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37
  • II장 15. 죽음의 속임수 화들짝 놀란 것은 전화벨 때문이 아니었다. 관리실의 호출이었다. 내가 없다고 여겼는지 한순간 끊기더니, 다시 집요하게 울렸다. 관리실의 이런 질긴 연락은 아파트에 문제가 생겼을 때였다. 수돗물을 며칠째 잠그지 않아서 아래층으로 흘러내리거나, 화재가 발생했거나 비상사태일 경우이다. 며칠 제정신으로 살지 않았기에 내가 실수를 저질렀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나는 관리실 인터폰을 눌렀다. ‘안 받는데 자꾸 그러시니 … 소용이 ….’ 인터폰을 통해 관리실에서 나누는 대화가 들려왔다. 뭔가 심상찮아서, “여보세요”하고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상대방은 어, 하더니 급하게 말했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계신가요? 관리실 소장입니다. 아버님이 편찮으셔서 찾아온 사람이 있습니다.” 순간 제정신이 번쩍 들었다. 급하게 사람을 바꿔 달라고 했다. “대사님의 새 기사 이무진이라 합니다. 아버님이 병원에 계시는데 위급 상황입니다. 모시러 왔습니다. 아버지의 기존 기사는 내가 잘 아는 공식 대사관 직원이었지만, 은퇴 후 아버지가 새로 고용해서 내가 알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기사 이무진은 긴급한 목소리로 서둘러 말했다. “어머님이 옷과 필요한 것을 다 준비해 두었으니 그냥 내려오시면 됩니다. 병원에 가야 하니 신분증과 꼭 마스크를 쓰고 내려오세요.” 나는 구두만 꿰신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갔다. 어지간해서 어머니가 사람을 보낼 분이 아니다. 나는 평소처럼 뒷좌석에 앉으려다가 기사 옆좌석에 올라탔다. 주차장을 빠져나가니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비가 쏟아졌다. 아버지의 상태를 물어보고 싶었지만, 윈도우브러쉬가 매우 빠르게 움직여도 시야 확보가 되지 않아 기사는 앞만 주시하고 있었다. 나는 차가 방향을 잡을 때까지 참고 기다렸다. 아버지가 병원에 입원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이번 국제예술창작재단의 대담만 끝나면 찾아뵙겠다고, 그 대담을 나중에 보실 수 있게 해드리겠다고 자랑까지 했다. 그런데 국제적인 망신을 당할 만큼 죽을 쑤고 심지어 도망자의 신분이 되고 보니 아버지의 얼굴을 볼 용기가 나지 않아 미적거렸다. 자동차가 대로로 접어들었을 때, 나는 서둘러 물었다. “왜 진작 연락하지 않았습니까.” “아무리 전화해도 연락이 되지 않았고 심지어 위치 추적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제가 이 아파트에 와서 초인종을 수없이 눌러도 소용이 없었고, 아파트 입구에 적재된 우편물을 보니 아파트에 없다고 여겨서 결국 돌아갔습니다.” 여러 번 초인종을 누르는 남자를 인터폰 화면으로 보긴 했지만, 코로나 방지 마스크 때문에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없는 상황이었다. 새 기사의 얼굴을 알 리도 없었다. 전도 목적이거나 아파트 관리실의 성가신 동의 사인 등 때문이라고 여겨서 대답하지 않았었다. “아버지의 상태가 심각한가요?” 차장을 때리는 빗방울과 바람 소리에 못 들었는지 기사는 묵묵부답이었다. 아버지의 자동차가 서강대교를 넘어 합정동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갈림길에서 얼핏 바깥을 보니,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이라는 교통 안내판이 오른쪽으로 보였다. 다른 상호나 안내판은 빗물에 보이지 않는데, 그것이 눈에 선명하게 들어온 것이 섬뜩했다. 죽은 자를 묻는 묘원! 외국인 선교사들이 아주 작고 가난한 나라 ‘조선’에 복음을 전하려고 왔다가 마지막에 묻힌 곳이다. 전도가 그들의 소명이라니 말할 나위가 없지만, 죽고 나서도 자신의 뼈까지 이 땅에 묻는 그들의 마음이 감히 짐작이 가지 않았다. 하지만 아픈 아버지를 만나러 가는 길에 유독 외국인선교사묘원이 눈에 들어온 것이 불안했다. 나는 더 빨리 달리라고 말하려다가 말았다. 내 차로 가겠다고 우겼으나, 이무진 기사는 반드시 태우고 와야 한다는 지시를 어머니께 받았다고 했다. 이유를 물었더니, 이무진은 망설였다. “과속으로 사고가 생길까 봐 그러신 것 같습니다.”라며 말끝을 흐렸다. 차는 신촌 세브란스 병원 앞쪽으로 가까워지고 있었다. 입원실 주차장으로 들어간다고 여기는 순간, 기사가 세브란스병원 입구를 지나쳤다. 길을 잘못 든 것 같았지만, 다른 입구로 들어가도 병원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기사도 마음이 급하니 순간적으로 첫 번째 입구를 놓친 모양이었다. 차가 유턴 신호를 기다리더니, 세브란스병원의 다른 입구가 아니라 왼쪽으로 꺾었다. 어! 왜지?, 라는 의문으로 주시하는 동안, 차는 세브란스 장례식장 건물 앞에 도달했다. “장례식장 8호입니다. 지하에서 내리는 것보다 이곳에서 내려서 들어가는 편이 좋을 것 같습니다.” 기사는 나를 내려주고 지하 주차장으로 차를 끌고 사라졌다. 갑작스럽게 친척이 코로나로 죽었을까. 코로나로 죽으면 12시간이 아니라 4시간 안에 화장해야 한다. 그래서 나를 급하게 찾은 것이다. 자존심이 무너지고 수치심에 칭칭 감겨 제대로 먹지도 못한 1주일간을 보낸 뒤라, 갑자기 어지럼증이 느끼며 병원 안으로 들어갔다. 병원은 입장이 엄격하게 제한되고 있었다. 장례식장에는 가족만이 들어갈 수 있다며 신분증과 죽은 가족의 이름을 대라고 했다. 나는 누가 죽었는지 모르기에 신분증만을 제시했다. 직원은 신분증으로 뭔가를 확인하더니 나를 들어가게 했다. 나는 누가 죽었는지 알기 위해 병원 벽면에 계속 올라오는 죽은 자들의 얼굴 리스트를 훑었다. 도대체 누가 죽었기에…. 김담정! 아버지의 온화하고 환한 얼굴이 사진영상에 박혀 나타났다. 상주에 내 이름이 제일 먼저 나왔다. 누나와 여동생의 이름이 보였다. 그 아래 ‘부인’ 어머니의 이름이 보였다. 1주일 동안 칩거하면서 도망가는 악몽을 많이 꾸었고, 과거 잘못한 일도 많이 깨우쳤다. 그런데 이런 악몽까지 꾸는 것은 조금 과하다. 꿈에 시체를 보면 길몽이라고 들었던 기억이 아련하게 났다. 병원 직원은 나에게 병원 지하 1층으로 내려가라고 했지만, 나는 여전히 달아나고 싶었다. 아버지가 아파서 입원실로 가려던 것이니, 장례식장에 가서는 안 된다는 의식이 꿈속에서도 뚜렷하다. 마침 주차장에 주차를 마치고 올라온 기사가 나에게 지하로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를 타라고 권했다. “대사님은 어젯밤에 소천하셨습니다. 그나마 입관을 보실 수 있어 다행입니다.” 기사가 너무나 또렷한 발음으로 말해서, 꿈이 아니라 현실이면 어떡하나 하는 생각이 처음 들었다. “살아계신 아버지를 왜 죽었다고 거짓말을 하십니까.” 나는 힘은 없지만 엄중한 목소리로 물었다. “제가 살아계신다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어머님의 지시였습니다. 찾게 되면 아버지의 죽음을 말하지 말고 데려오게, 라고 하셨습니다. 충격받아 사고를 염려하셔서 제가 모시게 된 것입니다.” 마음이 급하면 폭주하는 내 성격을 어머니는 잘 알고 계셨다. 그렇다 해도 어떻게 죽음의 속임수를 쓸 생각을 하셨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인공낙원의 문』 대담 후에도 사람들은 한결같이 속임수를 쓰면서까지 나를 보호했다. 여태 이런 방식으로 내가 살아왔다고 알려 주려고 다들 음모라도 꾸민 듯했다. 하지만 최소한 죽음의 속임수만은 쓰지 말라고 소리치고 싶었다. 이무진 기사는 걸음을 서둘렀다. “코로나 사태 때문에 입관을 미룰 수 없는 상황입니다. 입관을 보실 수 있게 된 것이 그나마 다행입니다. 입관이라니! 누구 허락으로 아버지를 관속에 넣는다는 말인가. 누구 허락으로 아버지가 죽었다는 것인가. 누구 허락으로! 나는 기사를 따라 좁은 통로를 걸어갔다. 이것이 꿈이 아니라 현실이라는 선명한 느낌이 든 것은 ‘참관실’이라고 적힌 문 앞에 섰을 때였다. 기사가 문을 열어젖혔다. 검은 옷차림의 가족과 몇 명의 미지인에 둘러싸인, 입구 쪽으로 몸을 뉜 틀림없는 아버지의 허연 머리가 보였다. 그 옆에 좁고 긴 나무관이 기다리고 있었다. ▶다음 회에 계속 … 김다은은 ‘당신을 닮은 나라’가 1995년 제3회 국민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소설가로 등단했다. ‘덕중의 정원’ ‘훈민정음의 비밀’ ‘쥐식인 블루스’ 등 20여권 소설책을 출간하고, 다수 번역돼 해외 소개됐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주관한 폴란드 바르샤바대학 작가 레지던시를 비롯, 청송 객주 문학관, 정선 여량면 아우라지 레지던시, 해남 인송문학촌 토문재 레시던시에 참가했다. 이화여대 불어교육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파리8대학에서 불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추계예술대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작권자의 허락없이 무단 부분 혹은 전체 전재, 복사, 배포를 금합니다.)
    종의 기원
    by 김다은
    2024.11.18 09:13:52
  • 14. 곡선의 시간 나는 직선적인 시간의 삶을 사는 사람이었다. 자명종에 맞춰 이른 새벽에 일어나고, 잘 짜진 일정표에 따라 매우 능동적으로 활동하고, 늦게까지 일하고도 밤에는 헬스장에서 근육 만드는 일에 게으르지 않고, 깊은 어둠 속에 지쳐 잠에 빠져들곤 했다. 원하면, 일을 미루거나 심지어 팽개치고 달콤한 휴식을 위해 거침없이 떠날 수도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모든 것을 내려놓고 떠나려고 하는데도 꼼짝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너희는 값으로 사신 것이니 사람들의 종이 되지 말라 어디로 가야 이 한 문장 안으로 들어가는 좁은 길을 찾을 수 있을까. 산 넘고 물 건너 고행을 감행한다고 찾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어쩌면 틀어박혀 성경을 제대로 읽으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대담장에서처럼 눈에 비늘이 덮여 성경을 제대로 읽을 수 없는 상태다. 그래서 떠날 짐을 제대로 꾸릴 수도 그대로 퍼질러 앉아 있을 수도 없다. 서울국제도서전의 피날레 행사의 초대 링크 오픈 시간이 9분 남았다. 두문불출한 1주일 동안, 여태 무슨 일을 하고 살았나를 계속 돌아보게 되었다. 한번 삼킨 먹이를 다시 게워내듯 계속 반추를 하니, 과거에 이미 끝난 일들과 과거에서 끝나지 못하고 현재로 이어진 것들이 구분되었다. 셀 수 없이 많은 국내외 행사들과 내 사유를 담았다고 여겼던 원고들이 허망하게 거의 기억에 남아있지 않았다. 그때그때 청탁에 맞춘 글들이어서 나에게 큰 의미를 남기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이익 관계에 묶인 수많은 행사와 인간관계도 대부분 일회성이거나 조건적이어서 과거에 종결된 경우가 많았다. 직선의 시간에서는 예의와 친절로 무장하면 탈이 날 것이 별로 없었다. 갈등이 생길 조짐이면 중도를 선택했고, 갈등이 터졌을 때는 침묵을 선택하면 최소한 비겼다. 하지만 과거로 끝나지 못한 사건이나 감정들은 현재의 시간으로 이어져 흘러왔다. 그중에 가장 치욕스러운 『인공낙원의 문』의 표지 문구 사건은 되돌이표의 지시처럼 현재의 시간 위로 자꾸 겹쳐졌다. 이 사건 이후로 나는 직선의 시간을 살 수 없게 되었다. 후회와 자책을 되풀이하는 곡선의 시간을 살 수밖에 없었다. 겹쳐진 시간은 수치심의 넝쿨을 만들며 온몸을 휘감는다. 어떤 친절과 예의나 웃음으로도 빠져나갈 수 없는 소용돌이 시간이다. 침묵도 해결책을 주지는 않았다. 지고 나서도 회복력이 빠른 것이 나의 성품인데, 지금처럼 감정이 바닥이 아니라 지하층으로 끝없이 끌려 내려가는 경우는 처음이다. 김아리랑 팀장을 대신해서 온 노랑머리 직원은 내가 도망을 갔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자기 탓으로 사과했다. 그녀는 어떻게 그런 선의의 결정을 선취할 수 있었을까. 내가 그것이 맞는 말이라고, 당신의 어설픈 설명이나 전달로 대담이 끝난 줄 알았다고, 그래서 아주 유유히 그곳을 나갔다고 수긍했다면, 그녀는 직업적으로 큰 타격을 입을 수도 있었다. 어린 여직원 하나가 감히 나를 위해 자기를 희생하겠다고 결단했단 말인가. 촬영기사는 아무 일도 없었던 척 대담 영상을 마무리해서 서울국제도서전에 올려놓고, 아주 멋진 엔딩 장면이 완성되었으니 염려하지 마시라는 문자를 보내왔다. 확인해 보니, 내가 도망간 빈자리를 시작으로 프랑스 작가의 책 『인공낙원의 문』을 클로즈업하여 표지 문구가 화면을 가득 채운 상태로 영상은 끝나 있었다. 나에게 엿 먹이는 엔딩이었다. 대담자였던 프랑스 작가에게 느끼는 감정은 복합적이었다. 그에게는 수치심이자 존경심을 느꼈고, 굴욕이자 선망을 느꼈으며, 그리고 시간을 되돌려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이자 일생에 만난 가장 충격적인 사람이었으며, 더 빨리 만나고 싶었던 사람이었다. 그를 알기 전, 나는 화려한 빛 속에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그와의 대담으로 인해 내가 믿었던 빛이 도리어 어둠임을 자인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지만, 표지 문구 한 문장으로 한 인생을 가짜 빛에서 진짜 어둠으로 던져 넣은 것이다. 대담 중에 파악한 그의 성품으로는 거짓을 말할 사람은 아니었다. 그가 이메일에서 ‘처음으로 대담다운 대담을 했다’고 적은 것은 어쩌면 진실일지도 모른다. 그 전언이 일말의 안도와 위로가 되었지만, 그 앞에서 고양이 앞의 쥐처럼 아무것도 제대로 생각할 수 없던 시간을 떠올리면 쥐구멍이라고 들어가고 싶다. 반복되는 수치심과 죄의식은 한 단편소설의 스토리를 떠올리게 했다. 한 할아버지와 한 할머니가 등산로 입구에서 우연히 만나 자신의 인생에서 이루지 못한 꿈을 이야기하게 된다. 할머니는 한 번만이라도 해외여행을 해보는 것이 꿈이었다고 말한다. 할아버지는 죽기 전에 같이 여행을 떠나보자고 제안하고, 여행 가는 날 공항에서 만나기로 했다. 할머니는 평생의 꿈을 이루기 위해 여권을 만들고, 필요한 옷가지들을 돈을 아끼지 않고 준비하며 가장 바쁘고 설레는 한 달 반을 보냈다. 그리고 약속 날에 공항에서 할아버지를 기다렸다. 출발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지만, 할아버지의 모습을 볼 수가 없었다. 단 한 번 만난 사람이라 얼굴을 알아보지 못하는가 싶어 할머니는 힘든 다리를 끌며 공항 전체를 헤매기 시작했다. 할아버지는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이 단편소설 스토리를 한 작가에게서 들었을 때는 할아버지의 신의 없음에 분노했던 것 같다. 그런데 지금은 할머니가 느꼈을 꿈의 패배가 너무나 쓸쓸하게 가슴에 와 닿는다. 약속 한마디를 지키지 못해 남의 꿈을 얼마나 잔인하게 찢어버렸을까. 초대 링크의 오픈 시간은 2분 23초가 남았다. 그 무정하고 잔인한 할아버지가 나와 다르다고 말할 수가 없다. 지금 나도 약속을 지키지 않고 달아나려고만 하지 않는가. 어, 그렇다. 내가 다시 달아나면, 나는 개인적인 약속이 아니라 국가적인 약속을 어기게 되는 것이다. 아……아버지! 이 약속을 어기면 나의 이력은 그렇다 치고, 평생 외교관 생활을 해오신 아버지의 삶과 업적에 스크래치를 낼 것이다. 불안한 예감이 찾아들었다. 아버지가 크리스천으로 나에게 참빛을 전하기 위해 평생을 애썼지만, 나는 호탕하게 산 편이었다. 외교관의 아들이라는 타이틀 하나만으로도 인간관계나 일이 매우 수월했고 탄탄대로였다. 아버지는 하나님이 자신을 외교관의 자리에 세워주신 것에 언제나 감사하며 세상과 사람을 섬겼지만, 나는 아버지가 외교관인 것에 언제나 감사하며 사람을 부렸다. 크리스천 아버지는 빛과 어둠의 차이를 정확하게 아시는 것 같았지만, 나는 비로소 내 삶이 어둠이라는 사실을 막 깨달았다. 참빛을 알지 못하니 내 자체가 어둠이다. 수치심과 죄책감에 사로 잡인 죄인이다. 아버지를 생각하니 왜 갑자기 불안한지 알 수 없었다. 최근에 건강이 좋지 않다고 들었는데 찾아가서 뵙지도 못했다. 아버지께 전화해야 할 것 같은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초대 링크의 오픈 시간은 채 1분도 남지 않았다. 49초를 남겨놓고 있다. 그때, 깜짝 놀랄 만큼 큰 소리로 전화벨이 울렸다. ▶다음 회에 계속 … 김다은은 ‘당신을 닮은 나라’가 1995년 제3회 국민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소설가로 등단했다. ‘덕중의 정원’ ‘훈민정음의 비밀’ ‘쥐식인 블루스’ 등 20여권 소설책을 출간하고, 다수 번역돼 해외 소개됐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주관한 폴란드 바르샤바대학 작가 레지던시를 비롯, 청송 객주 문학관, 정선 여량면 아우라지 레지던시, 해남 인송문학촌 토문재 레시던시에 참가했다. 이화여대 불어교육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파리8대학에서 불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추계예술대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작권자의 허락없이 무단 부분 혹은 전체 전재, 복사, 배포를 금합니다.)
