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81
  • 30여 년간 칠레 통신 인프라를 지배해온 스페인 자본이 물러나고 있다. 그 자리를 멕시코 자본이 빠르게 메우면서, 중남미 통신 권력의 중심축이 스페인에서 멕시코로 이동하고 있다. 칠레는 이 변화가 가장 극적으로 드러나는 무대다. 이는 단순한 기업 간 인수합병(M&A)이 아니라 디지털 인프라 패권의 이동이라는 상징적 사건이다. 1980년대 말 칠레는 군사정권 하에서 기간산업 민영화를 추진했다. 당시 국영 통신사 CTC는 기술 경쟁력이 취약해 외자 유치가 필요했다. 스페인의 텔레포니카(Telefonica)는 1989년 지분 43%를 인수하며 칠레 시장에 진입했다. 스페인은 자본·기술을, 칠레는 제도 안정성과 수요 기반을 제공하며 통신 현대화를 이끌었다. 텔레포니카는 칠레를 교두보로 페루, 아르헨티나, 콜롬비아, 브라질로 확장했다. 1990년대 말 중남미 통신시장에서 40% 이상의 점유율을 확보하는 등 사실상 독점적 지위를 누렸다. ‘총칼이 아닌 통신망으로 지배한다’는 신(新)식민주의 논란까지 촉발될 정도였다. 그러나 2000년대 중반 이후 4세대(4G)·5세대(5G) 전환에 따른 투자 부담과 포화 경쟁 환경 속에서 텔레포니카의 수익성은 악화되기 시작했다. 이 틈을 타 멕시코의 통신재벌 카를로스 슬림이 부상했다. 그의 어메리카 모빌(AMX)은 공격적 가격 정책과 인수합병으로 남미 22개국에서 수억 명의 가입자를 확보하며 역내 최대 통신 기업으로 성장했다. 칠레에서는 2022년 Claro와 VTR을 합병해 모바일과고정 광대역을 통합 지배할 기반을 갖췄다. 텔레포니카는 결국 남미 사업을 단계적으로 정리하기로 했고, 칠레 법인인 모비스타 칠레(Movistar Chile) 역시 매각 대상으로 지목됐다. 스페인 자본의 퇴장 준비가 본격화된 것이다. 공백을 노리는 기업은 AMX와 칠레 최대 사업자 엔텔(Entel)이다. 칠레 유력 일간지 라 테르세라(La Tercera)는 두 기업이 한때 공동 인수전을 논의했으나 최근 각자 독자 입찰로 선회했다고 보도했다. 칠레 경제지 디아리오 피난시에로(Diario Financiero)는 “누가 인수하든 멕시코 자본의 영향력 확대는 불가피하며, 이는 칠레 통신시장 지배 구조의 근본적 재편을 뜻한다”고 분석했다. 주목할 점은 이 변화를 칠레 사회가 주권과 자존심의 문제로 본다는 것이다. 칠레는 중남미에서 가장 먼저 통신 민영화를 성공시킨 국가다. 이 성취는 ‘남미 기술 선도국’이라는 국가적 자부심을 뒷받침해 왔다. 그런데 그 상징적 자산이 같은 라틴아메리카의 경쟁자에게 넘어간다는 상황은 정치·사회적 감정을 자극하고 있다. 디아리오 피난시에로는 “우리가 이 정도도 스스로 지키지 못하는가”라는 비판 여론을 전했고, 라 테르세라는 이번 인수전이 “남미의 데이터 혈관을 누가 지배할 것인가”라는 디지털 주권 전쟁의 본질을 드러냈다고 해석했다. 통신망은 금융, 보안, 콘텐츠, AI 생태계를 아우르는 국가 주권의 핵심 기반이다. 그러나 감정과 현실은 다르다. 광대역 투자, 5G·인공지능(AI)·보안 인프라는 모두 막대한 자본이 필요한 영역이다. 글로벌 경쟁 환경 속에서 칠레 기업 단독 생존은 어렵다. 시장 논리가 자존심을 압도하는 국면인 것이다. 칠레 통신망의 지배권이 스페인에서 멕시코로 이동한다는 것은 곧 라틴아메리카 디지털 권력의 재편을 의미한다. 한 시대를 지배했던 스페인의 통신 제국은 종말을 맞고, 그 자리를 멕시코가 차지하고 있다. 칠레는 지금 글로벌 디지털 패권 이동의 최전선에 서 있다. 이 변화는 단순한 인수전이 아니라 새로운 권력 구조의 시작이다. 결국 이 질문이 남는다. “누가 중남미의 데이터 혈관을 지배할 것인가.”
    30년 칠레 통신 패권의 전환
    by 박선태
    2025.12.05 16:56:07
  • 새 정부 들어 앞으로의 경제활력은 인공지능(AI)에서 찾고 AI를 기반으로 삼아 세계 경제를 이끌어 가겠다는 전략이다. 식품분야에서도 마찬가지로 AI 기반산업으로 K-푸드 세계 시장을 이끌 수 있도록 정책적인 측면에서 잘 준비해야 한다. 그러나 정부의 이러한 AI 분위기를 타고 일부 분야의 이익을 위해서 자칫 정부 정책이 잘못가게 하는 위험성이 곳곳에서 보인다. 마치 지난 윤석열 정부에서 ‘푸드테크’가 다 해결해주는 것처럼 호도하여 식품산업정책이 잘못된 것처럼 그럴 개연성이 보인다. 식품분야에서 AI를 이용한다는 것이 어떤 면이고 우리가 경계하여야 할 무엇인지 주목하고자 한다, 우선 제일 경계해야 할 분야가 AI를 이용하면 새로운 식품을 새로 개발할 것이라는 측면이다. AI를 이용하면 표준화하여 대량생산이나 자동화를 통하여 가격경쟁에 우위를 점할 것으로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아마 AI를 기술혁명으로 잘못 인식하고 있는 사람들의 주장이다. 식품은 공산품만이 아니다. 먹는 사람들마다 기호성과 느낌, 선택성이 각각 다르다. AI 시대는 식품업은 농업에서 각 개인의 식탁에 이르기까지 각각 다른 소비자의 욕구와 건강을 도우는 방향으로 매우 차별적으로 독특하게 연결되어 가는 구조이다. 이 주장은 생산적인 측면만 내세우는 구조이기 때문에 정부가 이 방향으로 갈까 염려하는 부분이다. 미래 식품 AI 산업은 자연과 친화하고, 전통과 문화 그리고 맛과 건강이 있는 식품을 AI가 소비자에게 맞추어 정확하게 연결해주는 것이 핵심이다. 이렇게 소비자와 생산자가 연결되는 AI 경쟁력이 음식·식품 분야의 플랫폼 개발을 선도적으로 개발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착각하는 것이다. 물론 중요하지 않다고 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에 정부가 집중할 정도는 아니다. AI 플랫폼은 미국, 중국, 한국 등 세계적인 기업이 경쟁할 것이다. 우리나라 기업이 이 경쟁에서 뒤진다고 우리나라 식품과 음식이 죽는 것은 아니다. 플랫폼의 경쟁력을 과소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어차피 경쟁에서 살아남은 하나의 플랫폼일 것이므로 조용히 지켜보는 것이다. 어느 플랫폼이든 이 플랫폼 안에서 우리나라 음식과 식품이 다른 나라 식품과 경쟁에서 이기면 되는 것이다. 어떤 플랫폼에서도 우리나라 식품업은 다른 나라 음식과 경쟁에서 이길 수 있는 잠재력이 맛, 건강, 문화, 다양성 측면에서 충분히 있다. 식품업에서 우리 AI 플랫폼이나 피지컬 AI가 식품 제조와 유통 연결에서 세계를 통일하게 하는 것이 우리 농업과 음식이 발달하는 것으로 연결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 나라 음식과 식품이 세계 사람들의 선택을 받게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한편으로는 식품산업 업자들이 디지털전환 디바이스 개발 문제에 식품산업의 AI 성공여부라고 열심히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는 데 이 또한 플랫폼 개발과 같이 잘못된 방향이다. 하나의 디바이스만 살아남게 될 것이고 우리는 우리 기업이든 미국이나 중국 기업이든 상관없이 이용하면 된다. 물론 우리 기업이 최종 승자가 되었으면 바람에는 이견이 없다. 그러면 미래 AI 시대 우리나라 식품업이 성공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가 세계 식품시장에서 K-푸드 즉 우리 식품이 세계 사람들이 건강하고 맛있는 식품으로 사랑받고 선택받게 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AI 시대에 K-푸드가 맛이 있고 건강성이 있는 다양한 식품으로 AI가 인식하고 이를 소비자에게 알려주는 것이 AI 시대에 우리 나라 음식, 식품, 농업, 식당이 사는 길이다. AI가 어떤 사람의 건강상태나 식생활에 맞추어 어떤 음식을 먹을 것인지를 알려주고, 밀키트 같은 것으로 식재료를 제공해주거나, 맞는 레스토랑을 소개해주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나라 음식에 대한 컨텐츠, 즉 역사 문화, 맛과 건강요소, 농업 생산과 재료에 관한 모든 자료가 AI 플랫폼에 들어가야 한다. 그러나 여기에 들어갈 우리 음식의 데이터나 콘텐츠가 없다. 이렇게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역대 정부가 아예 이런 콘텐츠 창출에는 관심이 없었다. 지금 정부도 잘 인식하지 못할까 두렵다. 오직 기업에 제품개발하여 기업이 돈 버는 구조에만 관심이 있었고, 문화적인 콘텐츠의 중요성도 K-푸드 열풍을 타고 인식되고 있다. AI 시대에는 맛과 건강, 역사와 문화에 대한 정확하고 과학적인 콘텐츠를 정확하게 갖는 것이 미래 AI 시대 핵심 경쟁력이다. 이러한 과학기술 발전에 발맞춰 AI 시대 식품업 시장에서 개인 맞춤형 식품시장이 가장 활성화될 것이며, 이 시장에서 우리나라 K-푸드가 가장 경쟁력이 있다. AI는 잘못된 정보에 의한 오류를 매우 혁신적으로 극복할 것이다. 또한 생명과학의 발전으로 인간의 물리적 환경과 생물학적 특성의 표현이 AI가 구분할 수 있도록 더욱 세밀하고 정확해질 것이며 AI에 의하여 인간의 생물학적 요구에 맞춤형 음식이나 식품이 정확하고 연결될 것이다. 맞춤형 식품의 시대를 열고 선도하기 위해서는 기술적인 문제가 핵심이 아니라, 얼마나 정확한 데이터나 컨텐츠가 있느냐가 핵심 경쟁력이다. 이를 위하여 우리나라 정부 연구자가 데이터 창출에 힘을 쏟아야 한다. 동시에 우리 몸이 갖고 있는 생물학적 특징, 개인 맛 기호성, 후성유전학적인 특성에 대한 데이터 뿐만 아니라, 다양한 음식이 갖고 있는 지리, 역사, 농업, 음식 특성, 환경, 민족문화, 미식, 건강성에 대한 수많은 데이터를 창출하는 것이 중요하다. 기술만 강조되는 요즘 시대에는 놓치기 쉬운 중요한 문제입니다. 미래 AI 시대 개인 맞춤형 음식 시대의 도래와 그에 대응하는 식품으로 한국 식품이 세계를 제패할 수 있도록 차분히 준비하여 나가야 한다.
    AI 시대 식품 분야에서 무엇을 대비하여야 할 것인가?
