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162
  •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제 47회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재집권에 성공하며 세계 경제에는 다시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다. 트럼프 당선인은 중국의 미국 내 중요 인프라 소유를 제한하고 중국산 필수 상품들의 수입을 단계적으로 폐지하는 등 중국에 적대적인 정책들을 내세우고 있다. 미국이 주도권을 잡길 원하는 항공모빌리티 산업, 비트코인 등이 주목을 받는 것은 이 때문이다. 전기차 산업과 관련해 기존 바이든 대통령이 내걸었던 전기차 판매량 40%를 목표로 하는 일명 ‘바이든 협정’을 폐지할 가능성이 크다. 전기차 보조금도 없앨 것으로 보인다. 현대차, 기아 등은 미국 시장에서 테슬라에 이어 점유율 2위를 차지하고 있어 보조금 폐지는 한국 자동차 수출 기업에 큰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반해 중국과의 경쟁에서 주도권을 가져와야 하는 ‘항공모빌리티(UAM)’ 산업은 정책적 육성산업으로 선정하며 강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항공모빌리티란 드론을 활용하여 도심 속 하늘을 자유롭게 주행항 수 있는 새로운 교통망 산업이다. 현재 자동차 업계를 넘어 다양한 글로벌 기업들이 이 분야에 뛰어들고 있는 상황이다. 향후 2040년에는 항공모빌리티 산업의 시장 규모가 1조 5000억 달러까지 성장할 것으로 보이는데 각종 기술적, 제도적 문제들이 해결된다면 성장 속도에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주요 항공 모빌리티 관련주인 ‘아처 에비에이션(AHCR)’, ‘버티컬 에어로스페이스(EVTL)’, ‘조비 에비에이션(JOBY)’ 등과 함께 한국의 한화에어로스페이스와 같은 기업들의 성장 역시 긍정적인 영향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또 트럼프 당선인은 우크라이나 전쟁의 빠른 종언을 공언한 만큼 당선 이후 우크라이나 재건 관련 종목과 건설, 토목장비 관련주가 관심을 받기도 했다. 가장 뜨거운 화두는 역시 비트코인이다. 트럼프 당선인의 당선 이후 비트코인 가격은 사상 처음으로 9만 달러(원화 약 1억 2600만원)를 돌파하며 30%가까이 급등했다. 트럼프는 가상자산 확대를 바탕으로 각종 규제 완화와 함께 미 연방준비위원회(FED)가 비트코인을 전략자산으로 비축해야 한다고도 주장했다. 그리고 미국 부통령 J.D.밴스가 가상화폐 보유자로 알려진 점과 가상자산 관련 인물인 일론 머스크(테슬라 CEO)가 트럼프를 지원한 점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최근 가상자산의 대표인 비트코인은 금리 인하로 인한 유동성 확대와 함께 상장지수펀드(ETF)로 상장하며 자금 유입이 이뤄지고 있는 상황이다.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미국의 블랙록 또한 지속적으로 비트코인을 매입하고 있으며 미국의 가상자산 거래소인 ‘코인베이스(COIN)’가 상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전통자산에 비해 가상화폐는 위험성이 매우 높은 자산이며 현재 과매수 상태에 돌입한 상황이므로 변동성 확대에 대한 의문점과 함께 금리 인하 둔화로 인한 하락 가능성도 충분히 존재한다. 따라서 많은 공부와 함께 시장 모니터링이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이렇게 트럼프 당선인의 정책에 따라 글로벌 경제가 영향을 받는 만큼 지속적으로 다양한 산업들을 파악하고 정책 변화에 대한 흐름을 주의 깊게 살피며 투자할 필요가 있다.
    2기 트럼프 시대의 재테크 전략
    by 김상학
    2024.11.18 15:51:24
  • # 서울 용산구 보광동에 위치한 나홀로 아파트. 최근 감정가 16억 7000만원의 위 아파트가 경매 매물로 나왔다. A씨는 위 아파트가 재개발 정비사업이 진행 중인 한남3구역 내에 위치한 사실을 알고, 공격적인 입찰가를 써 내기로 마음 먹었다. 한남3구역은 현재 이주가 진행 중이라 신축아파트가 완공되기까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A씨는 서울 핵심지인 용산에 신축아파트를 가질 수 있다는 꿈에 설레어 지난 10월에 열린 매각기일에 감정가보다 5000만원을 높여 입찰가를 써 냈고, 2등과 3억원 이상의 차이로 최종 낙찰자로 선정되었다. A씨가 필자에게 연락을 해왔다. 한남3구역에 위치한 신축아파트를 가지고 싶어 경매 물건에 입찰해서 낙찰자가 되었다는 이야기였다. 입찰보증금만 해도 무려 1억 4000만원. 낙찰자로 최종 선정된 후에서야 비로소 질문을 해왔다. “제가 재개발구역 내의 경매 물건을 낙찰받았으니 신축아파트를 받을 수 있는 것 맞나요?” 필자는 잠시 이 경매 물건을 살펴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A씨가 경매 낙찰을 받았음에도 신축아파트를 받을 수 없음을 금방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재개발사업이 완료된 후 새로 지어진 신축아파트를 분양받기 위해서는 해당 재개발구역의 ‘조합원’ 지위를 가져야 한다. 재개발구역 내에 주택을 가지고 있다면 조합원 지위를 가질 수 있는 것이 원칙이긴 하나 신축아파트를 원치 않는 사람도 있기에 특정 시기까지 정비사업에 참여할 뜻을 밝히지 않는다면 현금청산자가 된다. 현금청산자가 되면 신축아파트 대신 현금으로 보상금을 받게 된다. 이때의 보상금은 원래 가지고 있던 구축아파트의 감정가를 기준으로 산정한다. 그런데 서울 지역의 경우 부동산 투기를 근절하기 위하여 여러 정책들이 시행되고 있고, 이는 정비사업과 관련해서도 마찬가지다. 정비구역의 경우에는 흔히 P(프리미엄)를 노린 투기수요가 많은 편이기에 도시정비법에서는 투기수요를 막기 위해 조합원의 지위를 승계할 수 있는 특별 조건을 규정하고 있다. 이 법률에 의하면, 경매를 통해 조합원 지위가 승계되기 위해서는 최소 2가지 조건은 갖추어야 한다. 첫째 원래 소유자가 ‘조합원’이어야 하며, 둘째 해당 경매 사건이 ‘국가’, ‘지방자치단체’ 또는 ‘금융기관’이 신청한 경매이어야 한다. 위 경매 사건에서는 원래 소유자가 한남3구역의 조합원이어야 한다는 첫 번째 조건은 충족하고 있었다. 하지만 두 번째 조건에 문제가 있었다. 왜냐하면 해당 경매는 ‘입주자대표회의’가 원래 소유자가 체납한 미납관리비를 받기 위해 신청한 경매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입주자대표회의는 국가, 지방자치단체, 금융기관 중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위 경매 매물을 낙찰받는다고 하더라도, 원래 소유자가 가진 조합원 지위를 승계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조합원 지위를 승계할 수 없다면 현금청산자가 된다. A씨는 한남3구역 내 주택의 소유권을 경매로 취득하긴 했지만 재개발사업이 종료되면 신축아파트를 받는 것이 아니라 원래 구축아파트에 대하여 산정된 감정가에 따라 보상금만 받게 된다. 이런 사정을 알게 된 A씨는 잔금 납부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조합원 지위를 승계할 수 있음을 전제로 높은 가격의 입찰가를 산정했었기 때문이다. 실제 조합에 확인해본 결과 위 경매물건의 현금청산자로서 받을 수 있는 보상금도 약 9억원 정도만 책정되어 있었기에, 17억원 이상의 입찰가로 낙찰을 받은 A씨 입장에서는 큰 손해가 되는 계산이라 경매 물건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부동산 경매물건을 검색하다 보면, 재개발·재건축 정비구역 내에 있는 주택 매물을 종종 발견할 수 있다. 이런 경매 물건을 입찰할 때에는, 앞서 살펴본 사항에 대해 미리 체크해보아야 함은 물론이고 조합도 직접 방문해 조합원 승계가 가능한 매물이 맞는지 반드시 확인해보아야 한다. 재개발구역의 조합원이 되는지, 현금청산자가 되는지에 따라 그 결과는 하늘과 땅 차이이기 때문이다.
    재개발 물건, 경매투자 고민중이라면?
    by 이시훈
    2024.11.18 15:36:32
  • II장 15. 죽음의 속임수 화들짝 놀란 것은 전화벨 때문이 아니었다. 관리실의 호출이었다. 내가 없다고 여겼는지 한순간 끊기더니, 다시 집요하게 울렸다. 관리실의 이런 질긴 연락은 아파트에 문제가 생겼을 때였다. 수돗물을 며칠째 잠그지 않아서 아래층으로 흘러내리거나, 화재가 발생했거나 비상사태일 경우이다. 며칠 제정신으로 살지 않았기에 내가 실수를 저질렀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나는 관리실 인터폰을 눌렀다. ‘안 받는데 자꾸 그러시니 … 소용이 ….’ 인터폰을 통해 관리실에서 나누는 대화가 들려왔다. 뭔가 심상찮아서, “여보세요”하고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상대방은 어, 하더니 급하게 말했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계신가요? 관리실 소장입니다. 아버님이 편찮으셔서 찾아온 사람이 있습니다.” 순간 제정신이 번쩍 들었다. 급하게 사람을 바꿔 달라고 했다. “대사님의 새 기사 이무진이라 합니다. 아버님이 병원에 계시는데 위급 상황입니다. 모시러 왔습니다. 아버지의 기존 기사는 내가 잘 아는 공식 대사관 직원이었지만, 은퇴 후 아버지가 새로 고용해서 내가 알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기사 이무진은 긴급한 목소리로 서둘러 말했다. “어머님이 옷과 필요한 것을 다 준비해 두었으니 그냥 내려오시면 됩니다. 병원에 가야 하니 신분증과 꼭 마스크를 쓰고 내려오세요.” 나는 구두만 꿰신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갔다. 어지간해서 어머니가 사람을 보낼 분이 아니다. 나는 평소처럼 뒷좌석에 앉으려다가 기사 옆좌석에 올라탔다. 주차장을 빠져나가니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비가 쏟아졌다. 아버지의 상태를 물어보고 싶었지만, 윈도우브러쉬가 매우 빠르게 움직여도 시야 확보가 되지 않아 기사는 앞만 주시하고 있었다. 나는 차가 방향을 잡을 때까지 참고 기다렸다. 아버지가 병원에 입원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이번 국제예술창작재단의 대담만 끝나면 찾아뵙겠다고, 그 대담을 나중에 보실 수 있게 해드리겠다고 자랑까지 했다. 그런데 국제적인 망신을 당할 만큼 죽을 쑤고 심지어 도망자의 신분이 되고 보니 아버지의 얼굴을 볼 용기가 나지 않아 미적거렸다. 자동차가 대로로 접어들었을 때, 나는 서둘러 물었다. “왜 진작 연락하지 않았습니까.” “아무리 전화해도 연락이 되지 않았고 심지어 위치 추적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제가 이 아파트에 와서 초인종을 수없이 눌러도 소용이 없었고, 아파트 입구에 적재된 우편물을 보니 아파트에 없다고 여겨서 결국 돌아갔습니다.” 여러 번 초인종을 누르는 남자를 인터폰 화면으로 보긴 했지만, 코로나 방지 마스크 때문에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없는 상황이었다. 새 기사의 얼굴을 알 리도 없었다. 전도 목적이거나 아파트 관리실의 성가신 동의 사인 등 때문이라고 여겨서 대답하지 않았었다. “아버지의 상태가 심각한가요?” 차장을 때리는 빗방울과 바람 소리에 못 들었는지 기사는 묵묵부답이었다. 아버지의 자동차가 서강대교를 넘어 합정동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갈림길에서 얼핏 바깥을 보니,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이라는 교통 안내판이 오른쪽으로 보였다. 다른 상호나 안내판은 빗물에 보이지 않는데, 그것이 눈에 선명하게 들어온 것이 섬뜩했다. 죽은 자를 묻는 묘원! 외국인 선교사들이 아주 작고 가난한 나라 ‘조선’에 복음을 전하려고 왔다가 마지막에 묻힌 곳이다. 전도가 그들의 소명이라니 말할 나위가 없지만, 죽고 나서도 자신의 뼈까지 이 땅에 묻는 그들의 마음이 감히 짐작이 가지 않았다. 하지만 아픈 아버지를 만나러 가는 길에 유독 외국인선교사묘원이 눈에 들어온 것이 불안했다. 나는 더 빨리 달리라고 말하려다가 말았다. 내 차로 가겠다고 우겼으나, 이무진 기사는 반드시 태우고 와야 한다는 지시를 어머니께 받았다고 했다. 이유를 물었더니, 이무진은 망설였다. “과속으로 사고가 생길까 봐 그러신 것 같습니다.”라며 말끝을 흐렸다. 차는 신촌 세브란스 병원 앞쪽으로 가까워지고 있었다. 입원실 주차장으로 들어간다고 여기는 순간, 기사가 세브란스병원 입구를 지나쳤다. 길을 잘못 든 것 같았지만, 다른 입구로 들어가도 병원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기사도 마음이 급하니 순간적으로 첫 번째 입구를 놓친 모양이었다. 차가 유턴 신호를 기다리더니, 세브란스병원의 다른 입구가 아니라 왼쪽으로 꺾었다. 어! 왜지?, 라는 의문으로 주시하는 동안, 차는 세브란스 장례식장 건물 앞에 도달했다. “장례식장 8호입니다. 지하에서 내리는 것보다 이곳에서 내려서 들어가는 편이 좋을 것 같습니다.” 기사는 나를 내려주고 지하 주차장으로 차를 끌고 사라졌다. 갑작스럽게 친척이 코로나로 죽었을까. 코로나로 죽으면 12시간이 아니라 4시간 안에 화장해야 한다. 그래서 나를 급하게 찾은 것이다. 자존심이 무너지고 수치심에 칭칭 감겨 제대로 먹지도 못한 1주일간을 보낸 뒤라, 갑자기 어지럼증이 느끼며 병원 안으로 들어갔다. 병원은 입장이 엄격하게 제한되고 있었다. 장례식장에는 가족만이 들어갈 수 있다며 신분증과 죽은 가족의 이름을 대라고 했다. 나는 누가 죽었는지 모르기에 신분증만을 제시했다. 직원은 신분증으로 뭔가를 확인하더니 나를 들어가게 했다. 나는 누가 죽었는지 알기 위해 병원 벽면에 계속 올라오는 죽은 자들의 얼굴 리스트를 훑었다. 도대체 누가 죽었기에…. 김담정! 아버지의 온화하고 환한 얼굴이 사진영상에 박혀 나타났다. 상주에 내 이름이 제일 먼저 나왔다. 누나와 여동생의 이름이 보였다. 그 아래 ‘부인’ 어머니의 이름이 보였다. 1주일 동안 칩거하면서 도망가는 악몽을 많이 꾸었고, 과거 잘못한 일도 많이 깨우쳤다. 그런데 이런 악몽까지 꾸는 것은 조금 과하다. 꿈에 시체를 보면 길몽이라고 들었던 기억이 아련하게 났다. 병원 직원은 나에게 병원 지하 1층으로 내려가라고 했지만, 나는 여전히 달아나고 싶었다. 아버지가 아파서 입원실로 가려던 것이니, 장례식장에 가서는 안 된다는 의식이 꿈속에서도 뚜렷하다. 마침 주차장에 주차를 마치고 올라온 기사가 나에게 지하로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를 타라고 권했다. “대사님은 어젯밤에 소천하셨습니다. 그나마 입관을 보실 수 있어 다행입니다.” 기사가 너무나 또렷한 발음으로 말해서, 꿈이 아니라 현실이면 어떡하나 하는 생각이 처음 들었다. “살아계신 아버지를 왜 죽었다고 거짓말을 하십니까.” 나는 힘은 없지만 엄중한 목소리로 물었다. “제가 살아계신다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어머님의 지시였습니다. 찾게 되면 아버지의 죽음을 말하지 말고 데려오게, 라고 하셨습니다. 충격받아 사고를 염려하셔서 제가 모시게 된 것입니다.” 마음이 급하면 폭주하는 내 성격을 어머니는 잘 알고 계셨다. 그렇다 해도 어떻게 죽음의 속임수를 쓸 생각을 하셨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인공낙원의 문』 대담 후에도 사람들은 한결같이 속임수를 쓰면서까지 나를 보호했다. 여태 이런 방식으로 내가 살아왔다고 알려 주려고 다들 음모라도 꾸민 듯했다. 하지만 최소한 죽음의 속임수만은 쓰지 말라고 소리치고 싶었다. 이무진 기사는 걸음을 서둘렀다. “코로나 사태 때문에 입관을 미룰 수 없는 상황입니다. 입관을 보실 수 있게 된 것이 그나마 다행입니다. 입관이라니! 누구 허락으로 아버지를 관속에 넣는다는 말인가. 누구 허락으로 아버지가 죽었다는 것인가. 누구 허락으로! 나는 기사를 따라 좁은 통로를 걸어갔다. 이것이 꿈이 아니라 현실이라는 선명한 느낌이 든 것은 ‘참관실’이라고 적힌 문 앞에 섰을 때였다. 기사가 문을 열어젖혔다. 검은 옷차림의 가족과 몇 명의 미지인에 둘러싸인, 입구 쪽으로 몸을 뉜 틀림없는 아버지의 허연 머리가 보였다. 그 옆에 좁고 긴 나무관이 기다리고 있었다. ▶다음 회에 계속 … 김다은은 ‘당신을 닮은 나라’가 1995년 제3회 국민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소설가로 등단했다. ‘덕중의 정원’ ‘훈민정음의 비밀’ ‘쥐식인 블루스’ 등 20여권 소설책을 출간하고, 다수 번역돼 해외 소개됐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주관한 폴란드 바르샤바대학 작가 레지던시를 비롯, 청송 객주 문학관, 정선 여량면 아우라지 레지던시, 해남 인송문학촌 토문재 레시던시에 참가했다. 이화여대 불어교육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파리8대학에서 불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추계예술대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작권자의 허락없이 무단 부분 혹은 전체 전재, 복사, 배포를 금합니다.)
