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41
  • 경상도. 먼저 경상도의 예를 보자. “저 사람이 김씨니? 김씨가 저 사람이니?”는 경상도 식으로 발음하면, “절마가 김가가? 김가가 절마나?”가 된 것이다. “절마”는 “저 놈(者)”의 뜻이다. 여기서 “놈”은 비하의 뜻이 아니다. 그 대답인 “절마 아이고, 일마다”의 “일마”에도 비하의 뜻은 없다. 이 어투를 표기하면 1번과 같다. 2번은 “김(金)씨”를 “가(賈)씨”로 바꾼 것이다. “가”가 열번 반복되는 재미있는 말놀이가 된다. 오래 전에 강의 시간에 억양를 설명하면서 문득 만든 말이다. 1. 절1 마2 가0 김0 가1 가0, 김0 가2 가1 절0 마1 가0 아1 이2 다1, 절1 마2 아1 이1 고0 일0 마2 다1 2. 가2 가0 가1 가2 가1, 가1 가2 가0 가2 가0 1번이나 2번은 억양이 없으면 뜻을 짐작하기 어렵다. 1번 둘째 줄의 “아1이2다1”는 “아니다“의 뜻이다. 이 억양은 발음의 굴곡만으로도 의미를 갖는다. “어1어2어1”나 “어1언2제1” 둘 다 “아니다”의 뜻이다. 억양을 대신함으로서 뜻을 대신하는 것이다. 1과 2의 중간과 끝 종지 부분은 같은 음 높이의 “가1”일 수도 있고, 낮은 “가0”일 수도 있을 것이다. 다음은 경상도의 일상 대화 중의 흔히 듣는 말이다. 3. 어1 제0 아1 래1 니1 뭐1 했2 노2? 4. 아1 이2 시1 예0~ 여2 좀0 널0 짜2 주1 이1 소0 아1 이2 시1 예0~ 여2 좀1 널1 짜3 주2 이2 소1 3번은 억양이 달라지더라도 그 뜻을 쉽게 알아차릴 수 있다. 그러나 4번은 경상도 억양에 맞게 발음해도 뜻을 알기 힘들다. 이 말은 택시를 내릴 때에 손님이 택시 기사에게 부탁하는 말이다. “널짜준다”(내려준다)는 경상도 사람들만 사용하는 말이다. 이 말은 “기사님, 여기서 좀 내려주세요”의 뜻이다. 4의 둘째 줄은 “여2좀0”으로 두 칸 내리지 않고 “여2좀1”으로 부드럽게 내려온 다음 “좀1”에서 두 칸 뛰어 오르는 모습이다. 지금까지 사용하지 않던 “3”이 사용되었다. 경상도와 전라도 지역의 억양에서 두 칸 도약이나 하강은 중요한 특성이므로 시작음이 1이라면 3으로 도약할 수 밖에 없다. 시작 음높이에서 “상행/하행”의 양자 택일 전에, 같은 음높이를 유지하느냐 아니면 달라지느냐의 선택이 앞서 있었다고 보아야 한다. 달라졌음의 선택 후 높은/낮은 음의 선택이 이루어진 것이다. 따라서 두 단계 도약/하강은 내면적으로는 긴 과정을 겪은 것이다. 따라서 차원이 다른 의미가 부여된다. “여2-좀1”은 “여기서 내리면 좋겠습니다”의 진술이라고 한다면, “여2좀0”은 “저는 여기서 꼭 내려야 합니다”는 의견을 함축한다. “널1 짜3 주2 이2 소1” 역시 “널”이 “1”에서 출발했음으로 “3”으로 가지 않을 수 없게 되었고 이 역시 “반드시 내려야 합니다”의 강한 의사를 전달하게 된다. 다음은 야구 펜의 대화다. 5. 니2- 롯2 데2 가0 ? 어1 어2 어0 삼1 성2 이1 다1 “니2- 롯2 데2 가0?”는 “너 롯데 편이니?”의 뜻이고 “어1어2어0, 삼1성2이1다1”는 “아니야 나는 삼성 편이야”의 뜻이다. 앞서 말했듯이, “어1어2어0”는 같은 억양으로 “어1언2제1”가 사용되기도 한다. 여기서 억양은 의미 전달의 결정적 역할을 한다. 경상도의 사투리는 억양이 필수적이다. 찾아보면, 억양만으로 “아니야”의 뜻을 담는 경우가 더 있을 것이다. 경상도 역양의 특징이 폭이 넓은 음높이의 변화라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진 일이다. 이제 호남의 억양을 살펴보자. 전라도. 전라도의 사투리에는 우리가 알아듣기 어려운 단어가 많다고 한다. 예를 들어 “징하네, 어쨔스까? 허벌나게”등은 전라도에서는 흔히 쓰는 말이라고 한다. 6. 어0 쨔0 스0 까2 ?/ 시0 방0 간0 당0 께2/ 허0 벌0 나2 게0 6번의 세 구절은 모두 끝을 약간 올리는 어투를 보여준다. “시방 간당께”는 서울 지방의 어투인 “지1금1 갑1니1다1”처럼 끝을 올리지 않던지, 또는 “지1금1 갑1니1다2”로 끝을 한 단계 치켜 올릴 것이다. 서울 지방 사람들은 “시방 간당께”를 흉내낼 경우에도, “께”를 치켜 올리더라도 한 단계 올리는 것이 보통이다. “허0벌0나2게0”(엄청나게)는 “나”의 두 단계 도약이 통상적인 듯하다. 남도의 경우 치켜올릴 때에는 강조의 의도가 담길 경우, 두 단계 올리는 것이 통상적인 것으로 보인다. 이제 조금 긴 말을 보기로 한다. 이제 말을 줄이는 경우를 보자. 7. 암1 시1 롱0 먿2 땜1 시0 물1 어1 보1 것1 능0 가2 ? (알면서 무엇하러 물어 보셨어요?) “암시롱”의 “암”은 “알면서”의 “알”과 “면”의 두 음절을 합해서 “암”으로 줄여 만든 것으로 보인다. “시롱”의 “시”는 “알면서의”의 “서”의 문법적 기능을 새끼줄 꼬듯 꼬아 “롱”으로 만든 것이 아닌가 추론해 본다. 이러한 조합은 다음에 볼 충청도 사투리에서도 볼 수 있다. “먿 땜시”는 “무엇 때문에”의 줄임인데 경상도의 경우, 이 줄임은 “뭐 따에”이다. 여기서 어투의 굴곡은 “먿”(무엇)의 강조와 “능가”에서 질문을 위한 상행 발음 외에는 굴곡이 없는 편안한 발음진행을 보인다. 전라도 어투가 경상도에 비해 두 번 도약을 아끼고 있는 듯하다. 문장의 길이를 줄이고 큰 굴곡을 주지 않은 어투가 특징이다. 이는 다음에 살필 충청도에서 더 두드러지는 현상이다. 다음 좀 더 긴 문장을 보자. 8. 아1 따1~ 짜1 자1 내1 서0 으2 따1 써0 먹0 으0 까2 (아이고/ 적고 부실해서/ 어디다/ 쓸수있겠나) 9. 어1 찌1 코1 름0 히2 놀1 놀1 하0 능0 가2 ? (왜 그렇게 핼쓱하게 보이니?) 8번의 어투는 괄호안의 “/”표로 표시한 단위를 줄인 모습을 볼 수 있다. 부연하자면, “아이고 → 아따”, “적고 부실해서 → 짜자내서”등으로 줄인 것이다. 반면 끝의 도약을 제외하면, 어투의 굴곡은 부드러운 편이다. 9번 8번과 패턴이 같다. 충청도. 충청도의 어투를 보자. 흔히들 충청도 사투리의 특징으로 “~여”와 “~혀”를 말 끝에 많이 사용한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이야기할 내용을 최대한 줄인 다음 천천히 느리게 발음한다. 아래 예문 10번의 경우, “여”는 “여기”이고, “둔눠”는 “드러누워”의 줄임이다. 10. 여~ 둔눠 (여기, 드러누워) 11. 왜 그랴? 뭐 씅깔나는 일 있어? (왜 그래? 뭐 화나는 일 있었니?) 2. 뻐굼살이 할껴? 내가 아빨텨니, 엄마혀? (소꿈장난 할래? 내가 아빠할테니 니가 엄마해) 10-12 모두 억양은 1로 일관한다. 다만 물음표로 표시된 질문의 경우 한 단계 올려 2로 발음하는 것으로 보인다. 부드러운 진행이다. 충청도의 경우긴 내용을 줄인 후 부드러운 억양을 선택하는 것으로 보인다. 다음 두 경우는 긴 내용을 충청도 식으로 짧게 줄인 것이다. 두 음절을 느리게 발음해야 할 것이다. 13. 출텨? (춤 한번 추시겠어요?) 14, 개혀? (개고기 드실 줄 아세요?) 13의 대답은 행동으로 보이거나 “못혀” 중 하나일 것이고, 14의 대답은 “혀⤴/ 못혀⤵” 중 하나일 것이다. 표준어를 사용하는 서울 사람들은 “2의 2승”과 “2의 e 승” 그리고 “e 의 2승”의 셋을 차이나게 발음하지 못할 것이라는 주장이 있다. 이 발음을 표기해 보자. 2의 2승 → 이1 의1 이1 승1 2의 e승 → 이0 의0 이3 승2 e의 2승 → 이3 의2 이1 승1 이 세 발음에서 주목할 점은 영어의 “e”를 아주 높여 발음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특수한 기호 읽기는 수학, 화학, 물리학 등 자연과학 분야에서 더 있을 것으로 짐작된다. 예를 들면, “어린 ‘아이’를 말하니? 허수 ‘i’ 를 말하니?“의 경우에도 앞서 설명한 발음 방식과 같을 것이다. 지금까지, 경상, 전라, 충청도의 억양 다르게 말해 사투리를 살펴 보았다. 아마도 생각했던 것보다는 단순한 원리에 의해 발음이 운용된다는 것을 감지했을 것이다. 이 외에 경기도, 강원도, 함경도, 평안도, 황해도 등 많은 사투리 억양을 살펴 볼 수 있을 것이다. 문화 프리즘은 여기서 일단락을 짓는다. *외부 필진의 기고 내용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약력]서울대 명예교수 [저서]시와 리듬(1981, 개정판 2011), 음악을 본다(2009), 세계의 음악(2014) 등 [번역]기호학 이론(U. Ecco, 1984), 서양음악사(D. J. Grout, 1997)
    경상·전라·충청 사투리
    by 서우석
    2024.08.24 06:20:00
  • 요즈음 세대들은 자신의 어투에 대한 관심이 전보다 덜한 것으로 보인다.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 중 하나는 한글 전용 이후, 신문과 책에서 한자의 모습이 사라졌고, 사라진 후에도 세월이 많이 흘러간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간단히 말해 한글 전용의 부작용이 드러나기 시작했다는 뜻일 것이다. 한자를 사용하지 않음으로 해서, 같은 발음이지만 장/단 모음의 구별을 하지 않게 되었음을 뜻한다. 그러나 한글 전용으로 인해, 발음의 구별이 혼란스러워졌다고 해서, 이를 이유로 한글 전용을 되돌리자고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새로운 문제는 새로운 관점에서 고쳐나가야 할 일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앞으로 한국어가 장/단 모음을 구별하지 않는 상태로 들어설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언어는 세월에 따라 변하고 이는 피할 수 없는 일이다. 300~400년 전 조선 중기의 말도 지금 우리는 이해하지 못하는 고어라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장/단 모음의 차이 중, 대표적인 예가 “화장”이다. 여성들이 얼굴을 꾸미는 “화장”과 시신을 태우는 “화장”은 두 경우 한자가 다르다. “化粧”과 “火葬”이다. 두 단어의 구별은 단어의 첫 발음인 “화”를 길게 발음하느냐 짧게 발음하느냐에 달려있다. 현실에서 이 두 단어의 혼동이 없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물론 한글의 장/단 음의 구별이 한자에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한자가 아닌 한 음절로 된 단어에도, 장/단 음에 따라 뜻이 달라지는 경우가 한 둘이 아니다. 한 음절로 된 단어를 살펴보자. “굴, 눈, 말, 밤, 발, 배, 벌, 병” 등이 있다. 외에도 찾아보면 더 있을 것이다. “배”의 경우 “과일/ 복부/ 선박/ 두세 배”에서 보듯, 같은 단모음이라도 여러 뜻으로 쓰인다. 두 음절로 된 단어를 보자. “대전”(大田)과 “대-전”(大戰), “부자”(父子)와 “부-자”(富者), “유-명”(有名)과 “유명”(幽冥), “사과”와 “사-과”등 여러 단어를 찾을 수 있다. “대전”(大田)과 “대-전”(大戰)은 같은 한자임에도 불구하고, 장/단 모음으로 구별해 읽는다. 장/단 모음의 선택이 한자 때문만은 아닌 예일 것이다. 좀더 섬세하게 살펴보자. “대전”(大田)의 경우, 뒤의 “전”이 앞의 “대”보다 음고가 높다. 이 두 음절의 음높이가 다르다는 뜻이다. 음높이 차이의 좋은 예가 “이사”(理事)와 “이사”(移徙)다. “이사”(理事)는 “이”와 “사”의 음높이가 같으나, “이사”(移徙)는 같은 음높이로 발음하면 뜻이 와 닿지 않는다. “사”를 약간 높여야 한다. “이사한다”의 발음은 “사”에서 음높이가 올라가고, “한다”는 문법적으로 연결된 부분이기 때문에 올라간 발음을 지속하는 것으로 보인다. 구어에 있어서, 음높이 인식의 메커니즘은 지금 발음한 음높이와 다음 발음할 음높이의 차이의 인식에서 출발한다. 앞의 것보다 “높은지, 낮은지”의 결정으로 이루어진다는 뜻이다. “지나간 음보다 높다/낮다”가 지각의 기본 틀이다.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방식이다. 시작의 음높이를 “1”로 정하고, 다음 발음이 높을 경우 “2”, 낮을 경우 “0”으로 표기하기로 한다. 물론 발음을 “2”나 “0”에서도 시작할 수 있다. 이 표기는, 기존의 연구에서 음높이를 표기한 경우를 발견하지 못해, 이 글에서 임의로 만든 것이다. 기존 연구에서 제시한 보다 편리한 표기 방법이 있다면 교체하면 될 것이다. 이 글에서는 세 개의 음높이를 설정하였다. 물론 필요할 경우, “2” 위에 “3”을 설정하거나 “0” 아래 “-1” 을 설정할 수 있을 것이다. “0, 1, 2” 기호를 사용하면, “이사”(理事)는 “이1사1”, “이사”(移徙)는 “이1사2”가 된다. “1”보다 낮은 발음에서 시작하면, “이사”(理事)는 “이0사0”이고 높은 발음에서 시작하면 “이2사2”다. “이사”(移徙)는 “1” 발음에서 시작하면, “이1사2”이고, 낮은 발음에서 시작하면 “이0사1”가 된다. 설명한 방식으로 “이사”를 한번 발음해 보는 것도 이해에 도움이 될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이사”를 두 칸 뛰어 “이0사2”로 발음하면 자연스럽지 않음을 느낄 수 있다. 과일 “사과”와 사죄 “사과” 역시 같다. 사죄 “사과”는 “사1과1”, 과일 “사과”는 “사1과2”일 것이다. 대구 지방에서는 먹는 “사과”를 “사2과1”로 발음하기도 한다. 경상도 사투리의 첫 음을 높은 음에서 시작하는 경우의 해당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경상도 사투리가 심할 경우, “망신살스럽다”의 “망신”을 “망1신2”으로 발음하지 않고 “망2신0”으로 두칸 뛰어내려 발음하는 사람도 있다. 대구에도, “X1 Y2”이 있다. “사과”의 다른 이름인 “능금”의 경우, “능1금2”으로 발음한다. 이제 단어 차원을 넘어서서 문장의 종결부의 어투를 살펴 보기로 한다. “그렇게 했습니다”를 예로 삼아 살펴보기로 한다. 1. 그1 렇1 게1 했1 습1 니1 다1. 이 어투는 음높이의 변화 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같은 음높이로 발음한다. 수평선의 어투다. 겸손한 태도를 들어낸다. 아마도 학생이 선생님에게 또는 군대에서 상관에게 보고하는 경우의 어투일 것이다. 2. 그1 렇1 게1 했2 습2 니0 다0. (그1 렇1 게1 했2 습2 니2 다2) 2번 어투는 “했습”을 높게 발음한 경우다. 평범한 진술의 태도를 보여준다. “했2습2” 다음에 뒤이은 “니다”가 낮은 음으로 돌아왔기 때문에 어느 정도 예의를 지킨 어투로 보인다. 그러나 괄호 안처럼 “니2다2”를 같은 음높이인 “2”로 높게 발음하면 항의하는 느낌을 주게 된다. “당신이 시켰으니 하라는 대로 했어요”라는 뜻을 뒤에 감추고 있는 것이다. 3. 그1 렇1 게1 했1 습1 니1 다2. 3번 어투는 “잘 했으니 안심하십시요”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말 끝을 올림으로서 질문의 느낌을 담은 것이다. “아시겠지요”라는 뜻을 포함한다. 그러나 요즈음 어투에 많이 나오는 맨 끝 발음인 “다”에 굴곡을 주면 함축하는 감정은 달라진다. “다” 발음을 위에서 아래로 끌어내린다면(다↘아) 또는 더 치켜 올린다던지(다↗아), 아예 굴곡을 넣어 발음하면, 느낌은 많이 달라진다. 그 굴곡에는 여러가지가 있다. 기호로 표시하면 “다⤼아, 다⤻아, 다⤳아” 등일 것이다. 4. 그1 렇2 게2 했1 습1 니0 다0. 이 경우, “그렇게”의 내용을 중시해서 말하는 경우다. “그렇게”의 세 음을 모두 높여 발음하지 않고 “그1렇2”에서 올라가는 느낌을 부여한 것은 두 발음의 관계에서 어투의 단서를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어투의 “상승”이 일반적으로 강조를 표현하는 느낌을 준다. 반대로 “그2렇1게1”로 내려오면, 경상도 사투리의 느낌을 주게 된다. 발음의 음높이의 차이를 검토하면, 사투리에 관한 패턴도 밝혀질 수 있다. 또한 아나운서나 전문 해설가로부터 느끼는 편안한 어투의 패턴이 어떤 것인가도 찾아낼 수 있다. 인터넷과 스마트 폰 보급 후 많아진 개인 방송에서 느끼는 어투가 왜 불편하게 느껴지는지를 알기 위해서, 어투에 세밀한 파악이 더욱 필요할 것이다. 지금 우리는 인터넷 상에서, “text-reader-ap”(읽기 앱)의 음성 송출을 많이 경험하고 있다. 낭독의 실수가 지나치게 많다. “6.25”를 “육점이오”, “KF-21”을 “케이에프 마이너스 이십일”, “4000m”를 “사공--엠”, “3500t급”을 “삼천오백티급”으로 읽는 발음이 공공연하게 송출되고 있는 현실이다. 잘못 타자한 글자를 그대로 읽는 일도 흔하다. 여러 사람이 듣는다는 뜻에서의 공공 방송의 발음 오류는 방치해서는 안 될 일이다. 대응하는 정책이 있어야 한다. 우리 세대는 중학교 시절, 국어 선생님이 지명하는 대로 일어서서 “국어 책” 읽는 것이 국어 수업 시간의 절반을 넘겼었다. 올바른 읽기가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을 당시의 국어 선생님들은 알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 중학교의 국어 시간이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 궁금하다. *외부 필진의 기고 내용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약력]서울대 명예교수 [저서]시와 리듬(1981, 개정판 2011), 음악을 본다(2009), 세계의 음악(2014) 등 [번역]기호학 이론(U. Ecco, 1984), 서양음악사(D. J. Grout, 1997)
    어투
    by 서우석
    2024.08.17 05:50:00