    by 권대영
    2025.12.02 13:30:43
  • “사르르, 파닥파닥…” 바람이 속삭이듯, 나비 한 마리가 날아올랐다. 칠흑 같은 공간을 가르며 전통피리 소리가 흘러나오자, 마치 시간을 거슬러 과거에서 훅? 날아온 듯했다. AI가 빚어낸 은빛 입자를 날개에 묻히고 미래를 향해 비상하는 그 생명 에너지는 꽃가루처럼 흩어져 부드러운 빛의 파동으로 퍼져나갔다. 이어 각국의 숨결을 머금은 수많은 나비들이 모여들었다. 무대는 어느새 미디어 아트와 K-팝 퍼포먼스의 향연으로 변했고, 그 빛의 무도회는 곧 세계 정상들이 앉은 만찬 테이블까지 날아가 그들의 손등 위에 건네진다. 이 하이브리드 로봇 나비는 과연 무엇을 속삭이고 싶었을까? 이달 초에 있었던 이번 2025 APEC은 단순한 경제 회의가 아니었다. 오감으로 역사를 느끼고 피부로 미래를 체험하게 한 하나의 ‘수행적 예술(Performative Art)’이었다. 미·중 정상이 동시에 이 경주라는 무대에 오른 장면은 그 자체로 이미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만한 사건이었다. 회의실 안의 딱딱한 프로토콜과 달리, 무대 위에서 펼쳐진 나비의 비상과 빛의 파동은 긴장과 경쟁 속에서도 인간적 공감을 끌어내는 새로운 외교 언어였다. 하지만 그 화려한 막 뒤에서, 세계의 냉정한 시선은 묻고 있었다. “21개 회원국으로 구성된 APEC은 지리적 인연 외에는 거의 공통점이 없는, 그리고 깊은 정치·경제적 분열선으로 나뉜 느슨한 연합체에 불과하다” 고 영국의 가디언지는 지적했다. 이 깊은 분열선을 K-컬처의 스펙터클이 과연 가릴 수 있는가? 화려한 문화 쇼케이스가 다자주의나 세계 무역 규칙 같은 실질적 외교 성과(substantive diplomatic achievement)를 대체할 수 있는가? 결국 이 모든 것이 국제적 통합이나 협력의 깊이를 향하는 것이 아닌 한국의 문화적 자산을 과시하는 ‘쇼’에 머무는 것은 아닌가? 오늘날 국제사회는 소통 불능의 시대에 놓여 있다. 지정학적 위기, 보호무역주의, 기술 패권 경쟁 속에서 세계는 만성적인 피로에 젖어가고 있다. 차갑게 깜빡이는 데이터만 오가고 인간적 체온은 사라진 시대. 모두가 연결되어 있지만 누구도 진정으로 소통하지 못하는 이 세계에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흥미롭게도 그 해답은 천년 고도 경주에서 발견되었다. 통일신라 왕실이 추구했던 조화와 상생의 정신, 즉 모든 분열과 파란을 잠재우고 평안을 불러온다는 ‘만파식적(萬波息笛)’의 상징성은 오늘날 세계의 갈등 구조와 기묘하게 겹쳐졌다. 금관의 황금빛이 일렁이며 상기시키는 동서 교류의 역사적 기억 속에서, 예술은 규약도 조약도 아닌, 굳어버린 몸과 마음을 풀어내는 ‘미학적 요법’이 되었다. 경주의 오래된 돌길, 신라 궁성의 유적, 고분 사이로 바람이 불면, 그 속에서 느껴지는 시간의 겹침은 회의장에서 논리와 숫자만 오가는 현실과 대조를 이뤘다. 대한민국은 APEC의 3대 목표인 ‘연결(Connect)·혁신(Innovate)·번영(Prosper)’을 딱딱한 문서가 아니라 살아있는 은유, 즉 나비로 표현했다. 나비는 단순한 심볼이 아니라 동서양 철학을 담은 하나의 사상적 매개체였다. 그것은 현실과 꿈, 국가와 국가 사이의 장벽을 허무는 장자(莊子)의 나비, 각국의 고유성을 존중하면서도 더 온전한 공동체로 변화(Metamorphosis)하는 카를 구스타프 융(Carl Gustav Jung)의 나비, 고정된 국익의 논리를 넘어어 생성(Becoming)이라는 예측 불가능한 관계를 만들어내는 질 들뢰즈(Gilles Deleuze)의 나비였다. 그들의 손등에 내려앉은 하이브리드 나비는 이렇게 속삭이는 듯했다. “가장 부드러운 것이, 가장 단단한 것을 이길 수 있다.” 공식 만찬에서 이 철학은 현실이 되었다. 대금의 호흡이 천년 신라의 명상적 시간을 열고, 이어진 지드래곤의 미디어 아트와 K-팝의 전율은 전통과 미래가 공명하는 순간을 만들었다. BTS RM의 차분한 스피치는 진정한 연결은 프로토콜이 아니라, 서로의 마음을 이어주려는 노력에서 시작되며 K-컬처가 단순한 흥행 콘텐츠를 넘어 사유의 힘을 지닌 예술임을 다시 한번 확인시켰다. 한류가 단순한 ‘흥행 수출품’이 아니라, 정치·경제적 소화불량을 풀어내는 미학적 장치로 인식되기 시작한 것이다. 밤하늘을 수놓은 드론쇼는 기술이 패권 경쟁의 무기가 아니라 ‘연결’과 ‘번영’을 향한 예술이 될 수 있음을 선언했다. 하지만 그 찬란함 뒤에 가려진 그림자도 있었다. 외신들이 지적한 경주의 인프라 한계,부족한 숙박시설과 비효율적인 교통은 화려한 쇼케이스에 비해 현실적 준비가 미흡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웠다. 문화 외교가 아무리 훌륭해도, 그것을 떠받치는 기반시설은 냉정한 현실이며, 이 균열은 미·중 사이에서 실질적인 중재자 역할을 하려는 한국의 전략에 의문을 제기하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가장 중요한 순간은 다른 곳에 있었다. 문화적 공감대는 다음 날 실제 외교 무대에서 힘을 발휘했다. 난항을 겪던 한미 관세 협상의 극적 타결은 단순한 우연으로 보기 어렵다. 어젯밤의 감동과 서사는 협상 테이블 위에 보이지 않는 ‘신뢰의 자본’을 쌓아 올렸다. 경주에서 보낸 하룻밤은, 문화가 어떻게 가장 정교한 외교 무기이며, 경제 전쟁의 보이지 않는 전선이 될 수 있는지를 세계사에 증명했다. ‘문화쇼’가 어떻게 ‘실질적 외교 성과’로 이어지는지에 대한 하나의 대답이었다. 경주는 시간을 축적하는 도시다. 이곳에서 정상들은 ‘지금, 여기’의 첨예한 이해관계를 넘어, 천년 전 신라의 외교관과, 혹은 천년 후의 역사가와 대화하하는 듯한 시간의 교란을 경험했다. 그들은 ‘국가의 대표자’가 아닌, 문명의 지속을 고민하는 ‘역사적 존재’로 자신을 재인식하게 된다. 분절되고 피로한 시대. 우리는 경주에서 보았다. 작은 나비의 날갯짓이 폭풍을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가장 섬세하고 조용한 날갯짓이 어떻게 폭풍을 잠재우고 새로운 질서를 생성하는지를. 문화는 더 이상 외교의 장식품이 아니다. 그것은 시대를 관통하는 가장 강력한 목소리이자, 우리에게 남겨진 마지막 희망의 언어일지 모른다. 그날 밤 경주 하늘 위에서 수천 마리의 나비가 은빛과 금빛으로 날아오르며 남긴 메시지는 분명했다. 그것은 외교의 미래였다. 진정한 외교란, 힘의 논리나 숫자 경쟁이 아니라, 마음과 마음이 맞닿는 섬세한 공감, 그리고 작은 것에서 출발하는 큰 변화임을. 세계 무대에서 하나의 현실로 증명된 순간이었다. 이제 남은 질문은 이 날갯짓을 일회성의 장면으로 남길 것인지, 지속 가능한 국제질서의 언어로 발전시킬 것인지에 대한 우리의 선택이다.
    APEC으로 되돌아본 분열과 만파식적의 정신
    by 이경화
    2025.11.27 15:39:59
  • 1977년 신경생리학자 앨런 홉슨은 맥컬리(McCarley)와 함께 한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그는 꿈을 꾸는 렘(REM) 수면은 원시뇌인 뇌간(brain stem)에서 시작하는 무작위적인 신경의 활성화(activation)를 바탕으로 꿈이 만들어진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그는 “꿈의 주된 동기는 심리적인 것이 아니라 생리적인 것”이라고 했다. 이는 꿈을 무의식적 소망의 표현으로 보았던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적 관점에 정면으로 대립하는 신경생물학적 이론이었다. 그러던 그가 어느날 아내인 리아의 부정을 의심하는 꿈을 꾼다. “리아와 내가 유럽을 여행 중인데, 우리는 아주 많은 사람들과 함께 다리를 건너고 있다. 높은 아치형 중세 건너편에 있는 작은 마을을 향해 아주 작은 강을 미끄러지듯 간다. 배가 강기슭에 다다르자 이미 서로를 찾아내기가 어려워진다. 리아가 힐끗힐끗 보인다. 그녀가 누군가와 이야기 하고 있다. 어떤 남자다. 우리가 배에서 내리기 전 아니면 직후에 그녀가 나의 드릴 촉을 그 남자에게 주는, 또는 팔아버리는 모습이 보인다. 그 드릴 촉은 내가 버몬트주에서 나무에 구멍을 내기 위해 커다란 손잡이가 달린 드릴에 꽂아서 사용하던 것이다. 나는 깜짝 놀랐고 속이 좀 상했다. 또한 그 남자가 메고 있는 숄더백에 그 드릴 촉을 사용해서 완벽한 구멍을 낸 것이 보인다. 그런데 그 숄더백은 내 것과 아주 비슷한 것이다.” 꿈은 이어진다. “리아는 그 드릴 촉을 팔고 받은 돈을 나에게 주겠다고 해명한다. 내가 가장 아끼는 공구 중 하나를 나에게 묻지도 않고 낯선 사람에게 넘겼다는 사실이 여전히 뜻밖이다. 나는 아주 불안하고 짜증이 난다. 뭍에 다다르자 여관을 찾아서 돌아다니다가 여러 차례 서로 헤어진다. 같이 헤메는 어느 한때 그녀는 나에게 자기만의 비밀스런 삶이 필요하다고 분명히 밝힌다. 내가 그 남자에 대해서 묻자 그녀는 자신이 원하면 자유롭게 그 남자와 연인관계가 될 뜻이 있음을 명백히 한다. 나는 매우 당황스럽고 불안해서 내 걱정을 표현하려고 노력한다. 우리가 마침내 그 여관 같아 보이는 곳에 도착하자 또다시 그녀를 찾기 힘든 이상한 상황이 된다. 그러다가 부엌으로 보이는 곳에 그녀가 있는 게 보인다. 그녀는 무언가 음식을 하려고 준비하고 있다. 나는 이상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건 너무나 알팍한 핑계이기 때문이다. 요리가 언제 끝날지를 물어보자 그녀는 시계를 보더니 45분이라고 답한다. 나는 그녀가 어느 낯선 남자를 선택하든 간에 45분이면 그와 사랑을 나누는 데 충분한 시간이 될 것이다. ‘그럼 그렇지’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 꿈은 홉슨이 뇌졸중을 앓고 있던 60대 후반에 꾼 꿈이다. 병든 홉슨이 40대 초반으로 젊은 아내와 살면서 느끼는 심리적 불안감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는 뇌졸중이 발병한지 38일 지나서 이 꿈을 꾸었다. 홉슨은 이 꿈을 다음과 같이 해석했다. “이 꿈은 바로 나의 장애로 인해 리아와 계속 함께하는 것이 불가능해지지 않을까 하는 나 자신의 두려움이다. 깨여 있는 동안에는 이 두려움의 의식 속에 강하게 자리 잡고 있는데, 꿈 속에서는 리아가 다른 남자의 유혹에 넘어가기 쉬운 것으로 나타나 있다. 그녀가 남자의 유혹에 쉽게 넘어갈 여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나 자신이 분명히 잘 알고 있으면서도, 꿈속에서는 나의 두려움과 과거 나의 외도의 내력이 합세해서 그녀를 결혼이라는 보금자리를 박차고 나갈지도 모르는 사람으로 만들어 버린다.” 홉슨은 렘 수면 상태에서 이 꿈을 꾼 것이라고 말했다. “내가 꿈 속에서 질투했던 낮선 남자는 정체불명에다가 행동도 이상하고, 드릴 촉과 내 숄더 백에 난 구멍은 ‘프로이트식으로 해석해야만 말이되고’, 호텔에서 내 아내가 요리를 한다는 것도 그럴듯하지 않은 일이다. 이런 이질적인 요소들은 하나로 묶는 일관적이고 강력한 정서가 이 꿈에 명백한 의미를 부여한다. 즉, 건강이 악화된 상태에서 나는 가장 중요한 동반자이자 강력한 지지자인 내 아내를 잃을까 봐 걱정을 하는 것이다.” 홉슨의 말대로 이 꿈은 심리몽으로 젊음과 건강을 상실한 홉슨의 두려움이 만들어냈다고 볼 수 있다. 여기서 ‘프로이트식으로 해석해야 말이 된다’는 의미는 드릴촉은 남성성, 백에난 구멍은 여성성을 상징한다는 뜻이다. 2005년에 발간한 홉슨은 자신의 저서 『프로이트가 꾸지 못한 13가지 꿈』의 서문을 이렇게 시작했다. “꿈이 인간의 마음을 이해하는 열쇠라는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믿음은 올바른 것이었다. 또한 과학적 심리학은 뇌에 토대를 둘 필요가 있다는 그이 가정도 올바른 것이었다. 하지만 당시에는 그 토대가 없었기 때문에 그는 추측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내 생각에 그가 마음의 과학에 기여한 바는 좋게 말하면 진부하고 나쁘게 말하면 오해를 불러일으켰다.” 홉슨은 프로이트의 꿈 해석에 대한 관점을 일부 인정하면서도 신경생리학적 측면에서 자신의 주장을 끝까지 철회하지는 않았다. 꿈에 대한 신경생리학적인 홉슨의 견해는 또다른 신경생리학자에 의해서 크게 논박을 당했다. 그의 이름은 마크 솜스(Mark Solms)이다.
