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석유화학 업체가 밀집한 전남 여수시를 ‘산업위기 선제 대응 지역’으로 지정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글로벌 경기 침체와 중국의 저가 공세로 석유화학 업계가 불황에 빠지면서 석유화학 의존도가 큰 지역 경제까지 휘청이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기업활력법을 통해 석유화학 업계의 구조조정을 유도하면서 동시에 지역산업위기대응법을 통해 각종 지원을 한다는 계획이다.
17일 관계 부처에 따르면 산업통상자원부는 조만간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석유화학 산업 경쟁력 제고 방안을 발표할 계획이다. 앞서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15일 긴급경제관계장관회의를 개최하고 “반도체와 항공·해운 물류에 이어 석유화학·건설 분야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방안도 바로바로 마련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11일 개최한 산업 경쟁력 강화 관계장관회의에서는 “석유화학 등 글로벌 과잉 공급으로 어려운 업종에 대해서는 완화된 기업활력법 기준을 적용해 선제적인 사업 재편을 유도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정부는 LG화학과 롯데케미칼·금호석유화학·한화솔루션 등 국내 4대 석유화학 업체와 에틸렌 생산 업체 여천NCC 등이 소재한 여수시를 산업위기 선제 대응 지역으로 검토하는 방안도 살피고 있다. 산업위기 선제 대응 지역은 대규모 재해·질병이 발생하거나 지역 내 지역의 주된 산업이 현저하게 악화될 우려가 있는 경우 2022년 2월 시행된 지역 산업위기 대응 및 지역경제 회복을 위한 특별법(지역산업위기대응법)에 따라 산업부가 지정할 수 있다.
이 법에 따라 그동안 산업위기 선제 대응 지역으로 지정된 사례는 2022년 10월 경북 포항시가 전부다. 당시 정부는 태풍 ‘힌남노’로 침수 피해가 커지자 포항 내 철강 산업도 악화할 우려가 있다고 판단하고 포항시를 올해 10월까지 2년간 산업위기 선제 대응 지역으로 지정한 바 있다. 여수시가 역대 두 번째 산업위기 선제 대응 지역으로 지정될 경우 여수시는 석유화학 산업과 연계된 금융·재정, 연구개발(R&D) 지원 및 경영·기술·회계 관련 자문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산업 구조조정이 이뤄질 경우 재직자 교육 훈련, 실직·퇴직자 재취업 교육 지원도 병행될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가 이 같은 방안을 검토하고 나선 것은 국내 석유화학 산업이 글로벌 공급 과잉, 수요 회복 부진 등 외부 요인으로 장기 불황에 빠질 우려가 크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해 3분기 국내 석유화학 업종의 매출액은 지난해 동기 대비 1% 감소했다. 석유화학 업종 매출액은 2021~2022년만 해도 매 분기 20~30%대 성장률을 기록했지만 지난해부터는 올해 2분기를 제외하고 매 분기 역성장했다. 국내 최대 석유화학 산업단지인 여수국가산단의 수출액은 올해 3분기 기준 78억 6500만 달러로 지난해 2분기(73억 1100만 달러)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전남 여수시 지역 경제도 휘청이고 있다. 여수시에 따르면 올해 1~11월 여수 소재 법인이 납부한 지방소득세는 552억 4900만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66.5% 급감했다. 여수시 시세 역시 같은 기간 28.8% 감소했다. 이로 인해 여수시도 현재 산업부에 산업위기 선제 대응 지역 지정을 건의한 상태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산업위기 선제 대응 지역 선정 기준을 완화해서라도 석유화학 산업을 지원해야 한다는 데 공감대가 있다”며 “여러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여수뿐만 아니라 대산·울산 등 타 지역 석유화학단지까지 범위를 넓혀 석유화학 밀집 지역 전반을 지원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정부는 국내 산업 전반에 대한 외국인 투자도 강화한다는 계획이다. 실제로 정부는 연말께 발표할 ‘2025년 경제정책방향’에 외국인 투자에 대한 인센티브를 획기적으로 강화하는 내용을 담을 것으로 전망된다. 앞서 정부는 외국인 투자 기업에 대한 현금 지원을 2023년 500억 원에서 올해 2000억 원으로 대폭 늘린 바 있다. 정부 안팎에서는 내년 초 추가경정예산 편성 과정에서 내년도 현금 지원 규모를 이보다 확대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전망도 제기되고 있다.
국가첨단전략산업 특화단지를 포함한 첨단산업 클러스터 내 외국인 투자에 대해서는 최대 50%까지인 현금 지원 가능 한도를 추가 상향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국회 입법조사처는 “외국인 투자를 촉진하기 위해 반도체, 2차전지 등에 대해서는 국가전략기술 사업화 시설로 인정해 조세 혜택을 제공하는 것을 고려할 수 있다”며 “과밀 억제와 무관한 수도권 외의 지역을 대상으로는 더욱 확대된 세제 지원을 제공해 간접적으로 외국인 투자를 촉진하는 것도 고려해봄 직하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