    종의 기원
    by 김다은
    2024.11.11 09:00:00
  • 13. 좁은 길 거의 한 주간 두문불출했다. 음식을 제대로 먹지도 않았는데, 수염은 무슨 영양분으로 이렇게 자라났을까. 괴로움을 잊으려고 술을 마시거나 잠을 잔 것도 아니었다. 나는 도리어 맨정신으로 도망자의 사태를 직면하고 있었다. 1주일 전 아파트로 돌아오면서 꺼내온 우편물들은 뜯기지 않은 채 거실에 흩어져 종이 홍수가 난 상태였다. 우편물은 세상과 내가 연결되어 있다는 증거물이었다. 매월 구독하는 문화예술잡지들, 증권사에서 보내온 투자 설명서, 인터넷 쇼핑 광고물, 아파트 관리비 통보 등이었지만 고스란히 그대로 있었다. 1주일 동안 다시 배달된 우편물들이 우편함 입구에서 넘치다 못해 삐져나와 있을 것이다. 나는 흩어진 우편물들을 설렁설렁 살펴보다가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이름으로 발송된 초대장을 뜯었다. 서울국제도서전에 참가한 세계 각국 작가들을 초청하는 온라인 행사의 초대장이었다. 작가들을 위해서 영어와 프랑스어와 스페인어로 축사를 해달라는 부탁을 이미 한 달 전에 받았고, 나는 승낙을 한 상태였다. 날짜를 보니 행사는 오늘이었고 3시간도 채 남지 않았다. 초대계정을 뚫어지게 보다가 초대장을 덮었다. 또 다른 초대장이 눈에 띄었다. 아는 유튜브 스타 S가 보낸 것으로, 온라인에서 남녀 만남을 주선하는데 오프라인처럼 마스크를 쓰고 참가해야 하는 것이 특이사항이라고 했다. 행사 제목은 ‘여자를 안달나게 하는 법’이었고, 마스크는 안날나게 하는 법의 일환이었다. 나는 미친놈처럼 웃어 제겼다. 내가 폭소를 터뜨린 것은 S의 콘텐츠가 우스워서가 아니었다. 여자를 안달나게 하지 못했을 때 남자가 느끼는 굴욕감을 유튜브에서 설명하던 그의 언어표현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굴욕감이란 하필 수업 도중에 화장실에 가고 싶어서 손을 들고 허락을 받았는데, 교실을 나서기도 전에 바지에 오줌을 싸버려서 다른 학생들이 모두 알게 되면서 창피를 당하는 감정 같은 것’이라고 설명했었다. 대담장을 도망 나온 굴욕감이 차라리 그런 감정이라면 견딜만했을 것이다. 오줌을 싼 학생이 교실을 나가도 수업은 진행될 수 있지만, 대담자가 없는 대담은 더는 진행될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당일 몇 시간이나 거리를 헤매면서 타인이 쫓아오지 않는 도망자의 수치심이 어떤 것인가를 뼈저리게 느꼈다. 하지만 굴욕감이나 수치감 때문에 아파트에 1주일이나 나 자신을 감금해 버린 것은 아니었다. 스스로 감금당했다기보다, 아파트를 나설 엄두가 나지 않았다. 지진은 예기치 않게 일어났다. 갑자기 모든 것이 흔들렸고 무너져 내렸다. 내가 여태 단단히 디디고 서 있던 세계로부터 내가 이탈된 듯했다. 이 아파트 안만이 내가 여태 알고 있던 세계를 보존한 느낌이었다. 이전의 세계과 지금의 세계 사이에는 한 문장이 있었다. 수많은 강연에서 나는 ‘언어 한 문장의 힘이 얼마나 강한지를 알아야 한다’고 설파했었다. 그 본보기를 제대로 보여주기라도 하듯, 대담에서 문제가 되었던 한 문장이 나를 이렇게 영혼의 폐허로 내몰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내가 믿었던 지혜와 명철의 세계에서 쫓겨난 느낌이었다. 내 말이 나를 잡는 미끼가 되고 말았다. 나는 순간 쓰레기차 옆 정자에 서 있던 여자가 떠올랐다. 버릴 수밖에 없는 물건에서 마음을 거두지 못해 서 있었던 낭만적인 모습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그것은 자신의 세계가 폐허가 된 광경을 지켜보는 내 모습과 비슷했다. 아니 내 세계의 폐허를 그녀의 눈을 통해 확인하고 있었을지도 몰랐다. 내가 1주일 동안 두문불출하면서도 유일하게 세상 밖으로 머리통을 내민 순간이 떠올랐다. 거대한 철제 집게 손이 사정없이 여자의 머리를 치려던 순간, 나는 놀라서 창밖으로 급하게 고개를 내밀었었다. 어쩌면 그 자리에 있었던 것은 여자가 아니라 나 자신의 페르소나를 환상적으로 본 것인지도 모른다. 서울국제도서전의 휘날레 행사는 30분도 채 남지 않았다. 온라인이지만 제대로 샤워하고 옷도 챙겨 입어야 할 시간이었다. 나는 꼼짝할 수가 없었다. 내가 도망갔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나에게 사과하던 노랑머리도 화면에 나타날 것이고, 자신의 대담자가 말없이 사라져버렸는데도 ‘처음으로 대담다운 대담을 했다’며 장문의 이메일을 보내온 프랑스 작가도 얼굴을 내밀 것이다. 서울국제도서전에 참가한 세계 각국 작가들도 나타날 것이다. 국가 차원의 감사와 축사를 하기 위해 각국의 대사나 문화원장도 참석할 것이다. 이 화려한 행사에서 비열한 도망자가 축사를 말해야 할 판이었다. 나를 부끄럽게 만든 것은 도망 그 자체가 아니었다. 도망조차 하지 못하는 양심을 가졌다면 절망했을 것이다. 나는 대담장을 빠져나오면서, 아니 도망 나오면서, 도망 나오고 나서 한참 헤매면서 그 문장이 성경에서 나온 것임을 선명하게 깨달았다. 그것은 전혀 어려운 추리가 아니었다. 문장의 어투만 보아도 성경에서 나온 것임을 누구나 알아챌 수 있었다. 그런데 대담장에서는 눈에 비늘이 덮인 듯 그것이 보이지 않았다. 그 문구의 출처가 성경이라는 사실을 알고 나서도 달라진 것은 없었다. 나는 성경을 모르는 사람이 아니었다. 유럽권에서 외교관을 지낸 아버지는 모태 크리스천이었고, 출생하는 아이들에게 성경 속 인물의 이름을 주는 서양문화 속에서 유학 생활을 했고, 더구나 유럽의 예술과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성경 통독이 필수였기에 군데군데 뛰어넘으면서 읽은 횟수로 치면 서너 번은 읽었을 것이고, 학문적으로 접근해서 성경의 한 구절이 지니는 가치를 논하는 글을 쓴 적도 있었다. 그래서 문제의 표지 문구가 성경 몇 권 몇 장에 있는지 다시 찾아본다고 달라질 것은 없었다. 지금은 읽어도 읽을 수 없는 문장이기 때문이다. 나는 두려움이 일었다. 진리가 나를 자유케 한 것이 아니라 도리어 어둠 속에 나를 가두어 버린 상태였다. 누군가 숨어서 나를 기다리다가 잡아채서 어둠의 주머니 안에 가둔 듯이 보이지 않았다. 이 어둠에서 계속 발버둥치면서 영원에 갇힐지도 몰랐다. 하지만 구조대의 신호가 반짝이고 있었다. 10분 안에 온라인 행사의 계정 안으로 들어가서 보란 듯이 여러 언어로 축사를 해주면 그것으로 충분할 것이다. 내가 이 초대장에 응한다면, 나는 과거의 나를 아주 쉽게 복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우편함을 가득 채우는 세상의 수많은 요청에 응답하며 그전보다 더 큰 명예와 영예를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심지어 국제예술창작재단의 실패한 대담도 노랑머리의 잘못으로 치부하면 그만이었다. 그녀의 애매한 전달로 대담장을 떠났다는 거짓말 한마디면 뒷마무리를 충분히 할 수도 있었다. 프랑스 작가가 보내온 ‘대담다운 대담을 처음으로 했다’는 문장을 보여주면, 그 대담이 얼마나 성공적이었는지 주변을 손쉽게 납득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세상을 조금만 속이면 나는 기존의 세계로 복귀할 수 있었다. 세상의 수많은 책의 문장들에 말을 걸며 내 지혜와 명철을 뽐내는 넓은 길을 걸어갈 수 있었다. 세상의 수많은 책을 방패 삼아 세상에서 더 많은 명예와 기쁨을 누릴 수도 있었다. 하지만 무엇이 내 영혼을 혼미하게 하여 그 표지 문구를 이해하지 못하게 했는지 알고 싶었다. 표지 문구, 그 한 문장 안에 내가 여태 만나지 못한 세계가 있다는 것을 이제는 부인할 수가 없다. 나는 우편물들 안에 든 수많은 책과 문장들이 제시하는 넓은 길로 다시 나가기보다, 여태 가보지 않은 길, 프랑스 작가가 선택한 표지 문구 한 문장의 의미 안으로 들어가 보고 싶었다. 그것은 인간적인 경쟁심도, 내 자존심도, 진정한 독서의 신이 되기 위한 결단도 아니었다. 그 한 문장의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그 한 문장의 세계 속에서 살아보고 싶었다. 나는 그 한 문장 안의 좁은 길로 들어가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 나는 정말 그 문장으로 들어가는 입구를 찾아 떠나기로 했다. ▶다음 회에 계속 … 김다은은 ‘당신을 닮은 나라’가 1995년 제3회 국민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소설가로 등단했다. ‘덕중의 정원’ ‘훈민정음의 비밀’ ‘쥐식인 블루스’ 등 20여권 소설책을 출간하고, 다수 번역돼 해외 소개됐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주관한 폴란드 바르샤바대학 작가 레지던시를 비롯, 청송 객주 문학관, 정선 여량면 아우라지 레지던시, 해남 인송문학촌 토문재 레시던시에 참가했다. 이화여대 불어교육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파리8대학에서 불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추계예술대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작권자의 허락없이 무단 부분 혹은 전체 전재, 복사, 배포를 금합니다.)
    종의 기원
    by 김다은
    2024.11.04 10:18:21
  • II 부 12. 쓰레기 연인 어제부터 시작된 쓰레기 분리수거가 오늘 아침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나는 4층 아파트 창가에 서서 플라스틱류나 비닐류로 차곡차곡 채워진 거대한 포대기가 작은 섬들처럼 아파트 앞에 놓여 있는 광경을 내려다보았다. 매주 저렇게 많은 쓰레기가 모이는 것이 경이로울 정도였다. 주민 두 사람이 양손에 겹겹이 접어 담은 종이상자들과 빈 병들을 담은 봉투를 번갈아들며 수거 장소로 가는 모습이 보였다. 아파트 앞으로 대형 쓰레기차가 들어서는 것을 보고, 늦장을 부리던 주민들이 종종걸음으로 서둘러 날랐다. 유학 시절, 프랑스 파리의 한 외곽 아파트에 살 때는 부엌에 쓰레기 수거 우체통이 있었다. 우체통 모양의 구멍으로 무슨 쓰레기건 던져 넣었다. 고층에서 아래로 흘러가서 지하 어느 한 곳에 모이는 것을 수거하는 구조였다. 주민은 어떤 경로로 쓰레기가 처리되는지는 알 필요가 없었다. 그 편리한 시스템에 익숙해 있다가, 한국에 와서 고층에서부터 저층까지 모두 쓰레기를 들고나오는 진풍경을 보았다. 며칠 간의 호텔 생활에서 벗어나 아파트 일상으로 진입하면서부터 그 쓰레기 운반 과정을 나라고 피할 수는 없었다. 게으름을 피우면 집안에서 냄새가 스멀거렸기에 어쩔 수 없이 매주 수요일 밤 11시가 넘어서 어둡고 인적이 뜸할 때 나가곤 했다. 나와 비슷한 부류와 마주치면 아는 척도 하지 않고 빈 깡통 던져넣고 도로 들어갔다. 어쩌면 나보다 더 늦은 시간에 나온 올빼미들도 있었을 것이고, 그 행렬은 새벽까지 계속되어 지금 시간에 이르렀을 것이다. 대형집게 크레인 트럭에서 젊은 기사 한 명이 내렸다. 트럭 뒤쪽의 크레인을 움직이자 거대한 집게 손이 하늘에서 천천히 내려갔다. 마치 거대 스크랩의 붉은 손같은 집게가 종이상자를 한꺼번에 움켜쥐었다. 놀라운 효율이었다. 어떻게 저렇게 많은 쓰레기를 운반해가는지 궁금하던 차였는데, 철제 집게 손은 단번에 수십 개의 상자를 한꺼번에 잡아서 올렸다. 어, 거대 철제 스크랩 손이 나무 정자 옆에 서 있는 한 여자의 머리 위로 떨어지는 모습을 보았다. 너무 놀라서 몸을 창밖으로 내밀었다. 다시 보니, 다행히 집게 손이 여자의 머리를 친 것은 아니었다. 직장인이라면 출근 준비를 하고 주부라면 출근 준비를 시켜야 하는 시간이었다. 여자는 아랑곳없이 정자 옆에 서서 붉은 스크랩 손이 땅의 쓰레기를 트럭으로 운반하는 광경을 지켜보고 서 있었다. 짧은 반바지에 푸른 티셔츠를 걸치고 챙이 긴 모자를 쓴 모습이었다. 집게 차와 나무 정자 사이에 간격이 있었지만, 내 아파트에서는 집게 손이 내려올 때마다 여자를 칠 것 같은 각도로 보여 아찔하곤 했다. 왜 저렇게 쓰레기의 매력에 빠져 넋을 놓고 있는지, 나는 비키라고 여자에게 소리치고 싶었다. 이 바쁜 아침 시간에 스크랩 손의 영웅적인 활동에 빠진 여자의 모습이 한심하다 못해 매력적이었다. 고개를 계속 들고 있는 여자를 계속 내려다보고 있는 내 모습이 더 한심하게 여겨졌다. 그 순간에도, 지각 주민 한 명 나타나 재빠르게 쓰레기를 투척하고 사라졌다. 무슨 연유인지 발길을 떼지 못하는 여자를 보면서, 과거 내가 폐차시켰던 자동차가 생각났다. 10년 이상 타고 나니 수리의 빈도가 점점 잦아지더니, 큰 도로 한가운데에서 갑자기 멈춰 버리는 순간이 왔다. ‘푸’른 조명이 음악과 잘 어울려 마음속으로 아꼈고, 내 분주한 스케줄을 잘 맞춰준 ‘조’력자라는 의미에서 ‘푸조’라는 이름까지 붙여주었던 애마였다. 중고차로 처분하려니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위험한 차를 다른 이에게 넘기는 것도 사람이 할 도리가 아닌 듯해서 폐차를 결정했다. 필요한 절차를 밟고 약속을 잡은 날, 폐차장 직원이 나타났다. 자신의 트럭 꽁무니에 간단하게 내 ‘푸조’를 연결하더니 달리기 시작했다. 살아있는 개처럼 내 하얀 자동차가 끌려갔다. 애처롭게 끌려가는 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꼼짝 않고 서 있었다. 너무나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어쩌면 저 여자도 버려야 할 것을 버려놓고, 차마 마음을 떼지 못해서 서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대한 쇠 스크랩 집게 손에 의해 쓰레기 뭉치가 다시 하늘에 붕 치켜 올려졌다. 하늘 위로 올려진 쓰레기 뭉치는 마치 바쳐지는 제물처럼 신성하게 보였다. 다음 순간 쓰레기 뭉치가 트럭 위로 사정없이 떨어져 내렸다. 마치 ‘푸조’가 나에게 버림을 받고 트럭에 연결되어 끌어가던 순간처럼 애잔했다. 인간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의식주를 기꺼이 제공하고 이제 그 껍데기들만 남아서 결국 쓰레기라는 이름으로 쓰러지는 마지막 순간이었다. 나는 ‘푸조’를 위해 애도의 시간을 가지지 못한 것이 후회되었다. 무엇이 그렇게 바쁘고 중요해서 10년 이상이나 내 발이 되어 주었던 존재에게 작별인사도 제대로 하지 못했나 싶었다. 여느 때 같으면, 나는 메모장에 ‘쓰레기를 위해 애도’라는 메모를 남겼을 것이다. 커피를 마시고, 책상 앞에 앉아서, 내가 오늘 창밖으로 본 풍경과 ‘푸조’에 대한 애도와 그리고 붉은 스크랩 집게 차가 트럭 위에 쓰레기를 부려놓은 후 사정없이 짓뭉개서 부피를 줄이던 광경을 묘사했을 것이다. 쓸모를 다하고 사라져가는 것들을 위해 애도한 시간을 그럴듯하게 적었을 것이다. 그리고 상상력을 발휘해서 짝사랑하는 남자의 쓰레기와 여자의 플라스틱 그릇이나 병들이 쓰리기 수거차 안에서 비로소 만나는 상상을 신나게 적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런 ‘쓰레기 연인’의 이야기를 쓰면서, 쓰임을 다하고 사라져가는 쓰레기들을 마지막까지 모욕하고 싶지 않았다. 뻑뻑한 유리 창문을 닫으면서,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진짜 버려야 하는 것들을 결국 버려야 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물리적으로 거처를 옮길 때 정리해야 하는 많은 물건처럼, 마음도 이사하려면 정리해야 할 것들이 생겨날 수밖에 없었다. 버려야 할 것들이 많아진 이유는 내 삶의 중요했던 것들이 더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기 때문이었다. 도리어 그것들로부터 도망을 가야 하기 때문이었다. 중요한 내용물이 다 빠진 거푸집 상황에 직면했기 때문이었다. 갑작스러운 정신적인 위기감 때문이었다. 이 위기감은 내가 프랑스 작가와의 대담에서 도망쳐 나오던 날 이미 감지한 것이었다. 그날, 잠깐의 휴식시간에 국제예술창작재단의 대담 장소를 빠져나오고 말았다. 화장실에 갔다가 다시 대담장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휴식 후에 대담이 다시 이어질 것을 분명히 알고 있었지만, 나는 알지 못하는 것처럼 그곳을 떠나버렸다. 핸드폰으로 나를 찾는 메시지가 계속 들어오고 있는 것도 알고 있었지만, 알지 못하는 척했다. 그리고 밤거리를 정신없이 헤매다가 집에 돌아왔을 때는 도리어 사과 메시지가 도착해있었다. 노랑머리가 보낸 것이었다. 자신의 미숙한 전달로 내가 대담이 끝난 것으로 착각했을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나는 그 사과문을 받고 더 괴로웠다. 어디든지 달아나고 싶었고, 달아날 곳을 찾아 헤매는 난잡한 꿈을 꾸며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그다음 날 아침에는 프랑스 작가에게서 이메일이 직접 와 있었다. 덕분에 처음으로 대담다운 대담을 했다는 매우 정중한 감사 인사와 함께, 혹여 자신의 실수나 오해가 있었다면 알려달라고 적은 글이었다. 나는 정말이지 쓰레기차의 플라스틱들이나 빈 종이상자들처럼 짓뭉개져서 산산이 부서지고 싶었다. ▶다음 회에 계속 … 김다은은 ‘당신을 닮은 나라’가 1995년 제3회 국민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소설가로 등단했다. ‘덕중의 정원’ ‘훈민정음의 비밀’ ‘쥐식인 블루스’ 등 20여권 소설책을 출간하고, 다수 번역돼 해외 소개됐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주관한 폴란드 바르샤바대학 작가 레지던시를 비롯, 청송 객주 문학관, 정선 여량면 아우라지 레지던시, 해남 인송문학촌 토문재 레시던시에 참가했다. 이화여대 불어교육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파리8대학에서 불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추계예술대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작권자의 허락없이 무단 부분 혹은 전체 전재, 복사, 배포를 금합니다.)
