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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우석
서우석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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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프리즘
11개의 칼럼 #문화
  • 우리는 자녀들 또는 손자 손녀들의 현실 인식이 자신의 현실 인식과 많이 다르다는 것을 느낄 때가 많다. 주변에서 그런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중학교 시절 나는 부모 세대로부터 자신들이 어린 시절 목격했던 1919년의 3·1운동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일본 순경들이 휘두르는 칼을 피하지 못해 팔의 피부가 잘려나가 피를 흘리는 젊은이가 집으로 도망쳐 뛰어 들어왔을 때, 흘리는 피를 막기 위해 솜에 불을 붙여 상처 난 곳을 불로 지져 지혈했다는 이야기였다. 처참한 내용이었지만, 나에게는 내가 6·25 때 직접 보았던 일들만큼 절실한 감정을 일으키지 않았던 기억이 난다. 중학교 몇 학년 때인가 확실하지 않지만, 3·1 운동 선언문의 전반부를 외운 적이 있었다. 외워야 했던 것이 분명한 것은, 지금도 선언문의 첫 몇 문장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吾等은 玆에 我 朝鮮의 独立国임과 朝鮮人의 自主民임을 宣言하노라. 此로써 世界万邦에 告하야 人類平等의 大義를 克明하며 此로써 子孫万代에 誥하야 民族自存의 正権을 永有케 하노라.’ 20세기 초 일본의 핍박 아래 있었던 가난했던 조선의 이 선언문은 참으로 감동적이었다. “克明하며”와 “正権을 永有케”의 단어는 기억나지 않는다. 혹시 당시 교과서에는 다른 단어를 사용하지 않았었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2000년 이후 태어난 후배들은 이 선언문이 한국의 선언문인지 중국의 선언문인지 헷갈릴 것이다. 백년의 세월을 넘긴 지금 한국은 그만큼 달라졌다. 나에게 3·1운동이 기록의 역사이듯이, 지금 젊은 세대들에게 내가 겪은 2000년 이전의 모든 사건은 기록의 역사일 것이다. 기록된 사건과 경험한 사건의 차이는 있을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요즈음 세대들은 과거의 사건이 지금 우리 삶과의 연결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왜 그럴까?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는 일이 너무나 흔하고 과거를 꾸며대는 가짜 뉴스가 너무 많아, 이들의 사고를 그렇게 안이하게 만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기록의 역사와 현실 체험 둘을 서로 관계가 없는 다른 나라의 일인듯 여기는 사고 방식은 자신이 속한 그룹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집단이 그런 태도를 조장한 때문이 아닌가하는 생각을 한다. 그렇게 교육하고, 그렇게 역사 왜곡을 일반화시킨 것이다. 지금 학생들은, 한국의 건국을, 1948년 이승만 정부수립과 1919년 상해 임시 정부 수립 중 어느 하나를 택해도 상관 없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올바른 역사 인식을 위해서는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그들은 “명성황후의 이미지는 뮤지컬에 등장하는 화려한 모습이면 되었지... 하루가 멀다고 궁중에서 무당 굿을 벌였다는 이야기를 꼭 덧 붙여합니까?”라고 반문한다. 이런 안이한 역사 의식의 꼬투리를 찾아보자. 한국의 방송은 스포츠, 바둑시합을 방송할 때 그것이 재방송인 경우, 사건의 시각과 장소를 밝히지 않는 것이 일상화되었다. 밝히더라도 구석에 밀어넣어 보이지 않게 만든다. TV와 유튜브 모두 같다. 역사 인식의 기본을 파괴하는 일이다. 사건 발생의 시각와 장소는 역사 인식의 기본 틀이다. 이들은 다음과 같이 변명을 할 것이다. “지나간 시합임을 알리면 시청률이 떨어져요, 지금 진행되는 경기인듯 보여야 시청률이 올라가거든요” 시청률을 위해 역사 인식의 틀을 짓밟아 버리는 것이다. “역사 인식이 그렇게 중요합니까? 시청률이 더 중요해요, 시청률은 돈입니다. 돈...” 여기서 우리는 돈보다 중요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깊이 생각해보면, 방송이 사건의 시각과 장소를 알리지 않는 것은 마땅히 알려야 할 정보를 알리지 않는 일이다. 인식의 틀에서 보자면, 대한민국의 건국 정보를 정확히 알리지 않는 일과 다르지 않다. 알리지 않는 배경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모든 역사 왜곡은 방송처럼 그로부터 덕을 보는 이익 집단이 있게 마련이다. 지금 우리의 언론은 우크라이나의 역사를 설명해 주지 않고 있다. 지금 우리에게는 우크라이나 역사의 이해가 절실하다. 동유럽 역사가인 티머시 스나이더(Timothy David Snyder, 1969-)는 저서 ‘피에 젖은 땅’ (Bloodlands, 2010, 번역 2021)에서 우크라이나의 양민 학살을 상세히 설명한다. 1934년 이후 1945년까지 히틀러와 스탈린은 폴란드,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지역의 1400만 민간인을 살해한다. 전쟁으로 싸우다 죽은 것이 아니다. 무덤을 파게 한 다음 집단으로 총살하고, 불태워 죽이고, 굶겨 죽인 것이다. 1940년에 이르면, 곡물 수출 물량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다음 해에 심을 씨앗까지 징발해, 우크라이나인을 굶겨 죽인다. 나는 유튜브의 해설자로부터 이 책을 알게 되어, 구입해 읽었다. 끝까지 읽지 못하고 끔찍한 학살의 여러 페이지를 남겨둔 채 책을 내려 놓지 않을 수 없었다. 학살의 기록이 이어질 뿐이었기 때문이었다. 지금 러-우 전쟁은 2년을 넘기고 있다. 우크라이나의 역사를 알게 될 경우, 이 전쟁에 대한 우리의 인식은 달라질 것이다. 한 밤 중 러시아의 미사일이 느닷없이 날라와, 유치원, 어린이 병원을 폭격한다. 평화로운 아파트 건물 한쪽을 날려버리기도 한다. 그곳에 아이들과 잠 자던 가족들은 모두 죽는다. 주민들은 이 장면을 보고도 돌아서서 끝까지 싸우겠다고 다짐한다. 그들의 역사를 알면, 그들 모습에 대한 우리의 인식은 달라질 것이다. 나는 한국에, 우크라이나에 대한 올바른 역사적 인식을 거부하는 집단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 누군가의 눈치를 보느라고 입을 다물고 있는 언론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러나 친구들과 이야기해 보면 “너는 왜 그걸 모르니?”라고 반문한다. 무얼 모르는 것일까? 모르고 있는 사람이 너무 많다고들 한다. 지식인들의 나태가 원인이라고도 말한다. 지식인들에게 “당신들은 해방 후 80년간 국민에게 무슨 담론을 마련해 주었습니까?”라고 물었을 때, 그들은 “공부하느라고... 바빠서...”라고 대답할 것이다. 공부? 그건 개화기 초에나 정당화될 수 있는 답변이다. “출세하느라고 바빴겠지.” 가짜 뉴스가 횡횡하고 언론이 담론을 왜곡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공부하지 않았던 결과의 결과다. 70년대 이후 당시 대학은 학기가 시작하고 한 달을 넘기면 데모에 휩싸였고 70년대 후반부터는 4월 휴교가 다반사였다. 개강하면, 먼저 과제를 주고 리포트를 받아 놓아야 했었다. 학점을 줄 근거를 마련해야 하니까 말이다. 공부하지 못한 이들 386 세대의 전성기는 지난 정권으로 흘러간 것으로 보인다. 지금의 현실은 전교조 교사로 진출한 386이 성장기의 어린 학생들의 뇌를 수십년에 걸쳐 비틀어 놓은 결과일 것이다. 그 세뇌가 지금 일부 여성들의 맹목적 열정이고 태연한 가짜 뉴스이고, 왜곡된 담론이다. 이제 우리는 대체 무엇을 기대해야 할까? 10년 후를 내다보자. 어차피 롱-텀의 게임이다. 신 세대의 세뇌 거부는 본능적일 것이다. 2030년대 후반, 이들이 사회적 담론을 주도하게 될 때, 새로운 한국이 태어날 것임을 확신한다. 그때의 한국은 지금과는 다를 것이다. 희망을 가지고, 공산화만은 막아내자. *외부 필진의 기고 내용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약력]서울대 명예교수 [저서]시와 리듬(1981, 개정판 2011), 음악을 본다(2009), 세계의 음악(2014) 등 [번역]기호학 이론(U. Ecco, 1984), 서양음악사(D. J. Grout, 1997)
