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미술시장은 역대 최악의 침체기이지만 한국 작가들과 예술 콘텐츠는 올해도 세계 무대를 종횡무진 누빌 전망이다. 이미 연초부터 여러 국내 작가들은 해외 유수의 미술관에서 전시를 시작했고, 중견 작가들은 대규모 회고전을 예고하고 있다. 국내에서 흥행한 미술 전시가 해외에 소개되는 사례도 늘어날 것으로 기대된다. K팝, K푸드에 이어 미술이 세계의 눈과 귀를 사로잡는 주역이 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연초에는 국내 40대 여성작가의 해외 활동이 두드러질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에서 대규모 개인전을 열어 세계 미술계 인사들에게 눈도장을 찍은 김아영은 다음 달 독일 함부르크 반호프 현대미술관에서 최근 5년간의 작품 활동을 아우르는 개인전을 개최한다. 작가는 생성형 인공지능(AI)과 게임엔진으로 구성된 가상의 공간에서 배달 라이더들의 삶을 다룬 비디오 작품 ‘딜리버리 댄서의 선: 인버스’로 ACC 미래상을 수상했으며, 광주비엔날레 기간 열린 지난해 전시에서 전세계 대형 미술관 관계자들의 극찬을 받았다.
이번에 전시를 여는 반호프 미술관은 독일을 대표하는 현대미술관 중 한 곳으로, 앤디 워홀, 요셉 보이스 등 현대미술을 주도한 거장들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국내 원로 작가인 이우환의 대규모 회고전을 개최했다. 전시는 2월 28일부터 7월 20일까지 약 5개월에 걸쳐 진행된다. 반호프 미술관은 최근 홈페이지에서 이번 전시를 예고하면서 김아영 작가에 대해 ‘인공지능, 가상현실, 비디오, 게임을 활용해 광범위한 허구적 세계를 창조하는 작가로 이주, 데이터, 인간과 지구간 공생 관계를 살펴보는 작업을 한다’고 소개했다.
홍콩 유즈 미술관에서는 극강의 검은색과 사실적 묘사로 젊은 세대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작가 이진주의 첫 홍콩 개인전 ‘닿지 않는 땅’이 지난 5일부터 열리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자신의 대표 연작인 ‘블랙 페인팅’과 대형 파노라마 회화 ‘닿지 않는 땅’을 비롯해 총 25점의 작품을 선보인다. 이 중 23점은 이번 전시를 위해 작가가 제작한 신작이다.
동양화를 전공한 작가는 일상에서 마주한 낯설고 기묘한 장면, 대상, 풍경을 동양화의 채색 기법을 응용해 섬세하게 묘사한다. 작가는 개막과 함께 “홍콩에서 첫 개인전을 열게 되어 기쁘다”며 “작품에서 보이는 것은 지극히 사실적 형상이지만, 의미 너머의 것들을 많이 떠올리고 생각해 주길 바란다”고 소감을 전했다.
5월 1일부터는 영국 런던의 테이트모던 미술관에서 설치 미술가 서도호의 개인전이 열린다. 현대자동차 브랜드인 제네시스와 파트너십으로 열리는 이번 전시에서 서도호는 천으로 만든 건축물과 초기 종이 작품, 비디오 설치 작품, 서울과 뉴욕, 런던의 집을 실물 크기로 재현한 작품 등을 선보일 예정이다. 지난해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대규모 회고전을 가진 1세대 섬유예술가 이신자는 올해 8월 미국 버클리대학 미술관에서 개인전을 갖는다. 전시 이후 미국 뉴욕현대미술관은 이신자의 작품을 1점 소장한 것으로 전해진다.
올해는 한국 작가뿐 아니라 국내에서 큰 인기를 끈 전시를 해외에 선보이는 사례도 늘어날 전망이다. 지난해 국립현대미술관이 역대 최대 관람객을 끌어모으는 데 기여한 조경가 정영선의 전시 ‘이 땅에 숨 쉬는 모든 것을 위하여’가 대표적인 사례다. 정영선은 국내 선유도공원, 희원, 경춘선 숲길 등 주요 국가 프로젝트를 구축해 온 한국 대표 조경가다. 제19회 베니스 건축비엔날레 개최 기간 중 열리는 이번 전시는 오는 5~7월 이탈리아 산마르코 광장에 위치한 프로쿠라티에 베키에에서 진행된다. 이건희 컬렉션도 올해 국외 순회를 시작한다. 이건희 컬렉션은 오는 11월 미국 스미소니언 국립아시아예술박관을 시작으로 2026년 7월 미국 시카고 박물관, 영국 런던의 대영 박물관 등을 순회하며 한국 고미술 및 근현대미술의 대표작을 소개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