  • 4. 두 종류의 다급함 단테가 아기를 데려가자고 말하자, 믿기지 않은 일이 일어났다. 게으르고 굼뜬 로깡과 앤드류가 거짓말처럼 민첩하게 움직였다. 그들은 죽은 자의 뼈를 담기 위해 가져온 비닐 시트를 맞잡고 뒤집었다. 마치 의사처럼 죽은 여자와 분리한 아기를 들어 올렸다. 뒤집힌 부드러운 시트 쪽에 아기를 감쌌다. 그리고 단테가 명령을 내리기도 전에 뒤쪽 출구를 향해 달렸다. 명령도 복종도 필요 없었다. 두 놈은 관도 제대로 덮지 않은 채 포대기를 안고 뒷문으로 사라졌다. 여느 때 홉이 하던 마무리를 오늘은 단테가 해야만 했다. 어떠한 범죄의 단서도 남기지 않아야만 했다. ‘죽은 자를 위한 예의의 시간’의 마지막 30초를 두고 단테는 빠져나왔다. 이제부터 되도록 사람의 눈에 띄지 않아야만 했다. 외진 곳이라 사람들의 왕래가 드물지만, 일찍 도착한 죽음의 봉사자가 있을 수도 있었다. 이 장소를 배회하는 자는 수상할 수밖에 없었다. 로깡과 앤드류는 차가 있는 곳으로 줄달음했는지 보이지 않았다. 묘를 파고 인골을 구할 때는 밤에 주로 움직였기에 사람의 눈을 신경 쓰지 않았다. 대신에 짐승들의 눈이 따라 다녔다. 사람의 시신 냄새를 짐승들은 기차게 알아챘다. 일행이 서둘러 뼈를 채취하고 나면, 남은 시신을 동물들이 처리하는 모양이었다. 동물들이 협조자이면서도 경쟁자였다. 여태 단테 일당이 무사할 수 있었던 이유도 파묘가 동물들의 행위로 매번 결론이 났기 때문이었다. 꼬리가 길면 밟힐 수 있다는 느낌이 왔을 때, 단테는 인골(人骨) 도둑질의 장소를 묘지가 아니라 ‘죽은 자의 예의의 시간’으로 바꿨다. 당분간 묘지 부근에는 얼씬하지 않는 것이 좋았다. 일부러 천천히 걸어 도로까지 왔다. 그때부터 단테는 미친개처럼 맹렬하게 달렸다. 다급함이 단테를 몰아세웠다. 몸이 휘청거릴 정도였다. 다른 작업 때와 다른 다급함이었다. 이전의 다급함은 누구에게 쫓기는 도망자의 것이었다. 뒤에 누가 보고 있는지, 경찰이 잡으러 오는 것은 아닌지, 알 수 없는 분노나 죄의식에서 달아나는 다급함이었다. 오늘의 다급함은 반대로 추격자의 그것이었다. 따라잡으면 귀한 것을 잃지 않을 조급함이었다. 앞서간 로깡과 앤드류를 따라잡아야 했다. 그들이 안고 간 포대기를 따라잡아야 했다. 그 안에 있는 아기를 잃지 않아야 했다. 아기의 생명을 붙잡아야 했다. 살려야 했다. 손톱자국처럼 열렸던 아기의 한쪽 실눈! 단테를 향해 열렸던 그 실눈의 호소. 그런 간절한 실눈을 이전에도 본 적이 있었다. 단테는 왜 눈물이 날 정도로 다급한지 비로소 깨달았다. 그런 눈을 형에게서 보았다. 마지막 스르르 감기던 한쪽 눈을 단테는 보았다. 부모가 누군지도 모르고 오로지 세상 전부처럼 의지하던 형, 항상 친구 같던 형, 그의 유일한 혈육이 죽어가던 순간에 열려 있던 실눈, 세상에 혼자 남겨질 동생을 한순간이라도 더 보려고 애타게 열려 있던 형의 눈과 아기의 눈이 닮아 있었다. 그때처럼 단테는 마음이 초조하고 다급했다. 드디어 차를 숨겨놓은 곳까지 왔다. 그런데 차가 보이지 않았다. 보스인 단테를 버리고 이 망할 두 놈이 달아나버린 모양이었다. 단테는 그들이 사라졌을 방향으로 도로변을 달렸다. 한참 달려가자 뒤에서 빵빵거리며 차가 나타났다. 단테는 욕을 하며 차에 올랐다. 운전대를 잡은 앤드류가 말했다. “단테 씨를 태우려고 갔는데, 우리를 보지 않고 반대 방향으로 달려갔어요. 다시 돌려서 온 것입니다.” 단테는 뒷좌석으로 고개를 돌렸다. 로깡이 포대기를 안은 모습이 보였다. 생소하면서도 안도가 되었다. 형을 싣고 병원으로 달려갈 때는 혼자였지만, 지금은 다행히 로깡과 앤드류가 곁에 있었다. 처음으로 그들이 든든하게 느껴졌다. ‘살아 있어?’ 말없이 표정으로 물었지만, 로깡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모른다는 뜻인지 죽었다는 뜻인지 알 수 없었다. 단테가 앞쪽으로 몸을 바로잡자, 운전석의 앤드류가 물었다. “어디로 갈까요?” “…….” “어디로 갈지 방향을 정해야 해요.” “홉의 집으로 가자.” 뒷좌석의 로깡이 단테가 들리도록 큰소리를 쳤다. “홉을 혼쭐내러 갈 생각이세요? 아기부터 어떻게 해봐요.” “아기를 살리러 홉에게 가자는 거야.” “홉은 아기를 보자마자 도망가버렸어요. 우리가 가면, 우리가 아기를 데려가면 경찰에 신고할 놈이에요.” “홉에게 가야만 해. 그는 아기를 키워봤잖아.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가 알 거야.” “그의 여자가 거절할 거예요. 훔친 아기를 도와줄 리가 없어요.” “아니야. 홉이 달아난 것은 죽은 여자와 아기에 대한 연민 때문에 그랬을 거야. 너희들도 돈이 되는 여자가 아니라 아기를 데리고 나왔잖아.” “여자를 포기했다고 우리도 홉처럼 돈을 돌려줘야 하는 것은 아니지요?” 그때 앤드류가 로깡의 흥분된 저항을 끊으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우리 중에 홉의 집이 가장 가깝기는 해요.” “더 빨리 달려!” 형을 싣고 달릴 때 느꼈던 절박함이 그의 온몸을 다시 감쌌다. 조금만 더 일찍 병원에 도착했으면 형을 살릴 수도 있었다고 들었다. 단 몇 분에 삶과 죽음의 순간이 갈렸다고 했다. 단테는 홉에게 연락을 취하기로 마음먹었다. 작업 중 휴대전화 사용은 금지조항이었다. 어쩔 수 없을 때 ‘푸른 감자’를 사용했다. 푸른 감자는 그들만이 아는 암호였다. 만약 발각되어도 마약 제조를 숨길 수 있도록 만든 암호였다. 휴대전화를 꺼내려던 단테의 눈앞에 무엇인가가 걸렸다. 분명 익숙한 모습이었다. 차가 앞으로 달릴수록, … 분명했다. 홉이다! 앤드류가 단테 쪽을 흘끗 쳐다보았다. 단테는 차를 세우라고 지시했다. 홉도 차를 분명 알아보았지만 달아나지 않았다. 앤드류가 차를 세우자, 홉은 당연하다는 듯이 뒷좌석으로 올라탔다. 홉이 달아나다가 우연히 따라잡힌 것인지, 홉이 아예 일행을 기다린 것인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었다. 누구도 홉을 탓하지 않았다. 홉도 변명하지 않았다. “아기를 좀 돌봐 줘.” 단테는 일부러 무심한 듯 말했다. 홉은 흠칫했지만, 상황을 금방 파악했다. 네 남자 중에 아기를 키워본 것은 홉밖에 없었다. 홉은 본능적으로 움직였다. 아기를 이리저리 신중하게 들여다보았다. 급하게 물병의 물을 수건에 적혀 아기의 얼굴을 닦기 시작했다. 로깡도 아기의 온몸을 닦는 그를 도왔다. 아무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달리는 차 안은 죽어가는 자를 살리는 병원처럼 엄숙했다. 마침내 홉이 아기를 로깡에게서 자신의 품으로 옮겨 안았다. 단테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앤드류는 기쁨의 나팔처럼 차의 경적을 빵빵 울렸다. 그때 홉이 마치 우두머리처럼 명령했다. “메종으로 가. 메종!” ▶다음 회에 계속 … 김다은은 ‘당신을 닮은 나라’가 1995년 제3회 국민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소설가로 등단했다. ‘덕중의 정원’ ‘훈민정음의 비밀’ ‘쥐식인 블루스’ 등 20여권 소설책을 출간하고, 다수 번역돼 해외 소개됐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주관한 폴란드 바르샤바대학 작가 레지던시를 비롯, 청송 객주 문학관, 정선 여량면 아우라지 레지던시, 해남 인송문학촌 토문재 레시던시에 참가했다. 이화여대 불어교육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파리8대학에서 불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추계예술대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작권자의 허락없이 무단 부분 혹은 전체 전재, 복사, 배포를 금합니다.)
    종의 기원  <4회>
    by 김다은
    2024.08.12 09:00:00
  • 요즈음 외국 여러 나라의 젊은 층에서 한글의 인기가 대단한 모양이다. 시쳇말로 난리가 난 정도라고 한다. 왜 그럴까 생각해 보자. 한글을 배우면서 느끼는 재미와 쾌감을 한번 생각해 보자는 뜻이다. 언어에 사용되는 소리를 지칭할 때에 영어에서 “phone”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한국어로는 “말소리”일 것이다. “phoneme”는 “음운/음소”의 두 뜻 모두로 사용하는가 보다. 여기서 우리는 “phoneme”를 “음소”로, “phone”을 “말소리”로 번역해 사용하기로 한다. 훈민정음은 “말소리”를 위해 28자의 “음소”를 제정한다고 명시했으며, 음소들을 자음과 모음으로 나누었고, 이를 조합해 “말소리”를 기록하는 방법을 문자-모양의 그림으로 예시하였다. 한글의 자음/모음 조합으로 만들 수 있는 “말소리” 즉, 글자 수는 8천 개가 넘는다고 한다. “송아지”라는 말소리를 들으면 그 뜻을 모르는 사람의 경우, 그것이 무엇을 지칭하는지 생각해 낼 수가 없다. 그 관계가 인위적이기 때문이다. 이를 “상징의 관계”라고 한다. 우리 주변에는, 특히 시각적 상징이 많다. 시각적 상징의 예를 들어보자. “☎”는 전화기, “♨”은 온천, “♀”은 암컷, “π”는 원주율을 상징한다. 앞쪽의 둘은 그 뜻의 짐작이 쉽지만, 뒤의 둘은 사전 지식이 없으면, 알 수 없는 상징들이다. 청각적인 상징을 보자. 우리는 고양이 울음를 “야옹”으로, 중국은 “미야오, 미야오”(喵喵), 일본은 “냐, 냐”라는 의성어로 상징화한다. “喵”은 글자 자체가 고양이의 울음 소리를 뜻하는 한자라고 한다. 의성어는 “전화기”의 상징처럼 짐작하기 쉬운 상징일 것이다. 그러나 언어의 “말소리”는 모호성이 대단히 높은 상징이다. “말소리”의 다음 단계인 단어 차원에 들어서게 되면, 언어의 모호성은 더욱 증가한다. 언어 상징의 모호성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미리 공부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여기서 잠시 일본과 중국의 경우, “말소리”에서 시작되는 상징의 모호성을 줄여나간 방법을 살펴 보자. 일본은 한자를 도입함으로서 이 모호성을 줄였고, 중국은 원천적으로 한자를 만듦으로서 모호성을 해소했다. 일본과 중국 모두 시각적 기록을 사용한 것이다. 일본이 보조적이었다면, 중국은 원천적이다. 그러나 두 언어 모두 “말소리”와 “한자”의 관계를 암기해 두어야만 한다. 물론, 암기하고 나면 편리하다는 것을 말할 필요가 없다. 이 편리함이 한자 사용을 고집하는 원인일 것이다. 조선 역시 한자를 도입해 사용했다. 그러나 일본과는 다른 점이 있다. 한자의 발음을 하나로 정해 놓고 그것을 준수한 것이다. 일본의 경우 “泉”을 음독으로 읽으면 “せん”(센)이고, 훈독으로 읽으면 “いずみ”(이즈미)이다. 한국어에 빗대어 말하면, “木”을 “목”으로도 읽고, “나무”로도 읽는다는 뜻이다. 일본어의 훈독은 뜻을 지칭한다는 의미에서 중국어 방식을 그대로 가져온 것이다. 중국어는 몇몇 어조사(語助辭)와 외국어의 음성표기를 제외하면, 모두 훈독이다. 중국은 사투리, 또는 언어가 다른 종족에 따라 같은 한자를 다르게 읽는 경우가 한 둘이 아닐 것이다. 중국 문자는 모두 뜻 글자이기 때문에 “코카콜라, 아프리카”등을 표기하는 데에 상당한 고민이 있었을 것이다. 원칙적으로는 이 사물을 뜻하는 새로운 문자를 만들어야 하지만, 교육용 문자의 수를 줄여야한다는 주장 앞에서 그렇게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아프리카를 “阿非利加”(āfēilìjiā)로 음성표기하고 약해서 “非洲”(fēizhōu)로 표기한다고 한다. 한국어에는 훈독이 없다. “蟲”을 “벌레”로 읽지 않는다는 뜻이다. 표의문자를 거부하고 표음문자를 철저히 지킨 점이 한국은 일본과 다르다. 표의문자 세계에 들어서기를 거부한 것이다. 물론 지식인 층의 자기 보호와 과시 본능으로 인해 한자의 표의적인 지각, 즉 한자의 시각적 인식 없이 듣기만으로는 그 뜻을 알기 어려운 문장을 만들려는 경향이 없지 않았을 것이다. 시각적 개입의 최소화로 인해 한국어는 표음 체계를 철저히 지킬 수 있었다. 이는 말을 알아 듣게 되는, 말소리와 뜻 사이의 연결을 직접적인 것으로 유지할 수 있게 해준다. 다시 말해, “吾等은 玆에 我 朝鮮의 独立国임과 朝鮮人의 自主民임을 宣言하노라”와 같은 어려운 표현도 말소리만 듣고도 그 뜻을 알아차릴 수 있었던 것이다. 한글을 읽을 때에 더 중요한 점은 한글의 글자 모양이 세밀한 근육 운동을 구체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글자의 모양으로 자음과 모음 조합을 명료하게 보여줌으로서, 발음을 위한 신경회로의 형성을 논리적으로 알려준다. 글자를 볼 때마다 구강의 많은 근육들을 어떻게 배합해야 하는가를 직감하고 이를 수행할 수 있다는 뜻이다. 한글을 공부하는 사람들은 이 연습의 단계를 넘어서서 발음 수행의 자동화에 도달해야 한다. 자동화는 신경회로의 확립과 그 고정화일 것이다. 넘어져가며 연습한 후에, 신경 쓰지 않고 자전거를 탈 수 있는 단계에 이르는 것과 같다. 자전거를 배울 때의 즐거움과 성공한 순간의 만족감을 “한글-읽기”에서도 느끼는 것이다. 모호성의 감소를 구체적으로 생각해 보자. 일본인들은 “さん”(산)이라는 말소리를 들을 때에 그것이 “낳음/재산”(産), “시큼한 맛”(酸), “셋”(三), “산”(山) 중 그 뜻을 선택해야 한다. 뜻의 모호성을 없애기 위해 한자가 도움을 준다. 따라서 기록이 필수적이다. 언어 발달 과정에서 기록은 구어를 억압하고 지배하기 때문에 한자를 선택하고 나면, 기록된 한자는 “갑의 입장”에 서게 되고, 피할 수 없는 억압으로 자리를 굳히게 된다. 중국 사람들은 “hé”(하) 발음을 들을 때에, 그 모호성을 없애기 위해, 그것이 뜻하는 바에 따라 글자를 새롭게 만들었다. “河”(강), “和”(화합하다), “合”(더하다), “何”(무슨), “盒”(작은 상자)라는 글자를 만들어 그 모호성을 없앤다. 다섯 글자 모두 성조(声调)에서도 같은 “phone”이다. 물론 여기에는, 글자가 먼저 있었는지 말이 먼저 있었는지에 대한 논란을 있을 것이다. 말이 먼저인 경우도 있었고 글자가 먼저인 경우도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표의문자의 개입으로 일본과 중국에서는 새로운 발음 개발이 진행되지 않았던 것이다. 새로운 말소리를 만들 필요를 느끼지 않았고, 만들지 않게 되었다. 중국은 새로운 글자를 만들어 해결했기 때문에 고민할 일이 없었다. 일본의 경우, “さん”(산)의 여러 뜻인, “낳음, 재산”, “시큼한 맛”, “셋”, “산”을 발음만으로 구별해야하는 요구가 오랜 동안 지속되었다면, 새로운 발음이 개발되었을 것이다. 이 네 뜻을 표기하기 위해 예를 들면, “産”를 “섭”, “酸”을 “싴”, “三”을 “삼”, “山”을 “산”등으로 한국처럼 한 음절로 된 새로운 발음 개발을 개발했을 것이라고 추측해 보는 것이다. “산”(山)을 제외한 세 발음은 일본어에는 없는 “말소리”들이다. 새로운 발음이 생긴다는 것이 별 것 아닌 것으로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렇지 않다. 새로운 말소리를 발음을 하기 위해서는, 뇌는 복잡한 과정을 겪어야 한다. 처음 만나는 말소리를 시도한다는 것은 호흡에서부터 발음과 관련된 혀와 입의 근육 운동, 발음 후의 청각적 확인 등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시도이고 경험이다. 이어서 근육의 움직임을 자동화하고, 발음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즉시 수행이 이루어지는 신경회로를 고정화해야 한다. 한국 사람 중에도 지역과 나이에 따라 “관광산업”을 “간강산업”으로 잘 못 읽는 사람이 있는 것을 보면, 기존의 고착화된 신경회로를 없애고 새로운 것으로 교체하는 일이 보통 일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일본 사람들 거의 전부가 “김치”를 “기므치”로 발음하는 것을 보면 올바른 발음 수정이 쉬운 일이 아닌 모양이다. 이제 세계의 젊은이들이 한글을 배우는 즐거움을 이해 할 수 있을 것이다. 한글의 글자를 보았을 때에, 그들은 “자음-모음” 또는 “자음-모음-받침”으로 조합된 하나의 “글자” 모양을 보고, 각각의 자음과 모음의 발음을 순서대로 구사하라는 명령을 뇌에서 내려 보낼 것이다. 계속해서 나타나는 한글을 보고 새로운 “phone”를 시도해야 하고 신경회로의 자동화를 이루어나가야 한다. 정확한 발음에 도달한 다음, 단어의 뜻을 생각하게 된다. 한국어 이해의 긴 여정에 들어서는 것이다. 한글을 배우는 외국인들은 위 표의 “큘, 턀, 펼”등과, “훑어본다”던지 “괜찮다”에서 “훑”과 “찮” 등의 발음을 시도하기 위해서 구강 근육의 경이로운 조합을 명령해야 한다. 우리는 사용하지 않는 “말소리”임을 알고 있는, “퓒, 홻, 괆”같은 한글 글자를 상상할 수 있고, 발음을 시도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들에게는 이 놀라운 발음이 상상의 세계에 존재한다는 뜻이다. 새로운 발음을 연습하고 읽혀 갈 때, 한글을 배우는 젊은이들이 느끼는 즐거움과 쾌감은 대단할 것이다. 한글을 일상적으로 읽고 있는 우리로서는 그 즐거움을 짐작하기 어렵다. 그들은 한글을 배우면서, 글자 하나하나를 읽을 때마다 자전거 타기에 성공하는 즐거움을 맛보는 것이다. *외부 필진의 기고 내용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약력]서울대 명예교수 [저서]시와 리듬(1981, 개정판 2011), 음악을 본다(2009), 세계의 음악(2014) 등 [번역]기호학 이론(U. Ecco, 1984), 서양음악사(D. J. Grout, 1997)
    한글의 유행
    by 서우석
    2024.08.10 06:30:00
  • 3. 나무관 속의 아기 “분명 관속의 아기가 운 거지?” “살아 있나?” 낡은 나무관 옆에 서 있던 두 명의 악당은 동시에 말을 뱉었다. 우두머리 단테는 홉이 달아나면서 던진 돈을 줍느라고 조금 떨어진 거리에 있었다. 관 속의 가냘픈 울음소리를 듣지 못했다. 단테는 주운 돈을 주머니에 쑤셔 넣은 후 관을 깊숙하게 들여다보고 있는 두 놈을 발견했다. ‘죽은 여자에게 반한 것이야. 쓸모없는 놈들!’ 단테는 성실한 홉이 가버리고 무능한 두 놈이 남은 것이 속상했다. 같이 동거하던 여자가 임신한 후 홉은 일행에 합류했다. 홉은 아기가 생기자 이전과 전혀 다른 삶을 살았다. 성실하게 마약 제조일에 동참했다. 그런데 관속에 들어 있는 모자(母子)를 보고 달아나버렸다. 자신의 아기를 먹여 키우기 위해 벌어야만 하는 돈도 던지고 가버렸다. 충격을 받은 것은 이해하지만, 그런 결정을 단숨에 하게 만든 홉의 내면의 무엇이 궁금했다. 다가갈 때까지, 멍청한 두 놈은 여전히 나무관 안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단테는 큰소리로 야단을 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두 놈은 여자가 아니라 황토로 빚은 듯한 물컹한 아기의 얼굴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아기의 감은 두 눈의 단아함과 또렷한 입술의 윤곽이 신비하여 멈칫했다. 키가 큰 로깡이 단테에게 작게 속삭였다. “아기가 살아 있어요.” “지금이 농담할 때야? 아기를 핑계 삼아 홉처럼 일하기가 싫은 거지. 여자와 아기, 두 사람의 뼈를 수거하니 돈을 더 달라는 거야?” 그 순간이었다. 단테는 관 속 아기가 한쪽 실눈을 가늘게 떠는 것을 보았다. 얇은 눈꺼풀이 세상의 무게를 견디며 미미하게 열리는 믿기 어려운 순간과 맞닥뜨렸다. 몇 밀리미터 열린 실눈이 온몸의 에너지로 단테의 시선을 잡아끌었다. 두 놈은 실눈의 변화를 보지 못한 듯했다. “단테 씨! 우리가 아기 울음소리를 들었어요.” 아기는 나머지 한 눈을 뜰 여력은 없어 보였다. 단테는 시계를 보았다. 허락된 시간이 많지 않았다. 나무관에 못을 치기 전 죽은 자에게 주어진 시간은 30분이었다. 세상의 미련이나 고통을 놓고 정리하라는 ‘죽은 자를 위한 예의의 시간’이었다. 세상과의 인연을 못질로 단단히 닫아버리기 전에 베푸는 마지막 시간이었다. 그 시간 동안에는 아무도 침범하지 못하게 되어 있었다. 상례(喪禮)였다. 단테는 그 예의의 시간을 예외로 샀다. 사람들의 눈을 피해 일을 치를 수 있는 가장 안전한 시간이었다. 서로 정체를 들키지 않도록 사람들과 맞닥뜨리거나 얼굴을 보면 안 되는 계약이었다. 아기의 열린 실눈과 단테의 시선이 다시 조우했다. “빨리 뼈들을 뜯어서 담아!” “누구의 뼈를요?” 이 질문에 단테는 잠시 망설였다. “죽은 여자의 뼈! 여자의 뼈를 샀으니 여자 것만 가져가자.” 두 놈은 동시에 단테를 바라보았다. “아기는요?” “ …… .” “살아 있는 아기는요?” “살아 있을 리 없어. 죽은 직후에 사후 경직 현상 때문에 … 꿈틀거릴 수 있어.” 아기가 여전히 단테의 시선을 붙잡고 있어서 더듬거렸다. 두 놈은 자꾸 엉뚱한 소리로 버텼다. “울음소리를 분명히 들었어요.” 평소 미련하기도 하고 소심해서 자신의 의견이 별로 없는 앤드류까지 나섰다. 단테는 시계를 보고 아이의 얼굴을 보았다. 손톱자국처럼 열린 실눈이 온 생명을 다해 단테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관속에서 생명이 태어날 수는 없었다. 죽은 여자의 몸속에서, 죽음 속에서 생명이 뚫고 나올 수 없었다. “아니라니까!” 단테가 워낙 강하게 말하자 그들은 고개를 갸웃했다. 뚱뚱이 앤드류는 가만히 있었지만, 로깡은 포기한 기색 없이 관 안을 다시 들여다보았다. 아기의 울음을 토해내게 하려는 듯 작은 입술을 손가락으로 건드려보기까지 했다. “이번에 인골을 가져가지 못하면 다음 달 제공할 마약 ‘모르’의 제조 자체가 불가능해. 굶어 죽고 싶지 않으면 빨리 하나라도 건져.” 인골 없이 마약을 제조할 수는 있어도 가짜 약이었다. 인골을 빼고 제조한 ‘모르’는 효능이 거의 없었다. 인골 자체에 어떤 효과가 있다기보다 촉진제 역할을 하는 모양이었다. 다른 마약보다 효능이 높은 ‘모르’는 부르는 것이 값이었다. ‘모르’는 고급 손님을 상대로 한 마약이었다. 가짜 마약으로 신용을 지킬 수는 없었다. 단테는 마음이 급했다. “5분 안에 빨리 나가야만 해. 지금 나가지 않으면 우리 모습을 들키고 말 거야. 장례사가 들이닥치면 끝장이야.” 순간, 로깡인지 앤드류인지 청천벽력같은 소리를 했다. “단테 씨! 아이를 관 안에 넣은 채 못질을 하게 내버려 둘 거예요?” “그럼 어쩌라는 거야?” 망치를 든 사람들이 곧 들이닥칠 것이다. 나무관을 못질하여 봉해버릴 죽음의 봉사자들이 올 것이다. 최근 마약에 절은 시신이 많아서 동물들의 파묘가 심해졌다. 그들은 과거보다 더 완벽하게 못질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아기의 한쪽 실눈이 견디지 못해 스르르 닫히는 순간이었다. 단테는 작은 비명을 질렀다. “아, 안 돼! 죽은 여자는 두고 … 아기를 데려가자, 빨리!” ▶다음 회에 계속 … 김다은은 ‘당신을 닮은 나라’가 1995년 제3회 국민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소설가로 등단했다. ‘덕중의 정원’ ‘훈민정음의 비밀’ ‘쥐식인 블루스’ 등 20여권 소설책을 출간하고, 다수 번역돼 해외 소개됐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주관한 폴란드 바르샤바대학 작가 레지던시를 비롯, 청송 객주 문학관, 정선 여량면 아우라지 레지던시, 해남 인송문학촌 토문재 레시던시에 참가했다. 이화여대 불어교육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파리8대학에서 불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추계예술대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작권자의 허락없이 무단 부분 혹은 전체 전재, 복사, 배포를 금합니다.)
