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435
  • 넷플릭스의 ‘흑백요리사’ 시즌1은 2주 연속 넷플릭스 글로벌TV 부문 1위에 오르면서 국내외 최고의 화제를 모았다. 재야의 고수 ‘흑수저’ 셰프들이 스타 셰프 ‘백수저’들에게 도전을 하는 흥미진진한 내용도 재밌지만, 다양한 식재료를 사용하는 K 미식의 매력에 전세계 시청자들을 흠뻑 빠져들게 했다. 현재 시즌2도 한국 식재료와 미식을 선보이며 시즌1 못지 않은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 최근 외식업계의 가장 큰 화두는 푸드테크다. 푸드테크는 음식과 기술의 합성어로 음식 산업에 인공지능(AI)을 비롯한 로봇, 소프트웨어(SW) 등 첨단 기술을 접목한 미래 산업이다. 요즘 식당에서 자주 보이는 서빙 로봇과 조리 로봇도 푸드테크의 결과물이다. 우리의 빨리 빨리 문화는 한국을 지구상에서 푸드테크를 가장 잘 발전 시키는 나라로 만들었다. 현재 우리는 AI가 지식과 업무 방식까지 재구성하며 인간의 사고와 산업을 송두리째 바꾸는 대 변혁기에 살고 있다. 애덤 스미스가 ‘국부론’을 쓴 1776년은 지금과 같은 산업의 대변혁기였다. 제임스 와트가 증기기관을 발명해 산업 혁명이 막 시작된 해다. 현재는 AI가 모든 것을 바꾸기 시작한 새로운 시대에 접어 들었다. 스미스는 국부론에서 국부의 원천을 노동 생산성으로 봤다. 앞으로 AI가 모든 생산성을 크게 높일 수 있다는 점에서 국부론의 원리와 유사하다. 국부론의 ‘자유’에는 정의가 기반하고 있다. 정의로운 법과 질서 하에서 자유로운 경쟁을 해야한다. AI 시대의 ‘자유’는 신뢰 가능한 규칙 속에서 알고리즘이 투명하게 작동해야 한다. 미래의 식당은 요리사도 없고 종업원도 없는 무인 식당이 될 전망이다. 조리와 서빙, 서비스 모든 것을 AI가 대체 했을 때도 인간의 존엄은 박탈되지 않아야 한다. 지금 K 미식은 한류를 넘어 전 세계로 질주하고 있다. 넷플릭스 시리즈 흑백요리사가 최고의 인기를 얻는 배경에도 K 미식이 있기 때문이다. 이제 K 미식은 AI와 결합을 통하여 세계를 대상으로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할 때다. 또한 혁신과 공정성이 동시에 작동하는 새로운 미식의 시대를 우리가 먼저 열어야 하겠다. 새롭게 발견한 맛집만큼 우리에게 반가운 것은 없다. AI가 우리의 마음을 읽어서 신뢰성 높고 정확한 맛집을 알려주는 시대는 이미 도래했다.
    흑백요리사와 AI 국부론
    by 안병익
    2026.01.22 17:20:48
  • 최근 글로벌 로봇 시장은 인공지능(AI)이라는 거대한 파도 속에 있다. 챗GPT가 디지털 세상의 언어 장벽을 허물었듯, 이제는 로봇 파운데이션 모델(RFM)이 물리적 세상의 경계를 넘보고 있다. 생성형 AI의 지능을 이식한 피규어(Figure)나 스킬드AI(Skild AI) 같은 실리콘밸리의 기술 기업들이 보여주는 화려한 데모 영상은 금방이라도 로봇이 인간의 모든 노동을 대체할 것 같은 환상을 심어준다. 하지만 장밋빛 전망 뒤에 숨겨진 냉혹한 산업 현장의 진실은 훨씬 더 복잡하고 정교한 기술적 대답을 요구한다. 시뮬레이션을 넘어 에고센트릭 영상의 시대로 최근 미국의 스킬드AI는 시뮬레이션(Sim2Real)을 넘어선 새로운 전략으로 업계를 놀라게 하고 있다. 이들의 핵심은 단순히 가상 세계에서의 학습이 아니라, 방대한 양의 에고센트릭(Egocentric, 1인칭 시점) 영상을 활용한다는 점이다. 액션 레이블이 없는 대규모 영상을 통해 세상의 물리적 법칙과 인과관계를 먼저 학습시킨 뒤 1시간 이하의 실제 액션 데이터를 파인튜닝(Fine-tuning)하여 로봇의 일반화 성능을 극대화하는 방식이다. 이러한 접근은 데이터 기아 상태에 빠진 로보틱스 분야에 중요한 돌파구를 제시한다. 하지만 여전히 한 가지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데이터가 보여준 방향으로 움직인 뒤 실제 작업이 성공했는지 혹은 실패했는지를 로봇은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성공률 99%보다 중요한 ‘실패 인지(Anomaly Detection)’ 우리는 흔히 로봇의 성능을 ‘성공률(Success Rate)’로 평가한다. 최근 모방학습(Imitation Learning)이나 VLA(Vision-Language-Action) 모델의 발전으로 95% 이상의 성공률을 달성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성공률 99%를 지향할 수도 있다. 하지만 산업 현장에서 정작 중요한 것은 나머지 1~5%의 실패를 로봇이 스스로 인지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모방학습 기반의 AI 로봇이 빠지는 가장 큰 함정은 ‘자신이 실패했다는 사실조차 모른 채 동작을 계속하는 것’이다. 이를 로봇 공학에서는 OOD(Out-of-Distribution, 분포 외 데이터) 문제라고 한다. 진정한 피지컬 AI의 지향점은 99%의 성공률에 매몰되는 것이 아니라 실패를 100% 감지하고(Anomaly Detection) 즉각적으로 대응 시나리오(Fallback)를 실행하는 신뢰성을 확보하는 데 있다. 이것이 확보되지 않는다면 AI 로봇은 공장의 생산라인을 멈춰 세우는 가장 위험한 변수가 될 뿐이다. ‘Last 1mm’를 결정짓는 시스템 0: 4kHz의 정밀 제어 최근 Figure AI 등 글로벌 기업들은 로봇의 두뇌를 ‘시스템 1(직관적 실행)’과 ‘시스템 2(논리적 추론)’로 구분한다. 하지만 실제 산업 현장의 정밀 작업에서는 이보다 더 근본적인 계층이 필요하다. 필자는 이를 ‘시스템 0(System 0)’라 부르고 싶다. 시각적 정보에 의존하는 시스템 1이 100~200Hz 수준으로 물체 근처까지 로봇을 안내한다면, 작업의 성패를 결정짓는 마지막 1mm(Last 1mm)는 시각을 배제한 채 촉감과 역감에 의존하는 시스템 0의 영역이다. 여기서 뉴로메카가 강조하는 4kHz(초당 4,000번 연산)의 실시간 제어 기술이 빛을 발한다. 이 계층은 단순한 정밀 제어를 넘어 임피던스 제어(Impedance Control), 강인 제어(Robust Control), 그리고 센서 없이도 외부의 힘을 민감하게 느끼는 센서리스 순응 제어(Sensorless Compliance Control) 등이 융합된 결정체다. 시스템 0는 척수 반사처럼 외부 충돌로부터 인간과 로봇을 보호하는 ‘안전 제어’와, 보이지 않는 좁은 틈새에 부품을 끼워 넣는 ‘정밀 작업’을 동시에 수행한다. 최근 CES 2026 현장에서 이목을 끈 샤르파(Sharpa)의 크래프트넷(CraftNet) 역시 이러한 ‘Last 1mm’의 제어 기술이 작업 성공의 핵심임을 강조하고 있는데, 이는 뉴로메카가 걸어온 길과 일치한다. 로봇 핸드와 제로샷(Zero-shot)의 지향점 로봇의 ‘두뇌’와 ‘신경’이 완성되어도 결국 작업을 수행하는 것은 ‘손(Hand)’이다. 현재의 로봇 핸드는 시각적 지능에 비해 물리적 상호작용 능력이 현저히 떨어진다. 진정한 피지컬 AI라면 학습하지 않은 물체도 즉각적으로 다루는 ‘제로샷(Zero-shot)’ 역량을 갖춰야 한다. 최근 국내외에서 픽앤플레이스(Pick-and-place) 분야의 제로샷 시연이 이어지고 있지만, 이는 시작에 불과하다. 우리가 지향해야 할 목표는 픽킹을 넘어 조립, 삽입, 용접 등 모든 복잡한 스킬이 제로샷으로 가능해지는 RFM의 완성이다. 이를 위해서는 모방학습이 가진 데이터 확장성(Scalability)의 병목 현상을 해결할 혁신적인 전략이 수반되어야 한다. 단순히 유튜브 영상이나 대학원 실험실 수준의 VLA 구현을 넘어, 실제 거친 산업 도메인의 데이터를 어떻게 효율적으로 확보하고 제어 계층과 융합할 것인지가 대한민국의 숙제다. 하드웨어 플랫폼, 대한민국 로봇 산업의 생존 전략 이제 로봇 산업은 ‘뇌(Software)’를 만드는 회사와 ‘몸(Hardware)’을 만드는 회사가 분업화되는 시대로 접어들었다. 미국의 빅테크들이 범용적인 뇌를 선점하고 있다면, 우리는 그 뇌가 가장 잘 작동할 수 있는 ‘신뢰할 수 있는 하드웨어 플랫폼’을 선점해야 한다. 필자가 강조하는 ‘산업용 휴머노이드’가 바로 그 답이다. 하모닉 드라이브 기반으로 0.1mm 이하의 작업 정밀도를 보장하면서, 협동로봇 인증을 받아 안전 펜스 없이 현장에 투입 가능한 휴머노이드형 하드웨어는 전 세계적으로도 희귀하다. 글로벌 AI 기업들에게 뉴로메카의 로봇은 자신들의 고도화된 뇌를 이식하기에 가장 완벽한 ‘신체’가 될 것이다. AI 기술이 상향 평준화될수록 승부처는 다시 ‘피지컬(Physical)’로 돌아온다. 인공지능이라는 화려한 뇌가 실제 산업의 근육으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4000분의 1초를 다투며 실패를 감지하고 보정하는 시스템 0의 정밀함이 수반되어야 한다. 데이터의 바다를 넘어 100%의 신뢰성으로 향하는 길의 끝에 대한민국 로봇 산업의 미래가 있다.
    '실패율 제로’ 넘어 ‘실패 인지’ 시대로: AI 로봇의 ‘Last 1mm’ 도전
    by 박종훈
    2026.01.22 17:20:35
  • 아멜리아(Amelia, 가명)은 32세의 사무직 여성으로 폭동 한가운데에 있던 군중으로부터 공격을 받았다. 그녀는 달리는 차량의 창문을 뚫고 들어온 벽돌에 이마를 정면으로 맞아 머리에 심한 골절을 입었다. 아멜리아는 한동안 의식을 잃었고 2일동안 기억상실증을 겪게된다. 의사는 그녀의 괴사(죽은)한 뇌 조직을 제거하는 수술을 했다. CT촬영 결과, 전두엽(앞이마) 안쪽에 광범위한 손상(병변)이 확인되었다. 다행스럽게도 수술 후 신체적으로는 회복이 된다. 그러나 신경행동평가결과, 머리에 부상을 당하고 나서, 몇주 동안 생생한 악몽을 자주 꾸었다고 보고했다. 그녀는 주로 뱀이나 뱀파이어가 나오거나 몸에 바늘이 꽃히는 꿈을 꾸었다. 꿈의 내용은 항상 불쾌했다. 어느날 밤에는 속옷에 무었인가 꿈틀거리는 꿈을 꾸었는데, 손을 넣어보니 끔찍하게도 뱀이었다. 아멜리아가 꾼 꿈을 악몽(nightmare)이라고 한다. 미국 정신의학회가 내린 정의에 의하면, 악몽이란 ‘길고 극도로 불쾌한 꿈으로, 위협, 불안, 공포, 분노, 슬픔과 같은 부정적 감정을 포함한다. 임상적으로 현저한 고통이나 손상으로 사회적, 직업적, 학업적, 또는 다른 중요한 기능 영역에서 현저한 고통이나 손상을 초래’하는 꿈을 말한다. 신경생리학자인 마크 솜스(Mark Solms)가 조사한 보고에 의하면, 뇌의 손상을 입은 114명 중 9명의 환자가 반복하는 악몽을 경험했다고 한다. 이는 전체환자의 7.9%에 해당하는 비율이다. 뇌전증(epilepsy)이 원인이 되어 악몽에 시달리는 사례도 있다. 사라(Sara, 가명)는 33세로 예술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 그녀는 뇌의 우측 측두엽(뇌의 우측 측면 부위)이 손상되어 뇌전증을 겪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죽음에 관한 악몽을 반복해서 꾼다. 사라의 뇌전증 병력은 평생동안 조절되지 않아서, 고통스러운 나머지 자살시도를 한 적도 있었다. 또다른 뇌전증 환자인 필립(Philip, 가명)은 24세로 대학생이다. 그는 뇌의 측두엽에서 뇌전증 병소가 확인되었다. 그의 발작은 주로 수면 중에 발생하였는데, “도로에 널려 있는 부서진 시체”와 “교통사고로 인해 토막 난 시체” 보는 악몽을 반복해서 꾼다. 뇌전증은 예전에는 간질이라고 불렸으나, 사회적인 편견때문에 간질이라는 말은 더이상 사용하지 않는다. 뇌세포간의 정보전달은 전기신호로 이루어지는데, 뇌전증은 전기신호가 비정상적으로 이루어져 일시적이고 불규칙적인 이상흥분이 나타나는 현상이다. 정상적으로 흐르던 전류가 갑자기 합선이 일어나서 불꽃이 튀는 현상에 비유할 수 있다. 뇌전증은 몸의 경련이나 반복적인 발작현상을 초래한다. 마크 솜스 등의 연구에 의하면 측두엽에서 비롯되는 뇌전증 환자는 악몽을 반복해서 꾼다고 한다. 특히, 안쪽 측두엽은 감정을 담당하는 편도체와 기억을 담당하는 해마가 이웃 사촌처럼 아주 가까이 있다. 솜스는 측두엽 뇌전증 환자에게 발생하는 비정상적인 전기적 방전이 편도체를 자극하면, 수면 중 강렬한 공포 감정반응과 생생한 시각적 환각이 결합되어 악몽으로 나타난다고 본다. 이같은 악몽은 우울, 불안, 자살충동, 트라우마 등으로 인하여 꾸게되는 심리몽과 같은 심리적 잔여물이 아니라 물리적인 뇌 방전으로 인한 직접적인 결과물이다. 뇌전증은 뇌에서 발생하는 물리적인 오작동으로 야기된 전기적 방전현상으로 인하여 발생한다. 솜스는 증상을 유발하는 뇌전증을 약물이나 수술을 통해서 성공적으로 치료를 하면 거듭되던 악몽이 사라진다는 사실로 미루어 보아 편도체와 해마를 포함하고 있는 변연계 부위의 방전이 이러한 꿈들을 만들어내는 실제적인 원인이 될 수 있다고 추정한다. 나는 이러한 꿈을 뇌손상몽(brain injury dreams)이라고 부른다. 뇌손상몽은 심리적인 결과물이아니라 뇌의 일정부위가 물리적인 사고로 손상되거나 화학물질의 과도한 자극으로 인하여 발생하는 악몽을 말한다.
