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무역 및 제조업 선임 고문에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폐기를 주장했던 것으로 알려진 피터 나바로 전 백악관 무역·제조업정책국장을 지명했다. 한국에 대한 FTA 재개정 압박 및 관세 폭탄 등 트럼프 2기에 휘몰아칠 압박이 거세질 것으로 전망되지만 한국은 ‘계엄령발(發)’ 국정 공백 우려가 증폭되고 있다.
트럼프는 4일(현지 시간) 트루스소셜에 “나바로가 무역 및 제조업 분야 선임 고문으로 다시 함께 일하게 됐음을 기쁘게 생각한다”며 내정 사실을 밝혔다. 트럼프는 “내 첫 임기 때 ‘미국 제품을 구매하고 미국인을 고용하라’는 두 가지 신성한 원칙을 집행하는 데 나바로보다 더 효과적이거나 끈질긴 사람은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내가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과 한미 FTA와 같은 불공정한 무역 협정을 재협상하는 데 도움을 줬고 모든 관세 및 무역 관련 조치를 신속하게 추진했다”며 “그의 임무는 제조업과 관세, 무역 의제를 성공적으로 추진하고 소통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75세의 나바로는 한미 FTA에 대해 부정적 견해를 피력해온 인물이다. 밥 우드워드 워싱턴포스트(WP) 부편집인의 저서 ‘공포: 백악관의 트럼프’에 따르면 트럼프는 2017년 9월 한국에 한미 FTA 종료를 통보하는 서한을 들고 내부 회의에 등장했는데, 나바로와 윌버 로스 당시 상무장관이 이 문건을 작성했을 것으로 우드워드는 추정했다. 나바로는 2016년 미국 언론 인터뷰에서도 “우리는 2012년 체결한 한미 FTA로 일자리 10만 개를 잃었다. 우리의 무역적자는 배로 늘었다. 무엇보다도 한미 FTA로 인한 손해의 75%는 자동차 산업에서 초래된 것”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특히 나바로는 관세와 환율로 미국의 무역적자를 줄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이 한국과의 무역 협상에서 한국의 외환시장 개입 등에 대해 압박을 할 수 있다고 예상되는 대목이다.
5일로 당선 한 달을 맞은 트럼프는 1기 때보다 훨씬 더 강력하고 빠른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정책을 예고하고 있다. 한 달 동안의 발표와 인선을 보면 ‘관세의 무기화’ ‘속도전’ ‘충성파’로 요약된다. 취임하기도 전에 멕시코와 캐나다에 불법 이민자와 마약 반입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25%의 관세를 매기겠다고 했고 중국에 대해서도 기존 관세에 추가로 10%를 더 부과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특히 ‘예스맨’으로 내각 및 참모진을 꾸린 만큼 2년 뒤 중간선거 전까지 주요 정책을 빠르게 밀어붙일 것으로 관측된다.
산업연구원은 트럼프의 보편관세(10∼20%)가 부과되면 대미 수출이 55억∼93억 달러 감소할 것으로 추산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은 미중 간 관세 전쟁이 벌어질 경우 한국의 수출이 최대 448억 달러까지 감소하고 내년 경제성장률도 0.1~0.4%포인트 낮아질 것으로 관측했다.
문제는 국내 정치 상황이다. 갑작스러운 계엄령과 이어진 탄핵 국면으로 국정 공백이 현실화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워싱턴 내의 한 한국 관료는 “2016년 말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국면에도 관료들의 업무 집중도가 떨어졌던 것이 사실”이라고 당시 분위기를 전했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글로벌은 국가 신용등급 하향 가능성은 제한적이라면서도 외국 투자자들이 한국의 공급망·재무·정책 리스크를 재평가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글로벌 투자 전문가들은 한국 경제가 미국의 관세 위협에 취약한 상태에서 정치적 불안정성까지 더해져 코리아 디스카운트 현상이 심화할 것으로 봤다. 정치적 불확실성이 한국 경제의 구조적 위험을 가중시키고 있다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