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5년 준비 고교학점제, 복수 자격 교원 방치…수능 유리 '과목 쏠림' 우려도

[3월 시행 '고교학점제' 곳곳 허점]

복수 전공 교사 활용률 18%…과목 배치 비효율

3과목 이상 수업 교사 20%…전공 외 수업 증가

소규모 학교, 과목 폐강·강사 확보 어려움 지속

서울 1억, 경기·대전 3900만원…재정 지원 격차

공동교육과정, 저녁·주말 위주 운영…참여 제약 우려

수능 과목 쏠림 심화…“대입 연계 대책 방안 필요”

2022학년도 11월 고2 전국연합학력평가 실시된 11월 23일 오전 경기도 수원시 효원고등학교 2학년 교실에서 학생들이 시험을 보고 있다. 연합뉴스2022학년도 11월 고2 전국연합학력평가 실시된 11월 23일 오전 경기도 수원시 효원고등학교 2학년 교실에서 학생들이 시험을 보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정부의 대표 교육 공약이었던 고교학점제가 올해 3월 전면 도입을 앞두고 있다. 학생들이 적성과 진로에 따라 과목을 선택할 수 있도록 설계된 이 제도는 5년간의 준비 과정을 거쳤지만 현장에서는 제도의 한계가 속속 드러나며 혼란이 예고되고 있다. 지난해 시범 운영 결과 복수·부전공 자격을 가진 교사들이 효과적으로 배치되지 않았고 학생 5명 중 1명은 과목 폐강을 겪는 등 제도의 취지가 제대로 구현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교사 인력 부족, 지역 간 교육 자원의 격차, 대입 체계와의 연계 부족 등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학생 맞춤형 교육이라는 고교학점제의 본래 취지를 실현하기 어렵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8일 서울경제신문이 살펴본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의 ‘고교학점제 단계적 도입에 따른 현장 실행 모니터링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시범 운영에 참여한 전국 68개 연구 대상 고등학교에서 복수 전공 자격을 보유한 교사는 학교당 평균 8.8명이었으나 실제 활용 인원은 1.6명(18%)에 그쳤다. 부전공 자격 보유 교사도 평균 4.1명 중 0.7명(17%)만 수업에 투입됐다.

이 같은 저조한 활용은 과목 배치의 비효율성과 교사 동기 부족이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서울의 한 고등학교 교사는 “국어와 일본어 자격을 가진 교사는 국어 수업만 맡는 경우가 많다”며 “갑자기 일본어를 맡으라고 하면 연수를 받아야 하지만 이에 따른 보상은 미미하다”고 토로했다. 이 같은 상황 속에서 일부 교사들은 세 과목 이상을 동시에 지도하거나 전공과 무관한 과목까지 맡게 돼 과중한 업무를 호소하고 있다. 시범 운영 학교에서 세 개 이상의 과목을 담당한 교사의 20%는 전공 과목 외의 수업을 맡은 것으로 조사됐다.





교사 배치가 비효율적으로 이뤄지면서 학생들은 원하는 과목을 선택하는 데 제약을 받게 됐다. 지난해 시범 운영 기간 동안 약 17%의 학생들이 수강 신청 인원이 부족해 과목 폐강을 경험했다. 특히 소규모 학교에서는 예산 부족과 교원 확보 문제로 학생들이 원하는 과목을 개설하지 못하는 사례가 빈번했다. 강원도의 한 소규모 고등학교는 윤리와 지구과학 과목을 개설하지 못해 학생들이 진로와 무관한 과목을 선택해야 했다. 충청북도 괴산고와 제천고 역시 외부 강사 섭외 과정에서 자원 낭비가 발생했고 공강 시간을 활용할 강사를 지속적으로 확보할 체계적 지원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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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간 지원 예산 격차 역시 문제다. 서울시교육청은 일반 고등학교에 평균 1억 원을 지원하지만 경기도와 대전시교육청 등 대부분의 지방 교육청은 최대 3800만 원을 지원하는 데 그치고 있다. 이러한 격차는 지방 학교의 과목 개설을 더욱 어렵게 만들어 지역 간 교육 불평등을 심화시킬 우려를 낳고 있다.

더욱이 고교학점제는 2028학년도 대입 체계와 유기적으로 연계되지 않아 학생들에게 부담을 이중으로 준다는 지적이 나온다. 내신은 다양한 진로 선택과목이 상대평가로 운영되지만 2028학년도 대입은 공통 과목만으로 수능을 출제한다. 이에 따라 학생들은 내신과 수능을 별도로 준비해야 하는 부담을 떠안고 있으며 소인수 과목은 기피되고 수능에 유리한 과목으로 쏠림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교육부가 대안으로 제시한 공동 교육과정 역시 실효성 논란에서 자유롭지 않다. 이 과정은 다른 학교 학생들과 함께 특정 과목을 이수하는 방식으로 운영되는데 지난해 시범 운영 기간 동안 정규 수업 시간에 편성된 비율이 단 6.4%에 불과했다. 대부분의 과목이 평일 저녁이나 주말에 운영되면서 방과 후 학원 수업과 선행학습으로 이미 일정이 빡빡한 학생들에게 현실적으로 참여가 어려운 구조라는 것이다.

학교별로 과목 편성이 제각각이어서 학생들이 중학교 때부터 진로를 조기에 결정해야 한다는 부담이 커지고 있다. 일부 학교는 수능 준비를 고려해 특정 과목을 한 학기에 몰아서 이수하도록 편성하기도 한다. 서울경제신문이 일반고의 2025학년도 교육과정 편성 현황을 분석한 결과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에 위치한 A고는 수학Ⅱ와 미적분Ⅰ·Ⅱ를 한 학기에 몰아 배우고 3학년에는 확률과 통계를 집중적으로 이수하는 방식으로 운영될 예정이다. 과학 과목의 경우 물리Ⅰ·화학Ⅰ·생명과학Ⅰ·지구과학Ⅰ 등을 2학년 1학기에 몰아서 배우고 2학기에는 과학Ⅱ를 이수하는 학교도 다수 확인됐다. 이에 대해 강서구에 중학교 3학년 아들을 둔 한 학부모는 “1년 동안 배우기도 벅찬 과목들을 한 학기에 몰아 끝내라는 것은 지나친 요구”라며 “학생들이 과도한 학업 부담으로 탈진하거나 학업을 포기할까 걱정된다”고 우려를 표했다.

교육계는 고교학점제가 본래 취지를 실현하려면 교사 확충과 교원 배치의 유연성을 확보하는 동시에 대입 체계 개편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우연철 진학사 입시전략연구소 소장은 “소수 특목고, 자사고를 제외한 다수의 일반고가 예산과 교사 배치 문제로 특화 과목 개설이 어려운 상황에서 학생들은 수능 유리 과목으로 집중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배상훈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는 “고교학점제는 문재인 정부에서, 2028학년도 대입 체계는 윤석열 정부에서 추진되며 두 제도 간 정합성이 부족하다”며 “학생들이 다양한 과목을 이수하더라도 대입에서 이를 반영하지 못하는 구조적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학생들이 선택한 과목과 경험이 대학 입시에 반영될 수 있도록 학생부 종합 전형을 확대하고 입학 사정관제를 고도화해야 한다”며 “지역 간 교육 자원의 격차를 줄이고 수도권과 지방 간 불균형을 해소할 체계적이고 공정한 평가 환경 마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성채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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