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78
  • 중대재해처벌법(중처법)은 기업이 영위하는 사업에 관하여 대표이사 등 경영책임자가 취하여야 하는 경영상, 관리상의 조치를 정하고 있다. 즉, 기업의 안전보건관리체계를 위하여 인력을 충원하거나 예산의 증액, 조직의 개편, 절차·규정·매뉴얼 등의 제·개정 등을 시행하는 것이 중처법에서 정한 의무 내용이다. 이는 현장에서 이행하여야 하는 안전보건조치와는 구분된다. 예컨대 현장의 안전설비가 설치되어 잘 작동 중인지를 확인하는 것은 현장책임자의 몫이고, 경영책임자는 현장에서 안전설비를 잘 구비할 수 있도록 관련 예산을 편성해주는게 그의 일이다. 이처럼 중처법에 따른 의무가 현장에서 취하여야 하는 직접적·구체적인 안전보건조치의무와 구분됨에도 양자를 혼동하는 경우가 종종 발견된다. 대표적인 것이 위험성평가다. 산업안전보건법상 위험성평가는 산업현장에서 해당 현장의 책임자(안전보건관리책임자 또는 안전보건총괄책임자)의 총괄 관리 하에 실시되는 것임에도, 중처법 위반 사건에서 사고의 원인이 된 유해·위험요인이 위험성평가표에 없으면 곧바로 위험성평가 절차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것으로 평가되는 사례가 종종 있다. 현장에서 위험성평가를 다소 미흡하게 실시하였다고 하여 경영책임자가 위험성평가 절차 자체를 제대로 만들지 않았다고 볼 수는 없음에도 말이다. 올해 선고된 중처법 위반 판결 중에는 위와 같은 점을 정확히 지적한 판결이 있다. 춘천지방법원 영월지원은 D공사의 광업소에서 죽탄(물과 석탄이 섞여 반죽의 형태가 된 상태)에 매몰되어 근로자가 사망한 사건에서 D공사의 경영책임자 등에게 무죄를 선고하며, 중처법에 따른 의무가 현장의 직접적·구체적인 안전보건조치의무와는 구분된다는 점을 명시하였다. 그러면서 위 판결은 중대재해처벌법상의 의무가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른 현장의 직접적인 안전보건조치의무와 달리 경영책임자가 안전보건관리체계를 구축하고 재해재발방지 대책, 매뉴얼 등을 수립하는 등 중대재해가 일어나지 않도록 인적·물적·제도적 시스템을 마련하고 그 시스템이 잘 운영되는지를 점검하는 의무라고 판단하였다. 즉, 경영책임자가 위험성평가 절차를 수립하여 운영하면서 정기적으로 그 작동 상황을 점검하고 미비점을 개선하였다면, 설령 해당 절차에서 지적되었던 유해·위험요인이 실현되어 중대재해가 발생하였어도 경영책임자가 위험성평가 절차를 마련하고 점검하지 않았기 때문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중처법에 따른 의무의 내용과 취지를 정확히 짚은 대목으로 보인다.
     중대재해처벌법에 따른 의무는 현장의 의무와 구분돼야
    by 김동현
    2025.12.06 11:00:00
  • 유럽연합(EU)의 ‘포장 및 포장폐기물 규정’(PPWR)이 2026년 8월 12일부터 본격 시행된다. 이번 규정은 ‘유럽 그린딜’(European Green Deal)과 ‘순환경제 행동계획’(CEAP)에 따라 2025년 2월 11일 발효되었으며, 기존의 지침(PPWD)을 대체하는 EU 단일 규정이다. PPWR은 EU 시장에 유통되는 모든 포장재가 재사용・재활용 가능하도록 설계될 것을 요구하며, 포장 최소화, 재사용 시스템 확대, 재활용성 등급제 도입, 재활용 플라스틱 의무 사용 등을 핵심 의무로 담고 있다. 포장재는 제품 보호와 물류 과정에서 필수적인 요소다. 포장 제조업은 EU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상당한데, 2018년 EU 포장 제조업의 매출은 이미 3550억 유로(약 530조 원)에 이르렀다. 하지만 포장재 사용이 급증하면서 환경 부담도 빠르게 확대되었다. EU 집행위원회(EC)가 PPWR 제정을 위해 작성한 2022년 입법영향평가보고서는 포장 분야의 구조적 문제로 ① 포장폐기물의 지속적 증가, ② 재활용을 저해하는 비표준화된 설계・라벨링, ③ 재활용 품질 저하와 낮은 재활용원료 사용률을 지적하며, 이러한 구조적 한계가 자원 낭비와 환경 오염을 심화시키고 있다고 평가한다. 실제로 2023년 EU의 1인당 포장폐기물은 177.8㎏이고, 포장재는 EU 전체 플라스틱 사용량의 약 40%를 차지한다. 또한 EC의 보고서는 포장 시스템의 전체 환경 영향을 분석하면서, 포장재로 인해 발생하는 온실가스 배출량이 헝가리 전체의 연간 배출량과 유사한 규모에 달한다는 점도 지적한다. 즉, 폐기물 증가와 재활용 구조의 비효율성에 탄소 배출 부담까지 더해지며, EU는 포장 분야의 전면적이고 통합적인 규제 개편이 불가피하다고 판단하게 되었다. 사실 EU는 이미 1994년 제정된 ‘포장 및 포장폐기물 지침’(PPWD)을 통해 포장재의 구성 제한, 재사용・재활용 가능성, 특정 물질 사용 제한 등 기본 요건을 규율해 왔다. 그러나 지침(Directive)은 회원국이 각자 국내법으로 전환하는 방식이어서 국가별로 해석과 적용 기준이 달라지고, EU 시장 전역에서 통일된 규제가 작동하지 않는 문제가 발생했다. 포장재는 생산부터 유통・폐기까지 국경을 넘나드는 초국경적 제품이기 때문에, 이러한 불일치는 내부시장 기능을 약화시키는 ‘규제 실패’로 평가되었다. 이번에 PPWR을 EU 전체 회원국에 통일적으로 적용되는 단일 규정(Regulation) 형태로 제정한 것도 이러한 배경에서다. PPWR은 산업・상업・가정 등 모든 분야의 포장재에 적용되며, 화장품・식품・생활용품과 같은 소비재뿐 아니라 전자・기계 부품 등 B2B 포장재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EU 시장에 제품을 공급하는 한국 기업은 이제 포장 최소화 기준, 재사용・재활용성 설계, 재활용 플라스틱 사용 의무 등을 점검하고, 적합성 선언서(DoC)와 기술문서(TD)를 준비해야 한다. 또한 재활용성 등급, 분리배출 라벨링 등 나머지 요건도 함께 검토할 필요가 있다. PPWR은 단순한 환경 규제가 아니라, 기업의 포장 전략 전반을 재구성하는 제도적 전환에 가깝다. 한국 기업들은 공급망을 아우르는 포장재 정보를 체계적으로 수집・파악하고, 포장 감축 및 재설계 가능성을 검토하며, 재활용성 중심의 디자인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 이는 규제 대응을 넘어, 글로벌 순환경제 체제에서의 새로운 경쟁력 확보로 이어질 수 있다.
    EU의 PPWR과 포장재의 미래
    by 민창욱
    2025.12.06 09:00:00
  • 최근 몇 년 사이 상장회사를 둘러싼 경영권 분쟁이 급증하면서, 상장회사의 자금 운용 방식은 주주행동주의와 경영권 분쟁 상대 세력으로부터 정밀한 감시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럼에도 상장 직후나 상장사 인수 직후 자주 목격하는 장면은 비슷하다. “상장으로 회사 신용도도 좋아졌으니, 그룹 전체 자금을 좀 더 효율적으로 돌려보자.” 이러한 의사결정은 겉으로는 효율적인 자금 운용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비상장 계열사나 오너 일가의 자금난을 상장회사 재원으로 메우려는 시도가 섞여 있는 경우가 많다. 이번 칼럼에서 다루는 상법 제542조의9, 상장회사의 신용공여 금지 규정은 이러한 유혹에 대해 법이 얼마나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조항이다. 상장과 동시에 시작되는 ‘돈줄 규제’ 상법 제542조의9는 상장회사가 주요주주, 이사·집행임원, 감사 및 그 특수관계인에게 자금을 대여하거나, 그 채무를 보증하거나, 자금 지원성 증권을 인수하는 등 신용공여를 원칙적으로 금지한다. 이를 위반하여 신용공여를 승인하거나 집행한 이사 등은 5년 이하 징역 또는 2억 원 이하 벌금에 처해질 수 있고, 회사도 양벌규정에 따라 함께 처벌된다. 단순히 의혹이 제기되는 거래 수준을 넘어 곧바로 형사책임으로 이어질 수 있는 행위다. 외부감사인 역시 외부감사법에 따라 이러한 부정행위를 인지하면 금융감독원 등에 보고할 의무를 진다. 이 규정은 상장회사 내부의 거버넌스 차원을 넘어, 형사책임·외부감사·공시의무가 동시에 연동되는 고위험 규정으로 기능한다. 한 번 잘못 판단하여 거래를 실행하면 사후적으로 되돌리기 어렵다는 점에서, 상장 직후 또는 상장사 인수 직후 특히 치명적이다. 신용공여 금지 - 단순히 대여만 막는 조항이 아니다 실무에서 가장 흔한 오해는 “대표이사나 대주주 개인 앞으로 대여만 안 받으면 되는 것 아니냐”는 인식이다. 그러나 법이 말하는 신용공여의 범위는 훨씬 넓다. 우선 금전·재산의 대여가 있다. 이는 명시적인 대여금 계약뿐 아니라, 반복적·장기적인 가지급금, 비정상적인 외상 거래 등 실질적으로 자금을 빌려주는 효과를 가지는 거래 전반을 포괄한다. 다음으로 채무이행 보증 및 담보 제공이 있다. 계열회사 대출에 상장사가 연대보증을 서거나, 상장사 명의 부동산·예금에 담보를 설정해 주는 경우가 전형적이다. 여기에 재무상태가 악화된 계열사 발행 신주·회사채·전환사채를 사실상 구제금융 성격으로 인수하는 자금 지원성 증권 매입, 이해관계자의 채무를 보완하기 위한 출자 이행 약정·자금보충약정 등도 모두 신용공여로 평가될 수 있다. 형식이 복잡한 파생상품 거래라고 해서 예외가 되는 것도 아니다. 예컨대 특수관계자가 보유한 자산을 상장사가 매입하면서 일정 기간 후 원금과 고정 수익을 더해 다시 되사는 구조(총수익스왑(TRS) 등)는 명목상 자산 거래지만, 실질은 “이자를 붙여 돈을 빌려주는 거래”에 가깝다. 결국 요지는 간명하다. 상대방이 채무불이행에 빠질 경우 그 손실을 상장사가 떠안는 구조라면, 형식이 어떻든 신용공여로 간주될 수 있다는 점이다. 누가 금지 대상인가 - ‘특수관계인 지도’부터 그려라 상법이 정한 금지 상대방의 범위는 생각보다 넓다. 이 규정은 우선 주요주주 및 그 특수관계인을 금지 대상으로 삼는다. 주요주주는 통상 의결권 있는 주식 10% 이상 보유자를 의미하지만, 그에 미치지 못하더라도 회사의 주요 경영 사항에 사실상 영향력을 행사하는 경우 역시 포함될 수 있다. 이른바 실질 지배주주 개념이다. 개인 주요주주의 배우자, 6촌 이내 혈족, 4촌 이내 인척뿐 아니라, 이들이 30% 이상 출자하거나 지배력을 행사하는 법인, 그리고 그 법인의 임원까지 모두 특수관계인이 된다. 여기에 법인 주요주주와 그 계열회사 및 임원까지 더해지면, 상장사 기준에서 보면 사실상 그룹 전체 지도가 신용공여 규제의 검토 대상 안에 들어온다고 보아야 한다. 