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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훈
안성훈 법무법인 법승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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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법 파보기
9개의 칼럼 #법률
  • 정보공개법은 공공기관이 보유하고 있는 정보를 모두 공개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다만 법정된 비공개 사유가 있는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정보를 공개하지 않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공공기관은 있는 그대로의 정보가 아니라 다소간의 검색과 편집을 거쳐야 하는 자료라고 하더라도 이 같은 작업을 거쳐 청구인에게 정보를 제공해야 할 의무가 있고(대법원 2010. 2. 11. 선고 2009두6001 판결 등), 공개 대상 정보의 양이 너무 많다는 것도 비공개의 이유가 될 수 없다(정보공개법 제13조 제3항). 다른 사람에게 공개해서 이미 알려졌다거나 관보 등으로 공개해서 인터넷 검색이나 도서관 열람 등으로 쉽게 알 수 있는 정보라고 하더라도 당연히 공개 청구의 대상이 된다(대법원 2010. 12. 23. 선고 2008두13392 판결 등 참조). 이렇게 정보공개법은 공공기관의 정보공개 의무를 매우 엄격한 기준으로 부과하고 있다. 공공기관의 정보를 국민에게 공개하는 것은 국민 알권리를 위해 중요한 것일 뿐 아니라 국가의 주인인 공공기관을 감시하기 위한 기본적 단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실제로 우리가 공공기관으로부터 제대로 된 정보를 얻어내는 것이 어려운 경우가 많다. 특히 개인정보와 관련되었다거나 관련된 업무가 진행 중이라거나 재판 등이 진행 중이라는 이유로 정보를 공개하지 못한다는 회신을 받는 경우들이 있다. 물론 정보의 공개가 공정한 업무의 집행 등에 방해가 된다면 비공개를 하는 것이 타당하다. 하지만 공공기관이 자신들이 정보를 ‘보유하고 있지도 않으면서’ 청구한 정보의 제목만 보고 비공개 사유를 붙여 비공개하는 경우도 있다. 이 경우는 아주 중대한 위법이라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공공기관이 정보를 비공개할 경우에는 대상이 된 정보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확인·검토해 어느 부분이 어떠한 법익 또는 기본권과 충돌돼 정보공개법 제9조 제1항 몇 호에서 정하고 있는 비공개사유에 해당하는지를 주장·증명하여야만 하기 때문이다(대법원 2018. 4. 12. 선고 2014두5477 판결 등 참조). 이러한 법리에 따르면 ‘존재하지 않는 정보’에 대하여 그 존재 유무조차 확인하지 않고 비공개처분을 하는 것은 그 자체로 중대하고 명백한 위법이라는 판단을 면할 수 없는 것이 된다. 공공기관이 그 정보가 있는지 없는지조차 살펴보지 않고 비공개사유를 기재하여 비공개한다면 국민은 ‘해당 정보의 존재’라는 기본적인 사항 조차 알 수 없게 되기 때문에 그러한 행위는 국민의 권리를 심각하게 침해하는 것이다. 법원은 ‘존재하지 않는 정보’에 대하여 ‘정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유를 들어 공개를 거부한 처분’에 대한 행정소송은 법률상의 이익이 없다며 ‘각하’ 판결을 하고 있지만 ‘존재하지 않는 정보’에 대하여 ‘정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유가 아니라 다른 법정된 비공개사유를 들어 비공개처분을 한 사건에 대하여는 입장을 일관되게 정리하고 있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존재하지 않는 정보에 관해 ‘정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유’로 비공개처분한 것과 달리 존재하는 정보에 대해 그 정보 내용의 비공개 사유를 검토를 하는 것에는 이르지도 않고 정보의 존재 자체조차 확인하지 아니한 채 비공개처분을 하는 것은 공공기관이 정보공개법상 부담하는 아주 기본적이고 단순한 의무조차 행하지 않은 것이므로 이는 ‘중대하고도 명백한 위법’으로 보아 무효라고 판단하여야 한다. 부존재 하는 정보에 대해 부존재를 이유로 비공개 처분하는 사안과는 달리 이 같은 경우라면 이 사건 처분이 위법·무효임을 선언해 피고가 정보공개법상의 기본적인 의무를 이행하지 않아 사건 소가 제기된 법적인 책임을 오로지 피고가 부담하도록 해야 한다.
