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 증권일반

"적대적 M&A 우려 커져…포이즌필 등 경영권 방어책 논의해야" [시그널]

[밸류업 시대의 PEF]<하> 자본시장 제도 개선 절실

'강성부펀드' 한양證 고가 인수에

경영권 프리미엄 논란 다시 점화

일반주주 보호 목소리도 힘실려

자본시장 키우려면 규제정비 시급

여야 입장 달라 논의는 지지부진

여의도 증권가 전경. 연합뉴스여의도 증권가 전경. 연합뉴스




올 들어 사모펀드(PEF) 운용사들이 여러 굵직한 경영권 인수 거래에 뛰어들면서 국내 자본시장 키플레이어로서 자리매김하는 데 성공했지만 동시에 일반 주주가치 훼손, 적대적 인수합병(M&A) 등에 대한 우려도 어느 때보다 커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우리 자본시장이 PEF의 자본력을 발판 삼아 도약하기 위해서는 의무공개매수, 포이즌필 등 그동안 자본시장에서 ‘뜨거운 감자’로 여겨져 온 제도들에 대한 논의를 더 이상 미뤄서는 안 된다고 조언했다.






20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올 9월 ‘강성부펀드’로 알려진 PEF 운용사 KCGI의 한양증권 지분 인수는 국내 자본시장에서 ‘경영권 프리미엄’ 논란을 재점화한 대표 사례로 꼽힌다. KCGI는 약 2449억 원을 들여 시가총액이 2000억 원에 못 미치는 한양증권 지분 29.6%를 6만 5000원에 사겠다고 밝혔다. 최종 지분 매각 계약 체결 과정에서 인수가는 주당 5만 8500원으로 낮아졌지만 같은 날 한양증권 종가(1만 6670원)보다 251%나 높은 수준이었다.

PEF가 기업 인수 과정에서 웃돈을 얹어 기업을 인수하는 건 자본시장에서는 흔한 일이다. 한샘(IMM프라이빗에쿼티), 남양유업(한앤컴퍼니) 등 기업들도 모두 PEF가 경영권 프리미엄 값을 톡톡히 지불한 경우다. 경영권을 확보할 수 있는 주식 지분인 만큼 시장가격보다 거래 금액이 높게 책정되는 것이다.



문제는 경영권 프리미엄 수혜자가 최대주주로만 국한된다는 점이다. 최대주주 주식만 비싸게 사주면 되니 주가를 부양할 동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나아가 업계에서는 중소·중견 기업 오너 입장에서는 최대 60%의 상속세를 내면서 자식에게 기업을 물려주느니 PEF에 지분을 넘기는 게 낫다고 판단해 회사를 매각하는 사례도 비일비재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과정에서 일반 주주의 이익은 철저히 소외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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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최근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 과정에서 벌어진 2조 5000억 원 규모의 유상증자 사태도 상장사 M&A 과정에서 일반 주주 권익을 보호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더 힘을 실어주고 있다. 그 결과 선진 금융시장에서 시행되고 있는 의무공개매수제도 도입 논의가 정치권을 중심으로 활발해지는 상황이다. 의무공개매수제도는 인수 기업이 피인수 기업의 주식을 매수할 때 매수하고 남은 주식의 일정 비율 이상을 의무적으로 추가 매수하도록하는 것이다. 인수인의 무분별하는 출자를 억제하면서 경영권 이전시 일반 주주들도 경영권 프리미엄의 수혜를 누릴 수 있다. 일본은 전체 주식의 3분의 2 이상, 영국은 30% 이상 취득할 경우 인수인이 잔여 주주가 보유한 주식 전체를 같은 가격으로 매수하게끔 하고 있다.

한편으로 기업의 경영권 방어 수단을 글로벌 스탠더드 수준으로 끌어올려야 한다는 의견도 강하다. 국내에는 포이즌필(기존 주주들에게 싼 가격으로 지분 매수권 부여), 차등의결권(주식의 종류에 따라 의결권 수 차별 부여), 황금주(지분율에 상관없이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 주식) 등 미국·일본과 같은 금융 선진국에는 있는 제도가 없다. 기업 입장에서는 적대적 M&A에 대한 공포가 확산하는데 이에 대응할 방안이 마땅하지 않은 것이다.

이에 국내 기업들은 자사주를 제 3자에게 처분할 때 의결권이 회복된다는 점을 이용해 이를 편법적으로 지배권 강화 수단으로 사용하는 실정이다. 황현영·정수민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최근 보고서에서 “2011년 개정 상법이 자사주 취득·처분·소각 취지를 완화한 것은 주식 수의 감소를 통한 경영권 방어가 가능하다는 의미이지 자사주를 활용해 경영권을 방어하라는 취지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경영 투명성을 높여 기업 지배구조를 개선해야 한다는 제언도 잇따르고 있다. 김용진 서강대 경영학과 교수는 “일본은 대주주나 최고경영자(CEO)와 관계가 없으면서도 역량 있는 사람들을 사외이사 과반으로 채우게 한 독립이사제를 도입했다”며 “기업의 경영 투명성이 높아지면 PEF가 경영권을 갖더라도 ‘벌처캐피털’ 우려를 불식할 수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여야 강대강 대치가 악화하고 있는 국회 상황이다. 각각의 제도마다 시장의 이해관계가 첨예한 만큼 신중하고도 신속한 의견 수렴이 요구되지만 정치권 진영 논리에 논의 자체가 지지부진하다. 가령 의무공개매수제도의 경우 정부·여당이 경영권을 인수하려는 자가 전체 주식의 과반(50%+1주)까지 매수하도록 하는 안을 추진하고 있으나 야당이 최근 최대주주 여부와 관계없이 25% 이상 지분을 취득할 경우 잔여 주식 전량(100%)을 인수해야 한다는 내용의 자본시장법 개정안으로 맞불을 놓았다. 의무공개매수제도가 일반 주주의 권리를 보호하는 효과가 있지만 너무 과도하면 M&A 활성화를 저해할 우려가 있다.

특히 야당이 당론으로 밀어붙이고 있는 상법 개정안의 ‘이사의 충실 의무 확대’ ‘집중투표제 의무화’ 등이 블랙홀처럼 모든 의제를 빨아들이고 있다. 재계에서는 위 내용들이 기업 경영에 치명상이 될 독소 조항이라는 입장을 내놓고 있지만 포이즌필·차등의결권 같은 경영권 방어권은 여당도 발의조차 못하고 있다. 한 증권사 IB 부문 고위 관계자는 “PEF가 이미 국내 자본시장 ‘머니무브’의 큰손이 된 지 오래인데 우리 제도들은 그냥 오래되기만 했다”며 “적절한 제도가 뒷받침하지 못하면 시장에 불신만 더 만연하게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김남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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