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문화가 상징이라는 ‘기모노’를 입고 있다면, 일본 음악은 ‘유겐’(幽玄)과 ‘모노노 아와레’(物の哀れ)라는 속옷을 입고 있다. 사물을 바라보는 ‘유겐’과 ‘아와레’(哀れ)의 두 태도가 일본의 미-의식이라고 한다. 먼저 유겐을 살펴보자. 우리도 사용하고 있는 ‘깊고 그윽함’이라는 뜻의 ‘유겐’(幽玄)은 언어가 표현할 수 없는 것이지만, 저 세상의 일을 가리키는 말은 아니라고 설명한다. 유겐은 세상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 안에 있는 ‘깊고 그윽한 곳’이다. 이 세상에 속하지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그 무엇’, 그것이 ‘유겐’이다. 무인정치가 시작되는 무로마치(室町, 1336–1573) 막부 시대의 연예인이었던 제아미 모토키요(世阿弥 元淸)는 유겐의 뜻을 다음의 시로 묘사한다. 꽃 덮힌 언덕 위로 석양이 사라지고 거대한 숲속을 거닐며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 멀리 섬 뒤로 사라지는 배를 보고 구름 사이로 보이듯 안 보이는 기러기를 바라본다. 대나무의 미묘한 그림자가 대나무에 드리움이다. 이 시는 ‘사라지는’ 순간과 ‘보이지 않는’ 순간을 노래한다. 사라지면서 보이지 않는 순간, 그것이 사물의 근원이고, ‘깊고 그윽한 곳’이며 아름다움의 시작이라는 주장이다. 한편 ‘모노노 아와레’(物の哀れ)는 에도 시대의 문학 평론가인 노리타가(本居宣長, 1730~1801)가 ‘겐지모노가타리’(源氏物語. 1008)를 해설하면서 제시한 개념이라고 한다. 사물을 접하는 순간, 논리와 윤리가 나타나기 전의 ‘느낌의 세계’를 뜻한다. 진/위, 선/악 이전에 인지된 세계다. 유교적 권선징악의 이념을 벗어나 있다는 뜻이다. ‘바쿠후’(ばくふ, 幕府)라는 군부정치의 이념을 연상케하는 바가 없지 않다. 그러나 막부정치의 영향 보다는 유교로부터 벗어나려는 욕구가 ‘모노노아와레’(物の哀れ) 추구의 보다 근본적 원인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불교적으로 말하자면, 연기(緣起)에 앞선 존재의 근원적 인식을 뜻한다. 예를 들어, 벌레를 노려보는 개구리의 모습에서, 약육강식의 논리나 삶과 죽음 등의 선악을 판단하지 말고, 그 감정에 앞서서 바라보라는 것이다. 이것이 ‘物の哀れ’이고, 미-의식의 근본이다. 이 때의 인식이 ‘아름다움의 출발점’이라는 것이다. 그 느낌은, 불교에서 말하는 욕망에 몰두하는 취착(取着), 취착을 유발하는 갈애(渴愛), 그리고 갈애에 앞선 ‘느낌’의 세계에 도달함을 뜻한다. 그러나 까다롭게 설명하자면, 이는 붓다가 설명한, 감각이 대상과의 접촉에서 발생하는 ‘좋은/ 나쁜/ 무덤덤함’을 느끼기 이전의 상태라는 주장이지만, 붓다는 ‘좋은/ 나쁜/ 무덤덤함’에 앞선 순간에 대해 말한 바가 없다고 한다. 그에 의하면, 셋 중 하나를 느끼는 것은 원초적이다. 그에 앞선 것은 없다는 뜻이다. 어쨌건, 이 점에서 ‘物の哀れ’는 유교의 이념과는 상반된다. 유교적 이념을 택한 조선과 문화적 차이를 낳은 시작일 것이다. 사라지면서 보이지 않는 먼 곳(幽玄)과, 가까이서 본 즉각적인 느낌인 ‘애처로움’(哀れ), 이 둘은 서로 보완한다. 무한한 시간과 정지된 시간이 만나는 것이다. ‘유겐’과 ‘아와레’는 세계 인식의 근원을 찾는다는 점에서 서로 보완한다. 그러나 둘 다 상징 체계의 명료성을 회피한 것으로 보인다. 샤미센 음악이 이 미적 세계를 잘 보여준다. 샤미센의 연주는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저에게, ‘너, 지금 무슨 얘기를 하니?’라고 묻지 마세요. 저는 아무 이야기도 하지 않습니다. 제 중얼거림을 그냥 보여드릴 따름입니다. 왜 보여 주느냐고요? 그건 저도 모릅니다. 저는 거기까지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샤미센이 우리에게 들려주는 음악이다. 악보를 이용해 설명해 보자. 다음의 악보는 샤미센 음악의 흐름을 설명하기 위해 내가 만든 음-진행이다. 위 악보를 보고 “mi re fa re mi fa.... ”를 노래해 본다. 다만 두 음이나 세 음의 반복이 느껴지게 노래해서는 안 된다. 분절이나 강조되는 음이 구조를 만들지 않게끔 노래해야 한다는 뜻이다. 까닥 잘못하면, 끝 머리의 “re mi fa, mi, re mi fa” 에서 “re-mi-fa”의 반복 구조가 들리게 된다. 이를 피하려면, “re-mi, fa-mi-re, mi-fa”로 연주하면 될 것이다. 이렇게 연주하면, 이 음악은 우리에게 “그냥 들으세요. 의미있는 구조를 만들지 마세요”라는 말을 걸어오게 된다. 