    2024.11.16 08:00:00
    ‘보지도 않고 비공개’…사실 존재치 않는 정보였다니[안성훈 변호사의 ‘행정법 파보기’
  • 지난 2022년 1월 32년 만에 전부 개정된 지방자치법이 시행됐다. 지방자치의 수준을 높이는 내용의 개정이었다. 물론 지방자치가 강조된다고 하더라도 국가는 여전히 국민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지방자치단체(지차제)의 사무에 관해 조언하거나 권고하고 나아가 지도할 수 있다. 또 사무의 적정이나 효율을 위해 국가가 지자체에 위임한 사무에 관해서는 구체적으로 지휘·감독할 수 있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국가의 사무도 아니고 국가가 위임한 사무도 아님에도 불구하고 지도의 차원을 넘어 국가의 전반적인 지휘권을 인정하고 있는 분야가 있는데, 바로 ‘행정소송’이다. 국가를 당사자로 하는 소송에 관한 법률(국가소송법)은 행정소송에 관해 국가에 광범위한 지휘권을 부여하고 있고(제6조 제1항) 나아가 행정소송을 소송수행자를 지정·해임할 수도 있는 권한을 부여하고 있다(동조 제2항). 우리 행정법은 전반적으로 국가와 지방에 대한 규율을 이원화하고 있다. △행정조직에 관한 규정 △공무원에 관한 규정 △재정에 관한 규정 △계약에 관한 규정 △보조금 관리에 관한 규정 △공공기관에 관한 규정 등 대부분의 영역에서 국가사무와 지방사무를 나눠 규율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특이하게도 소송에 관해서는 국가소송법만 있고, 여기에서 지방자치단체를 포함한 행정청의 행정소송 사무까지 규율하고 있다. 그 이유가 명시적으로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우리의 지방자치는 그간 형식적이었고 중앙집권적이었으며 나아가 지방자치단체를 포함한 ‘하급행정청’의 소송수행 역량에 대한 신뢰가 적었다는 설명이 있기도 하다. 한편 지자체를 당사자로 하는 일반 민사소송은 규율범위에도 없어서 지자체는 민사소송을 일반 민사절차에 따라 수행한다. 국가의 소송지휘권은 주로 소송의 존폐가 문제될 때 등장한다. 소송을 먼저 시작하려 하거나(제소 결정), 소송을 끝내거나 계속 진행하려 할 때(조정권고안 수용 여부 및 상소 여부 결정) 등이 그때다. 즉, 지자체는 자신의 사무와 관련해 행정소송의 가장 중요한 행위를 하려 할 때마다 국가의 지휘를 받아야 한다. 그런데 여기에 받아들이기 어색한 문제들이 몇 가지 발생하고 그 필요성에도 의문이 생긴다. 먼저 자치권 행사와 충돌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지자체는 고유사무에 관해 독자적으로 자치입법을 하고 독자적인 정책적·행정적 의사결정을 한다. 이 같은 의사 결정들에 관해 불복하는 당사자들과 행정쟁송을 겪게 될 수 있다. 대개 재량범위 내에서 어떤 결정을 했느냐에 관해 문제되는 경우가 많기에 법원은 행정소송법이 조정 제도를 명시하고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조정과 유사한 조정권고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법원이 재량 범위 내에서의 합리적인 안을 제시하고 피고가 그에 부합하는 처분을 하는 대신 원고는 소를 취하하도록 하는 것이다. 행정청은 법원의 조정권고를 받아 재고의 계기를 얻게 되고 그 제안이 타당하다고 판단하면 그에 따라 변경 처분을 하게 된다. 이 같은 변경 처분은 말 그대로 지자체장 등 재량 내의 결정이고, 더구나 법원의 의견에 따른 것이므로 그 합리성도 인정될만하다. 그런데 여기서 국가의 소송지휘가 어색한 문제를 발생시킨다. 원고와 피고가 모두 조정권고안을 받아들이고 있는 중에 이와 다른 견해에서 ‘조정원고안 불수용’이라는 소송지휘가 내려오면 피고인 지자체장은 자신의 정책적·행정적 판단에도 불구하고 부득이 소송을 계속해야 하는 상황에 처한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상소의 제기·포기 등의 경우에도 비슷한 문제가 발생한다. 정책적·행정적 판단과 소송진행 실익 및 위험부담에 대한 지자체장 등 나름대로의 검토와 판단에도 불구하고 국가가 이와 다른 견해에 따라 지휘를 한다면 그 지휘를 따라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해충돌의 문제도 있다. 국가와 지자체는 서로 서로에 대해 행정권한을 행사하는 상대방이 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상호 간 행정처분의 주체와 객체의 지위에서 항고소송 당사자가 될 수 있다(대법원 2010.3.11. 선고 2009두23129 판결 참조). 대립당사자가 자신의 이익을 두고 다투는 소송에서 일방 당사자가 반대 당사자를 지휘한다는 것은 그 구조 자체가 어색하다. 나아가 복수의 지자체가 다투는 소송의 경우에는 하나의 지휘기관이 대립당사자를 모두 지휘하는 것이 되어 이 또한 어색한 상황이 발생한다. 지방자치단체의 소송 역량도 점차 개선되고 있어서 포괄적인 소송 지휘의 필요성은 점점 적어지고 있다. 특히 많은 지자체에서 직접 변호사를 채용해 송무를 수행하고 있는 현재 상황에서는 기본적인 소송지식의 미숙지로 발생하는 소송수행 해태는 걱정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된다. 한편, 소송지휘라고 해도 서면 작성을 지원한다든지 하는 실질적 지원 기능이 크기보다는 소송 진행 상황을 보고 받고 주요 사항에 관한 의사결정 과정에 관여하는 결과만 되므로 오히려 신속한 의사결정을 어렵게 하는 등 소송에 관한 행정적 비효율을 초래하는 상황도 많을 수 있다고 생각된다. 지자체의 독립성이 뚜렷하게 인식되지 않던 시절과 달리 이제 지방의회 의원과 지자체장은 지방선거라는 별도의 선거를 거쳐 민의에 따라 선출된 지가 벌써 오래됐다. 이들은 법령에서 부여한 권한에 따라 자치입법과 자치행정을 수행한다. 그리고 이제 새로운 지방자치법은 이들의 실질적인 자치분권을 지지하고 있다. 그러므로 지자체가 고유사무에 관해 의사결정을 하는 과정에 국가가 개입해 지휘한다는 것은 점차 더욱 어색한 일이 될 것이다. 이러한 흐름에 발맞춰 행정소송에 관한 국가의 일반적 지휘에서 벗어나 지자체를 당사자로 하는 소송에 관한 새로운 규율을 만들어갈 필요가 있다.
