

서울의 한 공공주택 부지. 뉴스1서울의 한 공공주택 부지. 뉴스1






정부가 현재 3~5%에 불과한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사업의 자기자본비율을 선진국 수준인 20% 이상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세제 혜택을 부여한다. 토지주가 토지·건물 등을 부동산투자회사(REITs·리츠)에 현물 출자하면 실제 부동산이 매각돼 이익을 실현할 때까지 양도소득세 납부 시점을 늦춰준다. 또 금융회사가 자기자본비율이 낮은 PF 사업에 대출해줄 때 적립해야 하는 자본금·충당금 비율을 높여 PF 사업의 자기자본비율 확충을 유도할 예정이다.



정부는 14일 열린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이 같은 내용을 담은 ‘부동산 PF제도 개선 방안’을 발표했다.

정부는 우선 PF 사업의 자기자본비율을 2028년까지 20% 수준으로 높인다는 계획이다. 국내 PF 사업의 평균 자기자본비율은 5% 남짓에 불과하지만 미국과 일본 등 선진국의 평균 자기자본비율은 30%에 달한다.

정부는 토지주가 토지·건물을 리츠에 현물출자하고 주주로 참여하면 양도차익의 과세와 납부를 이익 실현 때까지 미뤄줄 수 있도록 조세특례제한법을 개정할 예정이다. 현재는 토지를 출자하면 즉시 법인세와 양도세가 부과돼 출자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또 토지주가 참여하는 PF 중 선도 사업 후보지를 공모해 용도·용적률 등 도시 규제 제약이 없는 화이트존(입지 규제 최소 구역)으로 지정하는 등 특혜도 부여한다. 자기자본비율을 높이는 사업장에도 용적률 특례를 적용하고 공공기여 부담도 완화해준다.

반면 대출 문턱은 높인다. 정부는 자기자본비율에 따라 금융권이 PF 대출 때 쌓아야 하는 자본금과 대손충당금 비율을 차등화하기로 했다. 시행사가 투입한 자기자본비율이 20%보다 낮으면 금융사가 대출을 실행할 때 산정하는 위험가중치를 높게 잡도록 하는 식이다. 이 경우 자기자본비율이 낮은 영세 시행사는 대출이 어려워질 것으로 전망된다. PF 대출 때 이뤄지는 사업성 평가도 강화한다. 사업을 시작할 때 전문 평가 기관으로부터 사업성 평가를 의무적으로 받도록 하고 평가 기준과 절차도 마련하기로 했다.

정부는 PF 사업의 유형별·지역별·단계별 추진 현황, 재무 현황 등에 대한 상시 모니터링을 위해 ‘PF통합정보시스템’도 구축하기로 했다. 이 밖에 역량 있는 시행사를 육성하기 위해 안정적인 자기자본을 갖춘 리츠에 입지가 우수한 공공택지 매입 우선권을 제공할 계획이다.

박상우 국토교통부 장관은 “분양 수익만을 좇는 단기적인 시행 형태에서 개발과 운영·금융이 가능한 종합 부동산 회사가 나올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며 “PF 제도 개선 방안을 기반으로 부동산 산업이 선진화되도록 관계기관 및 현장과 적극적으로 소통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고금리 브리지론, 외풍에 취약
디벨로퍼로 땅 주인 참여 유도
"방향 맞지만 사업성·전문성 의문"
대출 규제로 영세 시행사는 타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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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제도 개편에 나선 것은 부동산 PF 사업의 자기자본비율이 선진국 대비 턱없이 낮기 때문이다. 그동안 시행사들은 사업비의 3~5%만 확보한 채 고금리 대출(브리지론)을 통해 토지를 매입해 사업을 진행할 수 있었다. 3억 원을 보유하고도 100억 원 규모의 사업을 추진할 수 있었던 셈이다. 실제로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부동산개발업법에 따른 디벨로퍼는 약 2400개사로 이 가운데 연매출 100억 원 이하가 95%인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 부동산 PF 규모는 지난해 말 기준 약 230조 원에 달한다.

