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연시가 가까워지면서 송년회·신년회 등 다양한 약속이 많아지고 있다. 평소보다 술을 마실 기회가 늘어나며 숙취에 대한 고민도 늘어나는 시기다. 질병관리청 ‘2023년 국민건강영양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성인 중 술을 마시는 비율이 76.9%이며 해로운 수준으로 음주하는 비율이 35.6%에 달한다. 2019년 기준 음주로 인한 사회경제적 비용은 총 15조 806억 원으로 비만, 흡연보다 크다. 술을 마신 사람 중 약 40%는 얼굴이 빨개지는 알코올 홍조증을 겪으며 이들은 음주 고위험군으로 분류해야 한다. 하지만 알코올 홍조증 환자 중에서도 고위험 음주를 즐기는 비중이 9.4%였다.
1년 안에 술을 마신 사람 중 월 1회 이상 술을 마신 사람의 비율은 지속적으로 줄고 있지만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전문가들은 과도한 음주를 하는 사람의 경우 뇌, 간 등 다양한 질환을 일으킬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과도한 알코올 섭취로 발생하는 대표적인 문제는 알코올 지방간, 알코올 간염, 간경변증 등 각종 간질환이다. 과도한 음주는 알코올 지방간을 만들고 그 상태에서 음주를 계속하면 약 20~30%가 알코올 간염으로 진행될 수 있다. 알코올 간염환자가 계속해서 술을 마시게 되면 38~56% 정도가 간경변증으로 이어지며, 간경변증 환자 중 7~16%가 간세포암으로 넘어간다고 알려져 있어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바이러스나 음주 등으로 발병한 간염이 장기간 지속되면 간세포가 파괴되고 간섬유화가 진행돼 간이 딱딱해지고 그 기능이 소실된다.
간질환은 대부분 초기 증상이 없고 건강검진에서 간수치 이상이 나타나거나 복부 초음파 검사를 통해 병을 알게 되는 경우가 많다. 지방간에 걸리면 오른쪽 상복부 불편감이나 둔한 통증, 피로감, 식욕부진 등의 증상이 생긴다. 알코올성 간염은 무력감, 피로감, 발열, 오심과 구토, 식욕 부진, 황달 등의 증상이 나타난다. 간경변증은 식욕 부진, 소화불량, 복부 불쾌감 등의 증상이 나타날 수 있으며 복수가 차면 복부 팽만감과 하지 부종이 발생하고 심하면 숨이 차기도 한다.
알코올성 간질환 환자가 음주를 지속하면 어떤 약을 쓴다 해도 간이 지속적으로 손상된다. 이단비 서울아산병원 소화기내과 교수는 “가장 효과적인 치료 방법은 완전히 금주하는 것”이라며 “초기 알코올 지방간 환자는 금주하면 4~6주 뒤 간 기능이 정상으로 회복된다”고 조언했다. 중증 간염, 간경변증이더라도 금주하면 질병의 진행을 막고 생존율 향상에 도움이 된다. 다만 이 교수는 “일부에서는 금주를 해도 간섬유화나 간경변증으로 진행될 수 있다”며 “간경변증이 상당히 진행된 경우에는 간이식을 고려하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술을 과하게 마시는 사람들은 알코올성 치매에 걸릴 위험도 높다. 치매는 후천적으로 기억, 언어, 판단력 등 여러 영역의 인지 기능이 감소하여 일상생활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질환을 말한다. 치매의 50~60%는 알츠하이머병을 비롯한 신경 퇴행성 치매이지만 과도한 음주에 따른 알코올성 치매도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다. 65세 미만 젊은 치매 환자 중 약 10%가 알코올성 치매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적절한 시기에 음주 습관을 교정함으로써 치매를 예방할 수 있다.
알코올성 치매는 알코올 과다 섭취로 인해 우리 뇌가 반복적인 손상을 입으면서 발생한다. 알코올은 단기적으로는 기억과 판단을 포함한 사고과정을 매개하는 신경전달물질을 교란시키고 신경염증을 초래한다. 장기적으로 과다 노출될 경우 신경세포의 사멸과 뇌 위축을 초래한다. 뇌 구조물을 변화시키는 것 외에도 소뇌 및 뇌간 손상으로 인해 떨림, 보행 시 비틀거림, 안구운동장애 등의 증상도 유발할 수 있다.
그 중에서도 흔히 ‘필름이 끊긴다’라고 표현하는 블랙아웃 현상은 알코올성 치매의 주요 위험 신호다. 임재성 서울아산병원 신경과 교수는 “블랙아웃 현상을 자주 경험한다면 본인의 음주 습관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블랙아웃이란 음주 중 있었던 일을 기억하지 못하는 현상으로 짧은 시간에 많은 양의 술을 마시는 사람에게 흔히 나타난다. 이러한 블랙아웃 현상이 반복되면 장기적으로는 심각한 뇌 손상을 일으켜 치매까지 이르게 된다.
알코올성 치매의 또 다른 증상은 성격 변화다. 술만 마시면 공격적으로 변하거나 폭력성을 보인다면 알코올성 치매를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 뇌 앞부분에 있는 전두엽은 감정과 충동을 조절하는 기관으로 알코올에 의해 손상될 수 있다. 알코올성 치매가 초기부터 충동적 또는 폭력적인 성향을 띠는 것은 전두엽이 손상되기 때문이다.
알코올성 치매가 의심되면 전문의를 찾아 적극적으로 치료를 받아야 한다. 임 교수는 “알코올성 치매가 발병할 확률이 높은 알코올 의존증 환자는 스스로 술을 끊기 어려운 경우가 많으므로 주변 사람들이 의료기관의 금주 프로그램을 이용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며 “무엇보다 과음과 폭음을 피하고 평소 올바른 음주 습관을 갖는 것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