    2024.10.12 10:48:41
    국가 소송지휘권 vs 지자체 소송수행권
  • 최근 방송통신위원회가 방송문화진흥회 차기 이사진 임명을 한 것에 대해 법원이 집행정지 신청을 인용한 것에 대한 논란이 있었다. 집행정지가 무엇인지를 살펴보고 제도 운영에 대한 개인적인 제언을 해보고자 한다. 행정처분에 대해 불만이 있을 때 행정구제 절차를 이용하게 된다. 대표적인 것이 행정소송·심판이다. 그런데 행정소송 등을 제기한다고 해서 자동으로 행정처분의 효력이 정지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는 행정처분이 권한 있는 기관에 의해 취소되거나 해당 절차를 멈추는 결정이 내려지지 않는 이상 법적 효력이 유지된다. 반면 독일에서는 행정소송을 제기하면 행정처분이 정지되는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그렇다면 행정소송 등을 제기한다고 해도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인가? 소용이 있도록 하기 위해서 해야 하는 것이 집행정지 신청이다. 이는 ‘소송 등의 불복절차를 진행할 수 있도록 얼마간은 행정처분도 정지해달라’는 요청이다. 그러면 법원이나 행정심판위원회는 주로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행정소송의 경우)나 중대한 손해(행정심판의 경우)를 예방하기 위해 긴급한 필요가 있는지, 그리고 공공의 복리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는지를 고려해 집행정지에 관한 결정을 내린다. 명문화된 기준은 아니지만 본안에서 승소할 가능성도 어느 정도 고려된다. 행정소송의 경우 제소부터 제1심 판결이 나오기까지 평균적으로 6개월이 넘게 걸린다. 이 기간 동안 행정처분의 효력이 유지된다면 대부분 소송 제기의 실익이 없어질 수 있으므로 집행정지 제도는 권리구제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리고 많은 경우 행정처분의 집행을 다소 연기하더라도 큰 문제가 없지만, 즉시 집행될 경우 당사자에게 큰 타격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집행정지의 타당성이 인정된다. 하지만 행정처분이 집행되는 시점 자체가 중요한 경우에는 집행정지가 인용될 가능성이 줄어들 것이다. 법원 실무를 보면 대체로 행정처분의 효력이 임박한 경우, 집행정지의 결정이 나올 때까지 잠정적으로 집행을 정지하는 결정을 내린다. 그러고 심문 등 절차를 거쳐 다시 종국적인 집행정지 결정을 내린다. 예전에는 집행정지의 효력이 끝나는 시점(종기)를 ‘제1심 판결 선고시까지’로 정하는 관행이 있었으나, 판결 선고 직후 행정처분이 되살아나면 혼란이 발생하기 때문에 최근에는 ‘제1심 판결 선고일부터 30일까지’과 같이 일정 기간을 정하는 추세다. 이와 같이 판결 선고일을 기준으로 집행정지의 종기를 정하는 실무는 여러 가지로 편리하기는 하지만 한편으로는 집행정지 제도를 악용하는 사례를 막기 어려운 측면도 있다. 예를 들어 영업정지 등의 행정처분을 받은 당사자는 집행정지가 인용되면 소송을 최대한 끌어서 영업을 계속하려는 경제적 동기가 클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소송이 지연될 가능성도 커질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집행정지 제도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가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 특별한 사정이 없는 이상 집행정지를 인용해주되, 제도를 악용하는 사례를 막기 위해 본안심리와 집행정지를 연동적으로 운용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집행정지의 종기를 제소일부터 6개월 이내로 정하고, 본안 소송의 진행에 따라 갱신하는 방식이다. 본안에서 충실하게 변론이 진행되는 경우에는 집행정지 기간을 갱신하는 결정을 하되, 원고가 재판을 고의로 지연하는 것으로 판단되는 경우에는 기존의 결정이 갱신없이 종료되도록 하는 것이다. 이처럼 집행정지의 신청을 상대적으로 관대하게 허용하되 그 기간을 제한하고 사법적 심사가 성숙해가는 과정에서 집행정지의 계속 진행을 검토하는 방안으로 운용한다면 집행정지 제도의 효능을 더욱 높일 수 있을 것이다.
