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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체모방로봇] 뱀과 물고기가 로봇으로 변신한다고?

인류는 이제껏 자연을 극복하기 위해 온갖 복잡하고 다양한 방법을 고안해왔다. 하지만 아무리 첨단 기술을 동원해도 수억 년 동안 진화해온 자연의 노련함 앞에 번번이 패배의 쓴잔을 들었다. 그렇다고 방법이 전혀 없지는 않다. 자연을 거스르기보다 순응해서 한층 자연스러워지면 된다.

자연스러운 기술이 가장 완벽한 기술이라는 것을 전제로 최근 생체 모방 기술이 새로운 연구 테마로 주목받고 있다. 벌집 구조에서 착안한 고강도 소재, 상어의 유선형 몸체를 본 딴 자동차의 공기역학성 제고 등 그 사례는 지금도 하나 둘이 아니다.


그 중에서도 로봇 공학 분야는 동물이나 곤충과 같은 생물체의 특성을 모방해 기존 기술의 한계를 돌파하기 위해 가장 활발한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

로봇 공학에서의 주요 연구 대상은 물고기, 뱀, 벌, 새, 고래, 상어, 바닷가재 등 다양하지만 전통적으로 많은 연구가 이뤄진 뱀 로봇과 최근들어 많은 연구자들이 뛰어들고 있는 물고기 로봇을 중심으로 그 기술을 살펴보고자 한다.

뱀 로봇, 1970년대부터 개발

뱀 로봇의 기술 개발 동향을 알기 위해서는 먼저 뱀의 생김새와 특징을 아는 것이 우선이다. 일반적으로 뱀은 사는 장소에 따라 크기와 굵기가 다르지만 전반적인 생김새는 가늘고 긴 형태다. 또한 뱀은 두개골·척추골·늑골로 구성된 골격계를 지니며 100~400개의 척추골로 이루어진 척추를 가지고 있어 몸을 자유롭게 구부리거나 펼 수 있다.

따라서 좁은 통로나 산길, 나무 위, 수중 및 수상 등을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동물이다. 뱀 로봇 연구자들은 이처럼 여러 지형에서 안정적 움직임과 속도를 유지하는 이동 방식을 배우기 위해 지난 40년간 꾸준히 노력했다. 실제로 뱀의 이동 방식은 측면 물결 이동, 직선 이동, 콘서티나(concertina) 이동, 사행 이동 등 네 가지로 구분된다.

연구가 1970년 대 초반부터 시작된 만큼 상당히 많은 종류의 로봇들이 개발됐다. 사실상 뱀 로봇은 이 분야의 선구자인 동경공업대학 시게오 히로세 교수가 무려 30년 이상 연구하고 있을 만큼 도전 과제가 많은 분야다. 먼저 이동 방식의 설계에 따라 수동 바퀴형, 동력 바퀴형, 무한궤도형, 수직 물결 이동형, 선형 확장 이동형 등 다섯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이중 수동 바퀴형과 동력 바퀴형은 외형적으로는 유사하지만 전자는 바퀴에 전달 되는 동력이 없고 후자는 있다는 점에서 구분된다. 무한궤도형은 바퀴 대신 뱀 로봇 분절 마디의 사면에 무한궤도가 있어 추진력과 견인력을 극대화시킨 점이 특징이다.

수직 물결 이동형과 선형 확장 이동형의 경우 앞선 세 가지 방식과는 전혀 다른 특수한 형태의 이동 방식이다. 먼저 일반적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수동 바퀴형 뱀 로봇은 히로세 교수가 소개한 이래로 여러 뱀 로봇에 적용되고 있다. 뱀이 평지에서 S자 모양을 만들며 움직이는 모습을 모방한 것으로 육면체 형태 로봇의 각 분절마디에 걸리는 측면 움직임에 대한 마찰을 감당키 위해 수동 바퀴를 사용한다.

대표적인 뱀 로봇으로 ACM(Active Cord Mechanism) III, R3 및 R5의 ACM 시리즈, AmphiBot I, II 등이 있다. 특히 1972년 히로세 교수 연구팀이 개발한 ACM III는 실제 뱀과 동일한 움직임으로 이동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뱀 로봇 연구에 중요한 이정표를 세웠다는 평가다.