따라서 이사회·재무팀·법무팀이 공통으로 가져야 할 첫 번째 작업은 “그룹 지분 구조도 + 오너 일가 가족관계도”를 상시 업데이트해 두는 것이다. 이 기반 없이 신용공여 규정 준수 여부를 논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예외는 있다 - 그러나 ‘경영상 필요’는 좁게 본다 그렇다고 상장사가 이해관계자에게 어떠한 신용도 제공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상법은 세 가지 예외를 두고 있다. 첫째, 학자금·주택자금·의료비 등 임원 복리후생 목적의 금전대여다. 1인당 3억 원 한도 내에서만 허용되며, 용도·절차가 내부 규정에 따라 공정하게 운영돼야 한다. 둘째, 다른 법령에서 명시적으로 허용하는 신용공여다. 자본시장법이 허용하는 일정 범위의 임원 신용공여 등이 여기에 속한다. 셋째이자 핵심 예외가 “상장회사의 경영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필요하고, 상장회사의 경영건전성을 해칠 우려가 없는 신용공여”다. 계열사 간 시너지 창출, 사업 구조 재편 등 현실을 감안한 조항이지만 실제 적용 범위는 상당히 좁다. 이 예외를 주장하려면 적어도 네 가지 질문에 모두 “예”라고 답할 수 있어야 한다. 그 거래가 오너가 아니라 상장회사 자신의 사업 목적 달성에 명백히 기여하는지, 신용공여의 상대방이 자연인이 아닌 법인 형태의 주요주주 또는 그 특수관계 법인인지, 상법 제398조에 따른 자기거래 승인 절차(이사회 사전 승인, 이해관계 이사 의결권 배제 등)를 빠짐없이 거쳤는지, 지원 규모와 조건을 감안할 때 상장회사의 재무 건전성을 해칠 우려가 없다는 점을 입증할 수 있는지가 그것이다. 이 중 어느 하나라도 자신 있게 설명하지 못한다면, “경영상 필요”라는 말은 법정에서 설득력을 갖기 어렵다. 실제 사례 : 만도–한라 사건의 함의 이 규정이 단순 이론에 머무르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주는 대표 사례가 이른바 만도–한라 사건이다. 2013년 한라건설은 대규모 제3자 배정 유상증자를 실시했고, 상장사 만도는 직접 참여하지 않고 자회사 마이스터에 출자한 뒤, 마이스터가 그 자금으로 한라건설 신주 대부분을 인수하는 구조를 택했다. 경제개혁연대는 이를 상장사 만도가 자회사를 우회해 그룹 지배회사 한라건설을 지원한 것이라고 보고, 상법상 신용공여 금지 및 계열사 부당지원 혐의로 고발했다. 검찰은 이 거래가 원칙적으로 자금 지원성 증권 매입에 해당하는 신용공여라는 점은 인정하면서도, 한라건설 지분 가치 상승 가능성, 그룹 재무 안정, 만도의 장기 성장 동력 유지 등을 이유로 상법 제542조의9 제2항 제3호의 ‘경영상 필요 거래’에 해당한다고 보아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 반면 경제개혁연대는 “이러한 논리라면 거의 모든 부실 계열사 지원이 ‘경영상 필요’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될 수 있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이 사건은 그룹 전체의 추상적 이익과 상장회사 자신에게 귀속되는 구체적 이익을 어떻게 구별할 것인지, 그리고 신용공여 예외를 어디까지 인정할 것인지에 관한 어려운 질문을 남겼다. 신규 상장·상장사 인수 직후, 반드시 거쳐야 할 점검 신규 상장 직후나 상장사 인수 직후 1~2년은 그룹 전체 자금 구조를 다시 짜는 시기다. 바로 이때 “한 번쯤은 괜찮겠지”라는 가벼운 판단이 수년 뒤 형사 고발과 경영권 분쟁으로 되돌아오는 경우를 실무에서 자주 목격한다. 따라서 경영진은 최소한 다음을 점검해야 한다. 이 거래가 신용공여에 해당하는지, 상대방이 주요주주·임원·특수관계인에 속하는지, 예외 사유를 주장한다면 이를 문서와 수치로 입증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 설령 상법상 허용 범위 안에 있다 하더라도 업무상 배임, 공정거래법상 부당지원, 자본시장법상 공시 의무 위반 가능성은 없는지 별도로 검토했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상장사의 돈은 내 돈이 아니다” 요약하면 상법 제542조의9는 상장회사 자금이 더 이상 오너 개인의 지갑이 아니라, 불특정 다수 주주와 채권자의 신뢰가 집적된 공적 자금이라는 점을 법적으로 확인하는 조항이다. 신규 상장이나 상장사 인수 이후 “가족 회사 이자 몇 달만 대신 내주자”, “지분 구조가 복잡하니 우리 쪽 페이퍼컴퍼니로 한 번 돌려놓자”는 식의 사소해 보이는 결정이 향후 형사처벌·상장적격성 실질심사·경영권 분쟁의 직접적인 기폭제가 될 수 있다. 상장회사 경영자가 기억해야 할 문장은 결국 하나다. “상장사의 돈은 내 돈이 아니다. ‘경영상 필요’라는 말은 내 입이 아니라, 법원과 검찰을 설득할 때 비로소 의미를 가진다.” 좋아 보이는 딜보다 분쟁과 제재로부터 자유로운 딜을 선택하는 것, 상법 제542조의9를 정확히 이해하고 전제한 자금 구조 설계가 신규 상장·상장사 인수 이후 경영자가 가장 먼저 수행해야 할 진정한 거버넌스 작업이다.
    신규 상장 또는 상장사 인수 후, 주요주주·계열사 등 특수관계인에 대한 자금 지원은 원칙적으로 금지된다
    by 최승환
    2025.11.22 09:00:00
  • 노사관계에 있어 사용자가 노조에 대해 의견을 표명한 것이 지배·개입에 의한 부당노동행위로 문제되어 노동청이나 검찰에 고소·고발되는 사례가 매우 빈번하게 발생한다. 사용자 역시 헌법상 의견 표명의 자유를 가진다. 그러나 근로자의 근로조건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용자 측의 비판적 의견 표명은 노조 활동에 큰 영향을 미치므로 법적 분쟁으로 이어지기 쉽다. 회사의 평판 훼손 등 예기치 못한 결과를 방지하기 위해, 정당한 의견 표명 시에도 법적 분쟁을 피할 수 있도록 다음의 사항을 유의해야 한다. 사용자의 의견 표명이 부당노동행위로 인정되는 가장 대표적인 유형은 징계, 급여 삭감 등 불이익 조치를 언급하거나 암시하는 경우이다. 법원은 ‘노조 설립 시 재정 지원 중단 및 구조조정 가능성 언급’, ‘분쟁 야기 시 전 직원 사표를 받고 공개 채용으로 재충원하겠다는 발언’ 등 직접적으로 불이익 조치를 언급하거나 암시하는 발언에 대해 지배·개입에 의한 부당노동행위를 인정하고 있다. 노조 활동에 비판적 견해를 표명할 상황이라도, 불이익한 조치를 언급하는 표현은 사용하지 않도록 각별히 유의해야 한다. 노조원뿐만 아니라 비노조원까지 포함하는 전 직원 대상의 연말 훈시, 교육 설명회, 이메일 등을 통한 노조 관련 의견 표명도 지배·개입으로 문제될 수 있다. 다수의 직원을 대상으로 한 발언 중 노조에 대한 비판적 의견 표명은 노조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심어 비노조원의 신규 가입을 저해하거나, 교섭에서 회사에 유리한 입지를 확보하려는 의도가 있다고 수사 기관이 판단할 수 있다. 전 직원을 상대하는 의사표명 시에도 지배·개입 문제가 생길 수 있음을 인식하고 매우 조심스럽게 커뮤니케이션해야 한다. 법원은 사용자의 특정 발언 자체에 국한하지 않고 해당 발언이 행해진 시기의 노사관계, 단체협약 교섭 과정, 과거 유사 발언 여부 등 노사관계 전반을 종합적으로 판단한다. 특히, 중요한 노사 관련 일정을 앞둔 시점(예: 쟁의행위 찬반투표 직전)의 사용자 측 발언은 노조에 대한 협상력·영향력 강화 목적으로 이뤄졌다고 볼 가능성이 높다. 분쟁이 잦거나 중요한 일정을 앞둔 시기에는 의견 표명의 수위를 신중하게 조절해야 한다. 명시적으로 노조를 비난하는 발언(‘태어나지 말아야 할 노동조합’)은 당연히 부당노동행위로 인정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직접적인 비방이 없더라도, 오해의 소지가 다분한 표현을 사용했을 때 그 전후 사정을 고려하여 부당노동행위가 문제되는 경우가 있다. 예컨대, 하급심 판결 중 사용자가 교육 자리에서 예시를 들며 일에 대한 긍정적인 태도를 의미하는 용어로 ‘MOJO’를 사용하고, 그 반대어로 ‘No Enjoy’를 줄인 ‘NOJO’라는 표현을 사용했는데, 노동조합측에서 사용자의 이러한 어휘 사용이 노동조합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심어주려는 의도가 있다고 보고 부당노동행위를 문제 삼은 사례가 있다. 해당 사례에서 비록 관련 부분의 부당노동행위가 인정이 되지 않았으나 오해를 살 수 있는 표현을 사용하여 법적 분쟁에 휘말리게 되면, 비록 지배·개입의 의사가 부정되더라도 관계 악화, 법적 비용 발생, 평판 저하 등의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불필요한 오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표현 선택에 유의해야 한다. 부당노동행위 입증 책임은 원칙적으로 노조에 있지만, 실무에서는 사용자 측이 지배·개입의 의도가 없다는 구체적인 입증 자료를 제출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일상 업무의 일환이거나 정당한 권리 보전을 위한 발언이라도, 수사 당국은 특정 의도를 의심할 수 있다. 이때 사용자는 지배·개입의 의도가 없음을 입증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된다. 따라서 회사가 정당한 필요에 의해 의견 표명을 한 것임을 입증할 수 있는 자료를 평소에 구비하여 예상치 못한 법적 결과를 피해야 한다. 위와 같은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더라도, 노사관계를 담당하는 임직원들의 노동조합에 대한 인식이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는다면 분쟁 해결은 어렵다. 편견이나 혐오감에서 나오는 반복적인 반노조 발언에 대해서는 부당노동행위가 인정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노동조합 활동을 존중하고 원만한 관계를 위한 인식 개선 및 교육이 근본적인 해결책이 된다.
     분위기 띄우려고 한 말이 부당노동행위라고요?
