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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석준
양석준 자본시장연구원 초빙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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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개의 칼럼 #재테크
  • 전 세계적으로 미달러화 강세 현상이 이어지고 있다. 원화도 예외 없이 약세를 면치 못하면서 환율이 1400원을 넘나들고 있다. 외환당국이 환율 안정에 나서겠다고 공언한 가운데 시장 참가자들은 대내외 여건 변화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모습이다. 과거를 돌아보면 환율이 어떤 심리적 임계 수준을 넘어서면 어느덧 일반 대중들에게는 우리 외환당국이 결코 손 놓고 있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형성돼 왔다. 세계 9위에 달하는 외환보유액의 존재감이 가슴속에 각인되어 있는 결과다. 그렇다고 외환보유액을 전적으로 믿는 것은 또 아니다. 일각에서 미국과의 통화스와프 체결을 줄기차게 주장하고 있는 것을 보면 그렇다. 아무튼 ‘최후의 보루’로써 외환보유액을 바라보는 시선과 인식은 과거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지지 않아 보인다. 지난 10월말 기준 외환보유액은 4156억 달러로 2018년 중반 처음 4000억 달러를 넘어섰다. 물론 숫자상 변화는 크지 않다. 다만 몇 년 사이 외환보유액을 둘러싸고 있는 제반 여건에 있어서 두 가지 관점에서 큰 변화가 있었다. 하나는 민간 부문의 포지션 변화이다. 오랫동안 민간의 대외투자포지션은 부채 초과 상태였다. 그 중 외환보유액은 대외자산의 주축으로서 우리 경제의 대외 복원력(resilency)을 지지하는 큰 버팀목일 수 밖에 없었다. 이후 민간의 대외투자가 급증한 결과 이제는 민간도 외환보유액만큼 자산초과상태에 이르게 됐다. 더이상 우리나라 대외부문의 안정성을 외환보유액에 국한시켜 평가해서는 안될 정도로 말이다. 한편 또 하나의 눈에 띄는 변화는 외환시장 구조의 선진화다. 얼마 전 우리나라 국채의 세계국채지수(WGBI) 편입이 결정됐다. 이는 우리나라 외환시장에 대한 비거주자들의 접근성이 얼마나 개선되었는지를 세계가 인정해 준 결과물이었다. 이를 바탕으로 원화의 국제화에 성큼 더 다가설 수 있게 됐다. 이와 같이 외환보유액 수준 자체는 크게 달라진 게 없지만 주변 여건은 놀라울 정도로 개선됐다. 덕분에 이제는 외환보유액의 크기나 변동폭에 대한 관심을 넘어 국제금융시장을 배경으로 보다 큰 렌즈로 외환보유액을 포함한 외화자산 전반을 보면서 큰 그림을 그려볼 때다. 먼저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선진국 통화처럼 원화도 환율을 제대로 시장에 한번 맡겨보는 것은 어떨까. 변동성 완화 차원에서 정당화돼온 스무딩 오퍼레이션(smoothing operation)조차 최대한 인내하면서 시장을 지켜볼 수 없을까. 당장은 발칙한 상상으로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금융 및 자본시장을 선진국 수준으로 업그레이드하는 첫걸음으로서 그리고 더 나아가 원화를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통화로 발돋음시키기 위해서는 안 가본 길을 가보는 것이다. 그동안 당연시했던 인식을 새롭게 전환해 보는 것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외환보유액의 테두리를 넘어서서 미래 세대를 위한 외화자산 운용으로 시야를 확대시켜 보자. 이미 정부는 보유외화자산을 외환보유액과 비(非) 외환보유액으로 구분하여 운용해 왔다. 외화자산의 일부를 한국투자공사를 통해 대체자산으로 운용하면서 장기 수익성을 제고하고 있는 것이다. 올바른 방향이다. 이제는 자산의 대부분을 외환보유액의 테두리에서 운용하고 있는 한국은행이 과감히 외화자산 운용의 변화를 꾀할 차례다. 서두를 필요 없이 일단은 보유자산의 운용성과 중 일부를 외환보유액에 편입하지 않고 장기적 수익을 도모할 수 있는 대체자산에 투자함으로써 서서히 비(非) 외환보유액을 늘려나가면 된다. 그 결과 마침내 외환보유액 운용이라는 오랜 틀에서 보다 자유로워지고 국가적으로는 외환보유액을 포함한 중층적 외화자산 구조를 구축함으로써 미래세대를 위한 자산운용체계를 완성할 수 있을 것이다. 종합해 보면 우리나라는 과거처럼 외환보유액에 의존해 시장을 안정시킬 수 있는 신흥국 경제가 아님을 인식하고 더 이상 외환보유액의 빈번한 사용과 그로 인한 무책임한 소진을 감수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 궁극적으로는 위기대응수단으로서의 외환보유액의 테두리를 뛰어넘어 미래세대를 위해 장기수익을 도모할 수 있는 국부적 관점의 중층화된 외화자산체계를 확립시켜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한국은행은 외화자산을 일부 대체자산으로 다변화시켜 나갈 필요가 있다. 지나고 보면 그때는 틀리고 지금은 맞는 일들이 많다. 더 이상 과거의 관점에 얽매이지 말고 이제는 미래를 그려나갈 때다.