    2024.09.15 08:00:00
    집행정지 제도의 운용에 관한 제언
  • 지난 6월 28일 미국 연방대법원은 ‘관련 법률이 애매하면 연방정부의 자체적 해석을 존중한다’는 쉐브론 원칙(Chevron Deference)을 폐지하는 취지의 결정을 내렸다. 쉐브론 원칙은 미국 대연방법원이 대기오염 규제 문제에 관한 미국의 정유기업인 쉐브론과 환경단체인 천연자원보호협회 간의 소송에서 행정청인 환경보호청의 법률 해석에 관해 “법률에 불명확한 용어나 표현이 포함되어 있어 의회의 입법 의도가 명확하지 않다면 법원은 이에 관해 직접 해석하는 것을 자제해야 하며, 행정청의 해석을 절대적으로 존중해야 한다”고 판시하면서 제시한 원칙이다. 행정청의 권한을 자칫 비대하게 만들수도 있지만, 사법부가 다른 권력기관인 입법부와 행정부를 존중해야 한다는 면에서 명분이 있다. 그리고 행정청의 해석을 존중하는 것은 국민의 법적 생활을 안정적으로 만드는 면도 있다. 쉐브론 원칙에서 말하는 ‘행정청의 해석’은 우리식으로 말하면 ‘유권해석’에 해당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유권해석은 권한 있는 국가 기관의 법령 해석을 의미하지만,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유권해석’이라는 말을 할 때 ‘행정청의 해석’을 떠올리며 말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가 실생활에서 바로 만나는, 그래서 우리의 실제 생활을 당장 맞춰야 하는 해석이 행정청의 유권해석이기 때문에 행정청의 유권해석은 매우 실질적인 규범력을 가진다. 그러므로 행정청은 법령해석의 실권자(實權者)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행정청의 행정해석은 결국 법원의 해석으로 실권(失權)하게 된다. 법령의 해석과 적용의 권한은 궁극적으로 법원에 전속된 권한이기 때문에 행정청의 유권해석은 언제든지 법원에 의해 변경될 수 있는 잠정적 해석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법원은 행정청의 유권해석을 언제든지 실권시킬 권한이 있지만 많은 경우에는 행정청의 유권해석을 존중한다. 미국 연방대법원이 쉐브론 원칙을 폐기하는 취지의 결정을 한 것 또한 행정청의 해석에 관한 절대적 존중을 폐지하자는 것이지 행정청의 해석을 존중하지 않겠다는 것은 아니라고 할 것이다. 이른바 휴일·연장근로수당 판결(대법원 2018. 6. 21. 선고 2011다112391 전원합의체 판결)을 보자. 이 사건은 근로자들이 휴일 근로 수당과 연장 근로 수당을 중복해 지급할 것을 청구한 사건이다. 관련 법령의 소관 행정청인 고용노동부는 연장 근로 시간에는 휴일 근로 시간이 포함되지 않는다는 해석을 원칙으로 하면서(근기 01254-19049, 1981.6.19., 근기 01254-11483, 1990.8.17. 등), 다만 휴일 8시간을 초과한 부분에 한해 휴일 근로 수당과 연장 근로 수당을 중복 지급해야 한다는 해석(근기 01254-1099, 1993.5.31.)을 오래도록 고수했다. 이 사건은 법원이 그 해석에 관해 어떻게 응답할 것인지가 문제된 사건이었다. 대법원의 다수의견은 “휴일 근로 시간이 1주간 기준 근로 시간 및 1주간 연장 근로 시간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것은 근로 관계 당사자들 사이에서 일종의 사회생활규범으로자리 잡았다고 평가할 수 있고, 이는 구 근로기준법상 관련 규정을 해석함에 있어서 중요하게 고려해야 한다”고 하면서 “이와 달리 해석하는 것은 근로관계 당사자들의 오랜 신뢰에 반하고 법적 혼란을 초래할 것으로 보여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이유는 고용노동부가 오랜 기간 일관되게 그렇게 해석해 산업 현장에 적용하여 왔고 노사 간에도 이러한 해석에 기초하여 근로 관계가 형성되었다는 것이다. 행정청의 유권해석에 의해 오래도록 관행이 형성 또는 강화되어 수범자가 이를 법이라고 여길 정도가 되면 단순히 행정해석이 아니라 법규범과 일체로서 규범력을 얻게 되었다고 보아야 할 경우도 있을 것이다. 어떤 해석 관행이 법문의 가능한 의미 범위 내에서 이뤄지고, 적용 영역의 제반사정에 비추어 그렇게 해석하는 합리적인 이유가 인정되며, 결국 수범자가 이를 규범으로서 받아들이고 행위하는 경우라면 법원으로서는 그 해석을 존중할 필요가 있다. 다만 그 존중의 전제는 정부에 대한 신뢰다. 행정청의 유권해석이 일반 국민의 법규범 생활을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만큼 정부는 법령을 둘러싼 제반 사정들을 잘 소화해 현실에 잘 적용되는 법령 해석을 만들어 내야 한다. 정부가 충분히 사려 깊고 실력이 있다는 신뢰가 없다면 존중도 없고 안정도 없을 것이며 혼란의 불이익은 국민 모두에게 돌아간다.