    종의 기원  <3회>
    by 김다은
    2024.08.05 09:00:00
  • 얼마전 미국 로스엔젤레스 아카데미영화박물관 한국영화 상영 시리즈 <윤여정: Youn Yuh-jung> 특별 회고전 오프닝에 참석했다. 건축의 거장 렌조 피아노가 설계한 아카데미영화박물관은 영화제작의 예술과 과학을 중심으로 하는 미국 최대기관이다. 매끄러운 유리와 강철로 이루어진 이 구형 건물과 대조적으로 박물관의 전시는 매우 오래된 할리우드 느낌이 나는 아르데코 공간을 연출하기도 한다. 마치 다른 마법의 세상에 온것처럼 느껴지게 한다. 개관 직후 이 박물관은 미국 문화예술과 영화계에서 중요한 기관으로 자리 잡았다. 톰 행크스, 레이디 가가, 스티븐 스필버그 등 스타들이 지지한 가운데 많은 기대 속에 2021년 문을 열었다. 원래 2017년 개관 예정이었던 박물관은 팬데믹의 영향으로 개관이 연기됐지만 톱스타들과 문화예술 주요인사들이 참석한 오프닝 갈라 행사로 할리우드가 열광했고 박물관의 중요성이 더욱 부각됐다. 이 특별전은 ‘미나리’를 비롯해 세계속 여성의 위치를 사유해볼 수 있는 그녀의 출연작들로 구성됐다. ‘미나리’는 한국계 미국인 정이삭 감독이 한국어를 주요언어로 쓴 디아스포라 영화다. 영국의 유력지 더 가디언은 “거침없이 열정적이며 솔직한 윤여정은 새로운 유형의 독립적 한국 여성상을 구현해냈다” 라고 평했다. 미국 할리우드의 심장부에서 왜 윤여정 그녀를 주목했을까를 생각해보았다. 필자는 한국인 최초 아카데미 어워드 여우조연상을 수상한 배우 윤여정을 만나 그녀에게 ‘디아스포라’의 의미는 무엇인지에 대해 물어보았다. 영화 속 그녀의 역할은 한국에서 미나리 씨앗을 미국 오지로 가져오는 할머니다. 자신의 몸을 던져 더러운 물을 정화해내는 미나리처럼 포용적 모성의 상징이며 동시에 삶의 무게를 장난기 가득한 웃음의 미학으로 전환하는 모습을 가졌다. 본인 스스로 북한 개성출신 실향민이며 오랫동안 한국사회의 보편적 미개념에 부합되지않는 비호감 배우, 순종적이지 않은 이미지등에서 개성파 배우로 인식돼 왔다. 그녀가 맡은 배역의 대부분은 성적이고 전복적 역할을 이뤄내는 약자의 입장이었다. ‘타자’로서의 여성성을 대표하는 윤여정의 몸은 현대적 개념의 디아스포라를 상징하는 듯하다. 세계적 대배우로 인정받기까지 그녀의 삶은 고난으로 가득했다. 청룡영화제 여우주연상 수상등 이른 나이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좌절의 시기를 겪어야 했다. 결혼후 미국 플로리다로 건너가 13년동안 생활고에 시달리며 어려운 삶을 견뎌냈다. 이혼 후 고국으로 돌아와 싱글맘으로서의 양육과 생계를 해나가기 위해 단역이나 남들이 기피하는 역할들을 마다하지않았고 불굴의 의지로 버텨냈다. 아무곳에서나 자라나며 오염된 물을 정화하는 풀, 특유의 향과 줄기의 강한 탄성으로 주요리를 묶고 장식하는 조연의 역할, 그녀의 모든 역사는 마치 이 미나리처럼 보인다. 오늘날의 세계는 다양성, 초국적성, 하이브리드화된 네트워크의 세상이다. 아카데미 회고전을 개최하는 이유는 팬데믹 이후 새롭게 부각된 인권과 디아스포라라는 현대적 이슈에 있다고 본다. 디아스포라란 근본적으로 소수민족의 뿌리 없는 삶과 뿌리 내리지 못하는 상태를 일컫는 개념이다. 이민자가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고국을 떠나면, 미나리처럼 한국에서 가져온 씨앗이 미국땅에 뿌리를 내리고 다른 환경에서 태어난 하이브리드 미나리가 된다. 글로벌 관점에서 디아스포라가 주목받는 이유는 오늘날 세계가 기후변화, 글로벌 경제 위기로 인한 사회경제적 양극화, 인종 및 계급 갈등등으로 인해 사회적으로 고립되고 단절된 채 살아가는 부조리의 세계라는 점 때문이다. 자신의 터전을 떠나야했던 이민자들의 경험은 현대사회의 모든 세계 시민들과 다르지 않으며, 이러한 의미에서 우리 모두는 디아스포라적 삶을 살고 있다고 본다.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는 호모 사피엔스라는 한 종만이 하나의 종으로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를 언어라고 설명한다. 영화라는 장르는 시각적 언어와 함께 문학적 언어를 사용하여 가상 현실이라는 가상의 개념에 대한 그럴듯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한국어 영화 미나리는 미나리 씨앗을 잠재력으로서 상상을 한다. 모성을 상징하는 할머니를 통해 한국에서 미국으로 이주한 디아스포라의 잠재력으로서의 미디어다. '한'의 정서는 전 세계 소수민족의 보편적 정서로 공감대를 이끌어낸다. 한국의 역사적 개념인 '한'은 우리의 DNA에 담겨 국경을 넘어 코리안 디아스포라를 형성하고 있다. '가상현실'을 '한'으로 구현하고, 고대 그리스 희극 작품처럼 기쁨과 흥겨움으로 승화시키는 ‘한의 문화'를 만들어낸다. 한류의 성공은 미나리로 상징되는 생명력 DNA와 개인주의가 아닌 단결성, 연결성을 통해 공감을 나누는 데에 있다. 한국 영화 회고전이란 현상이 일어나는 건 시작에 불과하다. 한국 디아스포라 영화 '미나리', 식민지 경험의 치유 '파친코', 계급과 구조의 전복 '기생충', 자본주의 경쟁 '오징어 게임' 등이 한류의 성공 사례를 보여주고 있다. 한류의 힘은 잠재적 가능태라고 본다. 역사적, 사회적 관점에서 시대 상황을 수렴한, 재현과 재해석을 통해 전통을 넘어서는 정체성을 가진 새로운 현상으로 볼 수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다양성, 네트워크, 하이브리드로 정의된다. 지역성과 지정학적으로 깊이 얽혀 있으며 중앙집권보다는 분권화되고 있는 추세이다.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에서 유색인종의 힘이 점점 더 커지고 있으며, 우리의 한류 DNA는 다양한 맥락에서 활발히 활동하며 더 큰 힘을 발휘해 나가고 있다. 한국 영화와 함께 K팝은 방탄소년단의 예처럼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팬들과 겸허하게 일상을 교감하며 활기찬 희망의 길을 보여줬다. 자유에 대한 의지, 변화를 향한 전 세계 젊은이들의 열망을 담은 K-컬처는 전 세계 관객들을 자발적으로 참여시키고 연결시키는 희망과 설렘을 만들어냈다. 이제 우리는 한류에 대한 깊은 철학이 필요하다. 한류는 백남준 작가처럼 여러 세계사이의 중간 지점을 차지하고 있다. "높은 문화예술"과 "낮은 문화예술"의 가교로서 한류의 역할은 사회적 문화외교적 측면에서도 힘을 가지며, 진정성과 생명력의 DNA로 글로벌 시각의 문화예술을 창조할 수 있는 특별한 위치에 있다. 이제는 기술, 예술, 문화의 토대를 더욱 강화해야 할 때다. 새로운 아이디어와 지원, 한류를 통한 글로벌 교류의 문을 활짝 열어 세계 무대에서 우리의 입지를 강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할리우드가 배우 윤여정을 주목한 이유
    by 이경화
    2024.08.01 08:00:00
  • 2. 세상 사람들이 가장 많이 읽은 책 김아리랑 팀장으로부터 전화를 받은 다음 날, 나는 예약한 병원에 가서 코로나 백신 2차 접종을 받았다. 1차에서 아무런 부작용이 없었기에, 2차에서는 방심하고 말았다. 전날 저녁부터 그날 새벽까지 400페이지에 달하는 『인공낙원의 문』을 읽으며 대담 질문을 뽑았고, 아침 식사도 제대로 하지 못한 상태에서 병원에서 백신을 접종했고, 먹어두면 좋다던 타이레놀도 찬장 어디 뒀는지 찾을 수가 없어서 생략하고 말았다. 갑자기, 온몸에 툭툭 알레르기 증상이 솟고 끙끙 앓기 시작했다. 하루 지나면 가라앉는다는 항간의 경험을 철석같이 믿고 버텼다. 하지만 다음 날은 불의 도가니에 들어앉은 것처럼 온몸에 열이 올랐다. 병원을 방문해서 내 몸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몇 가지 검사를 했지만, 별 이상은 없다고 했다. 주는 약을 삼키고 또 하루가 지나갔다. 아무래도 새 대담자를 찾아야 할 것 같았다. 내가 다른 이를 대신한 대담자였기에 국제예술창작재단도 난감할 수밖에 없었다. 외교관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어릴 때부터 여러 나라를 떠돌았던 나는 이런 상황에서 문화적 외교 관계를 무너뜨리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아버지 덕분에 잃은 것도 많지만 얻은 것도 많아 자연스럽게 습득한 외국어가 여럿 되었고, 그중에 프랑스어도 있었다. 막 번역 출간된 프랑스 책을 사서 읽고 프랑스 작가와 토론할 수 있을 대담자를 ‘반나절 만에’ 찾기에는 내가 봐도 너무 늦었다. 아리랑 씨 말대로 “지금 상황에서 이 일을 진행할 수 있는 ‘세상에서 유일한 사람’”이 바로 나였다. 한참 코로나 팬데믹이 기승을 부리던 때라 국제 도서전은 방역 수칙 때문에 온라인 축제를 벌인다고 했다. 그래서 영상으로 대담을 먼저 찍게 되어, 촬영을 위해 최소한의 사람들만이 모여 있었다. 아리랑 씨는 출장을 갔다며 창작재단 측에서는 노랑머리 여자 직원이 왔고, 영상 기술진, 책을 번역 출간한 출판사 편집자, 그리고 몇 명의 취재진이 모여 있었다. 대담은 영상 편집 후에 서울 국제 도서전 참가 나라들에 송출된다고 했다. 대담 화면에는 프랑스 작가의 모습은 올라오기 전이었고, 내 모습이 막 잡힌 것이 보였다. 어, 나도 모르게 작은 소리를 뱉어냈다. 미용사가 머리를 과도하게 매만져 평소와 다른 모습이기도 했지만, 백신으로 퉁퉁 부어서인지 영상에 올라온 나를 내가 알아볼 수가 없었다. 못생겨져 버린 모습이 속상해서 못 알아보는 것이 아니라 영상 속의 나는 분명 내가 아니었다. 내가 입을 열면 영상 속의 내가 흉측하게 일그러지며 말을 따라 했다. 그때, 화면에 프랑스 작가가 솟아올랐다. 시차 때문인지 한동안 영상이 흔들렸고, 작가는 이쪽의 상황을 모르는지 스스로 마이크 테스트를 하는 모습이었다. 그는 와이셔츠나 넥타이 없이 느슨한 모습으로 긴장감 없이 자기 행동에 몰두했다. 작품 속에서 보여주던 환각의 도시와 잔인하고 죄의식이 없는 마약 제조자들의 이야기를 거침없이 풀어낸 작가라기에는 너무 순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드디어 그가 우리를 발견한 모양이었다. 그는 동양식으로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나는 프랑스식으로 “봉주르~!”로 시작하는 인사말을 했다. 기술진이 시작하라는 사인을 주었다. 나는 프랑스 작가에게 자신을 소개해 달라고 했고, 나는 들은 대로 통역했다. 그리고 나를 소개해야만 했다. 설핏 내가 아닌 내가 보였다. 모두 내 입을 바라보는 다급한 상황에, 내가 누구라고 말할 수가 없다고 말하고 말았다. 현장에서 대담을 지켜보던 사람들이 약간 움찔하는 느낌이었지만, 프랑스 작가는 호감의 웃음기를 띄면서 말했다. “내가 누구라고 쉽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아요. 당신은 아픈 대담자를 대신해서 저를 위해 나와주신 고마운 분입니다. 이런 변화가 책을 읽을 한국 독자와 우리 두 사람의 인생에 어떤 변수가 될지 기대가 되지 않습니까.” 이 난센스 같은 대화에 현장 사람들은 귀를 기울인 모습이었다. 문학적인 토론이라는 것이 모호하면 할수록 시적이라고 여기는 경우가 많아서 그런대로 좋은 서막이라고 할 수도 있었다. “우선 표지 문구부터 시작해 보겠습니다.” 나는 저급한 역설적인 표지 문구로 먼저 그를 건드리고 싶었다. 프랑스 작가는 예상했다는 듯이 간단하게 대응했다. 표지 문구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다른 대응 문구를 같이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소설 p.202에 대응 문구가 있다고 했다. 내가 모든 사람에게서 자유로우나 / 스스로 모든 사람의 종이 된 것은 / 더 많은 사람을 얻기 위한 것이다 그가 말한 문장을 듣자마자 숨이 거칠게 올라왔다. 우선 그 문장을 읽은 기억이 나지 않았다. 표지 문구의 대응 문장이라면 당연히 기억해야 한다. 기억하지 못해도 들으면 기억나야 하는 것이 정상이었다. 제대로 독서했다면 당연히 그래야 했다. 코로나 백신의 부작용으로 기억력이 약해졌거나, 세계적인 작가의 언어 감각 앞에서 오래간만에 사용하는 프랑스어가 삐걱거려 내심 당황했을 것이다. 무엇보다 주르륵 빠르게 읽어 치운 허술한 독서의 구멍이 가장 큰 원인이었을 것이다. 프랑스 작가는 여유로운 태도로 말했다. “이렇게 아름다운 문장들은 제가 만든 것이 아닙니다. 제가 고백하지 않아도 아시겠지만, 세상 사람들이 가장 많이 읽은 책에서 인용한 것이니까요.” 작가가 말하는 문구가 기억나지 않는데, 문구의 출처를 아는 것은 가능치 않은 일이었다. 세상 사람들이 가장 많이 읽은 책이라는데 그가 책의 제목까지 알려주면서 나의 자존심을 뭉개지 않도록, 나는 서둘러 아는 척했다. 그런데 갑자기 그가 말한 두 번째 문장이 표지 문구와 정반대의 뜻을 담고 있음을 깨달았다. ‘오만하구나.’ 속으로 그런 생각이 올라오자 차츰 정신이 돌아왔다. 표지 문구에서도 반어적인 표현으로 독자를 우롱하더니, 그 문장과 전혀 반대되는 문장으로 다시 독자를 우롱하려고 했다. 지혜로운 대담자라면 작가의 오만쯤은 쉽게 누그러뜨릴 수 있어야 한다.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 웃었다. 그리고 덧붙였다. “당신의 논리대로라면, 사람들의 종이 되지 말아야 하며 동시에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는군요.” 그는 은인에게 하듯 친절한 태도로 말을 이었다. “사람들의 종이 되지 않아야 모든 이의 종이 될 수 있습니다. 그 과정의 비밀이 제가 책에 담고 싶었던 것입니다.” 인용한 책을 모르고 대담을 계속 이어가다가는 실수를 저지르겠다는 우려가 설핏 머릿속을 스쳤다. “저는 알고 있지만, 혹여 모르는 사람들을 위하여 그 책이 무엇인지 말씀해 주시겠어요?” 그런데 그때, 프랑스 작가는 천사를 보았거나 악마를 보았거나 무엇인가 본 모양이었다. 작가의 얼굴에서 난감함과 호기심이 섞인 표정이 대서양을 건너 나에게로 전달되었다. 나는 그때 약 때문인지 텔레파시 주파수가 매우 높게 올라가 있어서 그의 내면에서 느끼는 감정이 그대로 전달되곤 했다. 한국의 영상 기술자가 나를 흘끗 쳐다보았고, 김아리랑 씨 대신에 온 국제예술창작재단의 노랑머리 직원이 급하게 종이에 무엇인가를 써서 허공에 들고 내 쪽을 향하여 흔들었다. 두 사람의 거리 때문인지 열 때문인지 그 글자가 선명하게 들어오지 않았다. 한숨 같은 탄성이 전해졌다. 그 책이 무엇인지, 나만 빼고 모두가 알고 있는 느낌이었다. ▶다음 회에 계속 … 김다은은 ‘당신을 닮은 나라’가 1995년 제3회 국민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소설가로 등단했다. ‘덕중의 정원’ ‘훈민정음의 비밀’ ‘쥐식인 블루스’ 등 20여권 소설책을 출간하고, 다수 번역돼 해외 소개됐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주관한 폴란드 바르샤바대학 작가 레지던시를 비롯, 청송 객주 문학관, 정선 여량면 아우라지 레지던시, 해남 인송문학촌 토문재 레시던시에 참가했다. 이화여대 불어교육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파리8대학에서 불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추계예술대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작권자의 허락없이 무단 부분 혹은 전체 전재, 복사, 배포를 금합니다.)