    2024.11.30 10:00:00
    도전, 외환보유액에 대한 인식의 전환
  • 마침내 우리나라 국채가 세계국채지수(WGBI) 편입에 성공했다. 그 자체의 의미도 크지만 이를 가능케 한 ‘우리나라 외환시장 구조 개선’이라는 성과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이는 외국인 투자자들의 서울외환시장에 대한 접근성이나 원화상품 투자의 편의성을 크게 높였다는 점에서 ‘원화 국제화의 진전’이라 볼 수 있다. 돌이켜 보면 외환 및 금융위기의 여파로 ‘원화 국제화’와 같은 거대담론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WGBI 편입’ 추진이 기폭제가 되어 케케묵은 위기 트라우마를 과감히 떨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중장기적 시야를 가지고 리스크 부담을 마다하지 않은 정부와 한국은행 등 관계 실무진의 추진력에 박수를 보낸다. 이번 외환시장 구조 개선의 내용이 실무적으로 디테일한 이해를 요하는 만큼 관련자가 아니면 다가가기 쉽지는 않다. 그럼에도 외환시장 개장시간을 새벽까지 연장했다는 정도만으로 설명을 얼버무리지 말고 여러 각도에서 대중의 이해의 폭을 넓히는 노력이 필요하다. 과연 어떤 점이 개선되었는지 살펴보자. 무엇보다 국제투자자들은 원화 확보를 위한 외환거래를 전보다 훨씬 편리하게 할 수 있다. 현지 시간대에 원하는 현지 은행과 유로화, 엔화 등을 환전할 때와 크게 다르지 않다. 비록 국제화되지 않은 ‘로컬’ 통화이지만 외환거래가 안정적으로 결제되고 원화금액이 대한민국 시스템내에서 본인의 은행 계좌로부터 필요시 원하는 곳으로 이체되는 데 문제될 게 없다. 다만 현지 은행이 로컬 통화인 원화를 거래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요건을 갖추어 놓아야 한다. 첫째는 서울외환시장에 등록해야 한다. 즉 RFI(Registered Financial Institution)가 돼야 한다. 둘째 RFI는 자기를 대신해서 우리나라 시스템 내에서 원화자금을 이동시키는 업무를 맡아줄 ‘대행’ 은행을 지정해 놓아야 한다. 즉 RFI는 국제투자자와 원·달러 거래(대고객거래)를 하고 서울외환시장에서 타은행과 커버거래(은행 간 거래)를 통해 원화를 확보한 다음 이를 대행은행으로 하여금 국제투자자의 요구대로 이체 등의 업무를 하게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국제투자자들의 원화에 의한 외환거래부터 자산운용까지 원활하게 프로세스가 이루어지는 데는 기존에 잔존해 있던 미세한 불편함을 제거하고 서비스의 수준을 높인 결과이다. 대표적인 예로 국제투자자들의 일시적 원화차입(overdraft)이 허용되었으며, 동 서비스를 통해 결제의 안전성과 완결성이 높아질 것으로 기대된다. 게다가 우리나라 국채 투자의 편의성 증진 측면에서 볼 때 유로클리어, 클리어스트림과 같은 국제예탁결제기구(ICSD)의 통합계좌를 이용할 경우 환전부터 국채 매매까지 일괄 처리가 가능해진 것은 획기적인 개선이라 할 수 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외국인이 국내 보관은행(custodian)을 선임하고 본인 명의 외화 및 원화 계좌를 개설하고 이를 통해서만 외환거래나 국채 매매대금 결제를 해야 했고 그 과정에서 서류 확인 등 복잡한 절차도 많았던 때를 떠올리면 실로 엄청난 변화이다. 이번 외환시장 구조 개선의 효과로서 WGBI 편입에 이어 우리가 기대하는 또 한 가지는 차액결제선물환(NDF) 시장의 변화 가능성이다. 그동안 NDF는 국제투자자들이 원화 없이도 원·달러환율 변동 리스크를 헤지하는 데 매우 유용한 수단이었다. 선물환 거래 시의 계약환율과 만기시의 현물 환율 간 차이에 해당하는 금액을 달러화로 정산하는 편리함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국제투자자들도 유동성이 큰 서울외환시장을 통해 원화금액을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고 외환거래비용도 낮출 여지도 큰 만큼 NDF거래가 원화결제를 수반하는 선물환거래로 대체될 가능성이 있다. 지금까지 얘기를 종합해 보면 그야말로 원화 국제화는 성큼 다가온 듯하다. ‘명목적으로’ 해외에서의 원화차입 수단이 광범위하게 허용되지 않았다 뿐이지 비거주자들이 마음만 먹으면 스왑거래를 통해 원화 차입의 효과를 누릴 수 있고 외환매매도 자유롭게 할 수 있다. 우리나라 거시경제 및 금융정책이 더욱 투명하고 견실해져야 한다고 강조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미 ‘실질적’으로 원화 국제화가 진전된 만큼 바야흐로 원화 국제화 시대를 선언하는 순간이 빨리 올지도 모를 일이다. 그때를 대비해서 중개사들을 비롯한 로컬 금융기관들은 위기 의식을 가지고 서둘러 필요한 준비를 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2024.11.02 07:00:00
    WGBI로 성큼 다가온 원화 국제화