    by 이태은
    2025.11.08 11:00:00
  • 하나의 회사에 담긴 가족의 꿈 최근 창업자들이 후대에게 경제적 유산을 안정적으로 물려주기 위해 ‘비상장주식회사’를 설립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창업자는 “사업과 재산을 따로 나누면 가족이 흩어진다”는 생각으로, 현금흐름이 뛰어난 사업과 고가의 부동산, 상장사 주식을 모두 한 회사에 담는다. 그리고 이 회사를 자녀들에게 균등하게 상속하거나 증여한다. 그 의도는 선량하지만, 결과는 종종 비극이다. 자녀들이 모두 경영에 뜻을 같이하지 않는 한, 주식회사는 가족이 아닌 법에 의해 움직인다. 상법이 정한 다수결 구조 속에서 자녀 간의 이해충돌이 불가피하게 드러난다. 균등한 주식이 곧 공평한 행복을 의미하지 않는 이유다. 비극의 서막은 상속·증여받은 형제·자매 중 일부가 연합하여 대주주를 구성하고 소외된 나머지 형제·자매가 소수주주로 전락하면서 펼쳐진다. “같이 물려받았는데, 왜 나는 배당도 못 받나요?” 상속된 비상장회사가 분쟁의 불씨가 되는 가장 대표적 이유는 이익배당의 불공정성이다. 창업자는 흔히 “자녀들이 배당금으로 생활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상법상 이익배당은 주주총회 또는 이사회의 결의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다. 주주는 결산기에 자동으로 배당을 받을 권리가 없고, 오로지 다수결로 통과된 결의에 따라야 한다. 결국 배당 여부는 대주주가 좌우한다. 대주주는 등기임원 또는 미등기임원으로 재직하며 보수를 받거나 회사와 거래를 통해 이익을 얻을 수 있지만, 소수주주는 배당이 유일한 수익 수단이다. 그럼에도 다수결의 원칙 아래 장기간 무배당 결의를 반복하면, 이는 다수결의 남용으로 평가될 수 있다. 그러나 현행법은 이를 직접 구제할 제도를 두지 않는다. 소수주주의 강제배당청구권은 입법적 논의가 될 뿐이며 현행법의 해석으로는 주주총회 또는 이사회의 결의 이전에는 배당을 청구할 구체적 권리가 없는 것이 현실이다. 필자는 실제 자문 현장에서 “형제·자매가 공동 상속한 회사인데, 몇 년째 단 한 푼도 배당이 없다”며 찾아오는 사건을 자주 본다. 경영권에서 소외된 자녀는 매년 회사의 막대한 이익을 보고받더라도 그 과실을 누리기 어렵다. 상속받은 재산이 그저 ‘잠긴 자산’이 되는 셈이다. 비상장주식의 유동성 함정 상장주식이라면 사정이 다르다. 경영권 프리미엄을 포기하더라도 시장에서 매도하여 현금화할 수 있다. 그러나 비상장회사는 주식의 처분이 쉽지 않다. 대주주가 지배하는 구조에서는 지분 매각 자체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소수주주인 가족 구성원은 명목상으로는 수십억 원의 주식을 보유하지만, 실질적으로는 현금화할 수 없는 ‘유동성 함정’에 빠진다. 이는 상속·증여세 부담과 맞물릴 때 더욱 심각해진다. 예를 들어, 비상장주식의 평가액이 높게 산정되어 거액의 상속세를 납부해야 하지만, 실제 배당이나 처분이 불가능하면 그 세금은 결국 다른 개인 재산을 처분해서 마련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가족 간의 원망과 갈등은 돌이킬 수 없는 수준으로 악화된다. 2세에서 3세로 이어지는 재산의 ‘독(毒)’ 창업자의 2세가 비상장주식을 물려받아 보유하다가, 그 자녀인 3세에게 다시 상속이 이뤄질 때 문제가 폭발한다. 이 시점에는 형제·자매 간 유대가 약화되고, 친족 간 신뢰도 거의 남지 않는다. 상속의 선택지는 단 두 가지뿐이다 - 전부 수락하거나 전부 포기하는 것. 평가가 높게 책정된 비상장주식이 전체 상속재산에 포함되면, 3세는 원치 않는 주식과 함께 막대한 상속세를 떠안는다. 배당도, 처분도 불가능한 주식이 가족 관계를 ‘재정적으로 파산’시키는 사례가 속출한다. 2세가 별도로 축적한 재산마저 창업자로부터 물려받은 비상장주식으로 인해서 처분되어야 할 지경이다. 상속이 가업 승계가 아니라, 가문의 분열로 이어지는 것이다. 창업자의 오판과 가족법·회사법의 교차점 이러한 비극은 대부분 “가족 간에는 싸우지 않는다”는 창업자의 낙관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주식회사는 가족애로 운영되지 않는다. 법인격은 가족 구성원의 의사와 무관하게 독립적으로 존재하며, 그 지배는 오로지 주주총회·이사회 등 회사법이 정한 절차에 따른다. 창업자가 회사를 단순히 재산의 그릇으로 생각한 결과, 상속 이후 가족들은 ‘재산권 분쟁의 법적 당사자’가 된다. 형제·자매 간에 직무집행정지 가처분 등 각종 경영권 분쟁 소송이 제기되고, 서로 상대를 배임·횡령죄로 형사고소하는 지경까지 발전하는 것이 현실이다. 필자는 회계사이자 변호사로서, 이 같은 사건을 수십 건 이상 다뤄왔다. 소수주주인 가족의 상담에서는 절망이 느껴지고, 반대로 대주주 측을 대리할 때는 사건의 전망이 지나치게 유리하게 보인다. 결국, 비상장회사의 균등 상속은 균등하지 않은 권력 구조를 낳는다. “가장 나쁜 시나리오”부터 설계하라 창업자는 자녀의 행복을 바란다면 ‘좋은 시나리오’가 아니라 ‘가장 나쁜 시나리오’를 기준으로 상속·증여를 설계해야 한다. 상속 전에 최소한 다음 2가지는 검토해보아야 한다. 각 자녀에게 공평한 재산 분배를 하되, 주식과 사업 경영권은 경영에 능력과 의욕이 있는 자녀에게만 개별 주식회사를 단위로 상속·증여하는 방안을 고려할 수 있다. 다른 자녀들에게는 개별적으로 처분이 가능한 현금·부동산 등의 자산을 상속·증여한다. 사업을 그대로 물려주고 싶다면 가족 간 이해관계를 조정하기 위해 미리 잘 설계된 주주간계약을 체결하거나, 신탁을 통해 경영과 소유를 분리하는 방안을 고려할 수 있다. 주주간계약, 유언, 신탁 등 법적 장치를 조합하여 패밀리거버넌스를 구축하는 방안이다. 결론 - 가족을 지키는 법적 설계 한국은 이제 “창업보다 승계가 더 어려운 시대”에 들어섰다. 창업자 세대가 가업을 일구었다면, 2세·3세 세대는 그 가업을 법과 제도 안에서 유지해야 한다. 비상장주식의 균등 상속은 이상적으로 들리지만, 실상은 가족 관계를 해체시키는 도화선이 될 수 있다. 상속을 재산의 이전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책임의 이전으로도 보는 관점이 필요하다. 창업자들은 자녀의 우애를 믿기보다, 법의 구조를 신뢰해야 한다. ‘좋은 회사’보다 ‘분쟁이 없는 회사’를 남기는 것이 진정한 유산이다.
    비상장주식의 균등 상속·증여가 남긴 가족의 파국
    by 최승환
    2025.10.25 09:00:00
  • 해상 운송은 전 세계 상품 교역의 80%를 차지하는 국제 무역의 주요 기반이다. 해운 부문의 온실가스 배출은 전 세계 배출량의 약 3%에 달한다. 현재 운항 중인 선박의 92.8%가 기존 화석 연료에 의존하고 있으며 평균 선령은 13년 수준이다. 선박의 평균 수명이 약 25년임을 감안하면, 향후 10여 년 동안 에너지 효율이 낮은 노후 선박 등에서 배출되는 온실가스가 크게 줄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2020년부터 2024년까지 해운 부문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3.7% 증가했다. 전 세계적으로 탄소중립 달성을 위한 움직임이 강화되면서 해운 분야에 대한 탈탄소화 요구도 거세지고 있다. 국제해사기구(IMO)는 2023년 ‘온실가스 감축 전략’(IMO GHG Strategy 2023)을 채택해 2050년까지 온실가스 순배출 제로 달성을 선언했고, 2025년 4월에는 ‘넷제로 프레임워크’를 발표해 대형 선박의 온실가스 초과 배출량에 탄소부과금(Levy)을 도입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기존의 선박 에너지 효율 규제(EEDI, EEXI, CII)에 더해, 탄소 배출에 비용을 매겨 감축을 유도하는 시장 기반 조치(Market-Based Measure)로 한 걸음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EU는 2024년부터 해운 부문을 배출권거래제(EU ETS)에 편입했고, 2025년 1월부터는 선박 연료의 탄소 집약도를 단계적으로 낮추는 별도의 규제(FuelEU Maritime)도 시행했다. 국제사회의 규제가 강화되면서 친환경 연료를 사용하는 선박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 클락슨 리서치에 따르면, 전 세계 선박 수주량에서 LNG, 메탄, 암모니아 등 대체 연료 추진선의 비중은 2020년 28%에서 2024년 50%까지 상승했다. 연료 전환 이외에도 선체 저항 감소, 추진 시스템 효율 개선, 운항 경로 최적화, 감속 등 기술적・운항적 조치를 통한 감축 노력도 이어지고 있다. 특히 디지털 기술을 접목한 스마트 선박은 운항 데이터를 분석해 연료 소비를 줄이고 효율을 높이는 주요 수단으로 부상하고 있다. 이와 함께 눈에 띄는 변화는 중국 조선업의 약진이다. OECD의 분석에 의하면, 2024년 9월 기준 친환경 연료 선박 제조 비중은 중국 47%, 한국 42%, 유럽 6%, 일본 3%이다. 과거 중국은 낮은 인건비를 활용해 저가 선박 위주로 수주했지만, 최근에는 기술력을 갖춰 컨테이너선이나 가스운반선 등 고부가가치 선박의 수주량을 늘리고 있다. 2000년대 이후 중국 정부는 5개년 계획을 수립할 때마다 조선업을 전략 산업으로 지정해 집중 육성해 왔으며, 그 결과 세계 조선시장에서 점유율은 1999년 5% 미만에서 2023년 50% 이상으로 확대됐다. 특히 중국은 2023년 ‘조선업 녹색발전 행동개요(2024-2030)’를 발표하면서 친환경 선박의 설계, 연구・개발, 건조・수리뿐만 아니라 탄소발자국 관리, 친환경 기자재 공급망 구축, 국제 협력 강화 등을 체계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미국은 중국 조선업의 확장을 견제하고 있다.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는 중국의 조선업 성장을 단순한 경제적 리스크가 아닌 미국의 국가 안보에 대한 위협으로 평가했다. 중국은 군-민 융합(Military-Civil Fusion) 전략에 따라 국영 조선소(CSSC)에서 상업용 선박과 최첨단 군함을 병행하여 건조하고 있으며, 중국의 선박 건조 역량 강화는 군사력 증강과 직결된다는 것이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2024년 4월 무역법 제301조에 따라 중국의 조선・해운・물류 부문에 대한 조사를 개시했고, 2025년 4월 중국 정부의 보조금, 국영기업 우대, 금융지원 등 비시장적 조치가 불공정하다고 판단하면서 중국 선사 및 중국산 선박에 대한 입항료 부과를 결정했다. 미국 의회도 같은 달 초당적 법안인 ‘선박법’(SHIPs for America Act)을 재발의하여 외국 선사가 중국의 국영 조선소에서 신조선을 발주할 경우 발주 비율에 따라 벌칙세(penalty tax)를 추가로 부과하는 조항을 신설했다. 즉, 미국은 현재의 중국 선박뿐만 아니라 향후 중국 조선소에서 건조될 선박에 대해서도 광범위한 통상 제재를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이러한 조치가 조선시장에 미칠 실제 영향은 아직 불확실하다. 다만 미・중 간 산업 패권 경쟁이 이어지는 가운데, 한국의 조선 산업은 축적된 기술력과 품질 경쟁력을 기반으로 새로운 수주 기회를 확보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특히 유럽의 선주들은 연료 전환과 ESG 경영을 발주 조건으로 강화하고 있어, 국제사회의 탈탄소화 규제 동향을 면밀히 살피고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노력이 중요하다. 친환경 연료 기술 개발, 공급망 ESG 리스크 관리 강화, 투명한 탄소정보 공개 등은 앞으로의 수주 경쟁력을 좌우할 핵심 요소가 될 수 있다. 정부와 조선・해운업계, 금융기관이 협력해 친환경 선박 인프라와 산업 생태계를 함께 구축한다면, 한국은 기술 경쟁력에 더해 지속가능성 경쟁에서도 선도적인 위치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해운 분야의 탈탄소화와 조선업의 대응
    by 민창욱
    2025.10.11 08:00:00
  •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지 4년차를 맞고 있지만 여전히 줄어들지 않는 산업재해로 인하여 그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던 차에 새정부가 출범하며 중대재해처벌법은 전환점을 맞았다. 정부가 2025년 9월 15일 발표한 ‘노동안전 종합대책’의 주요 내용은 △건설현장의 안전관리를 위한 적정 비용 및 기간 산정 의무 부여 △적격수급인 선정 의무 부여(위반 시 제재) △안전보건 투자 내역 등을 공시하도록 하는 ‘안전보건공시제’ 도입 △원·하청 공동 산업안전보건위원회 구성 의무화 △근로자의 작업중지권 행사 확대 △형사처벌 외에도 과징금 등 다양한 제재방안 도입 등이다. 기업의 입장에서 체감하기로는 과징금 등의 제재방안이 더 크게 느껴질 수 있지만, 원·하청 공동 산업안전보건위원회 구성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즉, 사내하도급이라 하더라도 원청은 협력업체 근로자에 대하여 도급인으로서의 의무를 부담할 뿐, 원청과 협력업체가 각자 안전보건관리체계(안전보건 조직, 규정, 절차 등)를 두고 운영하는 것이 원칙인데, 위의 방침대로라면 원청이 운영하는 산업안전보건위원회 등의 절차·기구에 협력업체 근로자도 포함시켜 통합 운영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원·하청 통합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은 올해 9월 9일 공포되어 2026년 3월 10일 시행을 앞둔 개정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이른바 ‘노란봉투법’의 시행에 따라 더욱 본격화 될 것으로 보인다. 노란봉투법에서는 ‘사용자’의 의미에 ‘근로계약 체결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근로자의 근로조건에 대하여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자’를 포함하는 것으로 확대하였다. 위와 같은 ‘사용자’의 범위 확대는 산업안전보건 분야에서는 사내협력업체 노동조합이 원청을 상대로 산업안전보건과 관련된 사항의 단체교섭을 요구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사내협력업체 근로자들은 원청의 시설·설비에서 작업을 수행하는데, 그 시설·설비 및 작업에 관한 안전 및 보건은 원청이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경우가 거의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노란봉투법이 내년부터 시행되면 산업안전보건에 관하여 실질적인 지배력을 가진 원청은 사내협력업체 근로자들의 교섭 요구에 응할 ‘의무’를 부담하게 된다. 이러한 단체교섭의 사항에는 중대재해처벌법상 의무 이행을 포함하여 산업안전보건에 관한 내용이라면 모두 포함될 수 있고, 교섭 결과 단체협약으로 합의된 사항을 지켜야 한다.