    종의 기원
    by 김다은
    2024.10.28 09:00:00
  • 11. 사람이라는 이름 “아기의 이름 ‘라비’는 생명이라는 뜻이지요?” 내 질문에, 지중해 건너편에 있는 작가의 푸른 눈이 샘물처럼 맑아졌다. “오! 맞습니다. 라비는 죽음의 관에서 나와 새로운 생명을 얻는 인간을 상징화한 것이지요.” “라(La)+비(vie)! 프랑스어를 모르는 독자들은 눈치채지 못할 수도 있어요.” 작가는 이런 말에 민감하기 마련이었다. “책 속의 단어들이 숨바꼭질한다고 여겨주세요. 첫눈에는 안 보여도 중요한 것은 독자들이 찾아내고 말지요. 작가는 일부러 숨길 때도 있답니다.” 순간, 작가가 일부러 숨겨놓은 다른 것을 나는 보았다. 지도에 없는 나라라고 설정되어 있지만, 프랑스어를 계속 키워드로 사용하는 것으로 보면 소설 속 나라는 암암리에 프랑스를 지칭했다. 당장 밝히기보다 마지막 카드로 남겨두고 싶었다. 그가 계속 표지 문구의 의미를 스스로 풀어놓도록 유도했다. “아기의 이름을 왜 홉이 아니라 단테가 짓도록 했나요? 이름을 짓는 것은 보통 그것의 주인이 하는 일인데요.” “오! 예리한 발견입니다. 새 자동차를 개발하면, 그 자동차를 개발한 회사가 이름을 주는 것과 같은 것이지요. 단테가 이름을 붙인 것은 당분간 아기의 주인이 그라는 뜻이지요.” “당분간? 작가님의 이름은 누가 주셨나요? 부모님이 주셨나요?” “오! 아닙니다. 저는 부모님이 누군지 모르고 자랐습니다. 나에게 처음 이름을 준 자가 누구인지 잘 모릅니다. 자라면서 우여곡절로 이름이 여러 번 바꿨고, 지금은 제가 지은 필명으로 살아갑니다.” “그랬군요. 제가 실례되는 질문을 한 것 같군요.” “혈육의 부모는 없었지만, 저의 주인은 따로 있습니다.” “자유로운 작가가 그런 말씀을 하시니…….” “작가로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으로 말하는 것입니다. 대담자 씨! ‘사람’이라는 이름을 누가 우리에게 주었을까요? 그 이름을 준 자가 우리의 주인이 아니겠습니까.” 대담을 시작하기 전에 주최 측으로부터 나는 한 가지 당부를 받았다. 종교적 혹은 이념적 논쟁을 벌이지 말아 달라는 것이었다. 그런 논쟁은 몇 시간이고 각자 자기주장만 되풀이하다가 끝난다고 했다. 지금 종교적인 논쟁을 시작하려는 것은 상대방이었다. 내가 대답하지 않자 작가가 말했다. “아시겠지만, ‘아담’이 사람이라는 뜻이지요. 아담이라는 이름을 누가 주었을까요?” 작가가 원하는 대답은 하나님이었다. 크리스천의 논리에 따르면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사람의 주인이다. 하지만 그 대답은 표지 문구의 모순을 푸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값으로 사신 것이니 사람들의 종이 되지 말라 하나님이 답이라면 표지 문구의 의미는 더 꼬여버린다. 하나님이 사람의 주인이라면, 하나님은 사람을 팔 수 있는 쪽이지 살 수 있는 쪽이 아니다. 자동차를 만든 회사가 자동차를 팔 듯이 말이다. 누가 하나님에게 무엇을 치르고 사람을 살 수 있단 말인가. 누가 팔고 누가 사건, 값으로 팔릴 수 있다면 사람은 결국 종의 상태를 벗어날 수 없다. 나나 작가나 서로 말이 없자, 촬영팀에서 내 쪽을 힐끗 쳐다보았다. 출판사 편집자도 기자들의 반응을 살폈다. 기자들도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는 작가의 질문에 더는 꼬박꼬박 대답할 의지를 상실했다. 대신에 다른 공격 도구를 준비해서 나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갑자기 떠오르는 책이 있습니다. 19세기 프랑스 시인 샤를 보들레르가 쓴 책입니다. 그는 당시 파리의 생활에 심한 우울증을 앓았고, 글도 잘 쓰지 못해 방황합니다. 안면이 있던 의사를 찾아가지요. 그가 건넨 약물은 대마초 해시시였습니다. 보들레르는 처음에 거절하지만, 다시 제 발로 찾아갑니다. 그렇게 환각의 공간인 해시시 클럽에 들어가서, 대마초에 절어 글을 쓰게 됩니다. 해시시 클럽에서 작가 발자크와 위고, 화가 들라크루아 등과 환각의 교제를 이어갑니다. 마약은 매춘으로 이어졌고……그리고 보들레르는 시집 외에도 해시시 클럽의 경험을 담은 산문책 『인공낙원』을 썼습니다.” 보들레르는 파리의 아름다운 풍경 뒤에 숨은 어두운 절망과 우울의 색깔을 포착한 탁월한 시인이었다. 그런데 대담을 하면서 나의 취향이 갑자기 달라진 것이다. 그의 걸작들이 마약의 힘에 의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동시에 그의 작품들에 열광했던 시간이 후회스러웠다. 국제예술창작재단의 노랑머리 여자가 고개를 가로젓는 모습이 내 눈에 희미하게 들어왔다. 멈춰달라는 뜻인데, 나는 무시하고 계속 말했다. “작가님의 소설 『인공낙원의 문』도 보들레르의 마약 클럽을 본뜬 것은 아닌지요?” 작가는 앞서와 달리 약간 주춤하는 모습이었다. 작가의 대답을 들으려고 물은 것은 아니었다. 아무 의미 없는 표지 문구에 스스로 코가 꿰서 여태 혼자 발버둥을 친 것이 억울했다. 나를 이렇게 만든 작가에게 회심의 일격을 가하고 싶었다. “흔히 소설 주인공은 작가의 페르소나라고 볼 수 있습니다. 작가님도 단테처럼 마약의 피해자거나 마약과 관련된 경험이 있으신 것이 아닌가요?” 모든 스텝이 일제히 긴장하는 분위기가 피부 세포로 느껴졌다. 나는 더 개의치 않았다. 작가가 보들레르처럼 마약에 절어 표지 문구를 뽑아냈을 것 같았다. 알 듯 말 듯 어리석고 모순된 문장으로 전 세계 독자를 홀리고 싶었을 것이다. 그는 단어들의 환각을 이용하여 사람들을 취하게 하고 싶었을 것이다. 작가라면 어리석은 독자의 눈을 열어주어야 하는데, 도리어 그는 명철하고 지혜롭던 ‘독서의 신’의 눈을 감겨버렸다. 나는 읽어도 읽지 못하는 장님이 되고 말았다. 이런 상태로 독자들에게 책을 안내하는 것은 한 장님이 장님의 무리를 인도한다는 것과 같았다. 순간, 촬영기사가 벌떡 일어났고, 조명이 꺼졌다. ▶다음 회에 계속 … 김다은은 ‘당신을 닮은 나라’가 1995년 제3회 국민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소설가로 등단했다. ‘덕중의 정원’ ‘훈민정음의 비밀’ ‘쥐식인 블루스’ 등 20여권 소설책을 출간하고, 다수 번역돼 해외 소개됐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주관한 폴란드 바르샤바대학 작가 레지던시를 비롯, 청송 객주 문학관, 정선 여량면 아우라지 레지던시, 해남 인송문학촌 토문재 레시던시에 참가했다. 이화여대 불어교육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파리8대학에서 불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추계예술대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작권자의 허락없이 무단 부분 혹은 전체 전재, 복사, 배포를 금합니다.)
    종의 기원
    by 김다은
    2024.10.14 09:01:55
  • 우리는 지금 K-팝과 K-드라마가 세계 여러 곳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있다. 때로는 한국의 팝과 드라마가 세계 문화의 주류가 될 것이라는 의견도 접한다. 이에 대해 생각해 보자. 세계에 알려지고 있는 한국의 드라마들은 TV 드라마이고, 그 주제는 잘 사는 가정이나 궁중 이야기들이다. 쉽게 말하자면, ‘이야기-즐기기’의 드라마들이다. 한국의 TV 드라마는 과거의 진실을 파헤치는 역사·사회적 또는 인간에 대한 근원적 질문, 현실에 대한 반성 등의 지성적 문제를 다루지 않는다. 영화 역시 비슷하다. 이념 선전에 치우친 영화들이 대부분이다. 역사적 사실을 추구해야 하는 다큐멘터리 마저 사실 규명을 소홀히 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20세기 중반 이후 대중문화가 전통 상류문화를 밀어내고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된다. 대중문화가 귀족문화를 밀어낸 것은 대중시대의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대중문화가 전적으로 오락에만 빠져든 것은 아니다. 유럽에서는 진지함을 추구하는 지성적 작품이 이어져 온다. 체코 태생의 헝가리 감독인 벨라 타르(Bela Tarr)의 ‘사탄 탱고’(1994년)와 ‘토리노의 말’(2011년)이 좋은 예일 것이다. 대단한 작품들이다. ‘사탄 탱고’의 상영 시간은 439분으로, 내가 본 영화 중 가장 긴 시간의 영화였다. ‘토리노의 말’은 한국에서도 상영되었고 벨라 타르 감독은 부산 영화제에도 참여했었다. 아시아를 보자. 이슬람의 종교적 족쇄 하에서도 이란은 ‘올리브 나무 사이로’(1994)와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1987)와 같은 아름다운 영화를 발표한다. 이들과 어깨를 겨룰 수 있는 한국의 영화가 있는지 모르겠다. 나는 2000년 이후 제작된 한국의 영화를 끝까지 본 것이 거의 없기 때문에 자신 있게 말하지는 못 하겠다. 욕설과 폭력으로 뒤덮힌 초기 장면을 견디기 어려워 초반을 넘겨 본 영화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K-팝은 어떤가? 노래는 멜로디와 가사로 이루어져 있다. 멜로디에는 좌우의 이념이 없다. 정치적 이념에 무관심한 대중이 몰두하는 곳이 스포츠와 음악이 아닐까? ‘푸른 곰팡이’(BTS)와 ‘사건의 지평’(유하)은 항생제와 블랙홀의 용어를 가사로 사용한다. 이념에 무관심하다는 제스처다. 음악 이야기를 하면, 애호가들은 “클래식은 그 후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해 한다. 베토벤, 브람스에 이어 20세기 초, 바르톡, 스트라빈스키로 이어진 클래식이 어떻게 변모했는지 궁금한 것이다. 음악과 미술은 20세기 중반 이후 개념 예술로의 길을 간다. 개념화된 예술이 무엇인지, 대중이 떠나 버린 그림과 음악을 살펴 보기로 하자. 그림은 기억 속의 남아 있는 모습을 그리는 작업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암각화가 그렇고 성당의 벽화와 성화가 그러했다. 이들에게는 멀리 있는 사물을 작게 그려야 할 이유가 없었다. 기억 속의 그림은 크기의 구별이 없기 때문이다. 르네상스 시대를 지나면서, 원근법이 등장해 그림을 지배한다. 원근법에 의하면 멀리 있는 것은 작게 그리고 가까이 있는 것은 크게 그려야 한다. 현실을 분석한 것이다. 19세기에 이르면 색채 역시 분해해서 그린다. 지적인 분석이다. 이 모든 변화는 그려야 할 대상을 지적으로 분석한 결과다. 대상에 대한 과학적 접근인 셈이다. 그후 관심은 대상에서 주체로 옮겨 온다. 19세기의 문화적 특징이다. 그림의 경우, 한 시점이, 두 시점으로 분산된다. 앞에서 본 얼굴과 옆에서 본 얼굴을 겹쳐 그리게 된 것이다. 두개의 객관이 하나의 주관 안에 들어온 것이다. 대상을 보는 ‘내’가 탈-시간화된 것이다. 그후 지적 관심은 “그림이란 무엇인가”로 도약한다. 1917년 마르셀 듀쌍은 소변기를 ‘Fountain’(샘)이라는 이름으로 전시하고, 1929년 르네 마그리뜨는 ‘La Trahison des Images’(이미지의 배반)을 발표한다. 그림 안의 문구인 'Ceci n'est pas une pipe'(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의 메시지는 “이것은 그림, 즉 파이프의 기호이지 입에 물 수 있는 실물 파이프가 아니다”이다. “그림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인 셈이다. 그림은 대상의 미적 표현을 넘어선다. 화가의 철학적 신념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변모한 것이다. 그림이 철학적 의견이 되었다. 다음의 세 그림은 미국의 마크 로스코(1903-1970)의 추상화다. 첫 그림은 ‘세계는 검은 색 속의 오랜지 색’이라는 철학적 견해로 해석될 수 있다. 그런 상징적 해석이 싫다면 색 자체의 아름다움으로 보아야 한다. 이때 색은 사물을 벗어난 색, 즉 추상이다. 이 그림을 보고 “이런 그림이라면 나도 그리겠다”고 이견을 제기한다면, “콜럼버스의 달걀을 생각하세요”라는 답을 들을 것이다. 음악에 대해서 살펴보자. 바로크 시대 이후, 제1주제와 제2주제를 각각 tonic(으뜸조)과 dominant(딸림조)의 두 조 위에 얹은 것은 ‘아랫 마을과 윗 마을’이라는 두 공간을 도입해 음악적 공간을 확대하기 위함이었다. 그후 바그너는 이 기법을, 짧은 시간 동안 여러 조를 정신 없이 드나드는 기법으로 확산시킨다. 쇤베르크는 그렇게 하느니 차라리 옥타브의 열두 음 하나하나를 독립된 공간으로 생각해, 열 두개의 공간 연속체를 만들자고 제안한다. 12음 음열이다. 시간 흐름에 의해 파악되는 공간 에서 시간을 빼앗은 것이다. 음악의 진행이 공간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공간이 시간을 먹어버린 결과를 낳는다. 음악의 시간적 청취가 없어진 것이다. 쉽게 생각해보자. 쇤베르크의 12음 음악은 멜로디를, 12개의 음열로 대체한다. 이는 대상, 즉 각 성부의 수평적 진행의 아름다움인 멜로디의 포기한 것이다. 감성적 판단의 자리를 수학의 아름다움이 빼앗은 것이다. 다르게 말하면, 하나의 물체를 창조한 것이다. 그곳에 ‘들음’, 즉 청취는 없다. 음악 듣기에는 음들의 상하 관계가 있었다. 음열 음악에서는 그러한 으뜸-딸림의 위계가 없어진다. 멜로디가 없어진 추상-음악이 된 것이다. 1960년 이후, 한국 대학의 클래식 작곡가들은, 쇤베르크가 내다 버린 ‘대상의 감성적 아름다움’를 가슴에 안은 채, 12음 기법으로 아름다운 음악을 만들려고 매달린다. 모순된 일이다. 지금도 여전하다. 이처럼 개념화된 그림과 음악이 대중들의 관심 밖으로 밀려남은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여기에서 화가와 작곡가들의 기괴한 행동과 포퍼먼스가 등장한다. 호기심을 자극해 대중을 갤러리와 콘써트홀로 유도하려는 시도였다. 화가들의 기괴한 행동은 널리 알려져 있으므로, 여기서는 현대음악 작곡가의 기괴함을 보기로 한다. 슈토크하우젠(1928-2007)은 9.11 테러 당시 언론을 향해, "이런 사건에서도 나는 음악적 영감을 얻는다"고 공언한 후 언론의 맹렬한 질타를 받는다. 이어 그는 며칠 전 안드로메다 성운을 다녀 왔다고 주장한다. 기자들의 여러 번의 질문에도 끝까지 자기 주장을 부정하지 않았다. 그는 연주자에게 기하학적 그림을 제시하며, 보고 생각나는 대로 연주하라고 요구한다. 지금까지 유럽의 지성적 예술이었던 그림과 음악의 개념화 과정을 살펴보았다. 몰락에 가까운 변질이다. 20세기의 문화는 지성과는 무관한 대중이 소비자인 문화다. 전통 예술의 입장에서 보자면, 음악과 미술이라는 한 쪽이 죽어버린 가지 사이에서 새로운 싹이 솟아나는 현상으로 비유해야 할 것이다. 음악의 경우, 대중음악이 그 자리를 차지한다. 미술의 경우, 설치미술, 환경미술, 액션페인팅 등의 여러 모습으로 변모한다. 세계의 여러 나라의 경우를 보자면, 드라마와 영화는 여전히 지적 작품을 생산하고 있다. 넓게 보자면 문학, 즉 이야기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도 이제 시간 때우기를 넘어선 인간과 역사 그리고 경험하는 모든 것에 대해 이야기에 근거한 질문을 던지고 이를 추구해야 한다. 그것이 문화가 가야 할 바른 길이기 때문이다. 1900년 이후 우리는 민주주의와 공산주의가 마주하는 지정학적 조건 아래 살아 왔다. 20세기 후반, 놀라운 경제 발전을 이루었고, 우파들이 경제에 열중하는 동안, ‘종북 가짜 진보’들이 대중 문화를 뒤덮어 왔다. 이제 가짜의 세계를 벗고 진실의 시대를 열어야 한다. 진정한 질문을 할 수 있는 시대를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K-팝과 K-드라마가 세계적으로 유행하고 있다는 말에 취하지 말고 미래의 올바른 문화를 생각해야 한다는 뜻이다. ‘토리노의 말’을 한번 보기를 권한다. 보고 나면 잠시 생각에 잠기게 될 것이다. 긴 시간 동안 수레를 끄는 말의 몸 구석구석을 관찰하면서 역사적 팩트를 직시해야 함을 느끼기 바란다. 우리도 이제 이런 드라마를 만들어야 한다. *외부 필진의 기고 내용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약력]서울대 명예교수 [저서]시와 리듬(1981, 개정판 2011), 음악을 본다(2009), 세계의 음악(2014) 등 [번역]기호학 이론(U. Ecco, 1984), 서양음악사(D. J. Grout, 1997)
    K-팝과 K-드라마
    by 서우석
    2024.10.12 08:26:56
  • 10. 사라진 아기 삐이, 이름 모를 새가 하늘을 가르며 울었다. 내리막길을 내려가면서 큰 걸음을 떼다가 미끄러졌을 때, 단테는 한 이름을 반사적으로 불렀다. 라비! 그러고 보니 하늘에서 도토리 하나가 떨어지면서 단테의 머리통을 톡 건드렸을 때도, 촉촉한 땅 위를 거닐던 달팽이를 무심코 밟을 뻔했을 때도, 달팽이를 피하려다 삐끗, 발목을 삘 뻔했을 때도 라비를 불렀다. 단테는 라비의 이름을 자꾸 중얼거리는 자신을 발견하고 웃음이 나왔다. 평지에 내려오니, 언덕 위에서 혀처럼 갈라지던 붉은 햇살이 포근하게 내려앉은 모습이 보였다. 더워지기 전에 감자꽃을 따야만 한다. 삐거덕, 나무계단에 발을 올리자마자 통나무의 신음이 나왔다. 오늘따라 유난히 크게 들려 흠칫했다. 단테는 까치발로 살금살금 몇 계단을 올라갔다. 출입문에 가만히 귀를 기울여보았다. 아기가 아직 깨진 않은 듯했다. 아기는 생과 사를 넘나드는 시간을 견뎠다. 어른보다 몇 배 힘들었을 것이다. 막 출입문을 열려는데, 주변을 맴도는 검은 길고양이가 보였다. 문득 그에게도 이름을 지어주어야겠다는 쓸데없는 생각이 들었다. 삐익, 출입문은 계단보다 더 큰 소리를 질렀다. 안으로 들어가니, 로깡과 안드레가 코 고는 소리가 여전히 들려왔다. 두 사람이 화음을 맞추며 골아댔다. 아기가 깨지 않는 것이 이상할 정도였다. 단테는 서둘러 침실 옆의 임시 아기방으로 들어갔다. 어, 단테는 작은 비명을 질렀다. 깨끗한 이불을 골라 뉘어 놓았던 아기가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이불만 텅 비어 있었다. 라비, 단테는 얼음처럼 온몸이 굳는 것을 느끼며, 신음처럼 이름을 뱉어냈다. 단테가 그 이름을 반복하며 기분 좋게 언덕을 내려오던 시간에, 라비는 누군가의 손에 탈취당했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위급함을 알리려 자신의 이름을 떠올리게 해준 것이었는데, 단테는 깨닫지 못하고 즐거워했었다. 마치 형의 이름이 자꾸만 입에서 중얼거려지는데, 바깥에서 다른 일에 빠져 늦게 돌아온 날과 비슷했다. 늦게 도착해서 형을 구하지 못했던 생각이 솟구쳤다. 옆방으로 뛰어가서 녀석들을 흔들어 깨우려다가 멈칫했다. 라비가 잠든 곳은 분명히 이 공간이었다. 로깡이나 안드레가 자다가 일어나서 다른 장소로 옮기진 않았을 것이다. 로깡은 몽유병이 있지만, 간밤에는 그런 증상을 보이지 않았다. 아기를 옮기지 않았다면……침입자가 있다! 단테는 소리를 지르려던 자신의 입을 틀어막았다. 가만가만 서랍 깊숙이 숨겨놓은 총을 찾아냈다. 그리고 깨우지 말라는 듯 더 심하게 코를 고는 녀석들을 지나 집안을 구석구석 살폈다. 그래, 잠들어 있는 편이 났다. 잠들어 있어야 범인의 얼굴을 보지 않을 것이고, 그래야 살아남을 수 있다. 단테는 집안의 구석을 천천히 살폈다. 커튼 뒤도 장롱 안에도 없었다. 그는 통나무집의 뒷문을 살그머니 열었다. 뒷문으로는 확장한 실내창고가 이어진다. 주인이 돌아온 것을 알았다면 침입자가 이곳으로 피신했을 가능성이 높다. 감자의 가루를 말리는 곳인데, 지금은 수확 철이 아니어서 비어 있다. 이곳에는 지붕도 있고 비닐로 되어 있어 바깥이 환하게 보인다. 오른쪽 햇살이 내리쬐는 곳을 보니, 홉이 아기를 안고 우유를 먹이고 있었다. 평안하고 그림처럼 아름다워서, 단테는 욕설이 튀어나올 뻔했다. 아기를 들여다보다가 고개를 쳐든 홉의 온화한 표정이 조금 굳어졌다. “대체, 아기를 굶기고 태평하게 잠을 자다니요. 단테 씨는 어디 갔다 오셨어요? 세 사람이 사람이에요?” 이 정도의 강경한 표현은 홉에게는 욕설 이상이었다. 단테가 사라진 아기 때문에 놀란 것보다 아기를 굶긴 세 사람의 인성에 홉이 더 놀란 듯했다. 단테는 총을 뒤로 숨기며 다가갔다. “오늘 오후에나 올 줄 알았는데.” “새벽에 아기에게 우유 먹이라고 몇 번이나 일러주었는데…….” 로깡과 앤드류에게만 맡겨두고 아기를 굶긴 것을 단테는 속으로 자책했다. 자신도 화가 나니, 홉이 화가 나는 것은 당연했다. 아기는 홉의 가슴에 안겨 한 방울씩 입가에 흘러 넣어주는 우유를 받아먹었다. 아직 우유를 빨 힘이 없어서 이렇게라도 공급해야 한다고 했다. 아기가 너무 연약해 보였다. ‘내가 왔어, 눈을 떠 봐.’ 단테는 아기에게 은밀한 전언을 시도했다. 아기는 순순히 눈을 뜨지 않았다. 단테는 더 강하게 다시 시도했다. ‘라비! 힘을 내 봐!’ 다시 우유 한 방울을 가까스로 흘러 넣은 후, 홉이 단테에게 말했다. “어른은 하루에 두 끼나 세 끼 먹지만, 아기는 더 여러 번 먹어야 해요.” 단테의 귀는 홉의 말에 순종적이었지만, 단테의 입은 반항적으로 튀어나왔다. “아기를 어떻게 하면 좋겠어?” “아기를 어떻게 하다니요?” “여기서 계속 키울 수는 없잖아.” “그럼 어디에서 키워요? 아기가 어디서 왔는지 단테 씨는 설명할 수 있으세요?” “그래도 대책이 있어야지. 이곳에 누군가 불시에 올 수도 있고.” 조금 전 상상 속의 침입자가 아직 단테의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아서인지, 아기를 잃을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단테를 사로잡았다. 빈틈없이 대책을 세워 놓지 않으면 어른도 아기도 보호할 수 없을 것이다. 꽃들이 보기 좋다고 남겨두면 감자는 영양분을 빼앗겨버리듯이, 아기의 운명도 비슷해서 계속 데리고 있으면 모두의 약점이 되고 위태로워질 것이다. “아기를 안느에게 맡기면 안 되겠지?” “그런 말씀 하실 줄 알았어요. 안느 곁도 안전하지는 않아요.” “아니 왜?” “하여간 안 돼요. 여기가 더 안전해요.” 우유 방울을 먹이는 홉과 받아먹는 아기를 번갈아 바라보며 단테는 기다렸다. “감자 농사만으로도 충분히 먹고 살 수 있잖아요. 관 속을 뒤지는 일을 꼭 해야 해요?” “자네가 내 속사정을 다 아는 것은 아니잖은가. 사람마다 말할 수 없는 사연이 있는 법이지. 꼭 복수해야 하는 사람이 있다네.” “저도 복수……해야 하는 사람이 있어요.” 홉의 입에서 복수라는 단어가 나오니, 신선하다 못해 속은 느낌이었다. “무슨 사연이 있는지 모르지만…….” “안느는 내 여자가 아니라 여동생이에요. 나쁜 놈들이 안느를 집단강간했지요. 안느를 숨기기 위해 이곳에 왔어요. 그 죽일 놈들이 안느를 찾아내면 안느의 아기도 가만두지 않을 거예요. 안느 곁은 절대 안 돼요.” 홉이 너무 간단하게 놀라운 비밀을 털어놓았다. 홉도 안느의 아기 때문에 매우 위태로운 심정이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그의 남자인 척했군.” “로깡과 안드레에게는 말하지 말아 주세요. 그들도 남자잖아요. 여동생이라고 하면 여자로 볼 수도 있으니까요. 문제는 항상 가까운 주변에서 일어나니까요.” “그럼, 나는 괜찮아?” “믿으니까요.” 갑자기 단테의 가슴에서 뜨겁고 뭉클한 것이 솟구쳤다. 이 나라에서 누군가를 믿는다는 것은 목숨이 내놓는다는 표현과 같았다. 상황이 나빠지면 안느의 아기도 여기서 보호해주겠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라비가 살아날 때까지는 여기서 돌보도록 해주세요.” “아직 살아난 것이 아니라는 말인가.” “방치되었던 시간이 있으니 갑자기 어떤 부작용을 보일지도 몰라요. 아기는 시시때때로 달라요. 정말 변화가 많고……. 아! 이것 봐요. 아기가 단테 씨의 목소리를 들었나 봐요. 우리 말이 들리는 것처럼 얼굴을 꿈틀거려요. ” “미소를 짓네. 보이지. 봤지?” “네. 아직 엄마 배 속에 있다고 착각하며 꿈을 꾸는 상태지요. 배냇짓을 하는 거예요. 배냇짓!” ▶다음 회에 계속 … 김다은은 ‘당신을 닮은 나라’가 1995년 제3회 국민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소설가로 등단했다. ‘덕중의 정원’ ‘훈민정음의 비밀’ ‘쥐식인 블루스’ 등 20여권 소설책을 출간하고, 다수 번역돼 해외 소개됐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주관한 폴란드 바르샤바대학 작가 레지던시를 비롯, 청송 객주 문학관, 정선 여량면 아우라지 레지던시, 해남 인송문학촌 토문재 레시던시에 참가했다. 이화여대 불어교육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파리8대학에서 불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추계예술대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작권자의 허락없이 무단 부분 혹은 전체 전재, 복사, 배포를 금합니다.)