    아내의 외도를 의심하는 남편의 꿈
    by 국경복
    2025.11.26 18:30:20
  • 이번 APEC 경주대회의 또 다른 성과는 K-푸드를 세계 정상에 알리는 것이었다. 비록 단편적이고 지역적인 것이었지만 그 효과는 엄청난 것이었다. K-팝, K-컬쳐와 함께 우리나라의 문화적 위상이 세계적으로 매우 높아지는 계기가 되었다. 흔히 K-푸드와 한식(K-diet)와의 구분이 어렵다고 물어오는 데, 한식은 우리나라 조상 대대로 내려온 먹고 살아온 식과 습관을 대변하는 밥상을 말한다. 곧 밥상의 구조와 구성, 먹는 양식과 문화를 말한다. 우리 조상들은 주로 밥, 국, 김치, 장 등 기본 반찬 위에 매끼마다 대표음식을 하나씩 만들어 밥상을 차렸다. K-푸드는 이러한 한식이 시장화하는 과정에서 생긴 음식을 말하며. 처음에는 주로 밥상구조의 대표 음식이 한그릇 음식(one-dish, one-bowl)형태로 골목이나 시장에 나왔다. 장터에서 시작하여 주막에서 K-푸드의 기원을 찾을 수 있다. 요즈음에는 이러한 포멀한 대표음식을 넘어서 각 지역이나 우리 조상들이 각 가정의 간식으로 먹었던 음식이 길거리나 시장에 나와서 K-푸드로 많이 알려진 경우가 있다. 우리는 베트남전의 기억을 잊지 못할 것이다. 다낭을 중심으로 남베트남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이 북베트남, 특히 하이퐁만 근처에 엄청난 폭격을 퍼붓고도 미국이 승리하지 못하고 결국 철수하였다. 가장 큰 이유는 미국은 사람의 목숨을 잃는 것에 극히 조심하여 지상군을 투입하지 않고 폭격만 하였기 때문이다. 보통 전쟁에서 최종 승리는 지상군이 투입되여 적의 심장부에 국기를 꽂는 것이다. 그것을 주저하고 폭격만 한다면 승리를 이를 수 없다. 문화전쟁도 마찬가지다. K-팝, K-드라마는 공중전의 전사이고, K-푸드는 지상군이다. 우리나라가 지금 K-팝, K-드라마로 전 세계를 공중에서 폭격하고 있는 중이다. 이를 승리로 완성하려면 K-푸드가 지상에서 차분하게 차근차근 점령해 나가야 한다. 지상군 없이 실체를 구상하기 어려운 공중전만 가지고는 세계화를 완성했다고 볼 수 없다. 과학적으로 시각이나 청각은 매우 민감하여 쉽게 받아들여지지만, 그만큼 쉽게 잊혀지거나 사라질 수 있다. 물질적인 미각이 따라주어야 한다. 그러나 음식은 매우 보수적이어서 받아들이는 데도 쉽지 않고 시간이 걸리지만 한번 받아들이면 쉽게 사라지거나 잊지 못한다. 후생유전학적(epigenomics)으로 음식의 맛이나 습관은 유전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케데헌(K-pop demon hunters)이 더 폭발적이고 우리나라에 외국인들이 많이 온 것은 케데헌 안에 K-푸드가 많이 나오기 때문이다. K-푸드의 세계화 절차는 세가지 단계를 걸쳐서 이루어 진다. 첫째 K-푸드를 알려야 한다. 두 번째로 K-푸드를 좋아하게 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K-푸드를 이용하여 비즈니스가 뒤따라가야 한다. 이러한 목표 없는 K-푸드의 세계화는 생명력이 오래 가지 못할 것이다. 그럼 K-푸드의 무엇을 알릴 것이며 어떻게 알릴 것인가? 어떻게 알릴 것인가를 고민하기 전에 무엇을 알릴 것인가를 고민하여야 한다. 이미 우리나라는 K-팝이나 K-드라마로 세계를 폭격하고 있으니 어떻게 알리는 기반은 충분하다. 지금과 같은 좋은 기회가 없으니 이번 기회를 꼭 살려야 한다. 먼저 K-푸드의 역사적 전통성, 독특성, 맛의 독특성, 건강성을 먼저 알려야 하고, 이들의 과학적 가치를 꾸준히 연구하여야 한다. 그래야 지속 가능한 세계화가 이루어진다. 두 번째로 K-푸드를 좋아하려면 이러한 기본적인 가치를 아는 사람들이 K-푸드를 먹어볼 기회를 많이 갖도록 하고 종국적으로는 한국으로 K-푸드를 먹어보기 위해 들어올 정도가 되어야 한다. 그러려면 맛이 있어야 하고 더 중요한 것은 고유한 맛을 잃지 않도록 해야 한다. 우리의 고유의 맛은 설탕과 기름을 쓰지 않고 내는 여러 가지 기본 맛인데 요즈음은 설탕을 쓰는 것이 우리 맛인 줄 잘 못 알고 있는 사람이 너무 많은 것 같다. 설탕을 많이 쓰는 것이 우리의 맛인 것으로 외국인 오해하게 하면 안된다. 설탕으로 내는 맛이 우리 맛인 줄로 알면 K-푸드는 지속가능한 성장을 이룰 수 없다. 설탕의 단맛은 패권을 추구하기 때문에 우리의 고유의 맛을 없애버리는 경향이 있어서 이점이 매우 우려된다. 여러 가지 맛을 내는 K-푸드가 많은데 아직도 알려지지 않은 것이 무궁무진하다. K-푸드를 좋아하여 한국 땅을 찾고 한국에서 K-팝과 K-컬쳐를 즐기는 외국인이 많도록 해야 한다. 먼저 K-푸드를 알리고 K-푸드를 좋아하면 K-푸드 비즈니스가 성공하게 된다. 세계적으로 한식 레스토랑이 많이 생기고, 기업은 K-푸드 상품을 만들 수 있고, 이를 세계 시장에 내놓으면 세계 시장에서 K-푸드 상품이 주류를 이룰 것이다. 그러나 정부나 많은 기업가들은 앞에서 언급한 두 가지 일에 우선하여야 하는 데, 우선 돈을 벌 생각으로 생산부터 생각한다. 순서가 틀렸다. K-푸드는 가격전쟁을 위한 공중전을 할 것이 아니라 가치전쟁으로 대인전, 지상전을 수행해야 한다. 칼로 정복할 것이 아니라 소비자의 마음을 사는 것이 우선이어야 한다.
    K-푸드의 세계화 길
    by 권대영
    2025.11.03 10:58:00
  • 신경생리학자 앨런 홉슨(Allan Hobson)이 자신의 저서 『프로이트가 꾸지 못한 13가지의 꿈』에서 소개한 꿈이다. 홉슨은 자신이 꾼 꿈을 소개하고, 해석하면서 프로이트가 세웠던 가설들을 공격한다. “토요일 아침 리아(홉슨의 부인)가 아침식사를 준비하려고 일어난 후에 나는 놀라운 꿈을 두 가지 꾸었다. 이 꿈속에서 나는 키스를 하고 있었다. 첫 번째 꿈에서 나의 키스 상대인 여성은 보이지 않았고 사실상 신체가 없는 게 아닌가! 오로지 보이는 것이라곤 아주 음탕하게 확 벌어진 입뿐이었다. 그렇게나 생생하고 관능적인 감각을 내 스스로 만들어낼 수 있다는 사실에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내가 최근 몇년 사이에 느꼈던 어떤 것보다도 강렬한 감각이었기 때문이다. 잠시 깨어났다가 다시 잠들어서 두 번째 꿈을 꾸었는 데, 비록 실제로 오르가즘을 느끼지는 않았지만 그에 비할 만큼 강렬한 꿈이었다. 이 꿈에서 키스하기 전에 순간적으로 그 여성을 바라보았을 때 아무리 프렌치 키스라고 해도 키스가 그렇게나 육감적일 수 있다는 게 놀랍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서는 내가 타원형으로 벌려진 그 입술에 내 혀를 갖다 대고 둥그렇게 문지르려 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입술에 내 혀가 닿기도 전에 짜릿한 성적 에너지가 내 몸 전체에서 느껴지는 게 아닌가! 그럴 수가 없어 보이기는 했지만, 이게 두 번째로 꾸는 꿈이고, 아주 얕은 잠을 자고 있었을 것이 분명한데도 내가 꿈을 꾸고 있다고는 나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홉슨은 이 꿈들을 해석하기 위해서 자신의 과거 경험을 회상하는데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이 꿈을 꾼 것은 내가 <수면의 역설>이라는 국제학술대회에 참석차 프랑스 리옹에 갔다가 돌아온 직후였다. 이번 여행과 그 학술대회는 아주 감정적인 기억들을 떠올리게 했다. 1963년도에 내가 어떤 프랑스 여성과 첫 번째로 바람을 피웠던 기억이 주로 떠올랐다. 그건 육욕적인 면이 너무나 강한 일이었는데, 내가 성적인 관계를 장기간 유지한 최초의 경우였다. 이 관계는 상대가 갑작스럽게 죽은 1969년까지 6년 동안이나 지속되었다.” “나의 두 번째 결혼생활은 행복했고 2001년 2월에 겪은 뇌졸중 이후 리비도(본능적 욕망)가 현저히 감소했기 때문에 나는 새로 바람을 피우기는 커녕 옛 애인을 다시 만나보고픈 생각도 전혀 없었다. 그런데 2003년 9월에 개최된 국제학술대회에서 또다른 옛 연인 마리안느를 만났다. 그녀와는 공항에서 작별 키스를 했다. 미국에 도착하니 그녀에게서 연애편지가 도착해있었다. 며칠을 망설이다가 그녀에게 답장을 보냈다. 그리고 이틀 후에 이 프랜치 키스 꿈을 꾸었다.” 홉슨의 해석이다. “내 경험상 꿈이 오르가즘으로까지 이어지는 일은 아주 드물다. 시상하부(hypothalamus)가 성을 담당한다고 가정할 때, 잠자는 동안 이 성감 뇌(erotic brain)가 활성화 될 수 있다.” 현대 뇌과학에 의해 밝혀진 바에 의하면 뇌 안에 있는 시상하부의 중요한 기능 중에 하나가 성적인 욕구 등을 조절하는 것이다. 따라서 프랜치 키스 꿈은 수면 중 시상하부의 활성화에 의하여 만들어 졌다는 홉슨의 주장은 타당해 보인다. 꿈을 꾸게 만드는 또 다른 중요한 요소는 기억이다. 홉슨은 젊은 시절 프랑스에서 여성들과 로맨스가 있었다. 이러한 경험들이 뇌에 저장되어 있다가 그가 한 최근 체험이 촉발요인이 되어 프렌치 키스의 꿈이 만들어진 것이다. 홉슨은 이 심리적인 꿈을 프로이트가 제안한 해석방식과 비교하면서 프로이트를 비판한다. “이를 통해 우리는 성감 뇌에 대해 무언가를 알 수 있다. 이게 금지된 욕망을 위장하고 검열을 받은 결과일까? 전혀 아니다. 그건 절대로 소멸되지 않는 욕망이 다시 불붙었음을 드러내는 것이다” 홉슨의 이러한 지적은 프로이트가 성적인 욕망은 억압되었다가 뇌의 검열을 거쳐서 위장된 방식으로 꿈이 드러난다고 가정한 것에 대해서 비판한 것이다. 홉슨은 덧붙인다. “이런 사실을 깨닫게 되면 의지를 능가하는 본능의 힘을 확인하게 되는데, 이것을 인식하고 강조한 공은 프로이트에게 돌려야 한다. 하지만 내 꿈들이 보여주는 것은 욕망, 성적 흥분과 같은 황홀감의 대부분이 순전히 뇌 부위들의 활성화의 결과로서 마음속에서 일어난다는 것이다.” 홉슨은 프로이트의 가설들은 비판하면서도 프로이트가 꿈의 진정한 의미를 찾기 위해서 제안한 자유연상(free association)법을 이용해서 자신의 성적 편력을 회상하고 있다. 그리고 뇌 안에 있는 시상하부가 성적 욕구를 담당한다는 사실은 1975년 양전자방출 단층촬영(PET)기술과 1990년 기능성자기공명영상(fMRI) 기술이 각각 발명되어, 꿈 꾸는 뇌의 영상촬영이 가능해지면서 밝혀지게 된다. 프로이트는 1939년에 사망했기 때문에 이같은 사실을 알 수는 없었다.
