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피자를 향한 러브 스토리


코키스 Corky' s가 문을 닫은 날, 내 영혼의 한 조각에도 죽음이 찾아왔다. 사라진 맛집을 어떻게 다시 찾아냈는지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 본다.

By Hank Gilman hank_gilman@fortunemail.com


사람들은 참 여러 가지에 집착한다. 오바마 대통령의 건강보험 개혁안, 프로 미식축구, 폭 스 채널의 토크쇼 진행자, 드라마 '더 행오버 The Hangover' ......

하지만 내가 꽂힌 것은 바로 피자다. 지금부터 펼쳐질 이야기는 젊은 시절 맛본 최고 의 피자를 찾아 헤맨 나의 사연이다.

출장을 갈 때면 나는 항상 알려지지 않은 피자 맛집을 찾아 다닌다. 얼마 전에는 맛 있는 피자집이 있다는 동료의 말에 도시 규모가 사방 1마일에 불과한 미주리 주 콜 캠 프 Cole Camp까지 차를 몰아 그 집을 찾아가기 도 했다. (그녀의 말대로 그 집은 정말 있었다. 캘거로스 Calgaro' s라는 곳이었다.) 오래전 보스 턴 글로브 Boston Globe에서 일하던 시절에는 '최 대 프랜차이즈 피자' 에 대한 기사를 쓴 적도 있 다. 이 말이 무슨 뜻인고 하니, 그때는 먹고 살 기 위해 형편없는 피자도 먹어야만 했다는 의 미다. 당시 식습관이 얼마나 나빴는지, 리피토 Lipitor (*역주: 화이자 제약의 콜레스테롤 강하제) 에 왜 그리 많은 돈을 쏟아 부어야 했는지도 그 사실로 다 설명된다.

70년대 후반 하트포드 지역에 살게 된 것은 피자 애호가로서의 내 삶에 큰 행운이었다. 코 네티컷 주, 그 중에서도 뉴헤이븐에선 샐리스 Sally' s , 더 모던 The Modern, 프랑크 페페스 Frank Pepe' s를 비롯한 미국 최고 수준의 피자를 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내가 우주 최고의 피자를 찾아낸 곳 은 뉴헤이븐이 아니었다. 작고 허름한 유명 코 키스 이탈리아식 레스토랑 겸 피자집이 자리잡 고 있던 이스트 하트포드 시내는 프랫 앤 휘트 니 Pratt & Whitney (*역주: 미국의 항공기 엔진 제 조기업) 같은 회사가 있던 지저분한 공업 단지 였다. 그곳 지역 신문 기자였던 나는 하수도관 리위원회 회의 같은 행사를 취재할 때 코키스 에서 식사를 하곤 했다. 내가 가장 좋아한 메 뉴는 시금치 토핑을 얹은 피자였다. 살짝 그은 얇은 반죽, 처음부터 끝까지 가게에서 직접 만 든 소스, 전유(全乳) 치즈, 오븐에서 구운 신 선한 시금치의 조화는 완벽 그 자체였다. 어 쩌다 한 번씩 가게 주인인 도미닉 디바티스타 Dominick DiBattista (별칭 '닉' )에게 피자 맛의 비 결이 무엇인지, 소스에는 어떤 향신료를 넣는 지 물어본 적도 있지만 사실 크게 관심은 없었 다. 나는 젊었고, 배가 고팠으며, 하수도관리위 원회에 대한 기사도 써야 했다. 그런저런 생활 이었는데, 피자 맛의 비결이 무엇인지 알고 싶 은 게 뭐 있었겠는가?

그 후로 몇 년 동안 닉은 사업을 꾸준히 확 장했고, 결국 처음과 같은 자리에 8,000제곱피 트(약 740㎡) 규모의 레스토랑을 갖게 되었다. 피자 맛은 그대로였지만 고객 수는 전과 달랐 다. 주말이면 코키스 팬들이 밖에서 한 시간씩 기다려 자리를 잡곤 했다. 인정한다. 나도 그 중 하나였으니까. 그때 나는 이미 하트포드 지역을 떠나 보스턴과 뉴욕을 오가는 생활을 하고 있 었다. 하지만 당시에도 몇 달에 한 번 아내와 친 구들이 몇 시간씩 차로 달려와 꼭 코키스에서 식사 자리를 갖곤 했다. 그때 늘 닉과 마주쳤고 인사도 나눴지만, 사실 나는 그를 잘 알지 못했 다. 나는 닉이 가족의 도움을 받아 사업을 운영 하고 있고, 독실한 기독교 신자라는 것.부엌 으로 통하는 자동문 창이 십자가 모양으로 되 어 있었을 정도니까.외에는 그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다. 그와 그의 피자는 나에겐 기본적 으로 미스터리였다.

