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백상논단] 준비 안된 트럼프 2.0 시대

강인수 숙명여대 경제학부 교수

손익 따지는 트럼프식 거래주의 부활

美행정부 효율 최우선 파격인선 속

韓, 한가롭게 가치동맹 운운할때 아냐

실용성 초점 대미전략 패러다임 전환을





선거 당일까지 초박빙이라는 예측과 달리 미국의 대선은 도널드 트럼프 후보의 압승으로 끝났다. 트럼프 당선 이후 유독 한국 경제의 민낯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는 듯하다. 트럼프 2기 정부가 아직 출범도 하지 않았는데 원·달러 환율이 1400원대로 뛰어오르고 코스피지수는 2400선을 위협받고 있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기업인 삼성전자는 주가가 9만 원에 근접하다가 4만 원대로 폭락하자 전격적으로 10조 원 규모의 자사주 매입 계획을 발표했다. 그러나 삼성에 대한 시장의 신뢰는 쉽게 회복될 것 같지 않다. 무역분쟁의 최대 피해국으로 꼽히는 중국 증시보다도 낙폭이 큰 상황이다. 주가 하락이 일시적인 현상으로 보기 어려운 이유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출산율 급감으로부터 파생되는 경제의 구조적인 문제 해결이 여전히 난망하고 여야가 소모적 정쟁에 올인하면서 정권 출범 초기부터 추진했던 4대 개혁은 용두사미가 돼가고 있다. 글로벌 경제의 판이 바뀐 것을 도외시하고 있는 듯하다.



내년 1월 트럼프 2기가 시작되면 보편적 기본관세 10~20% 부과는 물론 전방위적인 보호무역 조치가 현실화된다. 고관세로 인한 고물가, 그에 따른 고금리 충격은 예견된 쓰나미다. 교역 의존도가 큰 우리 입장에서는 내수 부진에 더해 글로벌 수요 감소라는 절벽에 맞닥뜨릴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 와중에 미국 재무부로부터 환율 관찰 대상국으로 재지정돼 환율 방어도 더 어려워졌다. ‘역대 최고 수출’을 내세울 만큼 한가로운 때가 아니다. 일단 인플레이션감축법(IRA) 폐기, 반도체 보조금 감축 등 예고된 정책 변화에 대한 적극적인 사전 대응도 중요하지만 대미 전략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것이 선행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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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치’가 아닌 ‘거래’ 중심의 관계가 확대될 것이 확실하기 때문에 ‘줄 것’과 ‘받을 것’에 대한 사전 준비를 철저히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지피지기(知彼知己)와 역지사지(易地思之)가 필요하다. 즉 나 자신과 상대방을 정확히 알아야 하고 상대방의 입장에서도 생각해봐야 한다. 트럼프가 어디로 튈지 모르기 때문에 글로벌 불확실성이 커질 것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전임자의 흔적을 지우는 정책 전환을 불확실성이 커지는 것으로 볼 수 없다. 트럼프 2기는 훨씬 준비가 잘돼 있고 미국 국민과 기업 입장에서 환영할 만한 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할 수 있는 의회 권력도 장악했다.

미 대선 직후 트럼프 당선인이 윤석열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선박 분야 협력을 언급한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굳건한 한미 동맹’을 반복적으로 언급하면서도 우리가 선제적으로 그런 제안을 못했다는 것 자체가 우리의 준비 부족을 의미하는 것이다. 트럼프 1기와 바이든 정부에서 비일비재했던 ‘사후약방문’ 식의 대응을 되풀이해서는 안된다.

대선 승리 직후 행정 경험이 전혀 없는 수지 와일스를 백악관 비서실장으로 발탁한 것을 시작으로 해당 분야 경험이 일천한 40대 젊은 인사들을 대거 중용한 트럼프의 인선 결과는 파격적이다. 트럼프에 대한 충성도가 최우선 인선 기준이라고 하지만 인선의 핵심은 매너리즘에 빠진 미국을 구하기 위해 기득권 세력과 기존 질서를 효율과 혁신 중심으로 강력하게 재편하겠다는 의지를 명확하게 드러낸 것이다. 1기 행정부 때와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다. 단적인 예가 ‘정부효율부’를 신설하고 억만장자 기업인 일론 머스크를 수장으로 발탁한 것이다. 경제 수장 역할을 담당할 재무장관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지만 미국 우선주의 성향이 강한 기업인이나 월가 출신 금융인이 거론되고 있다. 트럼프 1기 행정부에서 극단적인 보호주의를 앞세우며 중국과의 무역전쟁을 진두지휘한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국무역대표부(USTR) 대표가 다시 USTR 대표로 지명됐다.

공화당이 상하원을 동반 장악한 ‘레드스위프’가 확정되면서 더 강력해진 트럼프가 돌아왔다. 트럼프 2.0 시대를 슬기롭게 보내기 위해서는 매너리즘에서 벗어난 과감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가치 동맹 운운할 때가 아니다. 줄 것은 주고 받을 것은 받는 실용적이고 발 빠른 대응을 해나가야 한다. 파격에는 파격으로 대응하는 공세적 자세가 요구되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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