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상과 필즈상을 받기 위해서는 자신이 고안한 문제가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아야 하죠. 이번 기금을 통해 근본적으로 인류의 미래를 위해 헌신할 수 있는 연구를 펼치길 바랍니다.”
홍범준(64) 좋은책신사고 대표가 ‘수학계의 노벨상’으로 불리우는 필즈상과 물리·화학 등 과학분야 노벨상 인재 양성을 위해 모교인 서울대에 연구기금 1000억 원을 쾌척했다.
서울대는 13일 서울 관악캠퍼스에서 ‘발칙한 자연과학적 상상과 수리 논증을 위한 무주·쎈 연구기금’ 협약식을 개최하고 홍 대표로부터 연구기금 1000억 원을 기부받았다. 이 기금은 단일 기부로는 서울대 역사상 가장 큰 금액으로, 필즈상과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기 위한 연구비와 연구공간 구축 등의 비용으로 쓰일 예정이다.
서울대 수학과를 졸업한 홍 대표는 서른 살 무렵인 1990년 좋은책신사고의 전신인 출판사 ‘학진평’을 세운 이래 수학 교육에 일평생을 바쳤다. 한국에서 초중고교를 거쳐온 학생들에게 익숙한 전과목 참고서 ‘우공비’와 수학문제집 ‘쎈(SSEN)’은 홍 대표가 일궈온 중등 교육의 유산이다. 좋은책신사고 참고서·문제집 브랜드의 누적 판매량은 9500만 부를 넘어섰고 연내 1억 부 판매라는 기록 달성도 내다보고 있다.
홍 대표가 서울대에 기부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그는 1996년 서울대 수학연구소에 1억 원을 쾌척한 데 이어 수리 교육의 역사를 발전시키기 위해 5억 원을 추가로 후원했다. 2019년부터 시작된 좋은책신사고 인재장학금을 받은 학생은 480명에 이르고, 지난해부터는 ‘SSEN 펠로우 및 컨퍼런스 기금’을 통해 수학연구소에 기부를 약정하고 매년 5억 원씩 내고 있다.
이번 기부가 특별한 이유는 인력 이탈 위기를 맞고 있는 자연과학 분야에 서울대 역사상 최대 기부액이 쾌척됐기 때문이다. 기부금 1000억 원 중 500억 원은 석학 초빙·인건비 등 연구비에 쓰이고, 500억 원은 최신 연구 시설을 위해 사용된다. 홍 대표는 추후 노벨상과 필즈상을 수상하는 학생에게 별도로 15억 원의 상금을 수여할 계획이다.
홍 대표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이번 기부에 ‘동시성’이 작용했다고 밝혔다. 기초과학 발전 기여를 위해 기부를 고민하던 홍 대표의 생각과 ‘미래 초융합 기초과학기술원(NEXST 랩)’ 설립 등 혁신을 꿈꾸는 서울대 자연대의 제안이 꼭 들어맞았다는 것이다. 국가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기초과학의 경쟁력 제고가 필수적이라고 강조한 그는 “우리가 과학 분야에서 노벨상을 타지 못한 원인은 과학적인 진리에 대해서 의문을 품지 않기 때문"이라며 “발칙한 상상을 통해 알고 있는 상식을 부정하면서 새로운 학문을 시작할 수 있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이어 “주어진 재원을 바탕으로 해외 유수의 석학을 초빙하고 이를 통해 인류가 해결하지 못한 난제를 제시하면서 학생들에게 신선한 자극을 줬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연구기금의 이름인 ‘무주(無住)’는 머물지 않는다는 뜻으로, 어디에도 집착하지 않는 홍 대표의 정신이 담긴 단어다. 홍 대표는 “기부라는 건 누군가에게 재화를 주는 것이지만 저는 이번 기금이 원래 필요한 자리로 간 것이라고 생각한다”면서 “기초과학·수학과의 인연을 통해 만들어진 이번 기금이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기여를 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서울대도 홍 대표의 의지를 바탕으로 기초과학 분야에 대한 지원을 강화할 방침이다. 유재준 자연과학대학장은 “세계 30위권에 머물러 있는 서울대 자연대가 10위권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다음 50년을 설계하는 새로운 시도가 필요하다”면서 “서울대 자연대의 새로운 도전에 응답해주신 홍 대표의 통 큰 기부가 향후 과학 주권을 세우는 50년이 되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유홍림 서울대 총장은 “홍 대표의 큰 결단과 후원은 서울대가 세계적 수준의 연구중심대학으로 도약하는 데 든든한 토대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