그러던 어느 날 모든 것이 끝났다. 1995년 어느 날 뉴욕에서 보스턴 집으로 돌아가는 길 에 잠시 들렀더니, 닉의 아버지 이름을 딴 식 당 코키스의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그의 작 별인사가 담긴 안내판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 다. 닉이 플로리다로 떠난다는 내용이었다. 돌 아오는 차 안에서 이렇게 말했던 것 같다. 젠 장, 그 시금치 피자 만드는 법을 알아 뒀어야 하는데.

그 후 15년 동안 이따금씩 코키스 생각을 했다. 평범한 다른 피자를 먹고 난 다음에는 더 욱 생각이 간절해졌다. 지난가을에는 뉴헤이븐 의 샐리스에 갔다. 그곳의 피자도 먹어 본 피자 중 손꼽힐 만큼 변함없이 훌륭했다. 하지만 그 시금치 피자와 이스트 하트포드의 조그마한 가 게에 대한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닉의 행방 이 자꾸만 궁금해졌다. 몇 달 전, 무엇 때문이었 는지 나는 문득 매킨토시를 켜고 검색창에 '코 키스' 를 쳤다. 코키스라는 레스토랑이 텍사스 주 알링턴에 있다는 사실을 간단히 알아낼 수 있었다.


같은 가게일 리가 없어. 설마 그럴 리가. 닉 은 플로리다로 간다고 했었는데, 왜 계속 피자 를 만들고 있을까? 그런데 웬걸, 레스토랑 홈페 이지가 있었다. 사진 속에서 닉과 그의 두 번째 부인 미셸 Michele이 나무숯 오븐 앞에 서 있었 다. 메뉴도 나와 있었다. 바로 그곳이었다. 시금 치 피자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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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독자 여러분도 알 것이다. 내 이야기가 어디로 흘러 갈까? 바로 텍사스 주 알링 턴이다. 마침 텍사스 출장 을 계획 중이었다(아무렴, 그러실 테지 .편집 자). 나는 포트 워스 Fort Worth에 잠깐 들러 포 춘의 필진인 피터 엘킨드 Peter Elkind를 만나기로 했다. 그는 내가 그 집에 그토록 집착하는 것을 보고 재미있어 했다. 푸드 네트워크 Food Network (*역주: 미국의 요리 전문 케이블) TV의 스토커 처럼 보이지 않기 위해 조심하면서 닉에게 메일 을 보내 약속을 잡았다. 그는 내 소식을 듣게 되 어 반갑다고 말했다. 아니나 다를까, 나 말고도 알링턴으로 성지순례를 떠난 열성 팬이 이미 한둘이 아니었다.

독자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이런 일은 기대했 던 대로 흘러가는 법이 없다. 그것도 절대로. 그 렇지 않은가? 사람 마음이란 간사해서, 옛 일은 시간이 오래 지날수록 더 좋게 느껴지는 법이다. 비틀즈의 노래나 프랑수아 트뤼포의 영화처럼 말이다. 별안간 나는 두려움에 휩싸였다. 그냥 포장된 피자 헛 피자나 먹으면서 집에 있을 것이 지, 도대체 왜 이런 법석을 떨고 있단 말인가?

알링턴으로 갔다. 이제 문을 연 지 9년 된 새로운 코키스는 어디에나 있을 법한 뻔한 쇼 핑 센터 안에 있었다. 매장은 널찍하고 현대적 이었다. 나무로 된 오븐은 숯불 피자 오븐의 모 양을 따라 만든 것 같았다(알고 보니 실제로 숯불 오븐이었다). 닉은 우리를 15분 동안 기다 리게 했다. 그는 뒤쪽에서 반죽을 처음부터 직 접 만들고 있었다. 고무적인 일이었다. 다른 테 이블의 피자도 모두, 뭐랄까, 딱 보기에도 코키 스 피자 같았다. 비로소 기분이 나아졌다.

