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로 여는 수요일] 눈의 詩經





밤새 詩三百을 다 써 놓고 가버린 눈




하마 아직아래 햇살 과객 떼로 와서

그 시들 까부르느라 키질 한창입니다

아껴 쓸 가편들은 댓그늘에 숨겨두고

솔수풀 높가지에 걸어 놓은 구절부터

혀끝에 녹여내느라 군침 가득 돕니다

-박기섭


시 삼백을 쓴 게 아니라 장편 서사시를 지운 게 아닐까? 저마다 자신을 주장하던 삼라만상의 언어들이 하얗게 캄캄해지지 않았는가? 아니다. 꿀로 쓴 나뭇잎 글자를 벌레가 오려내듯 햇살이 혀끝으로 녹이는 곳부터 언어가 새로 태어난다. 행간이 사라진 산문의 세상을 지우고 잠든 시의 언어들을 깨운다. ‘아직아래’라는 낱말이 낯설게 돌올하다. ‘아침 식사 전’이라는 지역의 사투리 하나가 병오년 아침을 새롭게 밝힌다. 숫눈의 벌판 위로 붉은 말이 힘차게 뛰어간다. <시인 반칠환>

관련기사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