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IT

뜨거워지는 XR 전쟁…삼성·메타·애플 뛰어든 이유는? [딥테크 트렌드]

삼성전자, 내년 하반기 XR 기기 출시 전망

강자는 메타…개발 기간 10년 넘어

차세대 디지털 생태계 선점 위해 경쟁

AI 비서 시너지로 패권 전쟁 영향 가능성

활용도·편의성 높이고 가격 낮출 필요

애플의 공간형 컴퓨터 비전프로. AP연합뉴스애플의 공간형 컴퓨터 비전프로. AP연합뉴스




현실과 가상 세계의 경계를 허무는 확장 현실(XR) 시장이 달아오르고 있다. XR은 가상 현실(VR)·증강 현실(AR)·복합 현실(MR)을 아우르는 기술이다. 삼성전자(005930)·LG전자(066570) 등 국내 기업과 애플·메타 같은 글로벌 빅테크, 바이트댄스 등 중국 기업도 XR 시장에 뛰어들었다. 이들 기업은 스마트폰의 뒤를 이을 것으로 예측되는 XR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경쟁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XR이 인공지능(AI) 에이전트(비서)와 결합하면 AI 패권 전쟁 판도에도 영향을 끼칠 수 있기에 테크 기업의 보폭이 빨라지고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23일 정보기술(IT) 업계와 중국 리서치기업 웰센 XR 리서치 등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이르면 연내 XR 플랫폼을 선보이고 내년 3분기 XR 기기를 출시할 것으로 전망된다.

삼성전자는 퀄컴, 구글과 손잡고 XR 기기를 개발하고 있다. 세 회사는 지난해 2월 본격적인 협력을 발표했다. 퀄컴의 칩셋과 구글의 운영체제(OS)와 인공지능 ‘제미나이’가 기기에 탑재될 것으로 보인다. 새 XR 기기는 일반적인 안경 형태로 무게는 50g 수준으로 예측된다. 노태문 삼성전자 모바일경험(MX) 사업부장(사장)은 지난해 2월 ‘갤럭시 언팩 2023' 기자 간담회에서 "퀄컴은 XR 기술 인에이블러(enabler)로서 기술을 발전시켜 왔고 구글은 콘텐츠와 플랫폼 업계 최강자이며 삼성은 스마트폰 업계 리더로서 개방과 열린 협력의 오픈 생태계 차용으로 새로운 카테고리를 창조해 왔다"고 밝힌 바 있다.

삼성전자가 뛰어든 XR 시장의 강자는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을 운영하는 메타다. 메타는 XR 기기 개발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메타는 2021년 에실로룩소티카와 함께 레이밴 스마트 안경을 판매하고 있다. 지난해 9월에는 성능이 향상된 2세대 ‘레이벤 메타’를 출시했다. 메타는 VR 헤드셋 ‘퀘스트' 시리즈도 시장에 내놓고 있다.

메타의 스마트 안경 ‘오라이언’. 사진제공=메타메타의 스마트 안경 ‘오라이언’. 사진제공=메타


메타는 한층 고도화된 XR 기기를 개발하고 있다. 올해 9월 연례 개발자 콘퍼런스 '커넥트 2024’에서 스마트 안경 ‘오라이언’을 공개했다. 검은색의 두꺼운 뿔테 안경 형태의 ‘오라이언’을 쓰면 화상 통화를 하거나 메시지를 받을 수 있고 유튜브 동영상도 볼 수 있다. 마이크로 렌즈가 장착돼 프로젝터를 통해 3차원(3D) 이미지를 투사시켜 홀로그램의 AR 기능이 구현된다. 이용자는 손목 밴드을 통해 디스플레이를 '클릭'하거나 눈의 운동을 추적하는 내장된 카메라로 ‘스크롤' 할 수 있다.

피코가 올해 8월 출시한 ‘피코4 울트라’. 사진제공=피코피코가 올해 8월 출시한 ‘피코4 울트라’. 사진제공=피코



삼성전자와 메타 뿐만 아니라 전 세계 테크 기업이 XR 기술 개발에 매진하고 있다. 애플은 '공간형 컴퓨터'라고 부르는 MR 헤드셋 ‘비전프로’를 이달 15일 한국에서 출시했다. 올해 2월 미국에서 출시한 지 9개월 만이다. 숏폼 플랫폼 틱톡의 모회사 중국 바이트댄스는 2021년 스타트업 피코를 인수하며 시장을 다지고 있다. 피코는 지난 8월 ‘피코4 울트라’를 출시했다. 일본 소니도 연이어 XR 기기를 내놓고 있다. LG전자도 XR 기기를 개발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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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트업도 XR 전쟁에 뛰어들고 있다. 국내 XR 촉각 솔루션 개발 스타트업 비햅틱스는 이달 촉각 수트 '택수트 프로'와 '택수트 에어'를 출시했다. 올해 4월 메타와 파트너십을 체결하며 화제가 된 이 기업은 연초 100억 원 규모의 시리즈C 투자를 유치했다. 국내 스타트업 소프티오닉스는 XR 기기 구동에 필요한 손의 움직임을 감지하는 기술을 선보여 주목받고 있다. 손 표면의 전하를 감지해 움직임을 추적하는 기술로 2024 KDB 스타트업 프로그램에서 최우수상을 받았고 올해 LG 슈퍼스타트 오픈이노베이션 프로그램 인큐베이팅 기업으로 선정됐다.

