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이 기업의 주요 경영 사항에 의결권을 행사하는 시대가 도래했다. 인수합병(M&A)이나 사업 매각, 경영진 교체와 같은 주주총회 안건에 대해 사람이 아닌 AI가 의결권을 갖고 기업 미래까지 결정하게 된 것이다. 기업이 AI 알고리즘을 만들었는데 이제는 AI가 기업 운명까지 좌우하는 세상이 됐다.
미국 최대 은행인 JP모건체이스는 앞으로 투자 기업의 의결권 행사를 결정할 때 자문사를 통하지 않고 자체 AI 모델 ‘프록시 IQ’를 활용하기로 했다. 7조 달러가 넘는 고객 자산을 운용하는 JP모건은 수천 개 상장 기업의 지분을 갖고 있다. 프록시 IQ는 3000건이 넘는 연례 주총 데이터와 자료를 분석해 포트폴리오 매니저들에게 의결권 최종 내용을 전달하고 매니저들은 AI 권고를 따른다. JP모건은 이를 올해 미국 기업의 주총 시즌부터 적용한다고 한다.
JP모건의 이번 조치는 자문사에 대한 불신에 기인한다. 제이미 다이먼 JP모건 최고경영자(CEO)는 “의결권 자문사는 무능하며 시장에서 사라져야 한다”고 비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지난달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자문사들의 담합과 불공정 행위에 대한 감시와 규제를 강화하라”고 행정명령을 내렸다.
글로벌 의결권 자문 시장은 ISS(Institutional Shareholder Services)와 글래스루이스가 90% 이상을 차지하는 과점 체제다. 중소형 운용사들은 비용과 인력 문제로 이들 자문사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데 자문사 권고가 주총 결과에 과다한 영향을 미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이들 자문사는 지난해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을 포함해 한국 상장사의 지배구조와 경영 사안에 대해서도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국민연금도 의결권 행사 시 ISS와 글래스루이스의 자문 보고서를 참고하고 있을 정도다. 한때 ‘주주민주주의 꽃’이라는 찬사를 받았던 의결권 자문사들이 외부의 따가운 눈총을 받으며 AI에 ‘밥그릇’을 내주는 신세로 전락한 것은 또 다른 ‘AI 살풍경’이 아닐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