    엘런 홉슨의 꿈 '프렌치 키스'
    by 국경복
    2025.10.21 14:30:13
  • 페루 의회가 9일 밤 디나 볼루아르테 대통령을 ‘도덕적 무능(incapacidad moral, moral incapacity)’을 이유로 압도적 표결로 해임했다. 전체 130명의 의원 중 123명이 찬성했고 반대는 단 한 표도 없었다. 이로써 페루는 2016년 이후 무려 8번째 대통령 궐위 사태를 맞게 됐다. 지난 9년 동안 대통령직을 수행한 인물은 쿠친스키, 비스카라, 메리노, 사가스티, 카스티요, 볼루아르테, 그리고 이번에 승계한 헤리까지 총 7명이다. 이 가운데 임기를 제대로 마친 대통령은 단 한 명도 없다. 이번 탄핵은 돌발적 사건이 아니라 오래전부터 예고된 ‘시간 문제’였다. 볼루아르테는 2022년 12월 부통령 시절 페드로 카스티요 전 대통령이 친위 쿠데타를 시도하다 해임되면서 헌법에 따라 자동 승계로 대통령직에 올랐다. 그러나 정치적 기반과 지지율은 취임 직후부터 취약했다. 재임 중 8차례의 탄핵안이 발의됐고 4건은 본회의에 상정됐으나, 분열된 의회 구도 탓에 절대다수인 87표를 넘지 못해 무산돼 왔다. 하지만 내년 4월 대선을 앞두고 정당들이 선거 전략에 돌입하면서, 지지율 3%의 대통령과 선을 긋는 것이 정치적으로 유리하다는 판단이 확산됐다. 결국 우파와 중도 정당이 일제히 입장을 바꾸면서 탄핵은 몇 시간 만에 성사됐다. 결정적 계기는 8일 밤 리마에서 열린 인기 그룹 아과 마리나의 공연 중 범죄 조직의 총격 사건 때문이었다. 밴드 단원 4명과 관객 한 명이 부상한 이 사건 직후 치안 악화를 이유로 다섯 건의 파면 동의안이 동시에 제출되면서 정국은 급류를 탔다. 여기에 반정부 시위 진압 과정에서 60명 이상이 사망한 사건, ‘롤렉스게이트'로 불리는 고급 시계·보석 미신고 파문, 성형수술을 위한 직무 이탈 등이 누적되며 정치적 신뢰는 급격히 붕괴됐다. 검찰은 그녀에 대해 출국금지 조치를 취했다.. 헌법에 따라 대통령이 탄핵되면 권력 서열에 따라 부통령 또는 국회의장이 대통령에 즉시 취임한다. 국회의장은 매년 정당 합의로 교체돼, 준비되지 않은 인물이 순번에 따라 대통령에 오르는 경우가 잦다. 이번에 취임한 38세의 호세 헤리 역시 정치 경험이 얕고, 성폭력 및 부패 의혹으로 조사를 받은 전력이 있다. *페드로 파블로 쿠친스키 2016.7–2018.3 (약 1년 8개월) 경제장관, 민간경제인 선거 당선 오데브레히트 의혹, 사임 *마르틴 비스카라 2018.3–2020.11 (약 2년 8개월) 부통령, 주지사 부통령 승계 뇌물 수수 의혹, 탄핵 *마누엘 메리노 2020.11.10–2020.11.15 (5일) 국회의장 국회의장 승계 대규모 시위로 인한 사임 *프란시스코 사가스티 2020.11–2021.7 (약 8개월) 국회의원(과도연합) 국회의장 승계 과도정부 수반, 임기 종료 *페드로 카스티요 2021.7–2022.12 (약 1년 5개월) 교사·노조 지도자 선거 당선 자가 쿠데타 시도, 탄핵 및 체포 *디나 볼루아르테 2022.12–2025.10 (약 2년) 부통령 부통령 승계 ‘도덕적 무능’ 표결로 탄핵 *호세 헤리 2025.10–2026.7 (예정, 약 9개월) 국회의장 국회의장 승계 헌법상 승계(대선 전 과도정부) ‘도덕적 무능’ 조항은 19세기 헌법에 포함된 모호한 규정으로, 대통령을 형사소추 없이도 신속히 해임할 수 있게 한 근거가 됐다. 문제는 이를 견제할 사법·헌법적 절차가 전무하다는 점이다. 헌법재판소 사전 심사나 상원 재심 절차 없이 국회 표결만으로 탄핵이 확정된다. BBC는 이를 “의회의 손에 지나치게 집중된 해임 권한이 만들어낸 구조적 불안정”이라 평했고, 니콜라스 왓슨 테네오컨설팅 대표는 “경험이 부족한 헤리 정부가 초기에 흔들릴 경우 정치적 공백이 커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내년 4월 예정된 대선에는 43명의 후보가 등록했다. 군소정당이 난립해 정강·정책이 맞지 않아도 유명 인사를 영입하며 합종연횡이 반복되고, 선거 후 의회는 극도로 파편화돼 어떤 대통령도 과반을 확보하지 못한다. 이런 구조가 탄핵 정치를 되풀이하게 만든다. 그럼에도 페루 경제는 비교적 견조하다. IMF에 따르면 2023년 -0.6% 역성장 후 2024년 3.3%로 회복했고, 2025년에도 3%대 성장이 예상된다. 구리 생산 증가와 공공투자가 경기의 버팀목 역할을 하고, 인플레이션도 1.8% 수준으로 안정적이다. 페루의 정치 위기는 한 정권의 몰락이 아니라, 탄핵이 정치 경쟁 수단으로 기능하는 구조적 문제의 반복이다. 이러한 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9년 8명의 대통령’이라는 불명예는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
    9년간 7번째 대통령…페루의 정치 불안
    by 박선태
    2025.10.15 20:48:13
  • 베네수엘라의 차베스, 마두로 정권으로 이어진 권위주의적 통치와 구조적 인권 유린, 민주주의의 붕괴, 극심한 빈곤과 배고픔을 피해 지난 수년간 전체 인구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약 750만 명의 국민들이 콜롬비아·페루·칠레 등 인근 국가로 탈출해 국경을 넘는 피난 행렬을 이루었다. 불안정한 정착, 삶의 기반을 잃은 채 방황하는 수많은 베네수엘라인들의 현실은 단순한 국가 위기를 넘어선 21세기 라틴아메리카의 집단적 비극이었다. 과거 이러한 장면을 수없이 목격해 왔다. 중남미 국가들의 식당에서, 택시 운전사로 생계를 이어가는 사람들 속에서 만난 이들의 얼굴에는 꺼지지 않은 희망과 깊은 절망감이 교차하는 것 같았다. 오스카 무리요 정치 전문가는 최근 CNN과의 인터뷰에서 “이번 노벨평화상은 베네수엘라 국민이 오랫동안 이어온 민주주의 투쟁에 다시금 국제적 조명을 비추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런 경험 속에서, 민주주의와 인권 수호의 상징이자 권위주의에 맞서 비폭력으로 싸워온 마리아 코리나 마차도가 2025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는 소식은 깊은 감동과 역사적 의미로 다가왔다. 그녀의 수상은 단지 한 개인의 영예가 아니라, 억압과 침묵 속에서도 자유를 포기하지 않았던 베네수엘라 국민 전체의 투쟁과 희망에 대한 국제사회의 응답이라고 느껴졌다. 마차도는 수상 직후 “이 상은 나 개인의 것이 아니라 자유를 위해 싸워온 모든 베네수엘라 국민의 것이다”라고 말했다. 마차도는 1967년 카라카스 출신으로 2002년 시민 감시단체 ‘수마테(Sumate)’를 창립하며 정치에 뛰어든 이후 20년 넘게 비폭력적 방법으로 민주주의를 지키는 활동을 이어왔다. 권위주의 정권의 무력에 맞서 무장투쟁이 아닌 시민 조직, 선거 감시, 정치 참여를 통해 변화를 모색해온 점이 그녀의 가장 큰 특징이다. 2024년 베네수엘라 대선에서 출마가 금지된 이후에도 야권을 단일화해 에드문도 곤살레스를 지지하며 정권 교체를 시도했고, 선거 후 탄압 속에서 지하로 숨어들었다. 노벨위원회는 그녀를 “독재에서 민주주의로의 정의롭고 평화로운 전환을 위해 싸워온 인물이며, 어둠 속에서 민주주의의 불씨를 지켜온 사람”으로 평가했다. 마차도는 라틴아메리카에서 일곱 번째 노벨평화상 수상자다. 그러나 이전 수상자들이 주로 국가 간 분쟁 중재나 내전 종식, 군사독재 하의 인권운동에 집중했다면, 마차도는 현직 권위주의 정권에 맞서 시민의 힘으로 민주주의를 회복하려는 투쟁의 상징이라는 점에서 수상의 성격이 다르다. 이는 미얀마의 아웅산 수치 수상 당시와 유사한 맥락으로, 라틴아메리카에서는 전례 없는 사례다. 수상 발표 직후 라틴아메리카 각국의 반응도 뚜렷이 갈렸다. 콜롬비아의 페트로 대통령은 “대화를 통한 평화를” 언급하며 축하 메시지를 보냈고, 에콰도르·파라과이·아르헨티나 등은 공개적으로 그녀의 용기와 리더십을 높이 평가했다. 반면 멕시코는 자국 헌법에 명시된 ‘비간섭 원칙’을 이유로 거리를 두었고, 쿠바·니카라과 등 권위주의 정권과 가까운 정부들은 침묵하거나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는 지역 내 이념적 균열이 여전히 강하게 존재함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국제인권단체와 서방 주요국들은 환영의 뜻을 밝혔다. 휴먼라이츠워치(HRW)는 “이번 수상이 베네수엘라의 민주적 전환을 위한 국제적 노력에 새로운 동력을 줄 것”이라고 평가했고, 유럽연합과 여러 유엔 특별보고관들도 그녀의 용기와 비폭력 저항을 높이 평가했다. 반면 트럼프 행정부는 “정치가 평화를 앞질렀다”고 반발했고,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은 “노벨상이 정치화됐다”고 비판했다. 수상 자체가 국제 외교 무대에서도 민주주의와 권위주의 진영 간의 대립 구도를 드러내는 상징적 사건이 된 것이다. 국경을 넘어 흩어진 수백만 명의 베네수엘라인들, 그리고 오슬로의 무대에서 울려 퍼진 마차도의 노벨평화상 수상 소식은 한 국가의 정치적 사건을 넘어, 라틴아메리카 민주주의의 향방을 가늠하는 분수령이 되고 있다. 그의 이번 수상이 베네수엘라 민주주의 회복의 전환점이 되고, 수많은 난민과 디아스포라가 다시 조국의 자유와 존엄을 되찾는 날이 앞당겨지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난민 750만 명, 그리고 한 여성의 이름이 울려퍼졌다
    by 박선태
    2025.10.15 20:28:37
  • 최근 한국과학기술한림원에서 커리어디시젼스 강연이 있었다. 그 강연에서 우리집은 일년에 제사가 거의 20번 정도 있었는데 우리 어머니는 이 제사 음식과 일년에 한번 있는 시제(時祭, 문중 제례) 음식을 다르게 준비하였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했더니 ‘뭐가 다르고 왜 다르냐?’라고 질문이 많이 들어 왔다. 기본적으로 제사와 시제의 차이를 보면 제사는 돌아가신 분 1인을 모시고 기억하고 기리는 것이고 시제는 종친들이 묘소나 릉을 찾아가 시조를 기리고 후손들의 안녕과 평강을 비는 것이다. 조선시대에 임금이 서울에서부터 여주에 있는 세종대왕릉을 행차하여 의례를 지내는 것이 시제의 모범이고 제례의 표본이다. 순우리말인 한가위를 부르는 추석은 중국의 중추절과 비슷하지만 중국과는 다르게 독립적으로 삼국시대부터 내려온 명절로 온 동네 사람들이 모여 농사를 잘 짓게 해준 하늘과 땅에 감사하고 동시에 모든 고을사람의 평강을 기원하며 음식을 나누는 우리 고유의 문화이다. 물론 한해 풍년을 기원하는 정월대보름과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요즘은 풍성한 추수를 할 수 해주신 신에 대한 감사 위에 조상님에 대한 감사와 제사를 지내는 것까지 추가되어버렸다. 아마도 종친들이 따로 쉽게 다 모이지 못하기 때문에 시제의 기회가 줄어들어 추석에 조상들께 제사 지내는 시제의 기능까지 확대된 것으로 보인다. 역사적으로 보면 제사는 고려시대 이전부터 있었고, 시제나 의례는 성리학이 들어온 조선시대 이후에 들어온 것이다. 한가위나 정월 대보름은 제사와 같이 고려시대 이전부터 내려온 우리 고유의 전통과 문화이다. 시제는 기본은 조선시대 이후 궁궐에서 진행된 졔례일 것이고 이를 유생들에 의하여 서원에 파급되어 시제까지 확대되었다. 이와 같이 시제와 제사는 뿌리가 다르기 때문에 당연히 음식도 다르다. 즉 우리 어머니가 어렸을 때 보여준 제사음식과 시제음식이 당연히 다를 수밖에 없다. 고려시대 이전부터 있었던 제사음식은 돌아가신 분이 제일 좋아하는 음식으로 그 지방에서 가장 맛있는 것으로 지냈다. 시제나 제례 음식은 조선시대 이후 남성 중심의 성리학자 양반들이 주도하다 보니 맛보다는 격식을 중요하게 따지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평범한 여성들이 만든 우리 음식은 차례상에서 멀어지고 남성들이 책으로 접한 중국 음식이 주로 자리를 잡게 된다. 그 밑바닥에는 아마도 아낙들이 만드는 우리 음식은 천하고 중국 음식은 귀하다는 사대사상이 있었을 것이라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그래서 고춧가루나 양념이 없는 기름기 있는 음식이 차례상에 자리잡기 시작한 것이다. 몇 년 전 성균관 학자들이 추석에 부치는 전이 우리 음식이 아니라는 말을 공식적으로 말했던 것이 기억난다. 이렇게 궁중이나 양반 종가에서 제례 음식이 필요했으니 홍만선(洪萬選)과 같은 학자들이 중국의 제민요술(齊民要術)이나 거가필용(居家必用) 같은 책을 번역하여 산림경제(山林經濟)를 편찬한 것이다. 그래서 시제음식이 색깔과 맛이 밋밋한 것이다. 중국음식은 기름으로 요리하여야 하는 데 우리나라는 기름도 많지 않고 기름으로 맛을 내는 지식이 없었기 때문에 보통 제례음식이 맛이 없다. 조선시대 이후 의례나 제례음식은 우리 음식이 아니다. 엄밀히 말하면 요즘 흔히 말하는 궁중음식과 종가음식은 우리 음식에 뿌리를 둔 음식이 아니다. 우리 음식의 종류를 궁중음식, 종가음식, 서민음식으로 가르치는 것은 잘못 되었다. 프랑스와 같이 왕이 즐겨 먹는 음식이 궁중음식이어야 하는 데 조선 시대는 제례나 의례를 위해 궁중에서 만드는 음식이 궁중음식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요즈음은 제사도 한 분을 위해 돌아가신 그날그날 모시는 것이 아니라 조상들의 기일을 묶어서 단체로 한 번에 하는 집이 많아졌다. 또한 추석과 시제의 개념이 불분명하여 시제를 지내지 않고 추석 때 조상들의 공덕을 기리는 집이 많아 한가위의 본래 개념과도 벗어나 버렸다. 이와 같은 문화의 변화와 함께 요즘은 제사음식, 시제음식, 추석음식의 개념도 섞여버린 기분이 든다
    제사음식과 제례음식 차이
    by 권대영
    2025.10.10 16:12:49
  • 한류가 전 세계를 휩쓸며 이제는 한국의 매운맛도 글로벌 시장에 확고히 자리 잡았다. 김치, 고추장, 매운 라면이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는 가운데, 최근 남미 파라과이에서 한국의 태양초 고추를 재배해 고추가루로 가공해 미국으로 수출한다는 소식을 접했다. 단순한 농업 뉴스 같지만 그 안에는 중남미와 한국, 그리고 세계를 잇는 식문화의 순환이 숨어 있다. 학계의 다수 견해에 따르면 고추는 중남미가 원산지로 멕시코와 볼리비아, 페루 등지에서 오래전부터 재배되어 왔다. 15세기 콜럼버스 교역을 거치며 유럽으로 전해지고, 다시 아시아로 건너왔다는 학설이 주류다. 전래 시기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으나 중요한 것은 고추가 김치와 만나 한국인의 식문화에 깊이 스며들었다는 점이다. 태양초는 그 상징이라 할 수 있다. 파라과이는 고온다습한 기후와 강한 일조량을 지녀 고추 재배에 이상적이다. 참깨, 콩 등 작물 수출 경험도 풍부하다. 과거 외교관으로 근무하면서 중남미 여러 나라를 다니며 다양한 고추(Chile) 품종을 봤지만 태양초 고추를 본 적이 없다. 고춧가루 생산 이야기도 들은 기억이 없다. 그런데 파라과이에서 태양초를 재배해 미국으로 수출한다는 소식이 들여왔으니 놀라웠다. 세계 식문화의 흐름 속에서 중남미에서 ‘한국 고추’가 재배되는 새로운 장면이다. 이 변화는 김치 수요 확대와 맞물려 있다. 미국 김치 시장은 2024년 약 6억8000만 달러에서 2030년 9억4000만 달러로 성장할 전망이다. 고춧가루 수출은 김치 소비 증가의 반증이다. 40여 년 전 처음 중남미에 갔을 때 현지인들은 김치를 ‘삐깐테(Picante, 매운 음식)’라고 불렀다. 즉 김치는 매운 음식으로 인식되고 있었다. 지금은 ‘건강식’이라는 인식이 자리 잡았다. 칠레, 콜롬비아, 파라과이의 한국 식당들은 주말마다 만석이라고 한다. 2011년 칠레에서 근무할 당시 김치 담그기 행사와 전시회를 열었을 때 현지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파라과이 명문가에 김치를 선물했을 때 하루 만에 다 먹고 다음 날 “더 없냐”는 전화를 받았던 기억도 있다. 콜롬비아의 한 기업인 아들이 선물 중에서도 특히 고추장을 가장 좋아한다고 말한 것도 인상 깊었다. 요즘은 대사관 직원들이나 지인들 집마다 김치가 상비되어 있다고 들었다. 고추는 단순한 양념이 아니다. 안데스의 태양 아래에서 시작된 고추가 지구를 한 바퀴 돌아 한국에서 태양초로 다시 피어나고, 이제 파라과이에서 재배돼 미국으로 수출되고 있다. 고추가루 한 포대에는 김치와 한국의 매운맛이 세계 식문화 속으로 스며드는 순환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이제 정부도 한류를 통해 문화 영향력을 넓히고 국가 이미지를 높이려는 목표를 분명히 하고 있다. 김치가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지만 중남미에는 내세울 만한 한식당이 거의 없는 현실은 아쉽다. 한류가 지속되기 위해서는 음식 문화 세계화를 위한 인프라 구축과 인력 양성에 전략적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그래야 한류가 일시적 유행을 넘어, 지속 가능한 문화 교류의 토대로 자리 잡을 수 있다.