  • 와타나베 부인은 누구인가. 금리가 낮은 엔화를 금리가 높은 외화로 교환해 외화예금이나 해외유가증권 등에 투자하는 일본 거주자들을 풍자하는 용어다. 특히 2022년 이후 미국 연방준비제도(Feb·연준)는 금리를 큰 폭으로 인상한 데 반해 일본은행은 마이너스 금리를 오래 유지했기 때문에 거주자인 와타나베 부인뿐만 아니라 비거주자인 글로벌 투자자까지 나서서 엔화를 차입해 고금리 통화에 투자하는 소위 엔 캐리트레이드에 몰두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최근 미국의 통화정책이 완화적으로 전환되면서 국제금융시장에서는 엔 캐리트레이드 포지션의 청산 가능성에 주목하기도 했다. 와타나베 부인의 투자 행태는 그들의 입장에서 볼 때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역사적으로 1985년 플라자 합의로 엔화가 강세로 돌아서고 일본 금리가 급락하면서 더 이상 자국 내에서는 금융수익을 확보하기가 용이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본의 초저금리가 고착화된 것은 버블 경제의 붕괴로 성장 동력이 사라진 데 따른 것이며 자연스럽게 해외투자는 가속화될 수밖에 없었다. 와타나베 부인의 투자 행태가 장기화되면서 아이러니하게도 국제금융시장에서 일본 엔화는 안전자산으로 등극했다. 국제금융시장이 요동칠 때 엔화가 오히려 강세로 반전된다는 것이 주된 이유다. 사실 와타나베 부인으로서는 국제금융시장이 불안하면 일본으로 자금을 환수하려는 동기가 생길 수밖에 없으니 국제금융시장 불안이 엔화 강세를 조장하는 게 당연해 보인다. 이는 근본적으로 일본이 전통적으로 경상수지 흑자국으로서 그동안 해외투자의 결과 어마어마한 대외금융자산이 축적된 데서 비롯됐다고 할 수 있다. 그 결과 경상수지 흑자의 대부분이 무역수지에서 소득수지로 전환되기까지 했다. 무역수지는 1985년 플라자 합의 이후 흑자폭이 꾸준히 감소되다가 대략 2010년 전후 적자로 돌아섰다. 그 자리에 막대한 대외투자로 인한 배당과 이자소득이 들어섰고 이를 메꾸고도 남는 큰 폭의 흑자를 기록하고 있다. 결국 와타나베 부인이 국제수지 구조 변화에 일조를 한 셈이다. 이제 우리나라 상황을 보자. 그 어느 때보다 해외증권투자가 붐이다. 소위 ‘국장’에 대한 불신이 개인 주식투자자들 사이에 만연하고 있다. 우리 기업들도 세계경제의 블록화가 강화된 여건에서 해외 직간접 투자를 늘릴 수밖에 없었다. 국민연금 등도 수익성 확보를 위해서는 해외투자가 불가피해졌다. 대외금융자산의 축적 속도가 빠를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우리나라 거주자의 해외투자 결과를 나타내는 대외금융자산이 외국인의 우리나라에 대한 투자 결과인 대외금융부채를 크게 초과하고 있다. 현재 순(net) 대외금융자산이 외환보유액의 두 배나 되고 5년 후에는 지금의 두 배로 증가할 것이라고 한다. 불과 수 년 전만해도 외환보유액을 제외하면 국제투자포지션이 순부채 상태를 면치 못했는데 참으로 격세지감이다. 글로벌 경제상황의 변화에 따라 우리도 일본처럼 경상수지를 소득수지 흑자에 기댈 수밖에 없는 시기가 올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기까지 한다. 우리나라가 수출주도경제인 점을 생각하면 무역수지의 중요성은 매우 크다. 다행히 올해 들어 글로벌 경기회복 등에 힘입어 무역수지가 큰 폭의 흑자를 내고 있고 당초 전망을 초과하는 경상수지 흑자로 이어지고 있다. 돌이켜 보면 불과 2년 전만 해도 상황이 녹록지 않았다. 코로나 팬데믹의 여파로 무역수지가 대폭 감소한 상황에서 다행히 대외투자자금의 배당과 이자소득으로 경상수지 흑자를 견인할 수 있었다. 일본의 모양새를 닮아가는 것처럼 보였다. 이러한 여건이 앞으로 원·달러 환율 움직임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그동안의 환율 상승은 미국 경제의 호조 등으로 국제금융시장에서 미 달러화 가치가 독보적으로 상승한 데 따른 것은 맞지만 우리나라 거주자들의 해외투자가 적잖이 영향을 미친 것은 분명하다. 최근 미 연준 통화정책이 완화적으로 전환하면서 환율 상승이 일부 되돌려지고 있으나 그간의 해외투자 추세는 국제금융시장에 큰 불안요인이 없는 한 이어질 것으로 보여진다. 그럼 만약에 국제금융시장에 큰 위기가 닥친다면 우리 해외투자자금이 어떻게 움직일까. 일본처럼 통화가 강세로 전환되지는 못할지라도 해외자금이 국내 금융시장으로 환류될 수 있을까. 사실 지난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에도 해외투자자금의 상당 규모가 환류되기는 했었다. 그에 비추어 본다면 그때보다 개인의 해외투자 비중이 확대된 지금 환류규모가 더 커질 수도 있을 것이다. 다만 일본과 비교해볼 때 자본시장 발전 정도가 차이나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미국 주식시장에서 돌아 온 와타나베 부인은 밸류업을 이루어낸 일본 주식시장에서 투자대안을 찾는 데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반면에 지금과 같은 국내 자본시장의 구조적 디스카운트가 지속된다면 과연 국내로 돌아온 투자자들이 국내 주식으로 자산을 재배분하는 데 혹여 주저하지나 않을지. 조속히 우리나라 자본시장의 밸류업이 실현되기를 열망하는 이유가 될 것이다.