    2024.07.13 05:50:00
    역사 의식과 세대
  • 일본 문화가 상징이라는 ‘기모노’를 입고 있다면, 일본 음악은 ‘유겐’(幽玄)과 ‘모노노 아와레’(物の哀れ)라는 속옷을 입고 있다. 사물을 바라보는 ‘유겐’과 ‘아와레’(哀れ)의 두 태도가 일본의 미-의식이라고 한다. 먼저 유겐을 살펴보자. 우리도 사용하고 있는 ‘깊고 그윽함’이라는 뜻의 ‘유겐’(幽玄)은 언어가 표현할 수 없는 것이지만, 저 세상의 일을 가리키는 말은 아니라고 설명한다. 유겐은 세상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 안에 있는 ‘깊고 그윽한 곳’이다. 이 세상에 속하지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그 무엇’, 그것이 ‘유겐’이다. 무인정치가 시작되는 무로마치(室町, 1336–1573) 막부 시대의 연예인이었던 제아미 모토키요(世阿弥 元淸)는 유겐의 뜻을 다음의 시로 묘사한다. 꽃 덮힌 언덕 위로 석양이 사라지고 거대한 숲속을 거닐며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 멀리 섬 뒤로 사라지는 배를 보고 구름 사이로 보이듯 안 보이는 기러기를 바라본다. 대나무의 미묘한 그림자가 대나무에 드리움이다. 이 시는 ‘사라지는’ 순간과 ‘보이지 않는’ 순간을 노래한다. 사라지면서 보이지 않는 순간, 그것이 사물의 근원이고, ‘깊고 그윽한 곳’이며 아름다움의 시작이라는 주장이다. 한편 ‘모노노 아와레’(物の哀れ)는 에도 시대의 문학 평론가인 노리타가(本居宣長, 1730~1801)가 ‘겐지모노가타리’(源氏物語. 1008)를 해설하면서 제시한 개념이라고 한다. 사물을 접하는 순간, 논리와 윤리가 나타나기 전의 ‘느낌의 세계’를 뜻한다. 진/위, 선/악 이전에 인지된 세계다. 유교적 권선징악의 이념을 벗어나 있다는 뜻이다. ‘바쿠후’(ばくふ, 幕府)라는 군부정치의 이념을 연상케하는 바가 없지 않다. 그러나 막부정치의 영향 보다는 유교로부터 벗어나려는 욕구가 ‘모노노아와레’(物の哀れ) 추구의 보다 근본적 원인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불교적으로 말하자면, 연기(緣起)에 앞선 존재의 근원적 인식을 뜻한다. 예를 들어, 벌레를 노려보는 개구리의 모습에서, 약육강식의 논리나 삶과 죽음 등의 선악을 판단하지 말고, 그 감정에 앞서서 바라보라는 것이다. 이것이 ‘物の哀れ’이고, 미-의식의 근본이다. 이 때의 인식이 ‘아름다움의 출발점’이라는 것이다. 그 느낌은, 불교에서 말하는 욕망에 몰두하는 취착(取着), 취착을 유발하는 갈애(渴愛), 그리고 갈애에 앞선 ‘느낌’의 세계에 도달함을 뜻한다. 그러나 까다롭게 설명하자면, 이는 붓다가 설명한, 감각이 대상과의 접촉에서 발생하는 ‘좋은/ 나쁜/ 무덤덤함’을 느끼기 이전의 상태라는 주장이지만, 붓다는 ‘좋은/ 나쁜/ 무덤덤함’에 앞선 순간에 대해 말한 바가 없다고 한다. 그에 의하면, 셋 중 하나를 느끼는 것은 원초적이다. 그에 앞선 것은 없다는 뜻이다. 어쨌건, 이 점에서 ‘物の哀れ’는 유교의 이념과는 상반된다. 유교적 이념을 택한 조선과 문화적 차이를 낳은 시작일 것이다. 사라지면서 보이지 않는 먼 곳(幽玄)과, 가까이서 본 즉각적인 느낌인 ‘애처로움’(哀れ), 이 둘은 서로 보완한다. 무한한 시간과 정지된 시간이 만나는 것이다. ‘유겐’과 ‘아와레’는 세계 인식의 근원을 찾는다는 점에서 서로 보완한다. 그러나 둘 다 상징 체계의 명료성을 회피한 것으로 보인다. 샤미센 음악이 이 미적 세계를 잘 보여준다. 샤미센의 연주는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저에게, ‘너, 지금 무슨 얘기를 하니?’라고 묻지 마세요. 저는 아무 이야기도 하지 않습니다. 제 중얼거림을 그냥 보여드릴 따름입니다. 왜 보여 주느냐고요? 그건 저도 모릅니다. 저는 거기까지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샤미센이 우리에게 들려주는 음악이다. 악보를 이용해 설명해 보자. 다음의 악보는 샤미센 음악의 흐름을 설명하기 위해 내가 만든 음-진행이다. 위 악보를 보고 “mi re fa re mi fa.... ”를 노래해 본다. 다만 두 음이나 세 음의 반복이 느껴지게 노래해서는 안 된다. 분절이나 강조되는 음이 구조를 만들지 않게끔 노래해야 한다는 뜻이다. 까닥 잘못하면, 끝 머리의 “re mi fa, mi, re mi fa” 에서 “re-mi-fa”의 반복 구조가 들리게 된다. 이를 피하려면, “re-mi, fa-mi-re, mi-fa”로 연주하면 될 것이다. 이렇게 연주하면, 이 음악은 우리에게 “그냥 들으세요. 의미있는 구조를 만들지 마세요”라는 말을 걸어오게 된다. 물론, 실제 음악은 샤미센이 반주하고, 직접 또는 옆에서 가사를 얹어 노래를 부르는 형식을 취하기도 한다. 그런 연주에서도 샤미센의 반주는, 앞서 말한 “그냥 들으세요”라는 느낌을 벗어나지 않는다. 인터넷을 통해 샤미센 연주를 들어보기 바란다. 작은 반복은 있지만 구조로서의 반복은 없다는 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샤미센 악기를 잠시 살펴보자. 샤미센(三味線)은 일본의 남쪽 열도 국가였던 오키나와로 부터 유래되어, 에도 시대에 유행하게 된 악기다. 3 현(絃)을 ‘바찌’(ばち, 撥)로 튕겨 연주하는 악기로서, 중동 지역에서 중국에 이르기 까지 널리 전파된 유형의 악기다. 오키나와에서 일본의 본토로 전해진 다음, 악기의 모습은 세련된 여러 형태로 발달한다. 그러나 근본은 3 현이고 깍찌로 튕겨 소리를 내는 발현 악기다. 한편, 일본의 ‘아악’(雅樂, 가가쿠)으로 알려진, 에텐라쿠(越天樂)가 추구하는 상징은 샤미센의 음악과는 조금 다른 느낌을 준다. 고수가 천천히 손을 들어 팔로 원호를 그리며 내려치는 북소리와 함게 흘러나오는 히치리키(ひちりき, 篳篥 피리)의 강렬한 직선적인 멜로디가 에텐라쿠 음악의 기본이다. ‘미’음을 오래 끌다가 다음 음으로 치켜 올라가고 이어 ‘레’음으로 답하는 진행은 더 이상의 조형을 거부하겠다는 느낌을 준다. 그러나 분절이 완성되었음을 암시한다. 조형의 거부는 음악적 건축을 하지 않겠다는 뜻이지만, 분절을 마무리 짓는 것은 상징의 명료성를 드러내는 일이다. 이 상징의 명료성은 샤미센의 끊임 없는 중얼거림과는 선명한 차이를 보여 준다. 이 외의 일본 음악은 주로 무대 음악이다. 일본의 무대 음악은 음악의 장르라기 보다는 연극의 장르에 속한다고 보는 것이 옳은 견해일 것이다. 일본식 오페라 가부키(歌舞伎), 인형극 분라쿠(文楽), 가면극 노가쿠(能楽) 등은 음악적인 면에서 그 중요성이 매우 약하다. 반면 무대 예술의 관점에서 보자면, 복잡한 무대 장치와 소품을 수반한, 그리고 그 하나하나에 중요한 연극적 의미가 부여된 독특한 장르이기도 하다. 일본 음악의 상징은 그 장르에 따라 상징성에 있어 차이가 있다. 그러나 일본의 모든 음악은 상징이 기본이다. 음을 상징적으로 처리하는 방법은, 오페라를 대신하는 아리아처럼, 널리 알려지는 멜로디를 만들지 못한다. 짧은 노래일지라도 스스로의 공간을 가져야 하는데, 음악적 공간은 다른 공간을 흉내내거나, 상징적 편법을 써서 만들어 낼 수 없기 때문이다. 음악의 공간은 근본적으로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공간이다. 다르게 말하면, 우리가 스스로 음을 듣고 만들어내어야 하는 공간이다. 그래서 성장기에 좋은 음악-듣기가 중요하다. 수준 높은 음악의 이해는 보다 복잡한 위상 공간을 우리의 뇌가 만들어 내고 체험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일본의 음악은 일본 문화의 상징적 체계에서 벗어나지 않았다는 점에서 그 음악적 공간이 매우 좁다. 그 틀을 벗어나고 싶었지만, 벗어날 수 없었음을 일본의 음악사가 보여 준다. 13세기초부터 19세기 중엽에 이르기까지, 막부 정치는 틈틈이 솟아오른 서민의 흥행적 유행을 허용하지 않았다. 음악의 경우, 민요적 다양성, 다시 말해 자유롭게 노래 부르면서 획득한, 서민들의 음악적 공간을 수용하지 않았던 것이다. 다르게 말하자면, 르네상스 시대의 유럽처럼 중-하류층의 음악이 상류층으로 흘러 들어와 예술 음악이 발전하는 계기를 마련하지 못한 것이다. 일본 문화가 기모노라는 상징을 입고 있음으로 해서, 샤미센이라는 민속화된 음악마저도, 그 압박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냥 들으세요 보여드릴 뿐입니다”는 속옷을 벗어 던질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일본은, 상징이 온 몸을 옥죄이고 있는 나라인 듯 보인다. ‘성 아래 기모노를 입은 두 여성’을 보고 당신은 무엇을 느끼십니까? 나는 후쿠시마(福島) 아이즈(会津), ‘쓰루가죠’(鶴ヶ城)의 저 높은 성곽이, ‘두 처녀가 기모노를 입었는지, 안 입었는지’를 무서운 눈초리로 내려다보고 있음을 느낍니다. “物の哀れ”입니다. *외부 필진의 기고 내용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약력]서울대 명예교수 [저서]시와 리듬(1981, 개정판 2011), 음악을 본다(2009), 세계의 음악(2014) 등 [번역]기호학 이론(U. Ecco, 1984), 서양음악사(D. J. Grout, 1997)
