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넥스 코리아는 2025년 7월 서울 서초구로 이전했다. 창립 이후 50년 가까이 자리를 지키던 마포구 망원동을 떠나 새롭게 둥지를 틀었다. 그리고 3개월 뒤에는 1984년생인 40대 초반 대표이사가 취임했다. ‘서초시대’를 알림과 동시에 젊은 리더십을 전면에 내세운 것이다.
김세준 요넥스 코리아 신임 대표를 새 사옥인 ‘DS1977’ 빌딩에서 만났다. 사옥 이름부터 공간 구성까지 직접 챙긴 김 대표는 “대표라는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면서도 “그동안 회장님 밑에서 다양한 경험을 쌓았다. 창업 회장님부터 내려온 요넥스 코리아만의 정신을 계승하고 발전시키면서 젊은 감각으로 더욱 생동감 있는 브랜드를 만들 것”이라는 포부를 밝혔다.
김 대표는 요넥스 코리아를 설립한 고(故) 김덕인 창업 회장의 손자다. 김철웅 요넥스 코리아 회장은 창업회장의 아들이다. 1대와 2대 회장이 각각 회사를 설립하고 안정과 번영기를 이끌었다면 3대인 김 대표는 ‘제2의 창업’이라는 각오로 요넥스 코리아의 근본적인 체질 변화를 꿈꾸고 있다.
1977년 창립 이후 첫 이전이다. 특별한 배경이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고객들의 니즈나 시장을 파악하고 발 빠르게 대응하는 게 중요한 시대다. 그러자면 젊은 감각의 직원들이 계속 들어와야 하는데 망원동에 있다 보니 그런 부분이 조금 힘들었다. 직원들의 사고 자체도 정체해 있는 느낌이었다. 우리가 한 단계 도약을 하려면 일단 보금자리부터 바꾸자고 마음을 먹었고 기왕이면 시장의 중심으로 가자고 결정했다.”
‘DS1977’이라는 건물명이 특이하다.
“일단 우리의 시작인 동승통상의 이니셜인 DS를 따고 회사의 창립 연도인 1977을 넣었다. 오랜 역사는 우리의 자부심이다. 건물명에 회사의 히스토리를 넣으면 어떨까 했다. 그렇다고 올드해 보이지 않도록 고민하다 DS1977을 떠올렸다.”
김덕인 창업 회장님이 궁금하다.
“원래 수산물 관련 무역을 하셨다. 취미로 배드민턴을 즐기셨는데, 당시 셔틀콕의 성능이 들쭉날쭉했다고 한다. 그래서 직접 만들어보겠다는 마음을 먹고 공장을 세우셨다. 회사 설립 이듬해인 1978년에는 한국 최초로 셔틀콕을 일본과 유럽에 수출했다. 그러다 1982년부터 일본 요넥스와 국내 총판 계약을 맺었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대표이사로 취임했다. 회사에 한결 젊은 분위기가 돌 것 같은데.
“제가 요넥스 코리아에 합류한 게 2017년부터다. 영업과 상품기획, 경영지원 부서 등을 거쳤다. 그때부터 이미 브랜드 이미지를 젊게 하려고 차근차근 과정을 밟아왔다. 솔직히 과거엔 올드한 이미지가 있었다. 마케팅 방식도 그렇고, 제품 디자인 이미지도 그랬다. 배드민턴이라고 하면 워낙 연령대가 높다는 선입견이 있었기 때문에 그 부분을 깨는 데 주력했다.”
주로 어떤 전략을 사용했나.
“대표적인 방법 중 하나가 다른 브랜드와의 컬래버레이션(협업)이었다. 2022년에는 아이앱 스튜디오(IAB STUDIO)와 협업해 배드민턴 의류와 라켓을 드롭 방식(한정 수량을 지정된 장소에서 불시에 판매하는 방법)으로 선보였다. ‘요넥스가 아이앱이랑 협업 제품을 출시한다고?’ 이런 식으로 이슈가 되면서 대박이 났다. 그게 터닝포인트가 되면서 젊은 분들이 우리 브랜드를 다르게 보기 시작했다. 그 후 핫한 패션 브랜드인 마리떼프랑소와저버와 컬래버레이션을 했고, 기아자동차와도 친환경 콘셉트의 의류를 함께 개발했다. 드라마나 예능에도 브랜드 노출 기회가 있을 때마다 적극 참여하고 있다.”