    뇌 손상 환자의 악몽과 치료
    by 국경복
    2026.01.20 15:12:08
  • 튀르키예 출신의 미디어 아티스트인 레픽 아나돌은 도시와 건축, 미술관의 방대한 데이터를 인공지능(AI)으로 학습시켜 작품들을 만들었다. 기계가 기억한 세계를 거대한 시각적 파노라마로 펼쳐 보이는 것으로 유명하다. 기술이 만들어내는 이미지의 스펙터클은 뉴욕 현대미술관(MoMA)을 비롯하여 세계 유수 미술관과 전시를 통해 소개되며 흥행에 성공했다. 트레버 패글렌과 케이트 크로포드의 ‘ImageNet Roulette’는 사람들이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에서 #ImageNetRoulette 로 사진을 올리면 AI가 라벨을 붙이는 방식으로 밀라노의 프라다 재단의 전시 ‘Training Humans’와도 연결되어 주목받았다. AI가 인간을 인식하도록 훈련시키는 데이터와 분류 정치학을 드러내는 사례로 소개된다. ‘AI가 사람을 분류하는 것’의 위험성을 대중이 체감하게 만들었다고 강조한다. 이 두 작업은 방향은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AI를 전면에 세운다. 이러한 작품들을 통해 우리는 자연스럽게 이런 질문이 떠올려볼 수 있다. 기술이 이렇게까지 전면에 나서는 상황에서 정작 우리는 무엇을 느끼고 있을까. AI가 일상이 되며 우리는 더 빠르게 연결되고 더 많은 정보를 처리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럼에도 요즘 “훨씬 편해졌는데 마음은 더 피곤하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 ‘무엇을 믿어야 할지’, 심지어 ‘지금의 나는 어떤 상태인지’조차 잠시 멈추지 않으면 진정으로 무언가를 느끼기 어려워진다. 이럴 때 예술은 다른 방식으로 다가온다. 설명하지 않고 설득하지 않으며 그저 잠시 멈추게 만든다. 그 멈춤의 순간에 우리는 비로소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게 된다. 강남 한복판에 자리한 LG유플러스의 문화 공간인 ‘일상비일상의틈’은 바로 그런 질문을 조용히 던지게 하는 장소다. ‘보러 가는 공간’으로 규정된 전시장을 일상의 동선 속에서 의도하지 않게 예술과 마주치게 되는 틈으로 만든 것이다. 또한 이해를 요구하기보다 감각을 먼저 열어두는 방식은 지금의 시대와 닮아 있다. 이 공간의 방향은 최근 LG유플러스가 강조해온 태도와도 맞닿아 있다. 이 기업의 홍범식 대표는 취임 이후, 기술과 서비스가 고도화될수록 고객이 체감하는 신뢰와 확신, 그리고 일상의 온도가 더욱 중요해진다는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강조해왔다. 복잡함을 더 설명하기보다는, 오히려 덜 고민해도 되는 선택을 가능하게 하려는 태도다. 그 선택들이 일상 속에 자연스럽게 쌓이며, 조금 더 밝은 방향으로 이어지기를 바라는 철학이 읽힌다. 현재 이 공간에서 준비 중인 전시에서 ‘인간’과 공동으로 주제가 되는 ‘AI’는 작품을 대신 말하지 않고, 작품을 더 잘 이해하도록 돕는 ‘도구’로 작동한다. 관람객이 궁금해하는 지점에만 반응하고, 각자의 속도와 관심에 맞게 정보를 건넨다. 기술은 한 발 물러나고, 다시 사람의 감각과 해석이 중심에 놓인다. 이 선택이 중요한 이유는 분명하다. 지금까지의 AI 예술이 ‘기계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었다면, 이 공간이 시도하는 것은 사람이 무엇을 느끼고 있는가를 묻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가 예술을 필요로 하는 이유는 이미 지나치고 있던 감각을 다시 느끼기 위해서일지도 모른다. 기술이 모든 것을 대신해주는 시대일수록, 스스로 질문하고 해석하는 능력은 분명 더 중요한 감각이 된다.
    AI와 예술   
    by 박소정
    2026.01.16 19:31:21
  • 벤처기업이 우수 인재를 영입하기 위한 가장 강력한 무기는 단연 ‘주식 보상’이다. 회사의 성장이 곧 개인의 자산 증식으로 직결되기 때문이다. 현재 벤처·스타트업들은 인재를 붙잡기 위해 스톡옵션(주식매수선택권) 등을 통해 미래의 성장에 따른 보상을 약속한다. 스톡옵션은 정부의 규제 완화에 힘입어 벤처·스타트업의 보상책으로 확실히 자리잡았다. 이에 비해 요즘 주목받는 성과조건부 주식(RSU, Restricted Stock))은 법적 문턱은 낮아졌으나 세제 혜택이 없어 스톡옵션만큼 자리잡지 못한 상태이다. 우선 스톡옵션은 일반적으로 발행주식 총수의 10% 내에서 부여 가능하다. 벤처기업 임직원과 벤처기업이 인수한 기업(30% 이상 지분 보유)의 임직원은 이 중 최대 50%까지 받을 수 있다. 외부 전문가의 경우 발행되는 스톡옵션의 10% 이내에서 부여받게 된다. 외부 전문가는 벤처기업이 필요한 분야의 10년 이상 실무경력자, 박사, 5년 이상 석사 실무경력자, 변호사·공인회계사·기술사, 외국법인 임직원·외국연구소 연구원, 국공립 연구기관 연구원 등이다. 이는 벤처기업육성에 관한 특별법(벤처기업법)’에 따른 것이다. 다만 최대주주 및 주요주주(의결권 없는 주식을 제외한 지분율 10% 이상)와 그들의 특수관계자는 스톡옵션 부여 대상에서 제외된다. 벤처 임직원은 결의일로부터 최소 2년 이상 재직 후, 외부 전문가는 최소 2년 경과 후 각각 스톡옵션 행사가 가능하다. 재직 중 스톡옵션을 행사하게 되면 근로소득세, 퇴직 후나 외부 전문가가 행사할 때는 기타소득세를 내야 한다. 스톡옵션 행사 이익에 대해서는 연간 2억 원(총 5억 원)까지 비과세 혜택이 부여된다. 비과세 초과분에 대한 근로소득 및 기타소득에 대해서는 5년간 분할 납부하거나 차후 주식 매각 시 양도소득세로 낼 수 있는 특례가 제공된다. 이러한 세제 혜택은 벤처기업 또는 벤처기업이 인수한 기업의 임직원, 나아가 퇴직자에게 적용되며 외부 전문가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 특히 스톡옵션 행사 시점에 비과세액을 제외하고 시가와 행사가액의 차액에 대해 근로소득 또는 기타소득으로 종합소득세가 과세된다. 또한 스톡옵션 행사를 통해 취득한 주식을 추후 매각할 때 다시 양도가액과 행사 시점의 시가 차이에 대해 양도소득세를 내야 한다. 다만 전용계좌를 개설하고 스톡옵션 행사 전날까지 과세특례를 신청한 경우 행사 시점에는 세금이 부과되지 않는다. 물론 이 때 내지 않은 세금은 추후 스톡옵션 행사를 통해 취득한 주식을 매각할 때 같이 합쳐 양도소득세율을 적용받게 된다. 양도소득세를 내는 시점은 양도일이 속하는 반기의 말일 기준 2개월 내이다. 특히 과세특례를 적용받은 경우에도 몇가지 사후 관리를 위반하게 되면 일시에 근로소득세 및 기타소득세를 물어야 한다는 점에서 주의가 필요하다. 첫째, 스톡옵션 행사로 취득한 주식을 증여하거나 행사일부터 1년이 지나기 전에 처분해서는 안된다. 둘째, 스톡옵션 행사일부터 역산하여 2년이 되는 날이 속하는 과세 기간부터 해당 행사일이 속하는 과세 기간(행사연도를 포함한 지난 3년간)까지 전체 스톡옵션 행사가액이 5억원을 초과해서도 안된다. 셋째, 전용계좌를 통해 스톡옵션 행사로 취득한 주식 외의 주식을 거래해서도 안된다. 또한 스톡옵션을 행사한 다음달 5일까지 납부특례를 신청했다면 주식을 부여받은 시점을 기준으로 근로소득 및 기타소득에 대해 종합소득세가 과세된다. 차년도 5월부터 5년간 종합소득세 신고 시 스톡옵션 행사로 인한 종합소득세액을 20%씩 나누어 내게 된다. 특례 적용 대상이 아닌 경우는 일반적인 근로소득 및 기타소득으로 원천징수되며 행사일이 속하는 연도의 소득으로 종합소득세를 일시에 내야 한다. 문제는 스톡옵션 행사 시 주금 납입을 위한 목돈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그 대안으로 주목받는 것이 2024년 1월 벤처기업법 개정에 따라 신설된 RSU 이다. 이는 근속 기간이나 성과에 따라 회사가 자기주식을 무상 지급(RSU)하거나 미리 교부한 주식의 양도 제한을 해제(RSA)하는 제도다. 기존에는 순자산액에서 자본금·각종 준비금·미실현 이익을 제외한 ‘배당가능이익’ 한도 내에서만 자기주식 취득이 가능했으나 벤처기업이 RSU 계약 이행을 위해 자기주식을 취득할 경우 ‘순자산액에서 자본금 제외’ 한도 내까지 취득이 가능해진 것이다. 그러나 RSU의 경우 스톡옵션과 같은 세제 혜택이 마련되지 않은 점은 한계로 지적된다. 벤처기업이 RSU를 적극적인 보상책으로 활용하기에는 애로가 많은데 조건이 충족(Vesting)되어 주식을 받는 즉시 근로소득세가 부과된다. 과세 시점을 선택할 수도 없고 연 단위 분할 납부도 허용되지 않는다. 결국 RSU를 받은 임직원은 최대 49.5%(소득세 최고세율, 지방세 포함)에 달하는 고율의 세금을 내기 위해 힘들게 받은 주식을 곧바로 팔아야 하는 모순에 처하게 된다. 이는 주식 보유를 통해 회사 성장에 기여하게 하려는 RSU 제도 자체의 취지를 무색하게 한다. 주식 연계 보상은 자금력이 부족한 벤처기업이 우수 인재 유치를 위해 현금 보상 대신 제시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대안이다. 하지만 스톡옵션 행사를 위해서는 벤처 임직원이 목돈을 회사에 넣어야 하고 추후 상당한 세금을 납부해야 한다. 이러한 자금 부담을 덜어줄 대안이 바로 RSU이지만 세제 지원의 부재가 발목을 잡고 있는 형국이다. 물론 현금 보상은 전액 근로소득세가 과세되기에 RSU에만 혜택을 주는 것은 조세 형평성 문제가 제기될 수도 있다. 그러나 모든 기업이 아닌, 자금력은 부족하지만 인재 유치가 절실한 벤처기업(대주주 및 특수관계자를 제외한 임직원)에 대해 일정규모 내 비과세, 양도소득세로 낼 수 있는 과세특례, 5년간 분할 납부 특례 등 스톡옵션에 준하는 세제 혜택을 부여할 필요가 있다. 이는 벤처·스타트업 혁신 생태계를 구축하기 위한 인재 유치 차원에서 성과 보상의 옵션을 다양화해 기업 경쟁력을 높이는 계기가 될 것이다. 잠재성장률이 갈수록 떨어지는 현실에서 미래 성장동력을 창출하기 위해서는 벤처·스타트업 활성화밖에 길이 없지 않은가.