    종의 기원  <2회>
    by 김다은
    2024.07.29 09:00:00
  • 인도네시아의 음악은 우리 나라에 잘 알려지지 않은 음악이다. 영어권에서는 “gamelan”(가믈란)이라는 별칭으로 알려져 있다. 인도네시아를 오랜 동안 지배했던 네덜란드에게 가믈란은 친밀한 음악이다. 네델란드의 몇몇 대학은 자국 학생들과 인도네시아 태생의 연주자들로 구성된 가믈란 연주단이 있을 정도다. 그 외에 인류학적 관점에서 음악에 관심이 많은 유럽의 몇몇 대학과 미국 서부의 대학에 가믈란 악기 세트와 연주자들이 있다고 한다. 인도네시아의 국토는 1만 7000개가 넘는 섬으로 구성되어 있고, 섬들은 400개가 넘는 화산을 품고 있다. 섬들 간의 동서의 거리(5300km)는 한반도 남북 거리(1100km)의 다섯 배가 될 정도여서, 문화적 통일이 그리 쉽지 않으며 섬 주민들은 해변에 거주하며, 섬 내부 고지대 원주민들은 외부로부터 고립되어 있다. 수도가 있는 자바 섬이 문화의 중심이다. 가믈란의 어원은 인도네시아어의 “gamel”(손으로 다룸)에서 유래된 말이며, 지금은 가믈란 악기를 두들기는 막대기라는 뜻으로도 쓰인다고 한다. 정통적인 가믈란 음악 역시 자바 섬이 중심이다. 가믈란은 특이한 음악이다. 음악이라기 보다는 크고 작은 여러 종소리가 함께 울리는 종소리 음악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외워서 흥얼거릴 수 있는 멜로디가 존재하지 않은 음악이다. 이 종들을 “gong-chime”이라고 부른다. 베트남 북부의 “동선문화”(東山文化, B.C.1000 - B.C.100)의 청동기는 인도차이나, 말레이 반도, 중국, 티벳에 이르기까지 주변 지역에 막강한 영향력을 미친다. 공-차임의 원조인 동선-드럼이 기원전 400년경 인도네시아에 소개된 것으로 전한다. 도입된 악기는 사진과 같은 청동-케틀드럼(bronze kettledrum)이었다. 케틀-드럼은 반구형의 통 위를 가죽으로 덮고 가장자리를 당겨 음높이를 조절하는 북을 통칭하는 악기다. 유럽의 팀파니가 그 좋은 예다. 공-차임 악기는 전쟁 후 퇴각한 적군이 남긴 무기를 녹여 제작한 것이었기 때문에 값 비싼 물건이었다. 금속 악기는 귀족들의 애호품이었고, 금속 자체가 신비의 대상으로 여겨져 공-차임 악기들은 초자연적인 힘을 지닌 신앙의 대상이 된다. 이때 청동을 다루는 대장장이들이 등장하게 되고, 이들의 후손이 지금도 악기를 제작하고 있다. 사진에서 보듯이, 공-차임은 크기와 모습에 있어 차이를 보인다. 한국의 냄비 비슷한 모양도 있고 속이 빈 기둥 모습도 있다. 돌출되어 있는 부분은 막대기 끝으로 두들기는 부분이다. 왼편 “징”에도 돌출부가 있다. 인도네시아 전역은 13-16세기 간에 이슬람화된다. 그 이전의 인도 문화의 유적으로는 자바섬 자카르타 북부의 보로부두르(Borobudur) 불교 사원이 대표적이다. 이 사원 벽면에는 가믈란 연주단 모습이 부조되어 있다. 이슬람의 칼리프가 인도네시아의 대부분을 점령하면서, 가믈란 악기 세트를 가진 지역 귀족들이 권력을 유지하고 있다는 이유로, 가믈란 악기의 연주를 금지시키고 악기를 압수해 땅에 묻어버리는 정책을 편 적이 있었다. 그러나 이에 대한 민중의 반발이 자주 일어나자, 발굴하여 다시 사용하게 허락하기도 했다고 한다. 이처럼 인도네시아의 공-차임의 문화적 전통은 그 뿌리가 강력하다. 가믈란 음악은 관광객 코스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관광객들은 악기에 대한 설명을 듣고 직접 연주하는 과정을 즐긴다고 한다. 공-차임은 타악기여서 손가락을 사용하지 않고 연주할 수 있으므로, 연주가 쉽다는 점이 매력적일 것이다. 가믈란에도 활을 사용하는 레밥(rebab)과 취주 악기인 술링(suling)이 있지만 주된 악기는 모두 타악기다. 다음 사진은 가믈란 정식 연주단의 정좌한 모습과 외국 관광객들이 악기를 연주하는 모습이다. 공-차임의 조율은 매우 어려우며 전문적인 작업이다. 현악기의 경우 연주자가 직접 조율하지만, 공-차임의 경우 악기의 표면을 부분 부분을 갈아내어 조율해야 한다. 이런 이유로 악기공인 대장장이들은 귀한 대접을 받는다. 이미 사용하고 있는 악기들도 제작 후 10년이 지나면 다시 한번 조율해야 한다고 한다. 공-차임의 음계 설정을 살펴보자. 음계의 설정은 줄의 진동으로 인해 발생하는 배음(overtone) 인식에서 출발한다. “overtone”은 우리 말로 옮기자면 “위에-있는-음”들이란 뜻이다. “배음” 보다는 “상위음”이 더 적절한 번역일 것이다. 음을 들을 때에 우리의 뇌는 “위에-있는-음”들을 무의식에 담아둔다. 의식에서는 “위에-있는-음”들을 음색으로 전환해 인지하는 것이다. 배음은 우리가 직접 인지하지는 않지만, 존재하는 음이기 때문에 뇌에 각인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무의식에 각인되어 있던 음높이의 관계가 음계 설정의 원칙이 된다. 원시 상태에서 노래를 부를 때에도 이 관계가 표면으로 등장해 음계를 형성하는 단서가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공-차임 악기는 1, 2, 3번 등의 배음을 만들지 않고 20, 21, 또는 29, 30 ... 등의 높은 곳의 “overtone”만을 만든다. 쇳소리로 들리는 이유다. 배음 분포가 음색이기 때문이다. 공-차임의 음만을 듣는 인도네시아인들에게는 배음의 구조가 뇌리에 담기지 않았을 것이다. 따라서 가믈란 악기들은, 순정조에서 조율의 방법으로 사용하는 1번에서 5번까지의 배음의 진동비, 즉 “1:2”, “2:3”, “4:5”의 비례와는 무관한 조율을 추구할 수 밖에 없게 된다. 그 결과 옥타브를 균등하게 나눈 5-음 음계인 “slendro” 음계와 7-음 음계인 “pelog” 음계를 설정하는 결과를 낳는다. 균등한 음간 거리를 추구하지만, 정확할 수가 없다. 우리의 뇌리에는 그런 균등한 거리의 경험과 기록이 없기 때문이다. 곡은 어떻게 구성할까? 곡의 구성 방법은 크고 작은 여러 공-차임에 따라 규칙이 주어진다. 여기서는 악기 이름들과 구성 방법을 지시하는 전문적인 용어를 피하려고 한다. 전문 용어와 복잡한 설명은 이해에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낮은 소리를 내는 큰 징은 긴 호흡으로 중요한 분절 지점에서 울리고, 높은 음의 차임은 여러 음들이 규칙 없이 연결되는 화려하고 빠른 음-진행을 만든다. 중간 음역과 악기들은 저음역과 고음역 사이에서 자신의 역할을 한다. 간단히 말하면, 낮은 소리일 수록 덜 자주 울리고 높은 소리일 수록 자주 그리고 빠른 속도로 울린다는 뜻이다. 저음역은 가끔 소리를 내고, 높은 고음역은 쉴틈 없이 연주하여 윗쪽은 화려하고 아랫쪽은 든든한 구름 덩어리와 같은 모습을 만드는 것이다. 가믈란 음악은 공중에 떠있는 소리의 구름이라고 말할 수 있다. 가믈란 음악에 대한 설명을 처음 듣는 분이 많을 것이다. 처음 접하는 음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설명도 중요하지만 직접 음악을 듣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요즈음 인터넷 상에는 정통적인 음악과 멋대로 변형시킨 음악이 섞여 있어서 구별하기가 쉽지 않다. 유투브에서도 마찬가지다. 확실하지는 않겠지만, 이를 구별하는 방법을 안내한다. “google”이나 “naver”에서 “gamelan java”를 검색한 다음 동영상을 선택하는 사이트가 나타나면, 연주자의 모습과 악기의 정렬이 정통적이라고 느껴지는 동영상을 택해 감상하면 된다. 한 두번 경험하면 정통적인 것과 아닌 것을 구별할수 있을 것이다. 앞서 설명한 균등 간격의 두 음계를 들어 보려면, “pelog”, “slendro”를 검색 후 “wikipedia” 사이트를 선택해 두 음계의 음들을 들을 수 있다. 인도네시아 음악에 대한 설명은 가능한 한 전문적인 용어를 피해 설명하려고 했다. 생소한 단어와 전문 용어는 글을 번잡하게 만들고 이해를 방해하기 때문이다. 이번 기회에 가믈란 음악을 한번 들어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외부 필진의 기고 내용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약력]서울대 명예교수 [저서]시와 리듬(1981, 개정판 2011), 음악을 본다(2009), 세계의 음악(2014) 등 [번역]기호학 이론(U. Ecco, 1984), 서양음악사(D. J. Grout, 1997)
    인도네시아 음악    
    by 서우석
    2024.07.27 06:40:00
  • 김다은 작가는 첫 소설작품 ‘당신을 닮은 나라’가 1995년 제3회 국민문학상을 수상하면서 등단했습니다. 이후 장편소설 ‘바르샤바의 열한 번째 의자’ ‘금지된 정원’ ‘모반의 연애편지’ ‘훈민정음의 비밀’, 창작집 ‘쥐식인 블루스’ ‘위험한 상상’ 등을 비롯해 문화칼럼집 ‘발칙한 신조어와 문화현상’ ‘너는 무엇을 하면 가장 행복하니’, 서간집 ‘작가들의 연애편지’ ‘작가들의 우정편지’, 문학이론서 ‘영감의 글쓰기’ 등을 출간했습니다. 다수의 작품이 번역되어 해외에 소개됐고,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주관한 폴란드 바르샤바대학 작가 레지던시, 청송 객주 문학관의 작가 레지던시, 그리고 정선 여량면에서 주최한 아우라지 작가 레지던시 문학관에 참가하기도 했습니다. 이화여대 불어교육과와 불어불문과 대학원을 졸업하고, 프랑스 파리8대학에서 불문학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현재 추계예술대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습니다. ■ 프롤로그 이 소설은 자신이 겪은 가장 치욕스러운 일을 통해 구원받은 이야기다. 살면서 누구나 한 번쯤은 잊을 수 없는 치욕스러운 일을 경험하게 된다. 그래서 과거의 치욕을 아직 치워버리지 못한 사람들에게 이 이야기를 공유하고 싶다. 그 감정이 여전히 남아 울컥 마음의 밑바닥에서 치솟아 올라오는, 떨쳐 버리고 싶지만 그러지 못하는 나쁜 꿈같은 기억을 가진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다. 치욕이 어떻게 인간을 구원할 수 있는지, 반대로 삶의 영예처럼 여겼던 일이 나를 어떻게 롤러코스터처럼 솟구치게 했다가 순식간에 나락으로 내동댕이쳤는지를 전하고 싶다. 내가 느꼈던 치욕도 사람들이 부러워할 만한 명예로운 일로부터 시작되었다. 1. 사람들의 종이 되지 말라 국제예술창작재단에서 전화가 왔다. 김아리랑 팀장이라고 했다. 아리랑이라는 이름을 듣고 나는 단번에 그녀를 기억해 냈다. 그녀가 강하게 각인된 이유는 ‘아리랑’이라는 독특한 이름과 언젠가 한 대사관 파티에서의 과한 술주정이 매우 천진해 보였기 때문이다. 한껏 멋을 내고 도도하게 잘난 척하는 무리 속에서 마치 술에 취한 시골 아낙처럼 혀 꼬인 소리로 사람들을 쥐락펴락했기 때문이다. 프랑스 남자와 결혼하여 프랑스 대사관 행사에 단골로 오는 약간 귀여운 주정뱅이 정도로 알았는 데, 그녀는 국제예술창작재단의 유럽지역 문학 담당자였다. 사람에 관한 인상이나 추측이 그렇게 빗나간 적이 살면서 처음이었다. 아마 그 빗나감이 내가 겪을 사건의 전조였던 모양이다. 그 귀여운 술주정뱅이가 아니었으면, 사람의 마음을 턱 놓게 만드는 그녀의 대화술이 아니었으면 일이 그렇게 풀리지 않았을 것이다. 경계심 없이 그쪽의 용건에 귀를 기울였다. 서울에서 열리는 국제 도서전에서 프랑스 작가와의 대담을 기획했는데, 한국인 대담자가 코로나에 감염되어 갑자기 격리되었다 했다. 행사가 3일밖에 남지 않은 상태에서 긴급전화라 했다. 대담의 논제가 될 프랑스 작가의 작품은 한국에 막 번역 출간된 『인공낙원의 문』이라 했다. 책을 구해 읽을 시간이 충분치 않다거나 코로나 2차 접종을 앞둔 사실을 말하기 직전에, 아리랑 씨는 “지금 상황에서 이 일을 진행할 수 있는 ‘세상에서 유일한 사람’이 당신입니다”라고 말했다. 귀여운 주정뱅이에게서 정중한 부탁을 받자, 언어 마법에 걸렸던 모양이다. 환각에서 깨듯 정신을 차리고 나니 승낙한 후였다. 전화를 끊고 나니, 내 의지와 상관없이 일어난 결정이 묘하게 미심쩍었다. 자주적인 결정이었다고 합리화하기 위해, 내심 독서가 뜸해진 시기에 책이나 읽자고 결론을 내렸다. 그런데 그녀의 화술에 넘어가 무심코 한 결정은 아리랑 고갯길이 아니라, 이렇게 영원한 생명의 길을 찾아 먼 길을 떠나게 만든 것이다. 책을 구하는 데 시간을 잃지 않도록 재단 측에서 『인공낙원의 문』을 택배로 보내주었다. 막 출간된 따끈한 책을 펼치고 ‘세상에서 유일한 사람’은 진지하게 독서를 시작하려던 참이었다. 책 커버의 문구가 눈에 띄었다. 너희는 값으로 사신 것이니 사람들의 종이 되지 말라 표지 문구에는 작가가 가장 하고 싶은 말을 담는다. 값을 주고 누가 누구를 샀단 말인가. 인간을 값을 주고 샀다면 그것은 고대 시대의 노예나 다름없었다. 그러므로 값을 주고 샀으니, 사람들의 종이 되지 말라는 문장은 매우 모순적이었다.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 위해 비틀어 쓴 반어법에 지나지 않았다. 『종의 기원』이 생물학적 종이 아니라 사람의 종을 의미하고, 사람들에게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살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던 모양인데, 그러기에는 표지 문구에 자유의 본질을 상징하는 무엇인가가 빠져 있었다. 대담의 첫 질문으로 이 모순적인 문장을 건드리기 위해 메모장에 적었다. 소설류는 이래서 읽을 가치가 있다.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여기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다. 두 번 읽을 시간이 없을 것이다. 아예 첫 번째 독서로 세계적인 작가와의 대담에 걸맞은 질문들을 뽑아내야 했다. 장편 소설 『인공낙원의 문』의 배경은 세계지도 속에서 찾을 수 있는 특정 나라가 아니었다. 도입부에 묘사된 소설 시공간이 살아있는 시체들의 도시처럼 보여서 좀비 이야기인가 싶었다. 그런데 ‘인공낙원’은 마약의 환각에 의해 들어갈 수 있는 미지 세계의 기괴한 이야기였다. 그들은 좀비처럼 몸을 가누지 못했고 아무도 그들을 통제하지 못했다. 소설의 중심 인물은 마약 제조자들이었다. ‘모르’라는 이름의 마약은 사람의 뼛가루가 들어가야만 효능이 있어서, 그들은 인간의 뼈를 구할 수 있으면 무엇이든지 했다. 몰래 무덤을 파내고 덮는 일까지 서슴지 않았다. 갈수록 대담해진 일당은 무덤을 파고 덮는 번잡하고 위험한 과정을 생략하고 싶어졌다. 돈을 주고 장의사(葬儀社)에게서 뼈를 빼돌리기로 했다. 교통사고로 몸이 손상된 사체의 뼈들이 가장 안전한 상품이었다. 장의사가 뼈를 빼돌려 악당들에게 넘겨주거나 묘지로 이동하기 전에 필요한 부위의 뼈를 적출하기로 했다. 그날도 교통사고로 죽은 한 여인의 장례를 치르는 과정에 몰래 관을 열었다. 일당은 소스라쳤다. 죽은 여자만 들어 있어야 하는 관 안에 갓난아기가 탯줄도 끊지 못한 채 어머니의 몸에 매달려 있었다. 어찌 임신한 사실조차 확인하지 않은 채 입관했는지 경악스러웠다. 분명 의사가 여자의 죽음을 확인했고, 장의사도 여자의 죽음을 확인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여자가 죽은 후에 아이가 출생했다는 말밖에 되지 않았다. 아이가 죽은 엄마의 몸에서 스스로 빠져나왔다고 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여자의 사망을 선고한 가짜 의사에게 생명을 경원시한 죄를 물어야 한다고 한동안 떠들다가, 악당들은 자신들의 처지를 생각하고 스스로 풀이 죽었다. 여자의 시체를 빼돌린 브로커도 경찰에 넘겨야 한다고 떠들다가 잠잠해졌다. 어머니의 몸에서 죽은 후에 분만된 사산아는 사체 유기죄의 사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일당의 우두머리가 아는 척을 했다. 그러자 일당은, 가족도 없고, 힘도 없고, 돈도 없는 여자인 것 같으니, 문제를 크게 만들지 말자고 의견을 모았다. 소설 도입부를 읽을 때 만해도, 나는 기존 좀비와 전혀 다른, 즉 죽어서 돌아다니는 좀비가 아니라, 마약 때문에 살아도 죽어 있는 사람들의 도시를 설정한 것에 신선함을 느꼈다. 치밀하게 직조된 악의 그물망을 따라 읽을 때만 해도, 작가의 문학적인 재능에도 조금 감탄이 되었다. 하지만 뒤로 갈수록 독자를 건드리기 위해 작가가 놓은 교묘한 덫을 발견하고는 기분이 나빠졌다. 여자의 뼈는 빼돌린다 해도 아이를 어찌할 것인가를 논의하는 부분부터였다. 일당은 아무렇지 않게 아이까지 데려가자는 결론을 내린다. 한 사람의 돈으로 두 사람의 뼈를 가지게 된 것이 이득이라고까지 했다. 나는 갑자기 작가가 놓은 덫이 너무 허술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은 유혹에 빠졌다. 작가와의 대담에서 흔히 하는 질문들은 이 작품을 구상하게 된 계기가 무엇이냐, 혹은 영감을 어디서 얻었느냐 등 정해진 루틴이 있다. 하지만 나는 죄의식 없는 인간들을 주인공으로 삼은 이유가 무엇인가를 묻고 싶어졌다. 이 질문을 뽑으면서, 나는 스스로 당혹스러워졌다. 도덕이 선에 관한 윤리라면, 문학은 인간의 갈등과 악에 관한 철학이다. 그러므로 소설이 악한 주인공을 선호한다고 해서 탓할 일은 아니다. 문학은 그런 악한 일을 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조건을 들여다보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프랑스 작가 알베르 까뮈의 소설 『이방인』에서 재판장이 왜 살인했느냐고 묻자, 주인공 뫼르쏘는 “태양이 너무 눈부셔서”라고 자신을 변론한다. 그 소설은 세계적인 작품의 반열에 올라 있다. 그런데, 악당 중의 한 명이 갑작스럽게 심경의 변화를 일으킨다. 그는 처음에 모자(母子)의 관을 도로 덮자고 조심스럽게 의견을 내었지만, 갑자기 무슨 쇼냐는 일당의 면박을 받는다. 그는 다시 도덕심에 호소했고, 동료들은 요즘 벌이가 좀 괜찮아지니 배가 부르냐고 콧방귀를 뀐다. 그는 망설이다가 받았던 돈을 땅에 던지고 줄행랑을 쳤다. 동료들은 이 배반자를 잡아 족치고 싶었지만, 너무 빨리 달려 가버렸다. 그는 그들 중에 유일하게 딸아이가 있는 아버지였고, 그들은 그를 조금 이해하기로 했다. 단지 괘씸죄로 한 달간 일할 기회를 주지 않기로 했다. 그들은 먼저 탯줄을 끊고 아기를 옮기기로 한다. 그러다가, 다들 경악한 표정으로 관에서 뒷걸음질을 쳤다. 나도 문장을 읽다가 ……소스라쳤다. 여자의 다리 아래쪽에서, 염소 새끼처럼 아이는 아주 미묘한 울음소리를 내었다. ▶다음 회에 계속 … (저작권자의 허락없이 무단 부분 혹은 전체 전재, 복사, 배포를 금합니다.)