    종의 기원
    by 김다은
    2024.11.18 09:13:52
  • 정보공개법은 공공기관이 보유하고 있는 정보를 모두 공개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다만 법정된 비공개 사유가 있는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정보를 공개하지 않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공공기관은 있는 그대로의 정보가 아니라 다소간의 검색과 편집을 거쳐야 하는 자료라고 하더라도 이 같은 작업을 거쳐 청구인에게 정보를 제공해야 할 의무가 있고(대법원 2010. 2. 11. 선고 2009두6001 판결 등), 공개 대상 정보의 양이 너무 많다는 것도 비공개의 이유가 될 수 없다(정보공개법 제13조 제3항). 다른 사람에게 공개해서 이미 알려졌다거나 관보 등으로 공개해서 인터넷 검색이나 도서관 열람 등으로 쉽게 알 수 있는 정보라고 하더라도 당연히 공개 청구의 대상이 된다(대법원 2010. 12. 23. 선고 2008두13392 판결 등 참조). 이렇게 정보공개법은 공공기관의 정보공개 의무를 매우 엄격한 기준으로 부과하고 있다. 공공기관의 정보를 국민에게 공개하는 것은 국민 알권리를 위해 중요한 것일 뿐 아니라 국가의 주인인 공공기관을 감시하기 위한 기본적 단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실제로 우리가 공공기관으로부터 제대로 된 정보를 얻어내는 것이 어려운 경우가 많다. 특히 개인정보와 관련되었다거나 관련된 업무가 진행 중이라거나 재판 등이 진행 중이라는 이유로 정보를 공개하지 못한다는 회신을 받는 경우들이 있다. 물론 정보의 공개가 공정한 업무의 집행 등에 방해가 된다면 비공개를 하는 것이 타당하다. 하지만 공공기관이 자신들이 정보를 ‘보유하고 있지도 않으면서’ 청구한 정보의 제목만 보고 비공개 사유를 붙여 비공개하는 경우도 있다. 이 경우는 아주 중대한 위법이라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공공기관이 정보를 비공개할 경우에는 대상이 된 정보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확인·검토해 어느 부분이 어떠한 법익 또는 기본권과 충돌돼 정보공개법 제9조 제1항 몇 호에서 정하고 있는 비공개사유에 해당하는지를 주장·증명하여야만 하기 때문이다(대법원 2018. 4. 12. 선고 2014두5477 판결 등 참조). 이러한 법리에 따르면 ‘존재하지 않는 정보’에 대하여 그 존재 유무조차 확인하지 않고 비공개처분을 하는 것은 그 자체로 중대하고 명백한 위법이라는 판단을 면할 수 없는 것이 된다. 공공기관이 그 정보가 있는지 없는지조차 살펴보지 않고 비공개사유를 기재하여 비공개한다면 국민은 ‘해당 정보의 존재’라는 기본적인 사항 조차 알 수 없게 되기 때문에 그러한 행위는 국민의 권리를 심각하게 침해하는 것이다. 법원은 ‘존재하지 않는 정보’에 대하여 ‘정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유를 들어 공개를 거부한 처분’에 대한 행정소송은 법률상의 이익이 없다며 ‘각하’ 판결을 하고 있지만 ‘존재하지 않는 정보’에 대하여 ‘정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유가 아니라 다른 법정된 비공개사유를 들어 비공개처분을 한 사건에 대하여는 입장을 일관되게 정리하고 있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존재하지 않는 정보에 관해 ‘정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유’로 비공개처분한 것과 달리 존재하는 정보에 대해 그 정보 내용의 비공개 사유를 검토를 하는 것에는 이르지도 않고 정보의 존재 자체조차 확인하지 아니한 채 비공개처분을 하는 것은 공공기관이 정보공개법상 부담하는 아주 기본적이고 단순한 의무조차 행하지 않은 것이므로 이는 ‘중대하고도 명백한 위법’으로 보아 무효라고 판단하여야 한다. 부존재 하는 정보에 대해 부존재를 이유로 비공개 처분하는 사안과는 달리 이 같은 경우라면 이 사건 처분이 위법·무효임을 선언해 피고가 정보공개법상의 기본적인 의무를 이행하지 않아 사건 소가 제기된 법적인 책임을 오로지 피고가 부담하도록 해야 한다.
    ‘보지도 않고 비공개’…사실 존재치 않는 정보였다니[안성훈 변호사의 ‘행정법 파보기’
    by 안성훈
    2024.11.16 08:00:00
  • 14. 곡선의 시간 나는 직선적인 시간의 삶을 사는 사람이었다. 자명종에 맞춰 이른 새벽에 일어나고, 잘 짜진 일정표에 따라 매우 능동적으로 활동하고, 늦게까지 일하고도 밤에는 헬스장에서 근육 만드는 일에 게으르지 않고, 깊은 어둠 속에 지쳐 잠에 빠져들곤 했다. 원하면, 일을 미루거나 심지어 팽개치고 달콤한 휴식을 위해 거침없이 떠날 수도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모든 것을 내려놓고 떠나려고 하는데도 꼼짝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너희는 값으로 사신 것이니 사람들의 종이 되지 말라 어디로 가야 이 한 문장 안으로 들어가는 좁은 길을 찾을 수 있을까. 산 넘고 물 건너 고행을 감행한다고 찾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어쩌면 틀어박혀 성경을 제대로 읽으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대담장에서처럼 눈에 비늘이 덮여 성경을 제대로 읽을 수 없는 상태다. 그래서 떠날 짐을 제대로 꾸릴 수도 그대로 퍼질러 앉아 있을 수도 없다. 서울국제도서전의 피날레 행사의 초대 링크 오픈 시간이 9분 남았다. 두문불출한 1주일 동안, 여태 무슨 일을 하고 살았나를 계속 돌아보게 되었다. 한번 삼킨 먹이를 다시 게워내듯 계속 반추를 하니, 과거에 이미 끝난 일들과 과거에서 끝나지 못하고 현재로 이어진 것들이 구분되었다. 셀 수 없이 많은 국내외 행사들과 내 사유를 담았다고 여겼던 원고들이 허망하게 거의 기억에 남아있지 않았다. 그때그때 청탁에 맞춘 글들이어서 나에게 큰 의미를 남기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이익 관계에 묶인 수많은 행사와 인간관계도 대부분 일회성이거나 조건적이어서 과거에 종결된 경우가 많았다. 직선의 시간에서는 예의와 친절로 무장하면 탈이 날 것이 별로 없었다. 갈등이 생길 조짐이면 중도를 선택했고, 갈등이 터졌을 때는 침묵을 선택하면 최소한 비겼다. 하지만 과거로 끝나지 못한 사건이나 감정들은 현재의 시간으로 이어져 흘러왔다. 그중에 가장 치욕스러운 『인공낙원의 문』의 표지 문구 사건은 되돌이표의 지시처럼 현재의 시간 위로 자꾸 겹쳐졌다. 이 사건 이후로 나는 직선의 시간을 살 수 없게 되었다. 후회와 자책을 되풀이하는 곡선의 시간을 살 수밖에 없었다. 겹쳐진 시간은 수치심의 넝쿨을 만들며 온몸을 휘감는다. 어떤 친절과 예의나 웃음으로도 빠져나갈 수 없는 소용돌이 시간이다. 침묵도 해결책을 주지는 않았다. 지고 나서도 회복력이 빠른 것이 나의 성품인데, 지금처럼 감정이 바닥이 아니라 지하층으로 끝없이 끌려 내려가는 경우는 처음이다. 김아리랑 팀장을 대신해서 온 노랑머리 직원은 내가 도망을 갔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자기 탓으로 사과했다. 그녀는 어떻게 그런 선의의 결정을 선취할 수 있었을까. 내가 그것이 맞는 말이라고, 당신의 어설픈 설명이나 전달로 대담이 끝난 줄 알았다고, 그래서 아주 유유히 그곳을 나갔다고 수긍했다면, 그녀는 직업적으로 큰 타격을 입을 수도 있었다. 어린 여직원 하나가 감히 나를 위해 자기를 희생하겠다고 결단했단 말인가. 촬영기사는 아무 일도 없었던 척 대담 영상을 마무리해서 서울국제도서전에 올려놓고, 아주 멋진 엔딩 장면이 완성되었으니 염려하지 마시라는 문자를 보내왔다. 확인해 보니, 내가 도망간 빈자리를 시작으로 프랑스 작가의 책 『인공낙원의 문』을 클로즈업하여 표지 문구가 화면을 가득 채운 상태로 영상은 끝나 있었다. 나에게 엿 먹이는 엔딩이었다. 대담자였던 프랑스 작가에게 느끼는 감정은 복합적이었다. 그에게는 수치심이자 존경심을 느꼈고, 굴욕이자 선망을 느꼈으며, 그리고 시간을 되돌려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이자 일생에 만난 가장 충격적인 사람이었으며, 더 빨리 만나고 싶었던 사람이었다. 그를 알기 전, 나는 화려한 빛 속에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그와의 대담으로 인해 내가 믿었던 빛이 도리어 어둠임을 자인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지만, 표지 문구 한 문장으로 한 인생을 가짜 빛에서 진짜 어둠으로 던져 넣은 것이다. 대담 중에 파악한 그의 성품으로는 거짓을 말할 사람은 아니었다. 그가 이메일에서 ‘처음으로 대담다운 대담을 했다’고 적은 것은 어쩌면 진실일지도 모른다. 그 전언이 일말의 안도와 위로가 되었지만, 그 앞에서 고양이 앞의 쥐처럼 아무것도 제대로 생각할 수 없던 시간을 떠올리면 쥐구멍이라고 들어가고 싶다. 반복되는 수치심과 죄의식은 한 단편소설의 스토리를 떠올리게 했다. 한 할아버지와 한 할머니가 등산로 입구에서 우연히 만나 자신의 인생에서 이루지 못한 꿈을 이야기하게 된다. 할머니는 한 번만이라도 해외여행을 해보는 것이 꿈이었다고 말한다. 할아버지는 죽기 전에 같이 여행을 떠나보자고 제안하고, 여행 가는 날 공항에서 만나기로 했다. 할머니는 평생의 꿈을 이루기 위해 여권을 만들고, 필요한 옷가지들을 돈을 아끼지 않고 준비하며 가장 바쁘고 설레는 한 달 반을 보냈다. 그리고 약속 날에 공항에서 할아버지를 기다렸다. 출발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지만, 할아버지의 모습을 볼 수가 없었다. 단 한 번 만난 사람이라 얼굴을 알아보지 못하는가 싶어 할머니는 힘든 다리를 끌며 공항 전체를 헤매기 시작했다. 할아버지는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이 단편소설 스토리를 한 작가에게서 들었을 때는 할아버지의 신의 없음에 분노했던 것 같다. 그런데 지금은 할머니가 느꼈을 꿈의 패배가 너무나 쓸쓸하게 가슴에 와 닿는다. 약속 한마디를 지키지 못해 남의 꿈을 얼마나 잔인하게 찢어버렸을까. 초대 링크의 오픈 시간은 2분 23초가 남았다. 그 무정하고 잔인한 할아버지가 나와 다르다고 말할 수가 없다. 지금 나도 약속을 지키지 않고 달아나려고만 하지 않는가. 어, 그렇다. 내가 다시 달아나면, 나는 개인적인 약속이 아니라 국가적인 약속을 어기게 되는 것이다. 아……아버지! 이 약속을 어기면 나의 이력은 그렇다 치고, 평생 외교관 생활을 해오신 아버지의 삶과 업적에 스크래치를 낼 것이다. 불안한 예감이 찾아들었다. 아버지가 크리스천으로 나에게 참빛을 전하기 위해 평생을 애썼지만, 나는 호탕하게 산 편이었다. 외교관의 아들이라는 타이틀 하나만으로도 인간관계나 일이 매우 수월했고 탄탄대로였다. 아버지는 하나님이 자신을 외교관의 자리에 세워주신 것에 언제나 감사하며 세상과 사람을 섬겼지만, 나는 아버지가 외교관인 것에 언제나 감사하며 사람을 부렸다. 크리스천 아버지는 빛과 어둠의 차이를 정확하게 아시는 것 같았지만, 나는 비로소 내 삶이 어둠이라는 사실을 막 깨달았다. 참빛을 알지 못하니 내 자체가 어둠이다. 수치심과 죄책감에 사로 잡인 죄인이다. 아버지를 생각하니 왜 갑자기 불안한지 알 수 없었다. 최근에 건강이 좋지 않다고 들었는데 찾아가서 뵙지도 못했다. 아버지께 전화해야 할 것 같은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초대 링크의 오픈 시간은 채 1분도 남지 않았다. 49초를 남겨놓고 있다. 그때, 깜짝 놀랄 만큼 큰 소리로 전화벨이 울렸다. ▶다음 회에 계속 … 김다은은 ‘당신을 닮은 나라’가 1995년 제3회 국민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소설가로 등단했다. ‘덕중의 정원’ ‘훈민정음의 비밀’ ‘쥐식인 블루스’ 등 20여권 소설책을 출간하고, 다수 번역돼 해외 소개됐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주관한 폴란드 바르샤바대학 작가 레지던시를 비롯, 청송 객주 문학관, 정선 여량면 아우라지 레지던시, 해남 인송문학촌 토문재 레시던시에 참가했다. 이화여대 불어교육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파리8대학에서 불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추계예술대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작권자의 허락없이 무단 부분 혹은 전체 전재, 복사, 배포를 금합니다.)