    종의 기원
    by 김다은
    2024.10.07 09:11:50
  • “꿈은 무의식에 이르는 왕도(a loyal road)이다.” 이는 프로이트(Freud)가 꿈을 분석하면서 한 말이다. 프로이트에 의하면 잠자는 동안 꾸는 꿈은 무의식적 정신활동의 결과물이다. 1895년 여름, 프로이트는 일머(Irma)라는 젊은 여성의 정신 분석을 맡았다. 그녀는 프로이트의 가족과도 매우 친한 사이였다. 그런데 그녀에 대한 치료는 부분적으로만 성공적이어서 그녀의 신경증적 불안은 없어졌으나, 신체에 나타나는 증상이 모두 제거되지는 않았다. 어느 날 밤(아마도 새벽녘이었던 것 같다) 프로이트는 다음과 같은 꿈을 꾸었다. [큰 홀에서 우리는 많은 손님을 접대하고 있었다. 그 가운데 일머가 보이기에 나는 그녀를 한쪽으로 데리고 가서 그녀의 편지에 대한 답을 준 다음, 내가 제시한 ‘해결 방법’을 아직도 수용하지 않는 것을 비난했다.” 프로이트가 말했다. “(신체적 증상이) 아직 완쾌되지 않는 건 사실 당신 탓이오” “지금 내가 얼마나 아픈지 알기나 해요? 목과 위와 배가 졸리는 것 같아요”라고 일머가 대답했다. 나는 놀라서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창백하고 부어 있는 것 같다. ‘그럼 역시 무슨 내장 기관의 장애가 있었던 걸까?’하고 생각한다. 그녀를 창가로 데리고 가서 목 안을 진찰한다. 그녀는 싫은 기색을 보인다. 마치 의치를 한 여자들이 그러하듯이. 나는 싫어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그리고 크게 벌리라고 했다. (참고로 현실에서 프로이트는 일머의 구강을 진찰한 일은 한 번도 없었다). 꿈속의 이 과정으로 얼마 전에 진찰했던 여자 가정교사가 연상되었다. 이 여자는 첫 인상이 매우 아리따운 미인으로 생각되는데, 내가 입을 벌리게 하자 곧 치열을 감추려고 했다. 싫어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것은 아마 일머에 대한 것이었는데, 그것 말고 또 다른 뜻이 있었던 것 같다.···] 이 꿈에서 프로이트는 자신이 치료하고 있는 환자가 완치되지 못함에 대한 걱정, 자책감과 치료의 실패가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는 무의식적인 방어기제를 발동시키고 있다. 또 꿈에서 프로이트는 환자에 대한 자신의 감정과 걱정 그리고 환자의 상태를 알고 싶어하는 의도를 드러내고 있다. 그는 꿈에서 여태껏 한 번도 진찰한 적이 없는 일머의 입안을 진찰하면 질병의 단서를 파악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을 한다. 필자는 환자를 완전히 치료시키지 못한 프로이트의 자책감과 자기 책망의 심리적 기제가 이 꿈을 만들어 냈다고 본다. 또 현실에서는 서로 관련이 없는 두 명의 여성 환자를 구강 진찰을 매개로 자유로운 연상이 이루어진다. 그가 밝힌 ‘또 다른 뜻’에 관해 프로이트는 명확히 밝히고 있지는 않지만, 필자는 일머에 대한 성적 호기심이나 욕구가 은유적으로 표출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때 프로이트의 열렬한 추종자였던 융(Jung)은 다음과 같이 평했다. “그가 우리 문화에 준 충격은 무의식으로 통하는 길을 발견한 것이었다. 그는 꿈을 무의식 과정에 대한 가장 중요한 정보원으로 인정함으로써, 잃어버려 이제는 어쩔 수 없다고 여겨진 가치를 과거와 망각으로부터 되찾아 왔다. 그는 자신의 경험으로 무의식적 정신의 존재를 증명했다.”
    꿈은 무의식에 이르는 왕도
    by 국경복
    2024.10.02 07:00:00
  • 9. 하얀 꽃들의 운명 언덕에 앉아서 내려다보니, 감자밭에 하얀 꽃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초록빛 양탄자에 흰무늬가 박힌 듯 아름다웠다. 이틀 동안 아기에게 몰두하느라, 단테는 이 변화를 감지하지 못했다. 꽃들을 그대로 두면 더 멋진 풍경이 연출되겠지만, 꽃은 감자의 양분을 빼앗는다. 꽃이 올라오는 족족 잘라내야 하는데, 자칫 시기를 놓칠 뻔했다. 이틀 밤낮을 뜬눈으로 보낸 홉은 어젯밤 집으로 돌아갔다. 아기 곁에 서툴게 붙어 있던 로깡과 앤드류는 새벽이 되기 전에 뻗어서 코까지 골았다. 고르게 가슴 숨을 쉬는 아기를 확인하고, 단테는 밖으로 나왔다. 아침 공기의 서늘하고도 투명한 바람결에 이끌려 오래간만에 이 언덕 위로 올라오게 되었다. 메종(Maison)의 큰 땅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위치여서 형은 이 자리를 좋아했다. 어린 단테가 오르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어서 형은 가끔 단테를 데려갔다. 형과 함께 이렇게 아래를 내려다보며 말없이 앉아 있던 순간이 참으로 좋았다. 형이 죽고 나니 도리어 무덤 속처럼 고독하고 무서운 곳으로 느껴졌다. 수년 발길조차 하지 않았다. 오늘 아침에는 몸은 피곤한데 정신은 맑았고, 언덕에 올라가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형이 죽은 후 엄습했던 무섬증이 사라진 듯했다. 형과 함께 감자를 키우던 시절의 그리움이 따스하게 온몸을 감쌌다. 메종에서 씨를 뿌려 싹을 틔운 채소는 많지 않았고, 싹이 나도 제대로 자라지 못했다. 그런데 푸른 감자는 달랐다. 씨감자를 심고 3~4개월이 지나면 감자를 풍성하게 수확했다. 바깥세상에는 개량감자로 붉은 감자나 보라색 감자도 있다지만, 개량하지 않은 푸른 감자는 이곳이 유일할 것이라고 형은 말했었다. 이곳의 기후와 땅의 특질 때문이었다. 보통 감자를 상온에 두면 독이 올라 껍질이 푸른 빛을 띠기에, 속이 푸른 메종의 감자는 아예 푸대접을 받았다. 사람들은 동일한 것으로 여겨 꺼렸다. 감자를 주식으로 하는 나라에서 감자를 팔 수 없다면 생활이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형은 푸른 감자가 영양분이 많고 특히 임산부에게 좋다고 믿고 있었다. 할아버지에게 들었다고 했다. 임산부를 본 적이 없었기에 진짜인지 가늠할 수 없었다. 진짜 효능을 확인한 것은 형이 죽고 난 뒤였다. 어느 날 차를 달리고 있는데, 남녀가 걸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여자가 지쳐서 걷지 못하는 것을 남자가 부축하는 모습이었다. 단테는 차를 세웠고, 여자가 임신 상태라는 것을 알아챘다. 두 사람은 몹시 지치고, 배고프고, 목말라 보였다. 가는 곳이 어디냐고 물었더니, 대답조차 하지 못했다. 그냥 보낼 수가 없어서 메종으로 함께 왔다. 삶은 감자를 주니 망설였다. 단테가 먼저 베어 물고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여주자, 그들도 허겁지겁 따라 먹었다. 얼굴이 푸르뎅뎅했던 임산부는 그렇게 푸른 감자를 먹으며 점점 몸이 좋아졌고, 이곳에서 제대로 아기를 낳았다. 임산부의 남자가 홉이었다. 아기가 깨지 않았을까 갑자기 조바심이 났다. 하지만 빨리 내려가고 싶은 마음과 내려가고 싶지 않은 마음이 팽팽했다. 아기의 상태가 좋아진다고 마냥 좋아할 수만은 없었다. 앞날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다른 곳에 맡기려면 아기의 출생신고서나 부모가 누구인지 알려야만 했다. 홉의 아내에게 맡기면 좋으련만, 홉은 거절할 것이 분명했다. 홉의 가족을 끌어들이는 일은 단테도 피하고 싶었다. 아기가 미미하게나마 움직일 때마다 기적이 따로 없었다. 살아날지 이제나저제나 조마조마했는데, 아기가 한쪽 눈꺼풀이 아니라 두 눈의 눈꺼풀을 처음으로 연 순간이 있었다. 단테는 처음으로 탄성을 입 밖으로 올렸다. 자신도 모르게 ‘라비’라고 중얼거렸다. 단테는 홉에게 진심으로 말했다. “수고했습니다. 홉!” 홉은 메종에서 두 명의 아기 생명을 구했다고 말했다. 자신의 아기와 관속의 아기를 의미했다. 첫눈을 뜨는 순간을 단테는 두 번 다 놓치지 않은 것에 감사했다. 앤드류가 물었다. “라비가 아기의 이름이에요?” “왜?” “조금 전에 라비라고 불렀잖아요.” 그런 생각을 하고 뱉은 말은 아니었지만, 그렇게 부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았다. “라비! 그럼 그렇게 부를까.” “좋아요!” “좋은데요!” 이구동성 찬성했다. 그때 로깡이 능청스럽게 말했다. “홉만 수고한 것이 아니라 우리도 수고했어요. 아기를 안고 막 달리는데, 들키면 끝장이잖아요. 목숨 걸고 줄행랑을 쳤다니까요.” 이전에는 별로 자신을 드러내는 법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얼굴들은 지쳐 보였지만 얼굴에 생기가 있었다. “두 분도 수고했어요.” 단테의 말에 덩치 큰 앤드류는 겸연쩍어하며 눈가를 만졌고, 빼빼 마른 로깡은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제대로 칭찬을 받아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단테는 이 묘한 인간 조합의 균형이 자칫 깨질까 봐 일부러 차갑게 대해왔다. 그런 빗장이 언제 풀어졌는지 그들에게 진심을 전하고 말았다. 조금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고 홉은 버텼지만, 여자가 의심할까 봐 집으로 돌아가라고 했다. 아기를 위해 추가 필요한 것이나 양육에 필요한 노하우를 정리해오라고 했다. 아래쪽 감자밭의 흰 꽃들이 아침 빛을 받아 순식간에 많아졌다. 단테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형은 푸른 감자의 판로를 부지런히 찾아다녔다. 그러다가 ‘운 좋게 연줄로 감자를 사줄 사람들’을 만났다고 했다. 단테는 15살이 될 때까지 형이 진짜 감자가루를 팔러 다니는 줄 알았다. 형의 건강상태나 태도가 예사롭지 않아서, 무엇을 하고 다니는지 어느 날 정색하며 물었다. 형은 단테가 세상에 나가 공부하고 훌륭한 사람이 될 정도의 돈만 벌면 그만둘 것이라고 대답했다. 형의 건강이 점점 나빠져서, 단테는 감자가루를 자신이 팔러 나가겠다고 주장했다. 형은 펄쩍 뛰면서 다시는 그런 말을 하지 말라며 꾸중했다. 형이 운 좋게 만나 많은 돈을 벌게 해주었다는 사람들의 정체를 단테가 알게 된 것은, 형이 죽고 몇 년이 지난 뒤였다. 단테는 곧 떼어내야 하는 하얀 꽃들의 운명을 생각하며, 언덕을 천천히 내려왔다. ▶다음 회에 계속 … 김다은은 ‘당신을 닮은 나라’가 1995년 제3회 국민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소설가로 등단했다. ‘덕중의 정원’ ‘훈민정음의 비밀’ ‘쥐식인 블루스’ 등 20여권 소설책을 출간하고, 다수 번역돼 해외 소개됐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주관한 폴란드 바르샤바대학 작가 레지던시를 비롯, 청송 객주 문학관, 정선 여량면 아우라지 레지던시, 해남 인송문학촌 토문재 레시던시에 참가했다. 이화여대 불어교육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파리8대학에서 불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추계예술대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작권자의 허락없이 무단 부분 혹은 전체 전재, 복사, 배포를 금합니다.)
    종의 기원
    by 김다은
    2024.09.30 09:00:00
  • 8. 태초에 수년 전, 한 대형서점에서 <책을 제대로 읽는 방법>을 강연하면서 나는 유명해졌다. 기존의 독서법은 엉터리였다는 말이 방송을 탔기 때문이다. ‘내’ 기존 독서법을 말한 것이었다. ‘내’를 뺀 문장이 전파를 타자, 한국인의 기존 독서법은 엉터리라고 사람들은 알아들었다. 나의 독서법을 취재하고 싶다고 연일 요청이 쇄도했다. ‘엉터리’라는 표현은 영어의 ‘broken’과 같아서 어긋한 독서라고 대강 알려주었다. 이때부터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나에게 좋은 제안과 승승장구할 기회가 줄지어 들어왔다. 나에게 ‘독서의 신’이라는 타이틀을 선사하기도 했다. 내 의사와는 무관하게 일어난 일이었다. ‘내’를 바로 잡을 필요가 없어서 그간 내버려 두었다. 그 우연찮은 사건이 세계적인 작가와 대담을 나누는 영광스러운 자리까지 나를 인도했다고 여겼는데, 동시에 내 인생의 가장 곤욕스러운 자리로 나를 초대했음이 비로소 깨달아졌다. 이 쪽팔리는 대담이 어디까지 나를 끌고 갈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진퇴양난이었다. ‘이런 상황을 가장 간단하게 해결할 방법은 그것밖에 없다.’ 나는 표지 문구의 출처와 의미를 알지 못한다고 고백하기로 작정했다. 솔직함은 때로 어떤 무기보다 강하다. 내 유명세에 타격이 될 수도 있겠지만, 이렇게 죽을 쑤고 대담을 끝내면 평생 후회할 것 같았다. 한 인간의 솔직함과 허약함은 도리어 반전 매력으로 작용할 수도 있었다. 그런 영리한 계산 끝에 막 고백하려는 순간이었다. 화면 속에서 작가가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태초에, In the beginning….” 작가의 입에서 갑자기 영어 단어들이 튀어나왔다. 뭐지? 왜 갑자기…영어를! 세 단어의 위력이 상당히 컸던 모양, 막 용기를 내려던 솔직함이 내 안으로 쑥 들어갔다. 말문이 떨어지지 않았다. 프랑스인은 유난스럽게 자국의 언어를 사랑한다. 상품을 팔기 위해 외국 바이어를 상대하는 상황이 아니라면, 특히 사교 생활에서는 프랑스어가 자랑이자 특권이었다. 프랑스인 작가가 전 세계로 방영될 대담에서 ‘교양 없이’ 영어를 사용할 이유가 없었다. 그는 반복했다. “태초에 In the beginning, 생명의 체계가 이미 설계되어 풀 한 포기도 이 종에서 저 종으로 바뀔 수 없습니다.” 그는 ‘태초에’라는 세 단어만 영어로 반복하고 뒷부분은 프랑스어로 이어갔다. 나는 뒤통수를 맞은 듯 얼얼했다. 독서의 신은 그의 의도를 완벽하게 이해했다. ‘태초에’로 시작하는 책은 이 세상에 오로지 한 권뿐이다. 프랑스어로 들을 때는 ‘시작에’로 해석해서 깨닫지 못했다. 그런데 영어로 들으니 ‘태초에’로 들렸다. 표지 문구의 어투만 보아도 누구나 떠올릴 수 있는 책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많이 읽는 그 책이었다. 작가는 영어로 그 책을 암암리에 나에게 알려준 것이다. 나는 그에게 감사하는 마음은커녕, 더 굴욕감을 느꼈다. 지혜로운지 교활한지 가늠할 수 없는 작가의 눈을 도전적으로 쳐다보았다. 너희는 값으로 사신 것이니 사람들의 종이 되지 말라 출처를 알아도 표지 문구의 모순적인 표현은 여전히 오리무중이었다. 그 문구를 다시 떠올리자마자, 눈에 보이지 않는 칼처럼 뭔가가 나를 겨냥해서 섬짓했다. 『인공낙원의 문』에서 단테는 무리의 우두머리였고 홉은 단테의 명령을 따르는 신출내기였다. 하지만 관 속의 아기를 구하는 순간부터 두 사람의 관계는 변했다. 홉이 아기를 품에 안는 순간부터, 단테가 아니라 홉이 명령하는 우두머리로 바뀌었다. 나와 작가의 관계가 마치 단테와 홉과 같았다. 대담을 시작할 때만 해도 나는 그의 작품을 한국에 소개하는 사회자이자 이 행사를 진행하는 절대적이고 유일한 사람이었다. 그는 내 질문에 그럴듯한 대답을 해가며 자신의 책을 한국 독자에게 어필할 수밖에 없는 종속된 관계였다. 그런데 표지 문구의 비밀 때문에, 그는 홉처럼 상황을 끌고 가는 우두머리로 우뚝 섰다. 나는 죽음의 관을 마지막에 덮던 단테로 전락한 셈이다. 나는 이 변화의 원인에 주목했다. 나는 여태 책을 정복하는 심정으로 다독(多讀)을 해왔다. 타고난 능력이기도 했고, 가정교육에 따라 의무적으로 읽어내야 하는 책들과 아버지를 따라 여러 나라를 떠돌며 섭렵한 다양한 책 종류 때문이기도 했다. 마치 운동선수처럼 독서로 나를 단련했다. 읽을수록 지식도 늘고 사회생활에도 도움이 되니 꿩 먹고 알 먹기였다. 그런데 표지 문구의 비밀에 의문을 품자, 어디서 불어 왔는지 알 수 없는 바람이 독서의 신을 사정없이 무너뜨리고 있었다. 『인공낙원의 문』의 관에 일그러진 여자의 시체가 들어 있었다면, 내 몸의 관에는 읽었던 책들의 파편들이 들어 있었다. 나는 여태 마약처럼 복용한 책의 중독자였던 셈이다. 책들의 종이었다. 그 결과로 그 책들을 쓴 사람들의 종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저 화면 속 작가의 종이 되어 이처럼 끌려다니고 있는 모양이다. 나는 대처 방안이 없었다. 단테가 그러했듯이, 생명의 비밀을 품은 작가 앞에서 나는 마비된 듯 침묵을 지켰다. 다행스럽게도, 말하기 좋아하는 프랑스인답게 작가는 계속 떠들어 대고 있다. “한 종에서 다른 종으로 바뀔 수 없는 이유는 생명의 비밀이….” 순간, 나는 드디어 반격할 하나의 단서를 찾아내었다. 굳은 표정이 저절로 풀면서도 입도 풀렸다. “관에서 구한 아기에게 악당들이 지어준 이름 말인데요. 그 이름이 표지 문구의 비밀을 풀 열쇠이지요?” ▶다음 회에 계속 … 김다은은 ‘당신을 닮은 나라’가 1995년 제3회 국민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소설가로 등단했다. ‘덕중의 정원’ ‘훈민정음의 비밀’ ‘쥐식인 블루스’ 등 20여권 소설책을 출간하고, 다수 번역돼 해외 소개됐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주관한 폴란드 바르샤바대학 작가 레지던시를 비롯, 청송 객주 문학관, 정선 여량면 아우라지 레지던시, 해남 인송문학촌 토문재 레시던시에 참가했다. 이화여대 불어교육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파리8대학에서 불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추계예술대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작권자의 허락없이 무단 부분 혹은 전체 전재, 복사, 배포를 금합니다.)