    2024.08.17 08:00:00
    행정청 유권해석의 실권(實權)과 실권(失權)에 관하여
  • 지난 달 헌법재판소로부터 매우 반가운 소식이 전해졌다. 필자가 속한 법무법인에서 수행한 헌법소원 사건에서 친족상도례를 규정한 형법 제328조 제1항에 대해 재판관 전원 일치 의견으로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린 것이다. 문제가 된 친족상도례 규정의 내용은 ‘직계혈족, 배우자, 동거친족, 동거가족 또는 그 배우자간’에서 일어난 재산 범죄(사기, 횡령·배임, 절도, 권리행사 방해 등)는 형을 면제한다는 것이다. ‘법은 문지방을 넘지 않는다’는 고대 로마의 법원칙에 기원을 둔 것이기도 하고 ‘집안의 일은 가장이 알아서 해결할 일’이라는 가부장적 정신의 유산이기도 하다. 이는 형법이 제정된 1953년부터 있었던 조항이다. 당시에는 위헌이라고 볼 여지가 거의 없었을 것이다. 가족은 하나의 경제공동체이기 때문에 그 안에서 처벌할 만한 재산범죄가 일어날 것이라고 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71년이 지난 지금은 가족의 개념은 너무나도 달라졌다. 부모와 자식 간이나 형제 간에 벌어지는 일들도 이제는 처벌되어야만 피해자에게도 그리고 사회구성원에게도 납득이 되는 그런 시대가 됐기 때문이다. 이보다 앞선 4월에는 유류분 조항이 헌재의 철퇴를 맞았다. 유류분 조항은 고인의 유언과 관계없이 유족들이 유산의 일정 부분을 상속받을 권리를 규정한 것이다. 유류분 조항은 민법이 1977년 12월 31일 개정되면서 처음 도입된 조항이다. 당시에는 해당 조항도 위헌이라고 보기 어려웠을 것이다. 가족의 재산을 일정 부분을 나눠 가져야 한다는 정신이 도전 받을 일은 많이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오히려 가족의 재산을 독점하려는 사람이 경계를 받을 필요가 더 많았을 것이다. 그런데 이제는 다르다. 고인에 대해서 아무런 법적 의무나 인간적 도리도 하지 않은 사람이 갑자기 나타나 ‘가족이라는 이유 만으로’ 그 재산의 일부를 받아가는 것이나, 형제·자매까지 그 재산의 일부를 받아가는 것이 이제는 납득되기 어려운 시대가 된 것이다. 요컨대 세상이 바뀌었고, 헌법에 부합하던 법들이 이제는 헌법에 어긋나게 됐다. 즉, 법은 한 번 정당성을 얻었다고 해서 영원히 정당한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우리의 삶이 변하는 만큼 법이 따라 변하지 않으면 법은 그 정당성을 잃을 수 있다. 법률가들은 때로는 법의 해석을 통해 법을 삶에 맞도록 조정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 해석의 범위를 넘어 법이 어긋나 있게 되면 입법을 통해 개정하거나 헌법재판소의 위헌 선언을 기다리게 될 수 있다. 법률가들의 사명 가운데 하나는 법이 우리 삶에 잘 어울리도록 해 법의 규율 안에 있는 당사자가 자신의 권리를 잃지 않게 하고 의무를 준수하게 하는 것에 있다. 정의를 위한 의지가 있다면 굳은 법 앞에서 주저앉을 필요가 없다. 과감하게 변호사의 손을 잡고 헌법재판소의 문을 과감히 두드리자. 바뀌어 가는 세상을 만들어 가는 우리 국민의 건전한 의식이 바로 헌법의 정신이다. 그 헌법의 정신을 법에 비추어 줄 책무는 바로 우리 국민에게 있다.
