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론] 이사회 무력화하는 상법 개정안

◆권재열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사와 주주, 계약관계 전혀 없어

'충실의무 확대' 개정안은 법리 훼손

회사 밸류다운땐 주주 보호도 요원





주식회사는 주주들이 갹출해 설립한다. 주주의 각출 내용에 관해서는 회사에 대한 출자 계약에서 정한다. 주식회사의 일상적인 의사 결정은 회사와 수임 계약을 체결한 이사들로 구성된 이사회가 담당한다. 회사의 설립과 운영에서 보듯이 주주와 이사 사이에는 계약에 따른 직접적인 연결 고리는 없다.

회사는 영업을 통해 이익을 창출하고 그 이익으로 이사에게 보수를 지급한다. 이사의 의무는 크게 선관주의 의무와 충실 의무로 나눠진다. 이사가 회사의 이익을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할 의무를 선관주의 의무라 하는데 이사의 충실 의무는 이사의 선관주의 의무에 포섭되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우리와 법체계가 유사한 일본도 같은 입장이다. 만약 더불어민주당의 상법 개정안대로 이사가 회사와 주주를 위해 충실 의무를 부담해야 한다면 그동안 정립된 법리와 법원칙이 훼손될 수밖에 없다. 선관주의 의무는 회사의 이익을 증진하기 위한 것이지만 충실 의무가 회사와 주주의 이익을 위한 것으로 규정된다면 양자의 관계를 명쾌하게 설명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관련기사



약탈적 행동주의 펀드가 증권시장에서 주식을 야금야금 사 모았다가 갑자기 어느 건실한 회사의 대주주에게 경영권을 내놓으라고 하는 경우 이사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 만약 민주당의 상법 개정안에 규정된 충실 의무를 반드시 준수해야 한다면 이사가 어떻게 할 도리가 없다. 행동주의 펀드도 주주이고 현재 경영권을 쥐고 있는 자도 주주인데 이 경우 어떠한 방법으로라도 총주주의 이익을 보호할 수 없고 전체 주주의 이익을 공평하게 대우할 길이 없다.

소송이 난무하는 경영권 분쟁에서 이사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안타깝게도 행동주의 펀드가 공격할 조짐이 느껴질 때 바로 사임하는 게 최선이다. 만약 이사가 사임하지 않고 경영권을 방어하는 경우 행동주의 펀드는 이사가 전체 주주의 이익을 공평하게 대우할 의무를 위반했다며 그 책임을 묻는 소송을 제기할 것이 자명하다. 이 같은 이사의 책임을 추궁하는 소송에는 대법원 판례가 인정하는 경영 판단의 원칙이 적용되지 않아 이사의 행위는 보호받지 못한다. 경영 판단의 원칙은 기본적으로 이사와 계약관계에 있는 회사에 대해 그가 책임을 지는지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을 말한다. 설령 경영 판단의 원칙을 상법에 명문으로 규정한다고 하더라도 주주와 이사 사이에는 아무런 계약관계가 없어 주주에 대한 이사의 충실 의무 위반을 구제하는 기제가 될 수 없다.

배임죄를 폐지할 터이니 상법 개정안을 받아들이라는 것도 어불성설이다. 기본적으로 배임죄는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의 임무 위반 행위를 형사적으로 규율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범죄다. 그러나 상법 개정안에 따르더라도 이사는 회사의 신뢰를 저버린 배임죄의 주체일 것은 여전하지만 과연 주주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에 해당할지는 분명하지 않기 때문이다. 배임죄 폐지는 이사의 충실 의무 확장과는 무관한 것임에도 당근으로 내세운 듯하다.

소수주주를 보호하자는 데 토를 달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그렇다고 해서 이사의 충실 의무를 주주에게 확대하자는 상법 개정안은 너무 나간 것이다. 이사회를 무력화해 회사가 밸류다운되면 소수주주 보호는 요원한 일이 될 것이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