     정부의 노동안전 종합대책, 그 내용은?
    by 김동현
    2025.09.27 11:00:00
  • 최근 자기주식(자사주)의 활용 방안이 기업의 주요 현안으로 부상하고 있다. 종래 자사주는 경영권 분쟁 시 경영권 방어의 수단으로 자주 사용되었는데, 이는 이사회가 자본구조 변경에 대해 폭넓은 재량권을 행사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도구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법 개정과 금융당국의 규제 강화 움직임으로 인해 자사주의 경영권 방어적 활용은 점차 제약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제 기업들은 자사주의 활용 방식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하여, 임직원의 성과보상 및 주주가치 제고의 전략적 도구로 전환해야 할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자사주 활용의 새로운 대안, RSA 이러한 배경에서 최근 기업들은 선지급형 성과조건부 양도제한주식(Restricted Stock Awards, RSA)을 주목하고 있다. RSA는 임직원에게 주식을 먼저 교부한 뒤, 일정한 성과조건을 충족하면 주식의 양도 제한을 해제하는 방식이다. 이는 스톡옵션이나 후지급형 성과조건부 양도제한주식(Restricted Stock Unit, RSU)과 비교하여 다양한 장점이 있다. 이해관계의 즉각적 일치 RSA의 핵심 장점 중 하나는 주식 교부 즉시 수령자가 주주 지위를 확보하므로, 회사의 장기 목표 달성과 수령자의 경제적 이익이 즉각 일치한다는 점이다. 이는 미래에 행사하는 스톡옵션 대비 강력한 동기 부여 효과를 제공하여,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성과 목표를 추진하는 데 유리하다. 희석효과의 최소화 RSA는 자기주식을 활용하기 때문에 신주 발행에 따른 기존 주주의 지분 희석 문제에서 비교적 자유롭다. 즉, 동일한 보상 규모를 제공하더라도 주주가치의 희석효과를 낮출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불확실성 상황에서의 실행 가능성 RSA는 계약 이행 리스크를 상당히 낮출 수 있다. 후지급형인 RSU는 자기주식 부족, 임원 보수한도 초과 등으로 인한 이행 리스크가 존재하지만, RSA는 초기 교부 시점에 이러한 리스크를 대부분 해소할 수 있다. 세제 구조상 경제적 동기 강화 RSA는 주식 교부 시점에 소득세 과세가 발생하여 수령자가 초기에 경제적 부담을 갖게 된다. 이는 수령자가 회사의 장기 성과 목표 달성에 더욱 적극적으로 임하도록 유인하는 중요한 심리적 요인으로 작용한다. RSA 도입의 법적 타당성 현행 상법은 스톡옵션(상법 제340조의2)을 명문 규정으로 두는 반면, RSA·RSU에 관해서는 별도 규정이 없다. 다만 자기주식 처분(상법 제342조)과 이사회 일반 권한(상법 제393조 제1항), 계약자유 원칙에 비추어 이사회 결의만으로도 도입·운영이 가능하다는 해석이 일반적이다. 등기임원에 대한 부여는 실질상 이사 보수(상법 제388조)에 해당하므로 보수한도 내 관리가 필요하며, 이사·주요주주와의 거래에 해당하는 경우 자기거래(상법 제398조)의 사전승인·공정성 요건 및 이해관계자인 이사의 의결권 배제 절차를 이행해야 한다. 또한, 필요에 따라서는 정관에 RSA 운영 근거 규정을 명시하는 것이 신뢰 확보 차원에서 권장된다. 스톡옵션 및 RSU와의 비교 검토 RSA는 스톡옵션이나 RSU에 비해 즉각적인 주주권 확보를 통한 강력한 동기부여 효과 및 장기적 성과 집중도를 높이는 데 있어 상대적 우위가 있다. 다만 성과 미달 시 환수 조치(clawback)의 실효성 확보, 초기 과세에 따른 부담 관리 등의 측면에서 철저한 설계와 운영이 요구된다. 따라서 기업이 처한 상황과 달성 목표에 따라 최적의 제도를 신중하게 선택해야 한다. 결론: 자사주 활용 전략의 전환 필요성 자사주의 경영권 방어적 활용은 앞으로 상당한 제약을 받을 것으로 예상되며, 이제는 성과보상과 주주가치 제고를 위한 전략적 활용을 고려해야 한다. 현시점에서 RSA는 법적 타당성, 실무적 운영의 안정성, 희석효과 최소화 등의 장점을 두루 갖춘 매우 유용한 제도로 평가된다. 기업들은 RSA를 통해 자사주를 단순한 방어 수단에서 벗어나 기업 가치 증대와 임직원 성과 촉진의 전략적 도구로 전환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해야 할 것이다.
    이제, 자사주를 RSA로 활용합시다
    by 최승환
    2025.09.27 09:00:00
  • 상장적격성 실질심사는 기업의 계속성, 투명성 등을 종합적으로 심사하는 제도다. 통상 상당한 시간과 비용이 소요된다. 이에 거래소는 영업·재무가 우량한 법인에 대해서는 경영투명성 기준에 대해서만 심사하거나, 단기간 내 사유가 재발한 경우 제한적 범위에서 심사하는 '약식심사' 제도를 운영해 왔다. 그런데 최근 상장폐지 제도 강화와 함께 이 약식심사 적용 기준도 대폭 상향 조정돼 주목을 받고 있다. 기존 유가증권시장의 약식심사 적용 기준은 매출액 300억원 이상, 자기자본 300억원 이상인 우량기업이었다. 이 기준은 오랜 기간 유지돼 왔는데, 현재의 기업 규모나 시장 상황을 고려할 때 지나치게 낮다는 지적이 제기되기도 했다. 상당수의 기업들이 이 기준을 충족할 수 있어, 제도 본래의 취지인 '우량기업'에 대한 혜택이라는 성격이 희석된다는 취지다. 거래소는 지난 8월 유가증권시장 상장적격성 실질심사지침을 개정해, 약식심사 적용 대상 기준을 매출액 7000억원 이상, 자기자본 4000억원 이상인 기업으로 대폭 상향조정했다. 이는 기존 기준 대비 매출액은 23배, 자기자본은 13배 이상 높아진 수준이다. 새로운 기준은 제도의 취지가 유사한 상장예비심사 패스트트랙과 동일한 수준으로 설정됐다. 이러한 변화는 상장폐지 제도 전반의 강화와 궤를 같이 한다. 상장폐지 관련 매출액 기준의 단계적 상향, 감사의견 미달 요건 강화 등과 함께 실질심사 절차의 예외적 완화 조치인 약식심사 기준도 현실화한 것이다. 전반적으로는 심사를 강화하되, 진정한 우량기업에 대해서는 합리적인 절차 간소화를 제공하겠다는 균형잡힌 접근으로 해석된다. 이에 따라, 기존에 약식심사 혜택을 받던 많은 기업들이 이제는 일반적인 절차에 따라 보다 포괄적인 심사를 받게 되고, 심사기간도 상대적으로 늘어나게 되었다. 기업들은 이러한 변화를 염두에 두고 리스크 관리 전략을 재점검할 필요가 있다. 약식심사 혜택을 기대하기보다는 실질심사 사유 자체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만약 실질심사를 받게 되는 경우라면, 보다 체계적이고 철저한 준비를 통해 상장적격성을 입증할 수 있어야 한다. 결국 이번 실질심사 지침 개정은 상장폐지 제도 강화의 연장선상에서 전체적인 정합성을 갖추기 위한 조치로 평가된다. 이러한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전문가의 조력을 받아 체계적인 대응 전략을 수립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우량기업 약식심사, 기준이 대폭 높아진다
    by 정성빈
    2025.09.13 10:00:00
  • 경영권 분쟁의 전선이 점점 고도화되는 가운데, 기존의 경영권 방어 수단들은 점차 그 효력을 잃어가고 있다. 특히, 실무상 주요 방어수단으로 자리 잡았던 제3자 배정 유상증자 및 자기주식 처분 전략은 법원 판례의 경직적 태도와 상법 개정 논의 등으로 그 활용 가능성이 현저히 축소되고 있다. 이러한 법적·제도적 제약이 가시화됨에 따라 기업들은 내부 규범, 특히 정관을 통한 경영권 방어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모색하고 있으며, 그 중심에는 ‘초다수결의제’(supermajority clause)가 있다. 제3자 배정 유상증자의 법적 한계 기존 주주가 아닌 제3자에게 신주를 배정하는 방식의 유상증자는 상법 제418조 제2항에서 법률상 근거를 제공하고 있으나, 법원은 전통적으로 이 방식의 신주발행에 대해 엄격한 목적 심사를 수행해 왔다. 특히 신주발행이 사실상 기존 경영진의 지배력 공고화 목적에 집중된 경우, 법원은 그 자체로 부당한 신주발행으로 판단하여 가처분을 통해 효력을 정지시키거나, 본안 소송에서 무효 판단을 내리는 사례가 빈번했다. 법원의 엄격 심사 기준은 구체적으로 자금조달 목적의 실질성, 신주발행의 시급성, 제3자 배정 절차의 공정성 등에 집중되어 있으며, 이 요건들을 충족하지 못할 경우 가처분 인용률이 매우 높은 것이 실무적 현실이다. 즉, 법리적으로 허용 가능한 수단임에도 불구하고 경영권 분쟁 국면에서는 실질적 활용 가능성이 현저히 제한된 전략으로 평가받고 있다. 자산설에 기반한 자기주식 처분의 전략적 활용과 제한 자기주식(자사주)의 처분은 제3자 배정 유상증자와 유사한 경제적 효과를 가지고 있지만, 상법상 전혀 다른 법적 성질을 가진 것으로 평가된다. 자기주식은 회사가 취득한 자기 회사 주식으로서, 상법 제369조 제2항에 따라 의결권과 배당권이 정지된 특수한 형태의 자산으로 평가된다. 이에 따라 회사의 자산 처분이라는 법적 성질로 인해 자기주식 처분은 상법 제342조에 따른 이사회 권한으로 해석되어 왔으며, 신주발행과 같은 엄격한 법적 심사 요건이 적용되지 않는 실무상 우회 수단으로 널리 활용되어 왔다. 그러나 이러한 자기주식 처분 방식에도 최근 입법 논의가 제약을 가하고 있다. 국회에 발의된 상법 개정안들은 자기주식 취득 후 일정 기간(6개월~1년 이내) 내 소각을 원칙적으로 의무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으며, 예외적으로 임직원 보상 목적의 보유에 대해서만 제한적으로 허용하되, 이마저도 정기주주총회에서 사후 승인을 받아야 하고 특수관계인의 의결권 행사를 3% 이하로 제한하는 등 엄격한 통제장치를 두고 있다. 따라서 이 법안이 통과되면, 자기주식을 우호적 제3자에게 신속하게 처분하여 지배력을 유지하는 실무 전략은 상당한 제약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초다수결의제 도입과 법적 유효성의 쟁점 이러한 법적·입법적 환경 변화 속에서 기업들이 주목하고 있는 것이 정관상의 가중정족수 조항(초다수결의제)이다. 가중정족수 조항이란 상법상 특별결의 요건(출석주주 의결권 2/3 이상 및 발행주식총수 1/3 이상)보다 훨씬 높은 찬성 비율을 정관에 요구하여 특정 안건의 통과를 현저히 어렵게 만드는 방식을 의미한다. 예컨대, 주요 안건(이사 해임, 핵심 정관 변경 등)에 대해 출석주주 의결권의 75%~90% 또는 발행주식총수의 2/3 이상 등을 요구하는 형태가 주로 채택된다. 가중정족수 조항의 법적 유효성에 대한 대법원의 명확한 입장은 아직까지 없다. 다만, 하급심 판례들은 구체적인 사안별로 판단을 달리한다. 지나치게 높은 정족수를 설정하거나, 특정 안건 적용 여부를 이사회가 자의적으로 판단할 수 있도록 설계한 경우 주주평등 원칙과 주식회사 제도의 본질에 반한다는 이유로 무효로 판단된 판례가 있다. 반면, 정족수 설정이 합리적 범위 내에 있고, 분쟁 이전에 도입되어 적용 범위가 제한적이고 명확한 경우에는 정관 자치 원칙의 범위 내에서 유효성을 긍정한 판례도 존재한다. 즉, 초다수결의제 조항의 법적 유효성 여부는 정족수의 합리성, 정관 도입 시점의 적정성, 적용 범위의 제한성·명확성 등 구체적 요소에 따라 법원의 판단이 달라질 수 있다는 점에서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 거버넌스 관점의 고려와 실무적 설계 원칙 상장회사들이 초다수결의제를 도입할 때 고려해야 할 사항은 단순히 법적 유효성만이 아니다. 기관투자자와 의결권 자문기관은 일반적으로 정족수를 과도하게 가중하는 정관 조항을 ‘경영권 방어 조항’(anti-takeover device)으로 분류하여 부정적 평가를 내리는 경향이 있다. 특히 국내외 주요 의결권 자문사 및 기관투자자의 스튜어드십 코드가 보편화됨에 따라, 이러한 조항을 도입할 때에는 시장 신뢰 훼손, 지배구조 평가지표 저하, 자본비용 상승 등 부정적 영향도 신중히 검토해야 한다. 초다수결의제를 전략적으로 도입하고자 하는 기업은 최소한 다음의 실무적 설계 원칙을 충족해야 한다. △정족수 가중 비율을 합리적 수준으로 한정할 것 △적용 대상을 이사 해임, 핵심 정관 변경 등 제한된 주요 안건으로 명확히 할 것 △경영권 분쟁과 무관한 평상시에 도입하고, 도입 취지를 주주들에게 충분히 설명할 것 △가중정족수 조항이 법원의 심사 대상이 될 가능성을 항상 염두에 둘 것 결론 – 정관을 통한 경영질서 재설계 제3자 배정 유상증자와 자사주 처분은 자금력이 상당한 우호세력을 사전에 확보하여야 하기에 법적·제도적 한계 이전에 경영권 방어수단으로서 근원적 난점이 있었다. 그러나 초다수결의제 정관은 유효성만 인정되면 가장 합리적이고 안정적인 방어 수단이다. 상법은 이사가 직무상 부정행위를 한 경우 임기 중이라도 해임의 소와 직무집행정지 가처분으로 해당 이사를 경영에서 배제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두고 있다. 해임의 소와 직무집행정지 가처분으로 인하여 이사의 직무를 행할 자가 없는 경우에도 법원의 직무대행자 또는 일시이사의 선임을 통하여 신규 이사의 선임을 위한 주주총회까지 중단 없는 경영이 이루어질 수 있다. 이처럼 경영권 분쟁의 핵심인 이사 등 임원 해임의 요건에 정관상 가중정족수를 두더라도 법원의 개입을 통한 경영권 변동은 가능하며, 상법은 이사의 임기제를 채택하고 있으므로, 합리적으로 설계된 초다수결의제 정관 조항은 안정적 경영을 통한 장기적 성장의 발판이 될 수 있다. 정관은 단순히 적대적 인수로부터 기존 경영진을 보호하는 ‘방패’가 아니라, 기업의 의사결정과 지배구조를 규정하는 핵심적인 규범 체계로서 작동해야 한다. 이제 기업에게 정관은 지배력을 보호하기 위한 수단을 넘어, 법과 시장이 동시에 인정할 수 있는 합리적이고 투명한 경영 질서의 ‘설계도’로 자리매김해야 할 것이다.
