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전원회의에서의 핵심 쟁점은 4대 은행이 담보대출을 취급하면서 LTV 거래 조건에 대한 단순 정보 교환을 담합으로 볼 수 있는지였다. 공정위는 지난해 2월과 6월 두 차례에 걸쳐 KB국민·신한·하나·우리 등 4대 시중은행에 대한 현장 조사에 착수했다. 1월에는 4대 은행이 부동산 LTV 거래 조건에 대해 7500개에 달하는 정보를 교환한 것을 담합으로 규정하고 심사보고서를 각 은행에 발송했다. 4대 은행이 매년 1~2회 지역·종류별로 LTV를 설정하는데 은행들이 LTV 정보를 공유한 뒤 비율을 조정함으로써 개정된 공정거래법을 위반했다는 것이 당시 공정위의 판단이었다.
한기정 공정위원장도 정보 교환을 담합으로 규정할 수 있다며 은행 LTV 담합이 부당하다는 취지를 수차례 밝히며 혐의 입증에 자신감을 보였다. 한 위원장은 지난달 “2020년 공정거래법 개정으로 중요 정보를 교환하는 담합도 위법으로 보는 법적 근거가 마련됐다”며 “은행 LTV 담합 사건은 이 개정안 시행 이후 최초로 시행되는 담합 사건이라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공정위원장과 부위원장을 포함한 전원 위원 9명이 모인 회의에서 4대 시중은행의 정보 교환을 담합으로 볼지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되레 4대 시중은행의 의견을 토대로 전원회의는 검찰 역할을 하는 공정위 사무처(심사관)에 사실관계를 추가로 확인하라는 결정을 내렸다. 사실상 은행 측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은행들은 업무 효율 향상을 위한 단순 정보 교환만으로 담합이 성립될 수 없다는 기존의 주장을 되풀이했다. 아파트 같은 우량 담보물에 대출 한도를 높게 잡는 것이 이익인 만큼 LTV 비율을 낮추는 식의 담합은 은행의 이익이 되지 못한다는 얘기다.
정부 안팎에서는 당초 공정위의 LTV 담합 조사 자체가 결론을 미리 정한 ‘무리한 끼워 맞추기’ 조사였다는 비판이 나온다. 결론적으로 금융권 혼란만 불러왔다는 말도 있다.
현재 LTV 담합 의혹과 공정위의 조사는 정부의 은행권 독과점 압박에서 출발했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지난해 2월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금융 분야는 민간 부분에서 서비스를 공급하고 있으나 공공재적 성격이 강하고 과점 형태가 유지되고 있다”며 “경쟁 촉진을 위한 특단의 대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이 때문에 시장에서는 공정위가 조사를 서두르다가 부실한 결론을 내린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공정위 안팎에서는 향후 절차를 고려하면 해를 넘겨 결론이 나올 것으로 보고 있다. 이번 LTV 담합 사건이 2016년 양도성예금증서(CD) 금리 담합 때처럼 무혐의로 결론이 내려질 것이라는 예측도 조심스럽게 흘러나온다. 공정위의 조사 동력이 상당히 떨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공정위는 이날 브리핑에서 “새로운 사실관계 확인”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명확한 답을 내놓지 못했다.전원회의의 재심사 명령으로 심사관이 처음부터 사실관계 수집과 현장 조사, 심사보고서 송고를 해야 하고 이를 바탕으로 전원회의 심의 등 새로운 절차를 다시 거쳐야 한다. 당시 공정위는 CD 금리 담합의혹에 대한 심의절차를 종료하면서 사실관계 확인이 어려워 법 위반 여부를 판단할 수 없다고 밝힌 바 있다. 공정위는 이에 대해 “삼표 사례처럼 재심사를 해서 제재를 한 경우가 있다”며 “지금으로서는 어떤 쪽으로 결론이 날지 결정된 상태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