    종의 기원
    by 김다은
    2024.11.11 09:00:00
  • 인공지능이 검색분야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인터넷에 공개된 정보의 요약과 해당 페이지의 링크(URL)를 제공하는 인터넷검색과의 차별화를 가져오고 있다. 인공지능(AI) 검색은 결과물을 AI 시스템이 생성하여 제공한다는 점에서 인터넷검색과 차이가 있다. 또한, AI 검색결과는 이용자가 입력한 검색 프롬프트의 맥락을 분석하여 그에 적합한 정보를 제공한다. 검색결과는 AI가 웹사이트 정보를 분석하여 검색 맥락에 맞게 생성하기 때문에 그 성격은 편집물로 볼 수 있다. 다만, 내용을 구성하는 부분들이 맥락에 따라, 일정한 체계를 갖고 있다는 점에서 편집저작물로서 인정받을 수 있다. 물론, 전체적으로 하나의 창작적 표현으로 볼 경우라면 편집물과 별도로 창작적 표현으로 볼 여지도 충분하다. 이 경우, AI 검색은 이용자에게 편집물 또는 완성된 창작적 표현으로서 제공된다. AI검색은 다양한 정보의 편집이지만 타인의 저작물이나 정보가 포함된 것이라는 점에서 ‘인용’의 방식으로 편집된다. 저작재산권 제한규정인 인용에 있어서, 저작권법은 구체적인 방법에 대해 기준을 제시하지는 않고 있다. 인용이 될 수 있는 방식, 즉 출처표시가 가능하다면 그 방식에 있어서 문제될 것은 아니다. 따라서, 링크방식으로 이루어지더라도 저작권법상 인용요건을 갖춘 것으로 볼 수 있다. 검색결과의 편집은 이용자의 요구에 의하여 알고리즘에 의하여 이루어진다. 기술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내용통제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일반적인 인터넷검색도 필터링과 같은 기술적 방식이외에 검색결과의 내용에 대한 조작은 쉽지 않다. 검색결과의 조작이 AI 모델이나 검색엔진 차원에서 문제되는 사항이라면, 이는 서비스제공자의 책임 영역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제공자 책임이다. 다만, AI 검색은 결과물에 대해 제공자는 어떤 내용의 검색을 요구받는지 알기 어렵다. 사후적으로 문제되는 내용에 대해 확인이 가능할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AI 검색에 있어서 그 결과물에 대한 책임은 일반적인 온라인서비스제공자(OSP)와 같이, 면책될 수밖에 없다. 기술적으로 AI검색과 인터넷검색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다르지만, 사실상 법적 책임에 있어서는 검색의 기능과 역할을 고려할 때 면책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검색이 정보의 완결성을 높이고, 공익적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엄격한 책임을 지운다면 인터넷상의 다양한 정보에 대한 접근 등 알권리가 훼손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검색결과에 대한 관여를 어떻게 볼 것인지에 따라 책임의 결과가 달라질 수는 있다. 결과를 의도적으로 조작하는 경우와 사회적 가치를 높이기 위해 조정하는 경우에 대한 가치판단의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OSP의 관여는 유해한 정보, 공서양속에 위배되는 정보, 개인정보 등 법에서 금지되는 정보는 필터링될 수 있도록 조정(tuning)이 이루지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법적 의무 이행에 따른 관여는 문제라고 보기 어렵다. 또한, 저작권법은 OSP에게 일반적인 모니터링 의무를 금지하고 있다는 점도 고려되어야 한다. 검색결과에 대한 모니터링을 한다는 것은 일종의 검열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오랜 기간에 걸처 인터넷검색이 다양한 평가를 받았던 것과는 다른 매커니즘으로서 AI 검색의 가치는 좀 더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처럼, AI 검색의 법률 문제에 대한 검토는 검색결과와 검색서비스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는 문제는 없는지 살펴보는데 있다. 결론적으로, AI 검색은 인터넷검색과 차이점이 있으며, 이는 검색결과에 대해 서비스제공자의 개입이 있다는 점이다. 물론, 개입이 악의적으로 왜곡하거나 편향을 부추기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AI 검색의 신뢰성을 배재할 수는 없다. 다만, 결과에 있어서 제공되는 링크가 사실에 기반한 것이 아닌 경우가 발견된다. 즉, 검색결과나 같이 제공되는 링크에 대한 신뢰성을 담보하기 어려운 경우가 있다. 이러한 점은 기술적으로 해결해가는 과정이고, 검색증강생성(RAG) 방식을 통해 검색결과의 신뢰성을 높이고 있지만 여전히 불충분한 면이 발견된다. 저작권법에서 OSP에게 면책을 부여한 이유를 돌이켜보면, 검색서비스가 갖는 공공성이 인정되었기 때문이다. 저작권을 침해하는 결과가 나타나더라도, 일정부문 공익적인 가치평가가 이루어진 경우에는 저작재산권 제한규정을 의율하여 면책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물론, 검색자체가 저작권 침해가 아닌 사실정보만을 제공하는 경우, 그 제공방식이 원저작물의 일부만을 요약의 형태로 제공하는 경우, 그리고 원저작물에 접속할 수 있도록 링크를 제공하는 경우 등을 고려하여 판단하였다. 실상, 저작자의 이익을 침해하는 행위를 검색사업자가 제공하거나 또는 그러한 서비스로 이익을 얻었다고 보기 어려웠다. 이러한 점에서 기여책임이나 대위책임도 지울 수 없었던 것이다. 물론, 일정한 경우 방조책임을 질 수 있으나 저작권법에 따른 책임을 지면 될 것이다. 검색 결과에 대한 저작권법상의 문제는 서비스제공자가 저작권법상 면책을 받는 OSP인지 여부에 따라 결정된다. 전통적인 검색 서비스는 결과물에 대한 개입이 없기 때문에 면책되지만, AI 검색은 일정 부분 개입이 발생하므로 면책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낮다. 특히, AI 검색이 저작권 침해된 콘텐츠를 상업적으로 이용할 경우, 면책이 더욱 어려워질 수 있다. AI 검색제공자가 OSP로 간주된다면 저작권 침해에 대한 면책 가능성이 있을 수 있지만, 다음 조건들을 충족해야 한다. 첫째, 검색제공자가 저작권 침해 여부를 인지하지 못했어야 하며, 둘째, 저작권자가 침해를 주장할 경우 게시중단 조치(notice & take down)를 취하여야 한다. 셋째, 검색제공자가 검색결과를 임의로 가공하지 않고 중립적으로 제공해야 한다. 임의성에 대해서는 명확한 기준이 제시될 필요가 있으나, 단순한 기계적인 관여에 한하여 중립성이 인정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정리하자면, AI 검색제공자는 OSP로 인정될 가능성이 있지만, 저작권 침해 사실을 인지했거나 저작물에 적극적으로 개입한 경우 법적 책임을 질 수 있다. 그동안 검색은 인류의 정보활동에 미치는 공공성을 인정받으면서 저작권법상 면책을 받아왔다. 전통적인 검색과는 다른 면이 있지만, AI 검색 또한 공공성을 무시하기 어려운 서비스라고 생각된다. 최근 가디언지에서는 AI 검색에 대한 조작가능성에 대해 문제제기한 바 있다. AI 검색에 있어서 그 결과에 대한 조작 가능성에 대해 명확한 확인이 필요하다. 검색에 대한 저작권법의 면책조항은 개입이 없이 그대로 전달하는 것을 전제하기 때문이다.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인공지능 검색과 저작권법
    by 김윤명
    2024.11.10 10:00:00
  • 대기업 공채가 사라지고 있다. 전통적으로 국내 대기업은 상반기와 하반기로 나누어 1년에 두차례 신입사원을 공개채용했다. 대학의 졸업 시기에 맞춰 대졸자를 신입사원으로 채용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최근에 많은 대기업이 정기공채를 줄이고 대신 수시채용을 늘리고 있다. 수시채용은 기업이 필요로 하는 분야에 적합한 지식과 경험을 갖춘 인재를 분야별로 선발하는 방식이다. 현대차, SK, LG 등의 주요 그룹은 아예 정기공채를 폐지하고 수시채용만으로 뽑는다. 현대차그룹은 2019년부터 모든 채용을 수시채용으로 전환했고 올해는 고성능차 개발, 배터리 설계, 로봇 사업 관리와 같이 세밀하게 132개 부문으로 나누어 지원서를 받았다. 4대 그룹 중에 삼성만이 유일하게 신입사원 공채제도를 유지하고 있다. 공채가 감소한 이유는 복합적이다. 기술과 산업의 급격한 변화에 신속히 대응하기 위해 일반적인 범용인재보다 실무 분야에 맞는 맞춤형 인재에 대한 수요가 증가했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대규모 공채 시험과 면접을 실시하지 못하게 된 여건도 큰 영향을 미쳤다. 공채로 채용한 신입 직원들을 한자리에 모아 집체교육을 실시하는 것도 ‘사회적 거리두기’ 때문에 가능하지 않았다. 이런 연유로 상당수 대기업이 2020년을 전후해 공채제도를 폐지하게 되었다. 대기업의 신입사원 공채는 산업화 시대의 잔재이다. 대량생산-대량판매-대량소비하던 시대에 대단위로 투자해 고속성장하려면 대규모 인력이 필요했다. 공채는 많은 인력을 단기간에 채용할 수 있는 효율적 방법으로 1950년대 일본 기업들이 시작했고 1960년대부터 우리 대기업들이 본격적으로 도입했다. 대학도 대형화하여 졸업생을 양산하며 공채는 수만명의 대학생이 졸업과 동시에 취업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정부가 청년 고용 측면에서 대기업의 신입사원 채용을 장려한 것도 공채의 확산에 기여했다. 대기업의 공채 규모가 정경밀착의 산물로 받아들여지던 시절도 있었다. 경제가 어려울 때 대통령이 재벌 총수들과 면담하며 경기회복을 위해 투자와 고용을 늘려달라고 요청하면 이에 화답하듯이 대기업들은 몇만명을 채용하겠다는 공채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매년 대기업 그룹이 몇 명을 채용하느냐는 중요한 사회적 관심사이었다. 공채는 객관적인 기준에 의해 인재를 평가해 채용하는 제도로 평등과 공정을 중요시하는 우리 사회의 규범과 일치하여 민간기업과 공공기관에서 보편적인 채용방식으로 자리잡았다. 그러나 오랫동안 공채제도가 시행되면서 부작용도 커졌다. 특히 ‘인력-일자리 미스매치’가 악화되었다. 청년의 구직난과 중소기업의 인력난은 대기업 공채로 인해 확대되었다. 기본적인 학력 요건만 갖추면 지원할 수 있는 공채는 대기업 입사의 문을 활짝 열어주는 만큼 엄청난 경쟁을 유발한다. 대학 졸업자라면 누구나 대기업에 취업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입사 경쟁은 고시급으로 치열하다. 유명 대기업의 입사 경쟁률은 100대1이 넘는다. 재수 삼수가 태반이다. 신입사원 공채에 지원할 수 있는 졸업 예정자 신분을 유지하려고 몇 년씩 졸업을 유예하며 계속 도전한다. 그러다 나이가 차서 안 되면 결국 취업 자체를 포기한다. 대기업에 입사하지 못한 청년은 패배의식에 사로잡혀 다른 일자리를 가질 생각도 못 한다. 현재 일도 하지 않고 구직 활동도 하지 않는 20대 청년이 44만명에 달한다. 여기에 30대까지 더하면 73만명이나 된다. 일하지 않고 있는 20~30대 청년 인구가 이처럼 많지만, 중소기업은 인력난에 시달린다. 