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동혁 국민의힘 대표가 7일 “12·3 비상계엄은 상황에 맞지 않는 잘못된 수단이었다”며 고개를 숙였다. 강성 지지층을 겨냥해 “의회 폭거에 맞서기 위한 계엄”이라고 선언한 지 약 한 달 만에 이뤄진 입장 변화로 강경 일변도의 장 대표가 지방선거를 앞두고 중도 외연 확장을 위한 본격적인 노선 변화에 돌입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다만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 당내 갈등 불식 등 민감 현안에 대한 명시적인 입장은 빠져 있어 여론에 떠밀려 나온 ‘맹탕 쇄신안’이라는 비판도 적지 않다.
장 대표는 이날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윤 전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과 관련해 “우리 국민에게 큰 혼란과 불편을 드렸고 당원들에도 큰 상처가 됐다. 국정 운영의 한 축이었던 여당으로서 그 역할을 다하지 못한 책임이 크다”며 “그 책임을 무겁게 통감하고 깊이 사과드린다”고 용서를 구했다. 그러면서 “과거의 일들은 사법부의 공정한 판단과 역사의 평가에 맡겨놓고 계엄과 탄핵의 강을 건너 미래로 나아가겠다”고 다짐했다.
비상계엄 1주년인 지난달 3일만 해도 계엄의 원인을 당시 야당인 더불어민주당 탓으로 돌렸던 장 대표는 ‘과거와의 단절’을 수차례 강조하며 “국민의힘이 부족했다. 잘못과 책임을 국민의힘 안에서 찾겠다. 오직 국민 눈높이에서 새롭게 시작하겠다”고 거듭 사과했다.
6·3 지방선거 승리를 위한 ‘범보수 대통합’ 의지도 내비쳤다. 장 대표는 “이기는 선거를 위해 폭넓게 정치 연대도 펼쳐나가겠다”며 “자유민주주의 가치에 동의하고 이재명 정권의 독재를 막아내는 데 뜻을 같이한다면 마음을 열고 누구와도 힘을 모으겠다”고 약속했다.
지방선거 공천룰 관련 당심 강화 기조에 대한 당내 반발을 의식한 듯 “공천은 경선을 원칙으로 하되, 이기는 선거가 되도록 지역과 대상에 따라 당심 반영 비율을 조정하겠다”고 말했다. 당 쇄신책으로는 당명 개정을 추진하는 한편 이러한 당 주요 현안에 대해선 ‘전 당원 투표’를 거치도록 해 민주적 의사결정 구조를 정착시키기로 했다. 장 대표는 기자회견이 끝난 뒤 질문을 받지 않은 채 당사를 빠져나갔다.
장 대표의 쇄신안에 당내 입장은 극명히 갈렸다. 특히 소장파가 요구해온 핵심 내용인 윤 전 대통령과의 관계 설정에 대한 언급이 없었던 점을 놓고 해석이 제각각이다. 당 주류 사이에서는 “이 정도면 할 만큼 했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한 지도부 관계자는 “계엄에 대한 사과에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입장도 충분히 포함되는 문제라고 본다”며 “아예 절연을 선언하자는 의견이 지도부 내에서도 있었지만 당 지지층의 성향이 다양한데 지지 대열을 흩트리면서까지 구체적인 메시지를 내는 것은 부작용이 우려된다는 반응이 더 많았다”고 전했다. 장 대표 체제를 앞장서 비판해온 오세훈 서울시장도 “잘못된 과거를 단호히 끊어내고 국민 눈높이에 맞는 변화를 시작하겠다고 선언한 데 대해 적극 환영한다”고 치켜세웠다.
반면 친한(친한동훈)계 등 소장파 그룹에서는 “알맹이가 없는 쇄신안”이라고 혹평했다. 당내 개혁 성향 의원 모임인 ‘대안과 미래’는 이날 낸 입장문에서 장 대표의 혁신안에 대해 윤 전 대통령을 비롯한 비상계엄 옹호 세력, 부정선거 음모론자들과의 절연이 빠져 있는 “내부 인테리어 수준”이라고 직격했다. 한동훈 전 대표도 “계엄을 제대로 극복하고 윤 전 대통령과의 절연이 필요하다. 이를 제대로 해내지 못하면 다음 페이지로 넘어갈 수 없다”고 에둘러 비판했다.
지리멸렬한 당을 어떻게 수습할지에 대한 입장이 빠졌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장 대표가 언급한 ‘연대’는 결국 개혁신당 등 외부 세력과의 협조를 의미하는 것일 뿐 한 전 대표와의 갈등 등 당내 통합 문제는 외면한 게 아니냐는 것이다. 대안과 미래도 “당내 갈등을 어떻게 봉합하고 화합으로 이끌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해법 또한 보이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이 때문에 당 내홍 불씨도 여전한 상황이다. 당장 한 전 대표의 ‘당원게시판’ 논란 징계 수위에 따라 지도부와 친한계 간 충돌 가능성이 높다. 신임 윤리위원장인 윤민우 가천대 경찰행정학과 교수가 과거 김건희 씨를 옹호하는 글을 쓰는 등 친윤(친윤석열) 색채를 띠고 있는 점도 이런 우려에 힘을 싣고 있다. 한 친한계 의원은 “강성 지지층의 눈치를 보느라 한 전 대표와 통합해 중도로 나아가겠다는 말조차 빠졌다”며 “아무런 감정도, 감동도 없는 쇄신안으로는 의원들의 반발이 잠재워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