    왜 다시 정관인가
    by 최승환
    2025.08.23 09:00:00
  • 올해 7월 9일, 금융위원회가 금융감독원, 한국거래소와 함께 발표한 ‘자본시장 불공정거래 근절 실천방안’이 화제를 모으고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주목할 부분은 "부실 상장사는 신속하게 퇴출시키겠다"는 선언이다. 이는 그간 본 기고 시리즈에서 다뤄온 상장폐지 제도 강화 방안이 드디어 현실화된 것으로, 상장기업들에게는 새로운 도전이 시작됨을 의미한다. 이번 발표의 핵심은 부실 상장사 퇴출 지연이 주식시장의 성장과 신뢰를 저해할 뿐만 아니라, 주가조작 등 불공정거래에 악용될 우려가 있다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이는 단순한 상장폐지 제도 개선을 넘어, 자본시장의 건전성과 투자자 보호라는 더 큰 차원의 문제로 접근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구체적인 개선 내용은 앞서 기고에서 상세히 다룬 바와 같다. 시가총액 및 매출액 요건의 단계적 상향조정, 2년 연속 감사의견 미달 시 즉시 상장폐지, 코스닥 상장사 퇴출 심사단계의 3심제에서 2심제로의 축소 등이 그 주요 내용이다. 이러한 변화들은 모두 실효성 있는 상장폐지 제도 구축과 절차 효율화를 목표로 한다. 주목할 점은 이러한 제도개선이 7월 10일부터 즉시 시행된다는 것이다. 거래소의 상장규정 개정안에 대한 금융위원회 승인의결을 통해 전격적으로 시행되는 것으로, 상장기업들에게는 적응할 시간적 여유가 그리 많지 않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다만, 이러한 변화가 기존에 상장폐지 또는 상장적격성 실질심사 중인 기업들에 대해 일률적으로 소급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개정 상장규정은 부칙을 통해 적용 시점을 명확히 구분하고 있다. 2년 연속 감사의견 미달 시 바로 상장폐지되는 부분은 개정 상장규정 시행일인 7월 10일 이후에 최초로 감사의견 미달이 발생한 경우부터 적용된다. 또한 코스닥 상장사의 심사단계 축소는 7월 10일 이후에 거래소의 상장적격성 실질심사 대상 결정에 따라 개최되는 기업심사위원회 심의의결을 거치는 상장법인부터 적용된다. 이러한 경과 조치를 통해 갑작스러운 제도 변화로 인한 혼란을 최소화하면서도, 새로운 기준을 명확히 적용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것으로 해석된다. 상장기업들은 이제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현실과 마주하게 됐다. 그간 본 기고 시리즈에서 강조해 온 바와 같이, 재무건전성 확보, 감사의견 관리, 지배구조 개선 등이 더 이상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된 것이다. 특히 현재 관리종목이나 투자주의 환기종목으로 지정된 기업들은 더욱 긴장감을 가지고 경영 정상화에 매진해야 할 시점이다. 결국 이번 제도 시행은 우리 자본시장이 양적 성장에서 질적 성장으로 전환하는 중요한 분기점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상장기업들에게는 도전이지만, 시장 전체의 신뢰도와 경쟁력을 높이는 기회이기도 하다. 이러한 변화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기업들이 미래 자본시장에서 더 큰 성공을 거둘 수 있을 것이다.
    상장폐지 제도 강화, 드디어 시행되다
    by 정성빈
    2025.08.16 17:48:04
  • 최근 기업 실무에서 흔히 이루어지는 계열사 간 인력 전출이 소위 ‘불법파견’에 해당하는지에 대한 관심이 많다. 이와 관련 대법원은 계열사 간 전출과 근로자파견을 구별하는 일응의 기준을 제시하였는바, 기업들이 계열사 인력 전출 시 유의해야 할 실무적 사항에 대해 제언하고자 한다. 계열사 간 인력 전출은 그룹사 내 효율적인 인력 운영, 직원의 경력 개발 등을 위해 다양하게 활용된다. 그러나 현행 파견법상 ‘근로자파견사업’에 해당할 경우, 파견(또는 전출)을 보낸 회사는 근로자파견사업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만약 이를 위반하면, 전출을 받은 회사 담당자는 형사 처벌을 받을 수 있음은 물론 해당 회사는 전출 근로자를 직접 고용해야 하는 법적 의무를 질 수 있다. 이처럼 계열사 전출 관련해서도 상당한 법적 리스크가 발생할 수 있는 점 때문에 기업들은 인력 전출 방식에 대해 적지 않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와 관련 대법원은 2022년 판결에서 어떠한 경우에 근로자파견사업에 해당할지에 대해 중요한 기준을 제공하였다. 대법원이 제시한 주요 판단 기준에 의하면 계열사 전출이 불법파견이 될 수 있는 경우는 △전출을 보내는 회사가 인건비 외에 별도의 대가나 수수료 등 경제적 이익을 취득하는지 △전출 보내는 회사가 인력 공급업이 아닌 고유한 사업 목적을 가지고 독립적인 기업 활동을 영위하며 충분한 자산과 조직을 갖추었는지 △근로자의 최초 고용 목적이 계열사 전출과 무관하고, 전출이 특정 사업의 일시적 필요에 의해 이루어지며, 전출 후 원래 소속 회사로의 복귀가 예정되고 실제로 복귀하였는지 △전출 근로자가 파견의 상용화·장기화나 고용 불안 등의 상황에 처해 있는지이다. 위 대법원 판결에 따라 기업들은 불필요한 법적 분쟁을 예방하고 효율적인 인력 운영을 위해 다음 사항들을 면밀히 관리해야 한다. 우선, 전출을 보내는 경우 전출을 보내는 회사가 인건비 상당액 외에 전출에 대한 추가적인 대가를 취득하지 않음을 명확히 해야 한다. 또한, 전출을 보내는 회사가 독립적인 사업 영역과 역량을 갖춘 주체임을 객관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 자료를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 나아가 직원 전출은 계열사에 대한 기술 지원 등 특정 목적을 위한 것이며, 전출 기간을 명시하고 종료 후 복귀를 예정해야 한다. 실제 복귀 사례를 축적하는 것도 중요하다. 마지막으로, 전출 기간 동안의 근로 조건을 명확히 하고, 전출 후 원래 소속 회사에서의 안정적인 복귀 및 업무 배치를 보장하여 고용 불안정이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위 대법원 판결을 통해 기업들은 계열사 간 인력 전출에 대한 법적 리스크를 보다 명확히 이해하고 관리할 수 있게 되었다. 제시된 기준들을 바탕으로 '진정성 있는 전출'로서의 본질을 유지하고 관리함으로써 불필요한 법적 분쟁을 예방하고 그룹사 전체의 효율적인 인력 운영을 도모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팀장님 우리 인력 본사로 지원 보내는 거 불법파견 아닌가요?"
