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해군의 ‘황금 함대’ 구축 구상을 발표하면서 새 프리깃함(호위함)들을 한화(000880)와 협력해 만들 예정이라고 공언했다. 한미가 합의한 한국의 대미 조선업 투자 프로젝트 ‘마스가(MASGA·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가 상업용을 넘어 군용까지 본격적으로 확대되는 분위기다. 다만 지난해 12월 한화가 인수한 미국 펜실베니아주의 필리조선소가 해당 역할을 맡으려면 방산 업체 지정 등 여러 라이선스(인증)가 필요해 군용 마스가 프로젝트가 실제 가동하기까지는 시간이 좀 더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전함 자체가 해군사에서 이미 한물간 전력이라는 점에서 함대 구상이 현실화되기 힘들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이와 별도로 만약 한화가 필리조선소를 통해 미 해군 군함 건조 사업에 확실하게 뛰어들 경우 미국 핵잠수함으로 그 지평을 넓히는 것은 시간 문제라는 시각도 있다. 이 경우 해당 경험을 토대로 한국 거제도에서 한국형 핵잠수함을 만들겠다는 우리 정부의 복안도 조금씩 양국 간 논의 테이블에 오를 수 있다.
“트럼프급 대형 전함으로 ‘황금 함대’ 구축…한화와 호위함 협력”
트럼프 대통령은 22일(현지 시간) 미국 플로리다주에 있는 자신의 마러라고 별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주 해군은 새로운 급의 프리깃함 건조 계획을 발표했다”며 “그들은 한국의 회사와 함께 일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특히 “한화라는 좋은 회사”라고 협력 기업 이름을 직접 소개하며 “필라델피아 해군 조선소에 50억 달러(약 7조 4000억 원)를 투자하기로 합의했다”고 설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어 필리조선소를 가리켜 “그곳은 위대한 조선소였다”며 “오래전 폐쇄됐지만 다시 문을 열어 미 해군, 민간 회사들과 함께 일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황금 함대’를 발표하면서 프리깃함을 거론했다. 황금 함대는 냉전 시대 이후 사라진 거대 전함을 다시 도입하는 전략이다. 황금 함대는 3만~4만 톤의 기함으로 도입될 예정이다. 이른바 ‘트럼프급’ 전함이다. 여기에는 함포뿐 아니라 미사일, 극초음속 무기, 전자기 레일건, 고출력 레이저, 핵무기(핵탄두를 실은 해상발사 크루즈 미사일)까지 탑재된다.
첫 트럼프급 전함의 이름은 ‘USS 디파이언트’다. 이 배는 2척을 먼저 건조한 뒤 궁극적으로 20~25척까지 그 수를 늘릴 계획이다. 첫 전함 건조에만 2년 6개월가량이 걸려 2030년대 초에나 완성될 전망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와 함께 대형 항공모함 3척, 잠수함 12~15척도 이미 건조하고 있거나 건조에 들어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함정들을 미국에서 건조할 것이고 해군이 민간 기업들과 함께 일하고 있다”며 “다음주에 주요 방산 업체들과 만나 생산 일정에 대해 논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은 하루 평균 4척 이상의 선박을 건조했다”며 “그런 능력을 우리가 잃게 된 것은 비극”이라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화와 손을 잡는 이유에 대해서는 “이들 함정이 지금 당장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탈리아에서 도입하려던 프리깃함 사업이 지연되자 한국의 신속한 선박 건조 능력에 눈을 돌린 셈이다.
미국에서 함포를 단 전함은 함재기를 실은 항공모함과 미사일을 탑재한 구축함에 밀린 탓에 1994년 이후 더 이상 건조되지 않았다. 미국이 전함을 실제 전투에 사용한 것은 이라크를 상대로 한 1991년 걸프전이 마지막이었다. 마지막 전함인 ‘USS 미주리’는 1992년에 퇴역해 하와이의 진주만 항 박물관에 보존돼 있다. 현재 미 해군의 주력함은 배수량이 약 9500톤인 알레이버크급 구축함이다. 마크 몽고메리 전 해군 소장은 월스트리트저널(WSJ)에서 “새 호위함의 경우 수직발사 시스템이나 이지스 방어 시스템을 갖추지 못해 전술적 활용도가 전무하다”며 “전함이 멋있어 보인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외관 중시 기조에 초점을 맞춘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신형 전함에 현직인 트럼프 대통령의 이름을 단 것을 두고도 곧장 논란이 일었다.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군함의 급 명칭은 통상 그 급으로 지은 첫 군함과 똑같이 붙인다. 첫 전함 이름이 USS 디파이언트라면 디파이언트급 전함으로 불러야 맞는다는 지적이었다.
