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인이 한국을 향해 조선업 분야에서 협력하자는 메시지를 내놓은 가운데 미 의회가 초당적인 조선업 강화 법안을 발의했다. 미국 내 조선소 운영 및 인력난이 심각한 상황에서 ‘트럼프 시대’ 한미가 조선업에서 시너지를 찾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나오고 있다.
미 상원 마크 켈리(민주·애리조나) 의원과 토드 영(공화·인디애나), 하원의 존 가라멘디(민주·캘리포니아)와 트렌드 켈리(공화·미시시피) 의원은 19일(현지 시간) ‘미국의 번영과 안보를 위한 조선업과 항만 시설법(SHIPS for America Act)’을 공동 발의했다.
총 344페이지에 달하는 법안에는 미국 내 선박 건조를 장려하고 조선업 기반을 강화하며 중국 선박 의존도를 낮추기 위한 다양한 방안이 담겼다.
법안은 우선 백악관 내에 해양안보보좌관직을 신설해 해양안보위원회를 이끌며 종합적인 국가 해양 전략의 밑그림을 그리게 했다. 또 현재 국제 무역에 이용되는 미국 선박은 80척에 불과하지만 중국은 5500척에 달한다며 미국 상선을 10년 내 250척까지 늘려 ‘전략 상선단’을 운용한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아울러 군용 및 상업용 선박의 미국 내 건조를 늘리기 위해 조선소 투자에 25%의 투자세액공제를 해주고 조선 금융 인센티브 프로그램도 만들어 선박 건조 및 수리에 대한 금융 지원도 늘리기로 했다.
법안은 특히 동맹국과의 협력을 많은 부분에서 시사했다. 법안은 전략 상선단을 미국에서 건조한 상선으로 구성해야 하지만 미국산 상선을 구하기 어려울 경우 외국에서 건조한 상선을 한시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했다. 선박 수리도 다른 국가에 개방했다. 현재 미국 법은 무역에 사용된 미국 선박을 외국에서 수리할 경우 수리비의 50%를 세금으로 내게 하고 있다. 이 법안은 세율을 70%로 올리고 중국 같은 우려 국가에서 수리할 경우 200%를 내게 했다. 반면 선주가 미국에서 수리하려고 최선의 노력을 한 경우에는 외국에서 수리해도 세금을 면제해주기로 했다. 법안 통과 시 미국 선박을 한국에서 수리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되는 셈이다.
이 외에 미국 정부가 동맹 및 전략적 파트너와 전시에 필요한 해상 수송 능력을 보강하고 양측의 해양 산업을 지원할 기회를 모색하도록 했다. 이 법은 이달 118대 의회 임기가 끝나면 자동 폐기되지만 의회 내에서 조선업을 살려야 한다는 점에 여야 모두가 공감해 내년 1월 시작하는 119대 의회 때 재발의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미국은 조선업 부활에 사활을 걸고 있다. 냉전 붕괴 이후 해군력 강화에 소홀해 중국과의 격차가 너무 벌어졌다는 것이다. 유엔에 따르면 지난 3년간 중국은 전 세계 선박의 47%를 건조했지만 미국은 0.1%에 그쳤다. 독립 국방 분석가 톰 슈가트에 따르면 2014년부터 2023년까지 중국 해군은 157척의 함선을 진수했지만 미국은 67척에 그쳤다.
미국은 조선업을 되살리고 싶어도 인력 등 제조 기반이 뒷받침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이날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조선업보다 업무 강도가 낮은 물류창고 근로자 등의 임금이 팬데믹 이후 크게 오르면서 조선소는 심각한 노동력 부족에 직면해 있다”고 보도했다. 한 베테랑 용접공은 “용접공의 연간 이탈률이 30%에 달한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WSJ은 “인력 부족으로 선박 건조 기간이 지연되면서 해군은 정부에 추가 예산을 요구하고 있다”며 “조선업 인력 부족은 이제 국가 안보 문제가 됐다”고 진단했다.
미 정치권의 조선업 지원이 한국에 기회가 될 것이라는 기대가 커지고 있다. 유엔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은 전 세계 선박의 26%를 건조해 중국(51%)에 이어 세계 2위였다. 트럼프 2기 행정부 국가안보보좌관으로 지명된 마이클 왈츠는 올 9월 한 토론회에서 “한국 최대 조선소 현대는 1년에 40~50척의 배를 생산하고 있다”며 협력 대상으로 한국을 직접 언급했고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도 당선 직후 한미 정상 통화에서 조선업 협력 가능성을 언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