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34
  • 얼마 전 수능 만점 의대생이 서울 강남역 인근 건물 옥상에서 여자친구를 살해한 일로 세간이 떠들썩했다. 그 후로도 교제관계에서 발생한 각종 강력범죄로 안전한 이성교제에 대한 관심이 커진 상황인데, 자녀를 둔 부모라면 하게 되는 자녀에 대한 많은 걱정 중 하나가 바로 자녀의 이성교제 문제일 것이다. 소중한 자녀가 아직 학업에 매진해야 할 시기를 보내고 있다면 부모로서는 내심 자녀에 대한 걱정으로 가급적 이성교제를 당분간 하지 않기를 바라겠지만, 이성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는 중·고등학생 시절에 이성교제를 하는 경우도 주변에 심심찮다 보니 내 자녀가 만약 이성교제를 한다면 서로 건강하고 안전하게 이성교제를 하기를 바라는 것이 부모의 공통된 마음일 것이다. 필자 또한 어린 자녀가 성장해 감에 따라 앞으로 필자도 맞닥뜨릴 이러한 자녀의 이성교제 문제를 어찌하면 슬기롭게 대처해 갈 것인지를 벌써 고민하기 시작한 것도 사실이다. 필자의 경우 14년의 검사생활과 현재의 형사전문변호사로서의 생활 때문인지 직업병적으로 이 문제에 대해서도 형사법적 문제 발생 가능성 및 그 대처 방법에 대한 시각이 우선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스토킹’이라는 단어는 이제 우리에게 많이 익숙해져 있는데, 우리나라의 경우 ‘스토킹’이 범죄임을 명확히 규정하고 피해자에 대한 각종 보호절차를 마련하고 가해자의 처벌 및 그 절차에 대하여 특별히 규정한 스토킹범죄의처벌등에관한법률(약칭: 스토킹처벌법)이 시행된 것은 2021년 10월 21일부터에 불과하다. 이러한 특별법을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과 그에 따른 입법적 움직임은 사실 이미 1999년부터 있어 왔지만 그로부터 무려 20년 이상의 시간이 지나서 비로소 관련법이 마련되고 시행된 것이다. 법이 마련되고 시행된 것이 얼마 지나지 않다 보니 ‘스토킹’이라는 단어의 익숙함과 달리 그 의미나 그 절차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억울하게 신고를 당하는 경우도 피해를 입고도 적절히 대처하지 못해 추가적인 피해를 입는 경우도 또 학교 내에서의 이성교제와 관련하여 스토킹이 발생되고 있음에도 학교 측에서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고 있는 경우도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별하는 과정에서 상대방이 거부하거나 싫어할 만한 어떠한 접촉도 스토킹범죄가 될 수 있어요 스토킹처벌법에서 범죄로 규정하고 있는 ‘스토킹범죄’는 ‘스토킹행위’가 지속적 또는 반복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스토킹행위’란 상대방의 의사에 반하여 정당한 이유 없이 상대방 또는 그의 동거인, 가족(이하 “상대방등”이라 한다)에게 접근하거나 따라다니거나 막아서는 행위, 상대방등의 주거, 직장, 학교, 그 밖에 일상적으로 생활하는 장소 또는 그 부근에서 기다리거나 지켜보는 행위, 상대방등에게 우편·전화·팩스 또는 정보통신망을 이용하여 물건이나 글·말·부호·음향·그림·영상·화상을 도달하게 하는 등의 행위, 상대방등에게 직접 또는 제3자를 통하여 물건등을 도달하게 하거나 주거등 또는 그 부근에 물건등을 두는 행위, 상대방등의 주거등 또는 그 부근에 놓여져 있는 물건등을 훼손하는 행위 등을 말한다. 스토킹처벌법은 우리가 통상적으로 알고 있는 바와 상대방을 따라다니거나 상대방의 주거, 직장 등 일상적으로 생활하는 장소나 그 부근에 나타나 불안감을 조성하는 행위, 지속적으로 연락하는 행위에 한하지 않고 피해자를 상대방의 가족까지 확대하여 다양한 행위 태양을 스토킹행위로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자녀가 서툰 이성교제 과정에서 이별을 경험하면서 상대방이 거부하거나 싫어할 만한 어떠한 형태의 접촉이라도 반복하거나 지속한다면 스토킹범죄로 입건될 수 있음을 유의해야 한다. 스토킹행위가 있다면 신고를 통해 경찰의 응급조치를 받아 스토킹범죄를 예방할 수 있어요 만약 자녀가 상대방의 스토킹행위로 인해 불안감 등 피해를 입고 있다면 경찰에 신고하여 경찰의 응급조치를 통해 자녀에게 지속적·반복적인 스토킹행위(즉 스토킹범죄)가 발생하지 않도록 예방할 수 있다. 경찰은 스토킹행위에 대한 신고를 받는 경우 스토킹처벌법에 따라 즉시 현장에 나가 스토킹행위를 제지하고, 스토킹행위를 지속적 또는 반복적으로 할 경우의 처벌을 서면경고하며, 스토킹행위자와 피해자등을 분리하고 범죄수사를 진행한다. 그리고 피해자등에게 관련 절차를 안내하고 피해자를 보호시설로 인도하는 등의 응급조치를 한다. 만약 신고된 스토킹행위와 관련하여 스토킹행위가 지속·반복될 우려가 있고 스토킹범죄 예방을 위해 긴급한 경우라면 경찰은 직권 또는 피해자나 그 법정대리인 등의 요청에 따라 100미터 이내의 접근 금지, 전기통신을 이용한 접근 금지 등을 내용으로 한 긴급응급조치를 할 수 있다. 따라서 자녀에게 이성교제에서 비롯된 스토킹 피해가 있다면 이와 같은 스토킹 신고를 통해 더 큰 피해를 막을 필요가 있을 것이다. 스토킹범죄에 대해서는 법원의 잠정조치 결정을 통해 가해자의 접근을 방지할 수 있어요 스토킹행위가 지속·반복되는 스토킹범죄의 경우 재발될 우려가 있다면 검사의 청구와 법원의 결정으로 스토킹행위자에게 피해자 또는 그의 동거인, 가족이나 그 주거등으로부터 100미터 이내의 접근 금지, 전기통신을 이용한 접근 금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잠정조치 결정이 이루어질 수 있다. 물론 스토킹행위자나 그 법정대리인 입장에서는 경찰의 긴급응급조치나 법원의 잠정조치 결정이 현저히 부당하거나 중대한 사실오인이 있는 경우 등에 있어 불복절차를 통해 그러한 조치의 적절성을 다툴 수 있다. 스토킹처벌법이 제정되어 시행되기 시작할 무렵 필자는 검사로 재직하고 있었는데 실제 그 당시 잠정조치 청구 업무 등 관련 업무를 하면서 잠정조치 청구를 통해 추가적인 피해를 방지할 수 있었던 사건들도 많았고, 억울하게 스토킹 오해를 받은 남성의 혐의를 벗어 준 경우도 있었다. 학교도 학생들의 이성교제에서 스토킹범죄가 발생할 수 있음을 염두에 두고 조치해야 해요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사춘기의 중·고등학생 사이에서 이성교제가 심심찮은 만큼 교내에서의 이성교제와 이별 과정에서 스토킹행위나 스토킹범죄가 발생할 우려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따라서 학교 측에서도 이러한 관련 규정을 숙지하고 염두에 두어서 학생들의 이성교제에서 스토킹 문제가 발생되지 않도록 미연에 사전 교육을 통해 예방을 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학교 측의 무관심이나 부적절한 대처로 스토킹 피해가 확대되는 경우라면 학교도 그 책임에서 자유롭기는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소중한 자녀와 청년들이 건전한 이성교제와 성숙한 이별을 통해 자아를 성찰하고 한층 더 성숙해지길 기도해 본다.