또한 수륙양용 뱀 로봇 ACM-R5의 프로토타입은 실제 뱀처럼 육지와 수중을 자유롭게 헤엄치는 모습이 최근 공개돼 화제가 되기도 했다.

바퀴 없이 뱀과 동일하게 이동

수동 바퀴형과 대비되는 동력 바퀴형 뱀 로봇은 분절 마디마다 부착된 바퀴의 동력으로 앞으로 움직일 수 있고 뱀처럼 곡선을 그리며 이동할 수 도 있다. 이 방식은 평탄하지 않은 지형에서도 잘 이동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Koryu-II, GMD-Snake2, ACM-R4, NTUA robotic snake 등이 이런 방식의 로봇이다.

이중 ACM-R4는 ACM-R3의 설계 구조에 동력 바퀴를 적용, 상대적으로 3차원 적 움직임의 설계가 쉽고 관절 범위가 넓어졌으며 관절처럼 동일한 축에 큰 바퀴를 설치해 추진력을 높였다. 무한궤도형 뱀 로봇은 화산 폭발, 지진, 홍수 등 자연 재해 상황을 비롯해 극한 환경에서 운용 가능한 로봇 수요의 증대로 개발이 시작됐다.

뱀이 좁고 어두운 공간과 통로를 자유롭게 다닌다는 점에 착안해 뱀 로봇에 원격 카메라와 송수신기를 부착, 조난자 탐색용으로 활용코자 하는 것. 미국 미시간대학 요한 보렌스타인 교수팀이 개발한 OmniTread OT-8, OT-4는 각 분절마디 4개면에 무한궤도를 채용, 추진력을 극대화시켰으며 분절마디 사이에 공기주름통을 설치해 견인력을 극대화했다는 게 특징이다.


이외에도 핵원자로 내부에서 활동하는 KR-1, 분절마디가 개별적인 로봇으로 작동하거나 2개 이상의 분절이 합쳐져 뱀 로봇을 구성하는 JL-1 등 그 용처와 용도에 따라 많은 종류의 동력 바퀴형 뱀 로봇이 개발돼 있다. 하지만 실제 뱀은 지금까지 언급 한 모델들처럼 이동을 위해 바퀴나 무한궤도를 이용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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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직 형태의 물결을 만들어 움직이기나 근육을 움츠렸다가 이완시키며 전진한다. 이를 모방한 것이 수직 물결 이동형과 선형 확장 이동형이다. 전자에는 자벌레와 동일하게 긴 다리를 이용해 이동하는 MIT의 자벌레(Inchworm) 로봇, 그리고 바닥과의 마찰력을 높이기 위해 표면에 특수 재료를 입혀 언덕 오르기나 수영, 좁은 공간 통과 등을 가능하도록 설계한 카네기멜론대학의 모듈형 뱀 로봇이 있다.

후자의 경우 로봇의 몸을 움츠렸다 이완해 전진하는 히로세 교수팀의 '슬림 슬라임(Slim Slime)' 로봇이 대표적이다. 그 밖에도 용처와 용도에 따라 다양한 뱀 로봇이 존재한다. 카네기멜론 대학교의 엉클 샘(UncleSam) 로봇은 몸체로 나무를 감아 오를 수 있고 똬리를 틀어 구를 수도 있다.

또한 이스라엘공과대학의 분산형 뱀 로봇은 각 분절마디에 센서, 동력 장치, 논리 제어기, 전원 장치, 통신 장치가 포함돼 분리와 합체를 통해 적절한 형태를 만들어 임무를 수행한다.



물고기 로봇, 지느러미와 부레 모방

40여 년 전부터 연구가 이뤄진 뱀 로봇과 달리 물고기 로봇은 1990년에 이르러 본격화됐다. 육지와는 큰 차이가 있는 물이라는 환경은 복잡한 지형, 수압, 해류 등 다 양한 제약이 수반된다.

이런 제약사항의 극복을 위해 인간은 잠수함과 배를 만들고 때로는 직접 잠수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근해에서는 해초와 바위 혹은 조류에 대한 위험이, 심해에서는 수압과 어둠이라는 제약이 있다. 또한 강은 거센 물살이 사람의 접근을 어렵게 한다.