    김치가 열어준 '고추'의 세계 여행
    by 박선태
    2025.10.10 15:38:49
  • 엘 띠엠뽀(El Tiempo) 보도에 따르면 콜롬비아 정부가 스웨덴 Saab사의 Gripen 전투기 18대를 약 39억 달러 규모로 도입을 사실상 확정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한국은 명함조차 내밀지 못했다. 한국전쟁 참전국이자 오랜 우방인 콜롬비아에서조차 기회를 잡지 못했다는 것은 단순한 무기 수출 실패가 아니라, 방산외교의 취약점을 드러낸 사건이다. 정부는 방산외교 강화를 내세워 군 출신 고위 인사를 최전선에 배치했지만, 기대만큼의 성과는 없었다. 대통령과의 독대는 물론 고위 참모, 의회 인사와의 접촉에도 실패하면서 방산외교에서 가장 중요한 네트워킹을 확보하지 못한 것이다. 방산 사업은 군의 필요성과 기술 사양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무기 성능은 자료와 전문가 설명으로 충분하다. 외교 현장에서 공관장이 맡아야 할 역할은 정치·재정 결정권자와 신뢰를 쌓고 설득의 길을 여는 일이다. KF-21은 Gripen보다 성능이 뒤지지 않을 뿐 아니라 가격·유지보수 측면에서도 더 유리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경쟁의 장에조차 서지 못했다. 기술력이 아니라 외교적 준비와 설득력 부족이 패인의 본질이었다. 대규모 방산사업은 본래 쉽지 않다. 국제 경쟁이 치열하고, 최선을 다해도 결과가 불확실하다. 그러나 한국과 콜롬비아의 관계를 고려하면 이번 결과는 더욱 아쉽다. 콜롬비아는 한국전쟁에 파병한 유일한 중남미 국가이며, 오랜 세월 우호 협력 관계를 쌓아왔다. 이런 배경에도 불구하고 스웨덴보다 뒤질 이유가 없는데도 경쟁조차 하지 못했다는 사실은 곱씹어야 할 대목이다. 방산 수출의 성패는 기술력보다 정치적 신뢰와 전략적 접근에서 갈린다. 특히 많은 국가들이 무기 계약과 함께 옵셋(offset), 즉 산업협력·기술이전·현지투자를 요구한다. 대사관은 무기를 파는 창구가 아니라, 옵셋 의제를 발굴하고 조율하는 협상의 장이 되어야 한다. 이번 실패는 바로 이런 외교적 준비 부족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번 사례는 방산외교를 군사기술 차원에만 한정하는 좁은 시각에 경종을 울린다. 방산외교의 본질은 정치적 설득, 외교적 네트워킹, 경제적 이해관계 조율에 있다. 출신보다 중요한 것은 역량과 열정, 국익을 지켜낼 전략적 안목이다. 방산외교는 곧 실리외교다. 상대국이 “이 협력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느끼도록 만드는 것이 핵심이다. 국민과 사회, 정치권을 설득하는 공공외교 능력도 필요하다. 외교는 기술과 논리만으로 성과를 내지 못한다. 상대의 마음을 움직여 감동을 불러낼 때 비로소 성과가 온다. 콜롬비아 전투기 구매 사례는 한국 방산외교가 놓친 아픈 경험이다. 더구나 이번 계약 규모는 한국이 콜롬비아에 매년 수출하는 총액의 4년치를 합한 것과 맞먹는 거대한 금액이었다. 그만큼 기회가 컸던 만큼, 이번 실패의 교훈은 더욱 무겁다. 이제는 형식보다 실질, 출신보다 역량, 명분보다 성과를 앞세워야 한다. 그것이 국익을 지켜내는 길이며, 방산외교뿐 아니라 한국 외교 전반에 반드시 새겨야 할 교훈이다.
    콜롬비아 전투기 사업과 한국 외교의 빈틈
    by 박선태
    2025.10.01 11:34:11
  • 2025년 9월 27일, 미국 국무부는 콜롬비아 구스타보 페트로 대통령의 비자를 전격 취소했다. 동맹국 대통령의 입국 자격을 박탈한 것은 전례 없는 조치였다. 유엔 총회 참석 계기 뉴욕 집회에서 그가 미군 병사들에게 “트럼프 대통령의 명령을 거부하라(Refuse President Trump’s orders)”, “인류의 명령을 따르라(Follow humanity’s orders)”고 촉구한 것이 직접적 이유였다. 미국은 이를 곧바로 “경솔하고 선동적”(reckless and incendiary) 행동으로 규정했다. 콜롬비아 외교부는 즉각 이번 조치가 국제법과 외교 관례를 위반한 것이라며 문제를 제기했지만, 본질은 단순한 비자 문제가 아니라 미국의 분명한 외교적 경고였다. 그럼에도 페트로 대통령은 사태를 가볍게 받아넘겼다. 그는 자신이 유럽 시민권을 보유하고 있어 미국 무비자 전자여행허가제(ESTA)로도 입국할 수 있다고 언급하며, 미국의 경고를 희화화하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미국의 강력한 메시지와 대통령의 가벼운 반응이 극명하게 대비되면서 논란은 더욱 확산되었다. 물론 이번 발언을 단순히 경솔함으로만 치부할 수는 없다. 국제무대에서 미국의 정책에 정면으로 맞서 목소리를 낸 것은 흔치 않은 용기였다. 페트로 대통령은 지지층에게 ‘원칙 있는 지도자’라는 인상을 주었고, 라틴아메리카 좌파 진영에서는 그 상징성이 더욱 부각되었다. 그러나 지지층에게는 원칙 있는 지도자로 비쳤지만, 국익의 관점에서는 외교적 고립과 경제적 비용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더 크다.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작전은 인도주의 위기를 심화한다는 국제사회의 비판에 직면해 있다. 이런 맥락에서 페트로 대통령의 메시지는 지지층 결집에는 효과가 있었을지 몰라도, 국가적 과제를 앞둔 콜롬비아에 꼭 필요한 선택이었는지는 여전히 논란거리다. 언론 반응도 엇갈렸다. 콜롬비아의 엘 에스펙타도르(El Espectador), 베네수엘라의 텔레수르(Telesur), 아르헨티나의 파히나 12(Pagina/12) 등은 대통령 발언을 ‘표현의 자유’ 차원에서 옹호했다. 반면 엘 티엠포(El Tiempo), 세마나(Semana), 페루의 엘 코메르시오(El Comercio) 등 주류 매체는 외교·경제적 부담을 경고했다. 가디언(The Guardian) 은 “표현의 자유와 외교적 책임의 충돌”로, 엘 파이스(El Pais) 는 “콜롬비아 외교에 무거운 부담을 남겼다”고 평가했다. 이번 사태는 정치적·외교적 파장을 넘어 금융시장에도 불안 요인이 되고 있다. IMF의 81억 달러 유연신용공여(FCL)가 조건부로 전환되면서 콜롬비아는 필요할 때 자금을 확보하기가 더 어려운 처지에 놓였다. 이는 신용도 의구심을 키우며, 투자자 신뢰 위축 → 차입 비용 상승 → 환율 불안으로 이어질 수 있다. 페루 경제지 헤스티온(Gestion) 은 투자와 조달 조건 악화를 경고했고, 콜롬비아 10년 만기 국채 수익률은 11%대를 유지하고 있다(TradingEconomics). 블룸버그는 “기업 채권 발행이 70% 이상 급감했다”며 재정 불확실성이 이미 현실화됐다고 지적했다(Bloomberg). 역사적으로 콜롬비아는 대표적 친미 국가였다. 미국은 2000~2018년 플랜 콜롬비아(Plan Colombia) 를 통해 100억 달러 이상을 지원했다. 이후 규모는 줄었지만 군사·치안 협력과 연례 원조(연 4억 달러 안팎)는 유지되고 있다. 콜롬비아 대외정책의 근간이 미국과의 협력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번 사태는 단순한 해프닝이 아니라 양국 관계를 뒤흔드는 상징적 사건으로 기록될 수 있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정치권은 여권이 “제국에 맞서 소신을 드러낸 대통령”을, 야권이 “국익을 해친 무모한 발언”을 내세우며 공방을 벌일 가능성이 크다. 그 과정에서 국론은 분열되고 금융시장의 불안도 커질 수 있다. 국제사회 일부는 이번 사태를 반미 행보나 친중 전환의 신호로 해석할 수 있어, 외교적 고립과 경제적 비용이 동시에 확대될 위험이 있다. 이번 사건은 단순한 외교 해프닝이 아니다. 표현의 자유라는 깃발이, 아이러니하게도 콜롬비아 경제와 외교의 발목을 잡는 족쇄로 바뀔 수 있음을 보여준다. 순간의 함성과 박수는 곧 사라지지만, 신뢰를 잃은 국익의 비용은 오래 남는다. 지금 콜롬비아에 필요한 것은 순간의 함성이 아니라, 국익을 지켜낼 절제된 언어와 신중한 외교다.
    페트로 콜롬비아 대통령 , 용기인가 만용인가
    by 박선태
    2025.09.29 09:22:26
  • 몇년 전 한 지상파 방송이 당차게 기획한 드라마가 조선시대 우리 음식을 잘못 이해하고 중국음식이 마치 우리 음식의 뿌리인 것처럼 표현했다가 호되게 비판을 받고 결국 그 드라마도 방영되지 못하는 사고가 있었다. 최근 지상파와 넷플릭스에서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드라마도 자세히 보면 우리 음식을 왜곡하고 있는 부분이 많은데 버젓이 방영되고 있다. 드라마 작가들의 우리 음식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고, 잘못 알려진 부분을 과학적으로 검증하여 고쳐지지 않고 쉽게 음식에 기대어 흥미를 끌어가려는 풍토가 문제이다. 우리 음식의 뿌리나 본질에 있어서 비과학적인 사대주의적 발상을 못 버리고 거기에 기대어 너무나 쉽게 극을 전개하려는 사람들이 우리 음식에 대한 이해도를 떨어뜨리고 있다. 대표적인 사대주의적 발상은 우리 음식은 중국이나 일본에서 들여와서 발전한 것이라는 생각이다. 우리 조상들이 만주지방과 한반도의 어려운 지리적, 농경학적 환경하에서 수백~수천 년 동안 갖은 노력과 좌절 속에 헤쳐나오고 수많은 시행착오 속에 지혜가 쌓여 탄생되고 발전해 온 음식이다. 이러한 지리적, 농경생물학적, 민족적 특징을 먼저 이해하지 못하고 쉽게 중국 문헌에 기대어 우리 음식을 이해하여 왔기 때문에 많은 오류가 있는 것이다. 이런 한자 등 사대주의적 우월성이 우리 조상들의 전통적, 문화적 고유성을 파괴하고 왜곡하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면 고추가 지구상에서 퍼진 것은 인간보다 수천 년, 수만 년 먼저 나타난 새(鳥流)에 수백만 년 전에 이미 이뤄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치 10~20만 년밖에 살지 않은 인간(Homo sapiens)에 의해서만 수백년 전에 퍼지고 진화되었다고 단정하여 결국 초기에는 우리 김치나 고추장이 없었고 이들의 역사를 100여년으로 축소 왜곡한 것이다. 또한 한자가 고작 수천 년도 안된 기록임에도 불구하고 중국과 말이 다른 우리 민족이 수만 년 전부터 따로 먹어오고 발전시킨 우리 음식을 대변할 것으로 착각하는 것이다. 농경학적으로 보면 우리 나라와 중국의 지리적 특성이 무척 다르다. 영토의 크기, 평야의 크기 등 거의 모든 측면에서 우리나라는 중국에 열악하다. 물론 지금의 중국영토가 고대 중국의 영토가 다는 아니지만 춘추전국시대, 삼국시대를 걸쳐 당송 시대의 영토 크기만 하더라도 우리 민족의 뿌리가 되는 만주를 걸친 한반도 영토를 다 합치더라도 비교가 안되고 농경자원도 풍부하다. 설탕만 우리나라에 있었어도 우리 조상들이 그렇게 음식을 맛있게 하는 데 갖은 고생을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설탕은 중국이나 우리나라에 없었다. 만일 설탕이 우리나라에 풍부하게 있었다면 오늘날과 같이 우리 음식이 그렇게 다양하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나라와 중국의 농경학적 차이는 기름(脂肪) 자원에 있다. 중국은 돼지기름, 생선기름과 같은 동물성 기름이 풍부했다. 그들은 돼지를 잡을 때도 기름을 먼저 쩠다. 기름을 이용하여 고열에서 음식을 만들고 튀기면 우선 음식이 맛이 있어지고 나중에도 먹을 수 있는 저장성도 확보하였다. 기름은 쉽게 300-400℃까지 쉽게 올릴 수 있다. 이 온도에서 요리하면 많은 향이나 구수한 냄새가 나기 때문에 더 이상 다른 맛을 낼 필요가 없다. 그래서 중국은 재료의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요리 방법의 다양성이 떨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중국처럼 기름이 풍부하지 않았다. 그렇다보니 맛을 내기 위하여 다양한 양념으로 맛을 내 식사를 하였다.. 참기름이나 들기름이 있어도 이들을 이용하여 음식을 튀길 생각은 해보지도 못하고 오로지 향이나 맛을 낼 때 조금씩 얹혀 먹는 정도였다. 우리 조상들은 기름 없이 물을 이용하여 아무리 불을 때도 100℃ 이상으로 온도를 올릴 수 없었다. 물은 100℃에서 끓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100℃이하에서 손으로 맛을 낼 수 있었다. 가장 쉽게 중국요리와 우리 요리를 아는 방법은 100℃ 이상에서 맛을 내면 중국음식, 100℃ 이하에서 맛을 내면 우리음식으로 구분할 수 있다. 다만 지금 중국의 동북3성에 기반을 둔 청나라 요리를 이 기준으로 들이대는 데는 고려해야 할 사항이 많다. 그래서 우리 요리는 ‘손맛’이고 중국요리는 ‘불맛’이다.