    소중한 자녀와 청년들을 위한 호신 형사법(3)
    by 김은정
    2024.06.15 08:00:00
  • 시간이 지날수록 건물은 낡고 기계는 녹슬기 마련이다. 사업장 내의 건물이나 설비도 주기적으로 유지보수를 하여야 한다. 일반적으로 기업은 건설업을 영위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유지보수공사를 직접 수행할 능력이 없기 때문에 외부 공사업체에 공사를 맡기곤 한다. 문제는 이러한 공사 중에 산업 재해가 발생할 경우 누가 책임을 지는가이다. 바꿔 말하면 건설공사 중에 그 작업을 수행하는 근로자에 대한 안전관리의 책임을 누가 지는지의 문제이기도 하다. 산업안전보건법상 '도급'은 ‘명칭에 관계없이 물건의 제조·건설·수리 또는 서비스의 제공, 그 밖의 업무를 타인에게 맡기는 계약을 말한다. 따라서 원칙적으로는 건설공사를 맡기는 계약도 도급에 해당한다. 다만, 산업안전보건법은 ‘건설공사를 도급하는 자로서 건설공사의 시공을 주도하여 총괄·관리하지 않는 자’를 건설공사발주자라 하여 도급인과 구분하고 있다. 건설공사발주자는 건설공사를 도급 받아 수행하는 업체의 근로자들에 대하여 도급인이나 해당 공사업체(사업주)가 부담하는 것과 같은 구체적인 안전조치의무를 부담하지 않는다. 위와 같이 건설공사발주자를 구분하는 기준은 건설공사의 시공을 주도하여 총괄·관리하는지이다. 문언상으로는 이해가 가지만, 실제로는 어떤 경우에 시공을 주도하여 총괄·관리하지 않는다고 볼 수 있을지 모호하다. 이에 관하여 인천지방법원은 A공사에 대한 2023년 6월 제1심 판결에서 해당 공사의 성격 및 내용, 공사 장소의 관리 주체, 해당 공사의 상시적·정기적 사업 여부, 공사 관련 부서 등 조직의 유무, 공사 관련 인력 및 예산 규모 등을 기준으로 A공사가 도급인에 해당한다고 봤다. 위와 같은 기준에 비추어 A공사가 건설공사의 시공을 주도하여 총괄·관리하였다고 보기에 충분하므로, 공사업체 근로자에 대한 안전관리의무를 부담한다는 것이다. 반면에 위 사건의 항소심 법원은 A공사가 건설공사의 시공을 수행할 법령상의 자격과 전문성이 있는지를 주된 기준으로 삼아 A공사를 건설공사발주자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해당 공사업의 자격도 갖추지 못한 A공사가 시공을 주도하였다고 볼 수는 없다는 것이다. 항소심 판결에 따르면 공사를 맡긴 주체가 사업에 필수적인 시설의 공사를 맡기고 인력 및 규모 면에서 공사업체보다 월등하더라도, 해당 공사를 수행할 수 있는 자격과 전문성이 없으면 건설공사발주자에 해당하여 구체적인 안전관리책임을 지지 않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 사건은 현재 상고심 계속 중으로 향후 대법원의 판단이 주목된다.
    우리 사업장에서 건설공사를 하면 누가 안전관리를 해야 할까
    by 김동현
    2024.06.08 09:00:00
  • 횡령죄는 위탁된 타인의 재물을 불법하게 영득하는 경우에 성립한다. 배임죄는 타인의 재산상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이에 위배하는 행위를 하여 재산상 이득을 취하여 손해를 입히는 경우다. 두 죄는 신뢰 관계를 보호법익으로 하는 점에서 닮아 있다. 보관하는 타인의 물건 또는 처리하는 타인의 사무가 ‘업무상 임무’와 연결돼 있는 경우 다수인에 대한 신임관계를 배반하는 것으로 보고 가중 처벌하고 있는 것 역시 동일한 맥락이다. 특히, 상법과 민법은 회사의 이사에 대해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로써 사무를 처리해야 할 의무를 부과한다. 주의의무를 저버리는 행위는 곧 임무위배 행위에 해당하도록 하고 있다. 주주와 투자자는 회사의 임직원이 정당하고 합리적으로 회사를 경영할 것이라고 믿고 투자를 한 것이기에, 회사 자금을 유용하거나 기타 이러한 신임을 저버리는 행위가 발생할 경우 업무상 횡령 또는 배임에 해당할 가능성이 높다. 만약 상장법인이 자사 임직원에 의한 횡령·배임 혐의를 확인했다면 이를 확인한 뒤 지체없이 공시해야 한다. 특히 임원의 경우에는 횡령·배임 혐의 금액에 상관없이 공시의무가 발생한다. 또한 여기서 ‘임원’은 등기이사 뿐만 아니라 실질적으로 경영에 관여하는 최대주주, 실질경영자, 미등기임원 등도 포함될 수 있음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위와 같이 공시된 횡령·배임 혐의의 규모가 일정 규모 이상인 경우 상장적격성 실질심사 사유가 된다. 직원의 경우 횡령·배임금액이 자기자본의 5%(자산총액이 2000억 원 이상인 대기업의 경우 3%) 이상, 임원의 경우 자기자본의 3% 이상 또는 10억원 이상이면 이에 해당하므로, 혐의 금액이 어느 정도인지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며, 확인된 혐의 금액이 상장적격성 실질심사 사유에 해당하는 규모라면 거래정지 및 상장적격성 실질심사 절차 개시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 상장법인이 횡령·배임과 관련하여 타격을 입는 부분은 주로 재무의 건전성과 경영의 투명성이라고 할 수 있다. 횡령·배임과 같은 불법행위에 의해 회사의 재무 상태가 악화될 수 있고, 회사의 내부통제제도 자체에 중대한 훼손이 있다고 볼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이에, 횡령·배임과 관련된 상장적격성 실질심사 절차에서는 횡령·배임 등이 재무상태에 미치는 영향, 횡령·배임 등의 발생금액에 대한 구상권 행사 및 회수 가능성, 최대주주 및 경영진의 횡령・배임 관련여부, 최대주주 및 경영진의 횡령·배임 등으로 인한 내부통제제도 훼손 여부 등이 집중적으로 심사된다. 횡령·배임과 관련된 상장적격성 실질심사 절차에서는, 횡령·배임에 연루된 임직원의 사임 또는 해임이 이슈가 될 수밖에 없다. 또한, 횡령·배임에 최대주주나 경영진이 관여된 경우, 관여의 양태나 회사에 발생한 손해의 규모에 따라, 상장적격성의 유지를 위해 최대주주 또는 경영진의 교체까지 고려해야 하는 상황이 오기도 한다. 이와 같이 회사의 경영 투명성에 심각한 타격을 입은 상황이라면, 전문가의 조력을 받아 회사의 내부통제 시스템, 내규, 조직 등을 전사적으로 점검하고 이를 강화하는 방안을 적극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회사의 경영 투명성 제고 및 이를 입증하는데 큰 도움이 되는 것은 물론이며, 회사의 내부통제 체계를 다시 한번 살펴보는 과정에서 횡령·배임으로 인해 촉발된 상장적격성 실질심사를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를 찾을 때도 많기 때문이다.