    종의 기원
    by 김다은
    2024.09.23 09:00:00
  • 올해 기록적인 열대야와 폭염으로 지구 온난화가 가속화되고 있는 가운데 북극곰의 다이어트 이야기가 눈에 들어왔다. 전세계가 북극곰을 마치 셀럽처럼 주목하는 가운데, 그들과 셀럽의 유사점을 발견할 수 있는데, 바로 요즘 북극곰은 유명하고 인기가 있으며 매우 날씬하다는 점이다. 그린란드 남동부 지역 민물 빙하에서 식단을 명상수행자와 힙스터들처럼 채식으로 바꾸고 살아가는 북극곰 무리가 발견되었다. 원래 이들의 주식은 단백질과 지방함량이 높은 바다표범이었는데 최근 몇 년간 딸기와 채소잎으로 바뀌었고 최고 250㎏상당의 다른 지역 북극곰들에 비해 180㎏정도의 몸매로 날씬해졌다. 과연 기후변화는 이 폭신하고 사랑스러운 동물의 삶을 얼마나 변화시켰을까? 이 동물은 시간이 지날 수록 아이러니컬하게 K팝 스타처럼 점점 더 닮아가고 있다. 빙하 위에서 주로 바다표범을 사냥해 생존해온 북극곰들은 지구온난화로 인해 줄어드는 빙하로 먹이를 구하기가 어려워졌다. 그들은 서식지에서 이동하여 새로운 먹이를 찾아 헤매야 했다. 이로 인해 북극곰의 몸무게가 눈에띄게 감소하게 된것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발견된 북극곰 무리는 그린란드 표층 얼음에서 떨어져 나온 민물 빙하에 의존해 생존하고 있었다”며 “이런 특이한 서식지가 북극곰의 피난처가 될 수도 있다” 고 밝혔다. 인간이 지배하는 공간으로 이동하는 베지테리언 북극곰은 전통적인 본성에서 벗어나 현대 생활에 적응하며 하이브리드적인 삶을 살고 있다. 팬데믹 이후의 전 지구적 생물의 삶을 가장 잘 설명하는 단어는 하이브리드라고 할 수 있다. 우리의 유일한 가능성은 하이브리드를 포용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비록 성공은 못했지만 세계 엑스포 유치에 제안되었던 '해상도시'가 그 한 예다. 부산 앞바다에 설계된 이'떠다니는 도시'는 난민과 기후 변화와 같은 이 시대의 이슈에 대한 해결책을 하이브리드라는 혁신적이며 자연스러운 현상에 기대어 제시하고있다. 우리가 눈을 돌리는 곳마다 반세기 전과 같이 ‘순수’하거나 전통에 따른 것은 어디에도 없는 것 같다. 북극곰은 인간이 낚시를 하는 곳에서 먹이를 찾고 체중을 줄이기 위해 채식을 하며, 부산 해상도시와 같은 '하이브리드' 도시도 그 혼종성을 수용하고 있다. 하이브리드는 혼돈에 직면한 우리에게 그 방법론으로서 창조적인 힘이 될 수 있을까? 해상도시에 적용된 아이디어는 전통과 혁신을 통합한 하이브리드를 포용하고 이러한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상상해 낼 수 있다. 지구 온난화로 인해 해수면이 빠른 속도로 상승하고 전 세계의 해안 도시들이 가라앉고 있다. 빙하가 녹고, 폭우가 쏟아지며, 해안 침식, 지하수 고갈, 산불, 신종 바이러스, 식수 오염 등 환경 위기 이슈가 심각하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이러한 개별적 재난상황은 서로 연결되어 전체 생태계를 교란시키고 우리 모두에게 그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단순히 별개의 현상으로 취급할 수 없다. 에코 페미니스트 철학자 도나 해러웨이는 "우리의 시급한 과제는 레퓨지아(피난처)를 복원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많은 학자들이 현재의 생태 위기를 레퓨지아의 붕괴라고 이야기한다. 46억 년 전에 탄생한 지구는 여러 차례 빙하기를 겪었고 이 기간 동안 기후 변화를 비롯한 극심한 환경 변화가 일어났지만 이를피할 수 있는 지역과 피난처가 있었다고 한다. 이제 인간이 촉발한 기후 변화가 이러한 피난처를 위협하고 있다. 이러한 기후와 생태계의 위기는 개인의 노력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시장'에만 의존해 해결책을 찾으려 해서도 안된다. 정부, 지역사회, 개인을 포함한 모든 수준에서 정치, 경제, 생활양식을 변화시켜야 한다. 우리는 의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하이브리드 개념을 적용한 해상도시 건설은 이러한 노력을 상징한다. 한국은 과학기술 분야의 리더로서 지속 가능한 건축 프로젝트와 최첨단 기술을 구상하는 능력을 여러 차례 입증해왔다. 한국은 세계 최대 규모의 조선 산업과 전 세계, 특히 중동에서 주요 인프라 프로젝트를 건설한 최고의 건설 산업을 자랑한다. 부산시가 월드 엑스포에 제안한 해상도시는 UN해비타드와 오셔닉스의 협업으로 덴마크 건축가에 의해 설계되었다. 이는 바다와 지속 가능한 공존을 위해 제시된 인류의 청사진 이었다. 2022년 4월, 유엔 본부에서는 해수면 상승으로 인한 심각한 토지 부족 현상에 주목을 하였다. 획기적 기술제공을 목표로 한 세계 최초의 지속 가능 해상도시 프로토타입 설계를 공개한 것이다. 기술과 문화, 예술의 힘을 통해 전 세계 기후 위기에 대한 해결방안이며 향후 미래에 다가올 재난에 대처하기 위해 혁신적 아이디어를 지속적으로 발전시키고 있다. 이들의 설계를 이끄는 한 가지 원칙은 바로 하이브리드이다. 이 제안은 현재 계획을 바꿔 북항 재개발 2단계 부지 부산 앞바다로 전환 추진될 예정이다. 총 면적 6.3헥타르의 상호 연결된 플랫폼으로 구성, 이 해상 커뮤니티 모델은 초기에는 1만2000명, 최종적으로는 10만명 이상의 인구수용을 목표로 한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유럽연합이 내민 해법에 더해 한가지 제안을 해보고자한다. 재해에 대응하는 대안으로서 한국의 미학과 철학을 담은 해상도시를 한국의 주요 해안에 만들면 좋겠다. 동양 사상은 근본적으로 "자연은 그 자체로 존재한다"는 유기적 사고를 갖고있다. 자연과의 조화를 최고의 선으로 여기는 한국 전통 건축은 자연과 인간이 유기적으로 얽혀 있다는 점을 중요시한다. 자연에 인위적질서를 강요하지않고 대상과 자신을 분리하지 않는 철학을 바탕으로 한다. 아름다움을 바라보는 한국미학에서 중시되어 온 전통적 시각이다. 한국 전통 건축의 자연 친화적 철학을 바탕으로 해상 도시에 '피난처'라는 개념을 적용하여 인류에게 희망을 선사할 수 있다. 동아시아의 작은 나라 한국은 역사적으로 "작은 고추가 맵다"는 속담처럼 위기에 강한 면모를 보여 왔다. 한국은 일제 식민 통치와 한국전쟁으로 인한 실향의 아픔을 극복하고 성공적으로 재건했다. 한국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인 부산은 한국전쟁 당시 피난처 역할을 했으며 역사적 항구 도시로서, 유입되어온 외국 문화의 영향으로 개방적이고 복합적인 문화가 발달한 곳이다. 국제사회와 잘 어우러지는 지정학적 특성을 지닌 곳으로 새로운 희망의 원천이 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부산에 제안된 해상도시는 각 플랫폼이 육지와 다리로 연결되어 주거, 연구, 숙박, 수상 레크리에이션, 문화 예술 및 공연을 위한 구조를 형성하고 있다. 또한 온실, 폐기물 제로 순환 시스템, 자체 처리 폐수시스템, 식량, 탄소 중립 에너지 및 혁신적인 모빌리티를 통해 에너지와 농작물을 생산한다. 이 프로그램에는 해안 서식지 재생, 태양 에너지 생산 시스템, 자원 절약 및 재활용을 위한 상호 연결된 시스템이 포함된다. 국제기구인 유엔 해비타트의 비전을 바탕으로 각 도시는 국제 환경 정책에 따라 일관되게 지속 가능한 관리를 받게 된다. 한국은 이제 세계 무대의 리더가 되었다. 건축, 문화, 예술, 도시 정책은 유엔과 함께 글로벌 위기를 외교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좋은 위치에 있다. 유엔의 역할과 아시아의 허브로서 부산의 역할을 결합하면 윤리적이고 실용적이며 미래 지향적인 현재의 도시 계획에 대한 대안을 설계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지구 생태계의 복잡성과 예측 불가능성을 염두에 둔다면, 우리의 힘은 지구운명을 결정하는 한 요소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이 세상에 혼자 살아남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우리는 다른 존재들과 소통하고 교류하며 '더불어 사는 삶'을 실천해야한다. 해상도시 프로젝트로 대표되는 한국의 문화(K건축, K컬처)와 혁신은 이러한 비전을 달성할 수 있는 해법을 제시한다.
    터전 잃고있는 북극곰과 부산 해상도시
    by 이경화
    2024.09.14 07:00:00
  • ‘꿈은 신의 계시(message)이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꿈을 신이 전달하는 계시로 보았다. 이 같은 사고는 한국과 중국을 포함한 동양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중국에서는 꿈의 해몽을 점치는 행위와 동일하게 보았다. 이로부터 수천년이 지난 1900년, 꿈 해석에 대하여 전혀 새로운 관점이 제시된다. 지그문드 프로이트(Sigmund Freud, 1856~1939)가 쓴 정신분석의 기념비적인 저작 ‘꿈의 해석’은 다음과 같은 도발적인 문구로 시작된다. “나는 이 책에서 꿈을 해석할 수 있는 심리학적 기법이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 보이고자 한다.” ‘꿈은 억압된 소망의 충족이다.’ 이같이 말한 프로이트에게 억압된 소망이란 주로 성적 욕망을 의미한다. 처음에 그는 호된 비판을 받는다. 19세기 유럽은 엄격한 도덕적 윤리가 중시되고 성(sex)에 관한 언급이 금기시 되던 시기였다. 더욱이 여성이 자신의 성적 욕망을 발설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프로이트가 사례로 든 한 부인의 꿈을 살펴보자. 어느 교양있는 부인이 꿈 속에서 제1육군 병원으로 갔다. 그리고 보초에게 말했다 “병원장님을 뵈려고 왔습니다. 내 자신이 병원에서 무언가 봉사를 하고 싶어서 그럽니다”. 그녀는 이때 ‘봉사’라는 말을 세게 발음했으므로, 그 말을 들은 보초 하사관은 ‘사랑의 봉사’를 말하는 것을 금방 깨달았다······. 선임 군의관을 만난 부인은 자기의 용건을 말했고 그는 그녀의 뜻을 금방 알아들었다. 그녀는 말했다. “저 뿐이 아닙니다. 비엔나에 살고 있는 주부들이나 처녀들은 언제라도 기꺼이 장교건 사병이건 누구든 상관없이······” 그러자 꿈속에서 소란한 웅성거림이 일어났다. 그녀가 한 말은 사람들이 옳게 이해해 준 증거로 장교들은 이 말을 듣는 순간 당황한 듯 좀 놀라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계속한다. “우리의 결심을 이상하게 여기시겠지만, 우리는 진정으로 희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잠시 숨막히는 침묵이 계속되었다. 선임 군의관은 그녀의 허리에 팔을 두르며 말한다. “부인, 사실 이렇게 말하는 김에······” (소음) ‘남자는 똑 같구나’라고 그녀는 생각하면서 남자의 팔을 풀었다. 그리고 입을 연다. “어머나, 저는 늙은 여자입니다. 저에게 그런 일은 적당치 않습니다. 한 가지 조건을 생각해 봐야겠습니다. 나이라는 것을 생각해 보면, 나이 먹은 여자와 젊은 청년이······(소음) 아아, 망측한 일입니다.” 그녀는 병원장을 만나러 가는 철제 나선형 계단을 올라가면서 한 장교의 말소리를 듣는다. “참으로 놀라운 결심이군. 젊었든 늙었든 그런 거야 상관있나. 대견한 여자야.” 그녀는 자기의 의무를 재빨리 완수하려는 감정으로 가득차서 수 많은 계단을 뛰어 올라간다. 이 꿈에 대한 프로이트의 해석이다. ‘결국 꿈을 꾼 여자는 장교·하사관·병사의 정욕을 채워주기 위해서 마치 애국심을 발휘하듯, 자기 몸을 바쳐도 좋다는 공상이 뚜렷해진다. 이 꿈은 확실히 망측스럽고 대담한 성적 공상의 전형이다.’ 프로이트는 인간의 모든 행동은 심리적인 원인에 의해서 결정되며, 그리고 그 행동은 의식적 요소보다는 무의식(unconscious)에 의해서 더 많은 영향을 받는다고 주장했다.
    "꿈은 신의 계시이다"
    by 국경복
    2024.09.10 17:08:45
  • 7. 기원이 없는 종의 기원 첫 단추를 잘못 끼웠다. 그 사실을 알면서도 계속 단추를 낄 수는 없었다. 밤새워 준비한 질문들은 이제 소용이 없게 되었다. 혼자 문학작품을 읽을 때는 어떻게 읽든 문제 될 것이 없다. 작가의 의도도 상관이 없고, 읽고 싶은 부분만 읽거나, 마음에 드는 문장에 줄을 치거나, 혼자 해석하고 즐기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대담은 달랐다. 공적 대담이라면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이 대담은 『인공낙원의 문』의 작가를 추앙하는 전 세계 인간들이 영상을 통해 보고 들을 한국 국제도서전의 특별 기획행사였다. 아찔한 기분이 순간 찾아들었다. 가장 자신 있는 영역에서 허방을 디딘 심정이었다. 문학작품을 제대로 논하려면 작품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독자가 밖에서 열쇠로 열고 들어가서 작가를 만나거나, 작가가 안에서 열어주며 독자를 초대하는 방식이어야 했다. 나는 『인공낙원의 문』을 열 수 있는 두 번의 기회를 잃었다. 표지 문구를 이해하지 못해 스스로 문을 열지 못했고, 그 사실을 솔직하게 알리지 못해 작가가 문을 열어줄 기회를 놓쳐 버렸다. 처음부터 솔직하게 말했다면, 저 순진한 얼굴을 한 작가는 작품을 한국에 더 많이 팔기 위해서라도 기꺼이 알려주었을 것이다. 내가 알면서도 일부러 질문을 던졌다고까지 생각했을 것이다. 사회자나 대담자는 청중이나 관객을 위해 알면서도 모르는 척 대신 물어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알량한 자존심 때문이었을까. 부지불식간에 표지 문구의 출처를 안다고 나는 말해버렸다. 나는 내 오만함에도 화가 나기 시작했다. 작가가 독자들에게 직접 알려줄 기회도 차단해버렸으니 결코 좋은 대담자가 아니었다. 내가 표지의 모순적인 문구를 이해했다는 전제 하에 작가는 대화를 진행했다. 다른 독자들도 그 정도는 이해한다고 여긴 것 같다. 그런데 나는 ‘그 정도’를 여전히 이해하지 못한 상태이다. 지금 솔직하게 번복한다고 해결될 일은 아니었다. 여태 녹화된 내용과 대화가 맞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문으로 들어가지 못하면 담을 넘어보자는 심정이었다. 순간, 머리를 치는 것이 있었다. 문득 세상 사람들이 가장 많이 읽는 책이 다윈의 『종의 기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읽지는 않더라고 전 세계 사람이 모른다고 말할 수 없는 책이다. 우리나라 초등학생들도 아는 내용이었다. 표지의 모순적인 문구가 다윈의 ‘종’과 관련된 것이라는 근거없는 확신이 올라와서, 나는 즉석에서 떠오른 질문을 던졌다. “메종에서 키우는 ‘푸른 감자’로 다윈의 종을 건드려보고 싶었던 것은 아닌지요?” 화면 속 작가의 눈동자가 한없이 커지는 것을 먼저 보았고, 이어 그의 대답이 들렸다. “오! 그렇게 연결할 수도 있겠습니다. 다윈의 종은 생명이 아니라 ‘죽음’의 종으로 연결된 이론이니까요.” 작가의 반응이 반가웠다. 표지 문구를 다 이해한 것은 아니지만, 작가가 스스로 그 의미를 말하도록 유도하면 될 것 같았다. 최근에 다윈의 자필 원고가 일부 발견되어 세상이 떠들썩했다. 그 자필 원고는 폐지로 버려지거나 자녀의 그림 낙서나 문제풀이 종이로 사용되었다가 발견되었다. 나는 작가의 의도를 더욱 정확하게 알기 위해 다시 확인했다. “다윈에 따르면 척박한 환경에 적응한 생물만 진화한다니, 경쟁하다가 지면 사라질 수밖에 없는 다윈의 이론은 철저한 세상의 경쟁 논리이고 죽음의 질서에 부합한다는 뜻이군요.” “맞습니다. 다윈에 따르면 인간도 다른 생물에 비해 특별난 존재가 아니지요. 우연으로 태어났고 인간은 앞으로 다른 경쟁자에 의해 사라질 수도 있다는 논리이니까 철저한 죽음의 종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다윈의 최근 기사에서 읽었는데, 자연선택은 곰같은 동물을 고래같은 동물로 점차 변화시킬 수 있다는 기록이 나중에 삭제되었다고 했습니다. 비평가들의 반박이 심해지자 그 뒤의 판본에서는 다 사라졌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 부분을 다시 살려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지워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살리건 죽이건 별 상관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다윈의 ‘종의 기원’은 과학이라는 허울을 쓰고 있을 뿐입니다. 자연선택이 있을 수 없습니다. 다윈의 종의 기원에 기원이 없으니까요.” “어떻게 그렇게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까요?” “생명의 체계에서는 한 가지 종이 다른 종으로 결코 바뀔 수 없습니다.” “종에서 종으로 바뀌는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소설 속 푸른 감자는 어떻게 설명하시겠습니까. 땅의 성질 때문에 푸른 감자가 생겼다고 적지 않았나요?” “소설 속 푸른 감자는 물론 상상의 산물이지만, 설령 그런 변화가 있다 해도 환경에 의해 ‘종’안에서 일어난 다양성으로 보시면 됩니다. 감자뿐만 아니라 자연의 생명체계는 태초에 이미 정해져 변할 수 없습니다. 생물의 종이 계속 변한다는 다윈의 논리는 생명의 기원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인간이 원숭이에게서 진화했다는 것도 거짓이라는 것이군요?” “당연합니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왜 우리는 한 번도 원숭이가 인간으로 변해가는 과정을 관찰할 수 없었을까요? 천천히 진화해서?” 작가는 질문을 던지면서 약간의 코웃음을 쳤다. 나는 코웃음이 거슬려서 다시 겸손한 마음을 잃었다. “그렇다면 수없이 사라지고 새로 생겨나는 동식물의 변화는 어떻게 설명하시겠어요?” “죽음의 종이 아니라 생명의 종을 제대로 이해하면 됩니다. 표지 문구가 그 비밀을 전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표지 문구의 출처는 다윈의 『종의 기원』이 아닌 것이 분명했다. 내가 아직도 표지 문구에서 헤매는 심정을 작가가 빤히 들여다보고 있는 느낌이었다. 나는 책상다리를 발로 차버리고 싶을 정도로 스스로 화가 났다. 수치심으로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다음 회에 계속 … 김다은은 ‘당신을 닮은 나라’가 1995년 제3회 국민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소설가로 등단했다. ‘덕중의 정원’ ‘훈민정음의 비밀’ ‘쥐식인 블루스’ 등 20여권 소설책을 출간하고, 다수 번역돼 해외 소개됐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주관한 폴란드 바르샤바대학 작가 레지던시를 비롯, 청송 객주 문학관, 정선 여량면 아우라지 레지던시, 해남 인송문학촌 토문재 레시던시에 참가했다. 이화여대 불어교육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파리8대학에서 불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추계예술대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작권자의 허락없이 무단 부분 혹은 전체 전재, 복사, 배포를 금합니다.)