    양념의 한식, 불맛의 중식
    by 권대영
    2025.09.25 17:34:04
  • 앨런 홉슨(1933~2021년) 전 미국 하버드대 의대 교수는 10대 시절 한여름밤 어느 호숫가에서 친구들과 함께 별이 총총한 하늘을 올려다봤다. 그들은 우주의 광활함과 은하계의 신비에 감탄하고 있었다. 그러나 앨런은 이내 ‘자기 어깨 위에 얹혀 있는 뇌의 비밀도 제대로 알아내지 못한 마당에 우주의 경이에 관심을 둔다는 것이 가당찮다'고 느꼈다. 이에 앨런의 스승이었던 페이지 샤프는 이렇게 조언했다. “정신의 비밀을 풀기 위해서는 뇌를 연구해야 한단다.” 1955년 홉슨은 정신의학과 신경과학을 공부하기 위해 하버드대 의대에 입학했다. 그는 오스트리아의 심리학자이자 정신분석학자인 지그문트 프로이트의프로이트의 저서를 탐독한 뒤 열렬한 숭배자가 되었다. 하지만 몇년 후 레지던트 과정에 들어가면서 프로이트의 이론을 의심하기 시작했으며 정신의학에 환멸을 느끼게 되었다. 이후 홉슨은 미국 국립보건원(NIH)에서 수면 연구를 하게 되었다. 그는 잠든 피험자의 뇌파가 변하는 것을 목격하고는 바로 그날 밤부터 꿈 연구에 매진한다. 1977년 그는 로버트 매칼리와 꿈에 대한 신경생리학적 설명방식을 찾아낸다. 홉슨은 자신의 발견으로 프로이트의 꿈을 해석하는 심리학적 버팀목을 참담하게 무너뜨렸다. 그는 “꿈의 내용은 가능한 한 황금이 아니라 개똥이요, 인지적 보물이 아니라 쓰레기이며, 중요한 신호가 아니라 정보의 잡음이라고 여겨져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다음은 홉슨이 꾼 꿈이다. “나는 마치 사우나에서 나는 것과 같은 연기를 보았다. 그런데 나중에 보니 농장의 집이 불에 타고 있었다. 다시 보니 역시 집과 같이 보였지만 이번에는 장소가 (길 건너로) 바뀌어 있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화재에 대해 걱정하고 있었고 불을 낸 사람에게 벌을 주려고 벼르고 있었다. 갑자기 장면이 완전히 바뀌었다. 나는 작은 강가에 있었다. 빠르게 흐르는 물살과 흰 빛깔의 물이 보였다. 그 때 주황색 공이 소용돌이치는 물속을 향해서 솟아 올랐다. … 갑자기 줄리아가 물속에 뛰어들더니 매우 힘차게 팔을 저어 물살을 가르며 헤엄쳐 나갔다. 그러더니 공을 잡아서 반대편 강가로 던져버렸다. 이것은 거의 기적처럼 보이면서 동시에 매우 정상적으로 보였다.” 홉슨은 자신의 꿈을 이렇게 해석한다. “만일 이것이 정신 착란적인 경험이 아니라면 정신과 전문의로서 내가 한 지금까지 모든 수련은 조금도 가치가 없는 것이다. 나는 이 꿈 속에서 시각적 환각, 섬망(정신적 혼란), 강렬한 감정(분노, 걱정, 의기양양), 그리고 무엇보다도 결정적인 단서로서 지남력(시간, 장소와 상황을 인식하는 능력) 장애와 그것은 가까운 사촌뻘인 작화증(이야기를 지어내는 현상)을 경험했다. 깨여있는 상태에서는 마치 미친 것처럼 보여지는 이러한 이야기는 꿈속에서는 지극히 정상적으로 느껴졌다.” 홉슨은 결론을 내린다. “여기 꿈 과학의 생물학적 혁명에서 우리가 심각하게 숙고해야 할 개념이 하나 있다. 비록 꿈속의 변화된 의식상태가 매우 흥미롭고 정보가 풍부할지라도 꿈은 그 자체로 아무런 특별한 기능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적 꿈 해석에 맹렬한 비판자가 된 홉슨은 미국 정신의학회 학술대회에서 자신과 맥칼리가 함께 연구한 꿈 개념을 요약해 주었다. 홉슨의 발표가 있고 난 뒤 미국 정신의학회 회원들 사이에 프로이트의 꿈 이론이 홉슨의 발견에 비추었을 때 과학적으로 주장할 만한 가치가 있는지 여부를 묻는 투표가 있었다. 결과는 프로이트의 해석에 대한 압도적인 반대로 나타났다. 이는 과학적으로 말해 꿈의 작동원리에 관한 프로이트의 설명은 더는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제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적 꿈 해석방식은 어두운 골방으로 밀려나는 신세가 된다. 프로이트식 ‘꿈의 해석’은 끝장이 난 것일까? 뇌 과학적으로도 프로이트의 꿈 해석이 입증되기 위해서는 이로부터 20년을 더 기다려야 했다.
    꿈은 ‘정보의 잡음'이라는 앨런 홉슨
    by 국경복
    2025.09.22 10:36:37
  • 몇년 전 한 공중파 방송에서 우리 음식 100년사를 다룬 ‘한식연대기’라는 프로그램을 방영했다. 그 때 음식 인문학자라고 알려진 교수 J씨가 우리 음식의 발달사를 논하면서 대부분 그 뿌리가 100여 년밖에 안되는 것 같이 이야기를 전개해 크게 분노할 수밖에 없었다. 제대로 된 과학적인 검증 없이 그런 내용을 내보낸 방송국의 무책임에도 혀를 내둘렀다. 당시 프로그램에서 우리 음식의 시장화와 산업화 과정과 뿌리와 역사를 분별해 방송하였으면 좋았을 것이다. 우리 음식의 100년사를 다루다보니 스스로 논리적인 맹점에 우리 음식의 뿌리를 대부분 일본에 두는 모순이 발생한 것이다. 우리 음식의 시장화와 산업화의 시작을 대체로 지난 100여 년의 역사로 접근하는 것은 맞는 말이지만 우리 음식의 역사가 100여 년밖에 안되었다고 주장하는 논리는 매우 잘못됐다. 마치 떢볶이의 역사가 1960년대 신당동 마복림할머니에서 시작되었다고 주장하는 것과 같은 오류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다보니 당시 프로그램에서 우리 간장의 역사조차 일본의 간장에 뿌리를 둔 것 같이 이야기를 전개하는 모순이 발생한 것이다. 간장의 경우 우리 조상들의 지혜가 듬뿍 담긴 오직 한국에만 있는 독특한 음식이다. 간장의 원료인 콩은 만주와 한반도가 원산지인데 우리 민족에게 준 자연의 선물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 일본의 음식 발달 역사를 보면 다른 나라의 음식을 개량하여 시장화하고 산업화하는 역사로 200여 년밖에 안됐다. 일본은 1868년 메이지유신 이후 일본인들이 왜 키가 크지 않고 한국인들에 비해 허약한지 연구했다. 또한 서양 사람들은 배를 오래 타더라도 죽는 사람이 많이 나오지 않는데 왜 일본인들은 많이 죽는지에 대해서도 조사했다. 그 결과 식생활의 차이가 근본적인 이유 중 하나라는 결론을 얻고 한국 음식을 포함해 다른 나라 음식에 대해 대대적으로 연구했다. 이를 통해 수많은 식품들을 개발해 자국민의 단백질 부족은 돈가스(커트렛트)로, 비타민 C와 D의 부족은 카레, 나또(청국장), 소유(醬油, 간장) 등으로 해결하려고 했다. 자연스레 많은 식품들을 시장화하고 산업화할 수 있었다. 사실 메주, 청국장, 김치의 발효 과정과 관여 미생물, 기본 메커니즘 등 많은 연구가 일본 정부의 지원으로 일본인들이 연구한 것이다. 김치의 미생물 균총, 발효 과정도 일본인 연구자들이 처음 연구했다. 간장도 마찬가지다. 수백, 수천 년 전부터 우리 조상들이 먹어왔던 간장, 청국장, 된장을 일본인들이 과학적으로 연구해 발효균주, 발효기작 등의 발효 과정을 발표하였다. 일본 연구자들은 과학적 데이터에 근거하여 음식의 개량과 개발을 위한 연구를 시작해 오늘날의 일본 음식을 만들어냈다. 여러 발효 미생물 중 가장 효과적인 미생물을 찾아서 발효과정을 개량해 개량메주와 양조간장을 만들었다. 또한 여러 분해 효소를 연구하고 그 중 가장 좋은 맛을 내는 효소를 찾아내어 콩단백질에 직접 반응시켜 펩타이드를 만든 효소분해간장을 개발했다. 어떤 일본 과학자는 발효라는 복합공정을 거치지 않고 염산과 같은 강산을 이용하여 콩단백질을 산분해하여 단백질 분해물을 쉽고 싸고 얻어 산분해간장이라는 이름으로 팔았다. 또한 일본 과학자들은 서로 혼합간장을 만들면서 자기들에게 필요한 맛을 내기 시작하였다. 이렇게 해서 간장의 대명사와 같은 기꼬만과 같은 세계적인 일본 음식기업이 나오게 됐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 음식의 시장화 역사는 장터와 주막으로 대변되는 조선시대 이전으로 보아야 한다. 다만 가게와 음식점으로 대변되는 시장화의 역사는 조선 후기~해방 이후까지 100~150년 간 이어졌다고 할 수 있다. 물론 본격적인 우리 음식의 시장화 역사는 한국전쟁 이후 국민들의 삶의 투쟁 속에서 이뤄졌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음식 시장화의 역사를 우리 식품 산업화의 역사로 바로 연결지어서는 곤란하다. 좀 더 분명하게 이야기하면 우리 음식 산업화의 역사는 일제 강점기에 움트기 시작하여 해방 이후 일본의 기술과 공정, 시설을 들여와 시작한 역사라고 말할 수 있다. 다시 간장을 예로 들면 해방 이후 우리 기업이 일본의 간장을 갖고 들어와 비슷하게 생산하여 팔기 시작하였다. 이는 깔끔한 우리 간장의 맛과는 분명히 다른 맛의 간장이다. 국민들은 이 맛의 간장을 또 다른 용도로 좋아하게 되고 이를 ‘왜간장’이라고 부르기 시작하였다. 왜간장이 우리 간장을 토대로 개발된 것임에도 불구하고 시장에 먼저 나온 것이다. 그 결과 우리 간장은 왜간장과 구분할 필요성이 생기며 우리 간장은 ‘조선간장’으로 통용되게 됐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은 조선간장을 ‘왜간장과 동격의 간장으로 잘못 인삭하게 됐다. 이렇게 잘못된 간장 이름이 오늘날까지 이어져 온 것이다. 마치 부모가 자녀와 동격으로 인식되어 버린 셈이다. 이제라도 모든 수식어를 다 떼어버리고 간장은 ‘간장’으로 된장은 ‘된장’으로 메주는 ‘메주’로, 청국장은 ‘청국장’으로 바로 불러야 한다. 우리가 한식김치, 한식인삼, 한식청국장, 한식두부, 한식고추장이라는 말을 쓰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다. 만약 이런 말을 쓴다면 마치 김치, 청국장, 두부, 고추장이 다른 나라에서 들어와 한국화되었다는 잘못된 인식을 심어주게 될 것이다. 결국 일본 음식 200년사는 그들에게는 의미가 매우 클 것이나 한국 음식 100년사는 우리 음식 역사에서 그리 중요하지 않다. 한국과 일본의 음식 역사의 뿌리를 거슬러올라가면 이를 확연히 알 수 있다.