유튜브에도 열심인 것 같던데.
“배드민턴 쪽에서는 ‘원더플레이’, 골프 쪽에선 ‘요넥스골프’ 채널을 운영하고 있다. 브랜드 색깔은 빼고 일반 대중의 오감을 만족시킬 수 있는 내용으로 제작하고 있다. 원더플레이 채널은 구독자 10만 명이 넘어 실버 버튼도 받았다. 요넥스골프 채널은 2018년부터 운영하면서 후원 프로골퍼인 임진한, 김효주 등과 함께 아마추어 골퍼들에게 도움이 될 다양한 콘텐츠를 올리고 있다. 임진한 프로 콘텐츠 중에서는 290만과 270만 뷰를 넘긴 것도 있다.”
3세로서 ‘나도 잘해야 한다’는 심적 부담이 있을 것 같다.
“부담이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아직도 회장님한테 정말 많이 배우고 있다. 옆에서 보면 경험에서 나오는 내공이 어마어마하다. 회장님의 경험에 더해서 내가 갖고 있는 새로운 생각이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방안에 대해 항상 고민하고 있다.”
경영 선배인 할아버지나 아버지한테서 받은 조언 같은 게 있나.
“돌아가신 창업 회장님께서 항상 얘기하셨던 게 ‘정직, 노력, 봉사’ 이 세 가지였다. 사무실에 쓰여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그 세 단어를 듣고 자랐다. 노력과 봉사도 중요하지만 항상 정직하고 투명해야 한다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하셨다. 그 가르침대로 정직한 의사결정이 아니면 아무리 유혹이 크더라도 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가지고 있다.”
일본 요넥스도 이제는 3세 체제인 걸로 알고 있다. 서로 통하는 면이 있나.
“1년에 3차례 정도 만나는데 아무래도 나이대가 비슷하니까 좀 더 쉽게 다가서는 것 같다. 일본의 경우 누나가 사장으로 있고, 남동생이 글로벌 마케팅 총괄팀의 이사로 있다. 얘기를 나눠보면 브랜드의 미래 방향 등에 같은 고민을 하고 있더라. 일본 본사도 예전에 비해 훨씬 젊은 감성으로 변하고 있는 중이다. 그런 부분을 보면서 요넥스의 발전 가능성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이사하면서 많은 걸 바꿨지만 직원은 한 명도 바꾸지 않았다”
사옥을 지을 때 직접 공간 구성이나 배치 등에 꼼꼼하게 신경을 썼다고 하던데.
“일단 스포츠 브랜드지 않나. 차분한 느낌의 사무실보다는 스포츠 브랜드만의 감성을 담고 싶었다. 그래서 컬러라든지 표시 하나하나에도 신경을 많이 썼다. 회의실도 방마다 배드민턴, 테니스, 골프 콘셉트를 주고 색감도 다르게 했다. 화장실에서도 요넥스만의 분위기가 느껴지도록 했다.”
‘공간이 생각을 지배한다!’ 이런 느낌인가.
“그런 것도 있다. 우리 사옥을 보면 1층과 지하에는 각각 배드민턴 아카데미와 골프 스튜디오가 있다. 2층 라운지도 외부인에게 오픈되는 공간이다. 그러니 대충 꾸밀 수 없었다. 우리가 어떤 브랜드이고 어떤 히스토리를 가지고 있는지 알리는 것도 중요하겠다 싶어서 심혈을 기울였다.”
사옥 오픈 날 회장님은 ‘이사하면서 많은 걸 바꿨지만 직원은 한 명도 바꾸지 않았다’고 했다. 그 말이 인상적이었다.
