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경IN 사외칼럼

'꿈'을 꾸지 않는 뇌 환자 [국경복의 드림 톡]

국경복 꿈 연구가(전 KAIST 문술미래전략대학원 겸직교수)





26세의 레오(가명)는 장래가 유망한 실험과학자로 아시아계 영국인이다. 그는 스코틀랜드에 있는 한 대학에서 무기화학을 공부하고, 평판 높은 기술연구소 신임교수로 재직 중이었다. 그러던 어느 주말 휴일에 친구들과 함께 차를 몰다가 사고를 당했다. CT촬영을 해보니 뇌의 왼쪽 두정엽에 출혈이 있고 심한 손상이 보였다. 두정엽은 뇌의 윗부분에 위치한 영역으로 다양한 감각정보를 해석하고 언어를 이해하며 공간기억을 저장하는 등의 기능을 담당한다.



그는 사고 후 25일 동안 인공호흡기 신세를 졌다. 39일 뒤에는 말하기 요청을 받았을 때, 말을 하지 못하는 실어증 상태에 있었다. 그는 3개월 동안 집중적으로 언어와 물리 치료를 받았다. 사고가 난 지 21주 뒤에 신경심리학적 평가가 진행되었다. 임상장면에서 언어장애가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는 발음을 잘못할 뿐만아니라 단어도 제대로 사용하지 못했다. 레오는 아무런 연상도하지 못했고 그의 꿈 꾸기는 중단되어 있었다.

뇌의 어느 부위를 다치면 꿈 꾸기가 중단되는가? 바꾸어서 말하면 뇌의 어느 부위가 꿈 꾸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느냐의 문제이다. 1977년 앨런 홉슨이 발표한 논문에 의하면 ‘꿈은 사람의 원시뇌인 뇌간에서 시작되기 때문에 꿈의 주된 동기는 심리적인 것이 아니라 생리적인 것이며 동기에 있어서 중립적이고 별다른 의미가 없다’고 한다. 홉슨의 이 견해는 이후 신경과학계의 지배적인 학설이 되었다.



홉슨이 주장한 학설에 대한 극적인 반전은 어느 한 정신과 의사로부터 시작된다. 그의 이름은 마크 솜스(Mark Solms)다. 솜스의 가족은 서남아프리카의 독일 식민지에서 살고 있었다. 솜스는 자기 형인 리(Lee)와 한시도 떨어지지 않고 사이좋게 어울렸다. 그러던 어느날 당시 6살이던 그의 형이 지붕에서 미끌어져 떨어지며 뇌를 다치는 사고가 일어났다. 이 사건으로 리는 완전히, 그리고 영원히 딴 사람이 되었고, 동생 마크는 일생에 거쳐 뇌과학을 연구하는 탐험의 길로 들어섰다.

1980년대 초 솜스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요하네스버그에서 신경과학을 공부하고 있었다. 그는 뇌의 표면적인 메커니즘에 대해서는 많이 배웠지만, 정작 깊이 있는 의문들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했다. 그러다가 친구의 권유로 프로이트의 꿈 이론 강의에 참석하였다. 그는 당시를 회상한다. “꿈꾸기의 토대를 이루는 뇌의 기능에 관한 프로이트의 이론을 들으면서 나는 말 그대로 넋이 빠졌습니다. 소망, 욕구, 강렬한 정서 처리, 그 모두가 우리의 실제 삶과 관련이 있었어요. 신경과학 강의에서는 듣지 못했던 것이었죠.” 그는 홉슨의 1977년도 논문이 ‘지나치게 단정적이며, 부당한 방법을 써서 프로이트의 역작을 실제보다 하찮게 만들었다’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결코 홉슨 이론의 오류를 증명할 생각은 아니었다.

마크 솜스마크 솜스



솜스는 런던의 신경외과 병원에서 뇌졸증과 뇌종양 또는 자기 형처럼 사고로 다친 뇌를 환자를 연구했다. 솜스는 환자들에게 뇌 손상으로 꿈에 어떤 변화가 있는지 물어보았다. 조사는 성공적이었다. 어느 환자는 아무런 꿈도 꾸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그 환자는 두정엽 손상 환자였다. 두정엽은 다양한 감각 정보들을 조합하여 공간적 정향성과 정신적 이미지를 만들어 내는 부위이다. 두정엽의 활동으로 우리는 남태평양 해변에서 휴식을 취하는 공상을 할 수 있고, 은행에 가는 길을 떠올리는 상상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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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파기록을 보면 이 환자들은 여전히 렘수면을 경험하고 있었다. 렘수면의 시초가 되는 뇌간의 신호들이 전과 다름없이 전송되고 있지만, 그 신호를 받아서 그림으로 만드는 전뇌조직이 망가졌기 때문에 꿈을 꾸지 않는 것이라고 가정했다. 그는 뇌간의 손상환자들이 꿈을 꾸고 있다는 보고하는 환자 집단을 만났다. 홉슨의 꿈 생성이론에서는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솜스는 뇌의 손상이 있으면 꿈 꾸기가 중단되는 또 다른 부위가 있음을 발견한다. 그 부위는 앞이마 아래 안쪽에 있는 백질부분이다. 의학용어로는 복증측 전두 백질(Ventromesial Frontal White Matter)부위라고 한다. 이 부분은 우리 인간의 동기를 유발하는 영역으로 꿈이 우리의 가장 은밀한 소망이나 두려움을 표출한다는 프로이트의 견해에도 들어 맞는 부위이다. 이 부위는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이 지나가는 경로이기도 하다. 해서, 뇌과학자들은 이 부위를 ‘보상(reward)’체계 혹은 ‘나는 그것을 원해!’라는 ‘원함(wanting)’ 혹은 ‘추구(seeking)’체계라고도 부른다.

1997년 솜스는 ‘꿈을 만들어 내는 제1의 추진력은 일차적 욕구를 추구할 때 활성화되는 백질의 탐색계(소망)’ 라는 내용의 논문을 발표한다. 홉슨이 프로이트를 비판한 꿈 이론을 발표한지 정확히 20년 후의 일이었다.

다시 두정엽을 크게 다친 레오의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사고를 당한 후 꿈 꾸기가 중단되었던 레오는 치료를 받은 몇개월 후 ‘꿈을 꾸었어요.’라고 말했다. 하지만 처음에는 어떤 꿈을 꾸었는지는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나중에 뇌의 기능이 회복되면서 다음과 같은 일상적인 꿈도 꾸었다. ‘나는 소호(런던의 한 구역)에 있는 내 아파트에서부터 거리를 걸어 내려 가던 중인데 중국인을 만났어요. 어른 한 사람과 아이 셋이었죠 나는 조금 더 걸어가다가 방금 보았던 똑같은 가족들의 어머니와 친구 한 사람을 만났어요.’

레오는 이 꿈에서 아무런 연상도 내놓지 못했고, 꿈 속의 등장인물들도 알아보지 못했다. 그가 떠올린 생각은 꿈 속에서 그가 정상인이었음을 알아차렸다는 것이다.

그가 꿈을 다시 꾸기 시작했다는 것은 그에게 대단히 중요한 일임이 틀림이 없다. 그에게 있어서 그 꿈은 자신 내면의 삶과 심리적 회복에 관한 활력의 징후이다. 이제 우리 모두는 뇌과학적인 사실을 안다. 기억을 하던, 하지 못하던 정상적인 뇌기능을 가진 사람은 모두 하루 8시간 수면 중 1시간반이나 2시간 동안 꿈을 꾼다는 사실을. 그리고 이는 우리 뇌가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다는의미라는 사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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