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확전 위험을 무릅쓰고 우크라이나의 장거리 미사일 사용을 허용하기로 한 배경에는 북한군의 러시아 파병이 자리 잡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제3차 세계대전으로 비화할 수 있다는 일각의 우려에도 이러한 결정이 전쟁을 조기 종식하는 데 기여할 것이라는 판단을 했다는 것이다.
17일(현지 시간)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바이든 대통령이 에이태큼스(ATACMS)를 러시아 본토에 사용하는 것을 허용한 이유는 러시아가 전쟁에 북한군을 투입한 것에 대한 전략적 대응 차원이라는 분석이다. 미국 당국자들은 에이태큼스가 전황을 근본적으로 바꿀 것으로 기대하지는 않지만 이번 정책 전환의 목표 중 하나는 북한 측에 ‘북한군이 취약하며 북한이 병력을 추가로 보내서는 안 된다’는 경고의 메시지를 보내기 위한 차원이라고 보고 있다.
러시아의 대대적인 보복을 우려하는 목소리에도 바이든 대통령은 장거리 미사일 사용을 허가해 얻는 장점이 확전 위험보다 크다고 판단한 것으로 전해졌다. 우크라이나가 지금까지 공격할 수 없었던 러시아의 주요 표적들을 타격할 수 있게 되고 북한에 우크라이나 전쟁 개입에 따른 대가를 치를 것이라는 경고를 보내겠다는 것이다. 대규모 병력을 집결해 쿠르스크 지역 탈환을 준비 중인 러시아를 상대로 우크라이나가 방어에 성공할 수 있도록 지원하려는 의도도 담겨 있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이 공식 취임하기에 앞서 현재 러시아에 열세인 우크라이나의 협상력을 강화하기 위한 조치라는 해석도 나온다.
북한군의 우크라이나 전쟁 참전 규모가 커질 수 있다는 우려도 이러한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는 주장이 나온다. 실제 북한이 러시아를 지속적으로 지원할 경우 최대 10만 명의 병력을 파견할 수 있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이날 블룸버그통신은 익명의 소식통을 인용해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될 경우 순환 배치에 따른 최대 병력을 이같이 추산했다. 앞서 드미트로 포노마렌코 주한 우크라이나 대사는 최근 미국의소리(VOA)와 진행한 인터뷰에서 “쿠르스크와 도네츠크에 배치된 북한군이 2~3개월 주기로 순환 교체되면 북한은 1년 내 현대전 경험을 갖춘 군인 10만 명을 보유하게 된다”고 주장했다.
우크라이나는 에이태큼스를 사용해 러시아와 북한의 군대 밀집 지역, 주요 군사 장비, 물류 및 탄약 창고, 러시아 깊숙한 곳의 공급선을 공격할 것으로 파악된다. 이를 통해 러시아와 북한군의 반격 효과를 상당히 약화시킬 수 있다는 분석이다. 다만 이러한 변화가 전쟁의 향방을 근본적으로 바꾸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전문가들은 우크라이나가 보유할 수 있는 에이태큼스 공급량이 제한돼 있고 러시아 본토 깊숙한 곳을 타격하더라도 전황이 하룻밤 사이에 바뀌지는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앞서 미국은 지난해 우크라이나에 에이태큼스 수백 발 제공을 약속한 뒤 4월 공급했지만 현재 무기고에 얼마나 많은 양이 남아 있는지는 불확실한 상태다. 이미 우크라이나가 드론을 통해 러시아 본토 깊숙이 침투했지만 큰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는 점 등을 근거로 들고 있다.
미국의 미사일 제한 해제 보도에 러시아는 “긴장을 고조시키는 행위”라며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미국의 퇴임하는 정부는 불에 기름을 끼얹고 긴장을 더욱 확대하는 도발을 계속하려고 조처하는 것이 분명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러시아에 대한 장거리 무기 사용을 승인하는 것은 미국의 분쟁 개입 측면에서 질적으로 새로운 국면에 돌입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주장했다.
취임을 두 달여 앞둔 트럼프 당선인에게는 악재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특히 트럼프는 취임하자마자 세계대전 발발 위험이 있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떠안을 가능성이 커졌다. 트럼프는 하루 만에 분쟁을 해결할 수 있다며 수년간 지속된 분쟁을 중단하겠다고 공언해왔다. CNN은 “트럼프 당선인은 자신이 평화를 이야기할 수 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가 물려받을 것은 훨씬 더 심각한 위기로 치닫고 있는 전쟁”이라고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