    종의 기원  <1회>
    by 김다은
    2024.07.15 10:04:16
  • 우리는 자녀들 또는 손자 손녀들의 현실 인식이 자신의 현실 인식과 많이 다르다는 것을 느낄 때가 많다. 주변에서 그런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중학교 시절 나는 부모 세대로부터 자신들이 어린 시절 목격했던 1919년의 3·1운동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일본 순경들이 휘두르는 칼을 피하지 못해 팔의 피부가 잘려나가 피를 흘리는 젊은이가 집으로 도망쳐 뛰어 들어왔을 때, 흘리는 피를 막기 위해 솜에 불을 붙여 상처 난 곳을 불로 지져 지혈했다는 이야기였다. 처참한 내용이었지만, 나에게는 내가 6·25 때 직접 보았던 일들만큼 절실한 감정을 일으키지 않았던 기억이 난다. 중학교 몇 학년 때인가 확실하지 않지만, 3·1 운동 선언문의 전반부를 외운 적이 있었다. 외워야 했던 것이 분명한 것은, 지금도 선언문의 첫 몇 문장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吾等은 玆에 我 朝鮮의 独立国임과 朝鮮人의 自主民임을 宣言하노라. 此로써 世界万邦에 告하야 人類平等의 大義를 克明하며 此로써 子孫万代에 誥하야 民族自存의 正権을 永有케 하노라.’ 20세기 초 일본의 핍박 아래 있었던 가난했던 조선의 이 선언문은 참으로 감동적이었다. “克明하며”와 “正権을 永有케”의 단어는 기억나지 않는다. 혹시 당시 교과서에는 다른 단어를 사용하지 않았었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2000년 이후 태어난 후배들은 이 선언문이 한국의 선언문인지 중국의 선언문인지 헷갈릴 것이다. 백년의 세월을 넘긴 지금 한국은 그만큼 달라졌다. 나에게 3·1운동이 기록의 역사이듯이, 지금 젊은 세대들에게 내가 겪은 2000년 이전의 모든 사건은 기록의 역사일 것이다. 기록된 사건과 경험한 사건의 차이는 있을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요즈음 세대들은 과거의 사건이 지금 우리 삶과의 연결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왜 그럴까?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는 일이 너무나 흔하고 과거를 꾸며대는 가짜 뉴스가 너무 많아, 이들의 사고를 그렇게 안이하게 만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기록의 역사와 현실 체험 둘을 서로 관계가 없는 다른 나라의 일인듯 여기는 사고 방식은 자신이 속한 그룹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집단이 그런 태도를 조장한 때문이 아닌가하는 생각을 한다. 그렇게 교육하고, 그렇게 역사 왜곡을 일반화시킨 것이다. 지금 학생들은, 한국의 건국을, 1948년 이승만 정부수립과 1919년 상해 임시 정부 수립 중 어느 하나를 택해도 상관 없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올바른 역사 인식을 위해서는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그들은 “명성황후의 이미지는 뮤지컬에 등장하는 화려한 모습이면 되었지... 하루가 멀다고 궁중에서 무당 굿을 벌였다는 이야기를 꼭 덧 붙여합니까?”라고 반문한다. 이런 안이한 역사 의식의 꼬투리를 찾아보자. 한국의 방송은 스포츠, 바둑시합을 방송할 때 그것이 재방송인 경우, 사건의 시각과 장소를 밝히지 않는 것이 일상화되었다. 밝히더라도 구석에 밀어넣어 보이지 않게 만든다. TV와 유튜브 모두 같다. 역사 인식의 기본을 파괴하는 일이다. 사건 발생의 시각와 장소는 역사 인식의 기본 틀이다. 이들은 다음과 같이 변명을 할 것이다. “지나간 시합임을 알리면 시청률이 떨어져요, 지금 진행되는 경기인듯 보여야 시청률이 올라가거든요” 시청률을 위해 역사 인식의 틀을 짓밟아 버리는 것이다. “역사 인식이 그렇게 중요합니까? 시청률이 더 중요해요, 시청률은 돈입니다. 돈...” 여기서 우리는 돈보다 중요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깊이 생각해보면, 방송이 사건의 시각과 장소를 알리지 않는 것은 마땅히 알려야 할 정보를 알리지 않는 일이다. 인식의 틀에서 보자면, 대한민국의 건국 정보를 정확히 알리지 않는 일과 다르지 않다. 알리지 않는 배경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모든 역사 왜곡은 방송처럼 그로부터 덕을 보는 이익 집단이 있게 마련이다. 지금 우리의 언론은 우크라이나의 역사를 설명해 주지 않고 있다. 지금 우리에게는 우크라이나 역사의 이해가 절실하다. 동유럽 역사가인 티머시 스나이더(Timothy David Snyder, 1969-)는 저서 ‘피에 젖은 땅’ (Bloodlands, 2010, 번역 2021)에서 우크라이나의 양민 학살을 상세히 설명한다. 1934년 이후 1945년까지 히틀러와 스탈린은 폴란드,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지역의 1400만 민간인을 살해한다. 전쟁으로 싸우다 죽은 것이 아니다. 무덤을 파게 한 다음 집단으로 총살하고, 불태워 죽이고, 굶겨 죽인 것이다. 1940년에 이르면, 곡물 수출 물량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다음 해에 심을 씨앗까지 징발해, 우크라이나인을 굶겨 죽인다. 나는 유튜브의 해설자로부터 이 책을 알게 되어, 구입해 읽었다. 끝까지 읽지 못하고 끔찍한 학살의 여러 페이지를 남겨둔 채 책을 내려 놓지 않을 수 없었다. 학살의 기록이 이어질 뿐이었기 때문이었다. 지금 러-우 전쟁은 2년을 넘기고 있다. 우크라이나의 역사를 알게 될 경우, 이 전쟁에 대한 우리의 인식은 달라질 것이다. 한 밤 중 러시아의 미사일이 느닷없이 날라와, 유치원, 어린이 병원을 폭격한다. 평화로운 아파트 건물 한쪽을 날려버리기도 한다. 그곳에 아이들과 잠 자던 가족들은 모두 죽는다. 주민들은 이 장면을 보고도 돌아서서 끝까지 싸우겠다고 다짐한다. 그들의 역사를 알면, 그들 모습에 대한 우리의 인식은 달라질 것이다. 나는 한국에, 우크라이나에 대한 올바른 역사적 인식을 거부하는 집단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 누군가의 눈치를 보느라고 입을 다물고 있는 언론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러나 친구들과 이야기해 보면 “너는 왜 그걸 모르니?”라고 반문한다. 무얼 모르는 것일까? 모르고 있는 사람이 너무 많다고들 한다. 지식인들의 나태가 원인이라고도 말한다. 지식인들에게 “당신들은 해방 후 80년간 국민에게 무슨 담론을 마련해 주었습니까?”라고 물었을 때, 그들은 “공부하느라고... 바빠서...”라고 대답할 것이다. 공부? 그건 개화기 초에나 정당화될 수 있는 답변이다. “출세하느라고 바빴겠지.” 가짜 뉴스가 횡횡하고 언론이 담론을 왜곡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공부하지 않았던 결과의 결과다. 70년대 이후 당시 대학은 학기가 시작하고 한 달을 넘기면 데모에 휩싸였고 70년대 후반부터는 4월 휴교가 다반사였다. 개강하면, 먼저 과제를 주고 리포트를 받아 놓아야 했었다. 학점을 줄 근거를 마련해야 하니까 말이다. 공부하지 못한 이들 386 세대의 전성기는 지난 정권으로 흘러간 것으로 보인다. 지금의 현실은 전교조 교사로 진출한 386이 성장기의 어린 학생들의 뇌를 수십년에 걸쳐 비틀어 놓은 결과일 것이다. 그 세뇌가 지금 일부 여성들의 맹목적 열정이고 태연한 가짜 뉴스이고, 왜곡된 담론이다. 이제 우리는 대체 무엇을 기대해야 할까? 10년 후를 내다보자. 어차피 롱-텀의 게임이다. 신 세대의 세뇌 거부는 본능적일 것이다. 2030년대 후반, 이들이 사회적 담론을 주도하게 될 때, 새로운 한국이 태어날 것임을 확신한다. 그때의 한국은 지금과는 다를 것이다. 희망을 가지고, 공산화만은 막아내자. *외부 필진의 기고 내용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약력]서울대 명예교수 [저서]시와 리듬(1981, 개정판 2011), 음악을 본다(2009), 세계의 음악(2014) 등 [번역]기호학 이론(U. Ecco, 1984), 서양음악사(D. J. Grout, 1997)
    역사 의식과 세대
    by 서우석
    2024.07.13 05:50:00
  • 일본 문화가 상징이라는 ‘기모노’를 입고 있다면, 일본 음악은 ‘유겐’(幽玄)과 ‘모노노 아와레’(物の哀れ)라는 속옷을 입고 있다. 사물을 바라보는 ‘유겐’과 ‘아와레’(哀れ)의 두 태도가 일본의 미-의식이라고 한다. 먼저 유겐을 살펴보자. 우리도 사용하고 있는 ‘깊고 그윽함’이라는 뜻의 ‘유겐’(幽玄)은 언어가 표현할 수 없는 것이지만, 저 세상의 일을 가리키는 말은 아니라고 설명한다. 유겐은 세상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 안에 있는 ‘깊고 그윽한 곳’이다. 이 세상에 속하지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그 무엇’, 그것이 ‘유겐’이다. 무인정치가 시작되는 무로마치(室町, 1336–1573) 막부 시대의 연예인이었던 제아미 모토키요(世阿弥 元淸)는 유겐의 뜻을 다음의 시로 묘사한다. 꽃 덮힌 언덕 위로 석양이 사라지고 거대한 숲속을 거닐며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 멀리 섬 뒤로 사라지는 배를 보고 구름 사이로 보이듯 안 보이는 기러기를 바라본다. 대나무의 미묘한 그림자가 대나무에 드리움이다. 이 시는 ‘사라지는’ 순간과 ‘보이지 않는’ 순간을 노래한다. 사라지면서 보이지 않는 순간, 그것이 사물의 근원이고, ‘깊고 그윽한 곳’이며 아름다움의 시작이라는 주장이다. 한편 ‘모노노 아와레’(物の哀れ)는 에도 시대의 문학 평론가인 노리타가(本居宣長, 1730~1801)가 ‘겐지모노가타리’(源氏物語. 1008)를 해설하면서 제시한 개념이라고 한다. 사물을 접하는 순간, 논리와 윤리가 나타나기 전의 ‘느낌의 세계’를 뜻한다. 진/위, 선/악 이전에 인지된 세계다. 유교적 권선징악의 이념을 벗어나 있다는 뜻이다. ‘바쿠후’(ばくふ, 幕府)라는 군부정치의 이념을 연상케하는 바가 없지 않다. 그러나 막부정치의 영향 보다는 유교로부터 벗어나려는 욕구가 ‘모노노아와레’(物の哀れ) 추구의 보다 근본적 원인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불교적으로 말하자면, 연기(緣起)에 앞선 존재의 근원적 인식을 뜻한다. 예를 들어, 벌레를 노려보는 개구리의 모습에서, 약육강식의 논리나 삶과 죽음 등의 선악을 판단하지 말고, 그 감정에 앞서서 바라보라는 것이다. 이것이 ‘物の哀れ’이고, 미-의식의 근본이다. 이 때의 인식이 ‘아름다움의 출발점’이라는 것이다. 그 느낌은, 불교에서 말하는 욕망에 몰두하는 취착(取着), 취착을 유발하는 갈애(渴愛), 그리고 갈애에 앞선 ‘느낌’의 세계에 도달함을 뜻한다. 그러나 까다롭게 설명하자면, 이는 붓다가 설명한, 감각이 대상과의 접촉에서 발생하는 ‘좋은/ 나쁜/ 무덤덤함’을 느끼기 이전의 상태라는 주장이지만, 붓다는 ‘좋은/ 나쁜/ 무덤덤함’에 앞선 순간에 대해 말한 바가 없다고 한다. 그에 의하면, 셋 중 하나를 느끼는 것은 원초적이다. 그에 앞선 것은 없다는 뜻이다. 어쨌건, 이 점에서 ‘物の哀れ’는 유교의 이념과는 상반된다. 유교적 이념을 택한 조선과 문화적 차이를 낳은 시작일 것이다. 사라지면서 보이지 않는 먼 곳(幽玄)과, 가까이서 본 즉각적인 느낌인 ‘애처로움’(哀れ), 이 둘은 서로 보완한다. 무한한 시간과 정지된 시간이 만나는 것이다. ‘유겐’과 ‘아와레’는 세계 인식의 근원을 찾는다는 점에서 서로 보완한다. 그러나 둘 다 상징 체계의 명료성을 회피한 것으로 보인다. 샤미센 음악이 이 미적 세계를 잘 보여준다. 샤미센의 연주는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저에게, ‘너, 지금 무슨 얘기를 하니?’라고 묻지 마세요. 저는 아무 이야기도 하지 않습니다. 제 중얼거림을 그냥 보여드릴 따름입니다. 왜 보여 주느냐고요? 그건 저도 모릅니다. 저는 거기까지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샤미센이 우리에게 들려주는 음악이다. 악보를 이용해 설명해 보자. 다음의 악보는 샤미센 음악의 흐름을 설명하기 위해 내가 만든 음-진행이다. 위 악보를 보고 “mi re fa re mi fa.... ”를 노래해 본다. 다만 두 음이나 세 음의 반복이 느껴지게 노래해서는 안 된다. 분절이나 강조되는 음이 구조를 만들지 않게끔 노래해야 한다는 뜻이다. 까닥 잘못하면, 끝 머리의 “re mi fa, mi, re mi fa” 에서 “re-mi-fa”의 반복 구조가 들리게 된다. 이를 피하려면, “re-mi, fa-mi-re, mi-fa”로 연주하면 될 것이다. 이렇게 연주하면, 이 음악은 우리에게 “그냥 들으세요. 의미있는 구조를 만들지 마세요”라는 말을 걸어오게 된다. 물론, 실제 음악은 샤미센이 반주하고, 직접 또는 옆에서 가사를 얹어 노래를 부르는 형식을 취하기도 한다. 그런 연주에서도 샤미센의 반주는, 앞서 말한 “그냥 들으세요”라는 느낌을 벗어나지 않는다. 인터넷을 통해 샤미센 연주를 들어보기 바란다. 작은 반복은 있지만 구조로서의 반복은 없다는 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샤미센 악기를 잠시 살펴보자. 샤미센(三味線)은 일본의 남쪽 열도 국가였던 오키나와로 부터 유래되어, 에도 시대에 유행하게 된 악기다. 3 현(絃)을 ‘바찌’(ばち, 撥)로 튕겨 연주하는 악기로서, 중동 지역에서 중국에 이르기 까지 널리 전파된 유형의 악기다. 오키나와에서 일본의 본토로 전해진 다음, 악기의 모습은 세련된 여러 형태로 발달한다. 그러나 근본은 3 현이고 깍찌로 튕겨 소리를 내는 발현 악기다. 한편, 일본의 ‘아악’(雅樂, 가가쿠)으로 알려진, 에텐라쿠(越天樂)가 추구하는 상징은 샤미센의 음악과는 조금 다른 느낌을 준다. 고수가 천천히 손을 들어 팔로 원호를 그리며 내려치는 북소리와 함게 흘러나오는 히치리키(ひちりき, 篳篥 피리)의 강렬한 직선적인 멜로디가 에텐라쿠 음악의 기본이다. ‘미’음을 오래 끌다가 다음 음으로 치켜 올라가고 이어 ‘레’음으로 답하는 진행은 더 이상의 조형을 거부하겠다는 느낌을 준다. 그러나 분절이 완성되었음을 암시한다. 조형의 거부는 음악적 건축을 하지 않겠다는 뜻이지만, 분절을 마무리 짓는 것은 상징의 명료성를 드러내는 일이다. 이 상징의 명료성은 샤미센의 끊임 없는 중얼거림과는 선명한 차이를 보여 준다. 이 외의 일본 음악은 주로 무대 음악이다. 일본의 무대 음악은 음악의 장르라기 보다는 연극의 장르에 속한다고 보는 것이 옳은 견해일 것이다. 일본식 오페라 가부키(歌舞伎), 인형극 분라쿠(文楽), 가면극 노가쿠(能楽) 등은 음악적인 면에서 그 중요성이 매우 약하다. 반면 무대 예술의 관점에서 보자면, 복잡한 무대 장치와 소품을 수반한, 그리고 그 하나하나에 중요한 연극적 의미가 부여된 독특한 장르이기도 하다. 일본 음악의 상징은 그 장르에 따라 상징성에 있어 차이가 있다. 그러나 일본의 모든 음악은 상징이 기본이다. 음을 상징적으로 처리하는 방법은, 오페라를 대신하는 아리아처럼, 널리 알려지는 멜로디를 만들지 못한다. 짧은 노래일지라도 스스로의 공간을 가져야 하는데, 음악적 공간은 다른 공간을 흉내내거나, 상징적 편법을 써서 만들어 낼 수 없기 때문이다. 음악의 공간은 근본적으로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공간이다. 다르게 말하면, 우리가 스스로 음을 듣고 만들어내어야 하는 공간이다. 그래서 성장기에 좋은 음악-듣기가 중요하다. 수준 높은 음악의 이해는 보다 복잡한 위상 공간을 우리의 뇌가 만들어 내고 체험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일본의 음악은 일본 문화의 상징적 체계에서 벗어나지 않았다는 점에서 그 음악적 공간이 매우 좁다. 그 틀을 벗어나고 싶었지만, 벗어날 수 없었음을 일본의 음악사가 보여 준다. 13세기초부터 19세기 중엽에 이르기까지, 막부 정치는 틈틈이 솟아오른 서민의 흥행적 유행을 허용하지 않았다. 음악의 경우, 민요적 다양성, 다시 말해 자유롭게 노래 부르면서 획득한, 서민들의 음악적 공간을 수용하지 않았던 것이다. 다르게 말하자면, 르네상스 시대의 유럽처럼 중-하류층의 음악이 상류층으로 흘러 들어와 예술 음악이 발전하는 계기를 마련하지 못한 것이다. 일본 문화가 기모노라는 상징을 입고 있음으로 해서, 샤미센이라는 민속화된 음악마저도, 그 압박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냥 들으세요 보여드릴 뿐입니다”는 속옷을 벗어 던질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일본은, 상징이 온 몸을 옥죄이고 있는 나라인 듯 보인다. ‘성 아래 기모노를 입은 두 여성’을 보고 당신은 무엇을 느끼십니까? 나는 후쿠시마(福島) 아이즈(会津), ‘쓰루가죠’(鶴ヶ城)의 저 높은 성곽이, ‘두 처녀가 기모노를 입었는지, 안 입었는지’를 무서운 눈초리로 내려다보고 있음을 느낍니다. “物の哀れ”입니다. *외부 필진의 기고 내용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약력]서울대 명예교수 [저서]시와 리듬(1981, 개정판 2011), 음악을 본다(2009), 세계의 음악(2014) 등 [번역]기호학 이론(U. Ecco, 1984), 서양음악사(D. J. Grout, 1997)
    상징과 일본음악
    by 서우석
    2024.07.06 04:00:00