    2024.07.06 04:00:00
    상징과 일본음악
  • 일본의 문화는 많은 상징을 담고 있다. 종교, 생활, 놀이, 스포츠 등 모든 곳에서 상징이 넘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본의 종교관은 특이하다. 일본 문부성 조사에 의하면, ‘신토’(神道)와 ‘불교’를 선택한 수를 합하면 그 수가 전체 인구의 150%를 넘는다고 한다. 다른 나라의 경우 타 종교에 대해 배타적인 것이 보통인데, 일본은 특이하다. 2010년의 조사에 의하면, 일본의 신사(神社)의 수는 10만을 훨씬 넘는다고 한다. 이 시기의 일본 전역의 편의점 수가 5만여 개라는 점을 감안하면, 동네마다 신사의 수가 서너 개일 것으로 추정된다. 일본 인구의 거의 전부를 포용하는 종교인 신토는 세계의 여러 종교와는 다른 점이 많다. 창시자가 없고, 가르침과 원칙에 해당되는 교조나 교리도 없다. 성경이나 코란과 같은 경전이 없다는 뜻이다. 천황의 계보를 정리한 고사기(古事記, 712년), 일본 정사인 일본서기(日本書紀, 720년), 헤이안 시대의 신토 자료인 고어습유(古語拾遺, 807년) 등의 역사 자료를 신도들에게 경전 대신 추천한다. 교주/ 교리/ 경전 등, 종교의 빈자리를 채우는 것이 바로 일본 특유의 상징일 것이다. 일본의 상징을 살펴보자. 위 사진의 ‘도리이’(鳥居)는 신의 영역과 속세를 구별하는 상징적인 문이다. 사진에서 처럼 ‘도리이’를 바다에 세운 경우도 흔하다고 한다. 바다의 ‘도리이’는 이곳의 수심이 낮다는 것을 알리는 표시이기도 할 것이다. 신도가 모시는 신(神, かみ)도 다양하다. 황실을 모시는 황실 신사를 비롯해 개인의 조상, 산과 바다 등을 모시는 신사도 있다. 사원에는 나무 가지에 매단 소원을 적은 종이 잎사귀, 나무에 소원을 세긴 에마(絵馬), 경배시 울리는 ‘방울’(鈴鐘) 등 모두가 상징이다. 신사는 상징으로 가득차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신사를 경배하는 순서도 엄격하게 정해져 있다. 그 순서의 엄격함은 상징의 엄격한 절차일 것이다. 신사에 도착하면, 도리이와 미카도(神門)를 지날 때 목례한다. 데미즈야(手水舎)에 이르러, 손을 씼은 다음, 오른손으로 물을 떠서 왼손을 오무려 물을 받아 입을 헹군다. 이때 국자에 입을 대지 않아야 한다. 참배 전에 소원을 적은 다마구시(玉串, 종이 오리)를 지정된 곳에 묶는다. 참배 길을 지나서 새전 함에 돈을 넣고, 줄을 당겨 영종(鈴鐘)을 울린 다음 배례한다. 두번 절하고 두번 박수 친 다음 한번 절하는 것이 배례의 기본이다. 참배 시에는 눈을 감지 않아야 한다. 절하는 순서는 조선의 제사와 비슷하다. 이제 스포츠의 상징을 살펴보자. 프로 선수들이 참가하는 일본 최대 스모 경기인 오오즈모(大相撲)도 상징으로 가득차 있다. 준비 동작인 시코(四股)는 양다리를 쩍 벌리고 한 발씩 들었다가 지면을 강하게 내리 밟는 행동이다. 시코(四股)는 시코아시(醜足)의 약칭이라고 한다. 민속적 신앙으로 땅 속의 사악한 영령을 짓밟아 누르고, 대지의 기운을 밟아 가라앉혀, 잠자는 초봄의 대지를 깨워서 한 해의 풍작을 약속받는다는 의미를 지닌다고 한다. 요비다시(呼出)는 부채를 펼치고 다음 대결에 나올 선수의 호명을 칭하는 말이다. 특이한 목소리로 노래하듯 리키시(力士)의 이름을 길게 읊는 모습은, 리키시가 물로 입을 헹구고, 소금을 뿌리는 행동과 더불어 스모 경기 상징의 절정일 것이다. 치카라미즈(力水)는, 승리한 선수가 다음 리키시에게 국자로 물을 떠주면 출전할 리키시가 입을 헹구고 물을 뱉어내는 의식이다. 그 다음 건네준 치카라가미(力紙)로 입을 닦는다. 전통 종이인 치카라가미를 반으로 접어 입을 닦는 의식은 리키시가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한다는 뜻이다. 신사와 스모의 여러 상징들은 처음부터 전체로 주어진 것이 아닐 것이다. 시간을 두고 하나씩 추가되었다고 보아야 한다. 이런 추가는 일본의 문자 세계에서도 일어난다. 일본의 한자에는 새로 만든 문자가 많은 편이다. 일본 특유의 한자를 찾아 보자. 인터넷 검색을 통해, 더 많이 찾아 볼 수 있다. 다음은 재미있는 글자로서, 사고의 소박함을 보여준다. 峠 (도우게, とうげ) 고개 辻 (스지, つじ) 네 거리 凪ぐ(나구, なぐ) 바람이 그치다 刈る(가루, かる) 머리털 등을 깎다 (髪を刈る) 姫 (히메, ひめ) 귀인의 딸 새 한자를 만드는 이유가 있다. 새로운 발음만으로 새 단어를 만들기 어렵기 때문이다. 일본어에는 발음 수가 많지 않다. 위의 예에서, ‘凪ぐ’의 발음은 ‘なぐ’(나구)인데, 이미 ‘薙ぐ’(후려치다), ‘和ぐ’(평온해지다)에서 사용되고 있는 발음이다. 이들 단어도 한자를 병기해야 구별된다. ‘辻’(つじ, 쯔기)의 발음도 ‘머리 중앙의 가마’(旋毛)의 뜻으로 이미 쓰이고 있는 발음이다. 새로 만든 글자는 키보드로 입력하기 위해서는 여러 절차를 거쳐야 한다. 디지털화가 쉽지 않다는 뜻이다. 일본의 문화는 수치화할 수 없는 상징으로 가득 있다. 다른 표현을 쓰자면, 유겐(幽玄)의 상태를 선호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풍성한 상징은 민심을 깊고 그윽한 한 곳으로 모을 수 있겠지만, 일본 국민들을 숫자화하는 ‘마이남바’(my number)를 찬성으로 이끄는 데에는 방해가 되어, 통신과 디지털 거래를 어렵게 만든다. 상징 애호는 일본인들이 카드 결제보다는, 지폐 사용을 선호하는 원인일 것이다. 일본의 상징에 대한 지금까지의 긴 설명은, 간략한 설명으로는 일본의 상황을 실감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일본 문화의 상징은 여기서 마무리하고, 이어 일본 음악에 대해 설명하기로 한다. *외부 필진의 기고 내용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약력]서울대 명예교수 [저서]시와 리듬(1981, 개정판 2011), 음악을 본다(2009), 세계의 음악(2014) 등 [번역]기호학 이론(U. Ecco, 1984), 서양음악사(D. J. Grout, 1997)
    2024.06.29 05:40:00
    상징과 일본문화
  • 한국 사람들은 ‘bada’와 ‘vada’를 듣고 둘 다 ‘바다’로 인식한다. ‘b’와 ‘v’를 구별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영어에도 구별하지 않는 발음이 있다. 우리는 ‘쌀’과 ‘살’을 구별하지만 영어의 ‘sign’의 발음은 ‘싸인’과 ‘사인’ 사이의 경계가 모호하다. 한국도 일부 지방에서 사람에 따라 ‘쌀’과 ‘살’을 구별하지 않는다. 특정 발음의 사용이 언어습득 기간 중에 제외되면 그 발음을 위한 뇌의 회로가 형성되지 않을 것이고, 결국 두 발음은 같은 발음으로 인식된다. 둘이 아닌 하나로 존재하는 소리가 되는 것이다. 기본적인 발음 수는 주장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중국이 200 여개, 일본이 100 여개 정도라고 한다. 한국은 2700 개 정도이며, 한국의 경우 표기 가능한 발음 수는 훨씬 많을 것이다. 위 그림에서 보듯, 중국의 한자는 글자 자체가 작은 그림이다. 사물/사건을 그림으로 표현하는 문자라는 뜻이다. 중국어 사용자들은 말을 들으면 즉시 문자를 떠 올려야 한다. 같은 발음이 많기 때문이다. 위 표에서도 같은 발음의 한자들을 볼 수 있다. 같은 발음을 이용한 해음(諧音)이 미신을 만들기도 한다. ‘福’자를 거꾸로(倒) 문에 붙이면, ‘倒’(거꾸로)와 ‘到’(들어온다)가 발음이 같아, “福이 거꾸로 붙어 있네”가 “福이 집으로 들어오네”의 일상어로 읽히게 된다. 중국인의 발음 세계에서, “福이 거꾸로”와 “福이 들어오네”는 구별되지 않는다. 더 재미 있는 해음도 있다. 우산(傘)을 선물하면 헤어지자(散)는 뜻이 되고, 함께 앉아 “배를 잘라 먹으면”(梨開) “이별하자”(離開)는 선언이 된다. 모두 미신적 금기다. 한자의 장점은 말이 통하지 않는 민족 사이일지라도 한자를 사용함으로서 기록으로 소통이 가능했다는 점일 것이다. 한자 덕분에 중국 대륙은 문자 소통이 가능한 지역이 되었고, 정치적으로 하나의 국가를 이룰 수 있었지만, 언어가 다른 종족이 한둘이 아니었으므로, 온전한 통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한자 아이콘은 사물/상황/동작을 표현하는 ‘작은그림’, 심하게 말하면 정지된 동영상이라고 할 수 있다. 글자 자체는 정지되어 있지만 이를 인식하는 주체에게 한자는, 시간을 부여 받은 심적 동영상으로 표상된다. 따라서 한자의 “작은그림”은 그 형태와 글자 모양의 짜임새까지 매우 중요하다. 짜임의 순서가 시간이기 때문에, 형태 구성은 글자의 인식, 암기, 의미 형성에 있어 결정적인 요인이 된다. 