    종의 기원
    by 김다은
    2024.09.09 09:00:00
  • 6. ‘모르’의 비밀 “인간의 뼈로 마약을 만드는 일이 실제 현실에서 일어나고 있나요?” 나는 준비한 두 번째 질문을 『인공낙원의 문』의 작가에게 던졌다. 화면만 바라보던 촬영 기사가 고개를 약간 들었다. 출판사 편집자도 궁금한지 작가의 대답을 기다렸다. “실제로 있습니다. 마약의 이름을 제가 ‘모르’로 바꾸었을 뿐입니다.” 나는 첫 번째 질문과 달리 호의를 가지고 대응했다. “‘모르’라는 단어가 한국어 발음으로도 마약에 어울립니다.” “프랑스어가 유창하시니, ‘모르’의 뜻을 아시지요? ‘모르’는 죽음을 의미합니다.” 대담이 제법 순조로워진 것 같아 나는 자신있게 덧붙였다. “마약 중독은 말 그대로 인간을 ‘종’의 상태로 만들죠. 인간의 자유의지를 말살하니까요. 그렇다면 작가님은 인간을 종처럼 묶어 놓는 가장 강력한 것이 마약이라고 보신 것인지요?” “대담자님은 마약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나를 종으로 묶을 만큼 강력한 것이 세상에 있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전문직에 경제적으로나 세상 그 어느 쪽으로 견주어 보아도 나는 비교적 자유로운 위치에 있었다. “저는 마약을 해본 적이 없어서 단정적으로 말할 수는 없어요. 인간을 가장 비인간적으로 만들 물건이 마약이라는 점에는 동의합니다만, 저를 종으로 묶을 수 있는 대상을 아직 만나지 못했지요. 앞으로도 그런 일은 없을 것입니다.” “인간을 ‘종’으로 만드는 가장 강력한 것은 모르입니다. 죽음이지요.” “…….” “대담자님도 이 포박에서 벗어날 수는 없습니다.” 순간, 출판사에서 온 편집자가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는 모습이 영상에 올라왔다. 얼마 전 시골에 사시는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말을 들은 생각이 났다. 봉투에 조의금을 넣어준 것으로 나는 죽음의 예의를 지켰다. 녹화 현장의 사람들이 숨소리조차 내지 않고 있다는 착각이 들었다. 다들 귀를 곤두세우고 다음 말을 기다렸다. 내가 죽음의 종이라는 작가의 발언에 대한 내 반응이 궁금할 것이다. 그 말은 그곳에 있던 모든 사람 또한 죽음의 종이라는 뜻이기도 했다. 작가도 자기가 죽음의 종이라고 선언한 셈이다. 이 침묵을 깨뜨릴 말을 찾고 싶었지만, 더 강력한 말을 투척한 것은 화면 속의 작가였다. “우리는 모두 썩어갈 것입니다.” 대서양을 건너 날아온 비수는 정확하게 나를 관통했다. 갑작스럽게 몸의 떨림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우연은 아니었다. 영원히 살 것이라 여기진 않았지만, 여태 죽음이 나를 종으로 부리고 있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인류가 처음 인간의 죽음을 접했을 때 느꼈을 법한 놀라움과 두려움이 동시에 일었다. 처음으로 ‘죽음’의 실체가 온몸으로 감지되는 순간이었다. 내가 구더기와 함께 썩어갈 것이다. 죽음의 비수를 쏘아준 인간에게 보답하고 싶었다. “그래서 죽음에 대항하는 공갈 아기를 내세웠군요.” “공갈 아기?” “가짜 생명요. 관 속의 죽은 여자에게서 악당들이 살아 있는 아기를 안고 나오지요? 현실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지요. 현실을 기반으로 하지 않으면 공갈이지요.” “공갈 아기라는 표현이 매우 흥미롭지만 실제로 한국에서 사용하는 표현인지 궁금합니다. 상상 임신은 있겠지요. 세상에 모든 종류의 공갈이 가능할지라도 결코 생명은 공갈이 없습니다.” 두 번째 질문이 다시 나의 덫이 될 조짐을 보였다. 생명은 확실히 공갈이 없다! 그 사실은 나를 더욱 당황스럽게 만들었다. 내가 대담에서 계속 헤매는 이유가 작가가 걸어놓은 표지 문구를 아직 온전하게 이해하지 못한데 기인할 것이다. 지금까지의 대화를 통해 모순 문구를 풀어낼 힌트를 조금 얻긴 했다. <값으로 사신 것이니 사람들의 종이 되지 말라> 그러니까 ‘(죽음의) 사람들의 종이 되지 말라’는 뜻이 함축된 것이었다. 그렇다면 죽음의 종이 아닌 생명의 종이 되기 위해서는 ( 누가 ) 값을 치르고 (나를) 사신 것인지 마저 풀어야만 했다. 순간적인 호기심에 사로잡혔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이것을 무시하고 싶은 강력한 욕망 또한 동시에 일어났다. 작가가 책 표지의 문구로 계속 나를 함정에 빠뜨리지 않도록, 문득 떠오르는 프랑스 속담을 임기응변으로 내뱉었다. “L’habit ne fait pas le moine.” 직역하면 ‘옷이 성직자를 만들지는 않는다’였다. 책과 관련해서는 ‘표지가 반드시 책 내용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뜻이었다. 내가 농담한다고 생각했는지 부드러운 얼굴선을 가진 작가가 웃음을 호탕하게 터뜨렸다. “프랑스 속담에는 이런 것도 있지요. ‘고양이는 고양이라고 말해야 한다.’” 말은 바로 해야 한다는 뜻이다. 내가 소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는 반격이었다. ▶다음 회에 계속 … 김다은은 ‘당신을 닮은 나라’가 1995년 제3회 국민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소설가로 등단했다. ‘덕중의 정원’ ‘훈민정음의 비밀’ ‘쥐식인 블루스’ 등 20여권 소설책을 출간하고, 다수 번역돼 해외 소개됐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주관한 폴란드 바르샤바대학 작가 레지던시를 비롯, 청송 객주 문학관, 정선 여량면 아우라지 레지던시, 해남 인송문학촌 토문재 레시던시에 참가했다. 이화여대 불어교육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파리8대학에서 불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추계예술대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작권자의 허락없이 무단 부분 혹은 전체 전재, 복사, 배포를 금합니다.)
    종의 기원
    by 김다은
    2024.09.02 09:00:00
  • 국회 청문회 장면이다. 장관 후보자에게 “그러면 일제 강점기에 살았던 우리의 선조들은 국적이 일본입니까?”하고 고함치듯 질문한다. “일본이지요. 그걸 모르십니까?” 후보자의 대답에 질의자는 더 크게 고함 지른다. 고함에 덮여 추측할 수 있는 말은 “우리 선조들이 전부 일본 국적이라는 말입니까?...” 정도 였다. 이어 질의하는 국회의원은, 일장기를 지운 손기정의 사진까지 거론하면서, 당시 한국민은 어디까지나 한국민이었음을 강조한다. 그리고 이를 부정하는 김문수 장관 후보자를 질타한다. 헌법 전문에도 임시정부의 수립을 언명했으니, 당시 한국민은 임시정부의 국민임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국민들 중에는 이 말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그 국회의원에게 물어야 한다. “손기정이 베를린까지 갔었지요?” 국회의원이 대답을 안 한다. “대답하세요! 국민의 질문입니다” 국회의원 그래도 대답을 안한다. “그의 여권은 어디서 발급된 것입니까?” 대답이 없다. “대답하세요! 이 질문은 국민이 하는 질문입니다.” 손기정의 여권이 언론에 소개된 바가 없으니 보았다고 말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한국 국민은 누구나 그의 여권이 상해 임시정부의 발행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이 정도 상상으로 끝내자. 이날 논쟁에는 “일본인과 일본국민”이라는 말장난이 숨어있다. 아마도 질의한 국회의원에게는 말장난이 아니었을 것이다. 장난이라는 말을 생각할 수 없을 만큼 진지했으니까. 그는 “일본인과 일본국민”이라는 개념 혼란에 빠져 있었다. 그 국회의원은 “너는 손기정의 여권을 본적이 있느냐”면서 “여권을 보지도 않고 어떻게 확신할 수 있느냐”고 반박할 지도 모른다. 20세기초 이승만은 여권 없이 미국무부가 써준 신분 확인의 종이 쪽지를 들고 소련을 비롯해 유럽의 국가를 방문했었다. 공항 검색대에서 그는 당당하게 주장했을 것이다 자신이 무국적자임을. 그는 일본인도 아니었고 한국인도 아니었다. 손기정도 임시정부 메모를 들고 다녔을까? 나는 전공 분야가 달라 자신이 없다. 그러나 “한국 여권이 없었으면 한국은 없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장관 후보의 부모님은 일본국적인이었고 그 국회의원의 조부모도 일본국적이었다. 장관후보자의 말대로 “나라가 없는데 어떻게 국민이 있습니까?“는 맞는 말이다. 그 생방송을 보던 시청자들도 그렇게 생각했을까? 지금 한국의 대중은 상식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격렬한 정치적 이념 아래 생각한다. 그 국회의원의 머리 속의 대중은 그런 격렬한 대중이었을 것이다. 다시 말해 ”대한민국 수립이 임시정부에 의한 것이냐, 1948년의 한국 정부에 의한 것이냐“의 격렬한 이념 논쟁 때문에, 그는 “일본인종이냐? 일본국적이냐?”의 두 의미 혼동에 빠져 있었고, 빠져 있는 대중만을 염두에 두었을 것이다. “인종적으로 일본인이냐? 국적으로서 일본인이냐?”의 두 질문은 전혀 다른 얘기다. 누구나 아는 일이다. 구태여 둘의 차이를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이처럼 일부 국회의원들은 자신을 지지하는 딸들만 생각한다. 문제는 이 딸들만이 아니라는 점에 있다. 아들들도 그러니 말이다. 앞으로 우리는 이 여남들이 어떤 대중적 실체인가를 탐구해야 한다. 더불어 그 대중을 상대로 하는 정객들의 대중 개념까지 탐구해야 할 것이다. *외부 필진의 기고 내용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약력]서울대 명예교수 [저서]시와 리듬(1981, 개정판 2011), 음악을 본다(2009), 세계의 음악(2014) 등 [번역]기호학 이론(U. Ecco, 1984), 서양음악사(D. J. Grout, 1997)
    청문회를 보면서
    by 서우석
    2024.08.31 06:30:00
  • 5. 종의 순서 일의 목표나 방향은 우두머리가 정한다. 여태 그것은 단테의 역할이었다. 오늘은 달랐다. 좀 전에, 생명의 포대기를 안은 자가 서슴없이 일당의 방향을 결정했다. “메종으로 가. 메종!” 홉이 그렇게 소리쳤을 때, 단테는 명령의 서열이 한순간에 뒤집힌 것을 알았다. 홉의 결정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마치 어디로 가야 하는지 미리 정해둔 사람 같았다. 홉을 무시하던 로깡도 아무 말이 없었다. 운전대를 잡은 앤드류는 홉의 권위에 순종하듯이 물었다. “홉의 집으로?” 메종은 집이라는 뜻이었다. 홉의 집에 가면 우유며 아기 옷들이 있을 테니 좋은 선택이었다. 단테는 어림없다고 생각했다. 홉이 일당을 자신의 집으로 끌어들일 사람이 아니었다. 여태 그런 여지를 보인 적도 없었고, 특히 아이가 생기고 난 뒤로 더욱 경계했다. 앤드류의 질문에 놀란 것은 도리어 홉이었다. 홉은 이전의 단테처럼 단호하게 명령했다. “대문자!” 대문자 집(Maison)은 일당만의 은어였다. ‘푸른 감자의 집’을 약칭해서 메종이라 불렀다. 푸른 감자를 수확하는 집이었다. 홉이 하필 그곳을 선택한 이유는 알 수 없었다. 한순간 침묵이 흘렀다. 다른 곳이어야 할 것 같은데, 단테는 다른 곳을 떠올릴 수가 없었다. 죽은 자의 뼈를 수송할 때는 목적지가 분명했다. 하지만 아기의 생명을 구할 미지의 방향은 가늠조차 할 수가 없었다. 죽음과 관련된 결정과 달리, 생명과 관련된 결정은 더없이 막막했다. 홉이 단테의 마음을 꿰뚫듯 말했다. “선택의 여지가 없어요.” 순간 갈림길이 나타났고, 앤드류는 메종의 방향으로 접어들었다. 푸른 감자의 집으로! 잘라보면 푸른색이 도는 감자들이었다. 땅의 특징 때문에 그런 색깔을 띠었다. 최근에는 보라색이나 노란색 감자도 시장에서 볼 수 있지만, 단테의 형이 푸른색 감자를 처음 수확했을 때는 팔 수 없는 종이었다. 그런데 푸른 감자를 먹으면 약한 몸이 빠르게 회복한다는 소문이 나면서 근처에서 찾는 사람들이 생겼다. 일당은 겉으로는 푸른 감자를 키우고 수확하는 평범한 일꾼들이었다. 단테는 아기를 ‘푸른 감자의 집’으로 데려가는 것이 최선인지 확신이 없었다. 그 ‘메종’이야말로 아기에게는 더없이 위험한 곳이었다. “여기 잠깐 세워 줘!” 저만치 주유소와 잡화점이 보이는 곳에서 홉이 갑자기 요구했다. 무슨 일인지 다들 긴장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단테도 왜 그러냐고 물을 여유가 없었다. 차를 세우자마자, 홉은 아기를 로깡에게 맡기고 서둘러 내렸다. 차의 앞문을 열더니, 단테에게 아까 자신이 바닥에 던졌던 돈을 돌려달라고 했다. 이것이 무슨 술수인가 싶어 단테는 얼굴을 험악하게 찡그렸다. 마치 우두머리가 총무에게 돈을 정산하라는 식이었다. “아기에게 먹일 것을 사야 해요. 빨리 서둘러요.” 단테는 그제야 홉의 의도를 알아차렸다. 급하게 돈을 주섬주섬 꺼냈다. 홉이 바닥에 던져 꾸겨진 지폐 두 장과 자신의 지갑에서 제법 큰 금액의 몇 장을 꺼내 주었다. “단테 씨! 자주 올 수 없을 테니 필요한 것을 한꺼번에 사도록 할게요. 물건을 가지고 나오면 바로 싣고 갈 수 있도록 잡화점 뒤쪽에 차를 세워두도록 하세요.” 홉은 단테에게 지시하고, 아기용품을 사기 위해 달려갔다. 단테가 그의 달리는 뒷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앤드류가 말을 걸었다. “언제 잡화점 뒤쪽으로 이동해야 하나요?” 홉이 사라지자 기존의 서열이 다시 돌아오는 느낌이었다. “기다려!” 단테는 속으로 언제부터 서열이 뒤집혔을까를 생각했다. 10분 전만 해도 홉은 오늘 받은 일당(日當)을 던지고 일당(一黨)에서 달아나던 도망자였다. 그런데 달아나던 사람을 중간에서 태우고 아기를 안겼을 때, 그는 달라졌다. 아기 포대기를 품에 안자 그는 여태 보이지 않던 결단력과 행동력을 발휘했다. 홉만 달라진 것이 아니었다. 앤드류와 로깡도 아기를 발견할 때부터 달라졌다. 그들도 단테를 두고 먼저 아기를 안고 달아났다. 그렇게 발이 빠른 놈들인 줄을 처음 알았다. ‘죽은 자를 위한 예의의 시간’에서 관의 마지막 뒷정리를 단테가 했던 순간이 떠올랐다. 죽음의 덮개를 닫는 것은 서열상 꼴찌가 하는 것이었다. 오늘은 홉 대신 단테가 닫았다. 그때부터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종의 순서가 달라졌다. “이제 차를 이동시켜.” 앤드류는 주유소를 지나 잡화점 뒷문 쪽에 적당히 자리를 잡았다. 게으르고 느려터진 앤드류의 예전 모습이 아니었다. 이전 앤드류는 무감각하고 자기 의견을 내는 적이 좀체 없었다. 자기가 원하는 것을 표현할 줄도 몰랐다. 한데, 아기의 울음을 들었다고 말할 때부터 눈빛이 달라졌다. 살아 있는 아기를 버려두고 갈 것이냐고 버틸 때 그는 변했다. 그는 죽은 자의 뼈가 아니라 살아 있는 아기를 안고 나오는 시간을 지나왔다. 자신의 의견이 단테에게 먹힌 아주 강렬한 체험을 하게 된 것이다. 꼬박꼬박 지시해주어야만 했던 이동 경로를 스스로 결정하기 시작했고, 그는 달라졌다. “홉이 나타났어요.” 앤드류가 운전석 문을 열고 내렸다. 뒤쪽의 로깡은 아기를 안은 채 그대로 앉아 있었다. 단테는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도록 로깡에게 몸을 낮추라고 말하고, 자신도 그렇게 했다. 앤드류가 서둘러 홉이 사 온 물건들을 받아서 뒤쪽에 싣기 시작했다. 거대한 몸집이 제법 날쌔게 움직이는 모습이 신이 난 사람 같았다. 다시 운전석에 올라타더니 급하게 시동을 걸었다. 뒤쪽에, 홉이 아기를 건네받는 모습이 거울에 비췄다. 홉은 30초만 기다리라고 했다. 사람들의 눈에 띄기 쉬운 위치인데, 홉은 포기하지 않았다. 로깡은 홉이 사 온 물건들을 이리저리 들춰보며 대기 상태였다. 홉이 요구한 이 절체절명의 30초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단테는 깨달았다. 형의 삶과 죽음의 갈림길의 몇 분과 같은 시간일 것이다. 단테는 아기에게 뭔가를 먹이는 듯했다. 잠시 후, 다시 달리라고 지시한 것은 홉이었다. 단테는 혼란한 마음에 뒤쪽을 돌아보지 않고, 가슴에 걸리는 일을 생각했다. 무엇보다 지금 단테가 고민해야 하는 것은 구하지 못한 죽은 자의 뼈였다. 날짜가 다가오고 있었다. 오늘 실패한 일을 복구하려면 충분한 시간이 필요한데, 그럴 여유가 없었다. 지금 새로운 시체를 구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공작을 새로 꾸미려면 최소한 한 달 이상 필요했고, 그것도 극히 조심해야 했다. 더구나 교통사고로 부서진 시체를 구하는 일은 운이 극히 좋아야 했다. 슬그머니 아기의 엄마가 떠올랐다. 지금쯤 단단하게 못질을 당한 관이 묘지로 가고 있을 터였다. 푸른 감자가 심긴 들판 가운데 길로 앤드류가 차를 몰아 들어가고 있었다. ▶다음 회에 계속 … 김다은은 ‘당신을 닮은 나라’가 1995년 제3회 국민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소설가로 등단했다. ‘덕중의 정원’ ‘훈민정음의 비밀’ ‘쥐식인 블루스’ 등 20여권 소설책을 출간하고, 다수 번역돼 해외 소개됐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주관한 폴란드 바르샤바대학 작가 레지던시를 비롯, 청송 객주 문학관, 정선 여량면 아우라지 레지던시, 해남 인송문학촌 토문재 레시던시에 참가했다. 이화여대 불어교육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파리8대학에서 불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추계예술대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작권자의 허락없이 무단 부분 혹은 전체 전재, 복사, 배포를 금합니다.)
