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병오년(丙午年) 새해가 밝았다. 병오년의 ‘병(丙)’은 불의 기운과 붉은색을, ‘오(午)’는 힘차게 달리는 말을 상징해 병오년은 ‘붉은 말의 해’를 뜻한다고 한다. 즉 2026년은 붉은 말처럼 열심히 뛰어 커다란 변화를 일으키고 도약을 통해 새로운 활력의 해가 될 것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예측은 일상에 지친 사람들에게는 매우 고무적이다. 하지만 문제는 과연 이 예측이 실현돼 우리에게 희망을 줄 것이냐는 점일 것이다.
올해가 매우 격동적인 해가 될 것이라는 점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의할 것이다. 그 이유로 가장 큰 것은 인공지능(AI) 기술의 발달이다. 챗GPT가 출시된 지 겨우 3년 남짓 됐지만 AI 기술은 인간의 생활을 바꾸고 인류 문명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는 점은 이제 의심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이미 많은 산업 현장에 침투하기 시작했고 이에 따라 취업 시장도 변하고 있다. AI 기술은 과거 증기기관이 가져온 1차 산업혁명 못지않게 인류 생활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 틀림없다. 게다가 그 변화의 속도가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빠르다. 인류는 바야흐로 문명 전환기의 커다란 소용돌이 속에 있는 것이다.
둘째는 미중 갈등의 격화다. 국제 무역 질서와 안보 환경의 급격한 변화는 최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외교정책으로 촉발됐지만 그 근본 원인은 지난 수십 년에 걸친 중국의 비약적인 발전과 이에 따른 미국 영향력의 쇠퇴에 있다. 사실 중국의 제조업 역량은 이미 미국을 넘어선 지 오래이며 로보틱스와 드론 같은 첨단 제조 분야에서도 선두를 달리고 있다. 심지어 과학기술 논문과 특허에서도 미국을 제치고 세계 1위를 차지하고 있어 미래의 혁신 역량 또한 세계 최상위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2026년은 국제질서가 요동치는 상황에서 인류 문명을 바꿀 기술의 대전환이 일어나는 시기인 것이다.
그러면 우리나라는 이처럼 중차대한 시기에 대응할 준비가 돼 있는가. 아쉽게도 우려스러운 점이 많다. 첫째는 경제가 활력을 잃어버린 것이다. 우리나라는 196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10%를 넘나드는 경제성장률을 기록하며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고속 성장을 했지만 국제통화기금(IMF) 경제위기를 겪은 후에는 세계 평균 성장률을 밑도는 경우가 많았고 심지어 지난 3년간은 2% 이하의 저조한 성장률을 보였다. 기득권이 ‘창조적 파괴’를 막고 있어 산업구조가 화석화된 점이 큰 원인인데 이는 과거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을 생각나게 한다. 또한 미래 사회를 결정할 AI 기술에서도 미중에 한참 뒤져 있고 심지어 과거 우리나라의 유일한 강점이었던 우수한 인적자원마저 의대 선호와 이공계 기피 현상으로 허물어진 지 오래다.
여기에 양극화가 심화돼 빈부·지역 격차가 심해지고 기회의 사다리가 없어진 상황은 사회 통합을 저해하고 있다. 과거 IMF 금융위기 때 온 국민이 한마음으로 금 모으기를 하는 등의 공동체 의식은 이제 찾아보기 어렵다. 또한 타협의 정치도 실종돼 정치가 국민의 힘을 모으기는커녕 분열을 조장하고 상대방을 무너뜨리는 데 온 힘을 쏟고 있다. 이런 때일수록 국정의 중심을 잡고 국민 통합을 위해 노력하는 대통령의 모습이 중요할 텐데 지난해 12월 진행된 정부 업무보고 회의 모습은 기대에 못 미쳤다. 도대체 100달러 지폐를 책갈피에 숨겨 나갈 수 있는지나 환단고기 문제가 국민의 일상생활을 나아지게 하는 데 무슨 도움이 되나. 대통령이나 장관 등 정부 고위직의 역할은 이런 지엽적인 문제에 신경을 쓰기보다는 국가 중요 정책의 큰 방향을 심도 있게 논의하고 결정하는 데 있을 것이다.
우리는 과거 1차 산업혁명 시기에 내부에서 공리공담으로 의미 없는 싸움을 벌이다가 국력은 쇠퇴하고 결국 국권을 잃기까지 하였다. 이제 다시 인류 문명의 대변혁이 오는 4차 산업혁명 시기에 똑같은 과오를 되풀이할 수는 없다. 정치권을 비롯한 온 국민은 정신을 바짝 차리고 병오년 새해를 맞아 붉은 말처럼 다시 질주해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