최근 중국이 “풍부하다”의 ‘豊’자를 간자 ‘丰’으로 고친 것은 제 정신으로 한 일이 아니다. ‘丰’은 ‘그림’이 아니기 때문이다. ‘豊’을 암시하는 ‘기호’에 불과하다. 다르게 말하면, 한자 정신의 파괴다. 영어도 문자 모양을 중요시한다. ‘knife, knight, know’를 ‘naif, nite, nou’로 고치지 못하는 이유는 ‘그림’의 모습을 버릴 수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문자의 그림적 특성도 그 만큼 중요하다. 한글의 글자 모양은 서구 알파벳의 수평적 제한을 넘어선 수평/수직의 결합으로 인해, 글자 모양이 놀랄 만큼 다양하다. 언어듣기의 메커니즘은 당연히 음악 듣기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멜로디-듣기와 만들기에, 이미 형성된 언어의 신경회로가 영향을 준다는 뜻이다. 둘 다 소리를 듣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음악이 도입되어 듣기에 익숙해지면, 멜로디-듣기의 뇌 회로가 그에 맞게 변하겠지만, 이미 만들어진 회로는 남아있을 것이다. 중국의 음악은 전통 음악이건 대중 가요건, 모두 한자의 문자적 이념 안에 있다고 보아야 한다. 이미 만들어진 뇌의 회로는 작동하기 때문이다. 중국의 음악은 제목의 시각적 이미지를 직접 표현한다. 쟁(箏)으로 연주하는 “고기잡이 배에서 황혼을 노래한다”는 ‘이저우창만’(漁舟唱晩)은 강변의 저녁을 음으로 그리고 있다. 화폭에 그림을 그리듯 쟁(箏)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로 만든 그림이다. ‘달빛 아래 매의놀이’(月江鷹遊)나 ‘봄날 강변의 아름다운 달밤’도 역시 같다. ‘春江花月夜’는 다음 그림의 상단에 쓰여 있는 시 제목이다. 표음문자 사용자들은 소리를 듣고 곧 바로 의미 세계로 옮겨가는 반면, 한자 사용자들은 발음을 듣고 문자, 즉 ‘작은그림’을 떠 올리고, 그로부터 의미 세계로 진입할 것이다. 한자 사용자들은 음악을 들을 때에도, 음-형태로 구성되는 음악의 공간을 만들기 보다는 음-형태에서 ‘작은그림’을 찾게 된다. 쉽게 말해, 음악 듣기가 음악의 구조를 만들어가는 작업이 아니라 그림의 구조를 만들어가는 작업이 된다는 뜻이다. 반면, 음 자체로서 음악적 공간을 만드는 음악은 몇 개의 음으로 구성된 ‘게슈탈트’(gestalt, ‘모양새’의 뜻)를 건축적으로 조립해 나간다. 그 조립의 규칙은 우리의 생활 공간에서 유도된다. 질문/대답, 호응/거절, 상행/하행, 등장/퇴장 등이 그런 구조들이다. 생활과 언어의 대칭적 구조를 음악에 반영한 것이다. 운명 교향곡의 ‘미미미 도-’와 ‘레레레 시-’는 호응 구조이지만, ‘미미미 도-’에 대해 ‘레레레 솔-’로 대답하면, 거절 또는 길을 바꾸겠다는 뜻이 된다. 그러나 다음과 같이 변형하면 숨 가쁜 발전, 속도감 있는 상승이 된다. 게슈탈트의 구조는 생활 현실에서 빌려왔지만, 그것이 만드는 의미는 음악적 공간 안에서 생겨난 것이다. 뿐만 아니라 형성된 의미는 느낌을 만들고, 그로부터 감정을 불러온다. 이것이 우리가 통상적으로 음악을 듣는 메커니즘이다. 언어가 음악에 끼치는 영향은 중국의 경우에만 제한되는 일이 아닐 것이다. 한국과 일본의 음악도 언어와 문자에 기인하는 특이함을 지닌다. 유럽도, 이탈리아/ 프랑스/ 독일/ 영국에 따라 음악이 섬세하게 다르다. 이탈리아나 독일과 달리 영어의 경우, ‘knight’처럼 ‘문자그림’에 비중을 두는 것을 보면, 영국인의 음악듣기에도 언어 메카니즘이 틈입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구체적으로 말하기는 어렵지만, 유럽의 여러 국가들의 음악이 서로 조금씩 다르다는 것은 분명하다. 세계 여러 나라 중, 중국인의 음악듣기가 가장 특이하다고 말할 수 있다. 한자의 특이함이 그 원인이다. 과거 한자를 많이 사용했던 조선이나 일본도 비슷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지금 우리가 한글 전용의 시대에 산다는 것은 과거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세계에 산다는 뜻이기도 한다. 지금 한국의 정신 세계는 중국, 일본과 달리 서방세계가 되었다. 그것이 아마도 일류(日流)나 중류(中流)가 아닌 한류(Korean-wave)가 세계적으로 범람하는 이유 중 하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외부 필진의 기고 내용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약력]서울대 명예교수 [저서]시와 리듬(1981, 개정판 2011), 음악을 본다(2009), 세계의 음악(2014) 등 [번역]기호학 이론(U. Ecco, 1984), 서양음악사(D. J. Grout, 1997)
    2024.06.22 06:02:00
    한자와 중국음악
  • 음악을 기록하는 악보에 대해 알아보자. 악보는 두 종류로 나눌 수 있다. 기록 보관하는 악보와, 읽고 노래하는 악보다. 세종이 종묘, 문묘제례악을 정리한 정간보는 기록 보관용이고 ‘날아라 새들아’로 시작하는 ‘어린이 날’ 노래의 오선보는 읽고 노래하기 위한 악보다. 유럽의 오선보는 멜로디를 회상하기 위해 가사 위에 그려 놓은 곡선으로 시작한다. 상행, 하행, 꼬임-진행을 표시한 기호였다. 9세기에 출현한 이 기호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변화 발전한다. 이 기호의 이름인 네우마(neuma)는 그 어원이 그리스어의 ‘기호’(neuma)라고 한다. 변화는 기호 행렬을 가로지르는 수평선으로 시작되었다. 펜으로 눌러 자국을 낸 수평선은 동일 음고를 알리기 위한 선으로서, 여러 색갈의 일곱 줄까지 확대된다. 바로크 시대에 이르러, 세속음악은 5선보로 귀결되고 종교음악은 교황청 간행의 ‘Liber Usualis’의 4선보로 정착된다. 언어가 단어로 시작하듯, 음악도 두세 음표의 덩어리로 기록이 시작된다. ‘Liber Usualis’의 음표들이 그런 덩어리 모습으로 되어 있다. 리듬 역시 덩어리로 파악되고 인식되었다. 패턴으로 인식되었다는 뜻이다. 르네상스 이전, 여섯 개의 패턴에 1번에서 6번까지 번호를 붙여 사용했다. 이것이 “리드믹 모드”(rhthymic mode)다. 네우마로 음고 행렬이 주어지면 여기에 여섯 개 중 하나를 택해 노래를 불렀다. 20세기초 한국의 유행가에 등장하는 ‘뽕짝’ 역시 리드믹-모드다. 월드컵 열풍 시절, 기자가 전화를 걸어와, 응원단이 외치는 ‘대한민국’에 대해 질문했을 때, 나는 무심코 ‘한국적인 특징, 뭐, 그런 건 없습니다’라고 대답했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대--한민국’은 ‘뽕짝’ 리듬의 변형이다. “뽕-짝짝, 뽕짝”이 “뽕--짝, 뽕작”으로 변형된 것이다. 음악적으로 보면 같은 것이다. 음악을 수용하는 태도는 다양하다. 언어의 경우 의미 파악이 첫 목표겠지만, 음악에는 그런 우선적 태도가 없다. 교향곡 한 악장과 제례악의 “영신(迎神)” 부분을 듣는 태도는 서로 다르다. 전자가 감상이 목적이라면, 후자는 귀신에게 “이 곳으로 오십시요”라는 부탁이다. 우리가 알아 들을 수도 없고 알아들어도 안 되는 음악일 것이다. 인도 음악을 보자. 인도 사람들은 음악을 감상의 대상으로 여기지 않는다. 음악은 열반으로 인도하는 반려자다. “비묵슈”(vimuksh)라는 단어는 열반과 음악을 함께 뜻한다고 한다. 따라서 타인의 음악을 기록해 그것을 읽으며 흉내내는 연주는 금기에 해당된다. 악보가 글이라면 연주는 말인 셈이다. 글은 후에 읽기 위한 수단이지만, 말은 마음 속의 생각을 밖으로 내보내는 직접적인 작업이다. 말은 글을 읽는 사람에게 “니가 내 말을 똑 같이 따라 할 수 있겠니?”라고 항의하겠지만, 글은 “마음을 끌어내어 집을 짓겠다는데 뭔 상관이냐?”라고 항의할 것이다. 말은 강의 흐름을 만들고, 글은 집을 짓는 셈이다. 가슴이 말을 한다면, 머리가 글을 쓰는 것이다. 그러나 둘은 일치하기도 한다. 글도 건축처럼 중력과 손을 잡고, 말도 강처럼 중력과 손을 잡는다. 글은 위를 향하고 말을 아래를 향하는 셈이다. 한국의 음악에도 말의 음악이 있었다. 조선조의 음악은 ‘상징의 음악’(宗廟祭禮樂), ‘글의 음악’(淸聲曲), ‘말의 음악’(散調)을 모두 수용했다. 산조는 신쾌동(申快童, 1910~1978)과 김죽파(金竹坡, 1911~1989)까지 남아있었다. 산조는 ‘이 내 말쌈 들어보소’로 시작하는 가슴 속의 이야기다. 흩어진 이야기라는 뜻에서, “散調”라는 이름을 붙였을 것이다. 산조 정신의 소멸은 서양음악이 조선조 음악에 끼친 가장 큰 피해다. 해방 후 초등학교에서부터 악보 읽기와 노래하기로 교육 받은 이들에게, 말의 음악이 살아남을 수 없었을 것이다. 악보 읽기를 배운 이들이 후에 대학 교수가 되어, 산조를 오선보로 악보화해 버린다. 선을 넘은 일이지만, 막을 수 없는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인도의 음악은, 서주 “alap”와 본주 “gat”로 나누는 형식을 취한다. 