    종의 기원
    by 김다은
    2024.08.26 09:00:00
  • 경상도. 먼저 경상도의 예를 보자. “저 사람이 김씨니? 김씨가 저 사람이니?”는 경상도 식으로 발음하면, “절마가 김가가? 김가가 절마나?”가 된 것이다. “절마”는 “저 놈(者)”의 뜻이다. 여기서 “놈”은 비하의 뜻이 아니다. 그 대답인 “절마 아이고, 일마다”의 “일마”에도 비하의 뜻은 없다. 이 어투를 표기하면 1번과 같다. 2번은 “김(金)씨”를 “가(賈)씨”로 바꾼 것이다. “가”가 열번 반복되는 재미있는 말놀이가 된다. 오래 전에 강의 시간에 억양를 설명하면서 문득 만든 말이다. 1. 절1 마2 가0 김0 가1 가0, 김0 가2 가1 절0 마1 가0 아1 이2 다1, 절1 마2 아1 이1 고0 일0 마2 다1 2. 가2 가0 가1 가2 가1, 가1 가2 가0 가2 가0 1번이나 2번은 억양이 없으면 뜻을 짐작하기 어렵다. 1번 둘째 줄의 “아1이2다1”는 “아니다“의 뜻이다. 이 억양은 발음의 굴곡만으로도 의미를 갖는다. “어1어2어1”나 “어1언2제1” 둘 다 “아니다”의 뜻이다. 억양을 대신함으로서 뜻을 대신하는 것이다. 1과 2의 중간과 끝 종지 부분은 같은 음 높이의 “가1”일 수도 있고, 낮은 “가0”일 수도 있을 것이다. 다음은 경상도의 일상 대화 중의 흔히 듣는 말이다. 3. 어1 제0 아1 래1 니1 뭐1 했2 노2? 4. 아1 이2 시1 예0~ 여2 좀0 널0 짜2 주1 이1 소0 아1 이2 시1 예0~ 여2 좀1 널1 짜3 주2 이2 소1 3번은 억양이 달라지더라도 그 뜻을 쉽게 알아차릴 수 있다. 그러나 4번은 경상도 억양에 맞게 발음해도 뜻을 알기 힘들다. 이 말은 택시를 내릴 때에 손님이 택시 기사에게 부탁하는 말이다. “널짜준다”(내려준다)는 경상도 사람들만 사용하는 말이다. 이 말은 “기사님, 여기서 좀 내려주세요”의 뜻이다. 4의 둘째 줄은 “여2좀0”으로 두 칸 내리지 않고 “여2좀1”으로 부드럽게 내려온 다음 “좀1”에서 두 칸 뛰어 오르는 모습이다. 지금까지 사용하지 않던 “3”이 사용되었다. 경상도와 전라도 지역의 억양에서 두 칸 도약이나 하강은 중요한 특성이므로 시작음이 1이라면 3으로 도약할 수 밖에 없다. 시작 음높이에서 “상행/하행”의 양자 택일 전에, 같은 음높이를 유지하느냐 아니면 달라지느냐의 선택이 앞서 있었다고 보아야 한다. 달라졌음의 선택 후 높은/낮은 음의 선택이 이루어진 것이다. 따라서 두 단계 도약/하강은 내면적으로는 긴 과정을 겪은 것이다. 따라서 차원이 다른 의미가 부여된다. “여2-좀1”은 “여기서 내리면 좋겠습니다”의 진술이라고 한다면, “여2좀0”은 “저는 여기서 꼭 내려야 합니다”는 의견을 함축한다. “널1 짜3 주2 이2 소1” 역시 “널”이 “1”에서 출발했음으로 “3”으로 가지 않을 수 없게 되었고 이 역시 “반드시 내려야 합니다”의 강한 의사를 전달하게 된다. 다음은 야구 펜의 대화다. 5. 니2- 롯2 데2 가0 ? 어1 어2 어0 삼1 성2 이1 다1 “니2- 롯2 데2 가0?”는 “너 롯데 편이니?”의 뜻이고 “어1어2어0, 삼1성2이1다1”는 “아니야 나는 삼성 편이야”의 뜻이다. 앞서 말했듯이, “어1어2어0”는 같은 억양으로 “어1언2제1”가 사용되기도 한다. 여기서 억양은 의미 전달의 결정적 역할을 한다. 경상도의 사투리는 억양이 필수적이다. 찾아보면, 억양만으로 “아니야”의 뜻을 담는 경우가 더 있을 것이다. 경상도 역양의 특징이 폭이 넓은 음높이의 변화라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진 일이다. 이제 호남의 억양을 살펴보자. 전라도. 전라도의 사투리에는 우리가 알아듣기 어려운 단어가 많다고 한다. 예를 들어 “징하네, 어쨔스까? 허벌나게”등은 전라도에서는 흔히 쓰는 말이라고 한다. 6. 어0 쨔0 스0 까2 ?/ 시0 방0 간0 당0 께2/ 허0 벌0 나2 게0 6번의 세 구절은 모두 끝을 약간 올리는 어투를 보여준다. “시방 간당께”는 서울 지방의 어투인 “지1금1 갑1니1다1”처럼 끝을 올리지 않던지, 또는 “지1금1 갑1니1다2”로 끝을 한 단계 치켜 올릴 것이다. 서울 지방 사람들은 “시방 간당께”를 흉내낼 경우에도, “께”를 치켜 올리더라도 한 단계 올리는 것이 보통이다. “허0벌0나2게0”(엄청나게)는 “나”의 두 단계 도약이 통상적인 듯하다. 남도의 경우 치켜올릴 때에는 강조의 의도가 담길 경우, 두 단계 올리는 것이 통상적인 것으로 보인다. 이제 조금 긴 말을 보기로 한다. 이제 말을 줄이는 경우를 보자. 7. 암1 시1 롱0 먿2 땜1 시0 물1 어1 보1 것1 능0 가2 ? (알면서 무엇하러 물어 보셨어요?) “암시롱”의 “암”은 “알면서”의 “알”과 “면”의 두 음절을 합해서 “암”으로 줄여 만든 것으로 보인다. “시롱”의 “시”는 “알면서의”의 “서”의 문법적 기능을 새끼줄 꼬듯 꼬아 “롱”으로 만든 것이 아닌가 추론해 본다. 이러한 조합은 다음에 볼 충청도 사투리에서도 볼 수 있다. “먿 땜시”는 “무엇 때문에”의 줄임인데 경상도의 경우, 이 줄임은 “뭐 따에”이다. 여기서 어투의 굴곡은 “먿”(무엇)의 강조와 “능가”에서 질문을 위한 상행 발음 외에는 굴곡이 없는 편안한 발음진행을 보인다. 전라도 어투가 경상도에 비해 두 번 도약을 아끼고 있는 듯하다. 문장의 길이를 줄이고 큰 굴곡을 주지 않은 어투가 특징이다. 이는 다음에 살필 충청도에서 더 두드러지는 현상이다. 다음 좀 더 긴 문장을 보자. 8. 아1 따1~ 짜1 자1 내1 서0 으2 따1 써0 먹0 으0 까2 (아이고/ 적고 부실해서/ 어디다/ 쓸수있겠나) 9. 어1 찌1 코1 름0 히2 놀1 놀1 하0 능0 가2 ? (왜 그렇게 핼쓱하게 보이니?) 8번의 어투는 괄호안의 “/”표로 표시한 단위를 줄인 모습을 볼 수 있다. 부연하자면, “아이고 → 아따”, “적고 부실해서 → 짜자내서”등으로 줄인 것이다. 반면 끝의 도약을 제외하면, 어투의 굴곡은 부드러운 편이다. 9번 8번과 패턴이 같다. 충청도. 충청도의 어투를 보자. 흔히들 충청도 사투리의 특징으로 “~여”와 “~혀”를 말 끝에 많이 사용한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이야기할 내용을 최대한 줄인 다음 천천히 느리게 발음한다. 아래 예문 10번의 경우, “여”는 “여기”이고, “둔눠”는 “드러누워”의 줄임이다. 10. 여~ 둔눠 (여기, 드러누워) 11. 왜 그랴? 뭐 씅깔나는 일 있어? (왜 그래? 뭐 화나는 일 있었니?) 2. 뻐굼살이 할껴? 내가 아빨텨니, 엄마혀? (소꿈장난 할래? 내가 아빠할테니 니가 엄마해) 10-12 모두 억양은 1로 일관한다. 다만 물음표로 표시된 질문의 경우 한 단계 올려 2로 발음하는 것으로 보인다. 부드러운 진행이다. 충청도의 경우긴 내용을 줄인 후 부드러운 억양을 선택하는 것으로 보인다. 다음 두 경우는 긴 내용을 충청도 식으로 짧게 줄인 것이다. 두 음절을 느리게 발음해야 할 것이다. 13. 출텨? (춤 한번 추시겠어요?) 14, 개혀? (개고기 드실 줄 아세요?) 13의 대답은 행동으로 보이거나 “못혀” 중 하나일 것이고, 14의 대답은 “혀⤴/ 못혀⤵” 중 하나일 것이다. 표준어를 사용하는 서울 사람들은 “2의 2승”과 “2의 e 승” 그리고 “e 의 2승”의 셋을 차이나게 발음하지 못할 것이라는 주장이 있다. 이 발음을 표기해 보자. 2의 2승 → 이1 의1 이1 승1 2의 e승 → 이0 의0 이3 승2 e의 2승 → 이3 의2 이1 승1 이 세 발음에서 주목할 점은 영어의 “e”를 아주 높여 발음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특수한 기호 읽기는 수학, 화학, 물리학 등 자연과학 분야에서 더 있을 것으로 짐작된다. 예를 들면, “어린 ‘아이’를 말하니? 허수 ‘i’ 를 말하니?“의 경우에도 앞서 설명한 발음 방식과 같을 것이다. 지금까지, 경상, 전라, 충청도의 억양 다르게 말해 사투리를 살펴 보았다. 아마도 생각했던 것보다는 단순한 원리에 의해 발음이 운용된다는 것을 감지했을 것이다. 이 외에 경기도, 강원도, 함경도, 평안도, 황해도 등 많은 사투리 억양을 살펴 볼 수 있을 것이다. 문화 프리즘은 여기서 일단락을 짓는다. *외부 필진의 기고 내용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약력]서울대 명예교수 [저서]시와 리듬(1981, 개정판 2011), 음악을 본다(2009), 세계의 음악(2014) 등 [번역]기호학 이론(U. Ecco, 1984), 서양음악사(D. J. Grout, 1997)
    경상·전라·충청 사투리
    by 서우석
    2024.08.24 06:20:00
  • 요즈음 세대들은 자신의 어투에 대한 관심이 전보다 덜한 것으로 보인다.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 중 하나는 한글 전용 이후, 신문과 책에서 한자의 모습이 사라졌고, 사라진 후에도 세월이 많이 흘러간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간단히 말해 한글 전용의 부작용이 드러나기 시작했다는 뜻일 것이다. 한자를 사용하지 않음으로 해서, 같은 발음이지만 장/단 모음의 구별을 하지 않게 되었음을 뜻한다. 그러나 한글 전용으로 인해, 발음의 구별이 혼란스러워졌다고 해서, 이를 이유로 한글 전용을 되돌리자고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새로운 문제는 새로운 관점에서 고쳐나가야 할 일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앞으로 한국어가 장/단 모음을 구별하지 않는 상태로 들어설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언어는 세월에 따라 변하고 이는 피할 수 없는 일이다. 300~400년 전 조선 중기의 말도 지금 우리는 이해하지 못하는 고어라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장/단 모음의 차이 중, 대표적인 예가 “화장”이다. 여성들이 얼굴을 꾸미는 “화장”과 시신을 태우는 “화장”은 두 경우 한자가 다르다. “化粧”과 “火葬”이다. 두 단어의 구별은 단어의 첫 발음인 “화”를 길게 발음하느냐 짧게 발음하느냐에 달려있다. 현실에서 이 두 단어의 혼동이 없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물론 한글의 장/단 음의 구별이 한자에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한자가 아닌 한 음절로 된 단어에도, 장/단 음에 따라 뜻이 달라지는 경우가 한 둘이 아니다. 한 음절로 된 단어를 살펴보자. “굴, 눈, 말, 밤, 발, 배, 벌, 병” 등이 있다. 외에도 찾아보면 더 있을 것이다. “배”의 경우 “과일/ 복부/ 선박/ 두세 배”에서 보듯, 같은 단모음이라도 여러 뜻으로 쓰인다. 두 음절로 된 단어를 보자. “대전”(大田)과 “대-전”(大戰), “부자”(父子)와 “부-자”(富者), “유-명”(有名)과 “유명”(幽冥), “사과”와 “사-과”등 여러 단어를 찾을 수 있다. “대전”(大田)과 “대-전”(大戰)은 같은 한자임에도 불구하고, 장/단 모음으로 구별해 읽는다. 장/단 모음의 선택이 한자 때문만은 아닌 예일 것이다. 좀더 섬세하게 살펴보자. “대전”(大田)의 경우, 뒤의 “전”이 앞의 “대”보다 음고가 높다. 이 두 음절의 음높이가 다르다는 뜻이다. 음높이 차이의 좋은 예가 “이사”(理事)와 “이사”(移徙)다. “이사”(理事)는 “이”와 “사”의 음높이가 같으나, “이사”(移徙)는 같은 음높이로 발음하면 뜻이 와 닿지 않는다. “사”를 약간 높여야 한다. “이사한다”의 발음은 “사”에서 음높이가 올라가고, “한다”는 문법적으로 연결된 부분이기 때문에 올라간 발음을 지속하는 것으로 보인다. 구어에 있어서, 음높이 인식의 메커니즘은 지금 발음한 음높이와 다음 발음할 음높이의 차이의 인식에서 출발한다. 앞의 것보다 “높은지, 낮은지”의 결정으로 이루어진다는 뜻이다. “지나간 음보다 높다/낮다”가 지각의 기본 틀이다.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방식이다. 시작의 음높이를 “1”로 정하고, 다음 발음이 높을 경우 “2”, 낮을 경우 “0”으로 표기하기로 한다. 물론 발음을 “2”나 “0”에서도 시작할 수 있다. 이 표기는, 기존의 연구에서 음높이를 표기한 경우를 발견하지 못해, 이 글에서 임의로 만든 것이다. 기존 연구에서 제시한 보다 편리한 표기 방법이 있다면 교체하면 될 것이다. 이 글에서는 세 개의 음높이를 설정하였다. 물론 필요할 경우, “2” 위에 “3”을 설정하거나 “0” 아래 “-1” 을 설정할 수 있을 것이다. “0, 1, 2” 기호를 사용하면, “이사”(理事)는 “이1사1”, “이사”(移徙)는 “이1사2”가 된다. “1”보다 낮은 발음에서 시작하면, “이사”(理事)는 “이0사0”이고 높은 발음에서 시작하면 “이2사2”다. “이사”(移徙)는 “1” 발음에서 시작하면, “이1사2”이고, 낮은 발음에서 시작하면 “이0사1”가 된다. 설명한 방식으로 “이사”를 한번 발음해 보는 것도 이해에 도움이 될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이사”를 두 칸 뛰어 “이0사2”로 발음하면 자연스럽지 않음을 느낄 수 있다. 과일 “사과”와 사죄 “사과” 역시 같다. 사죄 “사과”는 “사1과1”, 과일 “사과”는 “사1과2”일 것이다. 대구 지방에서는 먹는 “사과”를 “사2과1”로 발음하기도 한다. 경상도 사투리의 첫 음을 높은 음에서 시작하는 경우의 해당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경상도 사투리가 심할 경우, “망신살스럽다”의 “망신”을 “망1신2”으로 발음하지 않고 “망2신0”으로 두칸 뛰어내려 발음하는 사람도 있다. 대구에도, “X1 Y2”이 있다. “사과”의 다른 이름인 “능금”의 경우, “능1금2”으로 발음한다. 이제 단어 차원을 넘어서서 문장의 종결부의 어투를 살펴 보기로 한다. “그렇게 했습니다”를 예로 삼아 살펴보기로 한다. 1. 그1 렇1 게1 했1 습1 니1 다1. 이 어투는 음높이의 변화 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같은 음높이로 발음한다. 수평선의 어투다. 겸손한 태도를 들어낸다. 아마도 학생이 선생님에게 또는 군대에서 상관에게 보고하는 경우의 어투일 것이다. 2. 그1 렇1 게1 했2 습2 니0 다0. (그1 렇1 게1 했2 습2 니2 다2) 2번 어투는 “했습”을 높게 발음한 경우다. 평범한 진술의 태도를 보여준다. “했2습2” 다음에 뒤이은 “니다”가 낮은 음으로 돌아왔기 때문에 어느 정도 예의를 지킨 어투로 보인다. 그러나 괄호 안처럼 “니2다2”를 같은 음높이인 “2”로 높게 발음하면 항의하는 느낌을 주게 된다. “당신이 시켰으니 하라는 대로 했어요”라는 뜻을 뒤에 감추고 있는 것이다. 3. 그1 렇1 게1 했1 습1 니1 다2. 3번 어투는 “잘 했으니 안심하십시요”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말 끝을 올림으로서 질문의 느낌을 담은 것이다. “아시겠지요”라는 뜻을 포함한다. 그러나 요즈음 어투에 많이 나오는 맨 끝 발음인 “다”에 굴곡을 주면 함축하는 감정은 달라진다. “다” 발음을 위에서 아래로 끌어내린다면(다↘아) 또는 더 치켜 올린다던지(다↗아), 아예 굴곡을 넣어 발음하면, 느낌은 많이 달라진다. 그 굴곡에는 여러가지가 있다. 기호로 표시하면 “다⤼아, 다⤻아, 다⤳아” 등일 것이다. 4. 그1 렇2 게2 했1 습1 니0 다0. 이 경우, “그렇게”의 내용을 중시해서 말하는 경우다. “그렇게”의 세 음을 모두 높여 발음하지 않고 “그1렇2”에서 올라가는 느낌을 부여한 것은 두 발음의 관계에서 어투의 단서를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어투의 “상승”이 일반적으로 강조를 표현하는 느낌을 준다. 반대로 “그2렇1게1”로 내려오면, 경상도 사투리의 느낌을 주게 된다. 발음의 음높이의 차이를 검토하면, 사투리에 관한 패턴도 밝혀질 수 있다. 또한 아나운서나 전문 해설가로부터 느끼는 편안한 어투의 패턴이 어떤 것인가도 찾아낼 수 있다. 인터넷과 스마트 폰 보급 후 많아진 개인 방송에서 느끼는 어투가 왜 불편하게 느껴지는지를 알기 위해서, 어투에 세밀한 파악이 더욱 필요할 것이다. 지금 우리는 인터넷 상에서, “text-reader-ap”(읽기 앱)의 음성 송출을 많이 경험하고 있다. 낭독의 실수가 지나치게 많다. “6.25”를 “육점이오”, “KF-21”을 “케이에프 마이너스 이십일”, “4000m”를 “사공--엠”, “3500t급”을 “삼천오백티급”으로 읽는 발음이 공공연하게 송출되고 있는 현실이다. 잘못 타자한 글자를 그대로 읽는 일도 흔하다. 여러 사람이 듣는다는 뜻에서의 공공 방송의 발음 오류는 방치해서는 안 될 일이다. 대응하는 정책이 있어야 한다. 우리 세대는 중학교 시절, 국어 선생님이 지명하는 대로 일어서서 “국어 책” 읽는 것이 국어 수업 시간의 절반을 넘겼었다. 올바른 읽기가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을 당시의 국어 선생님들은 알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 중학교의 국어 시간이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 궁금하다. *외부 필진의 기고 내용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약력]서울대 명예교수 [저서]시와 리듬(1981, 개정판 2011), 음악을 본다(2009), 세계의 음악(2014) 등 [번역]기호학 이론(U. Ecco, 1984), 서양음악사(D. J. Grout, 1997)
    어투
    by 서우석
    2024.08.17 05:50:00
