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 국내증시

이의신청땐 20개월 '느림보 상폐' 철퇴…무늬만 상장사 솎아낸다

[상장폐지 제도 개선]

◆ 정부, 개선기회 없이 퇴출 추진

올해만 상장사 72곳 '위험선상'

퇴출 제대로 안돼 증시 신뢰 추락

내년 시행되면 50곳 상폐 가능성

남용 소지 있어 꼼꼼한 정비 필수





반도체 관련 업체인 코스닥 상장사 이큐셀은 8월에 정리매매 등 상장폐지 절차에 돌입했다. 감사 의견 ‘거절’을 받아 상장폐지 사유가 발생한 지 무려 4년 남짓 만이다. 자진 개선 기간 부여, 이의 신청 등을 통해 퇴출 절차를 밟은 결과 기업 회생이 힘든 상황임에도 퇴출이 무한정 지연됐다.

문제는 이런 사례가 예외가 아니라는 점이다. 실제 감사 의견 미달 사유가 발생했을 때 평균 거래 정지 기간은 코스피 상장사가 20개월, 코스닥 상장사는 19개월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됐다.



정부와 한국거래소가 2년 연속 감사 의견 부적정(거절과 한정 포함)을 받은 기업에 대해서는 상장폐지 절차 간소화를 통해 신속히 솎아낼 방안을 마련한 것은 퇴출 절차 개선 없이는 증시 선진화도 요원할 수밖에 없다는 판단 때문이다. 증시 현실을 보면 암담하다. 감사 의견 부적정을 받아 상장폐지된 기업 수는 2022년 11개, 2023년 7개, 올해 4개(21일 기준)로 감소한 반면 감사 의견 부적정을 받은 상장사는 같은 기간 43개→52개→72개로 급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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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장에 비해 퇴출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다 보니 증시가 병들어가고 있다는 문제가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다. 실제 한국 증시는 주요 국가 대비 시가총액은 낮은 반면 상장사 수가 지나치게 많은 편이다. 미 나스닥과 비교하면 이는 확연하다. 나스닥은 시가총액 측면에서 우리나라보다 25배 정도 크지만 상장 기업 수는 고작 2.5배 수준이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우리 증시의 경우 매년 100개 기업이 상장하는 반면 퇴출 기업은 10개도 안 된다”며 “전체 상장사 중 20%가 적자인데 증시 퇴출이 원활하지 않다 보니 시장에 대한 신뢰가 추락하기 쉽다”고 지적했다. 이어 “좀비기업을 빨리 퇴출해 주식시장을 건전화시켜야 신규 자금 투입도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권재열 경희대 로스쿨 교수는 “감사 의견 부적정은 내부 통제나 다양한 법률적인 문제가 있기 때문에 나오는 것”이라며 “이런 문제점에 대해 즉각적으로 시장에서 반응해줘야 상장사가 보다 능동적으로 지배구조 개선 혹은 경영 투명성 제고 등에 나설 것”이라고 봤다.

앞으로 정부안은 공청회 등을 통해 수정되겠지만 원안 대로면 퇴출 선상에 있는 기업은 많게는 50여 개가 넘을 가능성이 있다. 당장 올해만 해도 감사 의견 부적정을 받은 상장사는 코스피 16곳, 코스닥 56곳에 이른다. 이 기업들은 내년도 회계 감사에서 또 ‘적정’ 의견을 받지 못하면 즉시 상장폐지의 운명을 맞게 된다.

시장에서는 특히 선의의 피해자가 없도록 꼼꼼한 제도 정비를 주문하고 있다. 퇴출 요건이 거래소 상장 규정으로 돼 있다 보니 자칫 남용될 소지도 없지 않다는 것이다. 실제 전자부품 전문 업체 감마누의 경우 감사 의견 거절로 6개월여 만에 시장에서 퇴출된 후 ‘상장폐지 결정 등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냈고 결국 소송에서 이겼다. 퇴출 제도가 기존보다 강력해질수록 투자자·상장사·정부·거래소 등이 보다 많은 소통을 해야 한다는 제언이 나오는 이유다. 홍기용 인천대 경영학부 교수는 “한번 상장폐지가 되면 투자자들이 피해를 보기 때문에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며 “투명한 방향으로 합리적인 의견과 이의 신청 과정이 반영될 때 기업과 투자자의 손해를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가 상장 유지를 위한 시가총액·매출액 기준을 높이기로 한 점도 주목할 포인트다. 정부와 거래소는 얼마나 많은 상장사가 퇴출선상에 설지 등을 고려해 시가총액과 매출액 기준을 새로 설정할 것으로 보인다.

김병준 기자·박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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