    횡령·배임→상장폐지 직격…미리 경영투명성 갖춰야
    by 정성빈
    2024.06.01 10:00:00
  • A는 방위사업청과 민·군 겸용 핵심 구성품을 연구·개발·공급하는 내용의 협약을 체결하고, 내용에 따라 사업을 진행했다. 그런데 사업을 진행하던 중 당초 예상보다 초과 비용이 크게 발생해서 곤란을 겪게 됐다. 다행히도 애초의 협약에 초과 비용이 발생할 경우 이를 보전해준다는 내용이 있었기에 A는 방위사업청에 ‘초과비용을 보전해달라’는 요청을 했다. 하지만 방위사업청은 보전해줄 수 있는 초과 비용이 아니라는 입장을 회신했다. A가 주장하는 초과 비용은 100억이 넘는 규모였다. 때문에 A로서는 난감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결국 초과 비용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하게 됐다. 문제는 ‘어느 법원에 소송을 제기해야 하는지’였다. 초과 비용 청구가 민사적 청구라면 민사소송이므로 민사법원에 소를 제기하면 된다. 하지만 공법상의 청구라면 행정소송이므로 행정법원(행정소송을 관할하는 법원)에 소를 제기해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소가 부적법하게 된다. 실제로 해당 사안에서 A는 2014년 초 서울중앙지방법원에 민사소송으로 소를 제기했다. 이 판단은 잘못되었을까? 그렇게만 보기는 어려운 점이 있다. 판례는 민간이 공공주체와 사적자치의 원칙에 따라 체결하는 공공계약에 관한 분쟁을 ‘민사소송의 대상’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대법원 2001. 12. 11. 선고 2001다33604 판결 참조). A는 공공주체와의 계약에 따라 ‘초과비용을 보전해주기로 한 합의’를 근거로 소송을 제기하는 것이라고 보았으니 민사소송으로 청구하겠다 판단한 것에는 큰 잘못이 없다. 실제로 1심에서는 A가 승소하기도 다. 그런데 항소심부터 문제가 이상하게 꼬이기 시작했다. 항소심 법원에서는 해당 계약이 사법상 계약이 아니라 ‘공법상의 법률 관계’에 해당하니 행정소송으로 제기해야 한다고 한 것이다. 협약이 공공계약이 아니라 국가연구개발사업규정에 근거한 출연금 협약이고, 출연금을 증액하는 것은 행정청의 승인을 요하는 행정권한의 행사이기 때문에 법률관계는 ‘사적 자치’에 따라 ‘자율적으로 합의’할 수 있는 ‘사법상 계약’의 영역이 아닌 ‘행정처분이나 공법상의 규정 등에 따라 법률 관계가 정해지는’ ‘공법상 법률관계’의 영역에 있는 것이라는 것이다. 이 같이 행정소송 대상이 되는 분쟁이 민사소송으로 제기되는 경우 어떤 문제가 발생할까? 법원 관할상 서울 관내의 지방법원들은 행정소송을 할 수가 없고, 서울행정법원에서만 행정소송을 할 수 있다. 1심이 서울행정법원이 아닌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이루어졌으니 결국 ‘1심 재판이 재판할 수 없는 법원에서 이루어진 경우’ 즉 관할권 위반이 발생한 결과가 됐다. 이 경우 법원은 소송을 ‘관할법원으로 이송’하게 된다. 즉 1심과 항소심을 거치고 나서 다시 1심으로 돌아오게 됐다는 말인데, 문제는 그 이송이 소를 제기한 지 4년 만인 2018년에야 이뤄졌다는 것이다. A는 서울행정법원에서 다시 판단을 받게 되었으나 결국 2019년 말에 패소하고 모든 사건을 마무리하게 됐다. 이 같이 행정과 관련된 소송은 ‘어떤 법원을 선택하느냐’의 문제부터 복잡한 일이 발생한다. 물론 법원은 위와 같이 법원을 잘못 선택한 경우에 ‘이송’을 결정할 있지만, 렇게 이송이 결정되고 새로운 판단을 받기까지 당사자로서는 분쟁 해결이 지연되는 결과만 될 우려가 발생한다. 당초 서울지방법원에서도 관할에 관해 잘못 판단할 정도로 관할에 관한 판단이 어려운 것이라는 점에서 개선이 필요한 부분이라고 생각된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일반적으로 공공계약에 관한 청구도 일반 민사법원이 아니라 행정법원의 관할로 포섭하는 것도 검토할만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어려운 문제들이 있기 때문에 문제를 삼으려는 분쟁이 행정과 관련된 것이라면 그것이 어떤 법적 성격을 가진 것인지에 대해서 신중하게 법률적 검토를 거친 후에 유효하고 적절한 전략을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대체 어느 법원에 가야 합니까
    by 안성훈
    2024.05.25 08:00:00
  • 지난 4월 필자의 ‘사춘기 자녀를 위한 호신 형사법(1)’ 글이 게재된 후 주변의 학부모, 친구, 교수님 등 여러 지인들로부터 호신 형사법으로 사춘기 자녀를 위한 성교육적 내용을 다루어 달라는 의견과 이제 막 성인이 된 자녀를 위한 호신 형사법도 알고 싶다는 의견을 들을 수 있었다. 성적 호기심이 늘어가는 사춘기 자녀가 혹여 법에 대한 무지한 행동으로 성범죄자라는 낙인이 찍히는 불상사가 생길까 노심초사하고, 자녀가 성인이 되었더라도 창창한 자녀의 앞길을 늘 걱정하고 기도하는 것이 부모의 마음임을 잘 알기에 오늘은 소중한 자녀와 우리의 미래인 청년들이 성적으로 안전하고 건강하게 성장해 갈 수 있도록 알아두면 좋을 형사법 지식들을 사례와 법 규정을 중심으로 적어보고자 한다. 아동·청소년이 등장하는 음란물은 호기심으로라도 시청하거나 구입·소지·전달하면 안돼요 성적 호기심이 한창 늘어가는 사춘기에 어렵게 구한 성인잡지나 비디오테이프 정도로 음란물을 접했던 부모 세대와 달리 미디어가 발달한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의 자녀들은 다양한 경로를 통해 원하든 때로는 원하지 않더라도 쉽게 음란물을 접할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이 현실이다. 그리고 우리의 자녀들은 이러한 음란물로 인해 형사법적인 문제(피해나 가해)에 직면할 위험도 매우 커진 상황이다. 그런데 사실 이런 점을 잘 아는 사람이 드물다 보니 일이 터진 후에야 마음을 졸이는 부모들을 많이 보았다. 2018년에서 2020년까지 우리나라를 떠들썩하게 한 n번방·박사방 사건은 이런 위험을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건이다. 당시 디지털 성범죄로 피해를 본 나이 어린 여성 피해자들이 많았는데, 관련 음란물을 인터넷을 통해 접했다가 입건된 많은 남성들 대부분이 10대에서 20대의 젊은 남성들이었다. 위 사건으로 아동·청소년이 등장하는 음란물에 대한 법규정까지 개정되었는데, 2020. 6. 2. 개정된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은 아동·청소년이 등장하는 음란물을 ‘아동·청소년 성착취물’이라고 명명하면서, 종전과 다르게 아동·청소년이 등장하는 음란물을 구입한 경력이 있거나 시청만 한 경우까지도 엄중하게 형사처벌을 하도록 규정하였다. 아동·청소년이 등장하는 음란물(아동·청소년성착취물)을 구입하거나 소지 또는 시청한 경우 그 법정형은 무려 ‘1년 이상의 유기징역’으로 규정되어 벌금형 처벌이 불가능하고, 단순히 호기심으로라도 이를 시청하였다가 형사법적인 문제에 직면할 경우 자녀의 앞길에 대한 걱정은 상상을 초월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아동·청소년이 등장하는 음란물을 친구나 지인에게 전달해 주는 경우 그 처벌은 ‘아동·청소년성착취물을 배포·제공’이 되어 무려 ‘3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해당하게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은 이러한 행위에 대한 형사처벌 뿐만 아니라 부수처분으로 수년 간의 취업 제한 명령까지 부과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기에 어린 자녀나 청년의 경우 이와 같은 형사법적 문제가 발생할 경우 더 큰 고민이 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호기심에 주고 받거나 시청하기에는 너무도 위험한 아동·청소년이 등장하는 음란물. 일선의 교육 현장에서 이런 부분에 대한 충분한 위험성 전달이 필요할 거 같다. 미성년자의 이성교제, 이런 것을 주의하세요 그런데 위와 같은 문제는 비단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n번방·박사방 사건에 한정된 이야기가 아니다. 이런 문제가 미성년자인 자녀의 이성교제에서도 충분히 문제될 수 있다는 점을 알아두어야 한다. 아동·청소년이 등장하는 음란물(아동·청소년성착취물)을 제작하는 경우 그 법정형은 무려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해당한다. 그런데 이는 n번방·박사방 사건에서와 같이 촬영된 영상에 한정된 것이 아니다. 이성교제 중인 상대방이 미성년자인 경우 상대방과 어떠한 형태로든 성적 접촉을 하면서 허락없이 촬영을 한다면 이런 행동이 아동·청소년성착취물 제작이 될 수 있다. 상대방에게 요청하여 상대방이 직접 촬영한 은밀한 신체 사진이나 영상 등을 받은 경우라도 이를 허락 없이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는 경우 아동·청소년성착취물 배포·제공이 문제될 수 있다. 미성년인 자녀가 철없이 교제 중인 이성친구와의 스킨십을 과시하는 행동이 때로는 스스로를 성범죄자로 만들 수 있다는 점을 이제는 꼭 알고 가야 할 것이다.