한국고용정보원이 1014개 중소기업 대상으로 ‘청년고용 실태’를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중소기업이 청년 직원 채용이 어려운 이유로 ‘지원하는 청년 구직자 자체가 부족하다’는 응답(53.2%)이 가장 많다. 인재들이 대기업에만 쏠리고 중소기업을 기피하는 현상이 고착된 것이다. 대기업의 신입사원 공개채용이 줄어들고 경력자 수시채용이 확대되면 청년 실업과 중소기업 구인난이 어느 정도 해소될 것으로 기대된다. 사회생활을 갓 시작하는 청년은 처음부터 대기업에 입사하기 어렵게 될 것이다. 그러면, 중소기업에 먼저 취업해 경험을 쌓고 그다음에 대기업으로 옮겨가는 기회를 노릴 것이다. 이럴 경우에 중소기업의 인력이 대기업으로 유출되는 문제가 발생하지 않느냐는 우려가 제기될 수 있다. 그러나 지금도 중소기업의 인력 이탈은 심각하다. 정부가 중소기업 재직 청년의 장기근속을 유도하기 위해 만든 ‘청년내일채움공제’ 가입자의 35.4%는 2년 이내에 퇴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소기업 대상의 실태조사에서도 청년 근로자가 퇴사하는 가장 큰 이유로 ‘더 나은 곳으로 취업하기 위해’(68.7%)가 꼽힌다. 공채 시대에 중소기업에 취직한다는 것은 대기업에 취업하지 못한 낙오자라는 낙인이 찍힌다. 이런 사회적 인식이 청년들의 중소기업 재직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벽이다. 공채가 사라져 대기업에 취업할 가능성이 낮아지면 중소기업에서 신입으로 시작해 경력을 쌓고 대기업으로 이전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자리잡을 것이다. 그럼 중소기업 근로자에 대한 편견이 해소돼 중소기업을 선택하는 청년이 늘어날 것이다. 일단, 중소기업이 오지 않을 인재가 온다는 것만 해도 큰 변화이다. 입사한 인재가 떠나지 않고 장기재직하도록 붙잡는 것은 중소기업의 몫이다.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대기업 공채가 사라져야 청년과 中企가 산다
    by 임채운
    2024.11.10 09:06:51
  • 13. 좁은 길 거의 한 주간 두문불출했다. 음식을 제대로 먹지도 않았는데, 수염은 무슨 영양분으로 이렇게 자라났을까. 괴로움을 잊으려고 술을 마시거나 잠을 잔 것도 아니었다. 나는 도리어 맨정신으로 도망자의 사태를 직면하고 있었다. 1주일 전 아파트로 돌아오면서 꺼내온 우편물들은 뜯기지 않은 채 거실에 흩어져 종이 홍수가 난 상태였다. 우편물은 세상과 내가 연결되어 있다는 증거물이었다. 매월 구독하는 문화예술잡지들, 증권사에서 보내온 투자 설명서, 인터넷 쇼핑 광고물, 아파트 관리비 통보 등이었지만 고스란히 그대로 있었다. 1주일 동안 다시 배달된 우편물들이 우편함 입구에서 넘치다 못해 삐져나와 있을 것이다. 나는 흩어진 우편물들을 설렁설렁 살펴보다가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이름으로 발송된 초대장을 뜯었다. 서울국제도서전에 참가한 세계 각국 작가들을 초청하는 온라인 행사의 초대장이었다. 작가들을 위해서 영어와 프랑스어와 스페인어로 축사를 해달라는 부탁을 이미 한 달 전에 받았고, 나는 승낙을 한 상태였다. 날짜를 보니 행사는 오늘이었고 3시간도 채 남지 않았다. 초대계정을 뚫어지게 보다가 초대장을 덮었다. 또 다른 초대장이 눈에 띄었다. 아는 유튜브 스타 S가 보낸 것으로, 온라인에서 남녀 만남을 주선하는데 오프라인처럼 마스크를 쓰고 참가해야 하는 것이 특이사항이라고 했다. 행사 제목은 ‘여자를 안달나게 하는 법’이었고, 마스크는 안날나게 하는 법의 일환이었다. 나는 미친놈처럼 웃어 제겼다. 내가 폭소를 터뜨린 것은 S의 콘텐츠가 우스워서가 아니었다. 여자를 안달나게 하지 못했을 때 남자가 느끼는 굴욕감을 유튜브에서 설명하던 그의 언어표현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굴욕감이란 하필 수업 도중에 화장실에 가고 싶어서 손을 들고 허락을 받았는데, 교실을 나서기도 전에 바지에 오줌을 싸버려서 다른 학생들이 모두 알게 되면서 창피를 당하는 감정 같은 것’이라고 설명했었다. 대담장을 도망 나온 굴욕감이 차라리 그런 감정이라면 견딜만했을 것이다. 오줌을 싼 학생이 교실을 나가도 수업은 진행될 수 있지만, 대담자가 없는 대담은 더는 진행될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당일 몇 시간이나 거리를 헤매면서 타인이 쫓아오지 않는 도망자의 수치심이 어떤 것인가를 뼈저리게 느꼈다. 하지만 굴욕감이나 수치감 때문에 아파트에 1주일이나 나 자신을 감금해 버린 것은 아니었다. 스스로 감금당했다기보다, 아파트를 나설 엄두가 나지 않았다. 지진은 예기치 않게 일어났다. 갑자기 모든 것이 흔들렸고 무너져 내렸다. 내가 여태 단단히 디디고 서 있던 세계로부터 내가 이탈된 듯했다. 이 아파트 안만이 내가 여태 알고 있던 세계를 보존한 느낌이었다. 이전의 세계과 지금의 세계 사이에는 한 문장이 있었다. 수많은 강연에서 나는 ‘언어 한 문장의 힘이 얼마나 강한지를 알아야 한다’고 설파했었다. 그 본보기를 제대로 보여주기라도 하듯, 대담에서 문제가 되었던 한 문장이 나를 이렇게 영혼의 폐허로 내몰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내가 믿었던 지혜와 명철의 세계에서 쫓겨난 느낌이었다. 내 말이 나를 잡는 미끼가 되고 말았다. 나는 순간 쓰레기차 옆 정자에 서 있던 여자가 떠올랐다. 버릴 수밖에 없는 물건에서 마음을 거두지 못해 서 있었던 낭만적인 모습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그것은 자신의 세계가 폐허가 된 광경을 지켜보는 내 모습과 비슷했다. 아니 내 세계의 폐허를 그녀의 눈을 통해 확인하고 있었을지도 몰랐다. 내가 1주일 동안 두문불출하면서도 유일하게 세상 밖으로 머리통을 내민 순간이 떠올랐다. 거대한 철제 집게 손이 사정없이 여자의 머리를 치려던 순간, 나는 놀라서 창밖으로 급하게 고개를 내밀었었다. 어쩌면 그 자리에 있었던 것은 여자가 아니라 나 자신의 페르소나를 환상적으로 본 것인지도 모른다. 서울국제도서전의 휘날레 행사는 30분도 채 남지 않았다. 온라인이지만 제대로 샤워하고 옷도 챙겨 입어야 할 시간이었다. 나는 꼼짝할 수가 없었다. 내가 도망갔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나에게 사과하던 노랑머리도 화면에 나타날 것이고, 자신의 대담자가 말없이 사라져버렸는데도 ‘처음으로 대담다운 대담을 했다’며 장문의 이메일을 보내온 프랑스 작가도 얼굴을 내밀 것이다. 서울국제도서전에 참가한 세계 각국 작가들도 나타날 것이다. 국가 차원의 감사와 축사를 하기 위해 각국의 대사나 문화원장도 참석할 것이다. 이 화려한 행사에서 비열한 도망자가 축사를 말해야 할 판이었다. 나를 부끄럽게 만든 것은 도망 그 자체가 아니었다. 도망조차 하지 못하는 양심을 가졌다면 절망했을 것이다. 나는 대담장을 빠져나오면서, 아니 도망 나오면서, 도망 나오고 나서 한참 헤매면서 그 문장이 성경에서 나온 것임을 선명하게 깨달았다. 그것은 전혀 어려운 추리가 아니었다. 문장의 어투만 보아도 성경에서 나온 것임을 누구나 알아챌 수 있었다. 그런데 대담장에서는 눈에 비늘이 덮인 듯 그것이 보이지 않았다. 그 문구의 출처가 성경이라는 사실을 알고 나서도 달라진 것은 없었다. 나는 성경을 모르는 사람이 아니었다. 유럽권에서 외교관을 지낸 아버지는 모태 크리스천이었고, 출생하는 아이들에게 성경 속 인물의 이름을 주는 서양문화 속에서 유학 생활을 했고, 더구나 유럽의 예술과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성경 통독이 필수였기에 군데군데 뛰어넘으면서 읽은 횟수로 치면 서너 번은 읽었을 것이고, 학문적으로 접근해서 성경의 한 구절이 지니는 가치를 논하는 글을 쓴 적도 있었다. 그래서 문제의 표지 문구가 성경 몇 권 몇 장에 있는지 다시 찾아본다고 달라질 것은 없었다. 지금은 읽어도 읽을 수 없는 문장이기 때문이다. 나는 두려움이 일었다. 진리가 나를 자유케 한 것이 아니라 도리어 어둠 속에 나를 가두어 버린 상태였다. 누군가 숨어서 나를 기다리다가 잡아채서 어둠의 주머니 안에 가둔 듯이 보이지 않았다. 이 어둠에서 계속 발버둥치면서 영원에 갇힐지도 몰랐다. 하지만 구조대의 신호가 반짝이고 있었다. 10분 안에 온라인 행사의 계정 안으로 들어가서 보란 듯이 여러 언어로 축사를 해주면 그것으로 충분할 것이다. 내가 이 초대장에 응한다면, 나는 과거의 나를 아주 쉽게 복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우편함을 가득 채우는 세상의 수많은 요청에 응답하며 그전보다 더 큰 명예와 영예를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심지어 국제예술창작재단의 실패한 대담도 노랑머리의 잘못으로 치부하면 그만이었다. 그녀의 애매한 전달로 대담장을 떠났다는 거짓말 한마디면 뒷마무리를 충분히 할 수도 있었다. 프랑스 작가가 보내온 ‘대담다운 대담을 처음으로 했다’는 문장을 보여주면, 그 대담이 얼마나 성공적이었는지 주변을 손쉽게 납득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세상을 조금만 속이면 나는 기존의 세계로 복귀할 수 있었다. 세상의 수많은 책의 문장들에 말을 걸며 내 지혜와 명철을 뽐내는 넓은 길을 걸어갈 수 있었다. 세상의 수많은 책을 방패 삼아 세상에서 더 많은 명예와 기쁨을 누릴 수도 있었다. 하지만 무엇이 내 영혼을 혼미하게 하여 그 표지 문구를 이해하지 못하게 했는지 알고 싶었다. 표지 문구, 그 한 문장 안에 내가 여태 만나지 못한 세계가 있다는 것을 이제는 부인할 수가 없다. 나는 우편물들 안에 든 수많은 책과 문장들이 제시하는 넓은 길로 다시 나가기보다, 여태 가보지 않은 길, 프랑스 작가가 선택한 표지 문구 한 문장의 의미 안으로 들어가 보고 싶었다. 그것은 인간적인 경쟁심도, 내 자존심도, 진정한 독서의 신이 되기 위한 결단도 아니었다. 그 한 문장의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그 한 문장의 세계 속에서 살아보고 싶었다. 나는 그 한 문장 안의 좁은 길로 들어가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 나는 정말 그 문장으로 들어가는 입구를 찾아 떠나기로 했다. ▶다음 회에 계속 … 김다은은 ‘당신을 닮은 나라’가 1995년 제3회 국민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소설가로 등단했다. ‘덕중의 정원’ ‘훈민정음의 비밀’ ‘쥐식인 블루스’ 등 20여권 소설책을 출간하고, 다수 번역돼 해외 소개됐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주관한 폴란드 바르샤바대학 작가 레지던시를 비롯, 청송 객주 문학관, 정선 여량면 아우라지 레지던시, 해남 인송문학촌 토문재 레시던시에 참가했다. 이화여대 불어교육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파리8대학에서 불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추계예술대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작권자의 허락없이 무단 부분 혹은 전체 전재, 복사, 배포를 금합니다.)