“그 부분은 우리 직원한테 고맙다고 해야 할 일이다. 일단 우리가 망원동에 오래 있지 않았나. 그러다 보니 그쪽을 중심으로 삶의 터전을 형성한 직원들이 꽤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강남으로 오게 되니까 아무래도 굉장히 멀어지게 됐다. 예를 들어 고양시 일산에 거주하는 분들한테는 정말 출퇴근이 힘들게 됐다. 사실 그런 부분 때문에 그만두는 직원이 있지 않을까 걱정을 했는데 한 명도 없었다. 직원도 고객이라는 생각에 1년에 한 차례씩 내부 임직원 대상 만족도 조사를 하는데 점수가 전보다 올라갔더라. 출퇴근은 멀어졌지만 회사가 가고자 하는 방향성 부문에서 공감해줘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2026년에는 일본 요넥스가 창립 80주년, 2027년에는 요넥스 코리아가 창립 50주년을 맞는다. 그에 맞춰 이루고 싶은 성과가 있나.
“거창한 목표는 없다. 무리하면 항상 탈이 나기 때문이다. 다만 우리가 관여하는 배드민턴, 테니스, 골프의 저변을 넓히는 일을 계속하고 싶다. 시장의 파이를 키우면서 시민들에게 스포츠가 있는 삶의 여건을 제공하는 게 우리의 목표다. 그런 부분에 포커스를 맞추고 투자를 늘리려 한다. 회사도 정체되지 않고 계속 변해야 한다. 그래야 또 다른 50년이 있다고 본다.”
직원들과의 소통도 중요하겠다.
“나도 다른 회사 다니면서 사원이나 대리 시절을 경험했다. 힘들고 짜증 나면 회사 욕도 하면서 다녔다. 그런 경험 덕분에 직원들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어느 정도 안다. 근데 내가 아무리 그들에게 가깝게 다가가려고 해도 그들이 나를 밀어내는 측면이 어쩔 수 없이 어느 정도는 있다(웃음). 너무 부담은 주지 않되 최대한 거리감이 느껴지지 않도록 노력한다.”
요넥스는 기술 중심 회사로 알고 있다. 어떤 분야에서 강점이 있나.
“카본 기술을 첫손에 꼽을 수 있다. 배드민턴 라켓을 보면 처음에는 나무로 시작해서 플라스틱, 스틸, 알루미늄, 그리고 카본으로 진화를 거듭해 왔다. 요넥스는 1977년 세계 최초로 배드민턴 라켓에 카본을 적용했다. 요즘 골프채를 보면 카본 사용이 더욱 확대되고 있는 추세인데, 요넥스는 1982년에 이미 카본 드라이버를 생산했다. 자체 공장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사실 생산시설을 직접 운영하는 회사가 그리 많지 않다. 나노 단위의 정밀성을 자랑하는 카본 성형 기술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카본은 이제 거의 모든 산업에서 사용되고 있는데, 배드민턴에서는 라켓뿐만 아니라 신발에도 적용하고 있다. 최근엔 동물학대 이슈가 있어서 카본을 적용하는 셔틀콕도 개발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제품 생산뿐 아니라 검수 장비 등도 직접 개발하지 않나.
“스포츠에서 무게는 정말 예민하다. 라켓이나 골프채 등의 무게를 정밀 측정해 보면 조금씩 편차가 있게 마련인데, 요넥스는 이 편차가 가장 작은 브랜드로 유명하다. 배드민턴 생산 시설의 경우 마치 사무실이나 라운지로 느껴질 만큼 청결하게 관리되고 있다.”
골프 부문을 보면 다른 브랜드와 달리 샤프트를 직접 생산하고 있다. 이유가 뭔가.
“샤프트 역시 핵심 기술은 카본이다. 가벼우면서도 강한 샤프트를 만드는 게 중요한데 그 기술력의 정점에 있다 보니 직접 생산하는 거다. 아직 국내에 소개가 되지 않았지만 다양한 라인업이 있다. 2025년에 김효주가 사용하면서 국내에도 널리 알려진 카이자 라이트 샤프트도 그중 하나다. 무게는 30g대이면서 X 플렉스의 강도를 갖추는 건 기술적으로 쉽지 않은데 요넥스에서는 이미 몇 년 전에 해당 기술력을 확보했다.”
카이자 라이트 샤프트가 국내에서 얼마나 인기를 끌고 있나.
“개인적으로 연락하지 않던 분들이 샤프트 좀 구해달라고 전화를 하더라. 구매하고 싶어도 공급이 달려 제때 구입할 수 없을 정도였다. 아마 2026년에는 샤프트 쪽으로 다른 모델도 내놓지 않을까 싶다.”