    2024.07.20 08:00:00
    법 위에 헌법, 헌법 위반 法을 바꾸는 방법
  • 국가나 지방자치단체 등 공공재정을 사용하는 것에 대해서 보조금이라는 말을 쓰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공공재정이 민간으로 투입되었다고 모두 보조금은 아니고 보조금인지 아닌지에 따라서 그 돈의 성격, 관리와 처리, 그리고 그에 대한 책임이 모두 달라지기 때문에 용어 사용을 주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공공기관으로부터 돈을 받고 공공기관 청사를 경비하는 용역을 제공한다면 그때 받는 돈은 보조금이 아니라 용역 대금입니다. 반면 국가의 청년 채용 장려 정책에 부응해서 청년을 채용하고 그 급여의 일부를 국가 등 공공기관으로부터 받는 것은 보조금입니다. 무엇이 다른 걸까요? 쉽게 정리하면 용역 대금은 공공기관의 일에 대해서 용역을 제공해주고 받는 돈이고, 보조금은 공공기관의 일이 아닌 것에 대하여 대가성 없이 ‘공짜로 받는 돈’입니다. 조금 헷갈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공공정보를 사용하는 앱 개발을 하면 돈을 준다는 공고를 보고 앱 개발에 참여해 돈을 받았다면 이건 용역 대금일까요 아니면 보조금일까요. 그 앱이 해당 공공기관의 수요에 쓰이는 것이라서 바로 그 공공기관에 ‘납품’하는 것이라면 용역 대금이고, 그저 그 앱을 개발했다는 이유만으로 돈을 주는 것이라면 보조금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즉, 보조금은 국가나 지방자치단체 등 공공기관의 일은 아니지만 그 정책적 목표에 부합하는 일들을 하도록 지원하거나 응원하기 위해 대가 없이 주는 돈입니다(헌법재판소 2013. 7. 25. 선고 2015헌바168 결정 참조). 그에 비해 용역 대금 등 다른 돈들은 대개 어떤 것에 대한 대가로 지급되는 돈이지요. 보조금과 보조금이 아닌 것의 구별을 제가 강조하는 이유는 보조금과 보조금 아닌 것이 잘 분간되지 않고 관리되거나 조사가 되거나 수사로 이르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용역에 해당하는 것에 대해서 보조금이라고 보아 과세하거나 보조금법 위반을 혐의로 삼아 문제 삼는 일도 있습니다. 실제 사례로 용역 대금의 일부로 구성되어 지급되는 산업안전보건관리비를 부정하게 사용한 것에 대하여 보조금법 위반을 적용하려고 하는 수사기관에 그것이 아니라는 점을 설명하느라 애를 먹은 일도 있습니다. 그런데 보조금의 개념을 명확히 하는 것이 더욱 중요한 이유는 보조금을 ‘대가없이 받는 돈’이라고 해서 ‘눈먼 돈’처럼 보아서는 안된다는 점에 있습니다. 보조금은 ‘여러 개의 눈으로 부릅뜨고 지켜보고 있는 돈’이라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보조금은 국가보조금법, 지방보조금법상의 엄격한 규율을 받게 될 뿐만 아니라, ‘용도가 엄격히 제한된 금원’에 해당하여 ‘국가 등 교부주체를 위해 보관하는 금원’의 성질을 갖습니다. 따라서 보조금을 잘못 썼다가는 보조금법 위반의 죄책을 질 뿐 아니라 횡령죄의 피고인이 될 수도 있다는 점, 보조금은 받은 목적대로 엄격하게 써야한다는 점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2024.06.22 08:00:00
    보조금은 공짜가 아닙니다
  • A는 방위사업청과 민·군 겸용 핵심 구성품을 연구·개발·공급하는 내용의 협약을 체결하고, 내용에 따라 사업을 진행했다. 그런데 사업을 진행하던 중 당초 예상보다 초과 비용이 크게 발생해서 곤란을 겪게 됐다. 다행히도 애초의 협약에 초과 비용이 발생할 경우 이를 보전해준다는 내용이 있었기에 A는 방위사업청에 ‘초과비용을 보전해달라’는 요청을 했다. 하지만 방위사업청은 보전해줄 수 있는 초과 비용이 아니라는 입장을 회신했다. A가 주장하는 초과 비용은 100억이 넘는 규모였다. 때문에 A로서는 난감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결국 초과 비용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하게 됐다. 문제는 ‘어느 법원에 소송을 제기해야 하는지’였다. 초과 비용 청구가 민사적 청구라면 민사소송이므로 민사법원에 소를 제기하면 된다. 하지만 공법상의 청구라면 행정소송이므로 행정법원(행정소송을 관할하는 법원)에 소를 제기해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소가 부적법하게 된다. 실제로 해당 사안에서 A는 2014년 초 서울중앙지방법원에 민사소송으로 소를 제기했다. 이 판단은 잘못되었을까? 그렇게만 보기는 어려운 점이 있다. 판례는 민간이 공공주체와 사적자치의 원칙에 따라 체결하는 공공계약에 관한 분쟁을 ‘민사소송의 대상’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대법원 2001. 12. 11. 선고 2001다33604 판결 참조). A는 공공주체와의 계약에 따라 ‘초과비용을 보전해주기로 한 합의’를 근거로 소송을 제기하는 것이라고 보았으니 민사소송으로 청구하겠다 판단한 것에는 큰 잘못이 없다. 실제로 1심에서는 A가 승소하기도 다. 그런데 항소심부터 문제가 이상하게 꼬이기 시작했다. 