    종의 기원
    by 김다은
    2024.11.04 10:18:21
  • “부동산 경매로 돈 버는 시대는 이제 끝났다.” 부동산 경매 공부를 시작하면, 금방 주위 사람으로부터 듣는 말이다. 과연 부동산 경매로 돈 버는 시대는 끝난 것일까. 이제 부동산 경매는 공부할 가치가 없을 정도로 재테크 수단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했을까. 위 말이 사실이라면 주위 사람의 그 한마디는 ‘조언’이 될 수 있겠지만, 위 말이 사실이 아니라면 그 한마디는 조언이 아닌 ‘훈수’에 불과하다. 위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를 정확히 확인하기 위해, 최근 며칠 간 부동산 경매시장에서 낙찰된 몇 개의 아파트 매물을 살펴보았다. 1. 사건번호 2024타경84 용인시 수지구 죽전동에 위치한 46평형 아파트, 8층에 위치한 이 매물의 최초 감정가는 6억 9,300만원이다. 해당 물건은 1회 유찰돼 지난 10월 28일 5억 3,348만원에 낙찰되었다. 낙찰가는 감정가 대비 77% 수준이었다. 그런데 지난 8월 같은 층의 매물이 매매를 통해 거래가 된 적이 있었는데, 그 실거래가는 6억 8,500만원이었다. 경매를 통해 매수한 사람이 단순 매매를 통해 매수한 사람보다 아파트를 1억 5,000만원 정도 저렴한 가격에 매수한 것이다. 현재 같은 아파트 단지에 나온 비슷한 층수의 매물 호가도 6억 5,000만원부터 시작인 상황이라, 경매낙찰자는 시세 대비 최소 1억원 이상 싼 가격에 아파트를 매수한 것으로 분석된다. 2. 사건번호 2023타경4842 평택시 용이동에 위치한 33평형 아파트, 13층에 위치한 이 매물의 최초 감정가는 5억 4,800만원이다. 해당 물건은 1회 유찰돼 지난 10월 28일 4억 1,055만원에 낙찰되었다. 낙찰가는 감정가 대비 75% 수준이었다. 그런데 지난 9월 비슷한 층수의 11층 매물이 매매를 통해 거래가 된 적이 있었는데, 그 실거래가는 4억 7,000만원이었다. 경매를 통해 매수한 사람이 단순 매매를 통해 매수한 사람보다 아파트를 6,000만원 정도 저렴한 가격에 매수한 것이다. 현재 같은 아파트 단지에 나온 비슷한 층수의 매물 호가도 4억 9,500만원부터 시작인 상황이라, 경매낙찰자는 시세 대비 최소 6,000만원 이상 싼 가격에 아파트를 매수했다고 볼 수 있다. 3. 사건번호 2023타경4116 고양시 일산동구 식사동에 위치한 60평형 아파트, 24층에 위치한 이 매물의 최초 감정가는 8억 6,500만원이다. 해당 물건은 1회 유찰돼 지난 10월 23일 6억 7,800만원에 낙찰되었다. 낙찰가는 감정가 대비 78% 수준이었다. 그런데 지난 8월 및 10월 27, 30층의 매물이 각 매매를 통해 거래된 적이 있었는데, 그 실거래가는 각 8억 8,900만원, 8억 2,900만원이었다. 경매를 통해 매수한 사람이 단순 매매를 통해 매수한 사람보다 아파트를 1억 5,000만원 ~ 2억원 정도 저렴한 가격에 매수한 것이다. 현재 같은 아파트 단지에 나온 비슷한 층수의 매물 호가도 8억원부터 시작인 상황이라, 경매낙찰자는 시세 대비 최소 1억원 이상 싼 가격에 아파트를 매수했다고 볼 수 있다. 위 3개 물건은 모두 최신 경매물건이다. 위 3개 물건 모두 경기도에 위치하고 있으며 거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아파트 단지 내의 매물이다. 이 사례들을 통해, 경매시장은 현재도 실거래가에 비해 적게는 수천만원, 많게는 수억원 정도 저렴하게 아파트를 매입할 수 있는 기회가 꾸준히 반복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부동산 경매시장이 과거보다 경쟁이 치열해진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과거보다 경쟁이 치열해지지 않은 시장이 도대체 어디 있단 말인가. 무한경쟁시대에 어느 시장이든 경쟁이 치열해질 수밖에 없는 환경임은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중요한 것은 경쟁이 치열해졌다고 지레 겁먹고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시장 상황에서 꾸준한 노력을 통해 틈새시장을 발굴하고 그 틈새시장에서 나름의 작은 성공들을 이루어나가는 것이다. “부동산 경매는 끝났다”는 부정적인 이야기만 믿고 아무 것도 실천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아무 일도 발생하지 않는다. 오직 긍정적인 마인드를 갖고 행동으로 옮긴 사람에게만 과거의 삶보다 나은 더 나은 미래를 향한 변화가 시작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부동산 경매로 돈 못 번다는 말, 사실일까
    by 이시훈
    2024.11.03 11:10:31
  • 기존 주주가 아닌 제3자에게 신주를 배정하는 방식인 제3자배정 유상증자는, 본래 기업이 신기술 도입, 재무구조 개선 등의 경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는 수단이다. 이는 새로운 자본을 유치하고, 기업의 성장과 발전을 도모하기 위한 목적으로 특정 제3자를 통해 빠르게 자본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 효율적인 방법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이러한 취지에서 벗어나 악용되는 사례들이 종종 발생하고 있다. 주주배정이나 일반공모가 어려운 상황에서 특정 외부 세력에게 유리한 조건으로 신주를 배정하거나, 자본을 편법적으로 돌려받는 등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상장규정은 제3자 배정 유상증자를 악용한 편법적 자금 회수를 방지하기 위해 관련된 상장적격성 실질심사 사유를 규정하고 있다. 특히, 관리종목 또는 투자주의 환기종목으로 지정된 상장법인이 제3자 배정 유상증자를 통해 자본을 조달한 후 단기간 내에 자금을 회수하는 경우가 그 대상이 된다. 상장규정에 따르면, 관리종목 또는 투자주의 환기종목으로 지정된 상장법인이 제3자 배정 방식으로 신주를 발행한 뒤, 그 신주를 취득한 자에게 6개월 이내에 선급금 지급, 금전의 가지급, 금전 대여, 증권 대여, 출자 등의 형태로 자금을 상환한 사실이 공시 등을 통해 확인되는 경우, 이는 상장적격성 실질심사 사유에 해당된다. 이는 자본을 건전하게 확충해야 할 유상증자가 자금 순환이나 불법 자금 회수의 도구로 사용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규정이다. 다만, 선의로 자금을 운용한 기업들도 자칫 불투명한 자금 흐름으로 인해 오해를 받을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기업은 자금 운용의 투명성을 철저히 공시하고, 내부 관리 체계를 강화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특히 관리종목이나 투자주의 환기종목으로 지정된 기업들은 제3자배정 유상증자 과정에서 발생하는 모든 이벤트에 주의를 기울여야 하며, 그 절차가 실질심사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지 꼼꼼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과정에서 전문가의 자문을 적시에 받아 억울한 상황을 방지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부실징후기업의 제3자배정 유상증자
    by 정성빈
    2024.11.02 08:00:00
  • 마침내 우리나라 국채가 세계국채지수(WGBI) 편입에 성공했다. 그 자체의 의미도 크지만 이를 가능케 한 ‘우리나라 외환시장 구조 개선’이라는 성과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이는 외국인 투자자들의 서울외환시장에 대한 접근성이나 원화상품 투자의 편의성을 크게 높였다는 점에서 ‘원화 국제화의 진전’이라 볼 수 있다. 돌이켜 보면 외환 및 금융위기의 여파로 ‘원화 국제화’와 같은 거대담론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WGBI 편입’ 추진이 기폭제가 되어 케케묵은 위기 트라우마를 과감히 떨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중장기적 시야를 가지고 리스크 부담을 마다하지 않은 정부와 한국은행 등 관계 실무진의 추진력에 박수를 보낸다. 이번 외환시장 구조 개선의 내용이 실무적으로 디테일한 이해를 요하는 만큼 관련자가 아니면 다가가기 쉽지는 않다. 그럼에도 외환시장 개장시간을 새벽까지 연장했다는 정도만으로 설명을 얼버무리지 말고 여러 각도에서 대중의 이해의 폭을 넓히는 노력이 필요하다. 과연 어떤 점이 개선되었는지 살펴보자. 무엇보다 국제투자자들은 원화 확보를 위한 외환거래를 전보다 훨씬 편리하게 할 수 있다. 현지 시간대에 원하는 현지 은행과 유로화, 엔화 등을 환전할 때와 크게 다르지 않다. 비록 국제화되지 않은 ‘로컬’ 통화이지만 외환거래가 안정적으로 결제되고 원화금액이 대한민국 시스템내에서 본인의 은행 계좌로부터 필요시 원하는 곳으로 이체되는 데 문제될 게 없다. 다만 현지 은행이 로컬 통화인 원화를 거래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요건을 갖추어 놓아야 한다. 첫째는 서울외환시장에 등록해야 한다. 즉 RFI(Registered Financial Institution)가 돼야 한다. 둘째 RFI는 자기를 대신해서 우리나라 시스템 내에서 원화자금을 이동시키는 업무를 맡아줄 ‘대행’ 은행을 지정해 놓아야 한다. 즉 RFI는 국제투자자와 원·달러 거래(대고객거래)를 하고 서울외환시장에서 타은행과 커버거래(은행 간 거래)를 통해 원화를 확보한 다음 이를 대행은행으로 하여금 국제투자자의 요구대로 이체 등의 업무를 하게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국제투자자들의 원화에 의한 외환거래부터 자산운용까지 원활하게 프로세스가 이루어지는 데는 기존에 잔존해 있던 미세한 불편함을 제거하고 서비스의 수준을 높인 결과이다. 대표적인 예로 국제투자자들의 일시적 원화차입(overdraft)이 허용되었으며, 동 서비스를 통해 결제의 안전성과 완결성이 높아질 것으로 기대된다. 게다가 우리나라 국채 투자의 편의성 증진 측면에서 볼 때 유로클리어, 클리어스트림과 같은 국제예탁결제기구(ICSD)의 통합계좌를 이용할 경우 환전부터 국채 매매까지 일괄 처리가 가능해진 것은 획기적인 개선이라 할 수 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외국인이 국내 보관은행(custodian)을 선임하고 본인 명의 외화 및 원화 계좌를 개설하고 이를 통해서만 외환거래나 국채 매매대금 결제를 해야 했고 그 과정에서 서류 확인 등 복잡한 절차도 많았던 때를 떠올리면 실로 엄청난 변화이다. 이번 외환시장 구조 개선의 효과로서 WGBI 편입에 이어 우리가 기대하는 또 한 가지는 차액결제선물환(NDF) 시장의 변화 가능성이다. 그동안 NDF는 국제투자자들이 원화 없이도 원·달러환율 변동 리스크를 헤지하는 데 매우 유용한 수단이었다. 선물환 거래 시의 계약환율과 만기시의 현물 환율 간 차이에 해당하는 금액을 달러화로 정산하는 편리함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국제투자자들도 유동성이 큰 서울외환시장을 통해 원화금액을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고 외환거래비용도 낮출 여지도 큰 만큼 NDF거래가 원화결제를 수반하는 선물환거래로 대체될 가능성이 있다. 지금까지 얘기를 종합해 보면 그야말로 원화 국제화는 성큼 다가온 듯하다. ‘명목적으로’ 해외에서의 원화차입 수단이 광범위하게 허용되지 않았다 뿐이지 비거주자들이 마음만 먹으면 스왑거래를 통해 원화 차입의 효과를 누릴 수 있고 외환매매도 자유롭게 할 수 있다. 우리나라 거시경제 및 금융정책이 더욱 투명하고 견실해져야 한다고 강조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미 ‘실질적’으로 원화 국제화가 진전된 만큼 바야흐로 원화 국제화 시대를 선언하는 순간이 빨리 올지도 모를 일이다. 그때를 대비해서 중개사들을 비롯한 로컬 금융기관들은 위기 의식을 가지고 서둘러 필요한 준비를 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WGBI로 성큼 다가온 원화 국제화
    by 양석준
    2024.11.02 07:00:00
  • II 부 12. 쓰레기 연인 어제부터 시작된 쓰레기 분리수거가 오늘 아침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나는 4층 아파트 창가에 서서 플라스틱류나 비닐류로 차곡차곡 채워진 거대한 포대기가 작은 섬들처럼 아파트 앞에 놓여 있는 광경을 내려다보았다. 매주 저렇게 많은 쓰레기가 모이는 것이 경이로울 정도였다. 주민 두 사람이 양손에 겹겹이 접어 담은 종이상자들과 빈 병들을 담은 봉투를 번갈아들며 수거 장소로 가는 모습이 보였다. 아파트 앞으로 대형 쓰레기차가 들어서는 것을 보고, 늦장을 부리던 주민들이 종종걸음으로 서둘러 날랐다. 유학 시절, 프랑스 파리의 한 외곽 아파트에 살 때는 부엌에 쓰레기 수거 우체통이 있었다. 우체통 모양의 구멍으로 무슨 쓰레기건 던져 넣었다. 고층에서 아래로 흘러가서 지하 어느 한 곳에 모이는 것을 수거하는 구조였다. 주민은 어떤 경로로 쓰레기가 처리되는지는 알 필요가 없었다. 그 편리한 시스템에 익숙해 있다가, 한국에 와서 고층에서부터 저층까지 모두 쓰레기를 들고나오는 진풍경을 보았다. 며칠 간의 호텔 생활에서 벗어나 아파트 일상으로 진입하면서부터 그 쓰레기 운반 과정을 나라고 피할 수는 없었다. 게으름을 피우면 집안에서 냄새가 스멀거렸기에 어쩔 수 없이 매주 수요일 밤 11시가 넘어서 어둡고 인적이 뜸할 때 나가곤 했다. 나와 비슷한 부류와 마주치면 아는 척도 하지 않고 빈 깡통 던져넣고 도로 들어갔다. 어쩌면 나보다 더 늦은 시간에 나온 올빼미들도 있었을 것이고, 그 행렬은 새벽까지 계속되어 지금 시간에 이르렀을 것이다. 대형집게 크레인 트럭에서 젊은 기사 한 명이 내렸다. 트럭 뒤쪽의 크레인을 움직이자 거대한 집게 손이 하늘에서 천천히 내려갔다. 마치 거대 스크랩의 붉은 손같은 집게가 종이상자를 한꺼번에 움켜쥐었다. 놀라운 효율이었다. 어떻게 저렇게 많은 쓰레기를 운반해가는지 궁금하던 차였는데, 철제 집게 손은 단번에 수십 개의 상자를 한꺼번에 잡아서 올렸다. 어, 거대 철제 스크랩 손이 나무 정자 옆에 서 있는 한 여자의 머리 위로 떨어지는 모습을 보았다. 너무 놀라서 몸을 창밖으로 내밀었다. 다시 보니, 다행히 집게 손이 여자의 머리를 친 것은 아니었다. 직장인이라면 출근 준비를 하고 주부라면 출근 준비를 시켜야 하는 시간이었다. 여자는 아랑곳없이 정자 옆에 서서 붉은 스크랩 손이 땅의 쓰레기를 트럭으로 운반하는 광경을 지켜보고 서 있었다. 짧은 반바지에 푸른 티셔츠를 걸치고 챙이 긴 모자를 쓴 모습이었다. 집게 차와 나무 정자 사이에 간격이 있었지만, 내 아파트에서는 집게 손이 내려올 때마다 여자를 칠 것 같은 각도로 보여 아찔하곤 했다. 왜 저렇게 쓰레기의 매력에 빠져 넋을 놓고 있는지, 나는 비키라고 여자에게 소리치고 싶었다. 이 바쁜 아침 시간에 스크랩 손의 영웅적인 활동에 빠진 여자의 모습이 한심하다 못해 매력적이었다. 고개를 계속 들고 있는 여자를 계속 내려다보고 있는 내 모습이 더 한심하게 여겨졌다. 그 순간에도, 지각 주민 한 명 나타나 재빠르게 쓰레기를 투척하고 사라졌다. 무슨 연유인지 발길을 떼지 못하는 여자를 보면서, 과거 내가 폐차시켰던 자동차가 생각났다. 10년 이상 타고 나니 수리의 빈도가 점점 잦아지더니, 큰 도로 한가운데에서 갑자기 멈춰 버리는 순간이 왔다. ‘푸’른 조명이 음악과 잘 어울려 마음속으로 아꼈고, 내 분주한 스케줄을 잘 맞춰준 ‘조’력자라는 의미에서 ‘푸조’라는 이름까지 붙여주었던 애마였다. 중고차로 처분하려니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위험한 차를 다른 이에게 넘기는 것도 사람이 할 도리가 아닌 듯해서 폐차를 결정했다. 필요한 절차를 밟고 약속을 잡은 날, 폐차장 직원이 나타났다. 자신의 트럭 꽁무니에 간단하게 내 ‘푸조’를 연결하더니 달리기 시작했다. 살아있는 개처럼 내 하얀 자동차가 끌려갔다. 애처롭게 끌려가는 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꼼짝 않고 서 있었다. 너무나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어쩌면 저 여자도 버려야 할 것을 버려놓고, 차마 마음을 떼지 못해서 서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대한 쇠 스크랩 집게 손에 의해 쓰레기 뭉치가 다시 하늘에 붕 치켜 올려졌다. 하늘 위로 올려진 쓰레기 뭉치는 마치 바쳐지는 제물처럼 신성하게 보였다. 다음 순간 쓰레기 뭉치가 트럭 위로 사정없이 떨어져 내렸다. 마치 ‘푸조’가 나에게 버림을 받고 트럭에 연결되어 끌어가던 순간처럼 애잔했다. 인간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의식주를 기꺼이 제공하고 이제 그 껍데기들만 남아서 결국 쓰레기라는 이름으로 쓰러지는 마지막 순간이었다. 나는 ‘푸조’를 위해 애도의 시간을 가지지 못한 것이 후회되었다. 무엇이 그렇게 바쁘고 중요해서 10년 이상이나 내 발이 되어 주었던 존재에게 작별인사도 제대로 하지 못했나 싶었다. 여느 때 같으면, 나는 메모장에 ‘쓰레기를 위해 애도’라는 메모를 남겼을 것이다. 커피를 마시고, 책상 앞에 앉아서, 내가 오늘 창밖으로 본 풍경과 ‘푸조’에 대한 애도와 그리고 붉은 스크랩 집게 차가 트럭 위에 쓰레기를 부려놓은 후 사정없이 짓뭉개서 부피를 줄이던 광경을 묘사했을 것이다. 쓸모를 다하고 사라져가는 것들을 위해 애도한 시간을 그럴듯하게 적었을 것이다. 그리고 상상력을 발휘해서 짝사랑하는 남자의 쓰레기와 여자의 플라스틱 그릇이나 병들이 쓰리기 수거차 안에서 비로소 만나는 상상을 신나게 적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런 ‘쓰레기 연인’의 이야기를 쓰면서, 쓰임을 다하고 사라져가는 쓰레기들을 마지막까지 모욕하고 싶지 않았다. 뻑뻑한 유리 창문을 닫으면서,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진짜 버려야 하는 것들을 결국 버려야 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물리적으로 거처를 옮길 때 정리해야 하는 많은 물건처럼, 마음도 이사하려면 정리해야 할 것들이 생겨날 수밖에 없었다. 버려야 할 것들이 많아진 이유는 내 삶의 중요했던 것들이 더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기 때문이었다. 도리어 그것들로부터 도망을 가야 하기 때문이었다. 중요한 내용물이 다 빠진 거푸집 상황에 직면했기 때문이었다. 갑작스러운 정신적인 위기감 때문이었다. 이 위기감은 내가 프랑스 작가와의 대담에서 도망쳐 나오던 날 이미 감지한 것이었다. 그날, 잠깐의 휴식시간에 국제예술창작재단의 대담 장소를 빠져나오고 말았다. 화장실에 갔다가 다시 대담장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휴식 후에 대담이 다시 이어질 것을 분명히 알고 있었지만, 나는 알지 못하는 것처럼 그곳을 떠나버렸다. 핸드폰으로 나를 찾는 메시지가 계속 들어오고 있는 것도 알고 있었지만, 알지 못하는 척했다. 그리고 밤거리를 정신없이 헤매다가 집에 돌아왔을 때는 도리어 사과 메시지가 도착해있었다. 노랑머리가 보낸 것이었다. 자신의 미숙한 전달로 내가 대담이 끝난 것으로 착각했을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나는 그 사과문을 받고 더 괴로웠다. 어디든지 달아나고 싶었고, 달아날 곳을 찾아 헤매는 난잡한 꿈을 꾸며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그다음 날 아침에는 프랑스 작가에게서 이메일이 직접 와 있었다. 덕분에 처음으로 대담다운 대담을 했다는 매우 정중한 감사 인사와 함께, 혹여 자신의 실수나 오해가 있었다면 알려달라고 적은 글이었다. 나는 정말이지 쓰레기차의 플라스틱들이나 빈 종이상자들처럼 짓뭉개져서 산산이 부서지고 싶었다. ▶다음 회에 계속 … 김다은은 ‘당신을 닮은 나라’가 1995년 제3회 국민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소설가로 등단했다. ‘덕중의 정원’ ‘훈민정음의 비밀’ ‘쥐식인 블루스’ 등 20여권 소설책을 출간하고, 다수 번역돼 해외 소개됐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주관한 폴란드 바르샤바대학 작가 레지던시를 비롯, 청송 객주 문학관, 정선 여량면 아우라지 레지던시, 해남 인송문학촌 토문재 레시던시에 참가했다. 이화여대 불어교육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파리8대학에서 불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추계예술대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작권자의 허락없이 무단 부분 혹은 전체 전재, 복사, 배포를 금합니다.)
