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통신 장비 업체 화웨이도 파산 직전까지 내몰렸던 ZTE의 전철을 밟을 것인가. 미국이 화웨이 본사를 비롯해 세계 각국의 관계사 68개사를 미국제품의 수출금지 대상기업으로 선정함에 따라 화웨이의 사업 기반이 밑동까지 흔들릴 것이란 전망이 고개를 들고 있다. 특히 이번 조치가 충격적인 것은 미국 기술이나 제품이 들어간 다른 나라 부품이나 기술도 화웨이에 일절 제공할 수 없도록 했다. 제재의 폭이 애초 예상보다 너무 커졌다. 실제 미국과의 전면전에 대비하며 특정 미국산 부품의 경우 1년 치가 넘는 규모의 재고까지 확보해놨던 화웨이로서도 다른 나라 부품에까지 제재를 적용할 것으로는 예상하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미 퀄컴 등 미국 반도체 업체들이 지난주 화웨이로 보낼 칩 선적을 하지 않은 데 이어 대만의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체 TSMC 등도 사태 진행 여파에 따라 부품 공급 등을 보류할 수도 있음을 시사했다. 삼성전자 등 국내 업체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다만 미국이 화웨이에 제재를 하더라도 스마트폰보다는 통신장비와 서버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 메모리 기업의 경우는 큰 타격이 없을 거란 전망이 우세하다.
18일 닛케이 등 외신과 반도체 업계 등에 따르면 화웨이에 부품을 공급하는 TSMC, 이노룩스 등은 당분간 화웨이에 대한 납품은 예정대로 이뤄진다고 밝혔다.
이들 기업들은 일단 미국의 강경한 조치에 따른 파장을 분석하는데 치중하면서 사업 파트너로서 화웨이와의 관계를 이어간다는 원론적 입장을 전했다.
하지만 이런 공식적 입장의 이면을 들여다보면 심상치 않은 기류가 감지된다. 당장 퀄컴, 코보(Qorvo) 등 미국 반도체 기업들이 지난 금요일 화웨이로 보낼 부품 공급을 보류했다. 미국 상무부 조치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애플, 퀄컴 등의 시스템 반도체 칩을 만들며 성장해온 TSMC도 현재 이번 사태의 영향 평가 후 전면적으로 화웨이에 대한 납품을 끊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상황이다. 낸드 플래시 업체 도시바는 자사의 제품에 미국의 기술이 들어가 있는지에 대한 논평은 거부했지만, 미·일간의 밀착된 관계를 감안할 때 화웨이에 등을 돌릴 가능성이 적지 않다.
시장에서는 화웨이가 심각한 상황에 봉착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번스타인 리서치의 마크 리 연구원은 “특히 TSMC가 화웨이에 부품 공급을 거부하게 되면 화웨이 사업이 멈춰 설 수도 있다”고 진단했다. 화웨이는 협력사들에 이번 사태를 수습할 만한 충분한 기술력을 확보하고 있으며 비즈니스 관계도 유지될 것임을 적극적으로 알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이런 화웨이의 대처에도 불구하고 시장에서는 화웨이가 예정대로 제품을 생산할 수 있을지 우려하는 견해가 점점 커지고 있다는 관측이다. 로이터 등 일부 외신에서는 미국 정부가 화웨이에 대한 제재 수위를 낮출 것이란 보도를 내놓고 있다. 이미 화웨이와 오랜 기간 거래를 해온 와이오밍 등의 기업에 대해서는 화웨이와 거래할 수 있는 일종의 임시면허를 발급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는 것이다.
국내 반도체 업계의 한 관계자는 “화웨이가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몰리고 있어 국내 기업들도 여파가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반도체 기업만 해도 미국산 장비 등을 많이 활용하는데 화웨이에 칩을 공급하지 못할 수도 있는 게 아닌지 모르겠다”면서도 “다만 현재로서는 미국이 소비자 피해가 크고 직접적인 스마트폰보다는 통신장비 쪽을 겨냥하고 있어 메모리 분야 영향은 생각보다 크지 않을 수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