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경IN 사외칼럼

피지컬 AI 승전의 골든타임 [박종훈의 피지컬 AI와 로봇]  

박종훈 뉴로메카 대표(포스텍 겸임교수·한국AI로봇산업협회 부회장)

F1 승부, 직선 구간 관성의 힘보다

곡선 구간 과감한 기동력 좌우되듯

로봇 등 피지컬 AI, 자본 관성 넘어

기동력의 시간 시작돼 민첩성 필요

향후 2~3년 글로벌 G3 도약 기회





모터 스포츠의 정점인 ‘FIA포뮬러원월드챔피언십(FIA Formula One World Championship, 일명 F1)’ 레이스에서 승부는 흔히 직선 주로가 아닌 곡선 구간에서 결정된다. 직선 주로에서는 엔진 마력과 거대 자본의 힘이 지배한다. 지금까지 대한민국 로봇 산업은 직선 주로에서 글로벌 선두주자들에 격차를 내주고 도전자들에게 뒤처지고 있다. 앞서 나가는 차량의 관성을 꺾으려면 더 큰 투자가 필요하기 때문에 쉽지 않다. 하지만 급격한 곡률의 커브에 접어드는 순간 기회의 틈이 열린다. 거대한 관성은 오히려 독이 되어 드라이버의 정교한 감각과 민첩한 기동력을 보유한 작은 기업들에게 추월의 기회가 허용되기 때문이다.



현재 글로벌 로봇 산업은 바로 이 지독하고도 급격한 ‘곡선 구간’에 진입했다. 지난 수십 년간 제조 현장을 지켰던 전통적인 로봇 기술이 생성형 인공지능(AI)이라는 파괴적 혁신을 만나 ‘피지컬 AI(Physical AI)’로 진화하는 변곡점에 있다. 결국 지금이야말로 우리 로봇 산업이 글로벌 선두주자들을 추월하고 주요 3개국(G3)으로 도약할 수 있는 생애 단 한 번뿐인 ‘승리의 기회’라고 단언한다.

로봇 시장의 거품과 실체

최근 휴머노이드 열풍과 함께 로봇 시장에 대한 기대감이 최고조에 달해 있다. 하지만 냉정하게 짚어보자면 현재의 열기 속에는 상당한 거품이 섞여있다. 단순히 로봇이 두 발로 걷거나 사람의 동작을 흉내내는 것은 더 이상 ‘초격차 기술’이 아니다. 대한민국 로봇 산업의 진정한 승부는 생성형 AI가 물리적 생산 공정을 제어하며 실제 산업 현장에서 얼마나 유용한 가치를 생산해내느냐에 달려 있다. 즉 ‘피지컬 스킬 데이터’의 주도권을 쥐는 쪽이 ‘승리의 여신’의 미소를 가져갈 것이다.

여기서 로보틱스와 AI의 융합을 위한 전략이 필요하다. 디지털 공간의 AI가 인터넷 상의 텍스트와 이미지를 학습해 문장을 만들고 그림을 그리듯 피지컬 AI는 현실 세계의 숙련된 동작 데이터를 학습해 로봇이 물리적 작업을 수행한다. 로봇 제어의 정교함과 AI의 지능이라는 두 기술의 접점에서 양 끝단의 최고 기술을 이해하고 이를 유기적으로 융합해야 한다. 우리의 승부수는 데이터를 확보할 ‘운동장’을 선점하고 있다는 사실에 있다.

조선소의 정밀 용접, 철강 공정의 작업 제어, 외식 주방의 섬세한 조리 과정 등 거대 기업이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파편화된 현장 데이터’야말로 우리 로봇 기업들이 가진 가장 강력한 연료다. 우리는 지난 수십 년간 대기업이 닿지 못하는 척박한 중소 제조 현장에서 자동화를 구현하며 이 지독한 현장의 데이터를 축적해왔다. 이 데이터는 자본만으로 단기간에 살 수 없는 시간의 산물이자, 피지컬 AI 시대를 이끌 실체적 자산이다.



