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산업일반

"과기인상 덕에 원자분광학 주목 받아…산업계 관심도 높아져"

제1회 대한민국과학기술인상 수상 이종민 박사 인터뷰

국내서 소외됐던 연구에 큰 전환점

의료·반도체 등 응용과학 기틀 다져

세계 최고 레이저시스템 구축 성공

65세 벽에 후속R&D 끊긴건 아쉬워

해외선 유사한 연구로 노벨상 수상

사위 신관우 교수도 같은 상 받아

가족과 '과학의 가치 공유' 뜻깊어

이종민 전 광주과학기술원(GIST) 고등광기술연구소 소장. 사진 제공=이종민 전 소장이종민 전 광주과학기술원(GIST) 고등광기술연구소 소장. 사진 제공=이종민 전 소장




“대한민국의 장기 성장은 결국 과학기술 발전에 달려 있습니다. 과학자를 존중하고 연구를 오래 이어갈 수 있도록 뒷받침하는 문화와 제도가 마련돼야 합니다.”



이종민 전 광주과학기술원(GIST) 고등광기술연구소(현 고등광기술연구원) 소장은 6일 서울경제신문 인터뷰에서 인공지능(AI) 3강을 노리는 한국 과학계의 발전을 위해 개선돼야 할 점으로 ‘제도’를 꼽으며 이같이 말했다. 이 전 소장은 “최근 많은 연구가 ‘응용과학’에 집중돼 있는데 더 긴 시간과 많은 비용이 필요한 순수 과학에 대한 지원도 아끼지 말아야 한다”며 “이를 위해서는 과학자의 정년을 제한하는 현재의 제도가 서둘러 해결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종민 전 GIST 고등광기술연구소 소장이 2008년 GIST 정년 퇴임식에서 퇴임사를 하고 있다. 사진 제공=GIST이종민 전 GIST 고등광기술연구소 소장이 2008년 GIST 정년 퇴임식에서 퇴임사를 하고 있다. 사진 제공=GIST


원자분광학 권위자…관련 기술 국산화 주도 성과


이 전 소장은 한국원자력연구소 재직 시절 레이저를 이용한 원자분광학 연구를 국내에 정착시킨 1세대 과학자다. 원자분광학은 원자가 빛과 상호작용할 때 흡수하거나 방출하는 빛의 파장을 분석해 원소의 종류와 성질을 알아내는 기술이다. 이를 통해 환경오염, 방사능 감시, 핵 안전 검증, 범죄 수사 등에서 보이지 않는 미세 원자 신호를 정확히 식별할 수 있다.

원자력 분야에서 활용되는 원자 분광 레이저 기술은 당시 선진국들이 국가 차원에서 막대한 예산을 투입해 개발하던 핵심 기술이었지만 국내에는 관련 연구 그룹조차 드물었다. 그는 “원자력연구소에서 원자를 연구하는데 분광학이 왜 필요하냐는 질문을 받기도 했다”며 “그러나 환경오염 분석, 방사선 감시, 핵 안전 검증 등 원자분광학의 중요성은 명확했다”고 말했다.

이종민 전 소장이 1970년대 국내 최초로 개발한 휴대용 레이저 거리 측정기로 야외 성능을 시험하고 있다. 사진 제공=이종민 전 소장이종민 전 소장이 1970년대 국내 최초로 개발한 휴대용 레이저 거리 측정기로 야외 성능을 시험하고 있다. 사진 제공=이종민 전 소장



이 전 소장은 국내 최초로 원자 분광용 대출력·고반복률 레이저 시스템 개발에 성공하며 관련 기술의 국산화를 이끌었다. 그의 연구를 토대로 한국은 세계 다섯 번째로 희토류 원소와 수은·중금속 동위원소의 분리 실증 및 추출에 성공했다. 대기오염과 방사능오염, 오존을 원격으로 측정하는 라이다(LIDAR) 기술 역시 그의 연구 성과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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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1997년 수상한 ‘이달의 과학기술인상’은 그의 연구 인생에서 큰 전환점으로 꼽힌다. 서울경제신문이 과학기술정보통신부·한국연구재단과 함께 진행하는 ‘이달의 과학기술인상’은 1997년 제정된 이래 우수한 과학기술인들의 사기를 진작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올해부터는 상의 명칭이 ‘대한민국 과학기술인상’으로 바뀐다. 국가대표 과학기술 포상으로서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고 연구 성과의 사회적 가치와 과학기술인의 기여를 국민들에게 널리 알리기 위해서다.

이 전 소장은 “당시 레이저분광학은 국내에서 크게 주목받지 못했지만 수상을 계기로 연구 분야가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산업계의 관심도 높아졌다”며 “연구자로서 큰 자신감과 자부심을 얻게 됐다”고 회고했다.

노벨상 기반 연구 터 닦아…‘정년 연구 중단’ 아쉬움 토로


이후 그는 GIST로 자리를 옮겨 초강력 레이저 연구 인프라 구축에 매진했다. 이 전 소장이 주도적으로 구축한 초강력 레이저 시스템은 세계 최고 수준으로 평가받았으며 레이저의 속도를 극단적으로 빠르게 만들어 원자와 분자가 움직이는 순간을 직접 관측하는 연구로 이어졌다. 물질이 변화하는 찰나의 순간을 포착함으로써 초정밀가공, 의료, 반도체, 차세대 통신 등 다양한 응용 분야의 토대를 마련한 것이다.

하지만 ‘더 빠른 속도’를 향한 그의 도전은 2008년 정년 퇴임과 함께 멈췄다. 은퇴 후 한동대 석좌교수를 지낸 그는 현재 레이저 기술을 활용하는 창업 기업에 자문을 제공하며 연구 현장과의 연결을 이어가고 있다. 이 전 소장은 “은퇴와 동시에 연구 현장을 떠나면서 연구의 흐름이 끊겼다”며 “이후 유사한 개념의 연구가 해외에서 이어져 노벨상으로 연결되는 것을 보며 개인적으로 큰 아쉬움을 느꼈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과학자가 원로가 될수록 해외 저명한 석학들과의 네트워크는 더 넓어지는데 한국에서는 65세가 되면 연구 현장을 떠나야 해 많은 연구가 단절된다”며 “과학자의 정년을 제한하면 애써 수십 년간 일군 연구 업적이 중단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특히 “1970~1980년대 미국에서 학위를 받고 귀국해 한국의 과학기술 발전을 이끈 세대가 정부 요직을 맡고 있는 만큼 정년 문제가 서둘러 해결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신관우 서강대 화학과 교수. 사진 제공=과학기술정보통신부신관우 서강대 화학과 교수. 사진 제공=과학기술정보통신부


과기인상은 그의 가족에게도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다. 사위인 신관우 서강대 교수가 2019년 같은 상을 수상하며 과학의 가치를 가족 안에서 공유하게 됐다. 그는 “손주 중 한 명은 의사과학자의 길을 선택해 연구를 하고 있고 다른 한 명은 공학을 전공하고 있다”며 “과학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오가는 가정 문화가 인재 양성의 밑거름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서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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