    2024.10.05 08:30:00
    와타나베 부인을 생각하며
  • 지난해 유엔 사무총장의 말대로 지구는 온난화(global warming)를 넘어 끓고(global boiling) 있다는 말이 실감난다. 2015년 파리협정 때만 해도 지구 기온을 ‘장기적으로’ 산업화 이전보다 ‘평균’ 1.5도 이상 올라가지 못하게 하자는 목표를 세웠었다. 기준을 어떻게 정하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최근 나온 측정 결과들을 보면 이미 그 선을 여러 차례 넘었다고 한다. 수년 전만 해도 기후변화 위기의식을 바탕으로 ESG(환경·사회·지배구조) 펀드에 대한 투자가 주목받아 왔다. 투자자들이 환경 등의 사회적 이슈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할 수 있다는 점이 부각되면서 수익률도 좋았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기후위기가 점점 현실화되고 있는 지금 오히려 펀드 유입액이 2021년을 정점으로 급격히 줄더니 마침내 대규모 유출까지 일어나고 신규 설정도 미미하다고 한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는가. 그 이유를 세 가지로 살펴보았다. 첫번째로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면서 일반적인 거시환경이 급변한 것이 1차적 원인이다. 게다가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글로벌 공급망이 붕괴되고 에너지 가격이 급등했다. 그 결과 기존 화석연료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졌고 인플레이션 급등에 따른 고금리 여건은 비용 문제를 가중시켰다. 두번째로 기업이나 투자기관들이 ESG에 대한 신뢰를 주지 못했다. 환경에 악영향을 끼치는 제품을 생산하면서 광고 등을 통해 친환경적 이미지를 부각시키는 기업들도 있었다. 소위 그린워싱(Green washing)이다. 이를 객관적으로 평가해야 할 기관들마저도 제 역할을 못했다. 그 심각성이 고조되면서 개선의 움직임이 모색되고 있는 것은 그나마 다행스럽다. 호주에서는 최근 화석연료, 술, 도박 등과 관련된 기업에는 투자하지 않기로 한 공시를 어긴 연기금에 대해 법원이 약 100억 원에 달하는 벌금형을 선고했다. 영국에서는 내년에 ESG 평가기관을 규제하고 ESG 등급의 투명성을 제고시키는 법안을 도입한다고 한다. 미국과 EU는 앞으로 자산운용사들이 펀드명에 ‘ESG’, ‘지속가능’ 등의 표현을 쓰려면 적어도 80%이상 관련자산에 투자하도록 강제하기로 했다. 모두 ESG 투자와 관련 투명성을 높이는 조치라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다만 당장에는 ESG 투자나 관련 펀드 출시를 위축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세번째로는 미국의 민주당과 EU의 중도파 중심으로 주도되었던 ESG 정책들이 거부감과 피로감을 확대시키면서 정치 이슈화돼버렸다. 소위 ‘깨어있는 자본주의’(woke capitalism)에 대한 비난이 높아졌다. 에너지 생산 비중이 높고 보수성향이 높은 미국의 일부 주(洲)들은 보이콧 대상 금융기관 리스트를 만들기도 했다. 그 여파로 블랙록, JP모건, SSGA 등 유수 자산운용사들은 기후행동100+(Climate Action 100+) 같은 이니셔티브에서 탈퇴하기에 이르렀다. 특히 미국은 11월 대선 결과에 따라 기후정책 및 관련 산업에 미치는 영향이 극과 극의 양상을 보일 가능성이 크다. 트럼프 당선 시 현 정부에서 도입된 각종 반 화석연료 행정명령이 역전되고 친 기후변화대응 법안인 인플레이션 감축 법안(Inflation Reduction Act)이 무효화될 수 있다. 미국이 파리협정에서 탈퇴하는 것은 시간문제일 것이다. 반면 해리스 당선의 경우에는 지금보다 훨씬 더 화석연료 산업에 대한 규제가 강화되는 동시에 에너지 전환에 대한 투자가 가속화될 수 있으며 전 세계적인 기후위기 대응에 더 활발히 동참할 것으로 본다. 참으로 극단적으로 대비되는 모습이다. 이렇게 불확실성이 극심한 여건 하에서 투자의 방향을 잡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기후변화 위기에 대한 대응은 불가역적인 과업이라는 인식은 변할 수 없다. 주요국의 공적연금을 주축으로 기존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움직임은 지속될 것이다. 스웨덴 국민연금(AP-fonden), 캘리포니아 교직원연금(CalSTRS) 등이 2050년 탄소 중립을 목표로 포트폴리오 내 탄소배출량을 2030년까지 현재의 수준에서 절반으로 감축시키려 하고 있다. 글로벌 금융기관들도 비록 기후관련 이니셔티브에서 탈퇴했다고 해서 탄소배출 감축 노력을 전면 중단한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기후위기 대응투자와 관련하여 어느 정도 속도 조절은 불가피해 보인다. 그에 따라 탄소중립 달성이 지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미국과 유럽의 상황을 고려할 때 ESG 규제의 정도, 그리고 그 추진력의 차이 등으로 인해 지역 간 격차가 벌어질 가능성도 있다. 어쨌든 이러한 단기적인 변동 요인들에 유의하면서도 전 세계는 이미 정해져 있는 길을 뚜벅뚜벅 계속 가야 할 것이다. 장기적 목표를 향해 우리의 지구를 위하여.
    2024.08.31 09:00:00
    ESG 투자의 이유 있는 부진
  • ‘대전환(Transformation)’이라는 용어가 어느새 익숙해졌다. 이전 시대와는 확연히 다른 구조적 변동(structural shift)이다. 무엇이 그것을 주도하고 있는가. 첫째, 팬데믹 후 세계가 지정학적으로 나누어지고 공급망이 새롭게 배치되면서 파편화(fragmentation)되고 있다. 둘째, 지난해 등장한 챗 GPT는 기존의 일반적 인공지능(AI)과 차원이 다른 생성형 AI 시대로 가는 문을 열었다. 셋째, 기후위기에 대한 우려가 현실로 다가오면서 저탄소 경제로의 이행은 불가역적인 과제로 인식되고 있다. 우리는 팬데믹 이후 경제 여건이나 시장의 변동성이 커지면서 이전의 소위 ‘대안정기(Great Moderation)’로의 복귀는 요원해졌다는 것을 실감한다. 전 세계적으로 생산가능인구가 줄어들면서 생산 공급이 제약적인 상황이 되고 있다. 경제성장은 부진해지고 높은 인플레이션과 금리 수준을 감내하고 있다. 이미 확대된 정부 부채는 줄어들 기미를 찾기 어렵다. 이렇게 새로운 체제, 즉 새로운 노멀이 형성되는 이른바 ‘뉴레짐(new regime)’ 아래 놓여있다. 