다양한 샤프트 출시는 2026년 사업 전략과도 관련이 있나.
“클럽뿐만 아니라 샤프트 인지도도 굉장히 상승하면서 피팅 분야를 좀 더 강화할 계획이다. 피팅은 하나의 서비스이자 장인정신이 필요한 분야다. 피팅 숍들과 협업해 함께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찾으려고 한다. 현재 약 40곳의 피팅 숍과 업무협약을 맺었고 조만간 60군데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사옥 지하에 골프 스튜디오를 오픈한 것도 피팅 강화 차원인가.
“맞다. 본사에서 직접 상담 받고 시타도 해 볼 수 있는 경험을 제공해 주고 싶었다. 고객 분들의 만족도가 굉장히 높다. 얼마 전에는 일본에서 관광 온 부부가 일부러 방문한 적도 있었다. 물론 초기에는 운영비용이 추가로 드는 부담이 있을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고객 충성도가 높아져 더욱 튼튼한 브랜드가 되는 밑거름이 될 거다.”
“약속은 무조건 지킨다. 그게 창립 때부터 내려오는 정신이다”
프로골퍼 임진한, 김효주를 장기간 후원하고 있다. 한 번 인연을 맺으면 오래 지속되는 것 같은데.
“임진한 프로는 2017년부터, 김효주 프로는 2014년부터 후원을 하고 있다. 우리는 어떤 일을 시작할 때 의사결정까지는 신중한데 일단 시작하면 끝까지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다. 그게 창립 때부터 내려오는 정신이다. 아까 정직, 노력, 봉사를 말했는데 정직 안에 약속은 무조건 지킨다는 것도 포함돼 있다. 그게 술자리 약속이어도 상관없다. 덕분에 일본 요넥스와도 장기간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고 본다. 배드민턴 쪽에서도 보면 원천 요넥스 코리아 주니어오픈 국제배드민턴선수권(이하 원천배) 대회가 있는데 이 대회 뿌리가 1994년 원천배 전국 초등학교 대회다. 역사가 30년을 넘었다. 장애인 배드민턴 협회나 다문화 가정 배드민턴 대회 등도 장기간 후원하고 있다. 선수 지원 역시 마찬가지여서 현역 은퇴 후에도 가능하면 인연을 이어가려고 한다.”
요넥스는 오랜 기간 배드민턴 글로벌 1위다. 핵심 비결은 뭔가.
“가장 중요한 건 진심이다. 진짜 영혼을 담아 제품을 개발한다. 내가 봐도 과하다 싶을 정도다. 예를 들어 스윙 스피드를 1~2% 올리거나 단 1g도 안 되는 무게를 줄이기 위해 매달린다. 그렇게 광적으로 파고드는 덕분에 최고 수준의 제품이 나온다. 또한 제품에 하자가 있으면 무조건 회사가 책임진다. 그런 신뢰가 세계 1위를 만들지 않았을까.”
요넥스 골프클럽도 성능이 좋은데, 사실 소비자들과의 접점이 그동안 적지 않았나 싶다.
“골프에서도 최대한 시타 기회 등을 늘리려고 하고 있다. 접근성이 좋은 곳으로 사옥을 옮긴 것도 그런 차원에서다.”
배드민턴 스타 안세영 선수와 관련해선 2024년에 신발 이슈가 있었다. 이후 요넥스에서 안세영에게 맞춤 신발을 제작해 줬고, 안세영이 2025년에 여자 단식 최다인 11승을 달성했다.
“성적이라는 게 선수 역할이 90%라고 생각한다. 나머지 10%를 채워주는 게 용품 후원사가 할 일이다. 우리는 안세영뿐만 아니라 후원 선수 모두한테서 지속적으로 피드백을 받고 최대한 빠르게 도와주려고 하고 있다.”
배드민턴 저변 확대를 위해 일반 동호인 대상으로는 어떤 프로그램을 운영 중인가.
“사실 동호인을 위한 행사나 후원은 워낙 많이 하고 있다. 직원들이 거의 매주 동호인 대회에 나가서 지원을 하고 있다.”
원천배 대회는 국내 배드민턴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고 하던데.
