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한강 "韓 절망적 상황은 아냐…시민들의 용기에 감동"

◆'노벨 낭독의 밤' 행사

계엄사태 혼란 세계인 안심시켜

스웨덴어로 '희랍어 시간' 낭독

'노벨 주간' 끝내고 귀국길 올라

한강(왼쪽 두번째)이 12일 '노벨 낭독의 밤' 행사에서 패널과 대화하고 있다. AFP연합뉴스한강(왼쪽 두번째)이 12일 '노벨 낭독의 밤' 행사에서 패널과 대화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시민들이 보여준 진심과 용기 때문에 감동을 많이 했다. 그래서 이 상황이 끔찍하다고만 생각하진 않는다. 밖에서 보는 것처럼 그렇게 절망적인 상황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노벨문학상’ 수상자 한강은 12일(현지시간) 스웨덴 스톡홀름 왕림연극극장에서 열린 ‘노벨 낭독의 밤’ 행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날 행사의 진행을 맡은 현지 번역가 유키코 듀크가 ‘비상계엄으로 그렇게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노벨상 수상을 위해) 출국해야 했으니 얼마나 끔찍(awful)했느냐’고 한 질문에 대해서 답하면서다. 지난 한 주 ‘노벨 주간’을 마감하는 이날 강연에서 세계인들을 향해 한국 상황을 설명하고 안심시킨 셈이다.

한강은 “광주의 기억을 트라우마로 가지고 있는 제 또래나 저보다 나이가 많은 분들도 (시위현장에) 많이 가셨다”며 “그대로 두면 상황이 얼마나 나빠질 수 있는지 알기에 모두가 걱정과 경각심을 가지고 행동할 수 있었던 것”이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한강은 이날 광주민주화운동을 다룬 ‘소년이 온다’의 집필 동기와 관련, ‘독재자의 딸’ ‘전두환’ 등을 거론하며 박근혜 전 대통령이 대선 후보가 된 것과 같은 배경이 영향을 줬느냐는 질문을 받기도 했다. 그러자 그는 “이 책을 쓴 데는 여러가지 동기가 있는데 지금 말씀하신 것도 하나의 동기가 될 수 있겠다”고 언급해 눈길을 끌었다.



한강은 이날 강연에서 자신의 소설 ‘희랍어 시간’을 낭독하기도 했다. 그가 ‘희랍어 시간’ 일부를 우리말 원문으로 낭독한 뒤에는 배우 카린 프란스 셸로프의 스웨덴어 번역본 낭독이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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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희랍어 시간’이 스웨덴어 번역본으로는 아직 출간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문학상 수상을 축하하러 와준 현지 독자들에게 특별한 선물을 한 셈이다. 이 작품은 실어증을 앓는 여자와 시력을 잃어가는 한 남자의 만남을 그린 내용으로, 한강은 “유일하게 사랑(을 소재로 한) 이야기”라고 소개했다.

한강은 이날 강연을 마지막으로 공식 일정을 마무리하고 귀국했다. 한강의 ‘노벨 주간’ 일정은 문학에 대한 사랑과 함께 비상계엄 이후 한국 상황에 대한 우려가 섞인 복잡한 것이었다.

앞서 한강의 첫 일정은 6일 스톡홀름 노벨상박물관에서 열린 기증식이었다. 이날 한강은 제주 4·3 사건을 바탕으로 쓴 ‘작별하지 않는다’ 집필 당시 사용한 작은 옥색 찻잔을 기증했다. 한강은 “책상으로 돌아가려고 할 때마다 딱 그 잔만큼 홍차를 마셨다. 찻잔은 저를 돌아가게 하는 주문 같은 것이었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기증식 직후 열린 국내외 공식 기자회견에서 다소 어두운 표정으로 입장한 한강은 최근 한국의 계엄 사태와 관련해 “바라건대 무력이나 강압으로 언로(言路)를 막는, 그런 방식으로 통제하는 과거의 상황으로 돌아가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고 말했다.

다음 날 한림원에서 열린 노벨문학상 수상자 강연에서 ‘소년이 온다’ 집필 당시를 회고했다. 그는 “인간의 잔혹함과 존엄성이 극도로 평행하게 존재했던 시대와 장소를 ‘광주’라고 부를 때, 그 이름은 더는 한 도시에만 고유한 고유명사가 아니라 일반명사가 된다”라고 지적하며 이 소설에 대한 특별한 애정을 표시했다.

한강은 노벨문학상 시상식 다음 날 한국 기자들을 따로 만났고 “질문에 답을 찾는 게 아니라 질문을 완성하는 게 소설을 쓰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조용한 일상으로 돌아가 글 쓰고 싶다”고 전했다.


정혜진 기자·최수문기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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