    소중한 자녀와 청소년들을 위한 호신 형사법(2)
    by 김은정
    2024.05.19 09:00:00
  • ‘2023사업연도’의 결산기 및 사업보고서 제출 기한이 왔다. 필자는 최근 결산 관련 상장폐지 사유가 발생한 기업들에게 상장 유지와 관련된 자문을 드리느라 바쁜 시간을 보냈다. 최근 5년간 상장폐지된 기업 175개사 중 결산 관련 상장폐지 사유에 따라 상장폐지된 기업은 42개사에 달한다. 이중 90% 이상은 ‘감사의견 비적정’이 사유가 된 것으로 조사됐다. 상장규정은 감사의견 비적정, 부도, 해산, 월 평균 거래량 미달, 주식분산 미달, 자본잠식, 주식양도 제한, 우회상장 기준 위반 등을 상장폐지 사유로 규정하고 있다. 여기서 ‘감사의견 비적정’은 가장 빈번하게 발생하는 형식적 상장폐지 사유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감사의견 비적정이란 최근 사업연도의 재무제표에 대한 감사인의 감사의견이 부적정 또는 의견거절이거나 감사범위제한으로 인한 한정인 경우를 의미한다. 코스닥시장 기준 ‘2023사업연도’ 감사의견 비적정 사유가 발생한 법인은 총 42개사다. 지난해 31사 대비 35.4% 가량 증가했다. 다만 감사의견 비적정 사유가 발생했다고 즉시 상장폐지가 되는 것은 아니다. 상장규정은 감사의견 비적정 사유가 발생한 경우에 대한 이의신청 절차를 규정하고 있다. 이같은 사유가 발생하는 경우 거래소는 상장폐지 사유 및 근거 등을 해당 법인에게 서면으로 통지하며, 해당 상장법인은 통지일로부터 15영업일 이내에 거래소에 이의신청을 할 수 있다. 이의신청이 받아들여질 경우 통상 차기 사업보고서 법정제출기한의 다음 날부터 10일까지 개선기간이 부여되고 있다. 해당 상장법인은 개선기간 동안 △감사의견 비적정 의견을 준 당해 감사인에 의해 재감사를 실시해 당해 사업연도 재무제표에 대한 ‘적정’ 의견을 받는 방안 △지정감사인에 의한 차기년도 감사에서 ‘적정’ 의견을 받는 방안 등을 통해 감사의견 비적정 관련 상장폐지 사유를 해소할 수 있다. 과거에는 재감사를 통한 사유 해소만이 가능했으나, 재감사가 기업에게 과도한 부담으로 작용한다는 점 등을 고려하여 재감사 없이 변경된 차기 감사의견을 기준으로 상장폐지 여부를 결정하도록 2019년에 제도가 개선됐다. 주의가 필요한 부분은 코스닥시장 상장법인의 경우 감사의견 적정을 통해 상장폐지 사유를 해소하더라도 그와 같은 감사의견 변경 자체가 별도의 상장적격성 실질심사 사유에 해당한다는 점이다. 즉 적정 감사의견을 받더라도 그 즉시 거래가 재개되는 것이 아니라 상장적격성 실질심사를 통과한 이후에 거래가 재개될 수 있다. 이는 감사의견 비적정인 회사의 경우 영업, 재무, 경영투명성 등에도 문제가 있는 경우가 있어 거래 재개 전 상장적격성을 재차 검증하기 위함으로 이해된다. 따라서 감사의견 비적정이 발생한 기업은 개선기간 동안 감사의견 관련 대응뿐 아니라 추후 진행될 상장적격성 실질심사를 염두에 두고, 영업의 지속성, 재무 건전성, 경영의 투명성 등 전방위적인 관점에서 상장적격성을 갖추도록 대비할 필요가 있다. 특히, 상장규정이 개선기간 종료시 개선계획 이행결과에 대한 변호사 등 해당분야 전문가의 확인서를 함께 제출하도록 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개선계획의 수립, 이행, 이행내역의 확인, 향후 대응 등과 관련하여 전문가의 조력을 받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된다.
