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룩의 간을 빼먹는다’는 말이 있다. 참 염치없는 말이다. 벼룩의 간을 내어 먹다니, 그 조그만 녀석에게 그런 잔인한 짓을 하다니 말이다. 이식외과 전문의로서 십수 년간 간을 다루며 살아온 필자로서는 더욱 용납하기 힘든 비유였다. 그런데 몇 년 전에야 알게 됐다. 벼룩에게는 애초에 간이 없다는 것을. 그 속담은 허언이었던 것이다. 매우 충격적이었다. 심지어 하루살이에게도 간이 없다. 만약 하루살이에게 간이 있었다면 열흘살이, 한달살이가 됐을 수도 있다. 별처럼 빛난 반딧불이도 간이 없다. 며칠간 어둠을 밝혀주는 빛을 내다 장렬히 전사하는 것이다.
간이 없는 동물들은 쉼 없이 먹고 있거나 장내에 음식물이 지나고 있어야 한다. 간이 없는 하루살이의 운명은 이미 태어날 때부터 죽음을 예견하고 태어난 것이다. 곰이 겨울잠을 잘 수 있는 이유는 간이 있어서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다람쥐와 너구리도 겨울잠을 잔다. 풍족한 늦가을 포식과 폭식을 거듭해 간에 많은 에너지를 지방의 형태로 축척해뒀다가 에너지를 조금씩 녹여 사용하는 식으로 길고 긴 겨울잠을 잘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 우리가 매일 잠을 자고 일을 할 수도 있는 건 건강한 간이 버텨주고 있어서다. 간이 제 기능을 해주기에 조금 깨끗하지 않은 음식을 먹어도 큰 탈 없이 지나갈 수 있다. 장의 백혈구 전사들이 미처 해결하지 못한 균들은 간의 거대세포가 깔끔하게 제거해준다.
우리 몸은 장에서 흡수한 영양소와 독소를 담은 피를 바로 심장으로 보내는 대신 간을 거쳐 에너지를 저장하고, 독소를 정제해 심장으로 피를 돌려주는 시스템을 갖췄다. 간과 장 사이를 연결해주는 독특한 정맥 구조를 문맥(門脈), 영어로는 포털 베인(portal vein)이라고 부른다. 공항·항구 등을 연상케 하는 명칭 그대로 한 나라의 관문과 같은 역할을 하는 혈관이다. 체내에 저장된 에너지는 우리가 잠을 자는 동안 우리의 혈당을 안정적으로 유지시킨다. 의도하건 의도치 않았건 가끔은 긴 공복을 견뎌내는 자구책이 돼준다. 공복이 지나치게 길어지면 간과 장내 지방 등의 에너지를 일차적으로 사용한다. 그 기간이 보다 길어지면 결국 우리 몸의 골격인 근육을 녹여 활력징후를 유지할 수 있는 에너지를 만들어낸다.
우리 사회에도 간과 같은 역할을 하는 곳들이 많이 있다. 곳곳에 마련돼 있는 사회안전망과 촘촘히 짜여 있는 사회복지 제도는 인류에게 닥칠 수 있는 위험을 막아준다. 때로는 우리가 한 실수를 넉넉히 품어주고, 뜻하지 않게 닥치는 위험천만한 순간에도 에너지를 공급해준다.
한국 사회는 지난해 큰 시험대에 올랐다. 그 혼돈의 순간에도 우리 사회의 안전망은 묵묵히 나라를 지켰고 국민의 안전을 지켰다. 하루살이가 아니라 5000년의 역사를 지닌 이 땅이 겪었던 수많은 시행착오는 우리 사회에 건강한 간을 선물했다. 2026년 새해를 맞아 디지털 전환의 시대, 인공지능(AI) 전환의 시대 등 수많은 꿈같은 이야기가 들려온다. 그 속에는 경제 불평등, 지역 불균형, 건강 불평등 등 수많은 사회적 난제가 공존하고 있다.
건실한 대안을 마련하다 보면 시행착오는 피할 수 없다는 게 명확한 현실이다. 하지만 혹 어려운 상황이 오더라도 우리의 근육을 녹여 활력징후를 유지하는 일은 없어야겠다. 나는 간에게서 배운다. 어려움을 인내하는 지혜와 그의 꾸준함을.
/안경진 의료전문기자 realglasses@sedaily.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