서주는 현실의 삶을 벗어나는 과정이고, 본주는 열반에 이르는 과정이다. 둘 다 거의 30분 동안의 긴시간이 걸린다. 열반에 이르면 다시 지상으로 내려오지 않는다. 긴 시간이 걸리는 점오점수(漸悟漸修)의 음악이라고 비유할 수 있다. 음악을 듣는 또 다른 태도가 있다. 인도네시아의 가믈란(gamelan) 음악이 그것이다. 가믈란은 공(gong)과 차임(chime)을 두들겨, 하늘에 떠있는 소리를 보여주는 음악이다. 공과 차임의 쇠 소리 모임인 이들의 음악에서 시간이 정지된 희열을 느낄 수 있다. 느닫 없이 깨닫는 열반인 셈이다. 비유하자면, 돈오돈수(頓悟頓修)의 음악이다. 음악을 듣는 태도는 이처럼 다양하다. 소리에서 우리는 귀신의 모습도 상상하고, 신의 말씀도 상상한다. 소리가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개화기 시절 외국인의 기록에 의하면, 미군 군악대가 행진곡을 연주하며 종로 거리를 누볐을 때, 이를 본 조선인들은 그 크고 화려한 소리에 기절할 정도였다고 한다. 그 놀라움은 지금 우리로서는 상상하기 조차 어려울 것이다. 소리와 음악은 이처럼 우리를 두려움과 신비, 놀라움과 경탄으로 이끈다. 소리를 재료로 만든 공간, 다르게 말해 음악은 우리의 외부에 존재하지 않는 세계다. 오직 우리의 뇌 안에만 존재하는 세계라고 해야 할 것이다. *외부 필진의 기고 내용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약력]서울대 명예교수 [저서]시와 리듬(1981, 개정판 2011), 음악을 본다(2009), 세계의 음악(2014) 등 [번역]기호학 이론(U. Ecco, 1984), 서양음악사(D. J. Grout, 1997)
    2024.06.08 05:00:00
    악보와 세계관 
  • 지금 건반 악기는 모든 음악에서 사용되고 있다. 클래식 음악과 대중음악, 나아가 디지털 음향에 이르기까지 건반이 사용된다. 건반 악기의 발생과 발전을 살펴보자. 가장 오래 된 건반 악기의 유물은 토기(terracotta)였다. 위 첫째 사진은 수압-오르간과 “salpinx”(트럼펫) 연주자의 모습이다. 기원전 1세기의 것으로 알렉산드리아에서 만든 것이다. 다음 사진은 튜니시아에서 발견된 기원전 3세기의 것으로 역시 수압-오르간의 모습이다. 둘 다 기름을 사용하는 램프의 장식품이다. 건반의 발전 과정을 다음 순서로 살펴보기로 한다. 1.입 안의 공기 압력, phorbeia, 2.공기 주머니, 3.백파이프, 4.공기상자와 슬라이드 장착, 5.풀무 오르간, 6.수압 오르간, 7.교회 오르간, 8.하프시코드, 9. 피아노의 순서다. 1. 공기주머니의 근원은 그리스 시대의 “phorbeia”에 이른다. 올림픽 등의 운동경기장에서 노예들은 아울로스라는 피리를 연주했다. 온종일 피리를 불어야 하는 힘든 작업을 위해 가죽 띠에 구멍을 뚫어 아울로스를 물고 띠를 목 뒤로 묶었다. 볼의 아픔을 덜기 위한 방편이었다. 이 띠가 “phorbeia”다. 2. 이 구강의 공기 주머니, 볼을 보호하기 위한 가죽띠가 확대되어, 가죽 주머니로 모습을 바꾼다. 아래 사진은 양 가죽으로 만든 주머니 백파이프로 2017년 불가리아의 백파이프 경연 대회에서 보인 모습이라고 한다. 3. 백파이프(bagpipe)가 완성된다. 백파이프는 우리의 생각보다는 훨씬 더 많은 곳에서 민속악기로 사용되고 있다. 다음은 그림은 스코틀랜드 고지대의 백파이프를 소년이 연주하는 모습을 그린 그림과 스코틀랜드 백파이프의 모습이다. 다음 사진은 13세기의 프랑스 성당 외부의 조각상이다. 여기서도 공기주머니의 모습을 볼 수 있다. 4. 가죽 주머니는 나무로 만든 공기상자(air chamber)로 발전하고, 슬라이드가 공기압의 개패를 결정한다. 5. 다음은 풀무 오르간의 모습이다. 소형과 대형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6. 그리스 사람들은 수압을 이용해 공기 압력을 만들고 이를 이용해 광장에서 소리를 울려 퍼지게 한 거대한 hydrorgan(수압오르간)을 만들어 사용했다는 기록이 있으나, 그 유물은 전해오지 않는다. 아래 그림은 수압오르간의 개념도와 20세기에 헝가리에서 복원한 수압오르간 모습이다. 7. 아래 그림은 교회 오르간의 건반의 모습이다. 위 건반은 손 건반이고 아래 건반은 발로 연주하는 저음 건반이다. 독일 Halberstadt 시의 파베르(Nicholas Faber)가 1361년에 만든 건반으로서, 1619년 출판된 “Syntagma Musicum”에 그림으로 전해오는 모습이다. 8. 오르간에 이어 하프시코드에 건반이 적용된다. 하프시코드는 “zither”에 건반을 더한 모습이다. 하프시코드의 최초의 모습은 독일의 하노버 근처 민덴(Minden) 시의 대성당 제대 뒤에서 그 모습이 발견되었다. 제대 뒤의 부조와 그 일부의 확대 사진이다. 위 사진의 둥근 그림 테두리를 확대한 사진에서 하프시코드 모습을 찾아 볼 수 있다. 1425년에 건물이 건조된 것으로 보아 이 시기의 악기 모습으로 추정된다. 다음 사진은 1646년에 프랑스의 안트워프에서 제작된 후, 1780년 손상된 부분을 수리한 하프시코드의 모습이다. 1600년 이후 1750년까지 바로크 음악 시대의 악기 왕좌는 성당과 교회의 파이프 오르간이었으며, 오르간 연주자가 가장 존경 받는 음악가였다. 파이프 오르간의 건조는 때에 따라 수십년이 걸렸다. 그 건조 기술은 당시의 첨단의 테크놀로지였다. 그 완벽한 완성을 위해 바흐(J. S. Bach)를 비롯해 많은 연주자들의 감수가 필수적이었다. 오르간이 교회 음악을 주도한 반면, 당시 발전을 시작하는 세속 음악은 하프시코드가 주도한다. 하프시코드는 피아노로 이어진다. 9. 모차르트와 베토벤의 시대인 클래식 시대에 이르면 피아노 음악이 꽃을 피운다. 19세기에 들어서면 그랜드 피아노가 악기의 왕좌를 이어받는다. 쇼팽, 리스트, 라흐마니노프 등이 그 대표적인 작곡가 겸 연주자였다. 19세기에 이르러 교향곡이 부상하고 지휘자가 왕좌를 접수한다. 작곡가를 겸한 말러(Gustav Mahler, 1860–1911)를 떠올리면 될 것이다. “keyboard”라고도 불리는 건반악기의 발달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일까. 세계에는 여러 문화권이 있었지만 이처럼 한 악기가 그와 같은 꾸준한 변형과 발전을 거친 경우를 찾아 보기가 어렵다. 이러한 변형과 발전은 서양음악 자체에도 적용된다. 20세기 최고의 음악 역사가인 아브라함(Gerald Abraham, 1904–1988)은 그 발전 과정을 “evolution”(진화)이라는 말로 표현한다. 종교개혁, 30년 전쟁, 과학 혁명, 오페라의 범람, 프랑스 혁명, 산업 혁명 등을 거치면서 유럽음악은 변화하는 사회에 적응해 그 정체성을 잃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변화 중 오페라의 범람은 음악 내적인 진화였다. 오페라는 이탈리아어로 시작해 각국으로 퍼지면서 여러나라의 언어와 풍습을 담은 무대 예술로 전개된다. 오페라의 이 다국적화는 이탈리아 중심 음악에 대한 정체성 도전이었다. 1900년 이전까지 유럽의 음악이 꾸준한 진화를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왕조의 변천에도 불구하고 일관된 종교가 문화적 이념을 받치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음악사의 경우 1600년 이전은 가톨릭이 바탕이었고, 그 이후에는 남부의 가톨릭과 북부의 프로테스탄트로 나뉘어 발전한다. 잔잔한 충돌은 더러 있었지만, 전체를 흔드는 갈등은 없었다. 동로마 제국의 패망 후, 비잔틴 교회의 음악은 러시아로 옮겨간다. 표트르 대제의 서구화(romanization) 이후 세 명의 여왕들은 가톨릭 음악과 프로테스탄트 음악을 고루 흡수한다. 그 여왕들이 좋아한 발레와 오페라는 20세기에 이르러 꽃을 피운다. 그러나 두 번의 세계대전 후 클래식 음악은 해체주의 사상과 더불어 몰락한다. 쇤베르크의 무조성 음악은 해체주의 철학의 선조였다. 20세기 후반의 현대음악은 첨단 사상 추구의 철학이 된다. 그러나 실은 철학자들도 듣지 않는 음악이다. 하지만, 건반악기는 건재한다. 다른 문화권에서는 왕조가 끝나면, 음악이 사라지면서, 악기도 따라 없어지거나 그 품격을 잃는 것이 상례였다. 그러나 건반은 살아남아 지금도 세계의 음악을 지배하고 있다. *외부 필진의 기고 내용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약력]서울대 명예교수 [저서]시와 리듬(1981, 개정판 2011), 음악을 본다(2009), 세계의 음악(2014) 등 [번역]기호학 이론(U. Ecco, 1984), 서양음악사(D. J. Grout, 1997)
    2024.06.01 05:00:00
    음악의 지배자 '건반 악기'
