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대통령에 이어 국무총리까지 탄핵되면서 초유의 ‘권한대행의 대행’ 체제가 시작됐다. 이마저도 언제 ‘대행’ 자가 하나 더 붙을지 모르는 불안정한 상태다. 이러한 사태가 경제에 미치는 악영향은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 원·달러 환율이 장중 1482.6원까지 오르며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3월 이후 15년 9개월 만에 최고로 폭등했고 주가는 급락했다. 내수 동향을 보여주는 소매판매액지수도 올 3분기까지 10개 분기 연속 줄어들었다.
지금과 같은 상황이 지속되면 환율이 1500원을 넘는 것은 시간문제다. 환율 급등은 우리 경제 전반에 악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일반적으로 환율이 오르면 수출 대기업의 경우 가격경쟁력이 제고돼 실적 향상에 도움이 된다. 그러나 막대한 금액을 해외에 선투자한 탓에 환율이 오르면 채무 부담도 커져 영업이익이 줄어드는 대기업이 많아졌다. 환위험 관리가 전혀 안 되는 중소기업들은 수입 원가 상승으로 손실 폭이 커지고 있다. 고환율은 외국인 투자금 이탈을 가속화할 뿐만 아니라 장기화되면 물가를 부추겨 내수 침체를 심화시킨다. 업종별로 고환율의 영향이 다르게 나타나기는 하지만 환율 변동성까지 커진 최근 상황은 부정적 영향이 훨씬 크다. 철강, 석유화학·정유, 항공 업계는 비상 경영에 돌입했고 반도체·2차전지·자동차도 상황이 녹록지 않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금리 인하 속도 조절로 달러 강세가 이어지자 외환 당국이 국민연금과 외환 스와프 한도를 500억 달러에서 650억 달러로 증액하기로 하는 등 시장 안정을 위해 총력전에 나섰다. 그러나 별 성과 없이 환율 불안이 지속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섣부른 외환시장 개입은 성과 없이 외환보유액만 축낼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금융 당국도 적극적인 구두 개입 외에는 실효성 있는 환율 안정책을 찾지 못하고 있다.
1월 20일 도널드 트럼프의 47대 미국 대통령 취임에 대비해야 하는 골든타임이 속절없이 지나가고 있다. 미국 우선주의에 기반한 ‘트럼피즘’이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가늠하기도 어려운 상황에서 자폭하는 어이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말로만 ‘민생’을 살리겠다고 외치던 대통령이나 ‘먹사니즘’을 내세우던 야당 대표 모두 대다수 국민의 눈에는 이전투구하는 것으로 보일 뿐이다. 국민의 마음을 하나로 모아 위기 극복을 위해 총력을 기울여도 시원치 않을 판에 권력욕에 사로잡혀 ‘편 가르기’에 몰두하고 있는 정치권에 대한 불신은 임계점을 넘어선 것 같다.
트럼프 2기는 출범과 동시에 굵직한 정책들을 바로 시행할 것으로 예상된다. 10∼20%에 달하는 보편관세를 포함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 방위비 분담금 인상, 인플레이션감축법(IRA) 폐기, 반도체지원법 개정 등 우리와 직접 관련된 사안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트럼프는 1기 때도 ‘싸우지 않고서 이기는 전략’을 구사했다. 위협이 단순한 협박이 아니라 현실화될 수 있다고 믿게 만들어 원하는 것을 얻어왔다. 트럼프 1기가 시작되던 2017년 1월 박근혜 전 대통령은 탄핵으로 직무가 정지된 상태였고 당시 트럼프 행정부는 “죽은 권력은 상대하지 않겠다”며 “다음 정부와 대화하겠다”고 밝혔다. 이번에도 이런 기조가 유지되고 있다. 출범 전에 ‘패키지 딜’이 어느 정도 마무리돼야 함에도 대화 채널조차 확보하지 못한 상태이니 정책 당국자들도 사실상 손을 놓고 있는 듯하다.
아무리 상황이 안 좋더라도 급한 불은 꺼야 한다. 내년 경제정책방향이 곧 발표된다.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확고한 대외신인도 유지, 통상 환경 불확실성 대응, 튼튼한 산업 체질 역량, 민생 안정을 위한 정책 강화 등 네 방향을 중심으로 청사진을 구체화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6개월짜리 시한부 대책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실효성이 낮은 것은 사실이다. 관리 위주로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지만 대외 신인도 회복을 위해 환율 안정과 같은 긴급한 현안에 대해서는 정책 당국이 과감하고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여야정 국정협의체 논의를 통해 불확실성을 줄이고 힘을 실어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