물론, 실제 음악은 샤미센이 반주하고, 직접 또는 옆에서 가사를 얹어 노래를 부르는 형식을 취하기도 한다. 그런 연주에서도 샤미센의 반주는, 앞서 말한 “그냥 들으세요”라는 느낌을 벗어나지 않는다. 인터넷을 통해 샤미센 연주를 들어보기 바란다. 작은 반복은 있지만 구조로서의 반복은 없다는 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샤미센 악기를 잠시 살펴보자. 샤미센(三味線)은 일본의 남쪽 열도 국가였던 오키나와로 부터 유래되어, 에도 시대에 유행하게 된 악기다. 3 현(絃)을 ‘바찌’(ばち, 撥)로 튕겨 연주하는 악기로서, 중동 지역에서 중국에 이르기 까지 널리 전파된 유형의 악기다. 오키나와에서 일본의 본토로 전해진 다음, 악기의 모습은 세련된 여러 형태로 발달한다. 그러나 근본은 3 현이고 깍찌로 튕겨 소리를 내는 발현 악기다. 한편, 일본의 ‘아악’(雅樂, 가가쿠)으로 알려진, 에텐라쿠(越天樂)가 추구하는 상징은 샤미센의 음악과는 조금 다른 느낌을 준다. 고수가 천천히 손을 들어 팔로 원호를 그리며 내려치는 북소리와 함게 흘러나오는 히치리키(ひちりき, 篳篥 피리)의 강렬한 직선적인 멜로디가 에텐라쿠 음악의 기본이다. ‘미’음을 오래 끌다가 다음 음으로 치켜 올라가고 이어 ‘레’음으로 답하는 진행은 더 이상의 조형을 거부하겠다는 느낌을 준다. 그러나 분절이 완성되었음을 암시한다. 조형의 거부는 음악적 건축을 하지 않겠다는 뜻이지만, 분절을 마무리 짓는 것은 상징의 명료성를 드러내는 일이다. 이 상징의 명료성은 샤미센의 끊임 없는 중얼거림과는 선명한 차이를 보여 준다. 이 외의 일본 음악은 주로 무대 음악이다. 일본의 무대 음악은 음악의 장르라기 보다는 연극의 장르에 속한다고 보는 것이 옳은 견해일 것이다. 일본식 오페라 가부키(歌舞伎), 인형극 분라쿠(文楽), 가면극 노가쿠(能楽) 등은 음악적인 면에서 그 중요성이 매우 약하다. 반면 무대 예술의 관점에서 보자면, 복잡한 무대 장치와 소품을 수반한, 그리고 그 하나하나에 중요한 연극적 의미가 부여된 독특한 장르이기도 하다. 일본 음악의 상징은 그 장르에 따라 상징성에 있어 차이가 있다. 그러나 일본의 모든 음악은 상징이 기본이다. 음을 상징적으로 처리하는 방법은, 오페라를 대신하는 아리아처럼, 널리 알려지는 멜로디를 만들지 못한다. 짧은 노래일지라도 스스로의 공간을 가져야 하는데, 음악적 공간은 다른 공간을 흉내내거나, 상징적 편법을 써서 만들어 낼 수 없기 때문이다. 음악의 공간은 근본적으로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공간이다. 다르게 말하면, 우리가 스스로 음을 듣고 만들어내어야 하는 공간이다. 그래서 성장기에 좋은 음악-듣기가 중요하다. 수준 높은 음악의 이해는 보다 복잡한 위상 공간을 우리의 뇌가 만들어 내고 체험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일본의 음악은 일본 문화의 상징적 체계에서 벗어나지 않았다는 점에서 그 음악적 공간이 매우 좁다. 그 틀을 벗어나고 싶었지만, 벗어날 수 없었음을 일본의 음악사가 보여 준다. 13세기초부터 19세기 중엽에 이르기까지, 막부 정치는 틈틈이 솟아오른 서민의 흥행적 유행을 허용하지 않았다. 음악의 경우, 민요적 다양성, 다시 말해 자유롭게 노래 부르면서 획득한, 서민들의 음악적 공간을 수용하지 않았던 것이다. 다르게 말하자면, 르네상스 시대의 유럽처럼 중-하류층의 음악이 상류층으로 흘러 들어와 예술 음악이 발전하는 계기를 마련하지 못한 것이다. 일본 문화가 기모노라는 상징을 입고 있음으로 해서, 샤미센이라는 민속화된 음악마저도, 그 압박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냥 들으세요 보여드릴 뿐입니다”는 속옷을 벗어 던질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일본은, 상징이 온 몸을 옥죄이고 있는 나라인 듯 보인다. ‘성 아래 기모노를 입은 두 여성’을 보고 당신은 무엇을 느끼십니까? 나는 후쿠시마(福島) 아이즈(会津), ‘쓰루가죠’(鶴ヶ城)의 저 높은 성곽이, ‘두 처녀가 기모노를 입었는지, 안 입었는지’를 무서운 눈초리로 내려다보고 있음을 느낍니다. “物の哀れ”입니다. *외부 필진의 기고 내용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약력]서울대 명예교수 [저서]시와 리듬(1981, 개정판 2011), 음악을 본다(2009), 세계의 음악(2014) 등 [번역]기호학 이론(U. Ecco, 1984), 서양음악사(D. J. Grout, 19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