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연말연시 이어진 연휴에 벽돌책이라고 불릴 만한 책 2권을 읽었다. 캐나다 출신 마거릿 맥밀런이 쓴 ‘평화를 끝낸 전쟁(책과함께)’과 ‘파리 1919(책과함께)’다. 각각 1000쪽 가량 분량인 데 주제는 제1차세계대전이다. ‘평화를 …’은 제1차세계대전에 이르는 과정을, ‘파리 …’는 그 전쟁을 일단 끝내고 평화조약을 맺는 과정을 각각 상세하게 다루고 있다.
제1차세계대전(이것은 제2차세계대전이 일어난 후 결과적으로 붙은 이름이고, 이 전쟁 당시에는 ‘대전쟁·Great War’라고 불렀다고 한다)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으로 이어지는 3·1운동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우리 역사에서도 아주 중요한 사건이라는 의미다. 대한민국의 시작을 알려면 이 책들을 읽을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었다. 다만 아쉽게도 두 권 모두에서 한국과 관련해서는 몇 줄 있을 뿐이다. ‘3·1운동’이라는 단어는 아예 나오지도 않다.
그래도 이들 책 덕분에 분명해진 사실(史實)이 있다. 제1차세계대전과 제2차세계대전은 크게 보면 모두 ‘제국주의 전쟁’이자 ‘제국주의자들의 식민지 쟁탈전’이었다는 것이다. 두 차례의 제국주의 전쟁 결과, 처음 그들의 욕심과는 다르게 제국주의는 쇠퇴했고 식민지들이 오히려 독립하게 됐다.
제1차세계대전은 미국·영국(영연방 포함)·프랑스·러시아·이탈리아·벨기에·일본 등의 당시 글로벌 식민지 대규모 보유국들과 이에 도전하는 독일·오스트리아 간의 전쟁이었다. 결과는 모두가 알고 있다. 이어 제2차세계대전은 그나마 작지만 갖고 있던 식민지를 제1차세계대전 패전으로 모두 빼앗긴 독일과 함께 앞서 승전국이었지만 만족할 만한 이익을 챙기지 못해 불만을 품은 이탈리아·일본이 3국 추축을 형성해서 다른 주요 제국주의 국가들과 재대결한 전쟁이다. 물론 이 결과도 모두 알고 있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에서 제국주의 국가들의 쇠퇴와 민족주의 고양에 따라 기존 식민지였던 국가들이 대거 독립했다. 식민지 되기 전의 상황은 다른 나라와 다르지만, 어쨌든 한국도 이때 독립한 국가 중에 하나다. 물론 이들 전쟁에도 불구하고 현재 식민지가 완전히 없어진 것은 아니다. 중국이나 러시아는 식민지를 여전히 보유하고 있다. 미국 등 신대륙의 거대 국가들도 내부에서는 식민 체제가 유지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제국주의 일본의 식민통치를 겪은 한국에서의 사례가 분명하게 보여주듯이 제국주의 국가와 식민지 관계는 다시는 재연되지 않아야 할 나쁜 역사다. 제국주의의 식민지에 대한 착취와 억압은 식민지 국민들 뿐만 아니라 제국주의 국가 국민들에도 악영향을 미쳤다. 제국주의 국가들의 내부 시민사회에서 이미 논란을 벌이고 있다. 유럽 국가들이 아프리카 등 식민지 지배에 대한 반성문을 내놓은 사례도 적지 않다. 여전히 잘못을 부인하는 일본이 아주 특이한 경우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 안에서도 양심적인 민주세력이 있다.
제국주의와 식민지에 대해서 이렇게 장황하게 이야기하는 것은 한국의 입장 때문이다. 현대의 세계 체제에서 강대국이 여럿 있다. 주요7개국(G7)이라고 하면 미국·영국·프랑스·독일·이탈리아·캐나다·일본이고 여기에 러시아나 중국과 함께 한국이 ‘G10’으로 평가될 수 있겠다. 필자가 말하는 바는 이렇다. 이들은 한국을 빼고는 모두 제국주의 국가로, 식민지를 착취한 역사가 있거나 지금도 착취하고 있는 나라다. 이들 제국주의 국가들은 과거부터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수많은 전쟁 등 분쟁에 대한 책임이 있다.
혹자는 한국이 ‘식민지 경험이 있는 나라 중에서 유일하게 강국인 나라’라는 평가를 하고 있다. 맞는 말이긴 한데 일부만 그렇다. 오히려 ‘제국주의 국가 경험이 없는 유일한 강국’이라고 하는 것이 옳지 않은가 한다. 다른 나라와 민족에 대한 착취나 가해한 역사가 없다는 것이다. 이는 한국이 다시 글로벌 주요 강국이 된 현 상황에서 아주 중요하다. 다른 나라와 교류를 할 때 그들이 한국에 대해 거부감을 가지지 않는다는 의미다.
K컬처가 전세계에 이렇게 급속하게 확산된 것도 그런 이유이지 않나 한다. 예를 들면 일본문화가 중국이나 동남아시아에 전파될 때는 일부에서는 과거의 좋지 않은 기억을 끄집어 낼 수 있다. 유럽 국가들의 아프리카에서 행동도 그렇다. 중국도 이웃 국가들에게 의구심을 불러일으킨다. 그에 반해 한국은 그런 악행의 원죄(原罪)가 없다. 한국문화 전파의 큰 장점이다.
현재 많은 국가들이 한국의 선례를 따르려고 한다. 제국주의 국가들은 식민지에서 인력과 자원을 착취해 이를 기반으로 지금의 성장을 이루었다. 그에 비해 ‘제국주의 경험이 없는’ 한국은 말 그대로 맨손으로, 자수성가했다. 한국은 식민지 경험 국가들도 똑같이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믿음직한 근거다.
올해는 유네스코가 지정한 ‘백범 김구(1876~1949)의 해’이기도 하다. 백범 탄신 150주년이다. 백범은 대한민국이 다시 강국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고 도덕적 우위에 대해서도 자신한 듯하다.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을 원치 아니한다. 우리의 부력(富力)은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강력(强力)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겠기 때문이다.”(백범 김구의 ‘나의 소원, 내가 원하는 나라’) 그가 옳았다고 말할 수 있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