  • 4. 두 종류의 다급함 단테가 아기를 데려가자고 말하자, 믿기지 않은 일이 일어났다. 게으르고 굼뜬 로깡과 앤드류가 거짓말처럼 민첩하게 움직였다. 그들은 죽은 자의 뼈를 담기 위해 가져온 비닐 시트를 맞잡고 뒤집었다. 마치 의사처럼 죽은 여자와 분리한 아기를 들어 올렸다. 뒤집힌 부드러운 시트 쪽에 아기를 감쌌다. 그리고 단테가 명령을 내리기도 전에 뒤쪽 출구를 향해 달렸다. 명령도 복종도 필요 없었다. 두 놈은 관도 제대로 덮지 않은 채 포대기를 안고 뒷문으로 사라졌다. 여느 때 홉이 하던 마무리를 오늘은 단테가 해야만 했다. 어떠한 범죄의 단서도 남기지 않아야만 했다. ‘죽은 자를 위한 예의의 시간’의 마지막 30초를 두고 단테는 빠져나왔다. 이제부터 되도록 사람의 눈에 띄지 않아야만 했다. 외진 곳이라 사람들의 왕래가 드물지만, 일찍 도착한 죽음의 봉사자가 있을 수도 있었다. 이 장소를 배회하는 자는 수상할 수밖에 없었다. 로깡과 앤드류는 차가 있는 곳으로 줄달음했는지 보이지 않았다. 묘를 파고 인골을 구할 때는 밤에 주로 움직였기에 사람의 눈을 신경 쓰지 않았다. 대신에 짐승들의 눈이 따라 다녔다. 사람의 시신 냄새를 짐승들은 기차게 알아챘다. 일행이 서둘러 뼈를 채취하고 나면, 남은 시신을 동물들이 처리하는 모양이었다. 동물들이 협조자이면서도 경쟁자였다. 여태 단테 일당이 무사할 수 있었던 이유도 파묘가 동물들의 행위로 매번 결론이 났기 때문이었다. 꼬리가 길면 밟힐 수 있다는 느낌이 왔을 때, 단테는 인골(人骨) 도둑질의 장소를 묘지가 아니라 ‘죽은 자의 예의의 시간’으로 바꿨다. 당분간 묘지 부근에는 얼씬하지 않는 것이 좋았다. 일부러 천천히 걸어 도로까지 왔다. 그때부터 단테는 미친개처럼 맹렬하게 달렸다. 다급함이 단테를 몰아세웠다. 몸이 휘청거릴 정도였다. 다른 작업 때와 다른 다급함이었다. 이전의 다급함은 누구에게 쫓기는 도망자의 것이었다. 뒤에 누가 보고 있는지, 경찰이 잡으러 오는 것은 아닌지, 알 수 없는 분노나 죄의식에서 달아나는 다급함이었다. 오늘의 다급함은 반대로 추격자의 그것이었다. 따라잡으면 귀한 것을 잃지 않을 조급함이었다. 앞서간 로깡과 앤드류를 따라잡아야 했다. 그들이 안고 간 포대기를 따라잡아야 했다. 그 안에 있는 아기를 잃지 않아야 했다. 아기의 생명을 붙잡아야 했다. 살려야 했다. 손톱자국처럼 열렸던 아기의 한쪽 실눈! 단테를 향해 열렸던 그 실눈의 호소. 그런 간절한 실눈을 이전에도 본 적이 있었다. 단테는 왜 눈물이 날 정도로 다급한지 비로소 깨달았다. 그런 눈을 형에게서 보았다. 마지막 스르르 감기던 한쪽 눈을 단테는 보았다. 부모가 누군지도 모르고 오로지 세상 전부처럼 의지하던 형, 항상 친구 같던 형, 그의 유일한 혈육이 죽어가던 순간에 열려 있던 실눈, 세상에 혼자 남겨질 동생을 한순간이라도 더 보려고 애타게 열려 있던 형의 눈과 아기의 눈이 닮아 있었다. 그때처럼 단테는 마음이 초조하고 다급했다. 드디어 차를 숨겨놓은 곳까지 왔다. 그런데 차가 보이지 않았다. 보스인 단테를 버리고 이 망할 두 놈이 달아나버린 모양이었다. 단테는 그들이 사라졌을 방향으로 도로변을 달렸다. 한참 달려가자 뒤에서 빵빵거리며 차가 나타났다. 단테는 욕을 하며 차에 올랐다. 운전대를 잡은 앤드류가 말했다. “단테 씨를 태우려고 갔는데, 우리를 보지 않고 반대 방향으로 달려갔어요. 다시 돌려서 온 것입니다.” 단테는 뒷좌석으로 고개를 돌렸다. 로깡이 포대기를 안은 모습이 보였다. 생소하면서도 안도가 되었다. 형을 싣고 병원으로 달려갈 때는 혼자였지만, 지금은 다행히 로깡과 앤드류가 곁에 있었다. 처음으로 그들이 든든하게 느껴졌다. ‘살아 있어?’ 말없이 표정으로 물었지만, 로깡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모른다는 뜻인지 죽었다는 뜻인지 알 수 없었다. 단테가 앞쪽으로 몸을 바로잡자, 운전석의 앤드류가 물었다. “어디로 갈까요?” “…….” “어디로 갈지 방향을 정해야 해요.” “홉의 집으로 가자.” 뒷좌석의 로깡이 단테가 들리도록 큰소리를 쳤다. “홉을 혼쭐내러 갈 생각이세요? 아기부터 어떻게 해봐요.” “아기를 살리러 홉에게 가자는 거야.” “홉은 아기를 보자마자 도망가버렸어요. 우리가 가면, 우리가 아기를 데려가면 경찰에 신고할 놈이에요.” “홉에게 가야만 해. 그는 아기를 키워봤잖아.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가 알 거야.” “그의 여자가 거절할 거예요. 훔친 아기를 도와줄 리가 없어요.” “아니야. 홉이 달아난 것은 죽은 여자와 아기에 대한 연민 때문에 그랬을 거야. 너희들도 돈이 되는 여자가 아니라 아기를 데리고 나왔잖아.” “여자를 포기했다고 우리도 홉처럼 돈을 돌려줘야 하는 것은 아니지요?” 그때 앤드류가 로깡의 흥분된 저항을 끊으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우리 중에 홉의 집이 가장 가깝기는 해요.” “더 빨리 달려!” 형을 싣고 달릴 때 느꼈던 절박함이 그의 온몸을 다시 감쌌다. 조금만 더 일찍 병원에 도착했으면 형을 살릴 수도 있었다고 들었다. 단 몇 분에 삶과 죽음의 순간이 갈렸다고 했다. 단테는 홉에게 연락을 취하기로 마음먹었다. 작업 중 휴대전화 사용은 금지조항이었다. 어쩔 수 없을 때 ‘푸른 감자’를 사용했다. 푸른 감자는 그들만이 아는 암호였다. 만약 발각되어도 마약 제조를 숨길 수 있도록 만든 암호였다. 휴대전화를 꺼내려던 단테의 눈앞에 무엇인가가 걸렸다. 분명 익숙한 모습이었다. 차가 앞으로 달릴수록, … 분명했다. 홉이다! 앤드류가 단테 쪽을 흘끗 쳐다보았다. 단테는 차를 세우라고 지시했다. 홉도 차를 분명 알아보았지만 달아나지 않았다. 앤드류가 차를 세우자, 홉은 당연하다는 듯이 뒷좌석으로 올라탔다. 홉이 달아나다가 우연히 따라잡힌 것인지, 홉이 아예 일행을 기다린 것인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었다. 누구도 홉을 탓하지 않았다. 홉도 변명하지 않았다. “아기를 좀 돌봐 줘.” 단테는 일부러 무심한 듯 말했다. 홉은 흠칫했지만, 상황을 금방 파악했다. 네 남자 중에 아기를 키워본 것은 홉밖에 없었다. 홉은 본능적으로 움직였다. 아기를 이리저리 신중하게 들여다보았다. 급하게 물병의 물을 수건에 적혀 아기의 얼굴을 닦기 시작했다. 로깡도 아기의 온몸을 닦는 그를 도왔다. 아무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달리는 차 안은 죽어가는 자를 살리는 병원처럼 엄숙했다. 마침내 홉이 아기를 로깡에게서 자신의 품으로 옮겨 안았다. 단테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앤드류는 기쁨의 나팔처럼 차의 경적을 빵빵 울렸다. 그때 홉이 마치 우두머리처럼 명령했다. “메종으로 가. 메종!” ▶다음 회에 계속 … 김다은은 ‘당신을 닮은 나라’가 1995년 제3회 국민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소설가로 등단했다. ‘덕중의 정원’ ‘훈민정음의 비밀’ ‘쥐식인 블루스’ 등 20여권 소설책을 출간하고, 다수 번역돼 해외 소개됐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주관한 폴란드 바르샤바대학 작가 레지던시를 비롯, 청송 객주 문학관, 정선 여량면 아우라지 레지던시, 해남 인송문학촌 토문재 레시던시에 참가했다. 이화여대 불어교육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파리8대학에서 불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추계예술대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작권자의 허락없이 무단 부분 혹은 전체 전재, 복사, 배포를 금합니다.)
    종의 기원
    by 김다은
    2024.08.12 09:00:00
  • 요즈음 외국 여러 나라의 젊은 층에서 한글의 인기가 대단한 모양이다. 시쳇말로 난리가 난 정도라고 한다. 왜 그럴까 생각해 보자. 한글을 배우면서 느끼는 재미와 쾌감을 한번 생각해 보자는 뜻이다. 언어에 사용되는 소리를 지칭할 때에 영어에서 “phone”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한국어로는 “말소리”일 것이다. “phoneme”는 “음운/음소”의 두 뜻 모두로 사용하는가 보다. 여기서 우리는 “phoneme”를 “음소”로, “phone”을 “말소리”로 번역해 사용하기로 한다. 훈민정음은 “말소리”를 위해 28자의 “음소”를 제정한다고 명시했으며, 음소들을 자음과 모음으로 나누었고, 이를 조합해 “말소리”를 기록하는 방법을 문자-모양의 그림으로 예시하였다. 한글의 자음/모음 조합으로 만들 수 있는 “말소리” 즉, 글자 수는 8천 개가 넘는다고 한다. “송아지”라는 말소리를 들으면 그 뜻을 모르는 사람의 경우, 그것이 무엇을 지칭하는지 생각해 낼 수가 없다. 그 관계가 인위적이기 때문이다. 이를 “상징의 관계”라고 한다. 우리 주변에는, 특히 시각적 상징이 많다. 시각적 상징의 예를 들어보자. “☎”는 전화기, “♨”은 온천, “♀”은 암컷, “π”는 원주율을 상징한다. 앞쪽의 둘은 그 뜻의 짐작이 쉽지만, 뒤의 둘은 사전 지식이 없으면, 알 수 없는 상징들이다. 청각적인 상징을 보자. 우리는 고양이 울음를 “야옹”으로, 중국은 “미야오, 미야오”(喵喵), 일본은 “냐, 냐”라는 의성어로 상징화한다. “喵”은 글자 자체가 고양이의 울음 소리를 뜻하는 한자라고 한다. 의성어는 “전화기”의 상징처럼 짐작하기 쉬운 상징일 것이다. 그러나 언어의 “말소리”는 모호성이 대단히 높은 상징이다. “말소리”의 다음 단계인 단어 차원에 들어서게 되면, 언어의 모호성은 더욱 증가한다. 언어 상징의 모호성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미리 공부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여기서 잠시 일본과 중국의 경우, “말소리”에서 시작되는 상징의 모호성을 줄여나간 방법을 살펴 보자. 일본은 한자를 도입함으로서 이 모호성을 줄였고, 중국은 원천적으로 한자를 만듦으로서 모호성을 해소했다. 일본과 중국 모두 시각적 기록을 사용한 것이다. 일본이 보조적이었다면, 중국은 원천적이다. 그러나 두 언어 모두 “말소리”와 “한자”의 관계를 암기해 두어야만 한다. 물론, 암기하고 나면 편리하다는 것을 말할 필요가 없다. 이 편리함이 한자 사용을 고집하는 원인일 것이다. 조선 역시 한자를 도입해 사용했다. 그러나 일본과는 다른 점이 있다. 한자의 발음을 하나로 정해 놓고 그것을 준수한 것이다. 일본의 경우 “泉”을 음독으로 읽으면 “せん”(센)이고, 훈독으로 읽으면 “いずみ”(이즈미)이다. 한국어에 빗대어 말하면, “木”을 “목”으로도 읽고, “나무”로도 읽는다는 뜻이다. 일본어의 훈독은 뜻을 지칭한다는 의미에서 중국어 방식을 그대로 가져온 것이다. 중국어는 몇몇 어조사(語助辭)와 외국어의 음성표기를 제외하면, 모두 훈독이다. 중국은 사투리, 또는 언어가 다른 종족에 따라 같은 한자를 다르게 읽는 경우가 한 둘이 아닐 것이다. 중국 문자는 모두 뜻 글자이기 때문에 “코카콜라, 아프리카”등을 표기하는 데에 상당한 고민이 있었을 것이다. 원칙적으로는 이 사물을 뜻하는 새로운 문자를 만들어야 하지만, 교육용 문자의 수를 줄여야한다는 주장 앞에서 그렇게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아프리카를 “阿非利加”(āfēilìjiā)로 음성표기하고 약해서 “非洲”(fēizhōu)로 표기한다고 한다. 한국어에는 훈독이 없다. “蟲”을 “벌레”로 읽지 않는다는 뜻이다. 표의문자를 거부하고 표음문자를 철저히 지킨 점이 한국은 일본과 다르다. 표의문자 세계에 들어서기를 거부한 것이다. 물론 지식인 층의 자기 보호와 과시 본능으로 인해 한자의 표의적인 지각, 즉 한자의 시각적 인식 없이 듣기만으로는 그 뜻을 알기 어려운 문장을 만들려는 경향이 없지 않았을 것이다. 시각적 개입의 최소화로 인해 한국어는 표음 체계를 철저히 지킬 수 있었다. 이는 말을 알아 듣게 되는, 말소리와 뜻 사이의 연결을 직접적인 것으로 유지할 수 있게 해준다. 다시 말해, “吾等은 玆에 我 朝鮮의 独立国임과 朝鮮人의 自主民임을 宣言하노라”와 같은 어려운 표현도 말소리만 듣고도 그 뜻을 알아차릴 수 있었던 것이다. 한글을 읽을 때에 더 중요한 점은 한글의 글자 모양이 세밀한 근육 운동을 구체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글자의 모양으로 자음과 모음 조합을 명료하게 보여줌으로서, 발음을 위한 신경회로의 형성을 논리적으로 알려준다. 글자를 볼 때마다 구강의 많은 근육들을 어떻게 배합해야 하는가를 직감하고 이를 수행할 수 있다는 뜻이다. 한글을 공부하는 사람들은 이 연습의 단계를 넘어서서 발음 수행의 자동화에 도달해야 한다. 자동화는 신경회로의 확립과 그 고정화일 것이다. 넘어져가며 연습한 후에, 신경 쓰지 않고 자전거를 탈 수 있는 단계에 이르는 것과 같다. 자전거를 배울 때의 즐거움과 성공한 순간의 만족감을 “한글-읽기”에서도 느끼는 것이다. 모호성의 감소를 구체적으로 생각해 보자. 일본인들은 “さん”(산)이라는 말소리를 들을 때에 그것이 “낳음/재산”(産), “시큼한 맛”(酸), “셋”(三), “산”(山) 중 그 뜻을 선택해야 한다. 뜻의 모호성을 없애기 위해 한자가 도움을 준다. 따라서 기록이 필수적이다. 언어 발달 과정에서 기록은 구어를 억압하고 지배하기 때문에 한자를 선택하고 나면, 기록된 한자는 “갑의 입장”에 서게 되고, 피할 수 없는 억압으로 자리를 굳히게 된다. 중국 사람들은 “hé”(하) 발음을 들을 때에, 그 모호성을 없애기 위해, 그것이 뜻하는 바에 따라 글자를 새롭게 만들었다. “河”(강), “和”(화합하다), “合”(더하다), “何”(무슨), “盒”(작은 상자)라는 글자를 만들어 그 모호성을 없앤다. 다섯 글자 모두 성조(声调)에서도 같은 “phone”이다. 물론 여기에는, 글자가 먼저 있었는지 말이 먼저 있었는지에 대한 논란을 있을 것이다. 말이 먼저인 경우도 있었고 글자가 먼저인 경우도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표의문자의 개입으로 일본과 중국에서는 새로운 발음 개발이 진행되지 않았던 것이다. 새로운 말소리를 만들 필요를 느끼지 않았고, 만들지 않게 되었다. 중국은 새로운 글자를 만들어 해결했기 때문에 고민할 일이 없었다. 일본의 경우, “さん”(산)의 여러 뜻인, “낳음, 재산”, “시큼한 맛”, “셋”, “산”을 발음만으로 구별해야하는 요구가 오랜 동안 지속되었다면, 새로운 발음이 개발되었을 것이다. 이 네 뜻을 표기하기 위해 예를 들면, “産”를 “섭”, “酸”을 “싴”, “三”을 “삼”, “山”을 “산”등으로 한국처럼 한 음절로 된 새로운 발음 개발을 개발했을 것이라고 추측해 보는 것이다. “산”(山)을 제외한 세 발음은 일본어에는 없는 “말소리”들이다. 새로운 발음이 생긴다는 것이 별 것 아닌 것으로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렇지 않다. 새로운 말소리를 발음을 하기 위해서는, 뇌는 복잡한 과정을 겪어야 한다. 처음 만나는 말소리를 시도한다는 것은 호흡에서부터 발음과 관련된 혀와 입의 근육 운동, 발음 후의 청각적 확인 등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시도이고 경험이다. 이어서 근육의 움직임을 자동화하고, 발음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즉시 수행이 이루어지는 신경회로를 고정화해야 한다. 한국 사람 중에도 지역과 나이에 따라 “관광산업”을 “간강산업”으로 잘 못 읽는 사람이 있는 것을 보면, 기존의 고착화된 신경회로를 없애고 새로운 것으로 교체하는 일이 보통 일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일본 사람들 거의 전부가 “김치”를 “기므치”로 발음하는 것을 보면 올바른 발음 수정이 쉬운 일이 아닌 모양이다. 이제 세계의 젊은이들이 한글을 배우는 즐거움을 이해 할 수 있을 것이다. 한글의 글자를 보았을 때에, 그들은 “자음-모음” 또는 “자음-모음-받침”으로 조합된 하나의 “글자” 모양을 보고, 각각의 자음과 모음의 발음을 순서대로 구사하라는 명령을 뇌에서 내려 보낼 것이다. 계속해서 나타나는 한글을 보고 새로운 “phone”를 시도해야 하고 신경회로의 자동화를 이루어나가야 한다. 정확한 발음에 도달한 다음, 단어의 뜻을 생각하게 된다. 한국어 이해의 긴 여정에 들어서는 것이다. 한글을 배우는 외국인들은 위 표의 “큘, 턀, 펼”등과, “훑어본다”던지 “괜찮다”에서 “훑”과 “찮” 등의 발음을 시도하기 위해서 구강 근육의 경이로운 조합을 명령해야 한다. 우리는 사용하지 않는 “말소리”임을 알고 있는, “퓒, 홻, 괆”같은 한글 글자를 상상할 수 있고, 발음을 시도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들에게는 이 놀라운 발음이 상상의 세계에 존재한다는 뜻이다. 새로운 발음을 연습하고 읽혀 갈 때, 한글을 배우는 젊은이들이 느끼는 즐거움과 쾌감은 대단할 것이다. 한글을 일상적으로 읽고 있는 우리로서는 그 즐거움을 짐작하기 어렵다. 그들은 한글을 배우면서, 글자 하나하나를 읽을 때마다 자전거 타기에 성공하는 즐거움을 맛보는 것이다. *외부 필진의 기고 내용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약력]서울대 명예교수 [저서]시와 리듬(1981, 개정판 2011), 음악을 본다(2009), 세계의 음악(2014) 등 [번역]기호학 이론(U. Ecco, 1984), 서양음악사(D. J. Grout, 1997)
    한글의 유행
    by 서우석
    2024.08.10 06:30:00
1 2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