    종의 기원
    by 김다은
    2024.10.28 09:00:00
  • 협력사에서 발생하는 ESG 리스크를 어떻게 예방할 수 있을까? 가장 통용되는 방법은 기업이 ‘협력사 행동 규범’(supplier code of conduct)을 만들고 협력사로 하여금 이를 준수하도록 하는 것이다. 즉, 기업은 자신과 거래하는 협력사가 지켜야 할 노동·인권·환경·윤리 등에 관한 준칙을 문서로 제정하여 공표한다. 기업은 협력사에 이 문서를 준수할 것을 권고하거나, 협력사로부터 행동 규범 준수에 관한 서약서를 받거나, 협력사와의 계약서에 행동 규범 준수 조항을 삽입하기도 한다. 행동규범을 지키는 협력사에 인센티브를 부여하기도 하고, 행동 규범을 위반하는 협력사가 있는지 정기적으로 점검하여 시정조치를 취하기도 한다. 행동 규범의 내용은 점점 진화했다. 한 연구 결과에 의하면, 2008년부터 2019년 사이 S&P500 기업이 공시한 행동 규범의 길이는 29% 증가했다. 애플의 협력사 행동 규범 및 부속문서의 분량은 206쪽이다. 전 세계적으로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기대 수준이 높아지고 해외 사업장에서 준수할 ESG 규제가 늘어났다. 기업은 투자자, 고객사, NGO 등의 요구사항을 행동 규범에 반영해 더 많은 글로벌 준칙을 준수하겠다고 선언했다. 행동 규범은 기업이 자율적으로 정하는 규칙에서 시작했지만, 이제 법령상 의무가 되었다. EU의 ‘기업 지속가능성 실사지침’(CSDDD)은 기업이 자사, 자회사 및 협력사에 적용될 행동 규범을 제정하도록 규정했다. 행동 규범은 조달·고용·구매 결정 등 기업의 모든 기능과 운영에 반영되어야 하며, 기업은 직간접 협력사에 행동 규범의 적용을 확대하고 이행을 검증하는 조치도 마련해야 한다. 예를 들어 CSDDD는 기업이 협력사로부터 행동 규범을 준수하겠다는 ‘계약상 보증’(contractual assurance)을 받고, 협력사가 이를 준수하는지 독립적 제3자를 통해 검증할 수 있도록 했다. 조금 의문이 든다. 더 많은 글로벌 준칙을 기업의 행동 규범에 포함하고 협력사에 이를 준수하도록 요구하면, 공급망에서 ESG 리스크의 발생을 줄일 수 있는가? 물론 기업의 윤리적 행동에 대한 기대 수준을 전반적으로 높이는 것은 바람직하다. 다만 중소 규모 협력사는 인력과 자원이 한정되어 있기에 ESG 리스크를 효과적으로 통제하기 어려울 수 있다. 그렇다고 주거래처가 요구한 행동 규범의 준수 및 검증에 관한 계약 조항에 날인을 거절하기도 쉽지 않다. 문제 해결 역량이 부족한 협력사에 계약상보증을 요구하는 것만으로 공급망에서 인권·환경 침해를 실질적으로 예방하기 힘들 수 있는 것이다. 협력사에 요구사항을 전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협력사에 책임을 다하는 것도 필요하다. 독일 정부는 공급망 실사법 해설 가이드에서 기업이 개별 사안에 따라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다음의 사례를 예시했다. A기업의 한 협력사에서 최저임금 미지급 이슈가 불거졌다. A기업은 협력사 행동 규범에 ‘적정임금의 보장’이 명시되어 있다며 협력사들에 시정 및 검증을 요구했다. 확인해보니 최근 최저임금이 상승했지만 A기업의 구매대금은 그대로여서 협력사들이 직원들에게 최저임금을 지급하기가 구조적으로 어려운 상황이었다. A기업은 기존의 구매대금 결정 기준 및 지급 관행을 개선하는 조치를 취함으로써 최저임금 미지급 이슈를 실질적으로 해결하게 되었다. 회사와 협력사, 대기업과 중소기업은 공급망 ESG 리스크를 예방하기 위해 함께 노력해야 한다. 협력사는 행동 규범을 성실히 이행하고, 회사는 책임 있는 구매 관행을 정립해 협력사를 지원할 필요가 있다. 또한 대기업과 중소기업은 서로 동등한 조건에서 ESG 책임을 약속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CSDDD도 “계약상 보증은 회사와 협력사가 책임을 적절히 분담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야” 하며, “중소기업으로부터 계약상보증을 받거나 중소기업과 계약을 체결할 때 사용되는 조건은 공정하고 합리적이며 비차별적이어야 한다”고 명시했다. 우리 공급망에서 책임 있는 기업 행동과 구매 관행이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협력사에 대한 요구, 협력사에 대한 책임
    by 민창욱
    2024.10.26 09:00:00
  • 미국의 금리 인하와 중국의 경기 부양책이 우리나라 증시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경제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설왕설래(設往設來)가 오가고 있다. 그러는 사이 미국 주요 증시는 연중 최고 수준을 갱신했고 중국은 경기 부양책으로 급등이라도 했지만 코스피는 어째서인지 별 반응이 없어 보인다. 왜 유독 코스피만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걸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가지 긍정적인 요인으로 인해 연말에는 밸류업(Value-up) 관련 자금 유입, 금투세 불확실성 해소 등으로 인한 코리아 밸류업을 기대해본다. 코스피 상승을 이끄는 긍정적 요인의 첫번째는 금리 인하 기조와 경기 부양 기대다. 최근 미국과 한국이 나란히 1회 금리 인하를 단행했으며 이는 기업들의 대출 비용을 줄이고 소비를 촉진시켜 경기 회복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 특히 금리 인하가 추가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주식 시장에도 긍정적인 흐름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두번째 긍정적 요인은 중국의 대규모 경기 부양책이다. 중국 정부가 최근 발표한 대규모 경기 부양책은 긍정적인 파급 효과를 미칠 것으로 기대되고, 한국은 중국과의 밀접한 경제 관계를 유지하고 있어 대중국 수출 회복과 산업재, 원자재 수요 증가가 KOSPI 상승을 이끄는 주요 요인이 될 수 있다. 마지막 세번째는 미국 대선 이후 불확실성 해소다. 과거 사례를 보면 미국 대선 이후에는 불확실성이 해소되면서 주식 시장이 대체로 긍정적인 흐름을 보였다. 금융위기가 있었던 2008년 상승과, 코로나가 있었던 2020년 상승을 제외하더라도 2012년, 2016년 대선 이후 12월까지 약 5~6%정도 상승하는 모습을 보여왔고 이번 대선에서도 결과와 상관없이 불확실성 해소가 코스피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상대적으로 저평가 구간인 코스피에 대해 긍정적인 시각을 유지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주식 시장의 변동성을 키울 수 있는 다양한 리스크들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신중하게 고려해야 할 위험 요인 중 첫째는 글로벌 경기 둔화 우려다. 이는 한국 경제와 코스피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중국이 경기 부양책을 시행하고는 있지만, 회복 속도가 예상보다 느리거나 유럽의 경기 악화가 겹칠 경우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는 큰 타격을 받을 수 있다. 두번째는 가장 타격이 큰 반도체 업황의 불확실성이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이 고점 대비 많이 하락해 밸류에이션 측면에서 매력이 높지만 반도체 시장은 여전히 공급 과잉 문제와 가격 하락 압력을 받고 있으며 메모리 반도체 회복이 예상보다 지연되면 이들이 쉽게 반등하기 어려울 수 있다. 이외에도 유가와 물가 불안정성, 미국 연준의 통화 정책도 여전히 불확실한 변수로 작용할 수 있고, 인플레이션이 예상보다 더 강하게 나타나거나 경제 지표가 예상보다 더 좋을 경우 연준은 금리 인하 기조 역시 변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균형 잡힌 시각으로 투자에 임해야 될 때라고 볼 수 있다. 코스피 상승에 대한 낙관적인 전망이 이어지고 있지만, 시장에는 여전히 무시할 수 없는 리스크들이 존재한다. 금리 인하, 중국의 경기 부양, 미국 대선 불확실성 해소와 같은 긍정적인 요소들은 상승을 지지하는 주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고, 동시에 글로벌 경기 둔화, 반도체 업황 불확실성, 미국 통화 정책 변화, 유가 및 물가 변동성과 같은 리스크 요소들은 상승을 제한할 수 있는 요인들이다. 따라서 투자자들은 지나치게 낙관적인 시각에만 의존하지 않고 시장 변동성에 대비한 신중한 전략을 취할 필요가 있다. 긍정적인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장기적인 투자 기회를 세우고 리스크가 부각될 때 마다 분할 매수 전략으로 대응하는 것이 좋겠다.
    지루한 박스피 속 세가지 기회
    by 서진환
    2024.10.26 08:00:00
  • 최근 직장 내 성희롱, 괴롭힘 등으로 정신적, 육체적 피해를 입었다며 동료 직원을 사내 또는 수사 기관에 문제 삼는 경우가 많다. 직원들의 문제 제기는 우리 사회에 만연했던 직장 내 부조리를 해소하는데 상당한 기여를 했다. 다른 한편으로 회사는 제보 사안에 대하여 조사 의무가 있기 때문에 급격히 증가하는 제보 건으로 조사 비용 증가 및 인사권 행사의 제약 등 어려움을 호소한다. 사용자로서는 제보 직원의 문제 제기에 대해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충실히 조사하겠지만 조사 결과 제보 직원의 피해가 확인되지 않았음에도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하는 경우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좋을지 여러 의문이 들 수 있다. 법원 판결에 의하면 직원의 문제 제기가 무분별하게 이루어지는 경우 이는 권리남용으로 문제를 제기한 직원에 대하여 징계가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구체적으로 법원은 문제 제기 직원이 고발사건에 대한 수사기관 출석 요구에 불응하는 등 진정성에 의문이 든다는 이유로 해당 직원이 고발을 남용하여 조직의 단합을 저해하였고, 이는 징계사유에 해당한다고 보았다. 아울러 최근 노동위원회 판정례 중에는 노동청 및 경찰서에 51건의 진정 및 고소, 고발을 한 사례에서 이는 무분별한 구제조치로 회사의 정상적인 업무를 방해하여 징계사유에 해당한다고 보았다. 다만 실제 제보 직원의 무분별한 고발 조치에 대해 징계 조치를 실행함에 있어 많은 주의를 요한다. 특히 직원의 직장 내 괴롭힘 신고에 대한 징계 조치는 제보 직원에 대한 불리한 처우로 형사책임이 문제될 수 있어 각별히 조심할 필요가 있다. 이와 관련하여 우선 제보 직원이 무분별하게 권리남용에 해당하는 법적 조치를 한다고 의심이 되더라도 실제 징계 실행은 시간을 두고 차분히 진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제보 직원이 권리를 남용했는지는 입증이 쉽지 않으므로, 무엇보다 면밀한 사실확인이 필요하다. 먼저 예단을 버리고 제보 직원의 제보 사안에 대하여 일차적으로 조사를 진행 후 결론을 내리는 것이 바람직하다. 특히 직장 내 괴롭힘, 성희롱 관련 제보의 경우 법적 조사 의무가 있으므로, 제보 내용이 막연하거나 반복적이라도 일단은 조사를 진행하는 것이 안전하다. 다만 조사의 깊이나 정도는 기존에 유사한 제보가 있었는지를 고려하여 합리적으로 조절을 할 수 있다. 한편, 조사 진행 중에는 제보 직원에 대한 징계는 유보하는 것이 안전하다. 이후 사내 조사 또는 제보 직원의 고소, 고발이 경찰 또는 노동청에서 무혐의로 종료 된 이후 제반사정을 고려하여 징계조치를 실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징계 수위 관련하여서는 제보 직원에 대한 징계는 법적 리스크가 있고, 분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많으므로, 이러한 점을 고려하여 안전하게 징계 양정을 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만일 그 이후에도 제보 직원이 계속해서 근거가 부족하거나 동일한 주장을 계속하는 경우 징계수위를 높이는 부분을 검토할 수 있다. 회사 입장에서는 반복적인 문제를 제기하는 직원으로 인해 사업장의 분위기가 저해되고 많은 조사 인력이 투입이 되어 어려움이 클 수 있지만 위와 같이 단계적인 조치를 취해야 합리적인 인사운영 원칙을 확립하면서도 관련 법적 분쟁을 줄일 수 있다.