    감사의견 받고 상폐 안당하려면
    by 정성빈
    2024.05.11 11:00:00
  • 인사·노무를 전문으로 담당하는 변호사에게는 인사 평가 시즌 전후로 사업장에서 다양한 자문 의뢰가 많이 들어온다. 특히 최근에는 회사의 인사 평가가 공정하지 못하다며 이를 ‘직장 내 괴롭힘’이라 제보하며 어떻게 대응해야 할 지에 대해 묻는 경우가 많다. 직원의 업무 수행에 대한 사용자의 인사 평가는 원칙적으로 인사권자인 사용자의 권한에 속하므로 업무상 필요한 범위 안에서는 상당한 재량이 있다. 따라서 사용자가 인사 평가 시 활용하는 정성 평가, 실적에 기반한 평가, 다면 평가 등 다양한 방식에 재량을 갖고, 평가방식에 관하여 미리 직원과 협의를 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이러한 인사 평가에 대하여 하급심 재판부는 “사용자는 근로자의 근무실적이나 업무능력 등을 중심으로 객관적이고 공정한 평정의 기준에 따라 이루어지도록 노력하여야 하고 그것이 해고에 관한 법적 규제를 회피하고 퇴직을 종용하는 수단으로 악용되는 등의 불순한 동기로 남용 되어서는 아니 된다고 할 것이다. 이와 같이 사용자의 인사고과가 헌법, 근로기준법 등에 위반되거나 객관적이고 공정한 평정의 기준을 현저하게 위반하여 정당한 인사권의 범위를 벗어난 때에는 인사 고과의 평가 결과는 사법심사의 대상이 되어 그 효력을 부인할 수 있다”고 판결해 인사 평가도 무효에 해당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때 어떤 경우에 이러한 인사재량권의 일탈·남용이 있는지가 중요하다. 기존 평가와 비교하여 특별히 업무수행에 있어 달라진 부분이 없음에도 인사평가 결과가 현저히 낮아진 경우, 인사평가를 하는 자가 소수이거나 인사 평가에 대해 이의절차가 없는 경우, 특정 직원에 대한 차별적 의도가 있는 경우 등이 문제될 수 있다. 이와 같이 인사 평가가 무효로 판단되는 경우 직원은 부당한 인사 평가가 없었다면 지급받았을 급여액과 실제 지급받은 급여액의 차액을 청구해 지급받을 수 있다. 한편 부당한 인사 평가가 근로기준법상 ‘직장내 괴롭힘’에 해당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기본적으로 인사 평가에 대해 폭넓은 사용자의 인사 재량권이 있으므로 원칙적으로 직장내 괴롭힘이 인정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다만 인사 재량권 일탈이 현저할 경우 괴롭힘에 해당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현재까지 이와 관련한 법원 및 노동위원회의 선례가 많이 축적되어 있지는 않으나, 고용노동부의 ‘2023 직장 내 괴롭힘 판단 및 예방 대응 메뉴얼’에 따르면 ‘정당한 이유 없이 업무 능력이나 성과를 인정하지 않는 것’을 괴롭힘의 양태로 보고 있다 인사 담당자로서는 인사 평가를 실행함에 있어 객관성을 담보할 수 있도록 다면평가 및 이의절차를 마련하는 방안을 적극 고려 해 보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
    사용자의 인사평가에도 제약이 있을까
    by 이태은
    2024.05.04 08:00:00
  • 일단 법이 무엇인지부터 알아보자. 법의 본질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우리를 실제로 구속하는 법률이 대체 무엇인지 알아보자는 것이다. 법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이 보통 ‘법’이라고 부르는 것의 범위는 너무도 넓다. 국회에서 만든 법률 말고도, 시행령, 시행규칙, 조례와 규칙, 고시, 예규, 훈령, 지침, 규정, 운용요령 등까지도 ‘법’이라는 말로 통칭된다. 이유는 그곳에 기재된 내용에 따라서 우리가 무언가 제약을 받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글을 읽은 독자들은 최소한 ‘법규적 효력’이 있는 것만을 법이라고 불러주기를 바란다. 법규적 효력이 있다는 말은 그 법의 규율 대상이 되는 국민에게 효력이 있다는 말이다. 이를 대외적 효력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한편으로 우리가 법이라고 부른 것 중에는 국민에게는 효력이 없고 정부 소속 공무원들이 업무를 추진할 때 지켜야 하는 내부적 기준으로만 효력이 있는 것도 있다. 이를 대내적 효력이라고 부른다. 그러므로 법의 가장 큰 특징을 국민 모두에게 강제력이 있다는 것으로 포착한다면, 법규적 효력이 있는 것만을 법이라고 할 수 있다. ‘법률’은 국회에서 만든다. 그런데 국회에서 세상만사 모든 일을 다 알기도 어렵고 안다고 해도 변화무쌍한 일을 모두 미리 다 예상해서 규율하기 어렵기 때문에 구체적인 내용은 정부가 정하도록 위임한다. 정부는 이렇게 위임된 사항과 그 법을 집행하기 위한 사항을 담아 법규명령(대통령령, 총리령·부령)을 제정한다. 법규명령은 보통 법명 옆에 시행령 또는 시행규칙이라는 이름을 붙인다. 그리고 법률과 법규명령을 합하여 ‘법령’이라고 부른다. 여기까지는 법률에서 위임받은 사항과 그 법률을 집행하는 범위 내에서 법규적 효력이 있다고 볼 수 있다. 한편으로 지방자치단체에서 제정하는 자치법규인 조례와 규칙은 그 지역적 범위에서 법규적 효력이 있다. 이외의 것은 어떤가. 원칙적으로 정부가 스스로 제정한 그 밖의 규정들은 ‘행정규칙’이라고 통칭할 수 있다. 행정규칙은 원칙적으로 법규적 효력이 없다. 해당 업무를 수행하는 공무원들에게만 적용되는 기준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다만, 그것이 법령을 통해 위임한 범위 내에서 법규적 효력을 갖는 경우가 예외적으로 있을 뿐이다(법령보충적 행정규칙). 그렇기 때문에 행정규칙을 법이라고 부르려면 적어도 그 행정규칙의 내용과 관련된 법령과 자치법규에서 정부에 그런 내용을 별도로 제정할 권한을 주었는지까지 확인해야 한다. 이같이 법을 분별하는 시선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바로 그 지점에서 행정권력이 정당하게 행사되고 있는지를 점검하고, 행정분쟁에서 이길 수 있는 가능성을 구체적으로 분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례를 들어보자. KS인증 제도의 근거가 되는 산업표준화법은 KS인증을 받은 제품에 대한 시판품조사를 할 수 있는 근거 규정을 제20조에서 두고 있다. 앞서 말한 대로 그 구체적인 내용은 국회에서 직접 정하기 어려우니 ‘대통령령’으로 구체적인 사항을 정하라고 위임했다. 그래서 산업표준화법 시행령 제27조에서는 시판품조사를 ‘판매되는 제품 중에서 시료를 채취’하여 하라고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예전에는, 갑자기 산업표준화법 시행령에서 아무런 ‘위임’을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동법 시행규칙에서 ‘판매되는 제품’에서 시료를 채취하지 않고도 ‘서류의 비교분석’을 통해서 시판품조사를 할 수 있도록 하는 규정이 둔 적이 있다. 이는 위임받은 범위를 넘어서기 때문에 법규적 효력을 인정받을 수 없다. 법원에서도 그 시행규칙의 규정은 효력이 없다고 판단해 시판품조사의 결과로 내려진 행정처분을 취소한 사례가 있다. 예전에 주택법 시행령 제55조의4에 관련해서 제정된 국토교통부 고시 제2013-356호 주택관리업자 및 사업자 선정지침 제19조 제1항에 의하면 ‘사업종류별로 해당 법령에 따른 면허 및 등록 등을 마치지 아니한 자는 경쟁입찰에 참가할 수 없으며, 입찰에 참가한 경우에는 그 입찰을 무효로 한다’는 규정이 있었다. 위 고시에 따르면 ‘법령에 따른 면허 및 등록 등을 마치지 아니한 자’여서 입찰에 참가할 수 없는 자가 그 입찰에 따른 계약의 효력을 주장하는 사례에서, 법원은 위 고시는 ‘행정규칙으로서 법규적 효력이 있다고 보기 어려우므로’ 그 계약의 효력을 부인할 수 없다고 판단하기도 했다. 이제 ‘법이 그렇단다’라고 막연히 이야기하지 말자. 무엇이 법이고 무엇이 법이 아닌지를 잘 따져보는 야무진 시민이 되어야 권리도 지키고 국가의 법치행정도 발전하게 할 수 있다.