현직 대통령의 이름을 쓰는 것도 트럼프 대통령이 처음이다. 미 해군은 현직이 아닌 생존 인물의 이름조차 군함 명칭에 쓰지 않다가 리처드 닉슨 대통령 때인 1974년부터 정책을 바꿨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달 초에도 ‘미국 평화연구소(USIP)’의 이름을 ‘도널드 J 트럼프 평화연구소’로 바꾸겠다는 방침을 밝히고 간판에 본인 이름을 새겼다. 또 수도 워싱턴DC의 공연장인 ‘존 F 케네디 기념 공연예술센터’의 이름에도 자신의 이름을 추가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공연장 이름을 ‘도널드 J 트럼프와 존 F 케네디 기념 공연예술센터’로 변경하고 새 간판을 달았다.
남중국해에서 中 견제 목적…‘마스가 프로젝트’ 첫 투자처 될 수도
트럼프 대통령이 황금 함대를 구상한 것은 날로 커지는 중국의 해군력을 견제하기 위한 목적으로 풀이된다. 미국은 여전히 세계 최대의 핵추진 항공모함 전단과 잠수함, 이지스 구축함 등 막강한 군사력을 갖춘 나라다. 전력이 전 세계에 분산돼 있다는 게 문제다. 무엇보다 인도·태평양 해역에서 중국을 압도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인식이 이번 황금 함대 구축 계획에 영향을 줬다.
현재 트럼프 대통령은 한물간 전력으로 평가되는 전함을 개선해 미 해군에 보탬이 되게 하겠다는 구상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1기 집권 때부터 전함 재도입을 추진했다. 백악관도 이달 초 발표한 국가안보전략(NSS)에서 “전 세계 해상 운송량의 3분의 1이 매년 남중국해를 통과한다”며 “이곳의 유리한 재래식 군사 균형이 전략적 경쟁의 핵심 요소”라고 주장했다. 이어 “대만 해협의 현상 유지를 일방적으로 변경하는 어떤 시도도 지지하지 않는다”며 “제1도련선 어디서든 침략을 저지할 수 있는 군대를 구축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나아가 “경쟁국 가운데 어느 한 국가가 남중국해를 장악할 가능성, 잠재적 적대 세력이 세계 최대의 상업 항로 가운데 하나에 통행료 체계를 부과하거나 마음대로 폐쇄할 경우”를 언급했다. 특정 국가 이름은 거론하지 않으면서 사실상 중국을 겨냥한 발언이었다. 제1도련선은 일본, 대만, 필리핀 등 중국 연안의 섬들을 잇는 가상의 선이다.
재계와 외교가에서는 이번 트럼프 대통령의 발표가 마스가 프로젝트의 첫 닻을 내린 사업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남다르다고 평가했다. 앞서 한국은 미국의 관세를 기존 25%에서 15%로 내리는 대가로 조선업 분야에만 1500억 달러(약 222조 원)를 투자하겠다고 약속했다. 프리깃함 사업이 마스가 프로젝트의 첫 사업이 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한미 양국은 아직 마스가 프로젝트의 첫 투자처를 정하지 않은 상태다.
이와 관련해 미 해군도 이달 19일 2028년 진수를 목표로 첫 호위함을 만들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해군은 미국의 최대 군함 조선업체인 헌팅턴 잉걸스(HII)를 필두로 호위함 건조를 여러 조선소에 맡길 계획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해군과 한화가 어떤 방식으로 협력할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소개하지 않았다.