    "모든 것이 불편한 직원은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요?"
    by 이태은
    2024.10.26 07:00:00
  • # 서울에 가깝고 교통은 좋으나 30년된 구축인 경기도 내 A지역의 아파트, 서울에서 다소 머나 신도시 지역 내에 지어지고 있는 신축인 경기도 내 B지역의 아파트 중 하나를 고민 중에 있습니다. 두 개 아파트 모두 8억원의 동일한 가격입니다. 둘 다 괜찮아 보이는데, 어떤 아파트를 매수하는 것이 좋을까요? 최근 ‘얼죽신(얼어 죽어도 신축)’이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다. 신축아파트에 대한 인기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생긴 신조어이다. 신축아파트와 구축아파트를 구분하는 명확한 기준은 없다. 하지만 요즘에는 새로 짓는 신축아파트가 많지 않은 편이라 대략 10년 내에 지어진 아파트는 신축아파트로 본다. 신축아파트는 구축아파트에 비해 여러 장점을 가지고 있는데, 대표적으로 지하의 여유 있는 주차 공간, 아파트 단지 지상에 자동차 출입이 제한되어 아이를 키우기 안전한 환경, 아파트 내 다양한 커뮤니티 시설 등이 장점으로 손꼽히곤 한다. 얼죽신 현상이 팽배한 지금 이 시기에, 서울에 가깝고 교통이 좋은 경기도 A지역에 위치한 30년된 구축아파트와 서울에서 다소 머나 신도시로 개발 중인 B지역의 신축아파트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어떤 아파트를 선택해야 할까? 얼죽신 현상이 뚜렷한 현재의 유행을 따른다면 B지역의 신축아파트를 선택하는 방안을 고민해볼 수 있겠지만, 만약 당신이 두 곳의 선택지 중 B지역을 선택한다면 아무래도 몇 년 뒤 그 선택을 후회할 가능성이 높다. 부동산 투자를 실행함에 있어서는, 현재의 유행을 고려하기보다는 자신만의 명확한 투자 기준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부동산을 비교 선택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게 비중을 두어야 할 가치 기준은 무엇일까? A지역의 구축아파트는 30년이 지났는데 가격이 8억원이다. 보통 30년된 아파트 건물 부분은 이미 노후화되어 사실상 경제적 가치가 거의 없다고 본다. 그런데도 가격이 왜 8억원이나 할까? 약간 과장하여 설명하면, A지역에 위치한 구축아파트의 시장가격 8억원 중 7억9000만원 정도는 땅값일 것이고, 나머지 1000만원 정도만이 건물값일 것이다. B지역의 신축아파트는 같은 8억원의 시장가격이라고 하더라도, 가격 구성이 완전히 다르다. B지역의 신축아파트 가격을 파헤쳐보면 아마 땅값이 3억원, 건물값이 5억원으로 나뉘어져 있을 가능성이 높다. 요즘은 공사비도 폭등한 까닭에 신축 건물값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이런 기준에 비추어 보았을 때, 몇 년 후 두 곳 아파트의 시세는 각 어찌 될까? 신축아파트라도 건물 부분은 시간이 지나면 감가상각을 통해 빠르게 가치가 하락하면서 구축아파트가 될 것이므로, 몇십년이 지나면 건물값은 거의 없는 것과 다름 없게 된다. 결국 땅값만 남는다. 그런데 빠르게 떨어지는 건물값과 달리 땅값은 약간씩이라도 무조건 증가한다. 그렇다면 결국 A지역에 위치한 구축아파트는 구축이라도 그 가치가 꾸준히 계속 올라가지만 B지역의 신축아파트는 땅값이 오르는 속도보다 떨어지는 건물값이 더 커서, 실질적인 부동산의 가치는 점점 더 벌어지게 된다. A지역의 구축아파트가 훨씬 더 비싸지는 것이다. 이런 차이가 발생하는 것은, 같은 경기도에 위치해 있다 하더라도 A지역의 입지가 B지역의 입지보다 훨씬 우월하고 그로 인해 땅값이 훨씬 비싸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부동산 가치의 본질은 땅값에 있고, 땅값을 좌우하는 것은 결국 입지이다. 입지는 쉽게 설명하면 결국 서울에 대한 접근성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부동산의 가치를 구성하는 본질을 깨달아야 위와 같은 비교적 단순한 양자 선택지에서도 어렵지 않게 올바른 투자 결정에 이를 수 있다. 얼죽신이라는 한때의 유행 같은 기준만을 가지고 투자 결정을 하게 되면 잘못된 의사결정을 하게 될 확률이 높아진다. 어떤 분야이든 항상 기본과 원칙에 충실해야 좋은 성과가 따른다. 부동산 투자에서 있어서 가장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요소는 입지와 땅값이다. 신축이라는 포장지는 당장은 대단한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10년만 지나면 그 포장지는 다 해지게 되고 그제서야 포장지 내에 있는 본질이 무엇인지 보이게 된다. 부동산 투자의 기본과 원칙만 기억한다면, 앞으로 임하는 부동산 투자에 있어서 대단한 성공까지는 아니라도 최소한 대단한 실패까지는 절대 겪지 않을 것이다.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구축아파트 vs 신축아파트, 당신의 선택은?
    by 이시훈
    2024.10.20 07:00:00
  • “로또 당첨되면 일단 건물부터 사야겠다.”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는 이야기이다. 그만큼 우리나라는 ‘한정된’ 영토에서 부동산 시장이 발달했고, 그 중요성 또한 대다수의 시민들이 알게 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동산과 함께 대표적인 투자 수단으로 꼽히는 주식에 비해 유동성이 낮고 법적 절차가 훨씬 복잡해 진입 장벽이 높은 것도 사실이다. 부동산학은 부동산 경제론, 부동산 정책론, 부동산 세법, 부동산 민법 등 다양한 학문이 부동산과 관련해 얽혀 있는 종합적인 성격을 보인다. 게다가 한국의 부동산 시장은 수도권의 집값 과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세금 규제 등 여러 정책들의 변화가 큰 편이다. 그렇기에 뉴스에서 접할 수 있거나 일상에서 주택을 구할 때 알아야 하는 기본 용어들부터 익혀야 할 필요성이 존재한다. 부동산을 가장 처음 접하게 되는 시기는 사회초년생 시기에 집을 구해야 할 필요성이 생길 때다. 따라서 부동산을 구하기 위한 거래 관련 용어들이 익숙해져야 한다. 최근 ‘로또청약’이란 신조어가 생길 만큼 ‘주택청약제도’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공공 및 민간 분양 아파트에서 입주자를 모집하기 위한 제도로 가점제와 추첨제 등을 운영하고 있어 기준에 따라 주택청약통장에서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주택 매매까지 힘들 경우 ‘전세 제도’를 활용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는 제도로 월세와 달리 임대료를 지불하지 않는다는 특징이 있다. 기존에 2년이었던 전세 기간이 ‘임대차3법’이 제정되면서 계약갱신이 조금 더 유용해졌다. 하지만 최근 전세사기 등 여러 이슈가 존재하기 때문에 꼼꼼한 공부가 필요하다. 공부를 위해선 해당 부동산이 과거에 어떤 권리관계와 소유권 변동이 있었는지 기록돼 있는 ‘부동산등기부’를 이해해야 한다. 저당권이나 가압류 등 담보나 강제집행 절차가 진행되기 이전 부동산은 더욱 주의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자신이 구할 집과 구매할 제도를 알아보았다면 대출을 위한 금융 관련 용어들도 익혀야 한다. ‘LTV(Loan to Value Ratio, 담보인정비율)’는 주택 가격 대비 대출 가능한 금액 비율을 나타내며 투기과열지구 등 특정 지역에 따라 기준인 LTV가 달라지곤 한다. 대출을 위해선 소득과 관련한 ‘총부채상환비율’ 등도 파악해야 하며, 주택을 매입했다면 향후 주택을 담보로 대출을 받는 ‘주택담보대출’을 활용해야 할 수도 있다. 주택을 매입한 이후는 세금과 관련해 많은 고민을 하게 될 수 있다. 여러 개의 세금들이 중첩돼서 부과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부동산과 관련해서는 취득 시 부과되는 세금인 ‘취득세’와 부동산 소유자에게 매년 부과되는 지방세인 ‘재산세’를 내야 한다. 또한 일정 기준을 초과하는 부동산 보유자는 ‘종합부동산세’를 내야 하며 매매 이익에 대해서는 ‘양도소득세’가 부과된다. 상속이나 증여를 하게 될 시에도 상속세와 증여세가 부과되기에 부동산을 매입하거나 매매할 상황이라면 세금과 관련한 공부 역시 필요하다. 자신이 살고 있던 아파트가 재건축이나 재개발 시기가 됐다면 개발과 건축 관련 용어에 대한 이해도 필요하다. 이러한 절차들은 조합이 설립되고 계획을 승인받는 등 오랜 과정이 필요하지만 개발이 이루어졌을 경우에는 이전보다 고급의 아파트가 건축된다. 따라서 기존 거주자들은 토지를 재배분하는 ‘환지방식’으로 진행되거나 조합원이 된다면 새로운 주택에 들어갈 권리인 ‘입주권’이 주어진다. 이 외에도 부동산 시장과 관련한 ‘부동산 경기지수’, 정부에서 지정하는 ‘투기과열지구’등의 정책 용어들까지 익숙해진다면 관련 뉴스를 보는 데에도 훨씬 수월할 것이다. 최근 GTX-A노선이 개통되고 5호선 연장 등 교통 관련한 정보들 역시 본인이 거주하는 지역 주변의 소식부터 공부한다면 흥미를 끌어올릴 수 있다.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부동산 공부, 용어부터 시작하세요"
    by 김상학
    2024.10.19 08:00:00
  • 얼마 전 ‘데뷔 2년이 지난 4세대 아이돌 뉴진스에 이어 5세대 아이돌이 등장하고 있다’는 기사를 접하고 ‘아이돌이나 아파트나 지금 4세대라는 점은 똑같네’라는 농담을 한 적이 있다. 아이돌의 세계에서는 톱스타가 배출됐거나, 장르의 측면에서 엄청난 변화가 생긴 시점을 기준으로 세대를 구분한다. 1세대는 H.O.T.와 젝스키스, 2세대는 빅뱅과 소녀시대, 3세대는 방탄소년단과 트와이스, 4세대는 뉴진스라고 한다. 아파트의 세대 구분도 과거의 세대가 넘어설 수 없는 특징적인 기능이 기준이 된다. 이미 재건축이 이뤄졌거나 재건축이 진행 중인 1세대 아파트들은 2세대 아파트에 비해 층이 낮고 지하주차장이 없는 경우가 많다. 이와 달리 주로 1990년대에서 2000년대에 지어진 2세대 아파트는 기술의 발전으로 층이 높아지고 지상주차장과 지하 주차장을 함께 갖춘 경우가 많다. 다만 2세대 아파트는 건축법에서 규정하는 놀이터, 도서실, 경로당 등의 시설만 설치돼 커뮤니티 시설이 마련되지 않았다. 2010년대에 건설된 3세대 아파트는 주차장을 지하에 배치하고 헬스장과 키즈까페 등 다양한 커뮤니티 시설을 확보하고 있다. 아파트의 구조적인 측면에서도 남향을 우선했던 11자형 동배치에서 벗어나 ㄱ자형, Y자형 등 다양한 형태의 배치가 생겨났다. 4세대 아파트는 3세대 아파트에서 한층 더 발전된 형태로 ‘소유’의 개념에 ‘거주’의 기능까지 더했다는데 큰 차이를 갖는다. 식사서비스와 수영장, 사우나 등 호텔이나 리조트에서 가능했던 서비스를 즐길 수 있는데다, 주택의 기능적인 측면에서도 높은 층고와 광폭 주차장 등 3세대 아파트와는 차별성을 갖고 있다. 이렇게 주차장, 커뮤니티시설 등을 통해 세대별로 아파트를 구분하는 것은 이런 요건들이 세대를 뛰어넘는데 있어 제약 요인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1세대 아파트는 재건축을 하지 않고서는 지하주차장을 설치하기 어렵고, 2세대 아파트는 재건축·리모델링 없이 세대와 지하주차장을 직접 연결할 수 없다. 3세대 아파트는 공간적인 제약으로 4세대 아파트에서 제공되는 다양한 호텔식 커뮤니티의 확대가 불가능에 가깝다. 이렇게 재건축·리모델링 없이 세대 차이를 극복할 수 없다 보니 4세대 아파트가 갖고 있는 장점이 더욱 부각되고 그에 따른 희소성이 강조되면서 올 한해 아파트 시장에서 가장 큰 폭의 상승세를 기록하게 된 것으로 분석된다. 4세대 아파트에 대한 시장의 관심이 커지면서 최근 분양하는 신축 아파트들은 너도 나도 ‘4세대 아파트’라는 수식어를 달고 마케팅에 나서고 있다. 이 과정에서 ‘거주 비용’에 관한 잡음이 끊이지 않는 것도 특징이다. 다양한 커뮤니티 시설을 제공하고 이러한 시설을 지속적으로 운영하기 위해서는 다른 아파트들에 비해서 더 높은 기본 관리비가 발생한다. 규모의 경제로 3000~4000가구가 넘는 대단지 아파트에서는 어느 정도 비용 절감이 가능하지만, 그 미만의 규모에서는 관리비를 납부하는데 크게 부담이 없는 입주민들로만 구성이 가능한 단지에서나 큰 문제 없이 4세대 아파트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어서다. 이렇게 단지의 규모라는 물리적인 특성, 입주민의 생활수준이라는 사회적 특성이 충족되는 경우에만 4세대 아파트라는 타이틀을 획득하고 또 유지해 나갈 수 있는데, 이 역시 4세대 아파트의 희소성을 강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아이돌의 세대교체 주기가 빨라진다는 말처럼 아파트의 세대교체 주기도 점점 빨라지면서, 벌써 5세대 아파트에 대한 다양한 전망도 논의되고 있다. 내 삶에서 멀어지려야 멀어질 수 없는 부동산 시장, 세대 차이를 극복하려는 노력이 부동산 시장에서도 필요한 이유다.