이제는 금융(financial)의 역할을 기대하기 보다는 실물(real) 그 자체의 펀더멘털에 집중해야 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중앙은행이 나서서 열일하면 거시적 변동성을 최소화할 수 있었다. 그것도 글로벌 생산 능력이 확대되고 노동력이 받쳐주는 여건이었기에 가능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인플레이션을 크게 우려하지 않아도 되니 값싼 자본에 힘입어 기업가치를 부양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기업별로 차별화가 극심해질 수 밖에 없다. 전환의 중심에서 펀더멘털이 우량한 소수 기업이 주도하는 체제가 된다. 투자자의 관심도 AI 역량을 구축하면서 강력한 현금 흐름을 형성시킨 곳으로 쏠릴 수 밖에 없다. 이는 그간 주식시장에서 충분히 목도된 것이기도 하다. 대전환을 주도하는 거대한 힘의 중심에는 단연 생성형 AI가 있다. 이로 인해 얼마나 대규모로 얼마나 빨리 전환이 이루어질지,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클지 솔직히 가늠하기 어렵다. 과거 산업혁명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혁신이 일어난다고도 하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너무 이상에 빠져있는 먼 얘기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지금 엄청난 자금이 투입되고 있으나 뚜렷한 단기 성과가 없어서 과연 앞으로 있을지 모를 경제적 역풍을 견딜 수 있을지 걱정이라는 말도 나온다. 최근 AI 기업들의 주가가 조정을 받으면서 ‘돈 먹는 하마’라는 거품론이 고개를 들고 있는 이유다. AI에 의한 전환 과정에는 단계가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생산성이 높아지고 경제성장과 인플레이션 안정이 달성되는 이상적 결과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불가피하게 거쳐가야 한다. AI를 구축(build-out)하는 단계이다. 이미 우리가 경험하고 있듯 데이터센터 등과 같은 투자수요가 몰아치는 단계를 거치면서 앞으로 엄청난 에너지 수요를 촉발시킬 수 있다. 여기에 저탄소경제로의 이행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진다면 에너지 시스템을 전환하는 데도 계속 큰 자금이 투입될 것이다. 게다가 세계는 지정학적으로 파편화돼 공급 구조상 경제적 효율성보다는 국제 정세의 유불리성이 우선적으로 고려된 지 오래되었다. 투자의 방향을 정하는 데 모두 고려해야 할 중요한 포인트들이다. 단기적으로 앞으로의 1년은 AI 전환의 전개와 투자 향방에 있어서 시금석이 되는 중요한 시기이다. 가장 유력한 시나리오는 지금처럼 AI주도 기업들에 의해 경제성장이 유지되고 주가지수도 상승하는 것이다. 최근처럼 디스인플레이션 추세가 확고해진다면 금상첨화겠다. 그러나 최악의 시나리오도 그리 멀리 있지 않다. AI의 구축 과정에서 에너지 수요가 확대되고 저탄소 이행과 더불어 에너지 가격이 급등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플레이션 이슈의 재등장으로 고금리 장기화가 지속되고 그동안 잘 나가던 AI관련 주식들의 밸류에이션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질 수 있다. 모든 사람들이 이상적으로 그리고 있는 AI가 가져다 주는 세상. 즉, 광범위한 높은 생산성을 바탕으로 생산이 증가하고 인플레이션이 안정되는 그런 경제 상황에 이르기까지는 아직 꽤 멀어보이는 게 사실이다. 대전환의 과정을 냉정하게 지켜보면서 이에 대비해야 하는 이유다. 그 진화의 과정을 거치면서 우리는 무수히 많은 단기 전망의 변화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11월 미 대선의 결과가 중요한 것도 그 단기 전망에 엄청난 변동을 야기할 수 밖에 없어서다. 더욱 복잡해진 투자 방정식을 풀기 위해 적합한 자산 배분에 대한 통찰력을 갖고 탄력적으로 포트폴리오를 정비해야 하는 것은 결국 우리 몫이다.
    2024.08.03 08:00:00
    대전환, 뉴레짐 시대의 투자 단상
  • 올해 1분기 말 현재 우리나라의 순(net) 대외금융자산은 8300억 달러를 넘어섰다. 단순히 말해 우리나라 입장에서 해외에 투자된 외화자산이 국내 투자를 위해 들어온 외화부채보다 많다는 뜻이다. 어려운 용어를 빌리자면 국제투자포지션(IIP·International Investment Position)이 그만큼 자산초과상태임을 의미한다. 순 대외금융자산에는 외환보유액이 포함돼있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어느덧 외환보유액의 두 배 수준에 달할 정도로 규모가 증가했다는 건 놀랍다. 외환보유액 규모는 2018년 초 4000억 달러를 넘어섰지만, 6년이 지난 지금도 크게 증가하지 못했다. 반면 순 대외금융자산은 당시 3000억 달러에 불과했던 것을 감안할 때 외환보유액 이외의 민간의 외화자산이 그사이 엄청나게 증가한 셈이다. 국제통화기금(IMF) 등은 순 대외금융자산은 양적으로만 성장한 것이 아니라 질적으로도 매우 양호하다고 평가하고 있다. 자산 구성이 직접투자, 증권투자, 준비자산 등으로 적절히 분산돼 있고 부채도 주로 원화로 표시되어 있거나 만기가 장기인 구성이 많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무엇이 순 대외금융자산을 증가시켰는가. 가장 큰 요인은 2010년대 이후 경상수지 흑자가 지속했다는 데 있다. 외국인 투자자들의 국내 증권투자자금 유입도 이어져 왔다. 이들은 환율의 하락요인이자 외환보유액의 증가요인으로 작용하면서 아울러 거주자의 해외증권투자가 확대될 수 있는 탄탄한 기반을 형성했다. 그동안 정부 등의 시장안정화조치로 외환보유액의 사용이 빈번히 이루어지기도 했으나 그 일부도 민간의 외화자산이 증가하는 데 기여했다고 볼 수 있다. 뒤돌아보면 10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는 부채초과상태였다. 해외에서 외자가 더 많이 들어와 환율안정에 기여하는 데 정책 우선순위를 두고 거주자가 외화자산을 형성할 수 있는 제도적 허용은 미흡했다. 그러나 정책 전환에 힘입어 순 대외금융자산 규모가 급속히 증가해 5년 전부터는 외환보유액을 상회하기 시작했다. 그 의미는 무엇일까. 