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서울 아파트값이 8.71%(한국부동산원 주간 상승률 누적) 올랐습니다. 2013년 이후 가장 높은 데다가, '패닉 바잉' 열풍이 일었던 문재인 정부 시절 상승폭(2018년 6.73%)도 넘어섰죠. 이재명 정부가 취임 이후 세 차례에 걸쳐 규제책과 주택 공급 대책을 내놓았음에도 역대급 상승세를 막지 못한 것입니다. 이 때문에 정부는 추가 공급 대책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추가 대책 발표도 앞두고 있는 만큼, 오늘은 '공급 폭탄'으로 집값을 잡았던 과거 정부 사례를 다뤄 보겠습니다.
5년 동안 전국 주택 30% 늘린다…노태우의 공급 폭탄 계획
서울 집값을 진정시키는 데 가장 확실한 효과를 냈던 정책을 꼽으라면 국민 열에 아홉은 바로 이 정책을 떠올릴 겁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이 1988년 발표한 '주택 200만 호 건설 계획'. 당시는 3저 호황으로 시중에 돈이 넘치고 수도권 인구가 폭발하면서 집값도, 전세 가격도 급등하던 시기였습니다. 이전 대통령이었던 전두환이 1980년 내놓은 '주택 500만 호 건설 계획'이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한 영향도 컸죠. (다만 이 때 제정된 택지개발촉진법은 목동·상계·개포택지지구는 물론 1~2기 신도시 조성의 제도적 기틀이 됩니다.)
노 대통령은 민심이 이탈할 조짐을 보이자 대선 후보 때부터 200만 가구 건설 공약을 내걸었습니다. 1992년까지 5년간 수도권에 90만 가구(이 중 서울에 40만 가구), 지방에 110만 가구의 주택을 짓겠다는 구상이었죠. 통계청에 따르면 당시 전국의 주택 재고는 1985년 기준으로 약 666만 7350가구였는데요. 5년 동안 전국 주택 수를 약 30% 늘리겠다는 계획이었으니 거창했다고 할 만 합니다.
현재 재건축이 추진되고 있는 수도권 1기 신도시(성남·일산·평촌·산본·중동)는 당시 공급 대책의 하이라이트였습니다. 박승 당시 건설부 장관은 서울 시내에는 집 지을 땅이 없고,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은 손 대기 어려워 그린벨트 바깥의 택지에 주목했다고 합니다. 지금도 주택 공급할 때 서울에 땅이 없다고 난리인데, 이런 어려움은 40여년 전에도 그대로였나 봅니다.
4년 만에 목표 조기 달성…1990년대 안정세 이어간 집값
결과는 어땠을까요? 200만호 건설 계획은 목표 시점이었던 1992년보다 1년 빠른 1991년 8월에 조기 달성됐습니다. 1992년까지는 총 270만 가구가 공급됐고요. 30만 가구 규모의 1기 신도시는 조성 계획이 발표된 지 불과 2년 반 만인 1991년 9월에 분당에서 첫 입주를 시작했습니다. 1992년 다른 신도시에서도 입주 대열에 동참했고 1996년까지 집들이가 이어졌지요. 이런 속도전에 힘입어 1기 신도시는 서울 수요를 분산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물량 폭탄의 효과는 1991년부터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집값이 마침내 하락 전환한 건데요.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1991년 전국 주택매매가격지수는 전년 대비 0.54% 떨어졌고, 1992년 -4.89%, 1993년 -3.04%로 하락세를 이어갔습니다. 1989년 실시한 투기 억제책(택지소유상한제·개발이익환수제·토지초과이득세)에 더해 1997년 외환 위기까지 겹쳐 집값은 1990년대 내내 안정세를 보였죠.
하지만 속도전과 물량 공세에 힘입은 안정세 이면에는 졸속 개발이라는 암(暗)도 자리했습니다. 대표적으로 1기 신도시는 지어지기 시작할 때부터 입주를 완료한 이후에도 갖가지 논란의 중심에 섰습니다. 신도시 건설 과정에서 농민들이 삶의 터전이 수용되는 것을 비관해 극단적 선택을 하는가 하면, 1991년 ‘불량 레미콘 파동’으로 일컬어지는 부실 공사 파문까지 일었는데요. 주택 건설 공사가 한 번에 몰려 자재를 구하기가 어려워지자 저품질의 레미콘, 철근, 모래가 쓰인 겁니다. 저품질 레미콘을 쓴 건설사들은 아파트를 헐고 재시공하기까지 했지요. 이처럼 잡음이 많았던 탓에 1기 신도시 입주 이후에는 한동안 추가 신도시 개발 논의가 금기시되다시피 할 정도였습니다.
사실 노태우 정권만큼 가시적인 성과를 낸 주택 공급 정책은 그 이후로 더는 찾아보기 힘듭니다. 민주주의가 성숙화하면서 대규모 주택 공급을 할 때 거쳐야 하는 절차, 들어야 하는 의견이 갈수록 많아지고 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이겠지요. 그럼에도 공급으로 집값 잡은 정책을 논할 때 함께 거론되는 대상이 있습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2009년 발표한 '보금자리주택 건설 계획'입니다. 따지고 보면 이 전 대통령은 공급 폭탄이 아니라 ‘공급 폭탄 기대’로 사람들의 수요를 잡은 것에 가까웠는데요. 보금자리주택 건설 계획이 어떤 정책이었는지, 어떤 효과를 거뒀는지는 <4>회에서 살펴보겠습니다.
※ ‘김태영의 부동산 썸씽’을 구독하시면 도시와 부동산의 다양한 이야기를 재밌고, 쉽게 접하실 수 있습니다. 어렵기만 했던 내용도 ‘썸’ 타듯 즐길 수 있도록 정성스럽게 풀어 나가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