    '조선간장' '왜간장'의 진실
    by 권대영
    2025.09.12 17:36:40
  • 음식의 발달과정을 보려면 그 지역의 농경역사와 지리적 조건을 보아야 한다. 순대만 보더라도 우리나라 순대와 똑같은 순대가 서양에도 있으나 우리는 순대를 말려서 먹는 경우가 없는데 비해 서양은 순대를 국으로 먹는 경우가 없다. 정말로 세계 특히 유럽을 돌아보면 우리 순대와 비슷한 음식이 많이 있는 것을 보면 깜짝 놀란다. 그런데 섣불리 우리 순대의 뿌리가 서양에서 온 것이라는 주장을 하는 식품학자들이 있다. 음식의 역사는 그렇게 쉽게 이야기할 일이 아니다. 어느 나라 전통음식의 뿌리를 이야기할 때 기본은 그 민족의 뿌리와 처한 역사적 지리적 환경, 즉 농경학적 토대를 바탕으로 우선 이야기하여야 한다. 순대는 아프리카, 아시아, 유럽에 그 민족의 기호와 음식 철학에 맞게 다양한 형태로 존재한다. 서양에서는 대부분 순대는 건조한 형태로 존재하여 이를 다시 요리하여 접시 요리형태로 먹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농경, 밥상문화의 영향으로 바로 만들어서 말리지 않은 형태인 순대, 순대국으로 주로 먹는다. 어느 나라든 돼지를 잡으면 어떻게든 버리지 않고 모든 것을 다 맛있게 먹으려는 기본적인 철학은 같다. 그러나 왜 우리나라에서는 순대나 돼지고기를 말려 먹는 문화가 없고 서양에는 국과 같이 먹지 않고 말린 돼지고기 제품으로 먹는지 그 문화역사적 차이를 한번 생각해보고자 한다. 그 이유는 농경학적 환경의 차이에 있다. 우리나라에서 1970년대 모 재벌이 돼지를 대량으로 사육하기 이전에는 오늘날과 같이 돼지를 대량으로 사육하지 않았다. 전통적으로 농촌에서 집마다 헛간에 돼지우리를 만들어 한 두 마리 정도를 키웠다. 사료를 주어 키우기보다는 주로 사람들이 음식을 만들고 남은 부재료나 밥 먹고 남은 음식(짬밥, 꿀꿀이죽)을 먹여 키웠다. 심지어 어느 지역에서는 돼지가 사람의 똥을 받아먹고 자라게도 하였다. 이렇게 키운 돼지를 잔치나 상을 당할 때 잡거나 어느 정도 자라면 장에 내다팔았다. 한마디로 말하면 우리나라는 필요에 따라 돼지를 잡았다. 이에 비해 스페인과 같은 서양에서는 일찍이 사료를 먹였기 때문에 1년 농사의 개념으로 돼지를 키웠다. 즉 봄에 돼지 새끼를 키우기 시작하여 눈이 오는 겨울이 되면 먹이가 없고 사료가 부족하면 돼지를 정기적으로 잡아야 했다. 일종의 추수의 개념이다. 그래서 스페인과 같은 나라는 11월 11일이 되면 성마틴날(St. Martin Day)이라 하여 일제히 돼지를 잡는 풍습(마탄자, matanza)이 생기고 한 번에 다 먹을 수 없으니 어떻게든 나중에 먹는 방법을 찾아낸 것이다. 더군다나 겨울이니까 고기가 쉽게 상하지 않아서 잘 말리면 맛있는 음식이 생기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유럽에는 돼지 뒷다리를 건조하며 발효시킨 하몽(jamon), 순대와 비슷한 모르시야(morcilla), 보티파라(botifarra), 소시지, 삼겹살 말린 것 같은 베이컨 것들이 탄생한 것이다. 반면 우리나라는 초상집이나 잔치집에서 항상 동네 이웃 사람들과 같이 나누어 먹었기 때문에 돼지를 잡아 말려 보관할 필요성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우리나라 순대 먹는 풍습이 유럽, 몽골, 가깝게는 중국과 다른 것이다. 돼지를 잡으면 순대로 만들어 먹는 발상은 다른 어느 나라에서나 같고 기술이 어디서 배워야만 할 정도로 대단한 것도 아니다. 각 나라별, 각 지역별 농경과 지리적 환경, 문화적 차이가 어려움을 이겨내는 그들 나름대로의 지혜를 발견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순대 형태의 기록을 담은 중국 문헌인 시경(時經)에만 매달려서 순대 역사를 이야기하는 것은 탄생의 진실을 놓칠 수 있다. 세계에는 매우 다양한 순대가 존재하는 만큼 그 나라 고유의 지리적 환경, 역사, 식문화가 다른 것이다. 이것이 우리나라 안에서도 각 지역별로 순대가 각각 따로 있고 만드는 법도 조금씩 다른 이유이다.
    동·서양 순대로 본 음식 문화
    by 권대영
    2025.09.08 14:08:32
  • 독일 출신의 미국 약리학자인 오토 뢰비(1873∼1961)는 꿈에서 암시를 받아 뇌의 활동이 신경전달물질(화학물질)에 의해서도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최초로 입증했다. 그는 이 공로로 1936년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았다. 인간의 뇌에는 약 1000억개의 신경세포인 뉴런이 있는데 이 뉴런사이에 매우 작게 벌어진 틈새가 있다. 이 틈새를 시냅스라고 하는데 뉴런 사이에 정보전달이 이루어지려면 신경 전달 물질이 매개가 되어야 한다. 당시까지 과학자들은 신경세포사이에 정보전달은 오직 전기적 작용으로만 이루어진다고 생각했었다. 뢰비는 1921년(1920년이라는 기록도 있음) 부활절 전날 밤까지 관련 연구를 미루고 있었는데 그날 밤에 꿈을 꾸었다. 미주신경(뇌에서 시작하여 안면, 심장 등을 거쳐 복부에 이르는 신경)이 흥분하면 심장박동이 느려지게 된다. 그런데 꿈에서 그는 심장박동을 느리게 하는 어떤 신경전달물질이 매개체로 작용 하는 것을 보았다. 하지만 뢰비는 깨어나서 그 꿈을 기억하지 못했다. 다행스럽게도 다음날 밤 그는 같은 꿈을 한번 더 꾸게 된다. 다음은 뢰비가 기록한 글이다. “나는 깨어나서 불을 켜고 조그맣고 얇은 종이조각에 약간의 메모를 해 두었다. 그런 다음 다시 잠을 잤다. 아침 6시에 간밤에 내가 가장 중요한 무언가를 적어두었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러나 나는 이 휘갈겨 쓴 것을 판독할 수 없었다. 다음날 새벽 3시에 또 한번 그 생각이 났다. 그것은 17년 전 내가 언급하였던 화학적 전도에 대한 가설이 옳은가를 검증하기 위한 실험설계였다.” 뢰비는 나이트캡과 가운차림으로 당장 실험실로 내려가 그날 꿈에서와 똑같이 개구리 심장에 관한 실험을 재연해 보았다. 생리식염수를 담은 작은 용기에 따로 분리된 채 계속 뛰고 있는 개구리 심장의 미주신경을 전기로 자극하는 실험이었다. 한 마리 개구리 심장에 전기자극을 몇 분간 가하고 나서 인큐베이터의 액체를 다른 개구리의 심장이 들어있는 용기에 부어보았다. 그러자 그 심장에서도 곧바로 박동 리듬이 느려졌다. 뢰비는 이 실험을 통해 미주신경을 자극하면 그 말단에서 어떤 화학물질이 분비되고 그 물질이 용액 속에서 퍼져나간 것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그가 발견한 이 신경전달물질은 나중에 ‘아세틸콜린’으로 명명됐다. 뢰비의 실험으로 뇌에서 신경세포간 정보 전달이 전기적 접촉인지 아니면 화학물질에 의하여 이루어지는가에 대한 논쟁이 끝을 맺었다. 즉 신경전달물질이 뇌의 시냅스간 정보를 전달해주는 매개체라는 사실이 입증되었다. 사람들은 그의 발견으로부터 신경과학의 진정한 역사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가 당초에 예상하지는 못했지만 뢰비는 뇌에서 꿈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이해하는 데도 커다란 공헌을 하게된다. 연구몽이나 창작몽은 뢰비의 꿈과 같이 현실에서 풀리지 않았던 미해결 과제나 창의적인 생각이 그대로 투시되거나 암시방식으로 만들어지는 꿈이다. 연구몽이나 창작몽은 신경생리학자들도 인정하고 있다. 미국 하버드대 의대 교수였던 앨런 홉슨은 이렇게 말했다. “꿈을 꾸는 것은 가장 창의적인 의식 상태일 수 있다. 이 상태에서 인지적 요소가 무질서하게 즉흥적으로 재결합하면서 정보의 새로운 배열이 일어난다. 즉 새로운 아이디어가 탄생하는 것이다.” 수면 중에 계획·조절·검증 등 고차원적 기능을 담당하는 전전두엽은 대체로 쉰다. 이때 기억이나 정서를 담당하는 변연계나 무의식을 담당하는 부위가 엉뚱한 발상을 하거나 상상력을 거침없이 발휘하게 되면 이같은 꿈이 만들어질 수 있다. 꿈을 꾸는 렘(빠른안구운동) 수면은 사람의 뇌간(뇌줄기)의 특정 부위가 각성되면서 시작된다. 이 때 뇌간에 있는 중간뇌교피개에서 아세틸콜린이 분비된다. 아세틸콜린은 뇌에 저장된 기억을 강하게 불러일으키는 기능을 한다. 이 때문에 렘수면 때에는 생생하고 기묘한 꿈을 꾸거나 낮의 경험이나 기억의 파편들이 재조합되어 나타나기도 한다. 즉 아세틸콜린이 렘수면시 꿈의 시작을 알리는 과정에서 중요한 기능을 하는 것이다. 현대인은 뇌가 정상적인 기능을 하기 위해서는 신경전달 물질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뢰비가 발견한 아세틸콜린이 제대로 방출되지 못하면 질병에 걸릴 수도 있다. 미국의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1911~2004)은 퇴임 후 알츠하이머병에 걸려서 투병하다가 세상을 떠났다. 알츠하이머는 뇌세포가 점점 손실되면서 그로 인해 이차적으로 기억력이나 판단력, 계산력과 같은 지적 능력이 감퇴해가는 질환이다. 처음에는 말을 못하다가 나중에는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게 되는 무서운 병이다. 알츠하이머에 걸리면 대뇌 피질의 콜린계 화학물질의 활성이 감소된다. 콜린계의 대표적인 신경전달물질이 아세틸콜린이다.
    오토 뢰비의 꿈과 신경전달물질의 발견
    by 국경복
    2025.08.18 12:54:07
  • 꿈이란 개별적이고 주관적인 체험이다. 이러한 꿈의 내용을 분석하고 정신치료에 활용하여 임상적(clinical)인 효과를 보았다고 하더라도, 꿈 분석을 통한 치료 효과를 과학적인 방법으로 검증한다는 것은 또다른 차원의 문제이다. 꿈의 내용분석과 꿈치료 효과를 객관적으로 검증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꿈의 과학은 비약적으로 발전할 수 있다. 과학이 발전하면서 살아있는 사람의 뇌에 대한 관찰이 가능하게 되자, 꿈에 대한 또 다른 비밀의 문이 조금씩 열리기 시작하였다. 그 비밀의 문을 열었던 중요한 인물 중의 한 사람이 독일의 정신과 의사 한스 베르거(Hans Berger)다. 1892년, 젊은 베르거는 말에서 떨어져 길바닥에 쳐박히는 사고를 당한다. 그는 회상했다. ‘19세 대학생이던 나는 뷔르츠부르크에서 군사 훈련을 받다가 큰 사고를 당해 거의 죽을 뻔했다. 나는 가운데가 낮고 양쪽 가장자리가 높은 우묵한 길가에서 말을 타고 가다가 행군하는 대열 속으로 굴러떨어졌다. 포의 바퀴가 곧바로 내 몸을 깔아뭉갤 상황이었다. 말 여섯 마리가 끄는 포가 절체절명의 순간에 멈춰섰고, 소스라치게 놀랐지만 죽음을 모면했다. 그날 저녁 나는 아버지로부터 잘 지내느냐는 문안 전보를 받았다.’ 그는 큰 부상을 당하지 않았다. 신경과학(neuroscience)과 꿈의 생물학(a biology of dreaming)의 미래를 위해서는 무척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베르거는 그 이전이나 그 이후에도 누가 자신에게 그런식으로 안부를 물은 적이 한 번도 없었다고 밝혔다. ‘나와 형제애가 유난히 깊었던 큰 누나가 갑자기 부모님에게 내가 불운을 맞은 것이 틀림없다고 주장했다. 아마도 극한의 위험이 닥치고 확실한 죽음이 눈앞에 다가온 순간, 내가 발신자가 되고 나와 특별히 가깝던 누나가 수신자가 되어 텔레파시(telepathy)를 실행했을 것이다.’ 나중에 정신과의사가 된 베르거는 이것이 텔레파시(한 사람의 생각이 다른 사람에게 전달되는 현상)의 증거라 여겼다. 어느 날 그는 텔레파시가 어떤 ‘심령에너지’의 물리적 전달에 근거한다면, 이를 측정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다. 1924년 그는 이 가설을 검증해보기로 결심하고 머리피부 안쪽에 두 개의 전극을 넣고 그 사이에서 벌어지는 전기활동을 기록했다. 하나는 머리 앞쪽, 다른 하나는 머리 뒤쪽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전극에는 전기활동이 포착되었다. 하지만 이를 텔레파시의 근거로 내세우기는 너무 미약했다. 그러나 베르거는 인간의 뇌에서 뇌파(brain wave)가 나온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뇌파란 뇌가 활동함에 따라서 뇌의 신경세포가 만들어 내는 전류를 말한다. 1929년, 마침내 그는 뇌파를 증폭하여 기록하는 뇌전도(EEG, Electroencephaleogram)를 이용해서 환자의 머리 표면으로부터 뇌파를 측정하는데 성공했다. 이 뇌파의 기록을 보면, 자고 있을 때와 깨어 있을 때, 뇌의 신경활동이 확실히 다르다. 깨어 있을 때의 뇌파는 주파수(초당 진동수)가 높고, 진폭(진동의 중심으로부터 최대로 움직인 거리)은 낮다. 이에 반해서 보통 잘 때의 뇌는 저주파이고 고진폭의 뇌파를 특징으로 하며, 신경활동이 상당히 감소한다. 이 뇌파는 머리의 표면에서 측정가능할 뿐만아니라 미약하게나마 외부로도 전달된다. 이 뇌전도(EEG)는 임상신경학 분야를 비롯한 수면과 꿈 과학에 혁명을 일으켰다. 이것은 간질 환자뿐만 아니라 정상적인 사람의 뇌에서 일어나는 역동적 활동을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수단을 제공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베르거와 연구자들은 연구의 제약때문에 깊은 수면 후에 일어나는 많은 뇌 활동의 변화를 발견할 수 없었다. 베르거의 실험으로부터 20년 이상이 지나고 나서야 수면 중 꿈 꾸는 뇌의 극적인 변화에 대한 관찰이 객관적을 이루어지게 된다. 한편, 텔레파시의 존재에 대하여 심리학자 융은 확신을 가졌으며, 꿈의 내용을 결정하는 요인 중 하나가 텔레파시라고 분명히 믿었다. 프로이트도 나중에 텔레파시적 꿈을 현실로 받아들였다. 이후 심리학자나 꿈 과학자들이 텔레파시의 존재를 과학적으로 입증하려는 시도가 여러 차레 있었지만, 현재까지도 과학적인 확실한 증거로 뒷받침을 하고 있지는 못하다.