물론 로봇 기술의 발전으로 바다와 강에 대한 접근이 과거보다 쉬워졌지만 기존의 잠수 로봇은 무겁고 비효율 적이어서 사용범위와 시간에 제약이 있었던 게 사실이다. 특히 기존의 프로 펠러형 기기들은 해초에 엉켜 좌초될 우려도 상존했다. 로봇 연구자들이 물고기의 생태를 모방하기 시작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들은 가장 먼저 지느러미에 주목했다. 물고기의 지느러미에는 좌우 균형을 잡는 가슴지느러미, 몸의 흔들림을 막고 전진운동을 보조하는 뒷지느러미, 추진력을 내는 꼬리지느러미, 그리고 몸을 지탱하고 전진 운동을 보조하는 등지느러미 등이 있는데 이들이 물고기의 이동에 직접적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덧붙여 부력을 조절하는 부레 또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와 관련 영국 바스대학 연구팀은 아마존의 나이프피쉬로부터 물고기 로봇의 영감을 얻었다. 이 물고기는 꼬 리지느러미로 물의 소용돌이를 만들어 소용돌이 에너지를 재사용하는 방식으로 에너지를 절감하는 독특한 특 징을 갖고 있다.

이렇게 개발된 '짐노봇(Gymnobot)'은 프로펠러를 사용하지 않고 복부 지느러미를 이용해 앞뒤로 헤엄치기 쉬운 물결을 만들어 이동한다. 그 덕분에 해안 근처의 바다는 해초와 바위, 수심의 잦은 변화 때문에 잠수부나 배를 이용한 조사나 탐색이 어렵지만 짐노봇은 수심이 낮은 해안에서도 운용이 가능하다. 근해나 급류가 흐르는 강가 생 물의 다양성 연구에 최적의 효용성을 발휘하며 석유 굴착 장치 구조물 조사 등에도 쓰일 수 있다.

로봇 기술은 먹이사슬 아닌 공존사슬

호주에서는 폴리머 인공 근육으로 작동하는 물고기 로봇 '완다(WANDA)' 가 유연한 꼬리지느러미를 이용해 저수지와 댐의 오염물을 탐지, 추적하고 있다. 호주 울런공대학 연구팀이 개발한 이 로봇은 꼬리지느러미를 모사했기 때문에 프로펠러보다 정확하게 방향과 속도의 변경이 가능하다.

움직임에 필요한 복잡한 부속품도 없어 고장의 개연성이 낮다는 부분도 장점이다. 또한 카메라와 무선 통신기기를 내장, 비디오 영상을 실시간 전송해 연구자들이 오염물의 이미지를 분석할 수 있게 해준다. 영국 에식스대학에서 개발한 물고기 로봇은 잉어를 닮았다.

이 로봇은 초당 약 1m의 속도로 8시간을 헤엄칠 수 있으며 요즘의 로봇청소기들처럼 배터리가 떨어지면 스스로 도킹스테이션을 찾아가 재충전하는 스마트 기능도 보유하고 있다. 크기는 약 1.5m로 물개와 유사하며 기름 유출 오염원 감시가 주 임무다. 때문에 별도의 화학 센서를 탑재, 이동 중 수집된 정보를 무선으로 해안 기지에 전송한다. 현재 스페인 북부 지역의 한 해안에서 수질조사를 위한 실증테스트가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생체 모방 기술을 이용한 뱀 로봇과 물고기 로봇 기술은 로봇공학의 특성상 그 비교우위를 말할 수 없다. 하지만 장기간의 연구로 축적된 뱀 로봇 관련 요소 기술들이 서보모터, 로봇 역학 등의 이름으로 물고기 로봇에 적용 됐다. 반대로 물고기 로봇의 지느러미 움직임 관련 기술이 뱀 로봇에 적용되기도 하는 등 다양한 로봇이 서로의 기술을 공유하며 발전하고 있다.

굳이 아이작 아시모프의 '로봇공학 3원칙'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향후 로봇의 세계는 약육강식이 지배하고 먹이사슬이 존재하는 자연 생태계와는 다를 것이다. 미래 로봇의 세계에서는 기술 공존 사슬만이 존재할 것이고 또한 그렇게 되리라는 바람을 가져본다.

글_강현무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연구원

파퓰러사이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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