구불구불 곡선 구간 극복이 관건

앞으로의 2~3년은 로봇 산업 역사상 가장 구불구불한 곡선 구간이 될 것이다. 테슬라의 옵티머스나 피규어 AI 같은 실리콘밸리의 거대 자본과 중국의 압도적인 물량이 미친듯한 속도로 이 구간에 진입하고 있다. 하지만 그들의 거대한 관성은 역설적으로 이 복잡하고 다양한 변수가 존재하는 실제 산업 현장의 곡선 구간에서 기동력을 제약한다. 우리는 피지컬 AI의 ‘제너럴리스트’보다 산업 도메인 별 ‘스페셜리스트’로 산업 피지컬 AI를 장악해야 한다.



대한민국 로봇 기업들은 작지만 강하다. 우리는 선진국보다 뛰어난 가성비를 갖추면서도 중국이 따라오지 못하는 도메인 특화 지능과 정교한 제어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이미 현장에서는 비전 파운데이션 모델(Vision Foundation Model)과 모방학습(Imitation Learning)을 통해 로봇이 인간의 숙련된 기술을 스스로 익히는 ‘실체적 피지컬 AI’가 가동되기 시작했다. 직선 주로가 오기 전 이 구불구불한 커브 구간에서 누가 더 많은 현장 스킬 데이터를 확보하고 이를 지능화하느냐가 승패를 가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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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 주권과 다극 생태계 복원

이 곡선 구간에서 승리하기 위해 우리는 두 가지 전략적 기동이 필요하다.

첫째, ‘기술 주권’의 확립과 수직 일관화다. 하드웨어 제조를 넘어 피지컬 스킬 데이터 생성과 학습, 그리고 로보틱스 제어 기술의 융합까지 아우르는 독자적인 밸류체인을 완성해야 한다. 부품 내재화를 통해 가격 경쟁력과 생존 체력을 기르고, 그 위에 우리만의 독자적인 피지컬 AI 프레임워크를 얹어야 한다. 로봇 제어 기술과 자동화 경험이 배제된 AI는 사상누각에 불과하다. 로봇을 아는 이들이 AI를 주도해야 하는 이유다.

둘째, 민간 주도의 ‘다극 생태계’ 구축이다. 과거의 수직적이고 정부 투자 및 연구가 중심이 되는 안정적인 성장 모델은 이제 유효하지 않다. 지역 기반의 앵커 기업이 주도하는 민간 투자에 대학과 연구소, 그리고 다수의 로봇과 AI 기업들이 뭉쳐서 산·학·연·관의 혁신 고리를 단단하게 복원해야 한다. 여기서 정부의 투자와 지원이 비로소 제 힘을 발한다. 포항과 같은 지역 기반 로봇 클러스터는 이러한 생태계의 훌륭한 실험실이 될 것이다. 각 지역의 앵커 기업을 중심으로 중소 로봇과 AI 기업들이 협력하고 경쟁하며 데이터를 공유하는 다극화된 생태계가 만들어질 때, 우리 로봇 산업은 국가 경제의 새로운 심장으로 고동칠 수 있다.



2~3년 뒤 궁극적 승리의 길

F1 레이스에서 곡선 구간을 지날 때 가장 위험한 행위는 두려움 때문에 성급하게 브레이크를 밟는 것이다. 지금은 오히려 가속 페달을 밟아 코너의 안쪽을 파고들어야 할 때다. 로봇 산업이 완전한 규모화에 이르기 전까지, 즉 자본의 관성이 모든 것을 결정하기 전까지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

2~3년 후 이 지독한 곡선 구간을 빠져나와 다시 직선 주로에 올라섰을 때, 대한민국의 로봇 산업은 이미 글로벌 선두 그룹의 맨 앞자리에 서 있어야 한다. 피지컬 AI 기술의 대중화 이후 지능의 거품이 사라질 때, 실체적인 데이터와 독자적인 기술력으로 승부하는 기업만이 살아남을 것이다. 결국 국가적으로 AI 기술을 현실 산업 현장에서 실현하는 강력한 동력을 만들 때 비로소 궁극적인 승리의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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