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가 불러주는 자장 노래에/ 팔 베고 스르르르 / 잘 자라 우리 아가 (자장자장)”
지난 23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올해 12회째 진행된 한화클래식 베를린 고음악 아카데미와 리아스 실내합창단 공연의 앙코르 무대를 기대하며 자리를 지키던 관객들 사이에서 탄식이 터져나왔다. 익숙하지만 낯선 화음은 귀가 아니라 몸으로 스며들었다. 세대와 관계 없이 한국인이라면 누구든 익숙한 자장가 ‘섬집 아기’가 34명으로 이뤄진 다국적 실내합창단의 화음 속에서 탄생한 것이다. 고악기를 손에 쥔 채 오케스트라 단원들도 저마다 눈을 감고 자장가를 듣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저마다 얽힌 추억이 있는 관객들은 세계 최고의 합창단이자 다양한 모국어를 가진 이들의 노랫가락 사이에서 특유의 따뜻하고 애수가 담긴 정서가 묻어 나오자 연신 눈시울을 훔쳤다. 함께 눈가를 닦은 합창단원 중에는 소프라노 김미영씨가 있었다. 이는 수석 지휘자 저스틴 도일과 합창단이 준비한 한국 관객들을 위한 선물이었다.
영국 출신의 도일 지휘자는 공연에 앞서 전날 진행한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를 통해 “음악이 ‘국경 없는 언어’라고 이야기하지만 서로의 노래를 배우려는 노력이 없다면 이 말은 반쪽 짜리”라며 “합창단으로서 다른 문화의 음악을 배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조만간 진행하는 콘서트에서는 합창단원들이 있는 나라인 한국, 필리핀, 일본, 아일랜드, 아르헨티나 등 전 세계의 음악적 요소를 가져와 하나의 민요로 꿰어낼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날 베를린 고음악 아카데미와 리아스 실내합창단이 펼친 공연은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의 ‘내 마음에 근심이 많도다’ 칸타타와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헨델이 작곡한 ‘주께서 말씀하셨다(Dixit Dominus)’로 이뤄졌다. 프로그램은 간결했지만 그 깊이는 풍성했다. 30년 가까이 호흡을 맞춰 온 베를린 고음악 아카데미와 리아스 실내합창단의 조화는 훌륭했다. 바로크 시대의 고(古)악기의 경우 상대적으로 거칠고 날것의 느낌을 주지만 합창과 어우러지는 부분에서 고악기가 크게 주장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
‘주께서 말씀하셨다’ 공연은 특히 도일 지휘자의 물 흐르는 듯한 지휘 속에서 소프라노와 알토, 베이스, 테너 등 독창자들이 자연스럽게 전체와 균형을 이뤄냈다. 특히 2악장인 ‘주님께서 당신 권능의 왕홀을(Vigram virtutis)’에서 알토 헬렌 찰스턴의 독창과 첼로의 조화가 감탄을 자아냈다. 이어 3악장에서 바톤을 이어 받은 소프라노 엘리자베스 브로이어는 ‘구름에 떠다니는 목소리’라는 명성을 입증했다. 합창단의 투티(다 같이 부르거나 합주하는 것)가 이뤄진 5악장의 화음으로 몰입감을 높였다. 이들이 만들어 내는 에너지는 바이올린 현에 첼로의 현이 더해지고 소프라노들의 섹션 합창이 화음을 얹는 9악장의 ‘그분께서는 길가 시내에서 물을 마시고 머리를 치켜 드시리이다’에 이르러서 절정에 달했다. 도일 지휘자는 “마지막 두 개의 악장은 헨델의 원고의 경우 두 명의 솔리스트만 노래를 부른다는 뜻일 수도 있지만 저는 헨델에게 질문을 던졌다”며 이 같이 말했다. ‘마에스트로님, 우리 소프라노들은 한 섹션으로 정말 훌륭합니다. 함께 이 곡을 불러도 될까요.’
실제로 소프라노들이 하나로 어우러진 화음은 이 곡이 절대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불러일으켰다. 최고의 악기는 인간의 목소리고 이는 잘 어우러진 합창에서 빛을 발한다는 것을 다시 확인한 부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