    by 이태은
    2025.08.16 11:00:00
  • 지난 6월 기업의 인권・환경 실사를 의무화하는 법안이 발의됐다. 이 법안에 따르면 500명 이상의 상시 근로자를 고용하거나 연매출액 2000억 원 이상인 기업은 매년 1회 이상 자사, 자회사, 공급망 전체를 대상으로 인권・환경 실사를 수행해야 한다. 기업이 실사 의무를 이행하지 않으면 이해관계자의 신청 또는 행정청 직권으로 시정명령이 부과되거나 과태료 처분을 받을 수 있고, 시정명령을 불이행하면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유럽연합에 이어 우리나라에서도 인권・환경 실사법 제정이 논의되면서 인권경영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인권실사는 인권경영의 핵심 요소로서 기업 경영상 발생했거나 발생 가능한 제반 인권 리스크를 식별하여 대응 조치를 취하는 절차이다. 지금까지 국내 여러 기업들은 인권실사 또는 인권영향평가를 실시하고 지속가능경영보고서에 관련 내용을 공시해왔다. 하지만 인권실사를 통해 기업의 인권경영 수준을 한 단계 높였다고 대답하기에 주저하는 모습도 보인다. 이하에서는 바람직한 인권실사를 위해 염두에 두어야 할 몇 가지를 쟁점을 살펴본다. 첫째, 인권실사는 ‘예방적’ 성격의 절차임에 유의해야 한다. 인권실사라고 하면 인권침해를 유발한 가해자 등을 현장 감사를 통해 사후 적발해 징계하는 절차로 오해하는 경향이 있다. 국제사회에서 말하는 인권실사(Human Rights Due Diligence)는, 잠재적 인권 리스크를 전반적으로 확인하고 그것이 실제 인권침해로 이어지기 전에 선제적으로 예방조치를 취하는 것을 주된 목적으로 한다. 인권실사의 사전예방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회사의 정책・조치・관행 등을 두루 살피며 인권 사각지대를 적극적으로 찾아야 한다. 그런데 현업 담당자에게 인권실사 체크리스트를 제공하고 개별 평가지표에 예/보완필요/아니요 등으로 답변하도록 하면, 회사의 정책이 일부 미비하더라도 ‘예’라고 답변하는 경향이 있다. 본인이 속한 부서의 잘못을 들추어 추궁당하는 상황이 부담스럽기도 하고, 타 부서 또는 타 계열사와의 평가 결과 비교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렇게 하면 수면 아래에 잠재된 인권 리스크를 식별하기 어렵다. 경영진과 현업 부서에 인권실사의 목적을 명확히 설명하고,인권 리스크를 좀 더 많이 식별할 수 있도록 유인을 제공할 필요가 있다. 둘째, 인권실사 절차에 취약그룹의 참여가 필요하다. 인권실사의 성공 여부는 인권에 취약한 이해관계자들이 얼마나 참여하는지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필자는 지금까지 수백 명과 인권실사 인터뷰를 진행했지만 대기업의 정규직 중년 남성으로부터 인권 리스크가 식별된 경우는 흔치 않았다. 인권 리스크는 비정규직, 임신・양육기여성, 장애인, 외국인, 고위험 직무종사자, 비조합원, 하청직원 등 취약그룹에서 식별될 가능성이 높다. 다만 이들은 회사에 의견을 개진하는 것을 상당히 조심스러워하며, 숫자도 상대적으로 소수이기에 인터뷰 진술의 익명성이 보장되지 않을 수 있다. 회사는 누구를 취약그룹으로 정의하고 의견을 들어볼 것인지, 취약그룹의 참여 장벽이 무엇이며이를 어떻게 해소할 것인지 적극적으로 고민할 필요가 있다(CSDDD 제13조제5항). 셋째, 취약그룹의 의견에 온정적으로 접근해 대응 조치를 수립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취약그룹 인터뷰에서 청취한 내용을 회사에 전달하면 그 의견이 사실인지 확인하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다만 이러한 사실 확인에 지나치게 엄격한 수준의 증빙을 요구하면 몇 가지 문제가 발생한다. 취약그룹의 이슈는 특수하기에 진술자가 특정되거나 진술자를 특정하려는 시도가 생길 수 있고, 진술 내용의 신빙성을 제3자를 통해 확인하는 과정에서 원 진술이 왜곡되거나 2차 피해가 발생할 가능성도 존재한다. 물론 진술의 신빙성을 확인하는 절차는 당연히 필요하다. 하지만 중대한 실제적 법 위반 등이 아닌 잠재적 리스크 단계의 정황에 대해서는, 회사가 취약그룹의 진술을 선의로 해석하려고 노력하면서 예방 및 재발 방지 대책을 수립하는 것이 인권실사의 취지에 더 부합할 수 있다. 한국의 인권경영은 한 단계 도약의 시기를 앞두고 있는 듯하다. 일부 경영진과 책임자는 회사의 인권 정책을 다듬는 것을 넘어 실제 구성원과 이해관계자들의 인권 수준을 정확히 측정해 개선하는 데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대내외 경영 환경이 녹록치 않지만, 좋은 기업을 만들고 주변에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싶은 마음은 사람의 본성인 듯하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일은, 여러 이해관계자를 포용하면서 인권실사를 진행하되 취약 그룹과 회사가 함께 공감할 수 있는 작은 성과들을 하나씩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러한 실천이 축적될 때 인권실사는 단발성 또는 형식적 이벤트에 그치지 않고 기업의 지속가능한 위험관리 시스템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인권경영의 과제
    by 민창욱
    2025.08.04 22:01:00
  • 여름이 다가올 때마다 올 여름은 또 어떻게 날지 걱정부터 앞선다. 한낮에는 바깥에 잠시 서 있는 것도 버거울 지경이다. 이처럼 가만히 서 있는 것조차 힘든 더위에 더욱 취약한 곳이 있다. 바로 산업현장이다. 그 중에서도 건설현장은 한 줄기 바람 없이 태양이 작렬하는 옥외에서 작업이 이어진다. 폭염에 장시간 노출되어 발생하는 열사병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건설현장에서 발생한 열사병으로 근로자가 사망한 경우에도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하 중대재해처벌법)이 적용된다. 최근 대전지방법원은 A 시공사로부터 철근콘크리트 공사를 하도급 받은 B회사 소속 근로자인 재해자가 2022년 7월초 최고기온이 33.5℃에 이르고 폭염경보 기상특보가 발효된 상황에서 건축물 최상층의 콘크리트 타설 작업을 하다가 열사병으로 사망한 사건에서 A회사의 현장소장과 경영책임자에게 각각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열사병으로 인한 중대산업재해는 사망 사고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에서는 직업성 질병의 하나로 “폭염에 노출되는 장소에서 하는 작업으로 발생한 심부체온상승을 동반하는 열사병”을 정하고 있어 1년에 3명 이상의 종사자가 열사병에 걸릴 경우에도 중대재해처벌법으로 처벌될 수 있다. 고용노동부는 여러 건설현장에서 열사병 환자가 발생할 경우 전체 현장을 합산하여 중대산업재해 해당 여부를 판단한다는 입장이다. 그렇다면 열사병 예방을 위하여 법령에서는 어떤 조치의무를 정하고 있을까. 사업주가 취하여야 할 구체적인 안전보건조치의무를 정한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에서는 근로자가 폭염에 노출되는 장소에서 작업하여 열사병 등의 질병이 발생할 우려가 있는 경우에 사업주로 하여금 △적절하게 휴식을 취하도록 하는 등의 필요한 조치를 하여야 하고 △휴식시간에 이용할 수 있는 그늘진 장소를 제공하여야 하며 △작업 중 땀을 많이 흘리게 되는 장소에 소금과 깨끗한 음료수 등을 갖추어 두도록 정하고 있다. 또한 최근에 △ 냉방 또는 통풍 등을 위한 적절한 온도·습도 조절장치의 설치·가동과 △ 작업 시간대의 조정 △적절한 휴식시간의 부여 △ 체감온도 33도 이상인 작업장소에서 작업 시 매 2시간 이내에 20분 이상의 휴식 부여 등의 의무가 신설되기도 하였다. 경영책임자로서는 중대재해처벌법령에 따라 위험성평가 등 절차를 통하여 폭염에 노출되는 옥외 작업 시에 열사병의 유해요인을 확인하고 이를 개선하기 위한 대책을 수립하여 실행되도록 하여야 한다. 위에서 본 산업안전보건법령 상의 의무가 지켜지는지 반기마다 점검하여야 할 의무도 있다. 경영책임자가 이를 지키지 않아 열사병으로 인한 중대산업재해가 발생할 경우 앞의 A회사 사례처럼 처벌될 수 있다. 타는 듯한 현장에 그늘 한 켠이 근로자와 경영책임자 모두에게 어느 때보다 절실한 때이다.
     타는 듯한 현장에 한 켠의 그늘을
    by 김동현
    2025.07.30 10:05:00
  • 정연주 전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위원장이 윤석열 전 대통령을 상대로 낸 해촉 처분 취소 소송에서 승소했다. 흥미로운 점은 사건의 여정이다. 정 전 위원장은 같은 사안으로 먼저 집행정지 신청을 냈지만 각하됐다. 그런데 본안 소송에서는 승소 판결을 받았다. ‘각하’는 법원이 아예 본안 심리를 하지 않기로 하는, 말하자면 ‘문전박대’와 같은 것이다. ‘인용’은 소송을 청구한 당사자가 법원의 문턱을 넘어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였다는 것이므로 거리가 매우 멀다. 같은 사안에 관한 사건, 같은 당사자, 같은 쟁점인데도 한 번은 행정소송의 대상이 아니라는 이유로 물러서게 된 반면 최종적으로는 승소했다. 행정소송의 대상 판단이 얼마나 어려운 문제인지를 잘 알려주는 사례다. 이러한 일이 벌어지는 이유는 행정소송의 대상이라는 개념 자체가 상대적으로 추상적이고 또 열려 있기 때문이다. 공권력의 어떤 행위에 대하여 행정소송(취소소송, 무효등확인소송 및 부작귀위법확인소송 등의 항고소송)으로 다투기 위한 전제를 ‘처분등에 해당할 것’으로 삼고 있다. ‘처분등’이란 ‘행정청이 행하는 구체적 사실에 대한 법집행으로서의 공권력의 행사 또는 그 거부와 그 밖에 이에 준하는 행정작용’ 등을 의미한다. 말 자체도 쉽지 않지만 그 개념 하나 하나를 따져보면 만만한 것이 없다. 국가권력이 다양한 주체의 협조를 얻어 이루어지는 복잡하고 다단한 현대의 행정시스템에서는 ‘행정청’의 개념부터 단순하지 않다. 그리고 ‘구체적 사실’이라는 것, ‘법집행으로서의 공권력 행사 또는 그 거부’라는 것도 마찬가지다. 나아가 이에 준하는 행정 작용까지 살피자고 하면 행정소송의 대상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인지 분별하기가 쉽지 않다. 다시 정 전 사장 사건으로 돌아가보자. 집행정지 사건을 심리한 법원에서는 정 전 위원장에 대한 해촉 통지가 공법상 계약에 따른 대등한 당사자의 지위에서 한 의사표시에 해당하여 우월한 지위에서 행한 행정처분이 아니라고 보았다. 공권력의 행사가 아니고 당사자 간의 문제라는 것이 요지다. 그런데 본안 사건에서는 그에 대한 판단을 바꾸었다. 우월적 지위에서 행사한 공권력이라는 취지다. 방심위가 국가기능을 분담하기는 하지만 국가기관과는 독립된 외부 단체라는 점을 고려하면 대통령의 그 위원장직에 대한 위촉이나 해촉은 법 형식적으로 대등한 지위에서의 행위로 볼 여지도 있으나 실질적인 부분까지를 고려하면 우월적 지위에서의 행위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에 대한 법적 판단은 법원의 입장에서도 직관적이고 단순명료한 것이 아니라 섬세한 검토가 필요한 복잡한 작업이다. 법원이 행정소송의 대상을 넓히는 방향으로 판단을 바꾸어 가고 있다는 이야기들을 많이 한다. 국민의 법적 지위에 영향을 주는 행위라고 판단된다면 적극적인 관점에서 검토하여 행정소송의 본안 심리로 끌어올리는 것이다. 실제로 행정심판위원회에서는 심판대상이 아니라고 하는 것도 법원에서는 행정소송의 대상이라고 보는 등 오히려 행정심판위원회보다 법원이 더욱 유연한 태도를 가지고 있다고도 보인다. 공권력을 법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최후의 보루가 법원이라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하지만 여전히 무엇이 행정소송의 대상이고 아닌지에 대한 기준이 명료하지는 않다. 행정소송의 대상인지 여부에 대하여 하급심과 상급심의 결론을 달리하는 경우도 꽤 많은 편이다. 결국 행정소송을 고려하는 당사자로서는 자신이 문제삼고자 하는 공적 주체의 행위가 법적으로 어떤 성격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하여 치밀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분쟁으로 나설 때에는 그 리스크까지 모두 고려하여 합리적인 판단을 해야 한다.