    벤처 인재 영입의 두 날개, ‘스톡옵션’과 ‘RSU’
    by 황찬
    2026.01.16 18:34:09
  • 일본은 이웃 나라라는 표현이 무색할 만큼 전혀 다른 점이 많다. 국회를 구성하는 의원들의 출신 배경도 그 가운데 하나다. 한국은 법조인이, 일본은 관료와 세습 정치인이 과대 대표돼 있다. 평소 “판사와 검사, 변호사 출신 의원이 너무 많지 않느냐?”라고 느꼈다면 맞다. 22대 국회에서 법조인 출신은 61명으로 전체의 20%를 차지한다. 반면 일본 국회에서 법조인 비중은 6~7%에 그친다. 대신 일본 국회는 관료와 세습 정치인이 압도적으로 많다. 나라마다 문화와 제도가 다르니 어느 쪽이 더 낫다고 단정하긴 어렵다. 다만 양쪽 모두 분명한 부작용을 안고 있으며 어떤 식으로든 균형이 필요하다는 데는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일부에서는 법조인 출신이 많은 게 무슨 문제냐고 반문할 수 있으나 면면을 들여다보면 문제가 심각하다. 언론과 정치학자들은 “정치가 사법화되면서 한국 정치가 실종됐다”고 말한다. 정치로 풀어야 할 사안을 검찰과 사법부 판단에 넘긴다. 타협 대신 고발과 수사, 재판으로 결론을 내리려는 경향을 보인다. 또한 사사건건 상대를 쓰러뜨리는 데 몰두하다 보니 민생 현안은 뒷전으로 밀리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법조인이 과대 대표되는 한국 국회의 풍경은 정상적인 모습이라 보기 어렵다. 이 지점에서 일본 국회를 보면 또 다른 극단이 드러난다. 2024년 10월 제50회 중의원 총선 결과, 전체 465명 가운데 법조인 출신은 30명 남짓이었으나 관례적으로 관료 출신과 세습 정치인이 대거 국회에 입성했다. 한국과 달리 일본에서는 법조인 출신으로 정계에 진출하는 유형은 대부분 변호사이고, 검사 출신은 2~3명, 판사 출신은 한 명 있을까 말까다. 이는 ‘사법 중립성’에 대한 엄격한 사회적 합의가 있기 때문이다. 일본 사회는 법을 집행하다 옷을 벗고 곧장 정치로 직행하는 것을 사법부 독립을 훼손하는 부적절한 행위로 인식한다. 일본 검찰은 정치로 가는 통로라기보다 ‘수사 전문가 집단’이라는 직업 정체성이 강하다. 한국 사회가 곱씹어볼 지점이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관료와 세습 정치인의 두터운 장벽이 견고하기 짝이 없다. 이들이 국회로 가는 길목을 선점하고 있어 법조인 출신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넓지 않다. 일본 사회는 ‘관료 정치’에 비교적 관대하다. 재무성이나 경제산업성 등에서 정책을 다룬 경험이라면 정치도 잘할 것이라며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관료 출신은 세습 정치인과 함께 일본 정치의 주류를 이뤄 왔다. 세습 정치는 일본 특유의 풍경이다. 이들은 부모의 지반(地盤, 지역구), 간판(看板, 지명도), 가방(선거 자금)을 물려받아 정치를 시작한다. 자민당의 경우 이런 ‘금수저 정치인’이 30~40%에 달한다. 아베 신조, 기시다 후미오, 고노 다로 등 우리가 익히 아는 정치인 상당수가 이 부류다. 일본 중의원에서 지방 정치인들의 존재감도 상당하다. 중의원의 약 3분의 1은 지방의원이나 기초단체장을 거쳤다. 이들은 밑바닥부터 지역 기반을 닦아온 만큼 생활 정치에 익숙하고 조직력이 탄탄하다. 일본 정치권에서는 ‘사법 중립성’을 중시하는 문화로 법조인 비중은 낮은 데 비해 관료, 세습 정치인, 지역 정치인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점이 특징이다 이러한 구조는 일본 정치에 연속성과 안정성을 제공해 왔다. 그러나 역동성의 상실이라는 대가를 치러야 했다. 다양한 전문 영역에서 성장한 인물들이 진입할 통로는 좁아졌고, 정치권은 고령화되고 동질화됐다. 일본 정치가 변화에 둔감하고 위기 대응에서 느리며 현상 유지에 능한 배경이다. 한국 정치가 ‘정쟁 과잉’이라면, 일본은 ‘정치 무기력’에 가깝다. 바꿔 말해 한국과 일본은 서로 다른 형태의 엘리트주의에 빠져 있다. 한국은 법조인 과잉 대표로 정치가 갈등 증폭 장치가 됐고, 일본은 관료와 세습의 과잉 대표로 정치는 고인 물이 됐다. 대안은 있을까. 균형을 맞춘답시고 직업 쿼터제를 도입할 수는 없다. 그러나 정치권이 스스로 인재 풀을 넓히려는 선택은 가능하다. 지방의회와 시민사회, 산업·과학기술, 교육·복지 현장에서 성장한 인물들이 국회로 진입할 수 있도록 공천 구조를 바꾸고, 정치 입문 비용을 낮추며, 정치를 ‘특권’이 아니라 ‘공동체에 대한 봉사’가 될 수 있도록 재설계해야 한다. 한국은 법조인의 나라가 아니다. 민의를 제대로 대변하는 국회가 되기 위해서는 판검사나 싸움에 능한 정치인보다 공동체를 책임질 수 있는 정치인이 대거 나와야 한다. 여기에 상대를 존중하는 태도와 포용, 겸손한 공적 윤리를 갖춘 정치인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물론 일본처럼 관료나 세습 정치인이 판치며 정치 실종을 걱정하는 처지가 되서도 안된다. 우리 정치권이 국민들의 신뢰를 얻기 위해서 ‘정치의 사법화’에서 벗어나 대화와 타협의 문화를 정착시키고 책임감 있게 국가의 미래를 설계할 능력을 갖춰야 한다.
    법조인의 나라 한국, 관료와 세습의 나라 일본
    by 임병식
    2026.01.14 17:18:58
  • 1월은 결심의 달이다. 새해 해낼 것들을 나름 비장한 각오로 정하는 달이다. 만약 아직 정한 것이 없거나 추가할 여백이 있다면 일기 쓰기를 권하고 싶다. 왜 굳이 일기 쓰기 일까? 먼저 ‘난중일기’를 살펴보자. 난중일기 속에는 인간으로서의 고뇌, 절망, 원망 등이 녹아 있다. 이순신 장군은 성웅이기에 모든 아픔을 별일 아닌 듯 손쉽게 이겨낸 것이 아니다. 단 한 번의 전투 승리로 전쟁을 마무리한 것도 아니다. 전쟁은 잔인하게 그리고 간혹 지루하게 7년을 끌었다. 이순신 장군은 하루하루 반성하고 대비하면서 버텨낸 것이다. 이순신 장군 역시 한 인간이었음을 여실히 보여주는 책이 난중일기이다. 이순신 장군에게 있어 일기는 전쟁이 주는 압박감, 주변 인간들에 대한 실망감 등 모든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이었던 것이다. 만약 이순신 장군이 난중일기를 쓰지 않았다면 자칫 전쟁에서 패해 우리 후손들이 지금 일본어를 쓰고 있을지도 모른다. 난중일기의 특징은 무엇보다 내용이 길지 않다는 것이다. 심지어 ‘맑다’가 전부인 일기도 많다. 일기를 쓴다는 것은 하루를 돌아보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내일을 그려본다. 그 종합 결과가 ‘맑다’인 것이다. 맑다의 기록이 하루의 기록이라면 별 값어치가 없을 수 있겠으나 7년 치라면 어떨까? 그것은 역사가 되는 것이다. 만약 선조가 일기를 썼다면 어땠을까? 만약 원균이 일기를 썼다면 어땠을까? 이들도 하루하루를 돌아보며 자신과 주변을 성찰했다면 어땠을까? 그들의 개인적 삶이 달라졌을 것임은 물론이고 백성들의 삶도 달라졌을 것이고 역사적 평가 또한 달라졌을 것이다. 한 마디로 난중일기는 전쟁 중에도 일기를 쓸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책을 넘어 전쟁 중이라면 더더욱 일기를 써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책이다. 최근에 너무 기막힌 일들로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만들고 있는 정치 지도자들은 분명 일기를 쓰지 않고 있을 것이다. 이순신 장군의 길을 두고 왜 선조와 원균의 길로 가려고 하는가. 하루라도 빨리 일기 쓰기를 권한다. 어떤 이들은 ‘나는 지도자의 위치에 있지 않아서 일기를 쓰지 않아도 된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천만의 말씀이다. ‘초등학교 일기장’을 가지고 있는가? 혹시 가지고 계신 분이 있다면 절대 분실하지 않도록 주의하기 바란다. 세월이 흐른 뒤 펼쳐보라. 왜 일기를 써야 하는지 한 눈에 알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존재 자체만으로도 우주의 빅뱅과 같은 감동이다. 일기장은 그 자리에 가만히 있었지만 세월이 일기장에 들어가 함께 하고 있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일기장을 꺼내 볼 때면 웃음과 눈물이 교차한다. 초등학교 시절, 뭐 그리 특별할 것이 없던 반복적 일상속에서 일기거리를 찾아야 했다. 더구나 초등학교 스승님이셨던 아버지의 검열을 받아야 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일기를 써야 했던 그 스트레스보다 일기를 읽고 평을 쓰셔야 했던 아버지의 스트레스가 더 크셨을 것으로 추측된다. 몇 줄 안 되는 글에서 틀린 맞춤법은 아무리 고쳐주어도 반복되었고 내용 또한 ‘참 재미있었다’로 끝이 나는 수준이었으니 얼마나 실망스럽고 화가 나셨을까? 그런 아버지의 인내와 기다림 덕분에 지금 이렇게 글을 쓰는 원동력이 되지 않았나 싶다. 글쓰는 힘의 원천은 분명 초등학교 일기장에 있다. 어쩔 수 없이 썼던 글들이 아직도 남아서 나를 울린다. 내 인생 최고의 걸작은 두 말할 것도 없다. 내가 앞으로 그 어떤 글을 쓰더라도 가격(price)은 몰라도 가치(value)에 있어서 초등학교 일기장을 넘어설 수는 없다. 가격이 가치로 전환되는 환희, 하루하루가 모여 역사가 되는 전율, 그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일기를 쓸 때는 어떤 규칙도 없다. 손 가는 대로 쓰면 된다. 아침에 써도 좋고, 자기 전에 써도 좋다. 심지어 내일 일기를 써도 좋고, 어제 일기를 써도 좋다. 늦기 전에 자신과 민낯으로 마주할 수 있는 은밀한 시간과 공간을 마련하기 바란다. 일기를 쓰면 콘텐츠를 소비하는 사람에서 콘텐츠를 생산하는 사람으로 바뀐다. 일기는 인공지능(AI)이 주인 행세를 하는 사회에서 내가 내 인생의 주인임을 증명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일지도 모른다
    새해의 각오, 일기 쓰기
    by 유상조
    2026.01.14 17:08:20
  • 최근 기업 위기의 가장 뚜렷한 특징은 ‘정치 과잉’이다. 사고의 실체나 영향이 파악되기도 전에 정치적 해석과 책임 공방이 먼저 등장한다. 위기 원인인 기술적 결함이나 사고는 즉시 정치적 논쟁거리로 전환되고 위기 상황은 정책 실패를 입증하는 재료로 소비된다. 이제 위기는 기업의 담장 안에서 통제되지 않는다. 여론이라는 거친 광장을 거쳐 곧장 국회와 정부로 직행한다. 위기의 정치화는 더 이상 예외적 상황이나 불운의 결과가 아니라 늘 고려해야 하는 구조적 변수가 됐다. 기술 문제가 정치문제로 전환되는 양상을 가장 잘 보여준 사례는 보잉 737 맥스(MAX) 사태다. 보잉의 협동체 기종인 보잉 737 MAX는 출시된 지 3년여 만인 2018~2019년 똑같은 양상을 보인 사고가 잇달아 두 번이나 발생하면서 기종 자체에 심각한 결함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결국 해당 기종은 2019년 초순에 전 세계에서 운항 중단됐다가 2020년 11월에서야 운항이 재개됐다. 그러나 보잉 737 MAX 9 기종은 2024년 1월 다시 미국에서 운항이 중단됐다. 당시 사고의 직접 원인은 자동비행보정시스템이라는 기술적 결함이었다. 그렇지만 사건은 곧 기술의 영역을 벗어났다. 사고 직후 보잉은 기체의 안전성과 조종사 훈련 문제를 강조하며 법률과 엔지니어의 언어로 대응에 나섰다. 하지만 대중이 던진 질문은 달랐다. ‘이 기업은 비용과 일정 압박 속에서 안전을 뒤로 미룬 것 아닌가’란 질문에 답하지 못하는 순간, 사고는 기술적 문제에서 대중의 분노로 전환됐고 분노는 곧 정치의 언어를 불러왔다. 미 의회는 청문회를 열었고 회사뿐만 아니라 규제 당국의 감독실패까지 문제 삼았다. 기술사고가 항공 안전체계 전반에 대한 정치적 심판으로 확장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사망자 수나 결함의 복잡성이 아니었다. 대중은 위기 상황에서 확률을 계산하지 않는다. 통제 가능성과 책임 의지를 본다. 책임 귀속이 먼저 이뤄지고, 감정이 형성되며, 그 감정이 규제의 근거가 된다. 위기의 정치화는 감정의 문제이자 규제의 문제다. 학문적으로도 이는 확인된 현상이다. 세계적 위기관리 전문가인 쿰즈의 상황적 위기 커뮤니케이션 이론(SCCT)은 이해 관계자들이 기업 책임을 높게 인식하는 위기에서는 방어적 해명이 오히려 역효과를 낸다고 말한다. 다른 위험인식 연구도 같은 결론에 이른다. 사람들은 확률과 수치보다 공정성, 통제 의지, 과거의 태도를 근거로 위험을 판단한다. 정치 과잉 환경에서는 이 판단이 더 빠르고 단순해진다. 사실 확인이 끝나기 전부터 책임에 대한 인식이 굳어지고 그 인식은 정책과 규제의 근거가 된다. 이 점에서 SK텔레콤의 대응은 참고할 만한 사례다. 지난해 일련의 개인정보유출사건에서 큰 사회적 주목을 받은 기업은 SK텔레콤이었다. 그러나 사건 이후 비교적 빠른 정보 공개와 고객 안내, 유심 교체 등 가시적 조치를 통해 정보 공백을 줄이려 했다. 완벽한 대응이었다고 말하기는 어렵고 배상 범위를 둘러싼 논란도 있었다. 그럼에도 위기를 ‘법률 분쟁’ 이전에 ‘신뢰 관리 문제’로 인식하고 대응의 속도를 높인 점은 정치화의 온도를 낮추는 데 기여했다. 핵심은 위기 이후의 태도였다. 더 극적인 사례는 2016년 삼성전자의 갤럭시 노트7 리콜이다. 배터리 발화 원인이 명확히 규명되지 않은 상황에서 삼성은 ‘단종’이라는 결정을 내렸다. 제품을 포기하고 브랜드를 지키는 선택이었다. 직접 손실만 3조 원이 넘는 손실을 감수한 이 결정은 재무적 계산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렵다. 그러나 당장의 손해보다 ‘품질과는 타협하지 않는다’는 단호한 행동이 있었기에, 삼성은 글로벌 소송과 규제의 파도를 넘어 신뢰를 회복할 수 있었다. 핵심은 무사고가 아니라, 사고 이후 보여준 책임의 밀도였다. 정치 과잉의 시대에 기업이 준비해야 할 것은 화려한 언변이 아니다. 단단한 체계다. 무엇보다도 위기 초기에는 법률의 언어를 최소화해야 한다. ‘법적 검토 중’이라는 표현은 대중에게 책임을 피하겠다는 신호로 읽힌다. 첫 메시지는 상황을 엄중히 인식하고 있다는 공감과, 피해를 줄이겠다는 의지가 중심이 돼야 한다. 법리는 그 다음 문제다. 물론 법적 리스크 관리는 중요하다. 그러나 그것만으론 충분하지 않다. 지금의 기업 위기는 서초동 법정이 아니라 ‘국민 정서의 법정’에서 먼저 판결이 내려진다. 법을 지켜도 여론을 잃으면 기업은 설 자리가 없다. 위기 후의 태도도 중요하다. 이를 위해 사과문보다 강력한 것은 행동의 시각화다. 종이 한 장의 사과문보다 최고경영자(CEO)가 현장에서 땀 흘리는 모습, 피해자와 눈을 맞추는 장면 하나가 훨씬 강력하다. 정치는 이미지로 작동한다. 기업의 위기 대응 역시 대중의 기억에 남을 장면을 만들어야 한다. 위기는 단순한 사고가 아니다. 기업의 철학이 드러나는 순간이다. 기술보다 태도가, 법리보다 공감이 먼저 평가받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체계를 구축하고 태도를 바꾸지 않으면, 2차 3차 위기의 파도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정치 과잉 시대의 기업 위기 관리 
    by 이보형
    2026.01.14 15:55:22
  • 기업 실무에서 근로자의 복지 증진이나 사회공헌, 혹은 업무 편의를 위해 급여의 일부를 미리 떼고 지급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특히 입사 시 '급여공제 동의서'를 일괄적으로 징구하여 매달 일정 금액을 공제하거나 인센티브의 일정 비율을 적립하는 방식은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법원은 이러한 방식이 근로자의 자발적 동의에 기초했더라도 근로기준법상 '임금 전액지급 원칙'에 위반된다고 판단하고 있어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근로기준법 제43조 제1항은 "임금은 통화로 직접 근로자에게 그 전액을 지급하여야 한다"고 정하면서, 예외적으로 '법령' 또는 '단체협약'에 특별한 규정이 있는 경우에만 임금 일부를 공제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는 사용자가 임금 지급을 지체하거나 마음대로 공제하는 것을 방지하여 근로자의 경제생활을 실질적으로 보호하기 위한 강행규정이다. 이를 위반할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판례 역시 취업규칙이나 근로계약에 공제 근거가 있더라도 그것이 법령이나 단체협약에 기반한 것이 아니라면 해당 공제는 효력이 없다고 판시하고 있다. 즉, 노사 합의를 통해 취업규칙을 개정하거나 근로자 개개인과 계약을 체결했더라도 그것이 '단체협약'이라는 형식을 갖추지 못했다면 법령상 예외 사유로 인정받기 어렵다는 뜻이다. 이를 법리적으로 보면 법령이나 단체협약에 기한 공제의 경우와 같이 예외적인 요건에 해당되지 않는 이상 입사 시점에 장래에 발생할 임금에 대해 사전 동의를 받는 방식의 임금 공제는 법률상 유효한 임금 포기로 인정받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는 지급청구권이 구체적으로 발생한 임금의 경우 그 처분권이 근로자의 사적 재산영역으로 옮겨지므로, 근로자가 이를 사후에 포기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유효한 상황과 비교된다. 결국 기업은 불필요한 분쟁을 예방하기 위해 기존의 급여 공제 시스템을 철저히 검토해야 한다. 가장 안전한 방법은 임금 전액을 근로자에게 지급한 뒤, 근로자가 자신의 계좌에서 직접 기부하거나 납부하게 하는 것이다. 만약 행정적 효율성을 위해 전산상 사전 공제 방식을 유지하고자 한다면, 입사 시 사전 동의라는 방식은 지양하고 매 임금 지급 시마다 개별적 동의를 받는 방식으로 진행하는 것이 비교적 안전하다. 임금 전액지급 원칙은 노사 간의 신뢰를 지탱하는 가장 기초적인 법적 장치다. 좋은 취지에서 시작한 사회공헌 활동이고 직원들도 모두 찬성했다는 명분은 분쟁 상황에서 방어막이 되지 못한다. 회사의 임금 관리 관행이 법령과 단체협약이라는 견고한 테두리 안에 있는지, 아니면 단순히 관행과 사전 동의라는 불안한 토대 위에 있는지 잘 점검해야 할 필요가 있다.