    법은 무엇인가  
    by 안성훈
    2024.04.28 08:00:00
  • 지난해 기준 우리나라 합계출산율 0.72명. OECD 회원국 중 꾸준히 최하위를 기록하고 있고 그 수치 또한 꾸준히 그리고 해마다 감소하고 있다. 이러한 심각한 저출산의 문제는 이미 국가적 해결과제로 떠오른 지 오래다. 어린아이가 너무도 귀한 시대. 이런 낮은 출산율 속에서 귀하게 태어난 아이들을 잘 키우는 일은 매우 중요한 국가적 책무라는 생각이 드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필자 또한 이 시대에 어린 자녀를 키우며 검사로 그리고 형사전문변호사로 일해 온 워킹맘이기에 오늘은 사춘기 자녀를 안전하고 건강하게 키우기 위해 부모가 알아두면 좋을 형사법 지식들을 실제 사례를 중심으로 몇 가지 적어보고자 한다. 한창 신체가 성장하고 활동량과 각종 호기심이 늘어나는 시기에 형사법에 대한 무지가 우리 아이들의 창창한 앞길에 큰 오점을 남기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을 조심히 담아 본다. 내 물건이 아니면 그 자리에 두거나 카운터에 맡기세요 어린 시절 길에서 주운 돈으로 과자를 사 먹는 친구의 모습을 보면서 나에게도 저런 행운이 오길 바라며 한동안 땅을 응시하며 다녔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누군가가 분실하거나 두고 간 현금, 지갑, 이어폰이나 장난감 등을 우연히 발견한다면? 정답은 그 자리에 그대로 두거나 카운터 등에 맡기는 것이 좋다. 아이들은 길이나 공원 등지에서 물건을 줍는 경우 가벼이 생각해 이를 자신이 사용할 의사로 가져가거나 때로는 주인을 찾아주겠다며 일단 챙겨 두었다가 깜빡하고 계속 보관하는 경우가 많다. 주운 물건이 카드일 경우 호기심에 자판기나 편의점 등지에서 이를 사용해 보는 청소년들도 많이 보았다. 그런데 이런 행동들은 형사법적으로 점유이탈물횡령죄나 절도죄가 문제되고, 주운 물건이 카드일 경우에 이를 사용해 보는 행동까지 한다면 추가적으로 사기죄, 절도죄, 여신전문금융업법위반죄 등의 형사법적인 문제까지 가져오게 된다. CCTV가 발달한 요즘 CCTV 추적을 통해 잃어버리거나 깜빡하고 두고 간 물건의 소재와 이를 가져간 사람까지 특정하는 일이 그리 어렵지 않다 보니, 대개 이런 사건의 경우 결국 부모가 자녀를 위해 피해자에게 정중히 사과하고 합의를 진행하면서 자녀의 선처를 위해 마음앓이를 하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 때로는 주인을 찾아주겠다는 마음으로 물건을 챙겨 갔을 수 있겠지만, 결국 물건의 주인이 경찰 신고를 통해 그 소재를 찾을 때까지 물건을 돌려주지 않고 보관하고 있었다면 물건을 가질 의사로 챙겼다고 해석하는 것이 실무 상황이기에 내 물건이 아니라면 그 자리에 두거나 카운터 등에 맡겨 두는 것이 안전하다. 친구가 나쁜 짓을 한다면 만류하거나 현장을 이탈하세요 “친구를 잘 사귀어야 한다”는 말은 어린 시절 부모나 어른으로부터 지겹도록 자주 들었던 말이자 어쩌면 지금은 우리가 부모나 어른의 위치에서 어린 자녀나 학생들에게 지겹도록 자주 하는 말일 것이다. 오랜 검사생활과 형사전문변호사로 일하면서 접한 청소년 범죄들에서 필자는 나쁜 짓을 하는 친구 곁에 있다가 공범으로 함께 처분되는 안타까운 청소년들을 많이 보았다. 절도나 폭력사건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친구 곁에 있는 경우 절도는 특수절도로 폭행은 공동폭행으로 변하고 처벌은 가중된다. 형사법 관련 법률은 범죄를 2명 이상이 공동으로 할 경우 1명이 범죄를 할 때보다 가중처벌한다. 범죄를 2명 이상이 함께 할 때 그 위험성이 더 커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범죄를 함께 한다는 것은 굳이 범죄의 실행을 함께 하지 않아도 되고 곁에서 망을 봐주는 것만으로도 범죄를 함께 하는 것이 되어 공범으로 의율된다. 때문에 어린 시절부터 지겹도록 들었던 말처럼 무엇보다 친구를 잘 사귀어야 하겠지만, 만약 친구가 나쁜 짓을 한다면 이를 만류하거나 현장을 이탈하여서라도 범행과 나의 연관성을 단절하는 것이 나를 지키고 친구 또한 지켜주는 일일 것이다.
    사춘기 자녀를 위한 호신 형사법 (1)
    by 김은정
    2024.04.20 08:06:12
  • ‘상장적격성 실질심사’, 너는 누구니? “변호사님, 이 회사에 상장적격성 실질심사 사유가 발생했다는데 이게 뭔가요? 회사가 상장폐지 되는 건가요?” 종종 의뢰인이나 지인으로부터 이러한 내용으로 연락을 받곤 한다. 그것도 매우 다급한 어투로. 보통은 상장법인인 의뢰인의 회사 또는 의뢰인의 회사가 투자한 회사에 상장적격성 실질심사 사유가 발생해 매매거래가 정지된 경우다. 급작스러운 상황에 놀라기도 하고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막막하다며 도움을 요청해 오는 경우가 많다. ‘상장적격성 실질심사’란 상장법인에 기업경영의 계속성, 투명성, 투자자 보호 등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특정 이벤트가 발생하는 경우, 해당 상장법인 주식의 매매거래를 일단 정지하고, 해당 법인의 실질에 기초하여 상장유지 적격성을 심사한 후 상장폐지 또는 상장유지(거래 재개)를 결정하는 제도다. 상장폐지 기준을 교묘하게 회피하려는 시도나 상장폐지 사유에 해당하지는 않더라도 횡령·배임, 분식회계 등 자본시장의 건전성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사건이 발생하는 빈도가 증가함에 따라 부적격 기업의 시장 퇴출 필요성이 대두됐고 2009년 이를 목적으로 하는 상장적격성 실질심사 제도가 전격 도입됐다. 대표적인 상장적격성 실질심사 사유로는, 임·직원의 횡령·배임, 회계처리기준 위반, 주된 영업의 정지, 공시 위반 벌점 누적, 감사의견 변경 등이 있다. 이와 같은 사유가 발생한 법인은 통상 당일부터 거래정지에 대한 사실 관계 확인 및 향후 절차 등과 관련해 주주, 투자자 등으로부터 다양한 문의를 받게된다. 동시에 한국거래소에 대한 후속 절차 대응도 함께 이루어져야 하기에 회사 입장에서는 관련 업무가 상당히 바쁘고 긴박하게 진행된다고 할 수 있다. 먼저 절차적 측면을 보면, 한국거래소는 사유 발생일로부터 15일 이내에 해당 상장법인을 상장적격성 실질심사 대상으로 결정할 것인지를 판단한다. 즉, 15일 동안 일종의 ‘예비 심사’가 이루어진다고 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회사는 한국거래소로부터 각종 자료의 제출을 요청받게 되는데, 기본적인 자료만 하더라도 회사의 영업, 재무, 조직, 인력, 지배구조, 내부통제체계 등을 포함하는 등 상당히 광범위하여 준비에 적지 않은 시간이 소요된다. 또한, 사안에 따라 경위서, 소명서, 법률의견서 등의 제출이 요청되기도 하기 때문에 원활한 대응을 위해서는 상당한 시간과 인력의 투입이 요구된다. 뿐만 아니라, 대상으로 결정되고 나면 그로부터 15일 이내에 ‘개선계획서’를 작성하여 제출해야 하고, 개선계획서 제출일로부터 20일 이내에 상장폐지 여부를 결정하는 기업심사위원회가 개최되는바, 출석 및 진술 등도 대비해야 한다. 이와 같이, 상장적격성 실질심사는 사유 발생일로부터 약 2개월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① 자료 제출, ② 개선계획서 작성, ③ 기업심사위원회 출석이라는 매우 중요한 절차들이 진행되는바, 경험이 풍부한 전문가의 조력이 매우 효과적일 수 있다. 회사 실무자로서는 각종 자료의 준비 및 작성에 도움을 얻고, 고위 경영진은 각 단계에서의 중요한 의사결정에 전문가의 가이드라인을 참고할 수 있는 효과가 있다고 하겠다. 필자는 상장적격 실질심사 절차를 겪는 상장법인의 고충과 니즈를 현장에서 직접 체감하면서, 상장적격성 실질심사 대응에 전문가의 조력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자본시장에 더 확대되었으면 좋겠다는 점을 여실히 느끼게 되었다. 이에, 앞으로 몇 편에 걸쳐 필자가 10여년 간 100여건의 상장폐지·상장적격성 실질심사 사건을 다룬 기존 업무 수행 경험을 바탕으로 상장적격성 실질심사와 관련한 이야기와 팁을 현장감 있게 풀어보려고 한다.