항소심 법원에서는 해당 계약이 사법상 계약이 아니라 ‘공법상의 법률 관계’에 해당하니 행정소송으로 제기해야 한다고 한 것이다. 협약이 공공계약이 아니라 국가연구개발사업규정에 근거한 출연금 협약이고, 출연금을 증액하는 것은 행정청의 승인을 요하는 행정권한의 행사이기 때문에 법률관계는 ‘사적 자치’에 따라 ‘자율적으로 합의’할 수 있는 ‘사법상 계약’의 영역이 아닌 ‘행정처분이나 공법상의 규정 등에 따라 법률 관계가 정해지는’ ‘공법상 법률관계’의 영역에 있는 것이라는 것이다. 이 같이 행정소송 대상이 되는 분쟁이 민사소송으로 제기되는 경우 어떤 문제가 발생할까? 법원 관할상 서울 관내의 지방법원들은 행정소송을 할 수가 없고, 서울행정법원에서만 행정소송을 할 수 있다. 1심이 서울행정법원이 아닌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이루어졌으니 결국 ‘1심 재판이 재판할 수 없는 법원에서 이루어진 경우’ 즉 관할권 위반이 발생한 결과가 됐다. 이 경우 법원은 소송을 ‘관할법원으로 이송’하게 된다. 즉 1심과 항소심을 거치고 나서 다시 1심으로 돌아오게 됐다는 말인데, 문제는 그 이송이 소를 제기한 지 4년 만인 2018년에야 이뤄졌다는 것이다. A는 서울행정법원에서 다시 판단을 받게 되었으나 결국 2019년 말에 패소하고 모든 사건을 마무리하게 됐다. 이 같이 행정과 관련된 소송은 ‘어떤 법원을 선택하느냐’의 문제부터 복잡한 일이 발생한다. 물론 법원은 위와 같이 법원을 잘못 선택한 경우에 ‘이송’을 결정할 있지만, 렇게 이송이 결정되고 새로운 판단을 받기까지 당사자로서는 분쟁 해결이 지연되는 결과만 될 우려가 발생한다. 당초 서울지방법원에서도 관할에 관해 잘못 판단할 정도로 관할에 관한 판단이 어려운 것이라는 점에서 개선이 필요한 부분이라고 생각된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일반적으로 공공계약에 관한 청구도 일반 민사법원이 아니라 행정법원의 관할로 포섭하는 것도 검토할만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어려운 문제들이 있기 때문에 문제를 삼으려는 분쟁이 행정과 관련된 것이라면 그것이 어떤 법적 성격을 가진 것인지에 대해서 신중하게 법률적 검토를 거친 후에 유효하고 적절한 전략을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2024.05.25 08:00:00
    대체 어느 법원에 가야 합니까
  • 일단 법이 무엇인지부터 알아보자. 법의 본질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우리를 실제로 구속하는 법률이 대체 무엇인지 알아보자는 것이다. 법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이 보통 ‘법’이라고 부르는 것의 범위는 너무도 넓다. 국회에서 만든 법률 말고도, 시행령, 시행규칙, 조례와 규칙, 고시, 예규, 훈령, 지침, 규정, 운용요령 등까지도 ‘법’이라는 말로 통칭된다. 이유는 그곳에 기재된 내용에 따라서 우리가 무언가 제약을 받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글을 읽은 독자들은 최소한 ‘법규적 효력’이 있는 것만을 법이라고 불러주기를 바란다. 법규적 효력이 있다는 말은 그 법의 규율 대상이 되는 국민에게 효력이 있다는 말이다. 이를 대외적 효력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한편으로 우리가 법이라고 부른 것 중에는 국민에게는 효력이 없고 정부 소속 공무원들이 업무를 추진할 때 지켜야 하는 내부적 기준으로만 효력이 있는 것도 있다. 이를 대내적 효력이라고 부른다. 그러므로 법의 가장 큰 특징을 국민 모두에게 강제력이 있다는 것으로 포착한다면, 법규적 효력이 있는 것만을 법이라고 할 수 있다. ‘법률’은 국회에서 만든다. 그런데 국회에서 세상만사 모든 일을 다 알기도 어렵고 안다고 해도 변화무쌍한 일을 모두 미리 다 예상해서 규율하기 어렵기 때문에 구체적인 내용은 정부가 정하도록 위임한다. 정부는 이렇게 위임된 사항과 그 법을 집행하기 위한 사항을 담아 법규명령(대통령령, 총리령·부령)을 제정한다. 법규명령은 보통 법명 옆에 시행령 또는 시행규칙이라는 이름을 붙인다. 그리고 법률과 법규명령을 합하여 ‘법령’이라고 부른다. 여기까지는 법률에서 위임받은 사항과 그 법률을 집행하는 범위 내에서 법규적 효력이 있다고 볼 수 있다. 한편으로 지방자치단체에서 제정하는 자치법규인 조례와 규칙은 그 지역적 범위에서 법규적 효력이 있다. 이외의 것은 어떤가. 원칙적으로 정부가 스스로 제정한 그 밖의 규정들은 ‘행정규칙’이라고 통칭할 수 있다. 행정규칙은 원칙적으로 법규적 효력이 없다. 해당 업무를 수행하는 공무원들에게만 적용되는 기준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다만, 그것이 법령을 통해 위임한 범위 내에서 법규적 효력을 갖는 경우가 예외적으로 있을 뿐이다(법령보충적 행정규칙). 그렇기 때문에 행정규칙을 법이라고 부르려면 적어도 그 행정규칙의 내용과 관련된 법령과 자치법규에서 정부에 그런 내용을 별도로 제정할 권한을 주었는지까지 확인해야 한다. 