     "직원 동의받은 급여 공제니까 안전하다고요?"
    by 이태은
    2026.01.10 11:00:00
  • 미국의 베네수엘라 공격과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 체포를 둘러싼 국제사회의 반응은 극명히 엇갈린다. 그럼에도 주권국의 현직 대통령을 무력으로 체포해 연행한 행위는 유엔 헌장 제2조 제4항이 금지하는 무력 사용과 주권 침해에 해당하는 국제법 위반이라는 점에서 논란의 여지가 없다. 그간 마두로 정권의 권위주의와 부패, 독재적 통치, 각종 범죄 연루 의혹이 끊임없이 제기되어 온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국제사회의 기본 규범을 무너뜨리는 수단까지 정당화하지는 못한다. 특히 브라질·멕시코·콜롬비아를 비롯한 다수의 중남미 국가는 이번 사태를 국제법 위반의 관점에서 바라보며 우려를 표하고 있다. 반면 다른 한쪽에서는 베네수엘라 장기 독재의 종식을 환영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번 사태는 어느 한쪽의 논리만으로 재단하기 어려운 복합적인 질문을 국제사회에 던지고 있다. 무엇보다 이 위기의 중심에는 사람의 삶이 놓여있다. 중남미 여러 나라의 거리에서 수많은 베네수엘라 사람들을 직접 본 결과, 시장과 버스터미널, 국경 인근에서 만난 이들은 정치 구호를 외치지 않았다. 대신 ‘돌아갈 수 없는 나라’에 대해 말하며 슬픔과 체념을 토로했다. 의사와 교사, 기술자였던 사람들이 이제는 불안정한 일용직과 노점에 의존해 살아가고 있었다. 이 장면은 국가의 붕괴가 개인의 삶을 어떻게 잠식해 가는지를 통계가 아닌 현실로 보여주었다. 이 지점에서 피할 수 없는 질문이 제기된다. 과연 국가란 무엇인가? 국가 권력이 국민을 보호하지 못한 채 전체 인구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약 750만 명을 굶주림과 절망 속에서 타국으로 내몰았음에도 그 체제는 여전히 ‘주권 국가’라는 이유만으로 존중받아야 하는가? 선거라는 형식은 유지되지만 결과를 왜곡하며 장기 집권을 이어 가는 체제를 국제법이라는 이름으로 방치해 온 태도는 과연 중립이었는지에 대해서도 근본적인 의문이 남는다. 베네수엘라의 야권 지도자 출신으로 지난해 노벨 평화상을 받은 마리아 코리나 마차도는 “미국이 개입해서라도 자국민에게 민주주의와 자유를 되돌려 줘야 한다”고 호소한 바 있다. 베네수엘라에서 민주와 자유가 사실상 붕괴된 상황을 방치하는 것이 과연 더 도덕적인 선택인지에 대해 묻는 것이다. 실제 베네수엘라에서 독재 정권을 계속 방치했다면 세계는 어떤 모습이 됐을까? 독재 정권이 수십 년씩 지속되고 이들과 연대한 부패한 정치·범죄 집단들이 국경을 넘어 서로 연결된다면 이는 더 이상 한 나라의 비극에 그치지 않을 것이다. 악은 고립될 때보다 연결될 때 훨씬 빠르게 확산한다. 오늘의 내정 문제는 내일의 국제 문제가 되고 방치는 결국 더 큰 비용으로 되돌아온다. 그렇다면 미국의 직접 개입 이전까지 중남미 국가들은 무엇을 해왔는가? 자유와 인권이 체계적으로 유린되는 동안 ‘주권 존중’과 ‘대화 촉구’라는 정치적으로 안전한 언어는 반복되었다. 그러나 그 언어가 실제로 굶주림을 막았는지, 탈출을 줄였는지에 대해서는 명확한 답을 찾기 어렵다. 물론 콜롬비아·페루·브라질 등 다수의 중남미 국가는 수백만 명의 베네수엘라 탈주민을 받아들이며 삶의 터전을 제공해 왔다. 이는 결코 쉬운 선택이 아니었고 각국 사회가 감당해야 할 부담도 컸다. 다만 이들은 고통의 결과를 나누는 데에는 연대했지만 그 원인을 바꾸기 위한 결단으로까지 이어지지는 못했다. 미국의 이번 베네수엘라 내정 간섭은 국제사회에서 스스로를 ‘무소불위’의 위치에 올려놓았다. 이제 관건은 그 다음이다. 만약 미국이 조기에 베네수엘라 시민들을 전면에 세우고 다자적 관리 체계와 명확한 권한 이양 및 철수 로드맵, 민생 중심의 가시적 개선 조치를 제시하지 못한다면 국제 사회에서 현재의 유보적 시선은 빠르게 부정적 평가로 전환될 가능성이 크다. 현재 국제 사회에서는 이번 미국의 군사 개입이 베네수엘라의 민주주의 회복과 인권 개선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기보다는 현지의 엄청난 원유를 포함한 전략적 이해관계에 따른 것이라는 의문을 품는 시각도 많다. 이러한 인식이 확산된다면 논의의 초점은 베네수엘라의 독재 종식이나 인권 회복이 아니라 강대국의 이해관계 이슈로 전환되며 미국에 대한 국제사회의 신뢰가 크게 흔들릴 수 있다. 미국이 국제법과 주권을 자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선택적으로 해석했다는 인식이 굳어질수록 국제사회에서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도덕적 언어로 비판할 정당성도, 중국이 대만을 둘러싸고 무력 행동에 나설 경우 이를 규범의 언어로 제어할 명분도 각각 약화될 수밖에 없다. 규범이 흔들리는 순간 가장 먼저 피해를 입는 것은 강대국이 아니라 중소국과 약자다. 안정적 국제 질서는 강자의 일방적 선언이 아니라 일관성과 절제된 행동을 통해 유지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이번 사태의 성패는 워싱턴이 아니라 베네수엘라 국민들의 선택에 달려있다고 볼 수 있다. 트럼프 미 행정부의 영향력 못지 않게 베네수엘라인들이 이번 사태를 어떻게 바라보면서 본인들의 적극적인 참여 속에서 새 질서를 만들어가느냐가 관건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베네수엘라에서 미국의 역할은 자국 이익에 경도된 방식의 강압적 통치가 아니라 베네수엘라의 자유와 민주를 회복하는 조력자에 머물러야 한다.
    베네수엘라 사태, 개입과 방치 사이의 딜레마
    by 박선태
    2026.01.05 17:16:18
  • 병오년 새해가 밝았다. 작년을 돌아보면 업계에서 주목할 만한 변화의 흐름이 여럿 있었다. 우선 전자금융거래법이 개정되었다. 소위 ‘티메프 사태’가 촉발시킨 전자지급결제대행(PG)업 규제 개선 논의의 결실이라고 할 수 있다. 개정법에 따라 PG업자의 정산자금 보호장치 도입, 대규모 PG업 영위에 필요한 자본금 요건 강화 등 규제가 전반적으로 강화되었는데, 다른 한편으로는 PG의 정의조항을 정비해서 다른 주된 사업에 부수하여 내부 정산을 수행하는 e-커머스 플랫폼, 백화점, 프랜차이즈 본사 등을 전자금융업 등록대상에서 제외함으로써 규제 불확실성을 해소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수년간 지지부진했던 디지털자산 법제화 논의도 활기를 띠고 있다. 작년 6월 미국에서 지니어스법이 통과되면서 스테이블코인은 글로벌 시장의 화두가 되었고, 국회에서 주도하는 법제화 논의에 업계와 규제당국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의견을 내고 있는 모양새다. 자본시장법 개정에 따라 조각투자상품이 제도권으로 진입한 것도 의미 있는 변화로 꼽을 수 있다. 그간 혁신금융서비스 지정을 통해 제한적으로 허용되었던 비(非)금전신탁 수익증권 형식의 조각투자상품 발행·유통플랫폼 운영을 위한 투자중개업 인가가 신설되면서, 투자자들의 다양한 니즈를 충족할 수 있는 대체투자상품이 등장할 것이라는 시장의 기대감이 크다. 아쉬운 점도 없지 않다. 토큰증권(security token) 발행·유통 근거를 마련하는 취지의 자본시장법 및 전자증권법 개정안은 작년 12월 국회 본회의에 상정되었지만 쟁점법안들에 대한 여야 대립이 필리버스터로 이어지면서 끝내 처리되지 못했다. 토큰증권 논의는 새로운 것이 아니다. 3년 전인 2023년 초 금융당국이 「토큰증권 발행·유통 규율체계 정비방안」을 발표한 이후 제도권 금융회사들도 적지 않은 리소스를 투입해 가면서 새로운 시장이 열릴 것에 대비해 왔는데, 법제화가 수년간 지연되면서 업계에서는 동력이 많이 떨어졌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앞서 언급한 디지털자산(스테이블코인) 법제화가 예상보다 지연되고 있는 것도 걱정스럽다. 작년에는 업계와 당국 간 여러 입장 차이에도 불구하고 연말을 넘기지는 않을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는데, 지금 분위기로는 올해 상반기도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현재까지 발의되어 있는 디지털자산 관련 법안은 2024년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 시행에 이어서 추진되고 있는 2단계 입법의 일환이라고 할 수 있는데,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면 핀테크·디지털자산 생태계 활성화를 위한 첫걸음이라고 할 수 있다. 스테이블코인을 비롯한 디지털자산이 제도권에 완결적으로 편입되면, 업계의 오랜 숙원인 소위 ‘금가분리(금융-가상자산의 결합 금지)’ 규제 완화에 대한 논의도 더욱 활발해질 것으로 보인다(현재 추진되고 있는 빅테크기업과 디지털자산거래소의 합병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특히 스테이블코인이 법제화되면 이를 매개로 하는 해외송금업이나 PG업에 대한 업계 수요도 생길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는 외국환거래법과 전자금융거래법 규제를 정비하는 문제에 그치지 않고 궁극적으로는 금가분리 규제 완화 문제로 연결된다고 할 수 있다. 해결해야 할 과제가 적지 않지만, 새해를 맞아 국회와 규제당국, 업계가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지혜를 모아 합리적인 제도화를 위한 접점을 찾아 나가기를 기대한다. 이를 통해 핀테크·디지털자산 생태계가 한층 고도화·활성화되는 2026년이 되었으면 한다.