기업은 XR 사업을 벌이는 이유는 차세대 디지털 생태계를 선점하기 위해서다. XR 기기는 스마트폰 이후로 인류의 일상을 함께 할 기기로 꼽힌다. 손을 쓰지 않고도 스마트폰의 기능을 활용할 수 있으며 디지털 세계와 현실 세계의 벽을 허무는 경험까지 제공하기 때문이다. XR 기기는 일상 생활뿐만 아니라 제조·유통·의료·교육·엔터테인먼트 등 다양한 산업에 활용될 것으로 예상된다. 제조 현장에서는 VR을 통해 훈련하고 AR을 통해 현장 상황을 분석하며 작업을 할 수 있게 된다. 롯데이노베이트(286940)는 초실감형 메타버스 ‘칼리버스’에서 JYP엔터테인먼트의 ‘엔믹스’와 EDM DJ ‘알록’의 가상 공연 콘텐츠를 제공하고 있다. 글로벌 시장 조사기관 스태티스타에 따르면 전 세계 2029년 AR과 VR 시장 규모는 연간 9.0% 성장해 620억 달러(87조 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마크 저커버그 최고경영자(CEO)는 "지금까지 AR 기기에 대한 모든 시도는 헤드셋, 고글, 헬멧이었다"며 "오라이언이 스마트폰 다음의 컴퓨팅 디바이스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메타의 스마트 안경 ‘레이벤 메타’. 사진제공=메타메타의 스마트 안경 ‘레이벤 메타’. 사진제공=메타


XR 산업이 AI 패권 전쟁에도 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핸즈프리’라는 폼팩터(제품 형태) 특징이 AI 비서의 확산을 촉진할 수 있다. 이용자가 음성 명령이나 제스처 등을 통해 편리하게 AI 에이전트와 실시간 상호작용을 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김영무 카카오벤처스 심사역은 “AI 에이전트의 확산에 XR 기기가 도움이 될 것”이라며 “이용자에게 편리한 인터페이스를 녹여내는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메타는 이미 ‘레이벤 메타’에 AI를 탑재했다. 이용자가 현재 보고 있는 것에 대해 설명해달라고 하면 AI가 답변을 실시간으로 제공한다. 유명한 건축물을 보면서 설명을 들을 수 있다. 또 해외여행 시 외국어로 적힌 메뉴판도 번역해 주는 식이다. 영어·스페인어·프랑스어 등 일부 언어를 대상으로 실시간 음성 번역 기능도 제공한다. 삼성전자가 개발 중인 XR 기기도 AI를 활용한 결제 기능, 제스처 인식 기능, 안면 인식 기능 등을 확보할 것으로 전망된다. 노 사장은 지난달 21일(현지 시각) 미국 하와이에서 열린 퀄컴 스냅드래곤 테크 서밋 2024에서 기조연설을 통해 "이제는 획기적인 확장현실 생태계에서 새로운 렌즈를 통해 AI의 이점을 확인할 때"라고 말했다. 중국 기업도 공략 속도를 높이고 있다. 바이두는 AI 챗봇인 '어니봇' 기반의 AI 글라스인 '샤오두'를 내년 상반기 출시할 예정이다. 샤오미도 AI 스마트 안경을 내년 선보일 계획이다.

LG유플러스의 AR글라스 ‘U+리얼글래스’. 사진제공=LG유플러스LG유플러스의 AR글라스 ‘U+리얼글래스’. 사진제공=LG유플러스


다만 XR 대중화를 위해서는 활용도와 편의성을 높이고 가격을 낮춰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애플 ‘비전프로’는 600g이 넘는 무거운 무게와 고가의 가격(최소 499만 원), 킬러 앱의 부족 등을 지적받으며 판매량에 기대에 못 미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시장조사업체 IDC에 따르면 미국 내 비전 프로 판매량은 올해 1분기와 2분기를 합해 17만 대로 추산된다. 기대 판매량인 30만~40만 대를 밑돈 것이다. 구글은 2013년 ‘구글 글라스’를 선보였지만 높은 가격과 함께 사생활 침해 논란 등으로 2015년 단종시켰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최근 XR 기기 홀로렌즈 개발을 중단했다. LG유플러스(032640)는 2020년 엔리얼(현 엑스리얼)과 AR 글라스 ‘U+리얼글래스’를 선보였지만 판매를 중단했다.


김성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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