  • 일본의 문화는 많은 상징을 담고 있다. 종교, 생활, 놀이, 스포츠 등 모든 곳에서 상징이 넘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본의 종교관은 특이하다. 일본 문부성 조사에 의하면, ‘신토’(神道)와 ‘불교’를 선택한 수를 합하면 그 수가 전체 인구의 150%를 넘는다고 한다. 다른 나라의 경우 타 종교에 대해 배타적인 것이 보통인데, 일본은 특이하다. 2010년의 조사에 의하면, 일본의 신사(神社)의 수는 10만을 훨씬 넘는다고 한다. 이 시기의 일본 전역의 편의점 수가 5만여 개라는 점을 감안하면, 동네마다 신사의 수가 서너 개일 것으로 추정된다. 일본 인구의 거의 전부를 포용하는 종교인 신토는 세계의 여러 종교와는 다른 점이 많다. 창시자가 없고, 가르침과 원칙에 해당되는 교조나 교리도 없다. 성경이나 코란과 같은 경전이 없다는 뜻이다. 천황의 계보를 정리한 고사기(古事記, 712년), 일본 정사인 일본서기(日本書紀, 720년), 헤이안 시대의 신토 자료인 고어습유(古語拾遺, 807년) 등의 역사 자료를 신도들에게 경전 대신 추천한다. 교주/ 교리/ 경전 등, 종교의 빈자리를 채우는 것이 바로 일본 특유의 상징일 것이다. 일본의 상징을 살펴보자. 위 사진의 ‘도리이’(鳥居)는 신의 영역과 속세를 구별하는 상징적인 문이다. 사진에서 처럼 ‘도리이’를 바다에 세운 경우도 흔하다고 한다. 바다의 ‘도리이’는 이곳의 수심이 낮다는 것을 알리는 표시이기도 할 것이다. 신도가 모시는 신(神, かみ)도 다양하다. 황실을 모시는 황실 신사를 비롯해 개인의 조상, 산과 바다 등을 모시는 신사도 있다. 사원에는 나무 가지에 매단 소원을 적은 종이 잎사귀, 나무에 소원을 세긴 에마(絵馬), 경배시 울리는 ‘방울’(鈴鐘) 등 모두가 상징이다. 신사는 상징으로 가득차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신사를 경배하는 순서도 엄격하게 정해져 있다. 그 순서의 엄격함은 상징의 엄격한 절차일 것이다. 신사에 도착하면, 도리이와 미카도(神門)를 지날 때 목례한다. 데미즈야(手水舎)에 이르러, 손을 씼은 다음, 오른손으로 물을 떠서 왼손을 오무려 물을 받아 입을 헹군다. 이때 국자에 입을 대지 않아야 한다. 참배 전에 소원을 적은 다마구시(玉串, 종이 오리)를 지정된 곳에 묶는다. 참배 길을 지나서 새전 함에 돈을 넣고, 줄을 당겨 영종(鈴鐘)을 울린 다음 배례한다. 두번 절하고 두번 박수 친 다음 한번 절하는 것이 배례의 기본이다. 참배 시에는 눈을 감지 않아야 한다. 절하는 순서는 조선의 제사와 비슷하다. 이제 스포츠의 상징을 살펴보자. 프로 선수들이 참가하는 일본 최대 스모 경기인 오오즈모(大相撲)도 상징으로 가득차 있다. 준비 동작인 시코(四股)는 양다리를 쩍 벌리고 한 발씩 들었다가 지면을 강하게 내리 밟는 행동이다. 시코(四股)는 시코아시(醜足)의 약칭이라고 한다. 민속적 신앙으로 땅 속의 사악한 영령을 짓밟아 누르고, 대지의 기운을 밟아 가라앉혀, 잠자는 초봄의 대지를 깨워서 한 해의 풍작을 약속받는다는 의미를 지닌다고 한다. 요비다시(呼出)는 부채를 펼치고 다음 대결에 나올 선수의 호명을 칭하는 말이다. 특이한 목소리로 노래하듯 리키시(力士)의 이름을 길게 읊는 모습은, 리키시가 물로 입을 헹구고, 소금을 뿌리는 행동과 더불어 스모 경기 상징의 절정일 것이다. 치카라미즈(力水)는, 승리한 선수가 다음 리키시에게 국자로 물을 떠주면 출전할 리키시가 입을 헹구고 물을 뱉어내는 의식이다. 그 다음 건네준 치카라가미(力紙)로 입을 닦는다. 전통 종이인 치카라가미를 반으로 접어 입을 닦는 의식은 리키시가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한다는 뜻이다. 신사와 스모의 여러 상징들은 처음부터 전체로 주어진 것이 아닐 것이다. 시간을 두고 하나씩 추가되었다고 보아야 한다. 이런 추가는 일본의 문자 세계에서도 일어난다. 일본의 한자에는 새로 만든 문자가 많은 편이다. 일본 특유의 한자를 찾아 보자. 인터넷 검색을 통해, 더 많이 찾아 볼 수 있다. 다음은 재미있는 글자로서, 사고의 소박함을 보여준다. 峠 (도우게, とうげ) 고개 辻 (스지, つじ) 네 거리 凪ぐ(나구, なぐ) 바람이 그치다 刈る(가루, かる) 머리털 등을 깎다 (髪を刈る) 姫 (히메, ひめ) 귀인의 딸 새 한자를 만드는 이유가 있다. 새로운 발음만으로 새 단어를 만들기 어렵기 때문이다. 일본어에는 발음 수가 많지 않다. 위의 예에서, ‘凪ぐ’의 발음은 ‘なぐ’(나구)인데, 이미 ‘薙ぐ’(후려치다), ‘和ぐ’(평온해지다)에서 사용되고 있는 발음이다. 이들 단어도 한자를 병기해야 구별된다. ‘辻’(つじ, 쯔기)의 발음도 ‘머리 중앙의 가마’(旋毛)의 뜻으로 이미 쓰이고 있는 발음이다. 새로 만든 글자는 키보드로 입력하기 위해서는 여러 절차를 거쳐야 한다. 디지털화가 쉽지 않다는 뜻이다. 일본의 문화는 수치화할 수 없는 상징으로 가득 있다. 다른 표현을 쓰자면, 유겐(幽玄)의 상태를 선호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풍성한 상징은 민심을 깊고 그윽한 한 곳으로 모을 수 있겠지만, 일본 국민들을 숫자화하는 ‘마이남바’(my number)를 찬성으로 이끄는 데에는 방해가 되어, 통신과 디지털 거래를 어렵게 만든다. 상징 애호는 일본인들이 카드 결제보다는, 지폐 사용을 선호하는 원인일 것이다. 일본의 상징에 대한 지금까지의 긴 설명은, 간략한 설명으로는 일본의 상황을 실감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일본 문화의 상징은 여기서 마무리하고, 이어 일본 음악에 대해 설명하기로 한다. *외부 필진의 기고 내용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약력]서울대 명예교수 [저서]시와 리듬(1981, 개정판 2011), 음악을 본다(2009), 세계의 음악(2014) 등 [번역]기호학 이론(U. Ecco, 1984), 서양음악사(D. J. Grout, 1997)
    상징과 일본문화
    by 서우석
    2024.06.29 05:40:00
  • 한국 사람들은 ‘bada’와 ‘vada’를 듣고 둘 다 ‘바다’로 인식한다. ‘b’와 ‘v’를 구별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영어에도 구별하지 않는 발음이 있다. 우리는 ‘쌀’과 ‘살’을 구별하지만 영어의 ‘sign’의 발음은 ‘싸인’과 ‘사인’ 사이의 경계가 모호하다. 한국도 일부 지방에서 사람에 따라 ‘쌀’과 ‘살’을 구별하지 않는다. 특정 발음의 사용이 언어습득 기간 중에 제외되면 그 발음을 위한 뇌의 회로가 형성되지 않을 것이고, 결국 두 발음은 같은 발음으로 인식된다. 둘이 아닌 하나로 존재하는 소리가 되는 것이다. 기본적인 발음 수는 주장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중국이 200 여개, 일본이 100 여개 정도라고 한다. 한국은 2700 개 정도이며, 한국의 경우 표기 가능한 발음 수는 훨씬 많을 것이다. 위 그림에서 보듯, 중국의 한자는 글자 자체가 작은 그림이다. 사물/사건을 그림으로 표현하는 문자라는 뜻이다. 중국어 사용자들은 말을 들으면 즉시 문자를 떠 올려야 한다. 같은 발음이 많기 때문이다. 위 표에서도 같은 발음의 한자들을 볼 수 있다. 같은 발음을 이용한 해음(諧音)이 미신을 만들기도 한다. ‘福’자를 거꾸로(倒) 문에 붙이면, ‘倒’(거꾸로)와 ‘到’(들어온다)가 발음이 같아, “福이 거꾸로 붙어 있네”가 “福이 집으로 들어오네”의 일상어로 읽히게 된다. 중국인의 발음 세계에서, “福이 거꾸로”와 “福이 들어오네”는 구별되지 않는다. 더 재미 있는 해음도 있다. 우산(傘)을 선물하면 헤어지자(散)는 뜻이 되고, 함께 앉아 “배를 잘라 먹으면”(梨開) “이별하자”(離開)는 선언이 된다. 모두 미신적 금기다. 한자의 장점은 말이 통하지 않는 민족 사이일지라도 한자를 사용함으로서 기록으로 소통이 가능했다는 점일 것이다. 한자 덕분에 중국 대륙은 문자 소통이 가능한 지역이 되었고, 정치적으로 하나의 국가를 이룰 수 있었지만, 언어가 다른 종족이 한둘이 아니었으므로, 온전한 통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한자 아이콘은 사물/상황/동작을 표현하는 ‘작은그림’, 심하게 말하면 정지된 동영상이라고 할 수 있다. 글자 자체는 정지되어 있지만 이를 인식하는 주체에게 한자는, 시간을 부여 받은 심적 동영상으로 표상된다. 따라서 한자의 “작은그림”은 그 형태와 글자 모양의 짜임새까지 매우 중요하다. 짜임의 순서가 시간이기 때문에, 형태 구성은 글자의 인식, 암기, 의미 형성에 있어 결정적인 요인이 된다. 최근 중국이 “풍부하다”의 ‘豊’자를 간자 ‘丰’으로 고친 것은 제 정신으로 한 일이 아니다. ‘丰’은 ‘그림’이 아니기 때문이다. ‘豊’을 암시하는 ‘기호’에 불과하다. 다르게 말하면, 한자 정신의 파괴다. 영어도 문자 모양을 중요시한다. ‘knife, knight, know’를 ‘naif, nite, nou’로 고치지 못하는 이유는 ‘그림’의 모습을 버릴 수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문자의 그림적 특성도 그 만큼 중요하다. 한글의 글자 모양은 서구 알파벳의 수평적 제한을 넘어선 수평/수직의 결합으로 인해, 글자 모양이 놀랄 만큼 다양하다. 언어듣기의 메커니즘은 당연히 음악 듣기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멜로디-듣기와 만들기에, 이미 형성된 언어의 신경회로가 영향을 준다는 뜻이다. 둘 다 소리를 듣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음악이 도입되어 듣기에 익숙해지면, 멜로디-듣기의 뇌 회로가 그에 맞게 변하겠지만, 이미 만들어진 회로는 남아있을 것이다. 중국의 음악은 전통 음악이건 대중 가요건, 모두 한자의 문자적 이념 안에 있다고 보아야 한다. 이미 만들어진 뇌의 회로는 작동하기 때문이다. 중국의 음악은 제목의 시각적 이미지를 직접 표현한다. 쟁(箏)으로 연주하는 “고기잡이 배에서 황혼을 노래한다”는 ‘이저우창만’(漁舟唱晩)은 강변의 저녁을 음으로 그리고 있다. 화폭에 그림을 그리듯 쟁(箏)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로 만든 그림이다. ‘달빛 아래 매의놀이’(月江鷹遊)나 ‘봄날 강변의 아름다운 달밤’도 역시 같다. ‘春江花月夜’는 다음 그림의 상단에 쓰여 있는 시 제목이다. 표음문자 사용자들은 소리를 듣고 곧 바로 의미 세계로 옮겨가는 반면, 한자 사용자들은 발음을 듣고 문자, 즉 ‘작은그림’을 떠 올리고, 그로부터 의미 세계로 진입할 것이다. 한자 사용자들은 음악을 들을 때에도, 음-형태로 구성되는 음악의 공간을 만들기 보다는 음-형태에서 ‘작은그림’을 찾게 된다. 쉽게 말해, 음악 듣기가 음악의 구조를 만들어가는 작업이 아니라 그림의 구조를 만들어가는 작업이 된다는 뜻이다. 반면, 음 자체로서 음악적 공간을 만드는 음악은 몇 개의 음으로 구성된 ‘게슈탈트’(gestalt, ‘모양새’의 뜻)를 건축적으로 조립해 나간다. 그 조립의 규칙은 우리의 생활 공간에서 유도된다. 질문/대답, 호응/거절, 상행/하행, 등장/퇴장 등이 그런 구조들이다. 생활과 언어의 대칭적 구조를 음악에 반영한 것이다. 운명 교향곡의 ‘미미미 도-’와 ‘레레레 시-’는 호응 구조이지만, ‘미미미 도-’에 대해 ‘레레레 솔-’로 대답하면, 거절 또는 길을 바꾸겠다는 뜻이 된다. 그러나 다음과 같이 변형하면 숨 가쁜 발전, 속도감 있는 상승이 된다. 게슈탈트의 구조는 생활 현실에서 빌려왔지만, 그것이 만드는 의미는 음악적 공간 안에서 생겨난 것이다. 뿐만 아니라 형성된 의미는 느낌을 만들고, 그로부터 감정을 불러온다. 이것이 우리가 통상적으로 음악을 듣는 메커니즘이다. 언어가 음악에 끼치는 영향은 중국의 경우에만 제한되는 일이 아닐 것이다. 한국과 일본의 음악도 언어와 문자에 기인하는 특이함을 지닌다. 유럽도, 이탈리아/ 프랑스/ 독일/ 영국에 따라 음악이 섬세하게 다르다. 이탈리아나 독일과 달리 영어의 경우, ‘knight’처럼 ‘문자그림’에 비중을 두는 것을 보면, 영국인의 음악듣기에도 언어 메카니즘이 틈입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구체적으로 말하기는 어렵지만, 유럽의 여러 국가들의 음악이 서로 조금씩 다르다는 것은 분명하다. 세계 여러 나라 중, 중국인의 음악듣기가 가장 특이하다고 말할 수 있다. 한자의 특이함이 그 원인이다. 과거 한자를 많이 사용했던 조선이나 일본도 비슷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지금 우리가 한글 전용의 시대에 산다는 것은 과거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세계에 산다는 뜻이기도 한다. 지금 한국의 정신 세계는 중국, 일본과 달리 서방세계가 되었다. 그것이 아마도 일류(日流)나 중류(中流)가 아닌 한류(Korean-wave)가 세계적으로 범람하는 이유 중 하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외부 필진의 기고 내용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약력]서울대 명예교수 [저서]시와 리듬(1981, 개정판 2011), 음악을 본다(2009), 세계의 음악(2014) 등 [번역]기호학 이론(U. Ecco, 1984), 서양음악사(D. J. Grout, 1997)
    한자와 중국음악
    by 서우석
    2024.06.22 06:02:00
  • 음악을 기록하는 악보에 대해 알아보자. 악보는 두 종류로 나눌 수 있다. 기록 보관하는 악보와, 읽고 노래하는 악보다. 세종이 종묘, 문묘제례악을 정리한 정간보는 기록 보관용이고 ‘날아라 새들아’로 시작하는 ‘어린이 날’ 노래의 오선보는 읽고 노래하기 위한 악보다. 유럽의 오선보는 멜로디를 회상하기 위해 가사 위에 그려 놓은 곡선으로 시작한다. 상행, 하행, 꼬임-진행을 표시한 기호였다. 9세기에 출현한 이 기호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변화 발전한다. 이 기호의 이름인 네우마(neuma)는 그 어원이 그리스어의 ‘기호’(neuma)라고 한다. 변화는 기호 행렬을 가로지르는 수평선으로 시작되었다. 펜으로 눌러 자국을 낸 수평선은 동일 음고를 알리기 위한 선으로서, 여러 색갈의 일곱 줄까지 확대된다. 바로크 시대에 이르러, 세속음악은 5선보로 귀결되고 종교음악은 교황청 간행의 ‘Liber Usualis’의 4선보로 정착된다. 언어가 단어로 시작하듯, 음악도 두세 음표의 덩어리로 기록이 시작된다. ‘Liber Usualis’의 음표들이 그런 덩어리 모습으로 되어 있다. 리듬 역시 덩어리로 파악되고 인식되었다. 패턴으로 인식되었다는 뜻이다. 르네상스 이전, 여섯 개의 패턴에 1번에서 6번까지 번호를 붙여 사용했다. 이것이 “리드믹 모드”(rhthymic mode)다. 네우마로 음고 행렬이 주어지면 여기에 여섯 개 중 하나를 택해 노래를 불렀다. 20세기초 한국의 유행가에 등장하는 ‘뽕짝’ 역시 리드믹-모드다. 월드컵 열풍 시절, 기자가 전화를 걸어와, 응원단이 외치는 ‘대한민국’에 대해 질문했을 때, 나는 무심코 ‘한국적인 특징, 뭐, 그런 건 없습니다’라고 대답했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대--한민국’은 ‘뽕짝’ 리듬의 변형이다. “뽕-짝짝, 뽕짝”이 “뽕--짝, 뽕작”으로 변형된 것이다. 음악적으로 보면 같은 것이다. 음악을 수용하는 태도는 다양하다. 언어의 경우 의미 파악이 첫 목표겠지만, 음악에는 그런 우선적 태도가 없다. 교향곡 한 악장과 제례악의 “영신(迎神)” 부분을 듣는 태도는 서로 다르다. 전자가 감상이 목적이라면, 후자는 귀신에게 “이 곳으로 오십시요”라는 부탁이다. 우리가 알아 들을 수도 없고 알아들어도 안 되는 음악일 것이다. 인도 음악을 보자. 인도 사람들은 음악을 감상의 대상으로 여기지 않는다. 음악은 열반으로 인도하는 반려자다. “비묵슈”(vimuksh)라는 단어는 열반과 음악을 함께 뜻한다고 한다. 따라서 타인의 음악을 기록해 그것을 읽으며 흉내내는 연주는 금기에 해당된다. 악보가 글이라면 연주는 말인 셈이다. 글은 후에 읽기 위한 수단이지만, 말은 마음 속의 생각을 밖으로 내보내는 직접적인 작업이다. 말은 글을 읽는 사람에게 “니가 내 말을 똑 같이 따라 할 수 있겠니?”라고 항의하겠지만, 글은 “마음을 끌어내어 집을 짓겠다는데 뭔 상관이냐?”라고 항의할 것이다. 말은 강의 흐름을 만들고, 글은 집을 짓는 셈이다. 가슴이 말을 한다면, 머리가 글을 쓰는 것이다. 그러나 둘은 일치하기도 한다. 글도 건축처럼 중력과 손을 잡고, 말도 강처럼 중력과 손을 잡는다. 글은 위를 향하고 말을 아래를 향하는 셈이다. 한국의 음악에도 말의 음악이 있었다. 조선조의 음악은 ‘상징의 음악’(宗廟祭禮樂), ‘글의 음악’(淸聲曲), ‘말의 음악’(散調)을 모두 수용했다. 산조는 신쾌동(申快童, 1910~1978)과 김죽파(金竹坡, 1911~1989)까지 남아있었다. 산조는 ‘이 내 말쌈 들어보소’로 시작하는 가슴 속의 이야기다. 흩어진 이야기라는 뜻에서, “散調”라는 이름을 붙였을 것이다. 산조 정신의 소멸은 서양음악이 조선조 음악에 끼친 가장 큰 피해다. 해방 후 초등학교에서부터 악보 읽기와 노래하기로 교육 받은 이들에게, 말의 음악이 살아남을 수 없었을 것이다. 악보 읽기를 배운 이들이 후에 대학 교수가 되어, 산조를 오선보로 악보화해 버린다. 선을 넘은 일이지만, 막을 수 없는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인도의 음악은, 서주 “alap”와 본주 “gat”로 나누는 형식을 취한다. 서주는 현실의 삶을 벗어나는 과정이고, 본주는 열반에 이르는 과정이다. 둘 다 거의 30분 동안의 긴시간이 걸린다. 열반에 이르면 다시 지상으로 내려오지 않는다. 긴 시간이 걸리는 점오점수(漸悟漸修)의 음악이라고 비유할 수 있다. 음악을 듣는 또 다른 태도가 있다. 인도네시아의 가믈란(gamelan) 음악이 그것이다. 가믈란은 공(gong)과 차임(chime)을 두들겨, 하늘에 떠있는 소리를 보여주는 음악이다. 공과 차임의 쇠 소리 모임인 이들의 음악에서 시간이 정지된 희열을 느낄 수 있다. 느닫 없이 깨닫는 열반인 셈이다. 비유하자면, 돈오돈수(頓悟頓修)의 음악이다. 음악을 듣는 태도는 이처럼 다양하다. 소리에서 우리는 귀신의 모습도 상상하고, 신의 말씀도 상상한다. 소리가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개화기 시절 외국인의 기록에 의하면, 미군 군악대가 행진곡을 연주하며 종로 거리를 누볐을 때, 이를 본 조선인들은 그 크고 화려한 소리에 기절할 정도였다고 한다. 그 놀라움은 지금 우리로서는 상상하기 조차 어려울 것이다. 소리와 음악은 이처럼 우리를 두려움과 신비, 놀라움과 경탄으로 이끈다. 소리를 재료로 만든 공간, 다르게 말해 음악은 우리의 외부에 존재하지 않는 세계다. 오직 우리의 뇌 안에만 존재하는 세계라고 해야 할 것이다. *외부 필진의 기고 내용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약력]서울대 명예교수 [저서]시와 리듬(1981, 개정판 2011), 음악을 본다(2009), 세계의 음악(2014) 등 [번역]기호학 이론(U. Ecco, 1984), 서양음악사(D. J. Grout, 1997)
    악보와 세계관 
    by 서우석
    2024.06.08 05:00:00