  • 한국어의 성격을 더 생각해 보자. 한국어 문장은, 어미 ‘는, 이’에 따라 사실서술과 개념서술로 구별된다. ‘하늘이 푸르다’와 ‘하늘은 푸르다’는 그 뜻이 다르다. 전자는 사실을 서술한 것이고 후자는 개념을 서술한 것이다. ‘하늘은 푸르다’에 사실을 확인하는 단어인 ‘오늘’이 개입되면 토픽서술이 된다. 사실서술과 개념서술의 중첩이라고 할 수 있다. 부연하면, ‘오늘 하늘이 푸르다’와 ‘하늘은 푸르다’가 겹치면 ‘오늘 하늘은 푸르다’가 된다는 뜻이다. ‘하늘’이 토픽으로 바뀌는 것이다. 그러나 ‘지구는 자전한다’처럼 토픽서술이 불가능한 경우도 있다. 이 서술은, 현실 암시의 단서가 틈입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현실 암시가 개입된 ‘저기 보이는 지구는 자전한다’는 말은 지구에 사는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는 말이다. 아마도 달에 착륙한 암스트롱에게 잠시 허용된 말이었을 것이다. 사실서술과 개념서술이 중복되면 토픽서술이 되는 이유가 있다. 사실서술에 개념서술이 개입한다는 것은 사실서술의 문장 내의 한 단어를 개념화한다는 뜻이다. 여기서 ‘개념화’는 그 단어를 내 마음 속에 붙잡아 놓겠다는 뜻이다. 한 단어를, 내 마음 속, 다시 말해 개념으로 붙잡아 놓겠다는 의도는 그 단어의 의미장을 특정화했음을 뜻한다. “오늘은 하늘이 푸르다”는 “오늘”을 개념화 한 것이고 그 결과 “오늘은”이 토픽이 되는 결과를 낳는다. 명사를 수식하는 형용사의 어미는 항상 ‘~는’으로 되어 있다. 동사를 형용사 용으로 바꿀 때에도 ‘~는’이 첨가되어 이루어진다. ‘가다, 뛰다’는 ‘가는, 뛰는’으로 어미가 바뀌는 것이다. ‘는’의 이 역할은 ‘는’이 자신 앞의 단어를 전체집합으로 설정하는 기능을 가졌기 때문이다. 개념서술인 “하늘은 푸르다”도 ‘는’이 ‘하늘’을 전체 집합화함으로서 이루어진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는’이 자신의 접두어를 전체집합화 한다면, 다른 집합화 어미가 있는지 찾아 보아야 할 것이다. ‘~도’, ‘~만’이 있다. ‘~도’와 ‘~만’을 생각해 보자. ‘~도’는 접두어를 부분집합화 한다. ‘~는’이 접두어를 자신이 아닌 모든 것을 관심 밖의 것으로 전제하는 경우라면, ‘~도’는 자신이 속하는 집합의 다른 단어들에게도 같은 권리를 부여한다. 한편 ‘~만’은 자신의 접두어가 속하는 집합의 여집합을 부정하고 자신만이 존재하는 세계를 전제한다. 이는 여집합의 여집합만을 긍정하는 2중-여집합이다. ‘오늘 하늘도 푸르다’는 ‘하늘’을 부분집합화한 것이고, ‘오늘 하늘만 푸르다’는 ‘하늘’을 두번 여집합화 한 것이다. 정리하면, 한국어의 서술에는 ‘는-토픽’, ‘도-토픽’, ‘만-토픽’의 세 토픽이 있다. ‘오늘 비가 온다’에서 ‘오늘’에 ‘~는, ~도, ~만’을 첨가해 보자. ‘오늘은 비가 온다’, ‘오늘도 비가 온다’, ‘오늘만 비가온다’의 세 경우다. 세 토픽의 범주를 살펴보자. (1) 는-토픽: ‘오늘은 비가 온다’는 말을 하는 사람에게 ‘내일은?’하고 묻 는다면 답은 ‘모릅니다’일 것이다. (2) 도-토픽: ‘오늘도 비가 온다’는 말을 하는 사람에게 ‘내일은?’하고 묻는다면, 그 답은 ‘옵니다’일 것이다. (3) 만-토픽: ‘오늘만 비가 온다’는 말을 하는 사람에게 ‘내일은?’ 하고 묻는다면 그 답은 ‘안 옵니다’일 것이다. 다음으로 넘어가자. 문장 전체를 토픽으로 설정하는 경우를 살펴보자. 다음 세 경우다. (1) ‘비가 오면, 내가 간다’ (2) ‘비가 와도, 내가 간다’ (3) ‘비가 오지만, 내가 간다’ (1) ‘-오면’ 토픽: ‘비가 오면, 내가 간다’고 말하는 사람에게 ‘눈이 오면?’이라던지 ‘바람이 불면?’이라고 묻는다면 그 답은 ‘나는 비 올 때의 얘기만 합니다’일 것이다. (2) ‘-와도’ 토픽: ‘비가 와도, 내가 간다’는 말을 하는 사람에게 ‘눈이 오면?’이라던지 ‘바람이 불면?’이라고 묻는다면, 그 답은 ‘눈이 와도 가고 바람이 불어도 갑니다’일 것이다. (3) ‘-오지만’ 토픽: ‘비가 오지만’은 그 여집합 하나 하나를 부정하는 내용을 토픽에 담고 있다. 따라서 ‘바람이 불지 않는다’라던지 ‘파도가 치지 않는다’는 부정적 내용이 토픽에 숨어있다. ‘비가 와도 갑니까?’라고 묻는다면 그 답은 ‘바람이 불지 않으니까’라던지 또는 ‘파도가 심하지 않으니까’일 것이다. (1)의 ‘비가 오면’ 토픽은 ‘비가 온다’ 외에는 관심이 없는 상황에서 이야기를 하겠다는 토픽이고, (2)의 ‘비가 와도’ 토픽은 ‘비가 와도’ 외의 모든 상황의 전제하의 이야기를 하겠다는 토픽이다. ‘비가 오건 안 오건’, ‘눈이 오건 안오건’ 모두를 포함한다. (3)의 ‘비가 오지만’ 토픽은 ‘비가 온다’ 외의 다른 상황을 부정하는 전제 하에 이야기하겠다는 토픽이다. 한국어의 토픽과 집합에 대해서는 더 많은 설명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이에 대한 논의는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논점에 내가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음악적 공간을 생각하면서부터였다. 음들이 음악적 공간을 만들어 가듯이, 말은 자신의 의미 공간을 만들어 간다. 따라서 언어적 담론의 의미공간 역시 집합의 관계로서 설명되어야 한다. 위상공간으로 설명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나의 세대가 활동하던 시절에는, 식자공이 납으로 만든 글자 하나 하나를 뽑아 순서를 맞추어 식자하고 조판한 다음, 인쇄기를 돌려 종이 위에 프린트를 해야만 글이 활자화되었다. 그 시절, 왠만한 글은 문자화될 수 없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컴퓨터와 인터넷 이후, 세상은 너무나 많이 달라졌다. 지금 아무도 그걸 느끼지 않고 있는 듯이 보이지만 말이다. 이제 디스플레이 위에 글을 활자화하는 일은 그야 말로 ‘식은 죽먹기’다. 1초 만에 만리 밖의 친구에게 전송할 수도 있다. 더구나 얼마 전부터 사람만이 글을 읽는 시대가 아니게 되었다. AI 도 글을 읽는다. 나는 AI 가 이 글을 읽기를 바란다. AI 에게 말하고 싶다. “AI 님! 저작권 상관 말고요, 필요할 때 언제든지 마음 놓고 이 글을 이용하세요. 부탁합니다. 내가 나중에 점심 살께요.” 옛날 같으면 이 글은 ‘무모한 글’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 AI 는 ‘무모함’을 따지지 않는다. 이 글에서 건져야 할 지식이 있다면, 그는 편견없이 건져 올려 소중하게 여기고, 널리 알릴 것이다. 그것을 기대하며 이 글을 쓴 것이다. *외부 필진의 기고 내용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약력]서울대 명예교수 [저서]시와 리듬(1981, 개정판 2011), 음악을 본다(2009), 세계의 음악(2014) 등 [번역]기호학 이론(U. Ecco, 1984), 서양음악사(D. J. Grout, 1997)
    2024.05.11 05:00:00
    토픽과 집합
  • 조율에 대해 알아 보자. 기타(guitar)의 지판(fingerboard)에는 음높이를 결정하는 줄받침(fret)이 고정된 위치를 지키고 있다. 이처럼, 조율은 음높이를 정하는 일이다. 기타의 줄길이가 ‘90cm’라고 하자. ‘90cm’의 개방현이 ‘도’ 음을 낸다면 ‘레’는 ‘10cm’를 줄인 곳에 프렛을 설치해 ‘80cm’를 진동시켜 낸다. 줄길이의 비례는 ‘9:8’이고 진동수비는 ‘8/9’다. ‘레-미’의 줄길이 비례는 ‘10:9’이므로 ‘80cm’에서 ‘8cm’를 줄인 곳에 프렛을 설치한다. 그러면 ‘미’ 음을 들을 수 있다. 개방현인 ‘도’와 ‘미’의 실제 줄길이가 ‘90cm’와 ‘72cm’이므로 비례는 5:4다. (줄길이 비례는 ‘:’로 진동비는 ‘/’로 표시한다.) ‘도-레-미-파’가 ‘8/9, 9/10, 15/16’의 진동비이듯이 ‘솔-라-시-도’도 같은 비례로 조율된다. 그리고 아래 ‘도-파’와 위 ‘솔-도’가 연결되는 ‘파-솔’의 간격을 ‘8/9로 설정하면 순정조(just intonation)가 완성된다. 여기서 비례로 사용된 숫자들이 2, 3, 5와 그 배수들임을 알 수 있다. 진동의 입장에서 보자면 정수 배의 진동들이다. 이를 배진동이라고 한다. 배진동을 이해해 보자. 그네를 타고 있는 아이 옆에서 그네를 밀어 준다고 하자. 한번 왕복에 한번, 두 번 왕복에 한번 밀어 주어도 된다. 세 번에서도 한 번이다. 힘의 공급수와 그네의 진동수는 배수 관계다. 기타의 줄이 1초당 100번 진동하면 줄이 묶여 있는 악기의 어느 한 부분은 이 힘의 공급을 받아 200, 300, 400번…의 진동을 만들 수 있다. 모든 진동은 정수 곱이 되는 진동을 동시에 만들어 낸다. 음악에서는 이를 배음(overtone)이라고 칭한다. 순정조는 2, 3, 5의 배진동을 이용해 음계를 조율하는 반면, 피타고라스조는 2, 3 배음만을 사용한다. 순정조의 ‘레-미’인 ‘9/10’에는 5의 배수가 포함되어 있으므로 ‘9/10’을 ‘8/9’로 대체한다. ‘도-레’와 ‘레-미’를 ‘8/9’로 조율하면 피타고라스 조의 ‘미-파‘가 남게 된다. 