    같은 사건, 다른 운명
    by 안성훈
    2025.07.27 08:00:00
  • 최근 국내 자본시장에서는 행동주의 펀드의 급부상과 적대적 M&A가 늘어나며, 기업들이 경영권 분쟁에 휘말리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 실제로 최근 몇 년간 행동주의 투자자, 사모펀드(PEF), 소액주주연합의 공격적 움직임이 현저히 늘었으며, 여러 코스피·코스닥 상장사에서 주주총회 안건 상정, 이사 선임·해임 문제를 둘러싼 소송이 빈번하다. 이러한 경영권 분쟁에서 법률적 대응은 필수이며, 그중에서도 가처분은 분쟁 초기에 전세를 뒤집을 수 있는 강력한 무기로 떠올랐다. 가처분은 법원의 본안 판결 이전에 임시적으로 권리를 보호하거나 급박한 손해를 방지하는 긴급조치다. 특히 주주총회 개최, 이사회 결의, 신주 발행 등 중요한 의사결정을 두고 첨예한 대립이 발생할 때, 법원의 가처분 결정은 그 자체로 기업의 경영권 향방을 결정짓는 위력을 발휘한다. 경영권 분쟁 현장에서도 “기업가치가 불확실성으로 인해 빠르게 하락하고 있으니 법원의 신속한 판단이 절실하다”는 호소가 빈번하게 제기될 만큼, 가처분의 신속한 대응은 기업가치 보호와 직결된 필수 절차가 되었다. 경영권 분쟁에서 빈번한 가처분의 유형과 실제 사례 경영권 분쟁에서 자주 사용되는 가처분 유형으로는 의안 상정 가처분, 의결권 행사 금지 가처분, 이사 직무집행정지 가처분, 신주 발행금지 가처분 등이 있다. ①의안 상정 가처분-주주제안권 보호의 수단 경영권 분쟁에서 자주 부각되는 것은 의안 상정 가처분이다. 회사가 소수주주의 정당한 주주제안을 이유 없이 거부할 때, 법원이 개입하여 회사로 하여금 해당 의안을 강제로 주주총회에 상정하도록 하는 조치다. 공격자 측은 일반적으로 정관 변경과 이사·감사의 해임 및 선임 안건을 상정하도록 요구하고, 회사가 이를 거부하면, 법원이 강제상정하도록 명한다. 방어 측은 이러한 가처분 신청이 제기될 경우, 즉시 주주제안의 적법성 여부와 이를 거부할 정당한 사유가 있음을 철저하게 입증해야 한다. 2025년 진원생명과학에서는 2대 주주인 투자조합 측에서 주주제안권을 행사해 이사 선임 등 의안의 주주총회 상정을 요구했으나, 회사 측이 이를 거부하면서 법원에 의안 상정 가처분을 신청했고, 법원이 이를 인용한 사례가 있다. 소수주주가 주주총회 그 자체의 소집을 청구하는 경우도 있는데 회사가 이를 거절하는 경우 비송사건인 임시주주총회소집허가 신청 사건이 제기되기도 한다. ②의결권 행사 금지 가처분-주주 권리 제한의 엄격한 기준 상법상 각종 의결권 제한 규정의 적용을 받거나, 대량보유보고의무를 위반 또는 냉각기간을 위반한 주식을 통해 의결권을 행사하려는 경우, 이를 법원이 강제로 제한할 수 있다. 또한, 의결권 행사 금지 가처분의 변형된 형태로 의결권 행사 허용 가처분이 제기되기도 한다. 실제로 2025년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 과정에서 영풍·MBK 연합이 의결권 행사 허용 가처분을 신청하였으나, 법원은 상법 제369조 제3항(상호주 의결권 제한 규정)을 근거로 의결권 행사 허용 가처분을 기각했다. 따라서 기업은 평소 상호주 관계 등 주요 주주의 지분구조를 철저히 점검하여 법적 취약점을 파악·보완해야 한다. ③이사 직무집행정지 가처분-경영진에 대한 치명적 위협 이사 선임의 주주총회 결의에 하자가 있거나, 이사의 배임·횡령 혐의가 소명되면 법원은 신속히 직무집행을 정지시키고 직무대행자를 선임한다. 이는 경영진에게는 치명적인 조치로, 특히 가처분이 발령되면 해당 이사는 경영 일선에서 배제된다. 기업은 혐의가 사실이 아니거나 경미하다는 점과 함께, 이사의 직무가 중단될 경우 회사가 입을 회복하기 어려운 피해 가능성을 적극적으로 소명해야 한다. ④신주 발행금지 가처분-지분희석에 대한 법원의 엄격한 통제 기존 경영진이 제3자에게 우호적 지분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신주를 발행하여 기존 주주의 지분을 희석하려 할 때, 법원은 그 발행 목적의 타당성을 면밀히 검토한다. SM엔터테인먼트의 경우 법원은 신주 발행금지 가처분을 인용한 반면, 한미사이언스는 정당한 자금조달 목적을 인정하여 기각한 사례가 있다. 따라서 방어 측은 신주 발행 목적과 절차의 공정성을 철저히 준비하여 법원의 인용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해야 한다. 법원의 가처분 인용 기준과 대응전략 법원은 가처분 신청에 대해 본안 소송에서의 승소 가능성과 긴급한 보전 필요성이라는 두 가지 핵심 요소를 중심으로 엄격히 판단한다. 이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명확한 증거와 설득력 있는 논리를 제시해야 한다. 예컨대, 공격자 측은 이사의 위법행위를 구체적으로 입증하거나 주주총회 소집 지연 등으로 인해 회사가 중대한 손해를 볼 우려가 있음을 소명해야 한다. 반면 방어 측은 상대방이 제기한 의혹의 사실관계가 부정확하거나 과장된 것이며, 가처분 조치가 회사에 오히려 심각한 피해를 초래할 것임을 신속하고 명확하게 제시해야 한다. 실무적 가처분 대응전략의 필수 원칙 기업은 상대의 가처분 신청을 예상하여 평소에 계약서, 이사회 의사록, 공시자료 등의 관련 증거를 철저히 보관하고 관리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또한 분쟁 초기 단계에서 상대가 제기할 수 있는 법적 이슈를 미리 파악하고 준비해야 한다. 가처분 신청에 대한 신속하고 정확한 대응은 단순한 법적 절차를 넘어 기업 경영 안정의 근간을 지키는 중요한 전략이다. 또한 가처분이 인용되어 기업이 위기에 처할 경우에도 본안 소송을 철저하게 준비하여 대응하는 것이 중요하다. 본안 소송의 향배에 따라 가처분의 효력을 배제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한, 본안 소송에서 승소하기 위한 철저한 준비 없이는 궁극적인 승리를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경영권 분쟁에서 가처분이란 단순한 임시적 법적 구제 수단이 아니라 기업의 미래를 좌우하는 전략적 도구다. 적절한 상황에 정확한 시기를 골라 사용한다면, 분쟁에서의 주도권을 잡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하겠지만, 반대로 무리하게 남발하거나 부실한 대응을 할 경우 오히려 회사를 위기에 빠뜨릴 수도 있다. 따라서 가처분 대응전략은 언제나 신중하고 치밀하게 계획되고 준비되어야 하며, 단기적 전술을 넘어 기업 경영의 장기적 안정성을 확보하는 관점에서 접근해야 할 것이다.
    가처분 신청의 전략적 활용과 방어법
    by 최승환
    2025.07.26 09:00:00
  • 기업분할은 경영 효율성 제고와 기업가치 극대화를 위한 중요한 전략적 도구다. 특히 인적분할을 통해 신설법인을 설립하고 이를 별도로 상장시키는 분할재상장은 사업부문별 전문성을 높이고 각각의 고유한 가치를 인정받기 위한 목적으로 활용돼 왔다. 그러나 최근 상장폐지 제도 개선으로 분할재상장 시 존속법인에 대한 심사가 대폭 강화돼 주목을 받고 있다. 기존에는 코스피시장의 경우 분할재상장 시 신설법인에 대한 상장심사에만 집중했을 뿐, 존속법인에 대해서는 별도의 요건 적용이나 심사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는 코스닥시장과는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코스닥시장은 이미 분할재상장 시 신설법인에 대한 상장심사와 별개로 존속법인이 최소요건(자기자본 30억원, 자본잠식 없을 것, 매출액 100억원 또는 당기순이익 20억원 또는 자기자본 이익률 10% 등)을 충족하지 못하는 경우 이를 상장적격성 실질심사 사유로 규정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차이로 인해 우량한 사업부문은 신설법인으로 이전하고, 부실하거나 수익성이 낮은 사업을 존속법인에 그대로 남겨두는 구조의 분할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었다. 이러한 형태의 분할은 존속법인 주주들의 이익을 침해할 뿐만 아니라 시장 전체의 건전성을 해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코스피시장에도 분할재상장 시 존속법인에 대한 규제가 적용된다. 구체적으로는 존속법인이 최소요건을 충족하지 못하는 경우 이를 상장적격성 실질심사 사유로 추가하는 것이다. 코스피시장의 최소요건은 코스닥시장의 최소요건을 기준으로 하되, 시장 간 차이를 고려하여 더 높은 수준으로 설정될 예정이다. 이러한 제도 변화가 실무에 미치는 영향은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먼저, 분할을 계획하는 기업들은 신설법인뿐만 아니라 존속법인의 사업 경쟁력과 재무 건전성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특히 존속법인에 남게 될 사업의 수익성과 성장성을 면밀히 검토하고, 필요한 경우 사업 포트폴리오를 재조정하는 등의 사전 준비가 필요하다. 또한, 분할 과정에서 자산과 부채의 배분, 인력과 조직의 재편 등을 보다 신중하게 계획해야 한다. 존속법인이 상장을 유지할 수 있는 최소한의 요건을 충족하면서도, 동시에 지속적인 성장이 가능한 사업 구조를 갖추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분할재상장을 고려하는 기업들은 이러한 변화에 선제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 분할 계획 수립 단계부터 존속법인의 상장 유지 가능성을 면밀히 검토하고, 필요한 경우 분할 구조나 일정을 조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 과정에서 상장규정에 대한 깊은 이해와 실무 경험을 보유한 전문가의 조력을 받는다면, 보다 안전하고 효과적인 분할재상장을 추진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이번 제도 개선은 분할재상장이 진정한 기업가치 제고와 주주 이익 증대를 위한 도구로 활용되도록 하는 취지로 이해된다. 편법적인 구조조정이 아닌, 실질적인 경쟁력 강화를 위한 분할재상장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기업들의 신중한 접근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분할재상장과 존속법인의 상장유지…이제는 더 까다로워져
    by 정성빈
    2025.07.05 11:00:00
  • 최근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한 정신적 스트레스를 호소하며 병가를 신청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 특히 상급자의 괴롭힘을 이유로 진단서를 첨부하여 휴직을 요청하는 경우, 회사는 이를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고민이 깊어진다. 2019년 직장 내 괴롭힘 금지 조항이 근로기준법에 도입된 이후, 이와 관련된 휴직 처리는 인사담당자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실무 쟁점 중 하나로 부상했다. 우선 병가휴직의 법적 지위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병가휴직은 근로기준법에서 직접 규정하고 있지 않은 선택적 제도다. 고용노동부 역시 "병가는 근로기준법에 규정되어 있지 않으므로 병가 사용에 대하여는 단체협약 및 취업규칙 등에 규정되어 있는 경우 그에 따라 처리하면 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따라서 회사는 병가휴직 승인에 있어 폭넓은 재량권을 가지며, 취업규칙에 따라 연차휴가를 먼저 사용하도록 요구하는 것도 기본적으로 가능하다. 법원 역시 직원의 병가신청을 승인할지 여부에 대하여 사용자의 넓은 재량을 인정하고 있다. 이와 같이 회사에 병가신청을 승인할지에 있어 넓은 재량이 있다면 설령 직장 내 괴롭힘이 성립하더라도 사용자는 임의로 이를 부여하지 않을 수 있을까? 선례를 보면 사용자에게 병가 부여에 관한 재량이 있더라도 이러한 인사 재량권을 남용하여서는 안 된다고 보고 있다. 병가를 신청한 직원이 직장 내 괴롭힘을 주장하기 전이나 괴롭힘 조사가 진행 중에는 직장 내 괴롭힘이 객관적으로 성립할지 여부가 불분명하고, 마냥 병가 신청을 승인할 경우 유사한 병가신청 사례가 쇄도할 수 있어 병가신청 승인에 좀 더 넓은 재량이 인정될 것이다. 다만 내부 조사 등을 통하여 직장 내 괴롭힘 성립 여부가 다소 명확해지고, 병원의 진단서도 제출 되었다면 회사가 직원의 병가신청을 거부하는 경우 재량권 일탈 남용으로 위법한 인사조치가 될 수 있다. 심지어 병가승인 거부가 새로운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할 수도 있다. 참고로 최근 사례를 보면 회사 직원이 직장 내 괴롭힘으로 스트레스를 받았다며 근로복지공단에 산재 요양급여를 신청하는 경우 직장 내 괴롭힘이 인정된다고 볼 수 있는 사정이 있다면 요양급여 신청이 매우 넓게 받아들여지는 경향이 있어 보인다. 다만 직장 내 괴롭힘이 어떤 경우에 인정될지 명확하지 않고 또 병원에서 발급받는 진단서의 내용도 천차만별이라 사용자 입장에서 병가승인 요청을 모두 수용해야 할지 적지 않은 의문이 있을 수 있다. 병가 휴직은 직원과 회사 모두에게 매우 중요한 문제이고 적지 않은 조직 내 혼란을 야기할 수 있어 명확한 승인 및 관리 기준을 수립하여 합리성을 확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이를 위해 회사는 다음을 고려 할 수 있다. 첫째, 직원과의 심층 면담을 통해 휴직 신청 사유, 발병 원인, 현재 건강 상태 및 업무 수행의 어려움 등을 파악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직장내 괴롭힘 신고가 있다고 볼 수 있으면 객관적인 조사를 통하여 주장 내용이 근거가 있는지를 파악해야 한다. 둘째, 동료들의 진술서와 해당 직원의 과거 업무 내역 및 현재 업무 진행 상황을 파악하여 업무 수행 능력 저하 여부와 업무에 미칠 영향을 객관적으로 확인해야 한다. 셋째, 가급적 종합병원 또는 대학병원 진단서를 제출하도록 요청하고, 단순히 '임상적 추정'이 아닌, 질병이 업무 및 일상생활에 미치는 구체적인 영향, 필요한 치료 계획 등 전문의의 상세한 소견을 요청하는 부분을 적극 고려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휴직 승인 후에는 휴직의 목적 외 사용(장기간 해외여행, 겸직 등) 여부를 정기적으로 확인하고, 적절한 인사 조치를 통해 병가 휴직 제도의 공정성을 유지해야 한다. 이러한 체계적인 접근은 직원의 권리를 보호하면서도 회사의 효율적인 인사 운영을 돕고, 상호 간의 신뢰를 높이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차장님이 힘들게 해서 저 한달만 쉴게요"
