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김방희
테크라는 용어는 일본에서 탄생했다. 그 말은 흔히 돈을 버는 기술쯤으로 통용된다. 그러나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얘기는 달라진다. 주식이나 부동산 가격이 뛸 때, 거기에 편승해서 한몫 잡는 방법이란 의미가 강하다. 그 용어가 1980년대 일본의 거품 경제가 한창일 때 크게 유행한 것은 당연했다. 당시만큼 자산 가격이 단기간에 빨리 올랐던 적도 없다. 그러나 그 후 20여 년간 일본 경제는 장기 디플레이션 Deflation에 빠졌다. 자산 가격의 단기 급등 현상이 없었던 탓에 재테크라는 말은 크게 퇴색하고 말았다.
정작 뒤늦게 수입한 한국에선 재테크라는 말이 여전히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돈을 벌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욕망을 쉼 없이 자극하고 있다. 1990년대 이후 일본과 달리 한국에선 자산 가격의 부침이 극심했다. 크게 보자면 세 번의 큰 파도가 일렁였다. 외환위기와 IT 거품, 그리고 글로벌 금융위기였다. 자산 가격 변동으로 돈을 벌 기회가 종종 찾아왔다는 뜻이다. 한국인들이 재테크에 대한 환상을 버리지 못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새해가 밝으면 대다수 한국인들이 첫 번째 새해 계획으로 재테크를 꼽을 정도가 됐다.
그렇다면 한국인들은 몇 차례의 자산 가격 대변동기에 재테크에 성공했을까? 각자의 실제 호주머니 사정에 관한 일이라 통계를 찾을 수는 없다. 다만 각종 여론조사와 주변의 경험을 종합해보면, 성공보다는 실패의 경험이 더 많다. 물론 주식이나 부동산 투자로 돈을 좀 벌었다는 이들이 있긴 하다. 하지만 평생 누적수익률을 따져보면 십중팔구 마이너스다.
가장 큰 이유는 재테크 자체의 본질 때문이다. 누구나 해야 한다고 할 때 재테크를 하면, 절대로 돈을 벌지 못하는 게 바로 재테크의 속성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재테크에 몰입할 무렵이면 자산 가격은 오를 대로 오른 상태다. 그때 자산에 투자하면 가격은 떨어질 일만 남는다. 이번 글로벌 금융 위기 직전, 과열 상태였던 주식과 부동산 시장에 무리하게 뛰어든 이들이 낭패를 본 것도 그래서였다.
대중을 상대로 한 교통 정보만 듣고, 안 막히는 길을 찾을 수는 없다. 남들 하고 똑같이 재테크에 열광하는 이들은 교통 체증 없는 길을 찾으려는 운전자와 비슷한 처지다. 대신 의지할 정보라고는 대중을 상대로 한 교통정보 프로그램뿐이다. 만일 그런 프로그램에서 어떤 길이 잘 뚫린다고 알렸다고 해보자. 운전자는 잔뜩 기대를 안고 그 길로 갈 것이다. 그러나 그 도로는 더 막힐 가능성이 크다. 많은 운전자들이 똑같은 생각에서 그 길을 찾을 것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과 같이 생각하고, 그들보다 늦게 움직여서는 도저히 답을 찾을 수가 없다.
경제학의 기본 가정들을 믿는 사람들이라면 재테크라는 말 자체를 신봉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사람이 합리적이고 시장이 효율적이라면, 자산 가격도 합리 적이고 효율적으로 정해진다. 자산 가격 변동을 이용해 돈을 벌 기회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만일 차량이 도로 사이에 즉각, 제대로 분배된다면, 유달리 잘 뚫리는 길을 찾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렇지만 현실에서 그런 도로는 분명 존재한다. 마찬가지로 현실의 시장은 허점투성이다. 시장의 약점을 활용해 돈을 버는 이들이 분명히 있다. 우리가 흔히 투자의 귀재 혹은 대가로 부르는 그들은 언제나 남들과 달리 생각하고 남보다 먼저 움직인다. 재테크에 성공한 소수는 바로 그런 판단과 위험 부담에 대해 보상을 받는 셈이다. 재테크가 아예 불가능하다고 믿는 것도 순진한 발상이다.
재테크가 어려운 또 하나의 이유가 있다. 아슬아슬한 판돈으로 돈을 따지 못했던 도박의 경험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투자의 세계 역시 마찬가지다. 큰 돈을 굴리는 투자자는 그의 투자 행태 자체로 시장을 움직일 수 있다. 국내 증시에서 외국인 투자가의 역할이 좋은 예다. 지난해 11월 11일 2조 원 이상의 매물을 쏟아내 코스피 지수를 단 하루, 정확히는 5분 만에 50포인트 가까이 끌어내린 것도 그들이다.
현재 증시는 개인 투자자들의 재테크에 대한 환상과 외국인 투자자들의 영향력이 극적으로 교차하는 상태다. 지난해의 극적 반등을 목격한 개인들은 추가 상승에 대한 기대를 안고 증시로 뛰어들고 있다. 외국인들의 생각은 다르다. 국내 증시에서 이미 많이 벌었고, 또 증시가 오를 만큼 올랐다고 생각한다. 더욱이 한국을 포함한 신흥시장에서 인플레이션 압력과 중동 정정불안 같은 불확실성도 고조되고 있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2월 들어서만 3조 원 가까이 팔아 치우고 있다. 이제 뻥 뚫린 도로를 나 홀로 질주할 수 있 다는 상상을 접어야 할 때다. 오히려 재테크 실패의 추억을 되새겨야 할 시점이다.
김방희(생활경제연구소장, KBS 1라디오 '성공예감, 김방희입니다' 진행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