    2026년, 핀테크·디지털자산 생태계 활성화를 기대하며
    by 유정한
    2026.01.05 15:25:00
  • 주요 기관들의 2026년 부동산 시장 전망은 장기적인 공급 부족과 금리 안정세가 맞물리며 '대세 상승'이 유력시되고 있다. 하지만 모두가 한 방향을 가리킬 때일수록 이면의 복잡한 ‘결’을 세밀하게 읽어야 한다. 올해 부동산 시장은 상승 추세 속에서도 매물 잠김으로 인해 원하는 물건을 얻기 힘든 '거래 가뭄'의 역설과 침체되었던 지방 시장의 회복세가 공존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올해 부동산 시장은 흐름에 몸을 맡기는 시기가 아니라, 제한된 선택지 속에서 자산을 어떻게 재배치할지 결정짓는 중요한 시기가 될 전망이다. 이런 시장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세 가지 트렌드를 짚어본다. Trend 1: 진주 속 다이아몬드 찾기, ‘손품보다 발품’ 현재 주택시장의 특징은 서울 등 핵심지 위주의 급격한 매물 부족이다. 실제 지난해 초 8만 5000건을 웃돌던 서울 아파트 매물은 연말 현재 6만 2000건 수준까지 감소했다. 매도자 우위 시장이 공고해지면서 내 집 마련을 위한 우량 단지를 선별하는 '진주 찾기'를 넘어, 그 중 취득 가능한 적정 시세의 물건인 ‘다이아몬드’를 찾는 선별력이 필수적이다. 경쟁력 있는 매물은 포털에 노출되기 전 현장에서 소화되는 특성이 강화되고 있다. 즉 스마트폰으로 확인하는 ‘손품’보다는 현장을 직접 뛰며 정보를 선점하는 ‘발품’이 자산 관리의 승패를 결정짓는 핵심이 되었다. Trend 2: 탈출구 없는 ‘월세 블랙홀’과 임차인의 불안감 임대차 시장은 월세화가 가속화되며 주거 안정성이 흔들리고 있다. 지난해 11월 기준 서울 아파트 순월세가격 상승률은 0.48%로, 순전세가격 상승률(0.21%)의 두 배를 웃돌았다. 매매가 상승에 올라타지 못했다는 소외감과 급증한 월세 부담은 임차인의 저축 여력을 갉아먹으며 내 집 마련의 꿈을 가로막는 ‘월세 블랙홀’을 형성한다. 여기에 임차인의 내 집 마련 실패에 대한 불안감은 전반적인 주택 시장의 심리까지 불안하게 만들 수 있다. 나아가 결과적으로 주택 보유 유무에 따른 자산 양극화는 2026년을 기점으로 더욱 심화할 가능성이 높다. Trend 3: Paper Wealth, Real Pain 세 번째 트렌드는 ‘종이 위의 부(Paper Wealth)’와 ‘실제적 고통(Real Pain)’의 대립이다. 자산 가치는 증대되었으나, 실현되지 않은 이익에 매년 부과되는 보유세 압박은 현실적인 고통으로 다가온다. 지난해 서울 지역 아파트 가격이 역대 최대 수준으로 상승한 가운데, 종합부동산세와 관련한 공정시장가액비율 조정 및 세율 인상 가능성이 맞물리며 고가 주택 보유자의 세 부담은 점점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가처분 소득이 제한적인 고령층에게 직격탄이 되며, 수치상 화려한 가격과 달리 매년 수천만 원의 현금을 세금으로 지불해야 하는 상황을 만든다. 결국 주택 매각이나 자산 포트폴리오의 근본적 조정을 강제하는 동인이 될 가능성이 높다. 향후 2~3년간 수도권 및 지방 주요 지역의 공급 물량이 급감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 상수다. 실수요자라면 조금이라도 이른 시점에 내 집 마련에 나서는 것이 리스크를 줄이는 길이다. 다만 입주 시점의 분양권 물량이나 저평가된 재개발 매물 등 다이아몬드를 찾기 위한 집요한 노력이 수반되어야 한다. 반면 세 부담이 큰 고령층은 부담이 가중되기 전 증여를 검토하거나, 중저가 주택으로 갈아타며 현금 흐름을 창출하는 리밸런싱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준비되지 않은 이에게 2026년은 뼈아픈 실책의 해로 기록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2026년 주택 시장의 세 가지 함정과 기회
    by 윤수민
    2026.01.03 07:30:00
  • 한국 음식에 대하여 과학적으로 많은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지만 한식의 과학에 대해서는 많은 연구가 없다. 그러나 한식의 과학을 모르면 한식에 대하여 잘못된 비과학적인 이야기가 쉽게 침투하여 한식의 본질을 왜곡하는 풍토가 생긴다. 닭도리탕이 일본말에서 왔다느니, 파오차이와 김치가 뿌리가 같다느니, 김치가 200년밖에 안되었다느니, 원래 김치는 백김치였다느니 등이 한식의 본질을 흐리는 대표적인 잘못된 것들이다. 우리 음식의 과학을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에 나온 풍설 등이다. 한식의 과학은 크게 어떻게 한식이란 음식이 한반도, 아니 고조선을 기반으로 한 우리 민족의 고유한 음식으로 탄생하였는가와 발효과학 그리고 왜 한식은 건강한 음식인가 측면에서 이야기할 수 있다. 먼저 여기서는 한식의 탄생 이야기를 먼저 다루고자 한다. 세계 모든 고유의 토속음식은 그 지역의 지리적, 농경학적 풍토에서 탄생한다. 즉 어느 민족이 처한 지리적, 농경학적으로 처한 환경에서 어떻게 하면 먹고 살아가는 처절한 환경에서 지혜와 과학이 쌓여가면서 자연발생적으로 고유의 음식이 탄생하는 것이다, 지리생물학적으로 만주를 포함한 한반도에서는 밀보다 쌀이, 쌀 중에서도 장립종(Indica type)보다 단립종(Japonica type)이 원산지로 자리 잡고 있어서 수렵채집 생활에서 농경생활로 전환되어 나갈 때 쌀문화, 그것도 단립종을 기반으로 하는 밥문화가 정착하게 된 것이다. 수년 전에 유전자 분석 결과 단립종 쌀의 원산지가 만주를 포함한 한반도라는 주장이 생명과학자에게서 발표되었다. 이를 두고 어떤 이들은 국뽕이라고 폄하하기도 하면서, 쌀의 원형이 양자강 지방에서 시작되어 남쪽과 북쪽으로 전파되어 갔기 때문에 쌀(쌀과 식물)의 원산지가 양자강이라고 주장한다. 물론 진화생물학이 발달하기 전의 이야기이다. 하지만 요즈음은 인류가 지구상에 나타나기 전인 수백만년 전(길게는 수천만년 전)에 쌀이 지구상의 어느 지역에서 탄생하여 지구상에 퍼진 것을 따져 원산지로 주장하는 것은 인류화적 측면에서 보면 항상 옳지 않다. 다시 말하면 인류가 지구상에 나타나기 전에 사람이 아닌 요인에 의하여 쌀의 과(family)나 속(genus)가 이미 여러 지역으로 진화하여 퍼진 것을 놓고 어느 지역이 원산지라 이야기하는 것은 인류학적으로는 무의미하다. 수십만년전 (길게는 수백만년전) 인류가 지구상에 나타나서 보니 그 지역에 특별한 식물이 자라고 있었고 오로지 사람에 의하여 퍼지게 될 때 원산지라는 개념이 유의미하다. 어떻게 보면 원산지라는 개념은 매우 인문학적인 개념이다. 이와 같은 이유로 콩이나 단립종 쌀의 원산지가 만주를 포함한 한반도라는 과학적인 주장이 받아들여지고 있다. 밀로 빵을 만들 때 빵이 잘 부풀려 모양을 잘 유지하기 위하여 소금을 넣어 굽는다. 그렇기 때문에 구운 빵만으로도 먹을 수도 있고, 가지고 다니면서 먹을 수 있다. 그러나 쌀을 에너지원으로 먹을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는 밥을 먹으려면 쌀을 호화를 시키기 위해 밥을 지어야 했고, 밥만 먹으면 쉽게 질리거나 물려서 많이 먹을 수가 없다. 반드시 맛을 낼 수 있는 소금성분이 들어 있는 것과 같이 먹어야 맛있게 밥을 많이 먹고 힘을 내고 살아갈 수 있다. 과학적으로 소금은 모든 동물에게는 본능적으로 필요하고 가장 맛을 잘 내는 성분이다. 밥을 맛있게 먹으려면 어떤 도움이 되는 것이 필요하다. 이것이 반찬이다. 밥과 반찬이 같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밥상이 필요하고 이렇게 생긴 문화가 밥상문화이다. 여기에 우리 조상들은 밥을 먹을 때 목에서 음식을 잘 내려가게 하는 국을 준비했다. 김치와 장도 항상 먹었다. 그때그때 철과 필요에 따라 한 가지 정도 특별한 요리를 만들어 가족들이 밥상에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면서 맛있게 먹었다. 단백질 공급원인 닭, 꿩, 생선, 두부, 소나 돼지고기를 구비한 특별한 식사를 하거나 사정이 여의치 않을 경우 맛있게 무친 나물을 밥상에 올리기도 하였다. 그러면 반찬은 무엇으로 만들었는가? 그리고 왜 김치나 장은 항상 밥상에 올려 졌을까? 전적으로 지리적 환경에서 결정되었다. 우리나라 같이 풍족하지 않은 환경에서 김치나 장의 탄생은 필연적이었다. 중국과 같이 풍족하지도 맛을 내는 기름도 없었고, 단맛을 내는 설탕도 없는 어려운 환경에서 이를 극복하는 우리 민족의 오랜 생활경험과 지혜로 탄생한 것이 식물(풀)을 기반으로 한 반찬이다. 기본적으로 김치나 장을 우리 몸에 필요하고 항상 맛있는 맛을 내는 성분인 소금을 활용해 만들었다. 이런 측면이 김치나 장이 항상 밥상에 올려진 이유이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김치나 장은 아무리 먹어도 질리지 않은 특성이 있기 때문이다. 세계 어떤 맛있는 음식이라고 한끼도 빼먹지 않고 며칠 계속해서 먹으면 질려서 다시 먹고 싶지 않은 게 사람의 본성이다. 그러나 장과 김치는 아무리 먹어도 질리지 않은 특성이 있기에 매일매일 반찬으로 올려도 질리지 않은 것이다. 똑같은 김치를 먹어도 질리지 않는다. 후성유전학적(nutriepigenomics)으로 김치나 장은 매일 같이 먹으면 질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인이 박혀서 다시 찾게 되는 것으로 밝혀진 바 있다. 그만큼 한식에는 과학적으로 흥미로운 대목이 적지 않은데 앞으로 많은 연구를 통해 비과적인 요소를 걷어냈으면 한다.
    한식에 담긴 과학
    by 권대영
    2026.01.02 17:46:09
  • 지역 소멸이라는 거대한 파고 앞에서 광주와 전남이 생존을 위한 연대를 모색해야 한다는 대의명분(大義名分)에는 이견이 있을 수 없다. 지역의 경쟁력을 높여 시·도민 모두가 잘 사는 터전을 만드는 것은 우리 모두의 절박한 염원이며, 필자 역시 그 방향성에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러나 ‘무엇을(What)’ 하느냐만큼 중요한 것이 ‘어떻게(How)’ 하느냐이며, 더 나아가 ‘왜(Why)’에 대한 냉철한 실증이 전제되어야 한다. 최근 광주·전남 행정통합 논의가 불쑥 튀어나온 방식은 심히 우려스럽다. 시·도지사의 전격적인 선언과 ‘속도전’을 방불케 하는 추진 과정은 마치 과거 권위주의 시대의 ‘위로부터의 개혁’을 답습하는 듯하다. 이는 ‘지방 시대’라는 정부 기조에 편승하여 임기 내 가시적 성과를 내보이려는 단체장들의 조급함이 빚어낸 ‘정치공학적 계산’이라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행정통합은 단순한 물리적 결합이 아니다. 지역의 백년대계(百年大計)를 흔드는 고도의 화학적 결합이자, 주민의 삶을 재구성하는 거대한 실험이다. 통합 찬성론자들은 앵무새처럼 ‘해외 선진 사례’를 거론하며 장밋빛 미래를 약속한다. 프랑스의 레지옹 개편이나 일본의 오사카도 구상을 보면 우리도 통합해야 한다는 논리다. 그러나 우리가 수행한 팩트체크 결과, 그 실상은 찬성론자들의 주장과 사뭇 다르다. 우리는 ‘불편한 진실’을 직시해야 한다. 첫째, ‘통합하면 효율적’이라는 신화는 깨졌다. 프랑스는 2016년 22개 레지옹을 13개로 통폐합하며 행정 비용 절감을 자신했다. 그러나 프랑스 감사원의 보고서는 통합 과정에서 공무원들의 임금과 복지 혜택이 가장 높은 수준으로 맞춰지는 ‘상향 평준화’가 발생해 오히려 인건비 등 재정 부담이 영구적으로 증가했음을 지적했다. 규모의 경제를 기대했다가 ‘규모의 비경제’라는 역풍을 맞은 셈이다. 광주와 전남이 통합할 경우, 직급 조정과 처우 개선 비용에 대한 치밀한 추계 없이 막연히 ‘예산이 절감될 것’이라 주장하는 것은 기만에 가깝다. 둘째, ‘행정 통합이 곧 경제 성장’이라는 등식도 성립하지 않는다. 일본 오사카유신회는 ‘오사카도 구상’을 통해 이중행정을 없애면 오사카가 도쿄와 맞먹는 경제 도시로 부활할 것이라 선전했다. 하지만 데이터는 오사카의 경제적 침체가 행정 구역의 문제가 아니라 인구 고령화와 산업 구조의 문제임을 보여준다. 2045년 오사카의 고령화율은 36%에 달할 것으로 전망되는데, 간판을 ‘특별자치도’로 바꿔 단다고 해서 떠나는 청년이 돌아오고 기업이 저절로 생겨나지는 않는다. 셋째, 주민 동의 없는 통합은 필패한다. 일본 오사카 주민들은 두 차례(2015년, 2020년)의 주민투표에서 통합안을 부결시켰다. 행정 서비스가 거대 광역 정부로 이관될 경우, 내 집 앞의 쓰레기 수거, 돌봄 서비스와 같은 풀뿌리 복지가 소홀해질 것을 우려한 ‘주민의 승리’였다. 독일의 베를린-브란덴부르크 통합 역시 1996년 주민투표에서 브란덴부르크 주민들의 반대로 무산됐다. 거대 도시 베를린에 흡수되어 주변부로 전락할 것이라는 공포, 즉 ‘흡수 통합’에 대한 거부감이 작용한 결과다. 이는 광주라는 대도시와 전남이라는 농어촌이 결합할 때 전남 도민들이 느낄 소외감과 정확히 맞닿아 있다. 지금 광주와 전남에 필요한 것은 깜짝쇼와 같은 로드맵 발표가 아니다. 프랑스의 실패와 오사카의 거부를 반면교사(反面敎師) 삼아 통합의 득과 실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공론의 장’을 마련해야 한다. 통합 시 발생할 천문학적인 청사 건립 비용, 공무원 조직 개편에 따른 갈등 비용, 그리고 농어촌 소외를 막을 구체적인 재정적 안전장치(Safety Net)를 주민 앞에 내놓고 치열하게 토론해야 한다. 진정한 지역 경쟁력은 단체장의 치적 쌓기용 ‘속도전’에서 나오지 않는다. 영국이 보여준 것처럼 재정 권한 없는 무늬만 통합은 중앙정부의 통제만 강화할 뿐이다. 정부의 지원 의지가 확고하다면 더더욱 서두를 이유가 없다. 지금이라도 일방통행을 멈추고, ‘민관정(민·관·정) 통합 거버넌스’를 구축하여 바닥에서부터 의견을 모아가는 상향식(Bottom-up) 절차를 밟아야 한다. 주민의 교감 없는 통합은 ‘미완의 봉합’에 그칠 뿐이며, 그로 인한 혼란과 비용은 고스란히 지역민의 몫이 될 것이다. 시·도지사는 이제 ‘환상’을 걷어내고 주민과 함께 ‘실증’의 길을 걸어가야 한다.