이같이 법을 분별하는 시선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바로 그 지점에서 행정권력이 정당하게 행사되고 있는지를 점검하고, 행정분쟁에서 이길 수 있는 가능성을 구체적으로 분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례를 들어보자. KS인증 제도의 근거가 되는 산업표준화법은 KS인증을 받은 제품에 대한 시판품조사를 할 수 있는 근거 규정을 제20조에서 두고 있다. 앞서 말한 대로 그 구체적인 내용은 국회에서 직접 정하기 어려우니 ‘대통령령’으로 구체적인 사항을 정하라고 위임했다. 그래서 산업표준화법 시행령 제27조에서는 시판품조사를 ‘판매되는 제품 중에서 시료를 채취’하여 하라고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예전에는, 갑자기 산업표준화법 시행령에서 아무런 ‘위임’을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동법 시행규칙에서 ‘판매되는 제품’에서 시료를 채취하지 않고도 ‘서류의 비교분석’을 통해서 시판품조사를 할 수 있도록 하는 규정이 둔 적이 있다. 이는 위임받은 범위를 넘어서기 때문에 법규적 효력을 인정받을 수 없다. 법원에서도 그 시행규칙의 규정은 효력이 없다고 판단해 시판품조사의 결과로 내려진 행정처분을 취소한 사례가 있다. 예전에 주택법 시행령 제55조의4에 관련해서 제정된 국토교통부 고시 제2013-356호 주택관리업자 및 사업자 선정지침 제19조 제1항에 의하면 ‘사업종류별로 해당 법령에 따른 면허 및 등록 등을 마치지 아니한 자는 경쟁입찰에 참가할 수 없으며, 입찰에 참가한 경우에는 그 입찰을 무효로 한다’는 규정이 있었다. 위 고시에 따르면 ‘법령에 따른 면허 및 등록 등을 마치지 아니한 자’여서 입찰에 참가할 수 없는 자가 그 입찰에 따른 계약의 효력을 주장하는 사례에서, 법원은 위 고시는 ‘행정규칙으로서 법규적 효력이 있다고 보기 어려우므로’ 그 계약의 효력을 부인할 수 없다고 판단하기도 했다. 이제 ‘법이 그렇단다’라고 막연히 이야기하지 말자. 무엇이 법이고 무엇이 법이 아닌지를 잘 따져보는 야무진 시민이 되어야 권리도 지키고 국가의 법치행정도 발전하게 할 수 있다.
    2024.04.28 08:00:00
    법은 무엇인가  
  • 법은 원래 어렵다. 그런데 지금은 법이 어려운 정도를 넘는다. 법원은 ‘법에 대한 무지는 용서받지 못한다’고 하지만 실상은 법을 아는 사람이 유별난 존재가 되는 지경이다.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가장 큰 요인은 법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지난 4일을 기준으로 현행 법령의 수가 5303개에 이른다. 법령의 효력이 있는 행정규칙이나 자치법규까지 합치면 그 수를 헤아리는 것 자체가 곤란할 정도다. 법은 최소한의 윤리라는 격언을 생각해 보면, 이렇게 법이 많고 어려운 상황이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걸 어떻게 ‘최소’라고 할 수 있을까. 하지만 한편으로는 수많은 법령이 없이 안전하게 현 시대를 살기가 어렵기도 하다. 수많은 법령은 우리 사회의 안정과 국민의 생명과 안전, 거래의 질서와 같이 우리가 인간으로서의 존엄한 삶을 영위하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법령의 수가 많아진 이유는 어쩌면 그 최소한의 요구를 충족시키는 것 자체가 어려운 일이 된 탓일 수도 있다. 문제는 법이 국민을 지켜주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국민을 무언가로 강제할 수 있다는 점이다. ‘법 없이도 살 사람’이라는 말은 이제 통하기 어렵다. 법을 알아야만 아무런 문제 없이 온전한 삶을 유지할 수 있고, 법을 모른다는 변명은 대개 통하지 않기 때문이다. 예컨대 애견을 동반할 수 있는 식당을 운영하는 것이 불법이라는 점을 쉽게 알 수 있는가, 또 내가 소유한 땅에 건물도 아닌 가설물을 하나 두는 게 법에 어긋날 수도 있다는 점은 어떤가. 법을 어기는 일은 너무도 쉽다. 어떤 사람은 그 부분을 몰라 투자금을 날리기도 하고 감당할 없는 행정제재를 받기도 한다. 새로운 사업을 추진하려고 할 때 이와 관련된 기존 법령들을 알지 못하면 준비에 많은 노력과 비용만 들이게 된다. 그럼에도 때로는 낭패를 볼 수도 있고 최악의 경우에는 형사 처벌까지 받기도 한다. 우리 사회를 바꿔나갈 혁신의 노력이 기존 행정법령에 대한 이해가 적거나 이후 입법 추진에 대한 기대를 잘못해 무너지는 사례도 너무나 많다. 법은 원래도 어렵고, 이제는 더욱 어려워졌다. 하지만 반드시 알아야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앞서 언급한 법령과 규범들의 대부분은 행정법에 속하는 것이다. ‘행정법 파보기’에서는 앞으로 행정법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흥미로운 사례를 들어서 ‘법알못’을 위한 ‘법잘알’ 컨설팅을 해 나아가 보고자 한다.
    2024.03.30 08:00:00
    ‘법알못’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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