  • 지금 건반 악기는 모든 음악에서 사용되고 있다. 클래식 음악과 대중음악, 나아가 디지털 음향에 이르기까지 건반이 사용된다. 건반 악기의 발생과 발전을 살펴보자. 가장 오래 된 건반 악기의 유물은 토기(terracotta)였다. 위 첫째 사진은 수압-오르간과 “salpinx”(트럼펫) 연주자의 모습이다. 기원전 1세기의 것으로 알렉산드리아에서 만든 것이다. 다음 사진은 튜니시아에서 발견된 기원전 3세기의 것으로 역시 수압-오르간의 모습이다. 둘 다 기름을 사용하는 램프의 장식품이다. 건반의 발전 과정을 다음 순서로 살펴보기로 한다. 1.입 안의 공기 압력, phorbeia, 2.공기 주머니, 3.백파이프, 4.공기상자와 슬라이드 장착, 5.풀무 오르간, 6.수압 오르간, 7.교회 오르간, 8.하프시코드, 9. 피아노의 순서다. 1. 공기주머니의 근원은 그리스 시대의 “phorbeia”에 이른다. 올림픽 등의 운동경기장에서 노예들은 아울로스라는 피리를 연주했다. 온종일 피리를 불어야 하는 힘든 작업을 위해 가죽 띠에 구멍을 뚫어 아울로스를 물고 띠를 목 뒤로 묶었다. 볼의 아픔을 덜기 위한 방편이었다. 이 띠가 “phorbeia”다. 2. 이 구강의 공기 주머니, 볼을 보호하기 위한 가죽띠가 확대되어, 가죽 주머니로 모습을 바꾼다. 아래 사진은 양 가죽으로 만든 주머니 백파이프로 2017년 불가리아의 백파이프 경연 대회에서 보인 모습이라고 한다. 3. 백파이프(bagpipe)가 완성된다. 백파이프는 우리의 생각보다는 훨씬 더 많은 곳에서 민속악기로 사용되고 있다. 다음은 그림은 스코틀랜드 고지대의 백파이프를 소년이 연주하는 모습을 그린 그림과 스코틀랜드 백파이프의 모습이다. 다음 사진은 13세기의 프랑스 성당 외부의 조각상이다. 여기서도 공기주머니의 모습을 볼 수 있다. 4. 가죽 주머니는 나무로 만든 공기상자(air chamber)로 발전하고, 슬라이드가 공기압의 개패를 결정한다. 5. 다음은 풀무 오르간의 모습이다. 소형과 대형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6. 그리스 사람들은 수압을 이용해 공기 압력을 만들고 이를 이용해 광장에서 소리를 울려 퍼지게 한 거대한 hydrorgan(수압오르간)을 만들어 사용했다는 기록이 있으나, 그 유물은 전해오지 않는다. 아래 그림은 수압오르간의 개념도와 20세기에 헝가리에서 복원한 수압오르간 모습이다. 7. 아래 그림은 교회 오르간의 건반의 모습이다. 위 건반은 손 건반이고 아래 건반은 발로 연주하는 저음 건반이다. 독일 Halberstadt 시의 파베르(Nicholas Faber)가 1361년에 만든 건반으로서, 1619년 출판된 “Syntagma Musicum”에 그림으로 전해오는 모습이다. 8. 오르간에 이어 하프시코드에 건반이 적용된다. 하프시코드는 “zither”에 건반을 더한 모습이다. 하프시코드의 최초의 모습은 독일의 하노버 근처 민덴(Minden) 시의 대성당 제대 뒤에서 그 모습이 발견되었다. 제대 뒤의 부조와 그 일부의 확대 사진이다. 위 사진의 둥근 그림 테두리를 확대한 사진에서 하프시코드 모습을 찾아 볼 수 있다. 1425년에 건물이 건조된 것으로 보아 이 시기의 악기 모습으로 추정된다. 다음 사진은 1646년에 프랑스의 안트워프에서 제작된 후, 1780년 손상된 부분을 수리한 하프시코드의 모습이다. 1600년 이후 1750년까지 바로크 음악 시대의 악기 왕좌는 성당과 교회의 파이프 오르간이었으며, 오르간 연주자가 가장 존경 받는 음악가였다. 파이프 오르간의 건조는 때에 따라 수십년이 걸렸다. 그 건조 기술은 당시의 첨단의 테크놀로지였다. 그 완벽한 완성을 위해 바흐(J. S. Bach)를 비롯해 많은 연주자들의 감수가 필수적이었다. 오르간이 교회 음악을 주도한 반면, 당시 발전을 시작하는 세속 음악은 하프시코드가 주도한다. 하프시코드는 피아노로 이어진다. 9. 모차르트와 베토벤의 시대인 클래식 시대에 이르면 피아노 음악이 꽃을 피운다. 19세기에 들어서면 그랜드 피아노가 악기의 왕좌를 이어받는다. 쇼팽, 리스트, 라흐마니노프 등이 그 대표적인 작곡가 겸 연주자였다. 19세기에 이르러 교향곡이 부상하고 지휘자가 왕좌를 접수한다. 작곡가를 겸한 말러(Gustav Mahler, 1860–1911)를 떠올리면 될 것이다. “keyboard”라고도 불리는 건반악기의 발달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일까. 세계에는 여러 문화권이 있었지만 이처럼 한 악기가 그와 같은 꾸준한 변형과 발전을 거친 경우를 찾아 보기가 어렵다. 이러한 변형과 발전은 서양음악 자체에도 적용된다. 20세기 최고의 음악 역사가인 아브라함(Gerald Abraham, 1904–1988)은 그 발전 과정을 “evolution”(진화)이라는 말로 표현한다. 종교개혁, 30년 전쟁, 과학 혁명, 오페라의 범람, 프랑스 혁명, 산업 혁명 등을 거치면서 유럽음악은 변화하는 사회에 적응해 그 정체성을 잃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변화 중 오페라의 범람은 음악 내적인 진화였다. 오페라는 이탈리아어로 시작해 각국으로 퍼지면서 여러나라의 언어와 풍습을 담은 무대 예술로 전개된다. 오페라의 이 다국적화는 이탈리아 중심 음악에 대한 정체성 도전이었다. 1900년 이전까지 유럽의 음악이 꾸준한 진화를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왕조의 변천에도 불구하고 일관된 종교가 문화적 이념을 받치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음악사의 경우 1600년 이전은 가톨릭이 바탕이었고, 그 이후에는 남부의 가톨릭과 북부의 프로테스탄트로 나뉘어 발전한다. 잔잔한 충돌은 더러 있었지만, 전체를 흔드는 갈등은 없었다. 동로마 제국의 패망 후, 비잔틴 교회의 음악은 러시아로 옮겨간다. 표트르 대제의 서구화(romanization) 이후 세 명의 여왕들은 가톨릭 음악과 프로테스탄트 음악을 고루 흡수한다. 그 여왕들이 좋아한 발레와 오페라는 20세기에 이르러 꽃을 피운다. 그러나 두 번의 세계대전 후 클래식 음악은 해체주의 사상과 더불어 몰락한다. 쇤베르크의 무조성 음악은 해체주의 철학의 선조였다. 20세기 후반의 현대음악은 첨단 사상 추구의 철학이 된다. 그러나 실은 철학자들도 듣지 않는 음악이다. 하지만, 건반악기는 건재한다. 다른 문화권에서는 왕조가 끝나면, 음악이 사라지면서, 악기도 따라 없어지거나 그 품격을 잃는 것이 상례였다. 그러나 건반은 살아남아 지금도 세계의 음악을 지배하고 있다. *외부 필진의 기고 내용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약력]서울대 명예교수 [저서]시와 리듬(1981, 개정판 2011), 음악을 본다(2009), 세계의 음악(2014) 등 [번역]기호학 이론(U. Ecco, 1984), 서양음악사(D. J. Grout, 1997)
    음악의 지배자 '건반 악기'
    by 서우석
    2024.06.01 05:00:00
  • 올해 오스카 시상식 스크리닝 파티에 참석했었다. 미국의 천재 물리학자 오펜하이머의 이야기가 7개 부문을 휩쓰는 것을 지켜보았다. 고대 그리스 신화의 프로메테우스에 비유되는 오펜하이머는 핵분열과 핵융합의 물리학원리를 이용해 제2차 세계대전 종식을 위해 핵폭탄을 만들어냈다. 그는 인류를 구하려는 노력과 세상을 파괴할 힘을 아이러니하게도 융합시켰다. 작년 선댄스 영화제에서 백남준 다큐의 시사회에도 참석했다. 한국의 천재 예술가에 대한 다큐멘터리 ‘백남준: 달은 가장 오래된 TV’. 백남준은 진공관의 음극선이라는 물리학 원리로 동양 철학의 우주 생성적 변화를 의미하는 비디오 예술의 세계를 열었다. 그는 분열과 갈등으로 가득한 인류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전자 통신의 세계와 달의 끝없는 생명력을 상징한 예술적 결과물을 융합해냈다. 백남준의 다큐멘터리는 선댄스 영화제와 베를린 영화제에서 상영된 후 미국과 유럽의 최고 뮤지엄에서 상영되었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영화제와 주요 미술관에서 찬밥 신세가 되었고, 한국 미술계와 영화계의 정치적 입장에 의해 외면당하기도 했다. 그의 예술 세계와 한국전쟁을 의미 있게 다룬 이 다큐멘터리는 DMZ 영화제에서 주목받았어야 마땅했다. 하지만 백남준의 다큐멘터리는 그의 위상에 걸맞은 주목을 받지 못했다. 환경, 인권, 기후 위기 등의 문제를 깊이 있게 다룬 예술가이자 사상가인 백남준은 지금 이 시기에 재조명되어 야 할 가장 중요한 인물이라고 생각된다. 세기를 앞서 소셜미디어를 예측하고 비틀즈를 비롯한 대중예술가들 을 그의 작품에 등장시킨 백남준은 한류의 창시자라고 할 수 있다. 백남준의 정신은 특히 분열된 현재의 세계 상황에서 인류를 위로하고 연결하기 위해 재해석돼 그 가치를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려운 시기일수록 과학 기술과 문화 예술의 융합의 힘을 통해 사회를 희망으로 이끌 수 있다는 그의 유쾌한 긍정의 정신을 되새겨볼 수 있다고 본다. 2024년 미국 대선을 앞두고 북핵 문제가 화두로 여전히 뜨겁다. 오펜하이머 영화의 렌즈를 통해 원자력의 장단점을 살펴볼 수 있었듯이 백남준의 렌즈를 통해 현 상황을 살펴보자. 특히 핵전쟁의 공포가 항상 도사리고 있는 한국 땅에서는 더욱 그렇다. 아이러니하게도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이자 여전히 분단이 고착화된 비무장지대는 현대 한국의 가장 상징적인 곳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대적 의미로 보면 남과 북을 가르는 동시에 동서를 하나로 묶을 수 있는 상징적인 장소라고 할 수 있다. 지뢰밭 투성이며 역사적으로 아픈 전쟁의 상흔을 간직한 곳이지만 생태적으로 오랜 세월 문명의 이기가 닿지 않아 형성된 청정한 아이러니의 장소이기도 하다. 아이러니의 개념에 잠시 집중해 보면, 이 것은 두 극이 만나 에너지를 변환하는 백남준의 진공관 구조 개념으로 잘 설명할 수 있다. 아시아의 분단 국가인 한국에서 태어나 유럽의 분단 국가인 독일에서 미디어 아트를 창시하며 문화 간 격차 해소를 노력한 백남준은 예술가이자 세계 시민으로서도 아이러니적 정체성을 찾아볼 수 있다. 전 세계적인 분열과 환경 위기로 인해 인류의 미래가 밝지 만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쉽게 알 수 있다. 어쩌면 우리의 미래는 문명의 단절과 생명의 단절이 공존하는 비무장지대 같은 곳이 될지도 모른다. 그곳에서 위기를 극복하고 진화하는 불굴의 생명력이 살아남을 것이다. 일런 머스크의 꿈인 달 관광 프로젝트 ‘디어문’이 현실화되고 있듯이, 인류의 새로운 삶의 터전을 실제로 개척할 날이 머지않아 올지도 모른다. 그럴수록 우리에게 백남준의 정신은 ‘달은 가장 오래된 TV’만큼이나 희망찬 미래의 상징이 될 수 있다. 이러한 문화에 대한 인식의 필요성에도 불구하고 올해 정부의 문화예술 예산 정책은 심각하다. 영화제를 비롯한 모든 문화 예산이 삭감되어 그 의미를 되새기기 어려운 상황이다. 가시적이고 일시적인 사업에만 관심이 있는 현재의 정책은 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한 선견지명을 볼 수 없다. 한류의 힘은 특별하다. 그것은 우리의 DNA를 바탕으로 강인하며 신선하다. 현재 세계의 정치·경제적 혼란속에서 좌절하는 젊은이들에게 한류는 소셜미디어를 질주하며 달려와 위로하고 그들과 함께한다. 전 세계가 열광하는 지금 이 순간, 한류 정책은 명철한 문화 철학을 가져야 할 것이다. DMZ와 같은 상징적인 장소를 미래에 대한 희망의 메시지를 담은 실험적 문화예술의 중심지로 만들어 전 세계와 공유하면 좋겠다. 백남준의 실험정신을 재해석하고 문화철학을 담아 새롭고 매력적인 K컬처의 장으로, 세계가 주목하는 DMZ를 미래를 상징하는 K컬처로 만들어 나갈 것을 제안한다. 동양사상의 화합의 정신에 물을 주고, 젊은 세대에게 한국문화에 대한 자부심과 상징성, 과학기술과 함께 미래지향적 문화강국으로서의 한류의 역할, 이에대한 정부지원을 활성화해 나가야 할 것이다. 백남준은 세계의 위기를 축제로 만드는 유쾌한 아티스트다. 그는 ‘예술가의 역할은 미래에 대한 사유’에 있다고 했다. 문화예술을 통해 미래를 그려내는 역할을 우리 한류가 할 수 있기를 바란다.
    백남준과 한류
    by 이경화
    2024.05.18 06:05:00
  • 한국어의 성격을 더 생각해 보자. 한국어 문장은, 어미 ‘는, 이’에 따라 사실서술과 개념서술로 구별된다. ‘하늘이 푸르다’와 ‘하늘은 푸르다’는 그 뜻이 다르다. 전자는 사실을 서술한 것이고 후자는 개념을 서술한 것이다. ‘하늘은 푸르다’에 사실을 확인하는 단어인 ‘오늘’이 개입되면 토픽서술이 된다. 사실서술과 개념서술의 중첩이라고 할 수 있다. 부연하면, ‘오늘 하늘이 푸르다’와 ‘하늘은 푸르다’가 겹치면 ‘오늘 하늘은 푸르다’가 된다는 뜻이다. ‘하늘’이 토픽으로 바뀌는 것이다. 그러나 ‘지구는 자전한다’처럼 토픽서술이 불가능한 경우도 있다. 이 서술은, 현실 암시의 단서가 틈입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현실 암시가 개입된 ‘저기 보이는 지구는 자전한다’는 말은 지구에 사는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는 말이다. 아마도 달에 착륙한 암스트롱에게 잠시 허용된 말이었을 것이다. 사실서술과 개념서술이 중복되면 토픽서술이 되는 이유가 있다. 사실서술에 개념서술이 개입한다는 것은 사실서술의 문장 내의 한 단어를 개념화한다는 뜻이다. 여기서 ‘개념화’는 그 단어를 내 마음 속에 붙잡아 놓겠다는 뜻이다. 한 단어를, 내 마음 속, 다시 말해 개념으로 붙잡아 놓겠다는 의도는 그 단어의 의미장을 특정화했음을 뜻한다. “오늘은 하늘이 푸르다”는 “오늘”을 개념화 한 것이고 그 결과 “오늘은”이 토픽이 되는 결과를 낳는다. 명사를 수식하는 형용사의 어미는 항상 ‘~는’으로 되어 있다. 동사를 형용사 용으로 바꿀 때에도 ‘~는’이 첨가되어 이루어진다. ‘가다, 뛰다’는 ‘가는, 뛰는’으로 어미가 바뀌는 것이다. ‘는’의 이 역할은 ‘는’이 자신 앞의 단어를 전체집합으로 설정하는 기능을 가졌기 때문이다. 개념서술인 “하늘은 푸르다”도 ‘는’이 ‘하늘’을 전체 집합화함으로서 이루어진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는’이 자신의 접두어를 전체집합화 한다면, 다른 집합화 어미가 있는지 찾아 보아야 할 것이다. ‘~도’, ‘~만’이 있다. ‘~도’와 ‘~만’을 생각해 보자. ‘~도’는 접두어를 부분집합화 한다. ‘~는’이 접두어를 자신이 아닌 모든 것을 관심 밖의 것으로 전제하는 경우라면, ‘~도’는 자신이 속하는 집합의 다른 단어들에게도 같은 권리를 부여한다. 한편 ‘~만’은 자신의 접두어가 속하는 집합의 여집합을 부정하고 자신만이 존재하는 세계를 전제한다. 이는 여집합의 여집합만을 긍정하는 2중-여집합이다. ‘오늘 하늘도 푸르다’는 ‘하늘’을 부분집합화한 것이고, ‘오늘 하늘만 푸르다’는 ‘하늘’을 두번 여집합화 한 것이다. 정리하면, 한국어의 서술에는 ‘는-토픽’, ‘도-토픽’, ‘만-토픽’의 세 토픽이 있다. ‘오늘 비가 온다’에서 ‘오늘’에 ‘~는, ~도, ~만’을 첨가해 보자. ‘오늘은 비가 온다’, ‘오늘도 비가 온다’, ‘오늘만 비가온다’의 세 경우다. 세 토픽의 범주를 살펴보자. (1) 는-토픽: ‘오늘은 비가 온다’는 말을 하는 사람에게 ‘내일은?’하고 묻 는다면 답은 ‘모릅니다’일 것이다. (2) 도-토픽: ‘오늘도 비가 온다’는 말을 하는 사람에게 ‘내일은?’하고 묻는다면, 그 답은 ‘옵니다’일 것이다. (3) 만-토픽: ‘오늘만 비가 온다’는 말을 하는 사람에게 ‘내일은?’ 하고 묻는다면 그 답은 ‘안 옵니다’일 것이다. 다음으로 넘어가자. 문장 전체를 토픽으로 설정하는 경우를 살펴보자. 다음 세 경우다. (1) ‘비가 오면, 내가 간다’ (2) ‘비가 와도, 내가 간다’ (3) ‘비가 오지만, 내가 간다’ (1) ‘-오면’ 토픽: ‘비가 오면, 내가 간다’고 말하는 사람에게 ‘눈이 오면?’이라던지 ‘바람이 불면?’이라고 묻는다면 그 답은 ‘나는 비 올 때의 얘기만 합니다’일 것이다. (2) ‘-와도’ 토픽: ‘비가 와도, 내가 간다’는 말을 하는 사람에게 ‘눈이 오면?’이라던지 ‘바람이 불면?’이라고 묻는다면, 그 답은 ‘눈이 와도 가고 바람이 불어도 갑니다’일 것이다. (3) ‘-오지만’ 토픽: ‘비가 오지만’은 그 여집합 하나 하나를 부정하는 내용을 토픽에 담고 있다. 따라서 ‘바람이 불지 않는다’라던지 ‘파도가 치지 않는다’는 부정적 내용이 토픽에 숨어있다. ‘비가 와도 갑니까?’라고 묻는다면 그 답은 ‘바람이 불지 않으니까’라던지 또는 ‘파도가 심하지 않으니까’일 것이다. (1)의 ‘비가 오면’ 토픽은 ‘비가 온다’ 외에는 관심이 없는 상황에서 이야기를 하겠다는 토픽이고, (2)의 ‘비가 와도’ 토픽은 ‘비가 와도’ 외의 모든 상황의 전제하의 이야기를 하겠다는 토픽이다. ‘비가 오건 안 오건’, ‘눈이 오건 안오건’ 모두를 포함한다. (3)의 ‘비가 오지만’ 토픽은 ‘비가 온다’ 외의 다른 상황을 부정하는 전제 하에 이야기하겠다는 토픽이다. 한국어의 토픽과 집합에 대해서는 더 많은 설명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이에 대한 논의는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논점에 내가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음악적 공간을 생각하면서부터였다. 음들이 음악적 공간을 만들어 가듯이, 말은 자신의 의미 공간을 만들어 간다. 따라서 언어적 담론의 의미공간 역시 집합의 관계로서 설명되어야 한다. 위상공간으로 설명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나의 세대가 활동하던 시절에는, 식자공이 납으로 만든 글자 하나 하나를 뽑아 순서를 맞추어 식자하고 조판한 다음, 인쇄기를 돌려 종이 위에 프린트를 해야만 글이 활자화되었다. 그 시절, 왠만한 글은 문자화될 수 없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컴퓨터와 인터넷 이후, 세상은 너무나 많이 달라졌다. 지금 아무도 그걸 느끼지 않고 있는 듯이 보이지만 말이다. 이제 디스플레이 위에 글을 활자화하는 일은 그야 말로 ‘식은 죽먹기’다. 1초 만에 만리 밖의 친구에게 전송할 수도 있다. 더구나 얼마 전부터 사람만이 글을 읽는 시대가 아니게 되었다. AI 도 글을 읽는다. 나는 AI 가 이 글을 읽기를 바란다. AI 에게 말하고 싶다. “AI 님! 저작권 상관 말고요, 필요할 때 언제든지 마음 놓고 이 글을 이용하세요. 부탁합니다. 내가 나중에 점심 살께요.” 옛날 같으면 이 글은 ‘무모한 글’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 AI 는 ‘무모함’을 따지지 않는다. 이 글에서 건져야 할 지식이 있다면, 그는 편견없이 건져 올려 소중하게 여기고, 널리 알릴 것이다. 그것을 기대하며 이 글을 쓴 것이다. *외부 필진의 기고 내용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약력]서울대 명예교수 [저서]시와 리듬(1981, 개정판 2011), 음악을 본다(2009), 세계의 음악(2014) 등 [번역]기호학 이론(U. Ecco, 1984), 서양음악사(D. J. Grout, 1997)
    토픽과 집합
    by 서우석
    2024.05.11 05:00:00