과거 아파트를 짓기만 하면 ‘완판’되던 시대에는 이 같은 시행사들의 낮은 자본력이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2022년 이후 금리가 오르고 부동산 경기가 위축돼 미분양이 쌓이기 시작하며 문제가 불거졌다. 자금 회수가 어려워지자 PF 자금을 대겠다는 투자자가 사라졌고 브리지론을 받아 토지만 겨우 매입해놓은 시행사들은 매달 이자 비용을 내며 근근이 버텼다. 브리지론 만기까지 PF 투자자를 구하지 못하고 삽을 뜨지 못한 토지는 공매를 통해 떨이로 팔려나갔다.

자금 회수가 어려워지자 은행 등 금융기관에서는 영세한 시행사 대신 사업에 참여하는 건설사나 신탁사가 보증을 서기를 요구했다. 정해진 기일까지 공사를 마쳐야 하는 ‘책임준공확약’과 기한이익상실(EOD)이 발생하거나 채무 변제 불이행 시 시공사가 대신 빚을 갚는 ‘채무 인수’, PF 대출에 문제가 생길 경우 부족 자금을 대여하는 ‘자금 보충’ 등이다. 김승범 국토부 부동산투자제도과장은 “이 같은 PF 사업의 저자본·고보증 구조는 금리 인상이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사업 여건 악화 등 환경 변화에 취약하다”며 “시행사뿐만 아니라 건설사·금융사로 리스크가 확산할 우려도 크다”고 지적했다.

시장에서는 이번 PF 제도 개선 방안에 대해 PF 산업 구조를 선진화해 시장 변동 리스크를 최소화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했다고 평가하고 있다. 특히 ‘깜깜이’던 개발사업장들을 정부에서 통합 관리해 부실 요인을 상시 모니터링하는 등 투명화하면 사업 리스크를 크게 줄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나온다.

다만 기존 브리지론에서 본PF로 이어지는 개발 사업 구조를 바꾸는 데 있어 실제 수요가 얼마나 있을지는 미지수다. 국토부는 브리지론의 대체재로 ‘토지주의 현물출자’를 제시했는데 민간에서 얼마나 많은 참여가 이뤄질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양도차익 과세와 납부 시기를 이연하는 정도로는 사업 참여 유인이 적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위원은 “PF시장이 관리되지 못했던 만큼 최근 2년간 부실 문제가 많이 터졌는데 제도권 안에서 PF 사업을 관리하겠다는 방향은 맞다고 본다”면서도 “다만 사업의 자기자본을 높여 사업비를 절감하면 그만큼 추가 이익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이를 분양가 인하로 연결시키면 사업주에게 동기 요인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상 토지주를 디벨로퍼로서 사업에 참여시키는 제도인 만큼 전문성에 대한 의문도 제기된다. 국토부는 토지주의 의사 결정을 지원하기 위해 부동산원 등 공공에서 리츠 설립을 지원하고 사업성 분석 등 컨설팅을 진행하겠다는 계획이지만 충분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개발 업계의 한 관계자는 “지금은 토지를 매각하고 대금만 받으면 끝나는데 토지를 현물출자해 사업에 참여하면 부동산이 다 지어지고 가치평가가 가능한 시점에야 현금 회수를 할 수 있기 때문에 불확실성과 부담이 클 것”이라며 “개인들 역량도 없을 뿐더러 사업 인센티브를 크게 주지 않는 이상 현실 가능성이 높지 않다”고 평가했다.

주택 공급 위축도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개발 사업 허들이 높아지면서 전체 시장의 규모가 줄어드는 만큼 영세한 시행사들의 먹거리가 감소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함영진 우리은행 리서치랩장은 “자본과 설계, MD, 분양 및 임대와 운영 노하우까지 두루 갖춘 규모 있는 시행사와 영세 시행사 간 양극화가 심화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내다봤다. 건설사와 신탁사도 마찬가지다. 이미 시장에서는 1군 건설사를 제외하고 신용도가 낮은 중소형 건설사의 자금 조달이 어려워진 지 오래다. 신탁사들의 책임준공형 토지신탁 사업 역시 중견 건설 업체들의 자금줄 역할이 돼왔지만 정부가 다음 달 ‘책준형 토지신탁 모범 규준’ 마련을 예고하고 나선 만큼 사업 축소가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김승범 국토부 부동산투자제도과장은 “업계에 다양한 인센티브를 적용하고 체질 개선이 된 후부터 조금씩 진행해야 할 것”이라며 “현물출자 등 사업구조가 시장에 안착하면 주택 공급 여건이 오히려 개선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신미진 기자·김우보 기자·김민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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