비록 숫자상이지만 대외금융부채가 외환보유액을 사용하지 않고도 민간차원에서 스스로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신흥시장국의 굴레를 벗어나는 의미 있는 사건으로 볼 수 있다. IMF가 우리나라 대외부문의 복원력(resilience)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물론 여기에 너무 큰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자산초과상태라는 것은 스톡(stock)의 개념이므로 플로우(flow) 관점에서 보면 이러한 수급의 불일치가 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대외금융자산 증가 상당 부분을 국민연금 등 공공부문의 투자가 차지하고 있으므로 금융 및 외환시장의 상황 변화에 대응해 자산 배분이 탄력적으로 조정되기도 어렵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대외금융자산이 적절하게 환류될 수만 있다면 환율안정에 보다 기여할 수 있을 테지만 매우 어려운 숙제이다. 이런 점에서 여전히 일정 수준의 외환보유액의 역할은 유효할 수 밖에 없다. 아시아 주요국가들의 외환보유액과 국제투자포지션을 비교해 보는 것도 나름 의미있다. 인도는 외환보유액 규모가 5000억 달러를 넘지만 3000억 달러가 넘는 부채초과상태이다. 싱가포르는 외환보유액은 3000억 달러에 못 미치지만 우리나라보다 자산초과포지션이 1000억 달러 이상 크다. 홍콩이나 일본은 우리나라보다 외환보유액이 많지만 자산초과포지션 또한 그 이상으로 훨씬 크다. 싱가포르, 일본, 홍콩 모두 국제금융시장으로 발달했다는 점에서 우리나라도 같은 대열에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정책적 지향점으로 삼을 필요도 있다. 한편 이렇게 변화된 여건에서도 일각에서는 아직도 외환보유액 확충과 미국 연방준비제도(Feb·연준)과의 통화스와프 체결을 환율안정대책이라고 얘기하는 것은 넌센스다. 우리나라 환율은 이미 국제금융시장과 흐름을 같이 하고 있다는 점에서 보험적 성격의 외환보유액 등에 의존적인 정책 패러다임은 더 이상 지속가능하지 않다. 외환보유액 등을 이용해 환율을 원하는 수준으로 관리할 수도 없고 예전처럼 시장개입으로 외환보유액을 확충하기도 어렵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10년 전 이미 국제투자포지션(net IIP)이 플러스로 돌아섰고 규모가 외환보유액의 두 배에 달하는 현재 시점에 금지옥엽이던 외환보유액이라는 경계선은 순 대외금융자산으로 확장돼야 한다. 이제는 외환위기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서 보다 미래지향적인 정책 플랜을 과감히 시도해 볼 필요가 있다. 이런 점에서 7월부터 정부가 시장 개장시간을 연장하는 등 우리나라 외환시장의 규제와 관행을 글로벌 기준에 맞게 정비하고자 하는 노력은 많은 기대를 갖게 한다. 앞으로 보다 선진적인 외환 및 자본시장을 정착시켜 나가기 위한 순탄치만은 않을 장정의 출발선이기 때문이다.
    2024.06.29 08:00:00
    환율이 올라도 전보다 두렵지 않은 이유
  • 원화 국제화는 해외에서도 원화를 결제수단으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정도 설명하고 넘어갈 만큼 단순한 이슈는 아니다. 우리나라 금융, 외환, 자본시장 전반의 변혁과 긴밀히 연계돼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해외로부터 자연적으로 발생한 수요에 대응하는 것이 아니라 정부 주도하에 추진하는 것은 어려운 대업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우리나라 경제 규모에 상응하는 금융산업의 국제 경쟁력 제고가 절실한 데다 외국자본의 국내투자, 국내 자본의 해외투자가 원활히 이루어져야 하는 지금 원화의 국제화는 더 이상 선택사항으로 보이지 않는다. 일각에서는 일본 엔화와 중국 위안화 사이에서 원화가 의미있는 국제화를 진전시키지 못하면 아시아권역에서조차 대우받지 못하고 이들의 대용(proxy) 통화로의 숙명을 벗어나기 어렵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사실 원화 국제화에 첫발을 들여놓은 지는 꽤 오래됐다. 그 결과 무역 등 경상거래에서는 제도적으로 어느 정도 기반이 마련됐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보다 핵심적이라 할 수 있는 자본거래에서는 여전히 원화를 사용하는 데 규제가 많다. 지금까지 비거주자 자본거래는 외화를 국내로 들여와 투자할 수 있는 여건 조성에 치중되다 보니 환율에 부담이 집중됐다. 비거주자 자금 유출입이 환율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반대로 환율의 변동에 따라 비거주자의 행태가 좌우되는 상황을 피할 수 없는 셈이다. 명색이 경제 규모가 세계 10위권인 나라임에도 실제 원화가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상황을 들여다보면 실망스럽다. 2022년 기준 우리나라의 수출과 수입에서 원화로 결제된 비중은 각각 2.3%, 6.1%에 불과하다. 전 세계적으로 스위프트(SWIFT) 망을 통한 원화 결제 실적은 20위권까지만 발표하는 통계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그나마 원화를 상대 통화로 하는 외환거래는 다른 통화들보다 12번째로 많다는 통계가 있지만 여기에 소위 차액결제선물환거래(NDF)가 포함되어 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동 거래는 원화의 수수가 일어나지 않고 미 달러화로 정산이 이뤄지기 때문이다. 최근 정부와 한국은행이 서울 외환시장의 개장시간을 늘리고 해외금융기관이 은행 간 외환시장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마련해 곧 시행을 앞두고 있다. 이는 비거주자의 원화 NDF 거래를 실제 원화의 수수가 일어나는 외환거래로 일부 흡수함으로써 국내 외환시장에서 비거주자의 거래 편의를 도모하고 시장 유동성을 제고시킨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그러나 엄밀하게 말하면 이를 통해 국제 외환시장에서 원화의 통용이 확대된다고 보기는 어렵다. 보다 진전된 다음 단계에서는 비거주자 간 자본거래 시 원화의 사용이 원활해짐으로써 원화의 국제적 유동성이 증대되고 최종적으로 국내 결제시스템과 안정적으로 연계된 국제화된 프로세스가 정착되기를 기대해 본다. 원화의 국제화에는 적잖은 책임이 따른다. 원화에 대한 투기적 공격을 용이하게 해 그동안 의존해 온 외환보유액의 유용성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보지 않은 길을 과감히 들어설 필요가 있다. 