    광주·전남 행정통합, ‘환상’ 걷고 ‘실증’의 길 가야
    by 김호균
    2026.01.02 17:45:01
  • 아르헨티나는 내년 2월을 앞두고 이른바 ‘빙하법’ 개정을 둘러싸고 사회적 논쟁이 뜨겁다. 환경 보호를 이유로 한 반대와 이제는 개발을 통해 국가의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는 주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우리들에게는 다소 생소한 주제다. ‘빙하법’이라는 말부터 낯설고, 빙하가 왜 한 나라의 경제 문제와 직결되는지 쉽게 와닿지 않는다. 그러나 이 논쟁은 단순한 환경 법률 문제를 넘어 아르헨티나와 중남미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구조적 단서를 제공한다. 이 법의 이름부터 오해를 부른다. 빙하법은 빙하라는 얼음을 보호하는 법처럼 들리지만 실제로는 상류 수자원 관리가 핵심이다. 안데스 고산지대의 빙하와 만년설은 녹아 계곡을 따라 내려오며 하천의 기저 유량을 유지한다. 이 물은 농업과 지역 공동체의 생존과 직결된다. 광산 개발이 물의 흐름을 바꾸거나 사용량을 늘리고 수질 오염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는 우려가 이 법의 출발점이다. 그런 의미에서 빙하법은 환경 상징을 앞세운 법이라기보다 수자원을 보호하기 위한 매우 강력한 사전 차단 장치에 가깝다. 빙하법은 2010년에 제정됐다. 비교적 최근의 법이다. 그럼에도 “이 법 때문에 아르헨티나는 광산 개발을 못 해왔다”는 말이 나온다. 이는 절반만 맞는 이야기다. 사실 아르헨티나는 빙하법 이전부터 이미 광업 개발이 뒤처진 나라였다. 문제는 자원이 아니라 국가가 선택해 온 발전 전략과 제도 구조에 있었다. 아르헨티나는 전통적으로 농업 중심 국가였다. 곡물과 축산 분야에서 비교우위가 있었고 국가 성장 전략 역시 농업과 내수에 무게가 실려 있었다. 광업은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권한이 복잡하게 얽혀 있고 환경·외환·조세 문제까지 동시에 다뤄야 하는 까다로운 산업이었다. 그 결과, 광업은 정책 우선순위에서 밀려났고 국가 전략의 중심에 서지 못했다. 같은 안데스 산맥을 공유하면서도 칠레와 페루가 일찍부터 광업을 국가 경제의 축으로 키운 것과는 다른 길을 걸어온 셈이다. 이런 구조 위에서 2000년대 후반 환경 갈등이 겹쳤다. 일부 광산을 둘러싸고 수질 오염과 물 부족에 대한 불안이 커졌고, 정부와 기업의 관리 약속에 대한 불신도 확산됐다. 정치권은 ‘관리된 개발’이라는 복잡한 해법 대신 가장 확실한 선택을 택했다. 아예 문을 닫아버리는 것이었다. 빙하법은 광업이 활발해서 이를 통제하려 만든 법이 아니라, 애초부터 관심과 역량이 부족했던 광업을 제도적으로 더 멀리 밀어낸 결정이었다. 그러나 환경은 그대로인 반면, 경제 환경은 달라졌다. 에너지 전환 시대가 본격화되면서 구리는 전기차, 신재생에너지, 전력망 확충에 필수적인 전략 자원이 됐다. 이 과정에서 아르헨티나가 보유한 구리 잠재력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업계와 국제기구의 분석에 따르면, 현재 보류 중인 주요 구리 프로젝트들이 빙하법 개정을 계기로 본격 가동될 경우 아르헨티나는 세계 구리 수출국 순위에서 네 번째 수준까지 도약할 가능성이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같은 안데스를 공유한 칠레·페루에 이어, 글로벌 구리 공급망에서 의미 있는 축으로 편입될 수 있다는 의미다. 이 지점에서 같은 안데스를 공유한 칠레와 페루의 사례는 중요한 대비를 이룬다. 흔히 이들 국가에서 광업이 국내총생산의 약 10% 안팎을 차지한다고 말하지만, 이는 광산에서의 직접 생산만 반영한 보수적인 수치다. 실제로 광업은 물류와 운송, 에너지, 건설, 장비 산업은 물론 금융, 법률, 회계, 엔지니어링 같은 전문 서비스까지 함께 움직인다. 이러한 간접 효과와 유발 효과까지 포함하면, 광업은 이들 국가에서 국내총생산의 4분의 1 이상을 떠받치는 산업 생태계를 형성하고 있다. 광업은 단순한 채굴 산업이 아니라, 국가 경제 구조 하나를 통째로 가동시키는 플랫폼 산업인 셈이다. 반면 아르헨티나는 이 구조를 거의 활용하지 못했다. 광업의 직접 효과만 놓고 보면 경제 기여도는 미미했고, 그에 따라 광업을 중심으로 형성될 수 있었던 산업 생태계 역시 작동하지 못했다. 같은 안데스를 가지고도 주변국들이 수십 년에 걸쳐 누려온 경제적 효과를 아르헨티나는 얻지 못해 온 것이다. 그래서 지금의 빙하법 개정 논쟁은 ‘광산을 더 파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이는 수자원을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 그리고 그 보호를 과학과 제도, 나아가 신뢰 가능한 절차로 관리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가깝다. 절대적으로 보호해야 할 지역은 분명히 보호하되, 모든 고산 지형을 동일하게 취급하는 일괄 금지에서 벗어나 사전 검증과 독립적 판단을 통해 관리 가능한 영역을 구분할 수 있느냐가 핵심이다. 아르헨티나의 빙하법 논쟁은 중남미를 바라보는 시야를 넓혀준다. 중남미는 단순히 자원이 많은 지역도, 개발이 더딘 지역도 아니다. 그 이면에는 자원을 둘러싼 제도와 신뢰, 그리고 역사적 선택이 켜켜이 쌓여 있다. 같은 안데스를 공유하고도 서로 다른 길을 걸어온 이유는 지질이 아니라, 바로 그 선택의 축적에 있다. 아르헨티나는 이제 다시 한 번 그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아르헨티나 ‘빙하법’ 논쟁
    by 박선태
    2025.12.30 10:28:08
  • 26세의 레오(가명)는 장래가 유망한 실험과학자로 아시아계 영국인이다. 그는 스코틀랜드에 있는 한 대학에서 무기화학을 공부하고, 평판 높은 기술연구소 신임교수로 재직 중이었다. 그러던 어느 주말 휴일에 친구들과 함께 차를 몰다가 사고를 당했다. CT촬영을 해보니 뇌의 왼쪽 두정엽에 출혈이 있고 심한 손상이 보였다. 두정엽은 뇌의 윗부분에 위치한 영역으로 다양한 감각정보를 해석하고 언어를 이해하며 공간기억을 저장하는 등의 기능을 담당한다. 그는 사고 후 25일 동안 인공호흡기 신세를 졌다. 39일 뒤에는 말하기 요청을 받았을 때, 말을 하지 못하는 실어증 상태에 있었다. 그는 3개월 동안 집중적으로 언어와 물리 치료를 받았다. 사고가 난 지 21주 뒤에 신경심리학적 평가가 진행되었다. 임상장면에서 언어장애가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는 발음을 잘못할 뿐만아니라 단어도 제대로 사용하지 못했다. 레오는 아무런 연상도하지 못했고 그의 꿈 꾸기는 중단되어 있었다. 뇌의 어느 부위를 다치면 꿈 꾸기가 중단되는가? 바꾸어서 말하면 뇌의 어느 부위가 꿈 꾸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느냐의 문제이다. 1977년 앨런 홉슨이 발표한 논문에 의하면 ‘꿈은 사람의 원시뇌인 뇌간에서 시작되기 때문에 꿈의 주된 동기는 심리적인 것이 아니라 생리적인 것이며 동기에 있어서 중립적이고 별다른 의미가 없다’고 한다. 홉슨의 이 견해는 이후 신경과학계의 지배적인 학설이 되었다. 홉슨이 주장한 학설에 대한 극적인 반전은 어느 한 정신과 의사로부터 시작된다. 그의 이름은 마크 솜스(Mark Solms)다. 솜스의 가족은 서남아프리카의 독일 식민지에서 살고 있었다. 솜스는 자기 형인 리(Lee)와 한시도 떨어지지 않고 사이좋게 어울렸다. 그러던 어느날 당시 6살이던 그의 형이 지붕에서 미끌어져 떨어지며 뇌를 다치는 사고가 일어났다. 이 사건으로 리는 완전히, 그리고 영원히 딴 사람이 되었고, 동생 마크는 일생에 거쳐 뇌과학을 연구하는 탐험의 길로 들어섰다. 1980년대 초 솜스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요하네스버그에서 신경과학을 공부하고 있었다. 그는 뇌의 표면적인 메커니즘에 대해서는 많이 배웠지만, 정작 깊이 있는 의문들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했다. 그러다가 친구의 권유로 프로이트의 꿈 이론 강의에 참석하였다. 그는 당시를 회상한다. “꿈꾸기의 토대를 이루는 뇌의 기능에 관한 프로이트의 이론을 들으면서 나는 말 그대로 넋이 빠졌습니다. 소망, 욕구, 강렬한 정서 처리, 그 모두가 우리의 실제 삶과 관련이 있었어요. 신경과학 강의에서는 듣지 못했던 것이었죠.” 그는 홉슨의 1977년도 논문이 ‘지나치게 단정적이며, 부당한 방법을 써서 프로이트의 역작을 실제보다 하찮게 만들었다’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결코 홉슨 이론의 오류를 증명할 생각은 아니었다. 솜스는 런던의 신경외과 병원에서 뇌졸증과 뇌종양 또는 자기 형처럼 사고로 다친 뇌를 환자를 연구했다. 솜스는 환자들에게 뇌 손상으로 꿈에 어떤 변화가 있는지 물어보았다. 조사는 성공적이었다. 어느 환자는 아무런 꿈도 꾸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그 환자는 두정엽 손상 환자였다. 두정엽은 다양한 감각 정보들을 조합하여 공간적 정향성과 정신적 이미지를 만들어 내는 부위이다. 두정엽의 활동으로 우리는 남태평양 해변에서 휴식을 취하는 공상을 할 수 있고, 은행에 가는 길을 떠올리는 상상을 할 수 있다. 뇌파기록을 보면 이 환자들은 여전히 렘수면을 경험하고 있었다. 렘수면의 시초가 되는 뇌간의 신호들이 전과 다름없이 전송되고 있지만, 그 신호를 받아서 그림으로 만드는 전뇌조직이 망가졌기 때문에 꿈을 꾸지 않는 것이라고 가정했다. 그는 뇌간의 손상환자들이 꿈을 꾸고 있다는 보고하는 환자 집단을 만났다. 홉슨의 꿈 생성이론에서는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솜스는 뇌의 손상이 있으면 꿈 꾸기가 중단되는 또 다른 부위가 있음을 발견한다. 그 부위는 앞이마 아래 안쪽에 있는 백질부분이다. 의학용어로는 복증측 전두 백질(Ventromesial Frontal White Matter)부위라고 한다. 이 부분은 우리 인간의 동기를 유발하는 영역으로 꿈이 우리의 가장 은밀한 소망이나 두려움을 표출한다는 프로이트의 견해에도 들어 맞는 부위이다. 이 부위는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이 지나가는 경로이기도 하다. 해서, 뇌과학자들은 이 부위를 ‘보상(reward)’체계 혹은 ‘나는 그것을 원해!’라는 ‘원함(wanting)’ 혹은 ‘추구(seeking)’체계라고도 부른다. 1997년 솜스는 ‘꿈을 만들어 내는 제1의 추진력은 일차적 욕구를 추구할 때 활성화되는 백질의 탐색계(소망)’ 라는 내용의 논문을 발표한다. 홉슨이 프로이트를 비판한 꿈 이론을 발표한지 정확히 20년 후의 일이었다. 다시 두정엽을 크게 다친 레오의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사고를 당한 후 꿈 꾸기가 중단되었던 레오는 치료를 받은 몇개월 후 ‘꿈을 꾸었어요.’라고 말했다. 하지만 처음에는 어떤 꿈을 꾸었는지는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나중에 뇌의 기능이 회복되면서 다음과 같은 일상적인 꿈도 꾸었다. ‘나는 소호(런던의 한 구역)에 있는 내 아파트에서부터 거리를 걸어 내려 가던 중인데 중국인을 만났어요. 어른 한 사람과 아이 셋이었죠 나는 조금 더 걸어가다가 방금 보았던 똑같은 가족들의 어머니와 친구 한 사람을 만났어요.’ 레오는 이 꿈에서 아무런 연상도 내놓지 못했고, 꿈 속의 등장인물들도 알아보지 못했다. 그가 떠올린 생각은 꿈 속에서 그가 정상인이었음을 알아차렸다는 것이다. 그가 꿈을 다시 꾸기 시작했다는 것은 그에게 대단히 중요한 일임이 틀림이 없다. 그에게 있어서 그 꿈은 자신 내면의 삶과 심리적 회복에 관한 활력의 징후이다. 이제 우리 모두는 뇌과학적인 사실을 안다. 기억을 하던, 하지 못하던 정상적인 뇌기능을 가진 사람은 모두 하루 8시간 수면 중 1시간반이나 2시간 동안 꿈을 꾼다는 사실을. 그리고 이는 우리 뇌가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다는의미라는 사실도.