    '투자자 패닉'…상장적격성 실질심사란?
    by 정성빈
    2024.04.13 10:00:00
  •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뒤 가장 많이 받는 질문 중에 하나가 ‘여기서 작업하다가 다치면 누가 중대재해처벌법으로 처벌되나요?’다. 문제되는 장소가 사업주 자신의 사업장이라면 그런 의문을 가지지 않겠지만, 제3의 장소라면 이같ㅇ느 의문을 가질 법도 하다. 의문에 대한 답은 장소 등을 실질적으로 '지배·운영·관리'하는 주체다. 중대재해처벌법 제4조는 법인 또는 기관이 실질적으로 지배·운영·관리하는 사업 또는 사업장에서 경영책임자 등의 안전보건 확보의무를 정하고 있다. 이밖에 도급, 용역, 위탁 등 관계에서는 법인 또는 기관이 실질적으로 지배·운영·관리하는 책임이 있는 시설, 장비, 장소 등에 대하여 제4조와 동일한 의무를 부과하고 있기도 하다. 그럼 또다시 의문이 생길 수 있다. 바로 ‘실질적인 지배·운영·관리’의 의미다. 애석하게도 중대재해처벌법령에서는 이에 대한 의미를 정하고 있지 않다. 다만, 지금까지 제시된 해석론을 통하여 그 의미를 가늠해볼 수는 있다. 고용노동부는 2021년 11월 ‘중대재해처벌법 해설’을 배포하고 중대재해처벌법 제4조의 실질적인 지배·운영·관리에 대한 의미를 하나의 사업 목적 하에 해당 사업 또는 사업장의 조직, 인력, 예산 등에 대한 결정을 총괄하여 행사하는 경우를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또 중대재해처벌법 제5조의 시설, 장비, 장소 등에 대한 실질적인 지배·운영·관리 책임에 대해 ‘해당 시설이나 장비, 장소에 관한 소유권, 임차권, 그 밖에 사실상의 지배력을 가지고 해당 장소 등의 유해 및 위험 요인을 인지하고 제거, 통제할 수 있는 경우’라 설명하고 있다. 즉, 고용노동부는 사업주나 법인 또는 기관이 실질적으로 지배·운영·관리하는 사업 또는 사업장이 아니더라도 해당 시설, 장비, 장소 등에 대해 실질적으로 지배·운영·관리하는 책임이 있는 경우 경영책임자 등이 안전보건 확보의무를 부담한다고 보는 것이다. 산업안전보건법에 관한 판례도 참고할 수 있다. 대법원은 개정 전 산업안전보건법에서 수급인의 근로자에 대하여 안전보건조치의무를 부담하는 사업주에 관해 ‘사업의 전체적인 진행과정을 총괄하고 조율할 능력이 있는 사업주’가 작업장에서 발생할 수 있는 산업재해를 예방하기 위한 조치를 하여야 할 의무가 있다’고 판시했다. 이러한 판례에 비추어 보면, 해당 장소에서 이루어지는 작업을 전체적으로 총괄, 조율하여 진행하는 사람이 안전보건조치의무를 부담하는 주체가 될 것으로 추론할 수 있다.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사업장 밖에서 작업 중 다치면 누가 책임질까
    by 김동현
    2024.04.07 08:00:00
  • 법은 원래 어렵다. 그런데 지금은 법이 어려운 정도를 넘는다. 법원은 ‘법에 대한 무지는 용서받지 못한다’고 하지만 실상은 법을 아는 사람이 유별난 존재가 되는 지경이다.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가장 큰 요인은 법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지난 4일을 기준으로 현행 법령의 수가 5303개에 이른다. 법령의 효력이 있는 행정규칙이나 자치법규까지 합치면 그 수를 헤아리는 것 자체가 곤란할 정도다. 법은 최소한의 윤리라는 격언을 생각해 보면, 이렇게 법이 많고 어려운 상황이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걸 어떻게 ‘최소’라고 할 수 있을까. 하지만 한편으로는 수많은 법령이 없이 안전하게 현 시대를 살기가 어렵기도 하다. 수많은 법령은 우리 사회의 안정과 국민의 생명과 안전, 거래의 질서와 같이 우리가 인간으로서의 존엄한 삶을 영위하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법령의 수가 많아진 이유는 어쩌면 그 최소한의 요구를 충족시키는 것 자체가 어려운 일이 된 탓일 수도 있다. 문제는 법이 국민을 지켜주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국민을 무언가로 강제할 수 있다는 점이다. ‘법 없이도 살 사람’이라는 말은 이제 통하기 어렵다. 법을 알아야만 아무런 문제 없이 온전한 삶을 유지할 수 있고, 법을 모른다는 변명은 대개 통하지 않기 때문이다. 예컨대 애견을 동반할 수 있는 식당을 운영하는 것이 불법이라는 점을 쉽게 알 수 있는가, 또 내가 소유한 땅에 건물도 아닌 가설물을 하나 두는 게 법에 어긋날 수도 있다는 점은 어떤가. 법을 어기는 일은 너무도 쉽다. 어떤 사람은 그 부분을 몰라 투자금을 날리기도 하고 감당할 없는 행정제재를 받기도 한다. 새로운 사업을 추진하려고 할 때 이와 관련된 기존 법령들을 알지 못하면 준비에 많은 노력과 비용만 들이게 된다. 그럼에도 때로는 낭패를 볼 수도 있고 최악의 경우에는 형사 처벌까지 받기도 한다. 우리 사회를 바꿔나갈 혁신의 노력이 기존 행정법령에 대한 이해가 적거나 이후 입법 추진에 대한 기대를 잘못해 무너지는 사례도 너무나 많다. 법은 원래도 어렵고, 이제는 더욱 어려워졌다. 하지만 반드시 알아야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앞서 언급한 법령과 규범들의 대부분은 행정법에 속하는 것이다. ‘행정법 파보기’에서는 앞으로 행정법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흥미로운 사례를 들어서 ‘법알못’을 위한 ‘법잘알’ 컨설팅을 해 나아가 보고자 한다.