원화가 국제화되면 이를 계기로 국내 경제정책의 일관성과 투명성을 제고시켜야 하고 외환 및 금융·자본시장의 국제적 정합성을 높여 나갈 수밖에 없다. 또한 금융회사의 리스크 관리능력도 향상시키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이는 결과적으로 우리나라 경제 구조 전반을 선진화시키는 도약의 계기가 될 수 있다. 일각에서는 우리나라 원화가 NDF 시장에서 가장 거래가 활발한 통화라는 점을 들어 원화가 국제화되더라도 지나치게 우려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미 비거주자들에게 환투기 공격 수단이 없지 않다는 논리이다. 현실적으로 원화의 해외수요 확대를 기다리기 이전에 공급 확대를 통해 적극적으로 수요를 창출하는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지금까지 해왔듯 무역상대국들과 통화스와프 계약을 계속 확대하고 실질적으로 원화가 대금결제에 이용될 수 있도록 정책적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이런 점에서 지난해 말 위안화에 이어 인도네시아 루피아화와 원화 간 직거래 도입에 합의하고 최근 동남아 지역을 중심으로 국내 금융기관의 해외 진출이 활발해진 것은 고무적이다. 이제 외환위기 트라우마에서 확실하게 벗어나야 한다. 싱가포르는 지난 아시아 외환위기 직후 오히려 자국 통화의 국제화를 적극적으로 추진함으로써 오늘날의 선진적인 국가로 완성되었다는 점은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2024.06.01 06:30:00
    도약을 위한 도전, 원화 국제화
  • 금 가격이 많이 올랐다. 예전에도 그랬듯이 금 가격이 오르내리면 외환보유액에 포함돼 있는 금이 세간의 주목을 받는다. 우리나라는 104여 톤의 금을 보유하고 있다. 2011년부터 2013년까지 90톤을 집중 매입한 덕이다. 당시 매입가격이 대략 온스당 1600달러 정도이니 아마 지금 상당한 평가익을 보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불과 4~5년 전만 해도 금 시세가 매입가격을 하회하면서 언론이나 국회 등으로부터 금을 비싸게 매입했다고 지적받기 일쑤였다. 시대가 바뀌어 이제는 금을 왜 이리 적게 보유하고 있느냐는 말이 나온다. 외환보유액이 4000억 달러가 넘는데 금은 장부가액으로 50억 달러도 안 되니 그럴 만도 하다. 우리나라는 왜 외환보유액 규모에 비해 금을 적게 보유하고 있나? 그 이유는 외환위기를 겪은 우리나라가 외환보유액의 가용성을 특히 강조하는 데다 금의 자산으로서의 특징에서 찾을 수 있다. 교과서에는 금이 유사시에 현금화할 수 있는 환금성이 좋은 자산으로써 외환보유액 요건을 잘 갖추고 있다고 나와 있지만, 실제로는 외환시장 안정을 위해서 용이하게 사용되기는 어려운 자산이다. 금은 한번 매입하면 가장 마지막 순간까지 보유해야 할 그야말로 최후의 보루이라는 인식이 강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가 매입한 금을 현금화하려고 내다 파는 순간 국제금융시장에서는 우리나라에 무슨 큰일이 나서 금마저 팔아야 하는 속사정이 있지 않나 오해하기에 십상이다. 금은 금일뿐 우리가 당장 필요로 하는 외환은 아니다. 우리나라 외환보유액이 4000억 달러나 되는데 금을 늘릴 여지가 충분하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 금융자산에 투자해 현금흐름을 창출하고 있는데 굳이 무수익자산인 금으로 전환해 현금흐름도 없이 당장 매각하기도 눈치 보이는 자산으로 보유할 필요가 있는지 다시 반문할 수 있다. 현재 우리나라 외환보유액 규모가 4000억 달러 초반대 수준에서 정체된 지 오래고 증가할 기미도 아직 보이지 않은 점 역시 고려사항이다. 그러나 금의 위상이 높아지고 있는 현실을 고려할 때 우리 외환보유액에서 금의 역할과 비중에 대한 새로운 정립이 필요한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 소위 브레턴우즈체제의 다음 시즌에 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지 않은가. 달러의 위상, 국제통화제도의 안정성이 예전 같지 않은 상황에서 금의 보유 규모는 늘려나가는 것이 방향적으로 맞아 보인다. 다만 현실적으로 외환보유액이 감소하는 상황에서는 금으로의 자산 재배분은 의미를 찾기 쉽지 않다. 따라서 적어도 앞으로 외환보유액이 증가할 때에 대비해 금을 매입할 기준과 방법을 미리 정해두는 중장기 전략이 필요하다. 가격 판단을 배제하고 기계적으로 소규모로 꾸준히 적립해 나가는 방식도 고려해 볼 만 하다. 한편 우리나라는 외환보유액의 금을 모두 영란은행에 보관하고 있다. 2023년 한국은행은 보관금에 대해 현지실사를 실시한 바 있는데 최근 젊은 층에 인기 있는 한 유튜브 채널에서 이를 소개하기도 하였다. 필자는 당시 실사에 참여했던 사람으로서 여기에서 제기된 두 가지 이슈를 설명하고 이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첫 번째는 수수료를 내면서까지 영국에 금을 맡겨 놓는 것이 맞느냐는 것이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나라의 지정학적 리스크를 고려했고 영국이 세계 최대의 금 시장이기 때문이다. 영국과 같은 국제금융시장에 보관함으로써 필요시 긴급하게 현금화하기 용이할 뿐 아니라 금의 일부를 대여 거래 함으로써 보관비용보다 많은 수익을 내고 있으니 사실상 수수료 없이 보관하는 셈이다. 향후 금 보유 규모가 획기적으로 증가할 때는 여러 곳으로 분산 보관도 고려해 볼 수 있겠지만 지금은 아니다. 두 번째는 금 실사 방법과 관련한 것이다. 우리나라는 8000여 개의 표준금괴를 소유하고 있다. 지난 실사에서 그중 200개를 샘플로 추출하여 특정 장소에 모아 놓고 검사하고 5개는 직접 창고에 가서 실물을 확인했다. 이러한 샘플 방식의 실사는 금이 모두 표준금괴로서 누구 소유의 꼬리표가 붙어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 대여와 반환이 빈번히 이루어져서 소유하는 금괴 관리번호가 수시로 바뀐다는 점 등 금 보관과 거래의 실상을 고려할 때 당연한 것이다. 실제로 영란은행은 엄청난 양의 표준금괴를 제련업자별 등의 분류방식으로 여러 창고에 보관하고 있으며 소유국가별로 금을 보관하고 있지는 않다. 실사는 그 당시 시점에 우리나라 금으로 지정된 금괴에 대해 샘플을 추출해 관리번호와 실물을 대조하고 실제 무게를 측정하는 한편 창고 보관상태를 점검하는 과정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실제로 많은 중앙은행이 한국은행처럼 영란은행에 실사를 다녀갔으며 모두 같은 방식으로 진행됐다.