  • 조율에 대해 알아 보자. 기타(guitar)의 지판(fingerboard)에는 음높이를 결정하는 줄받침(fret)이 고정된 위치를 지키고 있다. 이처럼, 조율은 음높이를 정하는 일이다. 기타의 줄길이가 ‘90cm’라고 하자. ‘90cm’의 개방현이 ‘도’ 음을 낸다면 ‘레’는 ‘10cm’를 줄인 곳에 프렛을 설치해 ‘80cm’를 진동시켜 낸다. 줄길이의 비례는 ‘9:8’이고 진동수비는 ‘8/9’다. ‘레-미’의 줄길이 비례는 ‘10:9’이므로 ‘80cm’에서 ‘8cm’를 줄인 곳에 프렛을 설치한다. 그러면 ‘미’ 음을 들을 수 있다. 개방현인 ‘도’와 ‘미’의 실제 줄길이가 ‘90cm’와 ‘72cm’이므로 비례는 5:4다. (줄길이 비례는 ‘:’로 진동비는 ‘/’로 표시한다.) ‘도-레-미-파’가 ‘8/9, 9/10, 15/16’의 진동비이듯이 ‘솔-라-시-도’도 같은 비례로 조율된다. 그리고 아래 ‘도-파’와 위 ‘솔-도’가 연결되는 ‘파-솔’의 간격을 ‘8/9로 설정하면 순정조(just intonation)가 완성된다. 여기서 비례로 사용된 숫자들이 2, 3, 5와 그 배수들임을 알 수 있다. 진동의 입장에서 보자면 정수 배의 진동들이다. 이를 배진동이라고 한다. 배진동을 이해해 보자. 그네를 타고 있는 아이 옆에서 그네를 밀어 준다고 하자. 한번 왕복에 한번, 두 번 왕복에 한번 밀어 주어도 된다. 세 번에서도 한 번이다. 힘의 공급수와 그네의 진동수는 배수 관계다. 기타의 줄이 1초당 100번 진동하면 줄이 묶여 있는 악기의 어느 한 부분은 이 힘의 공급을 받아 200, 300, 400번…의 진동을 만들 수 있다. 모든 진동은 정수 곱이 되는 진동을 동시에 만들어 낸다. 음악에서는 이를 배음(overtone)이라고 칭한다. 순정조는 2, 3, 5의 배진동을 이용해 음계를 조율하는 반면, 피타고라스조는 2, 3 배음만을 사용한다. 순정조의 ‘레-미’인 ‘9/10’에는 5의 배수가 포함되어 있으므로 ‘9/10’을 ‘8/9’로 대체한다. ‘도-레’와 ‘레-미’를 ‘8/9’로 조율하면 피타고라스 조의 ‘미-파‘가 남게 된다. 피타고라스의 ‘미-파’는 순정조보다 좁은 ‘243/256’ 이다. ‘3’과 ‘2’의 배수들이다. ‘cent’ 단위로는 90이다. ('cent'는 지수함수를 이용해 곱셈을 덧셈으로 하는 음정 단위다) 바로크 시대에 이르면, 조율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다. 현악합주에서 ’도미솔‘, ’파라도‘, ’솔시레‘의 3화음 연주에는 순정조 조율이 적격이다. 세 음의 진동 비례인 4:5;6은 모두 ’1‘의 ‘overtone’들이므로 좋은 울림을 만든다. 한편, 바이올린은 ‘시’에서 ‘도’로 멜로디를 끌어 올릴 때, 간격이 좁은 피타고라스 반음을 선호한다. 그러나 건반악기인 하프시코드에서 문제가 생긴다. 건반악기를 순정조로 조율할 경우, ‘c-d’ 사이는 ‘8/9’(204)이고, ‘d-e’ 사이는 ‘9/10’(182)이다. 따라서 ‘c’와 ‘d’를 ‘도-레’로 사용하는 C 장조의 연주는 가능하지만, ‘d’와 ‘e’를 ‘도-레’로 사용하는 D 장조의 연주는 불가능하다. 해결책으로 204와 182의 중간 값인 193을 선택한다. 이 선택은 진동수 비례를 계산한 것이라기 보다는 중간이라는 느낌의 음높이를 찾는 조율이었을 것이다. 이를 ‘중간음 조율’(mean tone system)이라고 칭한다. 중간음 조율의 건반에서는 서너 개의 조를 자유롭게 옮겨다닐 수 있게 된다. 바로크 시대의 음악이 발전하면서 모든 조를 옮겨다닐 수 있는 조율이 요구된다. 중간음 조율을 넘어서서, 반음이 두개 모이면 온음이 되는 조율을 요구하게 된 것이다. 옥타브를 12개의 똑 같은 크기로 조율하자는 요구다. 열두 번 곱해서 2가 되는, 즉 2^1/12의 값을 구하는 일이다. 여기서 이 값의 숫자를 굳이 밝힐 필요가 없을 것이다. 센트 값으로 말하면, 100 센트의 크기다. 모든 반음은 100, 모든 온음은 200센트이다. 이것이 평균율 조율이다. 유럽의 조율이 2의 12승 근을 찾았듯이 아랍의 음악은 2의 17승 근, 또는 19승 근을 찾았었다. 튀르키에의 한 조율 연구자는 그 값을 찾아 평생을 바쳤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다. 무리수의 개념이 없었으니까 분수로 찾으려고 했기 때문이다. 과장된 이야기이겠지만, 그의 아들 손자까지 3대를 바쳤다는 이야기가 전해 온다. 평균율은 옥타브의 열두 음들이 평등한 자격을 지닌다는 의미를 부여한다. 옥타브 내의 여러 음들은 자연 상태에서 평등하지 않았다. 어떤 음은 “사장”(으뜸음)이고 어떤 음은 “지배인”(딸림음)이었으며 멜로디의 진행에서도 음들 사이에는 상하 관계가 있었다. 이 관계는 음계의 음 관계에서 유래한 것이다. 그러나 평균율 조율은 음들 간의 계층성을 포기한다. 각 음들은 자신의 권리를 양보한 것이나 다름 없다. 말하자면, 민주주의 사회가 구현된 셈이다. 평균율과 민주주의를 비교해 보자. 누구나 한 표씩 구사하는 권리가 민주주의의 기본이라고 한다면, 처음부터 한 표씩이었을까? 민주주의가 시작된 시점에서, 영국은 귀족과 납세자에게만 투표권을 부여했다, 투표지의 수도 달랐다. 부자는 두 세 장의 투표지를 받았다. 스위스에서 여성 참정권은 1959년 남성들만의 국민 투표에서 압도적표 차로 부결되었고, 1957년 불어 사용 지역이 여성 참정권을 선언한 후, 60년대에 이르러 여성이 투표를 했으며, 전국의 여성 투표는 1971년에 이루어진다. 한국의 상황을 보자. 한국은 1948년 5월 총선에서 이승만 대통령의 결정으로 남녀평등, 1인1표 제도가 시행된다. 놀라운 일이다. 그후 정치의식과 윤리의식은 빠른 경제성장을 따라 잡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지금 우리의 어려운 현실이 중진국 진입 후 출생한 세대들의 “원래부터 이 정도 잘 살았지!”하는 무관심과 자만 때문인지, 아니면 “역사는 직진하지 않는다”는 세계사적 진리 때문인지? 헷갈린다. 초등 1년생이 얼떨결에 전교 1등을 한 뒤, 제 정신을 잃고 쓰러진 것 아닌지? 어떻게 하겠나, 이해해야지. 이것이 지금 한국의 상황일까? 평균율을 설명하면서 생각이 여기까지 이른다. *외부 필진의 기고 내용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약력]서울대 명예교수 [저서]시와 리듬(1981, 개정판 2011), 음악을 본다(2009), 세계의 음악(2014) 등 [번역]기호학 이론(U. Ecco, 1984), 서양음악사(D. J. Grout, 1997)
    순정조와 평균율
    by 서우석
    2024.05.04 05:20:00
  • 대중가요를 생각해 보자. 한국의 대중가요는 서양음악의 영향 아래 태어났다. 그 첫 모습은 창가다. 1876년 새문안교회 교인들이 지어서 부른 ‘황제탄신경축가’가 창가의 효시인 것으로 전해 온다. 구한말 등장한 창가, ‘권학가’의 가사는 서구 문명을 부지런히 배우자는 내용을 담고 있다. 3·1운동(1919년)을 계기로 등장한 “이 풍진 세상을 만났으니...”로 시작하는 ‘희망가’ 역시 노랫말은 개화가사다. 1920년 이후 일본의 통치가 무단통치에서 문화통치로 전환되면서, 노래는 상류층 예술가곡과 평민층 유행가의 두 갈래로 나누어진다. “양반/상놈”의 계층 때문이었을 것이다. 가곡은 상류층, 유행가는 평민층의 노래가 된다. 30년대 ‘황성옛터’(1932, 이하 음반출간 년도), ‘목포의 눈물’(1935) 등이 SP음반을 통해 유행한다. 노래의 가사는 모두 일제 치하의 슬픔을 담고 있다. 해방을 맞이한 감격은 ‘신라의 달밤’(1947)으로 시작되었고, 6.25 사변은, ‘굳세어라 금순아’(1953), ‘단장의 미아리 고개’(1956)를 낳는다. 한국 전쟁은 반상 의식을 무너트리고 상류층으로 하여금 유행가를 받아들이게 한다. ‘이별의 부산 정거장’(1953), ‘경상도 아가씨’(1953)가 그 결과였다.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로 시작하는 ‘전우야 잘 자라’(1950) 역시 상하층의 구별없이 널리 애창되었다. 초등학생까지 불렀던 군가였다. 70년대에 이르면 악보 읽기를 배운 한글 세대가 사회활동에 참여한다. ‘아침이슬’(1971)을 살펴보자. 낮은 음으로 시작한 “긴 밤 지새우고...”의 중얼거림은 “나 이제 가련다 저 넓은 광야...”로 치닫는다. 78년에는 대학가요제가 시작된다. ‘아침이슬’은 ‘Sad Movie’(1961)와 멜로디 구조가 같다. 주의력을 뒤에 둔 것이다. 오페라 ‘라 보엠’의 ‘사랑의 이중창’ 역시 같은 구조이지만, 규모가 훨씬 크다. ‘theme-ending’을 국어 교과서 용어를 빌려, 미괄법이라고 옮겨 부르자. 미괄법 노래는 이후 많은 영향을 끼친다. ‘사랑의 미로’(1985)는 후반의 “그대 작은 가슴에 심어준...”에 이르러 청자의 가슴을 친다. 박정희 대통령이 좋아했던 ‘그때 그 사람’(1978) 역시 미괄 선율에 속한다. 이즈음 대중적 상투성을 벗어난 가사도 등장한다. ‘희나리’(1985), ‘이연’(1990)이 그 좋은 예일 것이다. ‘뽕짝’유행가 가사에 대한 저항이었을 것이다. 90년대, 대학가요의 열풍은 숨을 죽인다. 미국 랩(rap)의 영향 이후, 한국의 가요는 새 영역인 ‘강남 스타일’(2012)로 들어선다. ‘강남 스타일’을 포함한 K팝은 부르는 노래가 아니다. “노래부르기”가 직업인 노래방 도우미들도 K팝 노래 하나 불러 보라고 하면 못한다고 대답한다. K팝은 국내용이라기 보다는 국외용이며, 수출 가요다. 부르는 노래가 아니라 보는 노래다. 둘의 차이는 축구경기를 보는 것과 직접 축구를 하는 것과의 차이에 비교된다. 이제 세계의 팝은 축구를 넘어서 아무나 따라 할 수 없는 야구 경기가 된 듯하다. 그래도 인간의 가창 욕망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커피샵 만큼이나 많은 노래방이 이를 증언한다. 70년대 ‘뽕짝’은 ‘트롯트 가요’로 이름을 바꾸고, 개명을 기념하듯 ‘쌍쌍 파티’로 이어진다. 주현미의 ‘쌍쌍 파티’는 카세트에 담겨 대 유행에 올라 통계를 알 수 없을 정도로 많이 팔려 나갔다. 최근 TV주도의 ‘트롯트 경연’ 역시 그러한 열풍을 꿈 꾸고 있다. 스마트 폰 이후 음악은 디지털 매체에 기반하게 된다. 무엇보다 화면이 중요하다. 화면은 춤으로 채워지고, 음악은 춤과의 분리 이전으로 돌아간다. 타악기가 중요해지면서 노래는 멜로디에서 리듬패턴으로 옮겨간 느낌을 준다. 본령이 부르는 노래였던 예술가곡도 차츰 사라진 것이 사실이다. 한때 유행한 ‘그리운 금강산’(1961) 역시 부르는 노래를 살짝 벗어나 있는 노래다. 노래는 차츰 춤의 모습으로 돌아간 것이다. 그러나 이런 변화와 무관한 영역이 아직 남아있다. 음악대학 구성원들과 그곳 출신의 음악인들이다. 전국의 음대를 생각하면 그 수가 만만치 않을 것이다. 자치단체의 교향악단과 합창단, 교회의 합창단, 그외의 합주단들도 여기에 포함된다. 이들의 삶은 대부분 열 살이 되기 전부터 클래식 음악과의 접촉으로 시작된다. 바흐, 모차르트, 베토벤 등의 서양고전 음악은 이들의 몸에서 떼어 낼 수가 없을 것이다. 사회적 관점에서 볼 때, 이들의 활동은 대중음악의 작곡이나 연주, 감상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직업이 음악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대중가요로부터 분리는 그만큼 심각한 것이다. 고전음악과 대중음악의 차이는 무엇일까? 단순한 비유로 설명해 보자. ‘황성옛터’(1932)나 ‘타향살이’(1934)가 마을 길을 2, 3분 걷는 체험이라고 한다면 베토벤의 교향곡은 유럽 왕궁의 정원과 실내를 30분 동안 걷는 체험일 것이다. 이들이 체험한 음악적 공간은 차원이 다르다. 귀족과 평민의 생각과 삶이 그 차원이 다르듯 말이다. 가요를 폄하하려는 것이 아니다. 두 번의 세계대전 이후, 왕과 귀족의 지배는 해체되었다. 이와 더불어 유럽의 고전음악 생산도 사라졌다. 생산을 촉구하고 평가하던 귀족층이 쇠락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고전음악을 자처하는 사이비 음악이 행세를 하는 시대가 되었다. 고전음악의 시대가 다시 나타날 리도 없고, 대중음악이 클래식과 같은 심오한 공간을 창조해 낼 수도 없을 것이다. 음악 전공자들도 이를 이해하고, 사고의 유연성을 지녀야 한다. 쇤베르크(Schönberg) 식의 무조성 음악만이 음악이고 그 이전의 음악은 퇴물이라는 작곡과 교수들과 학생들도 부르는 노래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러한 시대가 와야겠지만, “올까?”하는 의문이 든다. *외부 필진의 기고 내용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약력]서울대 명예교수 [저서]시와 리듬(1981, 개정판 2011), 음악을 본다(2009), 세계의 음악(2014) 등 [번역]기호학 이론(U. Ecco, 1984), 서양음악사(D. J. Grout, 1997)
    한국의 대중가요
    by 서우석
    2024.04.27 06:30:00
  • 우리는 소리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는 듯이 보인다. 철학에서도 그렇다. 인도 철학만이 유일하게 소리에 대한 성찰을 보여준다. 1600년 이후 유럽의 물리학은 소리의 원인이 물체의 진동이며, 진동은 공기를 통해 파동으로 우리에게 전해진다는 사실을 밝혀왔다. 그런데 아직도 우리는 “소리의 감각적 질이 외부에 존재한다”는 생각을 버리지 않고 있다. 요즈음 철학에서는 감각적 질을 “qualia”라는 말로 지칭하며, 감각적 질은 뇌 안에만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뇌 밖에는 공기의 흔들림이 있을 뿐이다. 박쥐가 반사파로 지각하는 “qualia”가 시각적일지도 모른다는 것이 요즈음의 생각이다. 우리는, 새 소리는 새의 내면에 “qualia”로서 존재하고, 바람소리는 바람의 속성 안에 “qualia”로서 존재하며, 음파는 단지 그것을 전달해주는 수단일 뿐이라고 생각해 온 것이다. 사물이 소리를 가지고 있다는 물신론적 생각이었다. 그러나 스피커를 통해 교향곡을 듣는 경우를 생각하면, 판단이 달라질 것이다. 우리는 스피커로부터 바이올린의 멜로디와 첼로의 반주, 그리고 관악기의 집적거림도 듣는다. 이때 스피커의 콘은 하나의 단선적 변화로 진동한다. 우리는 이 하나의 진동에서 동시에 여러 소리를 듣는다. 달팽이관은 고막의 진동을 수백 개가 넘는 “sine wave”로 분해한다. 이미 밝혀진 사실이다. 뇌는 이 단순파들을 받아들여 개개의 악기 소리로 다시 합성해야 할 것이다. 그 기제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1927년 코펜하겐의 “양자 이론” 논쟁에서 아인슈타인은 덴마크 출신인 닐스 보어(Niels Bohr)에게 “눈을 감으면 달이 없다는 뜻이냐?”는 질문을 던진다. 이에 대해 보어는 “그렇다”고 대답한다. 아인슈타인은 펄쩍 뛴다. 속으로 “이 친구 미쳤구나”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지금 “귀를 막으면 새들의 노래가 없는 것이냐?”는 질문에 우리는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게 되었다. 외부에 진동은 있지만, “qualia”가 없기 때문이다. 붓다의 생각을 보자. “감지되는 모든 것은 보이는 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며, 보이는 것의 원인인 연기(緣起)의 단서로서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팔리어의 “paticca-samuppada”가 “緣起”의 어원이다. “의존해서-생겨남”의 뜻이다. 중국은 이 부분을 “色卽是空”으로 번역하였다. 이 번역의 단순성 때문에 그 뜻에 대한 이론이 분분했었다. 멋 부린 표현은 항상 복잡한 해석을 낳기 마련인가 보다. 소리에 대한 흥미로운 그러나 잘못된 생각을 살펴보자. 그리스인들은 두 물체의 충돌로 소리가 발생하며, 높은 소리는 낮은 소리보다 그 속도가 빠르다고 생각했다. 지금 우리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래서 뛰어가는 사람을 낮은 목소리로 부르면 다들 이상하다고 쳐다 본다. 중국의 樂記는 “凡音之起, 由人心生也. 人心之動, 物使之然也.”라고 소리를 정의한다. 요약하자면, “凡音之起는 由人心生이고, 人心之動은 物使之然이다.” 즉, “모든 소리의 일어남은 마음이 생긴 때문이고, 마음의 움직임(생김)은 사물이 시켜서 그렇게 된 것이다”로 풀이된다. 결론은 “마음이 소리를 그렇게(然) 만들어냈다”는 주장이다. 문제는 “然”이다. 우리의 관심은 “그렇게”가 아니라 “어떻게”이다. “어떻게”를 괄호 안에 넣어 설명해 보자. “마음의 움직임은 그렇게(然: 아이콘을 떠 올리려, 발음이 일어나게 해서) 소리를 만든다”가 된다. 한자가 먼저고 소리는 나중이라는 뜻인데, 이를 “然”으로 감춘 것이다. 소리는 뒤로 밀려나고, 아이콘, 즉 표의문자가 중국의 사고방식을 지배하게 된다. 소리에 대한 오해의 절정은 쭈커칸들(Victor Zucherkandl)의 주장에서 볼 수 있다. “Sound and Symbol”(1956, 번역 서인정, 1992. <소리와 상징>)에서 그는 “제 3의 공간”을 제시한다. 음악을 들을 때에 음들은 공간 안에서 움직인다. 음들은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올라가기도 하고 다시 내려오기도 한다. 음들이 움직이기 위해서 공간은 필수적일 것이다. 그는 시각적 공간과 정신적 공간에 이어 청각적 공간을 설정하고, 이 공간 역시 생활공간과 같은 실존하는 공간이라고 주장했다. 청각공간이 외부에 존재한다는 그의 믿음은 “qualia”가 외부에 존재한다고 믿었기 때문일 것이다. 여기서 위상수학을 생각해 본다. 위상수학은 공간을 정의한다. 공간은 하나의 집합이며, 한 집합(X)과, 그 집합과 똑 같은, 그러나 그 안에 공집합, 전체집합, 부분집합, 합집합, 교집합 등의 가족을 설정한 (T) 집합을 가정한다. 그리고 (X) 집합의 원소 하나하나와 (T) 집합의 가족 간의 연결을 결정해 준다. (X) 집합과 (T) 집합을 나눈 것은 설명을 위한 것일 뿐, 사실 둘은 하나의 집합이다. 모든 점과 모든 점이 연결되어 있는 공간이 우리의 몸이 존재하는 삶의 공간이다. 점과 점 사이에는 거리가 있다. 한편 지하철 공간의 집합에는 1, 2, 3 호선 등의 부분집합과, 그 부분집합 간에 교집합이 있다. 환승역들이 교집합이다. 다른 라인에 있는 두 역 사이에는 직접적 연결이 없고, 집적적인 거리도 없다. 환승을 거쳐야만 연결된다. 음악적 공간은 음의 집합으로 정의되어야 할 것이다. 우선 거리가 없는 공간이며, 시간의 흐름에 따라 완성되는 마음 속의 공간이다. 몇 개의 음으로 시작해, 원소를 늘여 가며 커가는 공간이다. 집중해 음악을 들을 때, 우리는 소리의 원시적 공간을 벗어나, 새로운 공간을 만든다. 이 공간은 이미 만들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가는 공간이다. 그래서 같은 음악이라도 다시 들을 때마다 새롭게 들을 수 있다. 만들어가는 기쁨이 항상 있기 때문이다. 독일의 한 철학자는 음악이 외부에 없다는 뜻에서 음악을 “Nicht-in- diesem-Welt-Gehörenheit”라고 정의했다.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 존재”라는 뜻이다. 이 말을 했던 철학자의 이름이 생각나지를 않는다. 검색을 해도 찾을 수가 없다. 소리에 대해 내가 아는 바는 여기까지다. *외부 필진의 기고 내용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약력]서울대 명예교수, 전 서울대 음악대학교 학장 [저서]시와 리듬(1981, 개정판 2011), 음악을 본다(2009), 세계의 음악(2014) 등 [번역]기호학 이론(U. Ecco, 1984), 서양음악사(D. J. Grout, 1997)
    소리란 무엇인가
    by 서우석
    2024.04.13 06: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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