    뇌파의 발견, 꿈에 대한 비밀의 문을 열다
    by 국경복
    2025.07.30 10:59:34
  • 지구가 점점 더 뜨거워지고 있다. 동남아시아의 열대성을 방불케 하는 도심 속에 선 사람들은 '기후'가 아닌 '재난'의 중심에 서 있는 것처럼 느낀다. 기후 위기와 환경 재난은 더 이상 막연한 미래가 아니라, 지금 우리가 직면한 현실이다. 그런 무더운 시간 속에서 예술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블루력’은 무엇일까. 냉방보다 오래 지속되고, 차가운 물보다 더 깊이 스며드는 감각. 자연을 관조하며, 순환과 흐름을 새롭게 체감하게 만드는 예술적 경험이다. 최근 예술계에서 현대미술 아티스트들은 두 축, ‘환경에 대한 각성’과 ‘내면적 치유’를 공감각적으로 풀어낸다. 환경에 대한 경각심과 성찰을 유도하는 대표적인 현대미술 사례로는 2019년 베니스 비엔날레 황금 사자상 수상작, 리투아니아 작가 3인(루길레 바르즈쥬카이테, 바이바 그라이니테, 리나 라페리테)의 협업작 ‘태양과 바다·Sun & Sea’를 들 수 있다. 최근 한국에서는 뷰티 브랜드 탬버린즈의 초청으로 서울 성수동에서 국내 첫 공연이 진행되며 다시 한번 화제가 되었다. ‘태양과 바다 : Sun & Sea’는 실내 전시장에 인공 해변을 설치하고, 수십 명의 배우가 하루 종일 해변에서 여유를 즐기는 피서객을 연기하는 구조로 구성된다. 배우들은 해변에 누워 책을 읽거나, 개를 산책시키고, 아이들과 공놀이를 하며 평범한 일상을 이어간다. 관람객은 무대 아래가 아닌 복층 위층에서 내려다보며, 일종의 ‘태양의 시선’으로 휴양지의 한 장면을 조망하는데, 아래에서 들려오는 오페라 형식의 음악은 평화로워 보이는 장면 속에서 은연중에 ‘기후 위기 속, 이 풍경이 언제까지 가능할까’라는 질문을 던지게 만든다. 생태와 기후변화에 대한 사회적 메시지를, 유쾌하고도 날카롭게 전달하기에 성공적이었다. 기후 위기에 대한 예술적 접근이 날 선 경고음이라면, 자연을 마주하는 또 다른 예술의 역할은 감각적 치유에 있다. 정서적 이완과 공감이 가능한 임창민 작가의 작품을 소개한다. 임창민 작가가 담아낸 자연의 장면은 압도적으로 푸르다. 현대적인 건축미가 차갑게 느껴지는 아부다비 루브르 박물관의 실내 창 너머로, 시선이 닿는 끝까지 펼쳐진 수평선 위에 이는 파도와 물결, 그리고 햇빛에 반사되어 반짝이는 윤슬이 실제 바다처럼 느껴지는 아부다비 해변을 고요하게 감상해보자. 스위스 마터호른의 한 호텔 내부에서 창을 통해 고요한 설원 위로 눈발이 흩날리는 풍경이 펼쳐지기도 한다. 이른 아침 새하얀 눈과 푸른 알프스산맥이 맞닿는 장면은 시각적 온도를 단번에 낮추며 관람자의 체온까지 식혀주는 듯한 시원한 몰입감을 유도한다. 이처럼 임창민 작가는 멈춰 있는 실내의 사진과 창밖 자연의 영상 작업을 결합한 독창적인 방식을 통해, 자연의 움직임과 시간의 흐름을 한 화면 안에 담아내 온 작업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탈리아 돌로미티, 포틀랜드의 폭포와 호수, 한국의 섬진강과 대관령 등 그가 직접 머물며 기록한 아름다운 블루의 풍경을 창을 통해 전달한다. 작품 속에 항상 자리하는 ‘창’이라는 모티프는 단순한 액자가 아닌 ‘시간의 프레임’으로 작동하는데, 자연의 미세한 움직임이 화면 속에 포착되며, 정지된 듯 흐르고 흐르는 듯 멈춰 있는 시공간의 경계를 드러낸다. 이를 통해 관람자는 계절의 흐름, 자연의 호흡, 그리고 자신의 기억과 감각이 겹쳐지는 새로운 감각을 경험한다. 특히 두 장소를 작가의 시선과 기술을 통해 하나의 이미지로 병치시키며, 정제된 공간감과 생명력 넘치는 자연이 공존하는 이중적 풍경을 형성한다. 이러한 시각적 긴장과 조화는 관람자로 하여금 무더운 여름 한가운데서도 잠시 머물고 싶게 만드는 ‘감각적 청량함’을 선사하며 서로 다른 시공간을 넘나드는 비물리적 여행을 유도한다. 폭염 속에서도 전시장을 찾는 이들이 각자의 속도와 온도로, 예술과 공명하며 ‘Chill’해지기를 바란다. 자연의 영속성과 시간의 순환에 대한 현대미술 작가들의 사유는 결국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감각적 생존 전략이며, 무엇보다도 이 여름을 견디게 하는 가장 우아한 ‘블루력’일지도 모른다.
    기후 위기와 예술의 응답, 지금 필요한 ‘블루력’
    by 박소정
    2025.07.16 15:30:54
  • 꿈에서 인간이 동물이나 식물로 변하는 일이 발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장자(莊子, BC369~BC286, 본명은 장주)는 중국 전국시대 사상가 입니다. 그가 어느 날 꿈을 꿉니다. ‘내가 꿈에 나비가 되어 펄럭펄럭 날았는데 유유자적하여 내가 장주인 것을 몰랐다. 그러나 잠에서 깨니 내가 장주인 것을 알자 혼란스러웠다. 나와 나비 사이에는 반드시 구분이 있건만 내가 꿈에 나비가 되었는지 나비가 내가 되었는지 지금 알수가 없구나.’ 중국의 충장세자(忠莊世子) 역시 꿈속에서 자신이 물고기가 되었다가 다시 새로 변하는 꿈을 꾸기도 했습니다. 이 같은 꿈은 과거의 현상만은 아니며, 현대인에게도 발생합니다. 저명한 수면학자 월리엄 디멘트 교수는 자신의 2살도 안된 딸이 꿈에서 깨어나서 ‘아빠, 내가 꽃이었어요’라고 말했다고 전합니다. 이들 꿈에서는 사람이 나비, 물고기, 새나 혹은 꽃으로 변하여 등장합니다. 이같은 현상을 사람이 물화(物化, metamorphosis)되었다고 합니다. 장자나 충장세자는 자신의 삶이 보다 여유있고 자유스러우며, 편안하게 살고 싶은 마음의 일부가 드러난 것입니다. 디멘트 교수의 어린딸은 꽃처럼 예쁘고 사랑을 받고 싶은 심정이 꿈으로 재현된 것입니다. 이같이 꿈에서는 사람이 동물이나 식물 등으로 표상되기도 합니다. 즉, 이들 꿈에서는 꿈 꾼이의 인격의 일부 특성이 꿈으로 투사(projection)되어 나타난 것입니다. 이들 꿈을 게슈탈트 심리치료의 창시자인 펄츠의 방식으로 해석하면, 자신의 심리적인 감정의 일부가 나비, 물고기나 새 등으로 투사된 것입니다. 이들은 해석을 통하여 현실에서 동물처럼 자유롭게 행동하여 체험해 보고 싶은 감정들이 자신의 내면의 일부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이와는 반대로, 꿈꾼이의 내면 감정을 다른 사람에게 투사하는 경우에 투사의 대상이 되는 사람이 물화되어 나타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특히, 트라우마 꿈에서 가해자인 타인은 위협적인 동물로 등장하기도 합니다. 꿈에서 젊은 남성에게 위협과 성폭행을 당했던 여성은 그 남성이 ‘뱀으로 변하더니 그녀의 목을 조르는’ 꿈을 꿉니다. 내가 심리상담을 했던 어느 젊은 여성은 꿈에 뱀이 자신을 쫓아와서 도망가다가 절벽까지 몰립니다. 무서운 뱀이 자신을 공격하는 모습에 크게 놀라서 잠에서 깨어납니다. 자유연상을 통해서 그녀의 억압(repression)되었던 감정이 표출되었는데, 그 뱀은 현실에서 그녀를 괴롭히던 자신과 아주 가까운 사람이었습니다. 어린시절 왕따를 당해 심리적인 고통으로 심한 우울증을 겪고 있던 20대 청년은 심리치료를 받으면서 많은 꿈을 꾸는데 심리상담 중반에 다음과 같은 꿈을 꿉니다. ‘나는 들판에 어떤 사람들과 함께 있다. 그런데 옆에 있던 사람이 괴물로 변한다. 나는 괴물에게 욕하고 소리치고 싸우다가 도망을 간다.’ 2년간의 치유를 받으면서 우울증에서 거의 회복될 무렵에 온전한 자기를 찾는 꿈을 꿉니다. ‘초원에 버섯집이 있다. 버섯 집 문 앞에 화가가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고 있다. 버섯 집 옆에는 풀밭이 있는데 아이들이 뛰어 놀고 있다.’ 그는 자유연상(free association)을 통해서 자신의 꿈을 이해합니다. 꿈에서 화가는 이제는 자신의 마음을 자유스럽게 표현할 수 있는 그 자신이며, 풀밭에 뛰어노는 아이들은 자유를 찾게 된 자신의 내면의 아이라고 받아들입니다. 현대 신경생리학에 의하면 꿈 꾸는 렘(REM)수면 동안에는 현실을 인지하고 판단하는 등 지휘부 역할을 하는 뇌의 전두엽은 활성화되지 않습니다. 이 부분이 활성화되지 않기 때문에 꿈에서는 날기도 하고, 동물이나 식물로 전환이 가능하게 됩니다. 꿈 해석에서 새로운 통찰력을 주었던 프리츠 펄스(Fritz Perls·1893~1970)는 독일출생의 유대계 정신과 의사입니다. 그는 베를린에서 태어나서 성장하였으며 28세에 의학박사 학위를 받습니다. 1926년 프랑크푸르트에서 당시 유명했던 신경정신의학자 골드슈타인(Goldstein)을 만나서, 전체로서 통합된 유기체 이론을 접하고 매우 감명을 받습니다. 1934년 그는 히틀러의 탄압을 피해 남아프리카로 갔는데 거기서 정신분석학회를 창립하기도 하였습니다. 1942년에 프로이트의 공격본능 이론을 비판하는 새로운 이론을 개발하여 ‘자아, 배고픔, 공격’이론 책을 펴고 프로이트 학파와 완전히 결별합니다. 1946년 미국으로 이주하였고, 1950년 ‘알아차림(awareness)'이라는 이론을 정립하는 한편, 처음으로 게슈탈트(Gestalt) 치료라는 용어를 만들어 냈고, 공저로 ‘게슈탈트 치료’라는 책을 펴냅니다. 펄츠는 자유로운 영혼을 지닌 활달한 성격의 소유자였습니다. 엉뚱한 행동으로 사람들을 당황하게 만들었으며 매우 자극적인 쇼맨십으로 좌중을 압도하며 강렬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의 성격에 대한 주변 사람들의 평가는 극단적으로 다양하다. 매우 도전적이고 통찰력이 있으며 영감이 탁월한 사람으로 평가되기도 하는 반면, 엉뚱하고 자기도취적이며 충동적인 사람으로 평가되기도 했습니다. 꿈 해석과 관련해서, 펄스는 융과 마찬가지로 모든 꿈은 꿈꾸는 사람에게 꿈이 보내는 실존적 메시지를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꿈꾸는 사람이 외부의 권위적 인물이 행하는 ‘해석’에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 내면으로부터 그 메시지를 스스로 새롭게 발견할 때 그런 메시지의 존재를 더욱 분명히 느낄 수 있다고 합니다. 꿈에 나오는 모든 요소들은 투사된 자기의 부분들이며, 이들은 이상적으로는 자기에 통합되고 수용될 수 있으며, 적어도 부분적으로라도 자기 것으로 인정될 수 있는 것들이라고 봅니다.
    우리는 왜 ‘장자의 꿈’을 꾸는가
    by 국경복
    2025.07.02 13:4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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