    아이돌만 세대 따지나…아파트도 생겨나는 세대의 차이
    by 윤수민
    2024.10.19 07:00:00
  • 11. 사람이라는 이름 “아기의 이름 ‘라비’는 생명이라는 뜻이지요?” 내 질문에, 지중해 건너편에 있는 작가의 푸른 눈이 샘물처럼 맑아졌다. “오! 맞습니다. 라비는 죽음의 관에서 나와 새로운 생명을 얻는 인간을 상징화한 것이지요.” “라(La)+비(vie)! 프랑스어를 모르는 독자들은 눈치채지 못할 수도 있어요.” 작가는 이런 말에 민감하기 마련이었다. “책 속의 단어들이 숨바꼭질한다고 여겨주세요. 첫눈에는 안 보여도 중요한 것은 독자들이 찾아내고 말지요. 작가는 일부러 숨길 때도 있답니다.” 순간, 작가가 일부러 숨겨놓은 다른 것을 나는 보았다. 지도에 없는 나라라고 설정되어 있지만, 프랑스어를 계속 키워드로 사용하는 것으로 보면 소설 속 나라는 암암리에 프랑스를 지칭했다. 당장 밝히기보다 마지막 카드로 남겨두고 싶었다. 그가 계속 표지 문구의 의미를 스스로 풀어놓도록 유도했다. “아기의 이름을 왜 홉이 아니라 단테가 짓도록 했나요? 이름을 짓는 것은 보통 그것의 주인이 하는 일인데요.” “오! 예리한 발견입니다. 새 자동차를 개발하면, 그 자동차를 개발한 회사가 이름을 주는 것과 같은 것이지요. 단테가 이름을 붙인 것은 당분간 아기의 주인이 그라는 뜻이지요.” “당분간? 작가님의 이름은 누가 주셨나요? 부모님이 주셨나요?” “오! 아닙니다. 저는 부모님이 누군지 모르고 자랐습니다. 나에게 처음 이름을 준 자가 누구인지 잘 모릅니다. 자라면서 우여곡절로 이름이 여러 번 바꿨고, 지금은 제가 지은 필명으로 살아갑니다.” “그랬군요. 제가 실례되는 질문을 한 것 같군요.” “혈육의 부모는 없었지만, 저의 주인은 따로 있습니다.” “자유로운 작가가 그런 말씀을 하시니…….” “작가로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으로 말하는 것입니다. 대담자 씨! ‘사람’이라는 이름을 누가 우리에게 주었을까요? 그 이름을 준 자가 우리의 주인이 아니겠습니까.” 대담을 시작하기 전에 주최 측으로부터 나는 한 가지 당부를 받았다. 종교적 혹은 이념적 논쟁을 벌이지 말아 달라는 것이었다. 그런 논쟁은 몇 시간이고 각자 자기주장만 되풀이하다가 끝난다고 했다. 지금 종교적인 논쟁을 시작하려는 것은 상대방이었다. 내가 대답하지 않자 작가가 말했다. “아시겠지만, ‘아담’이 사람이라는 뜻이지요. 아담이라는 이름을 누가 주었을까요?” 작가가 원하는 대답은 하나님이었다. 크리스천의 논리에 따르면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사람의 주인이다. 하지만 그 대답은 표지 문구의 모순을 푸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값으로 사신 것이니 사람들의 종이 되지 말라 하나님이 답이라면 표지 문구의 의미는 더 꼬여버린다. 하나님이 사람의 주인이라면, 하나님은 사람을 팔 수 있는 쪽이지 살 수 있는 쪽이 아니다. 자동차를 만든 회사가 자동차를 팔 듯이 말이다. 누가 하나님에게 무엇을 치르고 사람을 살 수 있단 말인가. 누가 팔고 누가 사건, 값으로 팔릴 수 있다면 사람은 결국 종의 상태를 벗어날 수 없다. 나나 작가나 서로 말이 없자, 촬영팀에서 내 쪽을 힐끗 쳐다보았다. 출판사 편집자도 기자들의 반응을 살폈다. 기자들도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는 작가의 질문에 더는 꼬박꼬박 대답할 의지를 상실했다. 대신에 다른 공격 도구를 준비해서 나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갑자기 떠오르는 책이 있습니다. 19세기 프랑스 시인 샤를 보들레르가 쓴 책입니다. 그는 당시 파리의 생활에 심한 우울증을 앓았고, 글도 잘 쓰지 못해 방황합니다. 안면이 있던 의사를 찾아가지요. 그가 건넨 약물은 대마초 해시시였습니다. 보들레르는 처음에 거절하지만, 다시 제 발로 찾아갑니다. 그렇게 환각의 공간인 해시시 클럽에 들어가서, 대마초에 절어 글을 쓰게 됩니다. 해시시 클럽에서 작가 발자크와 위고, 화가 들라크루아 등과 환각의 교제를 이어갑니다. 마약은 매춘으로 이어졌고……그리고 보들레르는 시집 외에도 해시시 클럽의 경험을 담은 산문책 『인공낙원』을 썼습니다.” 보들레르는 파리의 아름다운 풍경 뒤에 숨은 어두운 절망과 우울의 색깔을 포착한 탁월한 시인이었다. 그런데 대담을 하면서 나의 취향이 갑자기 달라진 것이다. 그의 걸작들이 마약의 힘에 의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동시에 그의 작품들에 열광했던 시간이 후회스러웠다. 국제예술창작재단의 노랑머리 여자가 고개를 가로젓는 모습이 내 눈에 희미하게 들어왔다. 멈춰달라는 뜻인데, 나는 무시하고 계속 말했다. “작가님의 소설 『인공낙원의 문』도 보들레르의 마약 클럽을 본뜬 것은 아닌지요?” 작가는 앞서와 달리 약간 주춤하는 모습이었다. 작가의 대답을 들으려고 물은 것은 아니었다. 아무 의미 없는 표지 문구에 스스로 코가 꿰서 여태 혼자 발버둥을 친 것이 억울했다. 나를 이렇게 만든 작가에게 회심의 일격을 가하고 싶었다. “흔히 소설 주인공은 작가의 페르소나라고 볼 수 있습니다. 작가님도 단테처럼 마약의 피해자거나 마약과 관련된 경험이 있으신 것이 아닌가요?” 모든 스텝이 일제히 긴장하는 분위기가 피부 세포로 느껴졌다. 나는 더 개의치 않았다. 작가가 보들레르처럼 마약에 절어 표지 문구를 뽑아냈을 것 같았다. 알 듯 말 듯 어리석고 모순된 문장으로 전 세계 독자를 홀리고 싶었을 것이다. 그는 단어들의 환각을 이용하여 사람들을 취하게 하고 싶었을 것이다. 작가라면 어리석은 독자의 눈을 열어주어야 하는데, 도리어 그는 명철하고 지혜롭던 ‘독서의 신’의 눈을 감겨버렸다. 나는 읽어도 읽지 못하는 장님이 되고 말았다. 이런 상태로 독자들에게 책을 안내하는 것은 한 장님이 장님의 무리를 인도한다는 것과 같았다. 순간, 촬영기사가 벌떡 일어났고, 조명이 꺼졌다. ▶다음 회에 계속 … 김다은은 ‘당신을 닮은 나라’가 1995년 제3회 국민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소설가로 등단했다. ‘덕중의 정원’ ‘훈민정음의 비밀’ ‘쥐식인 블루스’ 등 20여권 소설책을 출간하고, 다수 번역돼 해외 소개됐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주관한 폴란드 바르샤바대학 작가 레지던시를 비롯, 청송 객주 문학관, 정선 여량면 아우라지 레지던시, 해남 인송문학촌 토문재 레시던시에 참가했다. 이화여대 불어교육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파리8대학에서 불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추계예술대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작권자의 허락없이 무단 부분 혹은 전체 전재, 복사, 배포를 금합니다.)
    종의 기원
    by 김다은
    2024.10.14 09:01:55
  • 지난 2022년 1월 32년 만에 전부 개정된 지방자치법이 시행됐다. 지방자치의 수준을 높이는 내용의 개정이었다. 물론 지방자치가 강조된다고 하더라도 국가는 여전히 국민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지방자치단체(지차제)의 사무에 관해 조언하거나 권고하고 나아가 지도할 수 있다. 또 사무의 적정이나 효율을 위해 국가가 지자체에 위임한 사무에 관해서는 구체적으로 지휘·감독할 수 있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국가의 사무도 아니고 국가가 위임한 사무도 아님에도 불구하고 지도의 차원을 넘어 국가의 전반적인 지휘권을 인정하고 있는 분야가 있는데, 바로 ‘행정소송’이다. 국가를 당사자로 하는 소송에 관한 법률(국가소송법)은 행정소송에 관해 국가에 광범위한 지휘권을 부여하고 있고(제6조 제1항) 나아가 행정소송을 소송수행자를 지정·해임할 수도 있는 권한을 부여하고 있다(동조 제2항). 우리 행정법은 전반적으로 국가와 지방에 대한 규율을 이원화하고 있다. △행정조직에 관한 규정 △공무원에 관한 규정 △재정에 관한 규정 △계약에 관한 규정 △보조금 관리에 관한 규정 △공공기관에 관한 규정 등 대부분의 영역에서 국가사무와 지방사무를 나눠 규율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특이하게도 소송에 관해서는 국가소송법만 있고, 여기에서 지방자치단체를 포함한 행정청의 행정소송 사무까지 규율하고 있다. 그 이유가 명시적으로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우리의 지방자치는 그간 형식적이었고 중앙집권적이었으며 나아가 지방자치단체를 포함한 ‘하급행정청’의 소송수행 역량에 대한 신뢰가 적었다는 설명이 있기도 하다. 한편 지자체를 당사자로 하는 일반 민사소송은 규율범위에도 없어서 지자체는 민사소송을 일반 민사절차에 따라 수행한다. 국가의 소송지휘권은 주로 소송의 존폐가 문제될 때 등장한다. 소송을 먼저 시작하려 하거나(제소 결정), 소송을 끝내거나 계속 진행하려 할 때(조정권고안 수용 여부 및 상소 여부 결정) 등이 그때다. 즉, 지자체는 자신의 사무와 관련해 행정소송의 가장 중요한 행위를 하려 할 때마다 국가의 지휘를 받아야 한다. 그런데 여기에 받아들이기 어색한 문제들이 몇 가지 발생하고 그 필요성에도 의문이 생긴다. 먼저 자치권 행사와 충돌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지자체는 고유사무에 관해 독자적으로 자치입법을 하고 독자적인 정책적·행정적 의사결정을 한다. 이 같은 의사 결정들에 관해 불복하는 당사자들과 행정쟁송을 겪게 될 수 있다. 대개 재량범위 내에서 어떤 결정을 했느냐에 관해 문제되는 경우가 많기에 법원은 행정소송법이 조정 제도를 명시하고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조정과 유사한 조정권고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법원이 재량 범위 내에서의 합리적인 안을 제시하고 피고가 그에 부합하는 처분을 하는 대신 원고는 소를 취하하도록 하는 것이다. 행정청은 법원의 조정권고를 받아 재고의 계기를 얻게 되고 그 제안이 타당하다고 판단하면 그에 따라 변경 처분을 하게 된다. 이 같은 변경 처분은 말 그대로 지자체장 등 재량 내의 결정이고, 더구나 법원의 의견에 따른 것이므로 그 합리성도 인정될만하다. 그런데 여기서 국가의 소송지휘가 어색한 문제를 발생시킨다. 원고와 피고가 모두 조정권고안을 받아들이고 있는 중에 이와 다른 견해에서 ‘조정원고안 불수용’이라는 소송지휘가 내려오면 피고인 지자체장은 자신의 정책적·행정적 판단에도 불구하고 부득이 소송을 계속해야 하는 상황에 처한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상소의 제기·포기 등의 경우에도 비슷한 문제가 발생한다. 정책적·행정적 판단과 소송진행 실익 및 위험부담에 대한 지자체장 등 나름대로의 검토와 판단에도 불구하고 국가가 이와 다른 견해에 따라 지휘를 한다면 그 지휘를 따라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해충돌의 문제도 있다. 국가와 지자체는 서로 서로에 대해 행정권한을 행사하는 상대방이 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상호 간 행정처분의 주체와 객체의 지위에서 항고소송 당사자가 될 수 있다(대법원 2010.3.11. 선고 2009두23129 판결 참조). 대립당사자가 자신의 이익을 두고 다투는 소송에서 일방 당사자가 반대 당사자를 지휘한다는 것은 그 구조 자체가 어색하다. 나아가 복수의 지자체가 다투는 소송의 경우에는 하나의 지휘기관이 대립당사자를 모두 지휘하는 것이 되어 이 또한 어색한 상황이 발생한다. 지방자치단체의 소송 역량도 점차 개선되고 있어서 포괄적인 소송 지휘의 필요성은 점점 적어지고 있다. 특히 많은 지자체에서 직접 변호사를 채용해 송무를 수행하고 있는 현재 상황에서는 기본적인 소송지식의 미숙지로 발생하는 소송수행 해태는 걱정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된다. 한편, 소송지휘라고 해도 서면 작성을 지원한다든지 하는 실질적 지원 기능이 크기보다는 소송 진행 상황을 보고 받고 주요 사항에 관한 의사결정 과정에 관여하는 결과만 되므로 오히려 신속한 의사결정을 어렵게 하는 등 소송에 관한 행정적 비효율을 초래하는 상황도 많을 수 있다고 생각된다. 지자체의 독립성이 뚜렷하게 인식되지 않던 시절과 달리 이제 지방의회 의원과 지자체장은 지방선거라는 별도의 선거를 거쳐 민의에 따라 선출된 지가 벌써 오래됐다. 이들은 법령에서 부여한 권한에 따라 자치입법과 자치행정을 수행한다. 그리고 이제 새로운 지방자치법은 이들의 실질적인 자치분권을 지지하고 있다. 그러므로 지자체가 고유사무에 관해 의사결정을 하는 과정에 국가가 개입해 지휘한다는 것은 점차 더욱 어색한 일이 될 것이다. 이러한 흐름에 발맞춰 행정소송에 관한 국가의 일반적 지휘에서 벗어나 지자체를 당사자로 하는 소송에 관한 새로운 규율을 만들어갈 필요가 있다.
    국가 소송지휘권 vs 지자체 소송수행권
    by 안성훈
    2024.10.12 10:4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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