    ‘법알못’을 위하여
    by 안성훈
    2024.03.30 08:00:00
  • 형사 사건 전문 변호사로 상담을 하다 보면, ‘제가 구속이 될까요’라는 질문을 듣는다. 대부분이 형사 사건으로 입건되고, 혐의가 인정되는 점을 상담하게 되는 경우다. 형사 사건으로 수사를 앞둔 피의자나 재판을 앞두고 있는 피고인의 경우 예기치 못한 갑작스러운 구속에 직면할 수 있다. 이는 이들의 일상을 무너뜨리는 파급력이 있다. 그만큼 본인이 적용 받는 혐의의 유무에서 나아가 구속될 지에 대해선 피의자·피고인들이 궁금증과 두려움을 가지기 마련이다. 먼저 규정을 중심으로 답을 한다면 우리나라 형사소송법은 제198조 제1항에 ‘피의자에 대한 수사는 불구속 상태에서 함을 원칙으로 한다’고 명시한다. 기본적으로 불구속 수사 원칙으로 재판을 받는 피고인에 대해서도 불구속 재판의 원칙이 적용되고 있다. 따라서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구속이 그리 자주 일어나는 일은 아니라 할 것이다. 불구속 수사 원칙이라도, 형사소송법 제70·201조에서 규정하는 내용이 인정된다면 수사·재판 중 구속 수사를 피하기는 어렵다. 형사소송법 제70조에서는 피고인에 대한 구속 사유로 △피고인이 일정한 주거가 없는 때 △피고인이 증거를 인멸할 염려가 있는 때 △피고인이 도망하거나 도망할 염려가 있는 때로 규정하고 있다. 형사소송법 제201조는 수사를 받는 피의자의 구속에 관해 피의자가 죄를 범하였다고 의심 할 만한 상당한 이유와 더불어 위에서 언급한 세 가지의 구속 사유가 있을 경우 검사가 판사에게 영장을 청구해 영장을 발부 받아 피의자를 구속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두 규정의 차이를 쉽게 설명하면 수사 단계에서는 혐의 입증이 되고, 구속의 사유가 존재 할 때 검사의 청구가 있으면 법원이 영장 발부 여부를 검토한다는 것이다. 재판 단계에서는 혐의가 인정되어 기소됐을 것을 전제로 구속의 사유가 인정되면 법원이 바로 영장을 발부한다. 필자의 경우 14년 동안 검사로 생활하면서 직접 구속영장을 청구한 많은 사건들에서 해당 요건의 충족 여부를 밝혀 영장을 발부 받아 구속했다. 5년 이상 검사, 경찰이나 특별사법 경찰 등 수사업무를 담당하는 실무자들을 상대로 영장 실무 강의를 하면서 구속을 하려고 영장을 신청할 때 어떤 점을 부각시켜야 구속 가능성을 높일 수 있는지를 강의해 왔지만, 변호사로 일할 때는 이를 토대로 구속을 피하려면 사안에 따라 구체적으로 어떤 점을 유의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상반되는 상황에 놓이곤 한다. 통상 △노숙자와 같이 일정한 주거가 없거나 △가족들과 떨어져 혼자 생활하거나 가족이 없는 경우 △사건에 공범이 여럿 있고 혐의를 다투면서 사전에 서로 말을 맞출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예상되는 경우 △피해자가 참고인을 회유하거나 협박할 가능성이 높은 경우 △중한 처벌이 예상되는 경우라면 불구속 수사·재판의 원칙에도 불구하고 구속의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매우 높아지는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형사 사건으로 입건돼 수사나 재판을 앞두고 있는 경우 불안한 마음에 임의적인 판단으로 섣불리 공범자와 자주 연락하거나 만나는 행동, 피해자에게 합의나 사과 등을 이유로 연락하는 행동, 휴대전화를 바꾸거나 연락을 두절하는 행동 등은 조심해야 한다. 덧붙여 말도 안되는 고소를 당해 대꾸할 가치도 없다고 임의적으로 판단하고 수사·절차를 무시하는 행동을 해서도 안된다. 수사 기관은 형사소송법상 수사에 필요한 때 피의자의 출석을 요구해 진술을 들을 수 있는데, 이에 응하지 않거나 응하지 아니할 우려가 있다면 체포는 물론 구속까지도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재판 실무상 불구속으로 기소된 많은 경미한 형사 사건 재판 과정에서 피고인이 재판에 출석하지 않고 불출석의 이유 또한 밝히지 않아서 법원이 영장을 발부해 피고인을 구속한 후 재판을 진행하는 경우가 자주 발생하고 있다. 형사 사건으로 입건돼 수사나 재판을 앞두고 구속을 염려하는 상담자보다 어쩌면 ‘법이 이상하다’거나 ‘(사건을) 별일이 아니라며 스스로 위안하는’ 태도를 가진 피의자·피고인이 골든타임을 놓치고 스스로를 구속의 위험 속으로 옮겨 놓는 것은 아닐지 신중히 생각해 볼 일이다.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구속의 위험
    by 김은정
    2024.03.24 00:05:00
  • 새로운 규제를 도입하거나 기존 규제를 변경시키는 것은 국민의 권리와 의무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이렇게 국민의 권리와 의무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행위가 정당한 근거를 가지고 있는가의 문제가 규제정책의 정당성의 입증의 문제인데 정책결정자들은 보통 이를 별로 염두에 두지 않는다. 그러나 규제 제도가 법적으로 다투어질 때에는 입증책임이 중요한 쟁점이 된다. 근래에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한 보건규제와 관련해 유명하게 된 미국 대법원의 판례는 명백히 그러한 입증책임은 규제자에게 있음을 판시한 바 있다. (Roman Catholic Diocese of Brooklyn vs. Cuomo 및 Tandon vs. Newsom 판결 등). 이처럼 규제의 정당성을 입증할 책임을 규제자에게 부담시키는 것은 전세계에서 보편적이다. 우리나라에서도 항고 소송에서 처분의 적법성에 대한 입증책임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행정청에게 있다는 것이 대법원의 확립된 판례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규제의 입증책임 문제가 본격적으로 논의되지 못하고 있다. 그것은 규제 자체에 대한 항고 소송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헌법소원에서는 사실 증명에 대해 직권주의가 채택되어 소송당사자들이 입증책임 문제를 의식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헌법소원에서도 결국 입증이 곤란한 경우에 누구를 패소시킬 것인가 하는 문제는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에 결론적으로 규제제도를 정당화할 입증책임은 규제자에게 있다고 하여야 한다. 규제의 정당화 또는 입증을 위해 사용되는 것이 바로 규제영향분석 또는 입법영향분석이다. 구체적으로는 행정비용의 계산, 비용·편익분석 등 다양한 방법론이 존재한다. 이러한 방법론들에 있어서 공통적인 것은 새로운 규제를 도입함에 있어서 이를 정당화할 수 있는 증거에 기반하여 규제 정책이 결정되어야 한다는 것이다(evidence-based policy-making). 과거에는 정책결정자들이 자신의 소신과 직관적 판단으로 정책결정을 하여 왔으나, 통계의 정확성이 제고되고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장래예측이 어느 정도 가능해진 오늘날 정책결정이 증거나 데이터에 기반하여 이루어져야 한다는 신념이 선진국을 중심으로 확산되어 왔다. 규제영향분석 또는 입법영향분석은 바로 이러한 흐름에서 이루어지는 입법과 행정의 선진방식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행정부 차원에서는 규제영향분석제도가 도입되어 있으나 근래 정부 입법이 차지하는 비중이 현저히 떨어지고 대부분의 입법이 의원 입법으로 이뤄짐에 따라 국회차원의 규제개혁 시스템이 마련되어야 하며 국회에서 입법영향분석이 도입되어야 한다는 점에 중론이 모아지고 있다. 집권 여당도 제22대 국회에서 입법영향분석을 도입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런데 이를 제대로 실현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행정부의 규제영향분석도 부실 시비가 오래 전부터 제기되어 왔다. 국회에서는 국회입법조사처가 오래 전부터 입법영향분석에 관심을 기울여 왔으나 이 제도를 실시하기에는 아직 준비가 미흡하다. 보좌진만이 아니라 정책 결정자 가운데에도 전문가가 참여해 새로운 시스템 구축에 열성을 다하지 않으면 이것도 말만 요란한 일로 끝날 가능성이 있다. 입법영향분석에 있어서의 다양한 각종 방법론의 타당영역과 한계에 대한 정확한 인식과 적절한 운용방식과 운용체제의 구축을 통해 국회에서의 규제개혁이 증거에 입각한 정책결정을 실현해 국민의 신뢰를 받을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 *외부 필진의 기고 내용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국회에서의 규제개혁에 대한 기대
    by 김유환
    2024.03.17 06: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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