    '꿈'을 꾸지 않는 뇌 환자
    by 국경복
    2025.12.30 10:27:13
  • 왜 이렇게 안 막히나: 숫자가 말해주는 현실 경영권 분쟁 국면에서 신주발행은 단순한 자금조달이 아니다. 신주 1주는 의결권 1표이고, 신주의 대량 발행은 곧 의결권 구조를 바꾸는 행위다. 그럼에도 신주발행금지 가처분이 법원에서 인용되는 경우는 많지 않다. 경제개혁연구소가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2015년 1월부터 2025년 11월까지 유가증권·코스닥시장 상장회사 73개사의 ‘제3자 대상 신주발행’ 관련 분쟁 105건(가처분 78건, 본안 27건) 가운데 가처분채권자 또는 원고의 주장이 인용된 비율은 가처분 29.49%, 본안 14.81%에 그쳤다. 정리하면, 신주발행을 다툰 분쟁 네 건 중 약 한 건만 인용되는 셈이다. 이 통계는 전자공시를 기반으로 한 분석이므로 일부 사건 누락 가능성은 있지만, 신주발행에 제동을 거는 일이 쉽지 않다는 방향성 자체는 분명해 보인다. 상법의 숨은 설계: 신주발행금지 가처분이 까다로운 이유 표면적으로 보면 “법원이 회사 측 자율성을 지나치게 존중하는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그러나 상법의 구조를 들여다보면, 단순히 ‘회사 편’을 드는 것이라기보다 제도 설계 자체가 제3자배정 신주발행에 대해 원래부터 엄격한 심사를 예정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상법은 제418조 제2항 단서에서 “경영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만 제3자배정을 허용하고, 제424조에서 회사가 법령 또는 정관에 위반하거나 현저하게 불공정한 방법으로 주식을 발행하여 주주가 불이익을 받을 염려가 있는 경우에 신주발행유지청구권을 인정한다. 실무에서 신주발행금지 가처분은 바로 이 유지청구권을 피보전권리로 구성된다. 한편, 주금 납입 이후에는 신주발행무효 확정판결의 장래효(상법 제431조 제1항)와 거래안전이 강하게 고려되면서 사후 구제의 문턱이 더욱 높아진다. 이미 발행된 신주가 유통되고 제3자의 이해관계가 개입된 이후에는, 효력정지 가처분으로 과거를 되돌리는 결정을 내리기 어렵다. 결국 “예외적 허용 요건(418조 단서) – 사전구제(424조) – 사후구제(431조·거래안전)”의 삼중 구조가 가처분채권자에게 상당한 수준의 요건사실 소명을 요구하는 방향으로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SM vs 고려아연(010130): 같은 질문, 갈라진 결론 이 구조를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최근 사건이 SM과 고려아연이다. SM 사건은 서울동부지방법원 2023. 3. 3.자 2023카합10034 결정으로 신주 및 전환사채 발행금지 가처분이 인용된 사안이고, 고려아연 사건은 최근 언론에 보도된 서울중앙지방법원 2025. 12. 24.자 2025카합22020 결정 요지에 따르면 신주발행금지 가처분이 기각된 사안이다. 결론은 정반대지만, 재판부가 던지고 있는 질문의 방향은 크게 다르지 않다. SM 사건: 경영권 방어 목적이 아니라면, 굳이 지금 이 방식이 필요할까라는 법원의 의심 먼저 SM 사건을 살펴보자. 서울동부지방법원의 결정에 따르면, 회사는 카카오를 상대로 신주 123만 주와 전환 시 114만 주 상당의 신주가 발행되는 전환사채를 제3자배정 방식으로 발행하기로 결의하였다. 전환이 모두 이루어질 경우 카카오는 회사의 제2대 주주 지위를 확보하게 되고, 인수계약상 향후 제3자배정 신주나 주식연계증권을 발행할 때 우선인수권까지 부여받는 구조였다. 이는 정관상 잔여 제3자배정 한도 대부분을 소진하는 대규모 발행이었고, 회사의 지배권 구조에 미치는 영향도 상당했다. 재판부는 상법 제418조 제1항·제2항, 제513조 제3항(전환사채의 제3자 배정), 제424조, 제516조(전환사채에 대한 제424조 준용)를 전제로 법적 판단의 틀을 설정하였다. 그 위에서 이 사건 발행이 제418조 제2항 단서 및 제513조 제3항이 예정하는 “회사의 경영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먼저 검토했다. 결정문에 따르면, 당시 회사는 상당한 현금 및 예치금을 보유하고 있었고 차입금이 없었으며, 영업이익도 양호한 수준이었다. 회사는 장기 신규사업과 대규모 투자를 위한 전략적 제휴 필요성을 주장했지만, 법원은 △해당 사업계획이 구체적 실행 단계에 이르렀는지, △자금조달이 ‘바로 지금’ 제3자배정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하는지, △기존 주주의 신주인수권을 배제할 정도의 긴급성과 불가피성이 소명되었는지에 관해 상당히 회의적으로 보았다. 재판부는 이어, 경영권 분쟁 가능성이 이미 현실화된 상황에서 이 발행이 최대주주의 지분율과 의결권 구조에 미치는 효과를 중시하였다. 지분 구조와 과거 주주총회 의결 결과를 종합하면, 카카오에게 상당한 지분을 부여하는 이 발행은 향후 경영권 경쟁에서 결정적 변수로 작용할 수 있었다. 법원은 이러한 사정을 고려하여 이 사건 발행이 상법과 정관이 예정한 범위를 벗어나 기존 주주의 신주인수권을 중대하게 침해할 우려가 있고, 상법 제424조가 예정하는 “현저하게 불공정한 방법에 의한 발행”에 해당할 개연성이 크며, 발행이 강행될 경우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가 발생할 염려가 있다고 판단하였다. 그 결과 피보전권리와 보전의 필요성·긴급성이 소명되었다고 보고, 신주 및 전환사채 발행금지 가처분을 인용하였다. 고려아연 사건: 사업이 본게임, 경영권은 부수적 효과라는 판단 반면 고려아연 사건에서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상반된 결론에 이르렀다. 언론에 보도된 결정 요지를 종합하면, 이 사건 유상증자는 미국 합작회사(JV) 설립과 현지 제련소 투자 등 특정 해외 프로젝트를 위한 자금조달을 주된 목적으로 하며, 해당 프로젝트가 미국 핵심광물 글로벌 공급망 재편과 한·미 협력 강화, 안정적 글로벌 수요처 확보와 직결된 전략적 사업이라는 점이 소명되었다. 미국 정부 및 현지 파트너의 참여 의사, JV 구조와 계약관계의 윤곽도 일정 부분 구체적 자료로 제출된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다른 자금조달 방식과의 비교에서도, 제3자배정이 경영권 방어만을 위한 자의적 선택이라고 단정하기 어려운 정황들이 확인된 것으로 전해진다. 재판부는 이러한 사정을 전제로, 이 사건 유상증자를 오로지 현 경영진의 경영권 또는 지배권을 방어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단정하기 어렵고, 대규모 투자 프로젝트의 수행을 위한 자금조달이라는 경영상 목적을 가진 것으로 평가했다는 요지다. 신주발행이 지분 구조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 효과가 곧바로 지배권 귀속을 ‘결정적으로’ 변경하는 수준이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취지의 판단도 함께 전해진다. 결국 사업 목적·자금수요·파트너십 구조가 상당한 정도로 객관적 자료에 의해 뒷받침된 상황에서, 제3자배정이 제418조 제2항 단서의 예외 요건을 명백히 일탈하였다거나 상법 제424조가 요구하는 ‘현저한 불공정’에 이르렀다고 볼 만큼의 소명이 부족하다고 보아 가처분을 기각한 것으로 이해된다. 재판부가 진짜 보는 것: 재무 상태, 사업, 대체 수단, 상대방, 지배구조 두 사건을 나란히 놓고 보면, 법원이 던진 질문 자체는 크게 다르지 않다. 양 사건 모두에서 재판부는 “회사의 현재 재무상태와 자금수요는 무엇인가”, “사업 목적은 어느 정도 구체화되어 있는가”, “주주배정·다른 방식의 증자·차입 등 대체수단은 검토되었는가”, “배정 대상자와 조건은 합리적으로 설계되었는가”, “그 결과 지배구조에 미치는 영향은 어느 정도인가”를 차례로 묻는다. 다만 SM 사건에서 회사가 제시한 답변은 ‘전략적 제휴의 필요성’에 머문 반면, 고려아연 사건에서는 ‘장기간 준비된 실질적 사업’과 ‘외부 파트너의 구체적 참여 구조’가 비교적 충실한 문서로 제시되어 있었다는 점이 결론의 차이를 만든 것으로 볼 수 있다. 조문만 보면 안 보이는 것: 418조·424조 사이의 그레이존 이 시점에서 상법의 구조를 다시 정리해보자. 제3자배정은 주주배정을 원칙으로 하는 상법 체계에서 예외적 제도이며, 예외는 “경영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필요한 경우”라는 요건사실로 통제된다(상법 제418조 제2항 단서). 실무에서는 단지 목적이 존재하느냐를 넘어, 해당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왜 제3자배정이어야 하는지, 왜 지금이어야 하는지, 왜 그 수량·조건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비례성·불가피성 심사가 사실상 결합된다. 전환사채·신주인수권부사채에 대해서도 상법 제513조 제3항과 제516조를 통해 동일한 구조가 준용된다. 사전구제 측면에서는 상법 제424조가 핵심이다. 이 조문은 신주발행유지청구권의 요건을 회사가 법령 또는 정관에 위반하거나 현저하게 불공정한 방법에 의하여 주식을 발행함으로써 주주가 불이익을 받을 염려가 있는 경우로 규정한다. 명백한 법령·정관 위반만으로도 유지청구권은 인정될 수 있으나, 경영권 분쟁에서 실질적인 쟁점이 되는 것은 후자의 “현저하게 불공정한 방법” 부분이다. 단순히 경영권 분쟁 중이라는 사정이나 우호지분의 증가 가능성만으로는 부족하고, 발행가 산정 방식, 할인율의 수준, 특정인에게만 부여되는 특혜적 권리, 이사회의 심의·결의가 형식에 그친 점 등 여러 요소가 결합하여 기존 주주의 신주인수권과 비례적 지위를 사실상 무력화하는 수준이라는 인상을 줄 정도의 구체성이 필요하다. 여기에 시간과 거래안전이 겹쳐진다. 신주발행의 효력은 원칙적으로 주금 납입 다음날 발생한다. 납입 전 가처분은 필연적으로 촉박한 심문 일정 속에서 진행되고, 납입 후에는 본안에서 신주발행무효를 다투는 것이 원칙이지만, 그 확정판결은 장래효에 그친다. 이미 발행된 신주가 유통되고 제3자의 이해관계가 개입된 이후에는, 효력정지 가처분을 통해 과거를 되돌리는 결정을 내리기는 어렵다. 이 때문에 실무는 납입 이후에는 효력정지보다는 의결권행사금지와 같은 제한적 보전수단을 택하는 경향을 띤다. 결국 “납입 전”이라는 시간 구간이 신주발행 분쟁에서 사실상 유일한 정면 충돌의 무대가 되고, 그 짧은 기간 안에 고도의 요건사실을 소명해야 하는 구조 자체가 신주발행금지 가처분 인용률을 낮추는 방향으로 작동한다. 시간이 만드는 격차: 왜 회사가 항상 한발 앞서 있는가 이 구조 아래에서는, 일정 수준 이상 경영상 목적과 필요성이 소명되면 회사(가처분채무자) 측이 상대적으로 유리한 위치에 설 가능성이 높다. 회사는 제3자배정 유상증자를 결의하고 공시하기 전부터 가처분 신청을 예상해 자료를 준비할 수 있다. 반대로 경영권 분쟁의 상대방인 주주 등 가처분채권자는 공시 이후 짧은 기간 안에 발행 구조를 파악하고 납입기일 전에 심문과 결정을 치러야 한다. 같은 법률 틀 안에서도 “자료와 시간의 우위”가 어느 쪽에 있는지가 결과에 영향을 미치게 되는 이유다. 같은 사실, 다른 결론: 한창제지 사건이 말해주는 것 이러한 회색지대는 새로운 현상이 아니다. 대법원 2015. 4. 23. 선고 2014다89706 판결 및 그 하급심, 이른바 한창제지 사건은 동일한 사실관계를 두고 1심과 2심의 결론이 엇갈렸고, 대법원이 항소심 판단을 그대로 확정한 사례다. 울산지방법원 2013. 2. 6. 선고 2012가합2312 판결에서 1심 법원은, 경영권 분쟁이 현실화된 상황에서 최대주주 및 특수관계인에게만 대량의 신주를 제3자배정한 점을 중시하여 지배권 방어 목적을 인정하고 신주발행을 무효라고 판단했다. 반면 부산고등법원 2014. 12. 4. 선고 2013나2139 판결에서 항소심은, 설비투자 계획과 자금조달 필요성, 채권단과의 경영정상화 약정 등 자료를 종합하여 설비투자와 외부자금 조달이 실질적인 경영상 필요에 기초한 것으로 보이고, 제3자배정 방식 선택도 자의적 남용이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보았다. 대법원 2014다89706 판결은 이 항소심 판결을 그대로 확정하였다. 같은 사실관계에서도 ‘경영상 목적’과 ‘지배권 방어’의 경계는 재판부의 사실 평가와 자료의 구성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실무의 승부처: 누가 요건사실을 더 잘 ‘짜는가’ 실무가 얻어야 할 교훈은 분명하다. 회사(발행 측)는 제3자배정의 “경영상 목적”을 구두로만 주장할 것이 아니라, 자금수요의 객관화, 대체수단 검토, 발행조건의 공정성, 배정 대상자 선정의 합리성, 이사회 심의·기록의 충실성까지 하나의 ‘소명자료 패키지’로 준비해야 한다. 반대로 주주 등 신청인 측은 “경영권 방어 목적 같다”는 인상론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긴급·불가피한 경영상 필요의 부재, 다른 자금조달 수단의 존재, 조건의 불공정성과 절차적 하자를 각각 요건사실로 정교하게 구성해 ‘현저한 불공정’의 문턱을 넘을 자료를 제시해야 한다. 법원이 보는 것은 정치적 구호가 아니라, 상법이 요구하는 요건사실이 어느 정도 수준으로 소명되었는지이다. 법원이 던지는 마지막 질문: 왜 지금, 왜 이 방식인가 신주는 단순히 자본 항목을 늘리는 종이가 아니다. 경영권 분쟁의 현실에서는 표를 새로 만들어 내는 도구다. 그러나 법원은 그 표가 누구에게 유리한지를 직접 묻지 않는다. 법원은 “왜 지금, 왜 이 방식, 왜 이 상대방, 왜 이 규모인가”를 묻고, 그 질문에 답할 수 있는 문서와 숫자가 준비되어 있는지를 본다. 신주발행금지 가처분의 낮은 인용률은, 결국 그 질문에 법이 요구하는 수준으로 답해 낸 사건이 생각보다 많지 않다는 사실을 말해 주고 있다.