    2024.05.04 06:30:00
    금(金)은 금이요, 환(換)은 환이다
  • 3월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 결과 연내 수차례 금리 인하 가능성이 재확인되었다. 당일 미국 달러화는 주요국 통화 대비로 약세를 보였다. 다음날 스위스 중앙은행은 미국보다 먼저 금리를 인하해 버렸다. 예상치 못한 뉴스에 스위스 프랑화는 미 달러화 대비 큰 폭의 약세를 보였다. 그보다 2~3일 전에는 일본은행이 17년 만에 금리 인상을 단행했다. 시장이 오랫동안 예상해 왔기 때문일까. 엔화는 오히려 약세를 보였다. 이상의 뉴스들은 모두 금리변동에 따른 환율의 반응에 관한 것들이다. 우리는 이론적으로 금리와 환율의 관계를 얘기할 때 ‘유위험 금리평형(Uncovered Interest rate Parity·UIP)’ 조건을 가정한다. 양국간 금리격차가 있어도 환율의 예상변동을 감안하면 양국의 기대수익률은 동일하다는 것이다. 등식을 풀어보면 현재 환율은 미래 예상환율과 상대국 금리에는 비례하고, 자국 금리에는 반비례하는 관계를 나타낸다. 양국의 금리가 다르게 주어지면 미래 환율 기대치가 달라질 수 있다는 점에서 유위험(uncovered)이라 이름 붙여졌다. 이 조건에 따르면 금리인하는 단기적으로 자본유출 가능성으로 미래 예상 환율을 상승시키고 이는 다시 현재 환율을 상승시킨다. 이후 양국의 기대수익률을 일치시키도록 예상 환율 변동률이 조정되어야 하므로 환율은 점차 하락한다. 사실 자본 이동이 자유로운 매우 효율적인 시장 메커니즘을 가정한 것인 만큼 이론과 현실 간 벽은 엄연히 존재한다. 그동안 국내외 연구보고서들을 보면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리스크 프리미엄이나 예측 오차 변동으로 인하여 통화정책의 환율파급경로가 제약된다는 분석이 있는가 하면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근으로 올수록 UIP 조건을 어느 정도 부합한다는 분석 또한 나와 있다. 우리나라 4월 금통위가 얼마 남지 않았다. 미국은 경제 지표가 양호하여 금리 인하가 예상보다 늦어질 수 있다는 전망이 대두되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내수 부진을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이 심심치 않게 들리고 있다. 과거의 경우를 보면 금통위를 앞두고 UIP 조건을 들어 금리를 내리면(올리면) 단기적으로 환율 상승(하락)을 자극할 것이라고 우려하는 소리가 흘러나오기도 했다. 필자는 원·달러 환율을 우리나라와 미국 간의 금리 격차에 의해 설명하는 것은 너무나 한계가 크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무엇보다도 국제 외환시장에서 형성된 미 달러화 가치, 소위 글로벌 미 달러화 가치를 우선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실무적으로는 블룸버그 통신사가 유로화, 스위스 프랑화, 일본 엔화, 캐나다 달러화, 영국 파운드화, 스웨덴 크로네와 등 6개 주요 통화의 미 달러화 대비 가치변동을 각 경제 규모로 가중하여 만든 인덱스(DXY)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즉, 미국과 여타 ‘주요국’ 간의 금리 격차의 변동에 따라 달러인덱스가 변동하며 그 ‘주요국’에 포함되지 않는 우리나라는 달러인덱스의 흐름에 따라 통화정책 방향이 환율에 미치는 중요성이 달라진다고 보는 것이다. 그리 멀지 않은 과거 사례를 들어보자. 2022년 중 미국의 유럽 등과 차별화된 공격적 금리 인상 가능성으로 국제 외환시장의 달러인덱스가 급등한 적이 있다. 우리나라는 미국에 앞서 금리를 인상했음에도 불구하고 글로벌 미 달러화 가치 상승의 영향을 피할 수 없었다. 실제로 당시 금통위 때마다 금리 결정에 환율문제가 고려되었는지가 큰 관심사였다. 한국은행이 정부로부터는 독립적이지만 미 연준으로부터는 독립적이지 않다는 한국은행 총재의 발언도 이때 나온 것이었다. 반면 2023년 들어서는 주요국과 미국 간의 통화정책 차별화 정도가 다소 줄어든 영향으로 국제 외환시장의 달러인덱스도 다소 안정되었다. 우리나라는 미국과의 금리 격차에도 불구하고 환율에 대한 우려를 뒤로 하고 금리를 동결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가 금리 인상 대열에서 결코 뒤지지는 않았으나 만약 주요국들과 미국 간의 통화정책 차별화 이슈가 지속되었다면 우리나라 환율 안정은 기대할 수 없었을지 모른다. 단순하게 정리하면 결국 국제 외환시장 달러인덱스의 움직임이 우리나라 통화정책 방향에 있어서 중요한 지표가 된다고 볼 수 있다. UIP 조건에 너무 집착하여 우리나라 금리를 내리면 원화가 약세, 금리를 올리면 원화가 강세가 될 수 있다는 단순 사고에서 벗어나야 한다.
    2024.04.06 06:00:00
    금통위를 앞두고 환율에 대한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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