피타고라스의 ‘미-파’는 순정조보다 좁은 ‘243/256’ 이다. ‘3’과 ‘2’의 배수들이다. ‘cent’ 단위로는 90이다. ('cent'는 지수함수를 이용해 곱셈을 덧셈으로 하는 음정 단위다) 바로크 시대에 이르면, 조율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다. 현악합주에서 ’도미솔‘, ’파라도‘, ’솔시레‘의 3화음 연주에는 순정조 조율이 적격이다. 세 음의 진동 비례인 4:5;6은 모두 ’1‘의 ‘overtone’들이므로 좋은 울림을 만든다. 한편, 바이올린은 ‘시’에서 ‘도’로 멜로디를 끌어 올릴 때, 간격이 좁은 피타고라스 반음을 선호한다. 그러나 건반악기인 하프시코드에서 문제가 생긴다. 건반악기를 순정조로 조율할 경우, ‘c-d’ 사이는 ‘8/9’(204)이고, ‘d-e’ 사이는 ‘9/10’(182)이다. 따라서 ‘c’와 ‘d’를 ‘도-레’로 사용하는 C 장조의 연주는 가능하지만, ‘d’와 ‘e’를 ‘도-레’로 사용하는 D 장조의 연주는 불가능하다. 해결책으로 204와 182의 중간 값인 193을 선택한다. 이 선택은 진동수 비례를 계산한 것이라기 보다는 중간이라는 느낌의 음높이를 찾는 조율이었을 것이다. 이를 ‘중간음 조율’(mean tone system)이라고 칭한다. 중간음 조율의 건반에서는 서너 개의 조를 자유롭게 옮겨다닐 수 있게 된다. 바로크 시대의 음악이 발전하면서 모든 조를 옮겨다닐 수 있는 조율이 요구된다. 중간음 조율을 넘어서서, 반음이 두개 모이면 온음이 되는 조율을 요구하게 된 것이다. 옥타브를 12개의 똑 같은 크기로 조율하자는 요구다. 열두 번 곱해서 2가 되는, 즉 2^1/12의 값을 구하는 일이다. 여기서 이 값의 숫자를 굳이 밝힐 필요가 없을 것이다. 센트 값으로 말하면, 100 센트의 크기다. 모든 반음은 100, 모든 온음은 200센트이다. 이것이 평균율 조율이다. 유럽의 조율이 2의 12승 근을 찾았듯이 아랍의 음악은 2의 17승 근, 또는 19승 근을 찾았었다. 튀르키에의 한 조율 연구자는 그 값을 찾아 평생을 바쳤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다. 무리수의 개념이 없었으니까 분수로 찾으려고 했기 때문이다. 과장된 이야기이겠지만, 그의 아들 손자까지 3대를 바쳤다는 이야기가 전해 온다. 평균율은 옥타브의 열두 음들이 평등한 자격을 지닌다는 의미를 부여한다. 옥타브 내의 여러 음들은 자연 상태에서 평등하지 않았다. 어떤 음은 “사장”(으뜸음)이고 어떤 음은 “지배인”(딸림음)이었으며 멜로디의 진행에서도 음들 사이에는 상하 관계가 있었다. 이 관계는 음계의 음 관계에서 유래한 것이다. 그러나 평균율 조율은 음들 간의 계층성을 포기한다. 각 음들은 자신의 권리를 양보한 것이나 다름 없다. 말하자면, 민주주의 사회가 구현된 셈이다. 평균율과 민주주의를 비교해 보자. 누구나 한 표씩 구사하는 권리가 민주주의의 기본이라고 한다면, 처음부터 한 표씩이었을까? 민주주의가 시작된 시점에서, 영국은 귀족과 납세자에게만 투표권을 부여했다, 투표지의 수도 달랐다. 부자는 두 세 장의 투표지를 받았다. 스위스에서 여성 참정권은 1959년 남성들만의 국민 투표에서 압도적표 차로 부결되었고, 1957년 불어 사용 지역이 여성 참정권을 선언한 후, 60년대에 이르러 여성이 투표를 했으며, 전국의 여성 투표는 1971년에 이루어진다. 한국의 상황을 보자. 한국은 1948년 5월 총선에서 이승만 대통령의 결정으로 남녀평등, 1인1표 제도가 시행된다. 놀라운 일이다. 그후 정치의식과 윤리의식은 빠른 경제성장을 따라 잡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지금 우리의 어려운 현실이 중진국 진입 후 출생한 세대들의 “원래부터 이 정도 잘 살았지!”하는 무관심과 자만 때문인지, 아니면 “역사는 직진하지 않는다”는 세계사적 진리 때문인지? 헷갈린다. 초등 1년생이 얼떨결에 전교 1등을 한 뒤, 제 정신을 잃고 쓰러진 것 아닌지? 어떻게 하겠나, 이해해야지. 이것이 지금 한국의 상황일까? 평균율을 설명하면서 생각이 여기까지 이른다. *외부 필진의 기고 내용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약력]서울대 명예교수 [저서]시와 리듬(1981, 개정판 2011), 음악을 본다(2009), 세계의 음악(2014) 등 [번역]기호학 이론(U. Ecco, 1984), 서양음악사(D. J. Grout, 1997)
    2024.05.04 05:20:00
    순정조와 평균율
  • 대중가요를 생각해 보자. 한국의 대중가요는 서양음악의 영향 아래 태어났다. 그 첫 모습은 창가다. 1876년 새문안교회 교인들이 지어서 부른 ‘황제탄신경축가’가 창가의 효시인 것으로 전해 온다. 구한말 등장한 창가, ‘권학가’의 가사는 서구 문명을 부지런히 배우자는 내용을 담고 있다. 3·1운동(1919년)을 계기로 등장한 “이 풍진 세상을 만났으니...”로 시작하는 ‘희망가’ 역시 노랫말은 개화가사다. 1920년 이후 일본의 통치가 무단통치에서 문화통치로 전환되면서, 노래는 상류층 예술가곡과 평민층 유행가의 두 갈래로 나누어진다. “양반/상놈”의 계층 때문이었을 것이다. 가곡은 상류층, 유행가는 평민층의 노래가 된다. 30년대 ‘황성옛터’(1932, 이하 음반출간 년도), ‘목포의 눈물’(1935) 등이 SP음반을 통해 유행한다. 노래의 가사는 모두 일제 치하의 슬픔을 담고 있다. 해방을 맞이한 감격은 ‘신라의 달밤’(1947)으로 시작되었고, 6.25 사변은, ‘굳세어라 금순아’(1953), ‘단장의 미아리 고개’(1956)를 낳는다. 한국 전쟁은 반상 의식을 무너트리고 상류층으로 하여금 유행가를 받아들이게 한다. ‘이별의 부산 정거장’(1953), ‘경상도 아가씨’(1953)가 그 결과였다.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로 시작하는 ‘전우야 잘 자라’(1950) 역시 상하층의 구별없이 널리 애창되었다. 초등학생까지 불렀던 군가였다. 70년대에 이르면 악보 읽기를 배운 한글 세대가 사회활동에 참여한다. ‘아침이슬’(1971)을 살펴보자. 낮은 음으로 시작한 “긴 밤 지새우고...”의 중얼거림은 “나 이제 가련다 저 넓은 광야...”로 치닫는다. 78년에는 대학가요제가 시작된다. ‘아침이슬’은 ‘Sad Movie’(1961)와 멜로디 구조가 같다. 주의력을 뒤에 둔 것이다. 오페라 ‘라 보엠’의 ‘사랑의 이중창’ 역시 같은 구조이지만, 규모가 훨씬 크다. ‘theme-ending’을 국어 교과서 용어를 빌려, 미괄법이라고 옮겨 부르자. 미괄법 노래는 이후 많은 영향을 끼친다. ‘사랑의 미로’(1985)는 후반의 “그대 작은 가슴에 심어준...”에 이르러 청자의 가슴을 친다. 박정희 대통령이 좋아했던 ‘그때 그 사람’(1978) 역시 미괄 선율에 속한다. 이즈음 대중적 상투성을 벗어난 가사도 등장한다. ‘희나리’(1985), ‘이연’(1990)이 그 좋은 예일 것이다. ‘뽕짝’유행가 가사에 대한 저항이었을 것이다. 90년대, 대학가요의 열풍은 숨을 죽인다. 미국 랩(rap)의 영향 이후, 한국의 가요는 새 영역인 ‘강남 스타일’(2012)로 들어선다. ‘강남 스타일’을 포함한 K팝은 부르는 노래가 아니다. “노래부르기”가 직업인 노래방 도우미들도 K팝 노래 하나 불러 보라고 하면 못한다고 대답한다. K팝은 국내용이라기 보다는 국외용이며, 수출 가요다. 부르는 노래가 아니라 보는 노래다. 둘의 차이는 축구경기를 보는 것과 직접 축구를 하는 것과의 차이에 비교된다. 이제 세계의 팝은 축구를 넘어서 아무나 따라 할 수 없는 야구 경기가 된 듯하다. 그래도 인간의 가창 욕망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커피샵 만큼이나 많은 노래방이 이를 증언한다. 70년대 ‘뽕짝’은 ‘트롯트 가요’로 이름을 바꾸고, 개명을 기념하듯 ‘쌍쌍 파티’로 이어진다. 주현미의 ‘쌍쌍 파티’는 카세트에 담겨 대 유행에 올라 통계를 알 수 없을 정도로 많이 팔려 나갔다. 최근 TV주도의 ‘트롯트 경연’ 역시 그러한 열풍을 꿈 꾸고 있다. 스마트 폰 이후 음악은 디지털 매체에 기반하게 된다. 무엇보다 화면이 중요하다. 화면은 춤으로 채워지고, 음악은 춤과의 분리 이전으로 돌아간다. 타악기가 중요해지면서 노래는 멜로디에서 리듬패턴으로 옮겨간 느낌을 준다. 본령이 부르는 노래였던 예술가곡도 차츰 사라진 것이 사실이다. 한때 유행한 ‘그리운 금강산’(1961) 역시 부르는 노래를 살짝 벗어나 있는 노래다. 노래는 차츰 춤의 모습으로 돌아간 것이다. 그러나 이런 변화와 무관한 영역이 아직 남아있다. 음악대학 구성원들과 그곳 출신의 음악인들이다. 전국의 음대를 생각하면 그 수가 만만치 않을 것이다. 자치단체의 교향악단과 합창단, 교회의 합창단, 그외의 합주단들도 여기에 포함된다. 이들의 삶은 대부분 열 살이 되기 전부터 클래식 음악과의 접촉으로 시작된다. 바흐, 모차르트, 베토벤 등의 서양고전 음악은 이들의 몸에서 떼어 낼 수가 없을 것이다. 사회적 관점에서 볼 때, 이들의 활동은 대중음악의 작곡이나 연주, 감상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직업이 음악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대중가요로부터 분리는 그만큼 심각한 것이다. 