    신주발행금지 가처분, 왜 이렇게 기각되는가
    by 최승환
    2025.12.27 09:00:00
  • 통일교가 정치권을 흔들고 있는 가운데 일본 사가현 가라쓰(唐津)에 눈길이 간다. 통일교 최대 숙원인 한일 해저터널의 일본 쪽 기점으로 가라쓰가 거론되기 때문이다. 규슈에 위치한 가라쓰는 한반도와 최단 거리에 있는 일본 땅이다. 부산과 가라쓰를 연결하는 한일 해저터널은 과거 정부에서도 심심치 않게 거론됐다. 연간 한일 방문객이 1400만 명에 달하는 상황에서 해저터널이 열린다면 한일 관계에 폭넓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하지 않다. 부산에서 가라쓰는 200km, 해저 구간만 140km에 이른다. 영국과 프랑스를 잇는 유로터널 50km(해저 38km)와 비교하면 네 배 이상 길다. 또한 대한해협은 수심이 깊고 물살도 거세다. 100조 원을 훌쩍 넘을 것으로 추정되는 사업비에다 지진·단층·수압이라는 기술적 난관도 해결해야 한다. 무엇보다 사업 성격상 양국 정부 동의 없이는 한 발도 나갈 수 없다. 그런데도 통일교는 수십 년째 이 사업에 목을 매고 있다. 왜일까. 지금까지 드러난 언론보도를 종합하면 통일교는 여야를 가리지 않고 접촉했다. 지난 대선에서는 윤석열과 이재명 후보를 놓고 배팅했다. 이들 로비가 향한 종착점은 ‘한일 해저터널’이었다. 통일교가 해저터널에 집착하는 이유는 교리와 관련됐다. 문선명 전 총재는 1981년 ‘국제 평화 고속도로’ 구상을 발표했는데 도쿄-서울-평양-베이징-모스크바-런던-뉴욕을 잇는 도로망이다. 출발점은 한일 해저터널이다. 그는 한국을 ‘아담(아버지 나라)’, 일본을 ‘하와(어머니 나라)’로 불렀다. 한국과 일본이 연결돼야 ‘새 문명’이 열린다는 것이다. 통일교가 주관하는 한국과 일본 사이 대규모 합동결혼식도 여기에 근거한다. 종교적 교리는 해저터널이라는 토목 사업으로 구체화 됐다. 터널은 교리만으로 뚫리지는 않는다. 예상 노선은 일본 사가현 가라쓰에서 부산 또는 거제도다. 만일 한일 해저터널이 뚫린다면 세계 최장이다. 그러나 해결해야 할 난제는 많고 사업비 또한 천문학적이다. 결국 통일교 단독으로는 불가능하고, 국가 재정과 인허가, 군사·안보까지 고려한 정부 결단이 필요하다. 로비가 ‘필연적 통로’가 되는 구조다. 부산 정치권이 반복적으로 언급되는 이유도 여기 있다. 부산은 한국 측 관문이자, 사업 성패가 달린 곳이다. 보도에 따르면 통일교는 가라쓰 일대 토지 매입까지 마쳤다. 종교 단체가 특정 노선의 기점 토지를 매입하고, 탐사 목적에서 굴착까지 진행했으니 단순한 부동산 투자를 넘어섰다. 정책 결정을 유인하려는 선행 조치다. 정치권에선 그간 가덕도 신공항, 부산항 물류, 남부권 메가시티 같은 개발 의제가 등장할 때마다 해저터널이 끼어드는 장면이 반복됐다. 지역 숙원과 초대형 프로젝트가 맞물리고 막연한 구상이 ‘미래 먹거리’로 포장되면서 복마전 양상을 띠고 있다. 더 불편한 건 역사 속에서 가라쓰가 차지하는 의미다. 가라쓰는 433년 전인 1592년 임진왜란 당시 왜군 출병지였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조선 침략을 앞두고 이곳 가라쓰에 히젠 나고야성을 쌓고 병참과 지휘 체계를 구축했다. 18만 명에 달하는 왜군은 이곳에서 부산으로 향했다. 그들이 가라쓰를 택한 이유 또한 통일교가 내세우는 ‘최단 거리’와 같았다. 가라쓰는 조선과 가장 가깝고, 배를 숨기기 쉽고, 대군을 집결시키기 유리했다. 결국 가라쓰는 ‘침략의 기억’을 환기하는 땅이다. 이제 나고야성은 폐허로 변해 황량하지만 약 400년 전에는 조선을 약탈한 불행한 출발점이었다. 한일 해저터널과 관련해 유럽 사례가 소환된다. 유로터널, 그리고 스웨덴 말뫼와 덴마크 코펜하겐을 잇는 외레순 대교는 국경을 넘어 사람과 물류가 오가는 성공 사례로 회자한다. 그러나 거기에는 전제가 있었다. 제도적 정비, 규범과 표준의 조율, 오랜 신뢰와 축적이 있었다. 터널과 교량은 ‘통합의 원인’이 아니라 ‘통합의 결과’였다. 한·일은 아직 그 단계에 있지 않다. 경제 협력 필요성 못지않은 과거사 인식, 안보 환경, 국민 정서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 게다가 어느 쪽에 수혜가 돌아갈지, 불균형은 어떻게 보완할지, 유사시 안보 취약점은 없는지까지 냉정한 계산이 필요하다. 결론은 간단하다. 한·일 해저터널은 ‘종교 단체 비전’도, 선거 때마다 던지는 ‘한 방 공약’도 될 수 없다. 역사와 현실을 직시한 토대 위에서 비용과 위험, 외교·안보 파장을 국민 앞에 투명하게 설명하고 결정할 사안이다. 400여 년 전 가라쓰에서 부산으로 이어졌던 길은 침략의 통로였다. 오늘 ‘연결의 통로’를 말하려면, 신뢰와 성찰이 선행되어야 한다. 가라쓰가 뜬금없이 뉴스로 부상한 현실은 불편하다. 수년 전 가라쓰 성터에서도 착잡한 심경이었다. 그나마 조선 침략을 인정하고 한일 교류 역사에 초점을 맞춘 사가현립박물관에서 불편함을 덜었다. 해저터널은 기술로 연결할 수 있겠지만, 신뢰는 시간이 만든다. 순서를 바꾸지 말자.
    한일 해저터널과 침략의 땅
    by 임병식
    2025.12.23 14:01:29
  • 국내에서 오픈AI의 챗GPT나 구글의 제미나이 등과 유사한 형태로 이른바 법률 AI챗봇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들이 있다. 예컨대 ‘엘박스AI’ 서비스를 하는 엘박스, ‘슈퍼로이버’ 서비스를 하는 로앤컴퍼니 등이 대표적이다. 현재 이 기업들은 ‘변호사’ 인증을 받은 이용자에게만 AI 챗봇 유료 서비스를 하고 있다. 변호사법 제109조 제1호 등에 따르면 변호사가 아닌 자가 금품 등 이익을 받거나 받을 것을 약속하고 법률상담 등 법률사무를 취급하는 경우 형사처벌(7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 원 이하의 벌금) 대상이 된다. 문제는 앞서 언급한 법률 AI챗봇 서비스가 법률사건의 해결에 필요한 실체적 또는 절차적 사항에 관하여 법률적 의견을 제시하는 것을 포함한다고 볼 수 있어 법률사무의 하나인 ‘법률상담’에 해당할 소지가 높다는 점이다. 따라서 변호사가 아닌 기업이 이 같은 서비스를 일반인에게 유료로 제공하면 변호사법 위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다만 서비스 이용자가 ‘변호사’인 경우에는 해당 서비스가 독자적으로 법률 의견을 제시해 주는 것이 아니라 변호사의 업무를 보조하는 도구로 기능하게 돼 법률상담을 제공하는 것으로 취급되지 않는다. 결국 이 회사들은 일반인에게는 법률 AI챗봇 서비스를 하지 못하고 변호사에게만 할 수 있는 것이다. 반면 챗GPT나 구글의 제미나이 등은 상황이 전혀 다르다. 이들의 유료버전 서비스는 국내 법률 AI챗봇 서비스와 유사한 수준의 법률상담 결과물을 제시하지만 이용자를 가리지 않고 할 수 있다. 국외 기업은 국내 기업과 달리 전혀 제약을 받지 않고 사실상 법률AI챗봇 서비스를 국내에서 자유롭게 제공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국내 기업만이 국내법을 엄격히 준수하고 있는 반면 동일하거나 유사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오픈AI나 구글 등과 같은 국외 기업에 대해서는 국내법을 위반하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정부나 관할 행정기관 등은 이에 대해 별다른 규제나 조치를 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이로 인해 국내 기업만 역차별 받아 상대적으로 불리한 규제 환경에 놓여 있다. 더 우려스러운 점은 앞서 챗GPT나 제미나이 등은 국내 법령이나 판례 등에 특화되어 있지 않아 국내 기업 서비스에 비해 환각현상이 훨씬 높다는 것이다. 실제 이들 국외 법률 AI챗봇 서비스를 이용해보면 존재하지도 않는 판례를 인용하거나 전혀 관련성도 없는 판례를 제시하는 경우가 적지 않고 법률적 결론도 틀린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럼에도 일반인들은 챗GPT나 제미나이 등이 제시한 결과물을 신뢰할 수 있는 것처럼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의뢰인이 챗GPT나 제미나이 등을 활용해 자신이 찾은 판례라고 하면서 변호사에 ‘왜 이런 내용도 있는데 반영을 안하냐’고 하는 경우도 있으나 법률 검토에 들어가면 오류가 다반사이다. 변호사는 의뢰인에게 이게 왜 잘못되고 틀렸는지에 관해 설명하느라 진을 빼게 된다. 듣기로는 법적 분쟁이 생겼을 때 변호사 비용을 아끼겠다면서 일반인이 직접 챗GPT나 제미나이를 유료로 사용하면서 소송에서 서면 작성 등에 활용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변호사 비용을 아끼려고 법적 규제를 받지 않는 국외 기업의 챗봇 서비스를 이용하지만 되려 낭패를 보는 사례가 발생할 수 있다. 심지어 법률가조차 제대로 된 검토 없이 AI 법률챗봇 결과물을 활용했다가 낭패를 보는 사례도 생긴다. 국외 기업의 서비스가 법적 규제 대상에서 벗어나면서 국내 이용자는 국외 기업에 이용료를 지급하면서도 도리어 더 위험에 처하게 되는 셈이다. 챗봇이 제공하는 결과물이 틀린 법적 의견을 제공해 손해가 발생하더라도 이용약관상 국외 기업에 그 책임을 묻기도 어렵다. 해당 챗봇서비스를 법적 영향이나 중대한 영향을 주는 목적으로 사용할 수 없다는 식으로 규정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즉 사실상 유료로 법률서비스를 제공을 용인하면서도 그 결과가 잘못되어 손해가 발생하더라도 책임이 없다는 취지로 볼 수 있다. 만약 피해자가 법적 조치를 취하려고 해도 국외 기업의 본사가 미국에 있어 역시 어려움에 처하게 된다. 예를 들어 제미나이의 경우 국내 법인인 구글코리아가 아니라 미국 델라웨어주 법률에 따라 설립되고 미국법에 따라 운영되는 Google LLC가 운영하고 있다. AI 기술이 적용된 서비스들이 등장하면서 국외 기업의 국내 진출은 더욱 빨라지고 광범위해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외 기업에 제대로 된 규제를 하지 못해 국내 기업을 역차별함으로써 우리 기업의 경쟁력을 떨어뜨려서는 안된다. 하루라도 빨리 국내외 기업간 규제 불균형을 해소하고 최소한의 형평성을 확보해야 한다.
    '규제 사각지대·환각현상' 외국 법률 AI챗봇
    by 오정익
    2025.12.22 18:31:52
  • 연말정산은 대부분 2월에 진행되는데 왜 ‘연말(年末)’ 정산이라 불리는 것일까? 이는 1996년까지 연말정산은 12월 월급을 지급할 때 했기 때문이다. 이후 소득세법이 개정돼 정산 시기가 1997년 1월, 2008년 2월로 변경되었으나 명칭은 그대로 연말정산으로 쓰고 있다. 그렇지만 연말정산은 시기가 문제가 아니라 ‘정산’에 핵심이 있다. 우리나라 근로소득에 대한 소득세 과세대상은 일반적으로 1월부터 12월까지 1년분의 소득금액이다. 다만 1년분의 소득에 대해 한번에 소득세를 징수하면 조세저항이 크고 사업주가 세금을 공제해서 납부하는 것이 효율적이어서 ‘원천징수’가 이뤄지고 있다. 원천징수는 월 급여액에 따라 간이세액표에 의해 일괄적으로 징수돼 개별 근로자의 소득공제, 세액공제 상황을 반영한 실제 세액과 차이가 발생한다. 따라서 연말정산을 통해 일괄적으로 1년간의 소득에 대한 세액을 확정짓고, 기납부한 원천징수세액과 차이를 ‘정산’하는 것이다. 연말정산을 앞둔 지금 소득공제 항목 자료가 누락되지 않도록 확인하고 챙겨야 한다. 더 중요한 것은 절세 전략을 잘 짜야 한다. 첫째, 자녀가 있는 맞벌이 가정이라면 자녀를 나와 배우자 중 소득이 높은 쪽의 기본공제대상자로 넣어야 한다. 소득세는 기본적으로 소득이 클수록 세율이 증가하는 누진세 구조를 가지고 있어 이러한 원칙에서 선택할 수 있는 상황에서는 소득이 큰 사람이 공제를 받는 것이 유리하다. 둘째, 저축을 한다면 미래 계획을 고려하여 소득공제를 받을 수 있는 항목으로 선택해야 한다. 총급여 7000만 원 이하인 무주택 세대주 또는 배우자가 주택마련 계획이 있다면 300만원 한도로 저축불입액의 40%를 소득에서 공제해주는 주택마련저축 소득공제를 적용받을 수 있는 주택청약저축을 고려해야 한다. 그리고 은퇴 이후를 생각한다면 일정 한도 내 연금계좌 세액공제(공제율 12% 또는 15%)가 적용되는 연금저축계좌와 퇴직연금계좌를 활용하는 것이 좋다. 또한 ISA계좌는 만기시 연금계좌로 전환납입하는 경우 일정 한도 내 전환금액의 10%를 추가로 공제해주므로, 해당 계좌에서 여유 자금 운용시 향후 받을 수 있는 세제혜택의 폭을 넓혀 준다. 셋째, 소득세법에 따라 근로자는 근로소득 간이세액표 세액의 120% 또는 80%에 해당하는 금액을 원천징수해 달라고 원천징수의무자에게 신청할 수 있다. 80%를 선택한다면 연말정산시 추가납부세액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지만, 매달 월급에서 차감되는 원천징수세액이 줄어들어 자금유동성을 먼저 확보할 수 있다. 따라서 총 부담세액은 같지만 이자부담을 줄일 수 있으며, 적용되는 세율이 높은 고소득 근로자일수록 효과가 크다. 넷째, 본인이 고소득 근로자여서 총 급여의 25%를 초과하여 카드 및 현금영수증을 통한 소비를 할 수 없다면, 배우자에게 그 소비를 몰아주어 배우자가 공제받는 금액을 높이는 것이 좋다. 다만 본인과 배우자에게 적용되는 세율차이가 크고, 배우자의 소비를 본인이 가져올 경우 소비금액이 총 급여의 25%를 넘길 수 있다면 누가 공제를 받는 것이 가구 전체의 세금을 줄이는 데 유리한지 비교해야 한다 다섯째, 법인의 의사결정에 영향력을 가진 주주 겸 임직원이라면 이자와 배당을 합친 금융소득이 연간 2000만 원을 넘지 않도록 급여에서 배당으로 조정하는 것이 유리하다. 배당은 비용으로 인정되지 않아 법인세에서는 불리할 수 있지만, 소득세법 상 2000만 원 이하 금융소득은 15.4% 세율로 타 소득과 분리과세된다. 따라서 소득세율이 40%대까지 치솟는 고소득자는 최대한 분리과세되는 항목을 활용하여야 한다. 연마다 이맘때쯤 되면 근로자는 연말정산 환급에 대한 기대가 차오르고, 국세청은 이러한 기대를 반영해 연말정산 미리보기 서비스를 통해 납세자가 직접 계산해볼 수 있는 시뮬레이션을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납부시점만 다른 연말정산 정산금에 집중하기보다는 전체적인 세 부담을 낮추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큰 부도 작은 종잣돈에서 시작하므로 소중한 절세액을 미래에 재투자해 보자.
    직장인의 필수 연말정산 전략
    by 황찬
    2025.12.19 13:2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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