“12월 경남 밀양에서 열린 2025년 대회에는 한국 외에도 대만, 말레이시아, 미국, 인도, 일본, 태국, 필리핀, 호주, 홍콩 등 총 13개국 1250명의 선수단이 참가했다. 대회 개막 전날에는 레전드 비전 행사라는 걸 개최하는데 이번에는 안세영, 서승재, 김원호, 이용대 등 한국 배드민턴의 전설들이 참가했다. 세계적인 셔틀콕 스타들이 원포인트 레슨을 해주고 함께 게임을 하면서 대화의 시간도 갖는다. 특히 안세영이 경기할 때는 아이들이 ‘안세영 사랑해요’라고 외치는 등 열기가 대단했다. 그런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보람을 느낀다. 우상들과 어울린 이런 경험이 주니어들이 성장하는 데 큰 동기부여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골프에도 관심을 가지고 그런 지원을 해주면 좋을 것 같다.
“우리도 그런 기회를 만들 수 있기를 바란다. 우리 회사는 아직 영글지 않았지만 가능성 있는 꿈나무들에 관심이 많다.”
취미가 골프라고 들었다.
“최근에는 허리가 아파서 자주 나가지는 못하는데, 잘 치고 싶은 욕망은 누구보다 강하다.”
언제 입문했나.
“2007년쯤이다. 취업을 준비할 때였는데 사회생활에 골프가 도움이 될 것 같아 배웠다. 당시에는 필드보다는 스크린골프를 자주 즐겼다.”
골프백 속 클럽 중 가장 자신 있는 채는 뭔가.
“글쎄. 어려운 질문인데, 56도가 제일 재밌다. 쇼트 게임을 잘하는 건 아니지만 샷을 해서 볼이 그린의 원하는 지점에 올라갔을 때 짜릿하지 않나. 그래서 56도 클럽을 제일 좋아하고 연습도 가장 많이 했다.”
2026년에 바라는 게 있다면.
“개인적으로는 안주하지 않는 사람으로 남는 것이다. 10년, 20년 뒤에 돌아봤을 때 정말 멋진 승부수였다고 회상할 수 있는, 그런 의미 있는 도전을 계속 하고 싶다. 회사 차원에서는 화려한 마케팅보다는 ‘본질’에 충실하려고 한다. 골퍼들은 예민하고 제품이 좋은지 나쁜지 금방 알아챈다. 최고의 품질을 갖춘 제품을 제공하고 고객에게 가장 신뢰받는 파트너가 되는 게 우리의 변치 않는 지향점이다.”
◆요넥스가 ‘기술 중심’ 회사가 된 이유
요넥스는 일본의 요네야마 미노루가 1946년 설립한 회사다. 아버지가 생전에 게타(일본 나막신)를 만들 때 사용하던 목재 가공용 모터 한 대를 발판 삼아 ‘요네야마 제작소’를 설립했다. 당시 그가 만들던 건 목재 낚시찌였다.
초창기 사업은 번창했지만 불과 몇 년 후 망하고 말았다. 플라스틱 찌가 나온 것이다. 요네야마는 이때 ‘다시는 기술의 흐름에서 뒤처지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당시 인기 스포츠 중 하나는 배드민턴이었다. 라켓을 나무로 만들던 때다. 목공에 자신 있던 요네야마는 1957년 일본 라켓 브랜드인 산바타에 OEM(주문자표시생산) 방식으로 제품을 납품했다. 4년 뒤 산바타가 파산하자 요네야마는 자신의 이름을 붙여 라켓 제조를 이어 나갔다.
신기술과 소재 변화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뼈저리게 체감했던 요네야마는 제품 연구 개발에 많은 공을 들였다. 그 결과 요넥스는 나무에 이은 알루미늄, 카본 라켓 등을 출시하면서 세계적인 스포츠 브랜드로 성장했다. 영문 ‘y’를 2개 합친 로고는 요네야마의 이름에서 따왔다. 요넥스(Yonex)라는 현재 회사 이름은 요네야마와 넥스트(Next)의 결합어다.
요넥스 코리아는 1977년 동승통상으로 출발했다. ‘스완’이라는 브랜드로 셔틀콕을 제작했으며 1978년 한국 최초로 셔틀콕을 해외에 수출했다. 1982년 일본 요넥스와 독점 판매 계약을 체결한 뒤 유통과 판매에 집중해 현재에 이르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