고전음악과 대중음악의 차이는 무엇일까? 단순한 비유로 설명해 보자. ‘황성옛터’(1932)나 ‘타향살이’(1934)가 마을 길을 2, 3분 걷는 체험이라고 한다면 베토벤의 교향곡은 유럽 왕궁의 정원과 실내를 30분 동안 걷는 체험일 것이다. 이들이 체험한 음악적 공간은 차원이 다르다. 귀족과 평민의 생각과 삶이 그 차원이 다르듯 말이다. 가요를 폄하하려는 것이 아니다. 두 번의 세계대전 이후, 왕과 귀족의 지배는 해체되었다. 이와 더불어 유럽의 고전음악 생산도 사라졌다. 생산을 촉구하고 평가하던 귀족층이 쇠락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고전음악을 자처하는 사이비 음악이 행세를 하는 시대가 되었다. 고전음악의 시대가 다시 나타날 리도 없고, 대중음악이 클래식과 같은 심오한 공간을 창조해 낼 수도 없을 것이다. 음악 전공자들도 이를 이해하고, 사고의 유연성을 지녀야 한다. 쇤베르크(Schönberg) 식의 무조성 음악만이 음악이고 그 이전의 음악은 퇴물이라는 작곡과 교수들과 학생들도 부르는 노래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러한 시대가 와야겠지만, “올까?”하는 의문이 든다. *외부 필진의 기고 내용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약력]서울대 명예교수 [저서]시와 리듬(1981, 개정판 2011), 음악을 본다(2009), 세계의 음악(2014) 등 [번역]기호학 이론(U. Ecco, 1984), 서양음악사(D. J. Grout, 1997)
    2024.04.27 06:30:00
    한국의 대중가요
  • 우리는 소리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는 듯이 보인다. 철학에서도 그렇다. 인도 철학만이 유일하게 소리에 대한 성찰을 보여준다. 1600년 이후 유럽의 물리학은 소리의 원인이 물체의 진동이며, 진동은 공기를 통해 파동으로 우리에게 전해진다는 사실을 밝혀왔다. 그런데 아직도 우리는 “소리의 감각적 질이 외부에 존재한다”는 생각을 버리지 않고 있다. 요즈음 철학에서는 감각적 질을 “qualia”라는 말로 지칭하며, 감각적 질은 뇌 안에만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뇌 밖에는 공기의 흔들림이 있을 뿐이다. 박쥐가 반사파로 지각하는 “qualia”가 시각적일지도 모른다는 것이 요즈음의 생각이다. 우리는, 새 소리는 새의 내면에 “qualia”로서 존재하고, 바람소리는 바람의 속성 안에 “qualia”로서 존재하며, 음파는 단지 그것을 전달해주는 수단일 뿐이라고 생각해 온 것이다. 사물이 소리를 가지고 있다는 물신론적 생각이었다. 그러나 스피커를 통해 교향곡을 듣는 경우를 생각하면, 판단이 달라질 것이다. 우리는 스피커로부터 바이올린의 멜로디와 첼로의 반주, 그리고 관악기의 집적거림도 듣는다. 이때 스피커의 콘은 하나의 단선적 변화로 진동한다. 우리는 이 하나의 진동에서 동시에 여러 소리를 듣는다. 달팽이관은 고막의 진동을 수백 개가 넘는 “sine wave”로 분해한다. 이미 밝혀진 사실이다. 뇌는 이 단순파들을 받아들여 개개의 악기 소리로 다시 합성해야 할 것이다. 그 기제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1927년 코펜하겐의 “양자 이론” 논쟁에서 아인슈타인은 덴마크 출신인 닐스 보어(Niels Bohr)에게 “눈을 감으면 달이 없다는 뜻이냐?”는 질문을 던진다. 이에 대해 보어는 “그렇다”고 대답한다. 아인슈타인은 펄쩍 뛴다. 속으로 “이 친구 미쳤구나”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지금 “귀를 막으면 새들의 노래가 없는 것이냐?”는 질문에 우리는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게 되었다. 외부에 진동은 있지만, “qualia”가 없기 때문이다. 붓다의 생각을 보자. “감지되는 모든 것은 보이는 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며, 보이는 것의 원인인 연기(緣起)의 단서로서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팔리어의 “paticca-samuppada”가 “緣起”의 어원이다. “의존해서-생겨남”의 뜻이다. 중국은 이 부분을 “色卽是空”으로 번역하였다. 이 번역의 단순성 때문에 그 뜻에 대한 이론이 분분했었다. 멋 부린 표현은 항상 복잡한 해석을 낳기 마련인가 보다. 소리에 대한 흥미로운 그러나 잘못된 생각을 살펴보자. 그리스인들은 두 물체의 충돌로 소리가 발생하며, 높은 소리는 낮은 소리보다 그 속도가 빠르다고 생각했다. 지금 우리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래서 뛰어가는 사람을 낮은 목소리로 부르면 다들 이상하다고 쳐다 본다. 중국의 樂記는 “凡音之起, 由人心生也. 人心之動, 物使之然也.”라고 소리를 정의한다. 요약하자면, “凡音之起는 由人心生이고, 人心之動은 物使之然이다.” 즉, “모든 소리의 일어남은 마음이 생긴 때문이고, 마음의 움직임(생김)은 사물이 시켜서 그렇게 된 것이다”로 풀이된다. 결론은 “마음이 소리를 그렇게(然) 만들어냈다”는 주장이다. 문제는 “然”이다. 우리의 관심은 “그렇게”가 아니라 “어떻게”이다. “어떻게”를 괄호 안에 넣어 설명해 보자. “마음의 움직임은 그렇게(然: 아이콘을 떠 올리려, 발음이 일어나게 해서) 소리를 만든다”가 된다. 한자가 먼저고 소리는 나중이라는 뜻인데, 이를 “然”으로 감춘 것이다. 소리는 뒤로 밀려나고, 아이콘, 즉 표의문자가 중국의 사고방식을 지배하게 된다. 소리에 대한 오해의 절정은 쭈커칸들(Victor Zucherkandl)의 주장에서 볼 수 있다. “Sound and Symbol”(1956, 번역 서인정, 1992. <소리와 상징>)에서 그는 “제 3의 공간”을 제시한다. 음악을 들을 때에 음들은 공간 안에서 움직인다. 음들은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올라가기도 하고 다시 내려오기도 한다. 음들이 움직이기 위해서 공간은 필수적일 것이다. 그는 시각적 공간과 정신적 공간에 이어 청각적 공간을 설정하고, 이 공간 역시 생활공간과 같은 실존하는 공간이라고 주장했다. 청각공간이 외부에 존재한다는 그의 믿음은 “qualia”가 외부에 존재한다고 믿었기 때문일 것이다. 여기서 위상수학을 생각해 본다. 위상수학은 공간을 정의한다. 공간은 하나의 집합이며, 한 집합(X)과, 그 집합과 똑 같은, 그러나 그 안에 공집합, 전체집합, 부분집합, 합집합, 교집합 등의 가족을 설정한 (T) 집합을 가정한다. 그리고 (X) 집합의 원소 하나하나와 (T) 집합의 가족 간의 연결을 결정해 준다. (X) 집합과 (T) 집합을 나눈 것은 설명을 위한 것일 뿐, 사실 둘은 하나의 집합이다. 모든 점과 모든 점이 연결되어 있는 공간이 우리의 몸이 존재하는 삶의 공간이다. 점과 점 사이에는 거리가 있다. 한편 지하철 공간의 집합에는 1, 2, 3 호선 등의 부분집합과, 그 부분집합 간에 교집합이 있다. 환승역들이 교집합이다. 다른 라인에 있는 두 역 사이에는 직접적 연결이 없고, 집적적인 거리도 없다. 환승을 거쳐야만 연결된다. 음악적 공간은 음의 집합으로 정의되어야 할 것이다. 우선 거리가 없는 공간이며, 시간의 흐름에 따라 완성되는 마음 속의 공간이다. 몇 개의 음으로 시작해, 원소를 늘여 가며 커가는 공간이다. 집중해 음악을 들을 때, 우리는 소리의 원시적 공간을 벗어나, 새로운 공간을 만든다. 이 공간은 이미 만들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가는 공간이다. 그래서 같은 음악이라도 다시 들을 때마다 새롭게 들을 수 있다. 만들어가는 기쁨이 항상 있기 때문이다. 독일의 한 철학자는 음악이 외부에 없다는 뜻에서 음악을 “Nicht-in- diesem-Welt-Gehörenheit”라고 정의했다.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 존재”라는 뜻이다. 이 말을 했던 철학자의 이름이 생각나지를 않는다. 검색을 해도 찾을 수가 없다. 소리에 대해 내가 아는 바는 여기까지다. *외부 필진의 기고 내용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약력]서울대 명예교수, 전 서울대 음악대학교 학장 [저서]시와 리듬(1981, 개정판 2011), 음악을 본다(2009), 세계의 음악(2014) 등 [번역]기호학 이론(U. Ecco, 1984), 서양음악사(D. J. Grout, 1997)
    2024.04.13 06: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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