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목요일 아침에] 갑오경장과 IMF 위기 돌아본다

성장률 1%대 눈앞 ‘트럼프 리스크’

반도체 제외 대부분 업종 中에 밀려

허약해진 韓 증시, 암울한 미래 경고

구조개혁 못하면 또 ‘타율 개혁’ 직면

오현환 논설위원오현환 논설위원




130년 전인 1894년 7월 조선은 ‘타율 개혁’의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정치 군사 기구인 군국기무처가 설치돼 200여 건의 개혁 조치가 의결됐다. 왕실·국정 사무 분리, 문벌과 신분 계급 타파, 노비 제도 폐지, 조혼 금지, 부녀자 재가 허용, 도량형 통일, 조세의 금납제 도입, 은행·회사 설립 등이 이뤄졌다. 개화파 관료들이 중심이 돼 정치·경제·군사·법률 등 사회 전 분야에서 구질서에 종지부를 찍었다. 갑오경장(甲午更張)이다. 조선의 근대화는 사실상 이를 기점으로 시작됐다.

그러나 갑오년의 개혁은 조선 침탈의 야욕을 지닌 일본의 내정간섭으로 출발했다. 그해 1월 동학농민운동이 봉기하자 조선이 진압을 위해 청나라에 군대를 요청했고 이에 일본도 갑신정변 이후 청일 간에 맺은 톈진조약을 빌미로 파병했다. 한반도에서 청일전쟁이 벌어지는 와중에 일본군의 비호 아래 개혁이 진행돼 일본의 침략 의도가 담길 수밖에 없었다. 서구와 일본이 산업혁명 등으로 강대해져 전 세계로 식민지 사냥에 나섰는데 조선은 우물 안 개구리처럼 정쟁만 일삼다가 개혁을 강제당하게 된 것이다.



한국은 지금 갑오경장에 못지않은 변화를 요구받고 있다. 경제성장률이 1990년대 이후 5년마다 1%씩 떨어져 1%대로의 추락을 위협받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예측한 올해 한국의 잠재성장률은 2.0%로 경제 규모가 16배나 되는 미국(2.1%)에도 역전됐다. 저출산 고령화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진행되면서 장기 디플레이션에 빠졌던 ‘잃어버린 30년’의 일본을 닮아갈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반도체 산업을 제외한 대부분의 업종이 중국에 밀리고 있다는 두려움이 확산하고 있다. 중국 제품의 기술·품질 수준은 비슷해졌는데 가격은 훨씬 싸 우리 제품이 수출 시장에서 당해낼 재간이 없게 될 상황에 처했다. 기업들은 경직된 노동시장과 고질적 규제들에 묶여 투자 의욕을 상실한 지 오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보편관세, 환율 관찰 대상국 지정 등 ‘도널드 트럼프발(發) 퍼펙트스톰’이 한국 경제를 정면으로 위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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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주식시장은 갈 길을 잃은 지 오래다. 미국·독일·프랑스·일본·인도 등 세계 주요국 증시들은 코로나19 충격이 수그러든 후 두 차례 이상 추세적인 레벨업에 성공했다. 하지만 코스피지수는 아직도 코로나19 이전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개인투자자들이 미국 주식에 투자한 금액이 2년 새 600억 달러(약 84조 원) 늘어 1000억 달러(약 139조 원)를 넘어섰다. 월스트리트저널 편집국장이었던 윌리엄 피터 해밀턴은 1922년 내놓은 투자의 고전 ‘주식시장 바로미터’에서 “주식시장이 의미 없이 움직이는 경우는 없다”고 했다. 증시가 실물경제의 변화를 미리 보여주는 바로미터라는 얘기다. 한국 경제가 암울한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는 경고를 허약한 한국 증시가 보내고 있는 것이다.

골든타임이 끝나기 전에 기업 하기 좋은 환경을 갖추도록 구조 개혁을 서둘러야 한다. 노동시장 유연성을 높이고 낡은 임금체계를 개편하는 것과 함께 양극화 완화를 위해 사회 안전망을 보강하는 개혁이 절실하다. 글로벌 스탠더드와 동떨어진 상속세·법인세 등 세제도 과감히 바꿔야 한다. 주요국들에 비해 개혁이 지지부진한 연금제도는 시한폭탄이다. 연금 개혁 지연으로 미래 세대에 전가되는 부채가 하루에 885억 원, 연간 32조 원씩 늘고 있다. 급변하는 시대에 적응할 수 있도록 교육, 의료, 저출산 고령화 관련 개혁 또한 늦출 수 없다.

정부는 개혁안을 제시하고 국회를 설득해야 한다. 여야 정치권은 권력 야욕으로 이전투구하며 정쟁에 매몰될 게 아니라 시대에 맞는 개혁 추진에 힘을 보태야 한다. 미국은 고용과 해고가 자유로운 유연한 노동시장을 바탕으로 인공지능(AI) 시대를 선도하고 있다. 한국의 투자자들이 미국으로 몰려가는 것도 결국 기업 하기 좋은 나라에서 혁신이 일어나고 투자 수익이 높기 때문이다. 우리는 구조 개혁을 외면해 기업들이 연쇄 도산하고 수많은 근로자들이 일터를 잃고 거리로 나섰던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도 경험했다. 정부는 위기를 겪고 나서야 금융·기업·공공·노동 부문의 개혁에 나섰다. 200조 원가량의 공적 자금을 은행에 투입해 통폐합하고 대기업을 구조조정하고 일부 재벌은 해체했다. 우리가 이 시대에 적합한 유연한 경제 시스템을 갖추지 못하면 타율적인 개혁에 또다시 직면할 수밖에 없다.

오현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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