한화의 필리조선소도 수주 경쟁을 거쳐 미 해군의 일감을 따낼 가능성이 있다. 한화는 최근 호주의 조선·방산 업체인 오스탈의 최대주주 지분도 확보했다. 오스탈은 미국 모바일과 샌디에이고 등에서 조선소를 운용하며 미 해군에 군함을 납품하고 있어 한화가 이곳을 통해 협력할 수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내 건조를 강조한 만큼 거제도 등 한화오션(042660)의 한국 조선소가 사업장이 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달 18일 서명한 2026 회계연도 국방수권법(NDAA)도 미 해군 함정의 외국 건조를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번스·톨레프슨법’을 재확인했다. 해군 함정 건조용 예산으로 260억 달러를 배정하고도 한국 업체가 참여할 길을 확실하게 열어두지는 않은 것이다. 외교가에 따르면 지역구에 자국 조선업체를 둔 미국 정치인들이 해외 발주에 반대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 필리조선소 상선만 건조 가능, 전함은 한물간 전력…핵잠 사업까지는 ‘첩첩산중’
문제는 한화의 필리조선소 역시 아직 미 해군 군함을 곧바로 건조할 자격을 갖추지 못했다는 점이다. 현재 필리조선소는 상선만 건조할 수 있다. 미 군함을 건조하려면 트럼프 행정부에서 시설보안허가(FCL)부터 받아야 한다. 이를 통해 방산업체로 지정돼야 하고 함정정비협약(MSRA), 사이버보안 성숙도 모델 인증(CMMC) 등의 라이선스도 확보해야 한다. 기술 이전과 예산 등과 관련한 의회의 승인도 필요하다. 현재 연간 1~1.5척의 상선만 건조할 수 있는 제조 역량도 설비·인력 투자를 통해 한층 더 끌어올려야 한다.
트럼프급 전함이 실제 지어질지 여부조차 불투명하다는 지적도 있다. 신형 전함이 중국을 압도할 전력인지도 불분명한 데다 비용과 시간이 너무 많이 든다는 이유에서다. 외교가에서는 트럼프급 전함 한 척당 비용을 100억~120억 달러로 추정하고 있다. 개발 기간도 5년 안팎에 달할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은 1940년대에도 몬태나·오하이오·메인·뉴햄프셔·루이지애나라는 이름의 ‘몬태나급’ 전함 5척을 건조하려다가 1943년 취소한 바 있다.
물론 트럼프 대통령이 임기 첫 해 직접 한화의 이름까지 거론하며 추진 의지를 밝힌 만큼 사업이 곧 급물살을 탈 것이라는 기대도 크다. 한화의 라이선스 취득 작업도 순조롭게 이뤄지지 않겠느냐는 관측이다. 한번 미 해군 군함 사업을 수주하면 한화가 원하는 미국 핵잠수함 건조 사업도 추후 노려볼 만하다. 물론 미국 핵잠수함까지 만들려면 국방부·에너지부의 해군 원자력 추진 프로그램(NNPP), 의회의 핵연료 공급·사용에 관한 법적 예외 승인과 특수 기술 이전 협정 등 취득하기 훨씬 복잡하고 어려운 라이선스가 추가로 있어야 한다. 핵잠수함은 미국 입장에서도 전략 무기라서 필리조선소가 관련 기술을 취득하기가 쉽지 않은 분야다.
만약 중장기적으로 필리조선소가 미국 핵잠수함까지 건조하게 될 경우 한국 조선소에서 한국형 핵잠수함을 건조하기 위한 논의도 시작해 볼만 하다. 백악관은 지난달 13일 한미 정상회담 팩트시트(자료집)을 홈페이지에 게시하고 “미국은 한국이 핵잠수함을 건조하는 것을 승인했다”고 밝힌 바 있다. 10월 29일 이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이 경북 경주에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두 번째 한미 정상회담을 가진 지 16일 만이었다.
백악관은 그러면서도 당시 핵잠수함 건조 시기와 장소는 명시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정상회담 직후인 10월 30일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인 트루스소셜에 글을 올리고 “한국은 훌륭한 필라델피아 조선소(필리조선소)에서 핵잠수함을 건조할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위성락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장은 “한국에서 건조하는 것을 전제로 양국 논의가 진행된 것”이라고 이를 반박했다.
갓 첫발을 뗀 원자력협정 개정 논의도 한국형 핵잠수함에는 큰 걸림돌이다. 현행 협정은 한국이 2035년까지 미국의 동의 아래 20% 미만의 우라늄만 농축할 수 있게 한다.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는 아예 금지한다.
요컨대, 트럼프 대통령이 황금 함대 프로젝트에 시동을 걸면서 한화와 한국 조선 업계에도 미 해군 군함 사업에 참여할 길이 이전보다는 더 넓어진 것으로 보인다. 이 기회를 잘 살릴 경우 한국 기업이 미국의 핵잠수함을 건조하고, 나아가 우리 땅에서 그에 못지 않은 핵잠수함을 지을 수도 있다. 물론 이에 도달하기까지는 정치·안보적 진통이 뒤따를 공산이 크다. 시간과 돈도 많이 들 게 분명하다. 증시의 주가 반응처럼 일희일비할 프로젝트는 아니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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