    by 이태은
    2025.06.28 11:00:00
  • A씨는 평범한 어느 날 오후, 화성시로부터 예상치 못한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를 받았다. 내용을 확인해보니 ‘자신이 버린 폐기물을 치우라’는 조치 명령이었다. A씨는 당황스러웠다. 이런 중요한 행정명령을 마치 친구와 주고받는 일상적인 문자 메시지처럼 보내는 것이 과연 적절한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시 당국의 입장은 달랐다. 담당 공무원들은 이미 여러 차례 같은 내용을 전자우편으로 발송했으나 A씨가 이를 무시했고, 따라서 문자 메시지로 송달하는 것도 충분히 적법한 절차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간편한 소통 수단이 국가기관의 공식적인 행정처분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을까? 이 같은 논란에 대해 대법원은 지난 2023년 명확한 기준을 제시했다.(대법원 2024. 5. 9. 선고 2023도3914 판결). 판결은 단순히 개별 사건의 해결을 넘어서, 디지털 시대 행정처분의 송달 방식에 대한 중요한 법적 원칙을 확립한 의미를 갖는다. 행정처분의 효력은 그 내용이 적법하다고 해서 자동으로 인정되는 것이 아니다. 처분의 내용 만큼이나 ‘어떻게’ 처분을 하느냐, 즉 절차적 적법성이 매우 중요하다. 행정절차법 제24조 제1항은 “행정청은 처분을 하는 경우에는 문서로 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는 행정처분이 국민의 권리와 의무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행위이기 때문에 전달 방식에서도 신중함과 정확성이 요구됨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문자 메시지는 법적으로 어떤 지위를 갖는가? 대법원은 문자메시지가 ‘전자문서’에 해당한다고 명확히 인정했다. 전자문서 및 전자거래 기본법에 따르면 전자문서도 서면문서와 동등한 효력을 갖는다. 따라서 문자메시지라는 형식 자체만으로 그 효력이 부인되지 않는다. 하지만 여기에는 중요한 전제 조건이 있다. 전자문서가 행정처분의 문서로서 유효하려면 반드시 당사자의 동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행정절차법 제24조 제1항 단서 및 제1호) 이는 국민이 자신의 권익에 영향을 미치는 행정처분을 어떤 방식으로 받을지에 대해 선택권을 가져야 한다는 민주적 원칙을 반영한 것이다. 이 사건에서 특히 주목할 점은 A씨가 과거에 같은 내용의 폐기물 조치명령을 전자우편으로 받고도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행정청 입장에서는 “이미 전자적 방식의 문서 수신에 동의한 것으로 볼 수 있지 않느냐”고 주장할 수 있는 대목이었다. 그러나 대법원은 이러한 논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과거에 전자우편 송달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는 사정만으로는 휴대전화 문자메시지 송달에 동의하였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묵인을 단순하게 동의로 볼 수 없다는 것이 대법원의 입장인 것으로 보인다. 물론 법은 모든 상황을 경직된 기준으로 규율하지는 않는다. 행정절차법 제24조 제2항은 예외적 상황을 인정하고 있다. '공공의 안전 또는 복리를 위하여 긴급히 처분을 할 필요가 있거나 사안이 경미한 경우'에는 말, 전화, 휴대전화를 이용한 문자전송, 팩스 또는 전자우편 등 문서가 아닌 방법으로도 처분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예외 규정의 적용은 매우 제한적이다. 이 사안에서 대법원은 그러한 긴급한 사유를 인정하지 않았다. 폐기물 치우라는 조치명령이 생명에 위험을 초래하거나 즉각적인 공공의 안전을 위협하는 긴급 상황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대부분의 일반적인 행정처분에서 이러한 긴급 사정을 인정받기는 어렵다. 이 같은 법원의 엄격한 기준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과거 가수 유승준씨의 병역 관련 비자 발급 거부 사건에서도 법원은 ‘전화 통보’ 방식으로 이루어진 행정 처분이 위법하다고 판단한 바 있다. 이는 행정처분의 송달 방식에 대한 법원의 일관된 원칙을 보여준다. 현재 우리는 전례 없는 디지털 전환의 시대를 살고 있다. 정부 역시 ‘디지털 정부’를 표방하며 각종 행정 서비스의 전자화를 적극 추진하고 있다. 온라인을 통한 민원 처리, 모바일을 활용한 각종 신청 서비스, AI를 활용한 행정 업무 등이 일상화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분명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 국민들은 더 빠르고 편리하게 행정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고, 정부는 업무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을 겪으면서 비대면 행정 서비스의 중요성은 더욱 부각되었다. 하지만 효율성과 편의성만을 추구할 수는 없다. 특히 행정 처분과 같이 국민의 권익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영역에서는 더욱 그렇다. 문자 메시지나 간단한 온라인 알림으로 중요한 법적 의무나 권리가 결정된다면, 이는 적법절차의 원칙에 어긋날 수 있다. 이번 대법원 판결은 디지털 시대에도 변하지 않는 법치주의의 기본 원칙을 재확인한 의미를 갖는다. 기술의 발전이 가져오는 편리함과 효율성은 분명 중요하지만, 그것이 국민의 기본권과 적법절차를 대체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행정의 디지털화는 시대적 흐름이며 필요한 변화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국민의 권익과 절차적 보장이 소홀히 되어서는 안 된다. 진정한 디지털 정부는 기술을 활용하되 그 기반 위에 견고한 법적 원칙과 민주적 가치를 세우는 것이어야 한다. A씨가 받은 그 문자 메시지 한 통은 작은 사건일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던지는 질문은 결코 가볍지 않다. 우리는 어떤 미래의 행정을 원하는가? 편리하지만 자의적일 수 있는 행정인가, 아니면 다소 번거롭더라도 국민의 권익을 확실히 보장하는 행정인가? 이번 판결은 그 답을 명확히 제시하고 있다.
    문자 한 통으로 행정처분…효력 있을까?
    by 안성훈
    2025.06.28 08:00:00
  • 전기차, 스마트폰, 태블릿 등 첨단 제품에 사용되는 핵심 광물은 대부분 복잡한 글로벌 공급망을 거쳐 이동한다. 이 과정에서 일부 지역에서는 광물 채굴 수익이 무장세력의 자금원이 되거나, 아동노동 및 환경오염 등 심각한 인권·환경 침해로 이어지는 사례가 꾸준히 보고되어 왔다. 특히 아프리카 내륙의 콩고민주공화국(DRC)과 인접국에서는 주석, 탄탈럼, 텅스텐, 금(3TG) 등의 광물이 무력 분쟁과 인권 유린을 악화시키는 요인이 되었고, 이에 따라 국제사회는 이른바 ‘분쟁광물’에 대한 공급망 규제를 본격적으로 도입하기 시작했다. OECD는 2011년 광물 공급망 실사를 위한 가이던스를 발표했고, 미국은 도드-프랭크법을 통해 분쟁광물의 원산지 정보 공개를 의무화했다. EU도 2021년부터 ‘분쟁 및 고위험지역’(CAHRAs)에서 조달되는 분쟁광물에 대해 실사 및 공시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민간 부문에서는 ‘책임광물 이니셔티브’(RMI)가 제련소(정련소 포함)에 대한 인증 프로그램(RMAP)을 운영해 왔다. OECD는 제련소를 다양한 광물이 모이는 핵심 통제지점(choke point)로 보고 이들을 통해 상위 공급망(upstream)인 광산 등을 관리하는 구조를 설계했는데, RMI는 제련소가 OECD 기준에 따른 상위 공급망 실사 체계를 구축했는지 평가하여 인증을 부여한 것이다. 글로벌 기업은 자신이 조달하는 광물의 제련소를 추적하여 RMAP 인증을 취득했는지 점검하는 방식으로 광물 공급망 리스크를 관리해 왔다. 다만 기존의 분쟁광물 중심 규제와 민간 인증 시스템에는 일정한 한계가 있다. 최근 인도네시아에서 불법적으로 채굴된 주석이 RMAP 인증 제련소를 통해 유통되었다는 보도가 있었는데, 인도네시아가 ‘분쟁 및 고위험지역’으로 분류되지 않아 인증 심사를 수월히 통과했다는 문제가 제기되었다. 또한 인도네시아는 전 세계 니켈 생산량의 50% 정도를 차지하고 있는데, 술라웨시 지역 등에서는 대규모 니켈 채굴로 인한 식수원 오염, 산림 파괴, 해양 생태계 훼손, 불법적 토지 수탈 등의 이슈가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니켈은 분쟁광물(3TG)로 분류되지 않고 2022년까지도 RMAP 인증 대상이 아니어서 통제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다. 최근 들어 인도네시아 소재 일부 니켈 제련소가 RMAP 인증을 취득하기 시작했으나, 해당 인증 절차에 광산 현장실사가 포함되지 않기 때문에, 인도네시아의 영세광산(ASM)이나 중간 유통단계에서 발생하는 리스크가 모두 통제된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러한 현실을 반영해 광물 공급망에 대한 규제와 실무 관행도 점차 발전하고 있다. EU는 2023년 배터리규정을 통해 니켈, 코발트, 리튬 등 책임광물 공급망에 대한 추적 및 실사 시스템 구축을 의무화했다. RMI는 올해 4월 보고 양식(EMRT)을 개정해 니켈, 리튬, 천연 흑연 등을 관리 대상 광물 목록에 포함했고, 현대자동차도 올해 5월 관리 대상 광물을 기존 5종(분쟁광물 4종 + 코발트)에서 전기차 배터리 광물을 포함한 20여 종으로 확대하겠다고 발표했다. 일부 글로벌 기업은 제련소의 RMAP 인증 여부를 서류로만 점검하는 데 그치지 않고 광산에 대한 현장실사를 진행하기도 한다. 테슬라는 2024년 보고서에서 인도네시아 니켈 광산 및 제련소를 직접 방문했으며, 광산 3곳에 대해 국제기준에 따른 감사를 실시했다고 밝혔다. 책임광물 공급망 리스크를 효과적으로 관리하는 것은 결코 쉬운 과제가 아니다. 특히 우리 기업과 직접 계약관계를 맺지 않은 해외의 제련소, 광물 중개상, 영세 광산 등의 정보를 정확히 파악해 광물의 원산지나 이동 경로를 추적하는 데는 한계가 따른다. 국내 제조사는 민간의 제련소 또는 광산 인증 정보 등을 1차적으로 활용하되, 해당 인증의 구조적인 한계를 인식하고 이를 보완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 정기적으로 국제기구의 데이터나 NGO 보고서 등을 살펴 인도네시아와 같은 고위험 지역을 선제적으로 스크리닝하는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그 시작이다. 또한 고객사의 요구를 협력사에 일방적으로 전가하기보다는, 자사의 책임광물 조달 기준 및 절차를 국제규범에 따라 명확히 수립한 뒤, 고객사에는 원칙 있게 설명하고 협력사에는 실현 가능한 조치를 책임감 있게 요청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규제와 시장의 변화에 발맞추어 우리의 책임광물 공급망 관리 제도와 실무가 함께 진화해 가기를 기대해 본다.
    책임광물 공급망 리스크의 관리
    by 민창욱
    2025.06.07 08: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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