한참 만에야 자리에 앉은 닉은 그간의 이야 기를 풀어 놓았다. 나를 알아보았는지는 잘 모르 겠지만, 익히 알고 있는 사람처럼 대했다. 사연은 이랬다. 아버지 코라도(별칭 '코키' )로부터 피자 만드는 법을 배운 닉은 1976년 처음 하트포드에 식당을 차렸다. 20년이 지나자 사업 규모가 너무 방대해졌고, 닉의 아이들은 힘든 레스토랑 일을 거들 생각이 없었다. 이혼 후 플로리다의 네이플 스 Naples로 이주한 닉은 그곳에서 새 레스토랑 을 열 계획이었지만, 알링턴 출신인 미셸이 그를 설득해 텍사스로 오게 되었다. 당시 텍사스에선 맛있는 피자집을 찾기가 힘들었다.

좋습니다. 그런데 피자는요? 그는 우쭐대 는 기색 없이 차분히 대답했다. 우선 반죽. 반 죽은 처음부터 끝까지 직접 만들어 최소 24시 간 냉장실에서 숙성한 후 다시 상온에서 숙성 한다. 이 과정을 거쳐야 피자 테두리가 한층 더 바삭바삭하게 부스러진다고 한다. 밑바닥에는 옥수수 가루와 비가열 압착법으로 추출한 올 리브유를 사용한다. 지저분한 석탄 오븐보다는 나무 오븐이 좋다. 시금치는 나무 오븐에서 화 씨 900도(섭씨 약 480도) 정도로 굽는다. 엄청 나게 세게 돌리는 것이라고 한다. 소스는 플럼 토마토로 만든다. 껍질은 쓴맛이 심하므로 벗 겨 사용한다. 여기에 열두 가지 향신료를(신선 한 것으로만) 첨가한다. 어떤 향신료인지는 묻 지 말 것. 가문의 비밀이니까. 피망도 구워서 양 념을 한다. 다 구워진 피자에 익히지도 않고 썰 어 뿌린 생 피망만큼 맛없는 것은 없기 때문이 다. 그렇다면 소시지는? 닉은 몇 달이 걸려서야 입맛에 딱 맞는 정육 회사를 찾을 수 있었다. (찾고 보니 닉의 가족이 이탈리아에서 알고 지 냈던 이탈리아 출신 이민자가 경영하는 회사였 다.) 그는 두 가지 소시지를 섞어 맛의 균형을 맞춘다. 이를 발견한 것은 '신께서 주신 선물' 이 었다며 닉은 스스로를 '광신도' 라 칭한다. 역시 나의 피자 아저씨다운 말씀이다.

우리는 텍사스에서 사업이 잘되어 가는지 (지금도 훌륭하지만 점점 더 좋아지고 있음), 몇 년 만에 다시 식당을 차린 그가 얼마나 이 사업 에 만족하는지 등 이런 저런 주제에 대해 두런 두런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이 일이 아니면 어 떻게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저녁마다 만날 수 있으며, 찾아오는 사람들이 돈까지 주는데 이보 다 좋은 일이 어디에 있겠느냐" 고 말했다.)

그럼 이야기의 결말은 어떨까? 옛 추억을 떠 올리며 비가열 압착 올리브유와 피망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즐거웠다. 하지만 이야기 내내 나는 카운터에 앉은 미셸을 힐끗힐끗 쳐다보며 시금 치 토핑을 얹은 피자가 나오기만을 잔뜩 기다렸 다. 드디어 손에 피자를 든 그녀가 걸어왔다. 그 피자는 내 기억 속 모습 그대로였다. 살짝 그을린 테두리, 옛날과 똑같이 얹은 재료, 그리고 빼놓 을 수 없는 구운 시금치까지. 시작이 좋았다.

맛을 보았다. 환상적이었다. 닉은 그때나 지 금이나 제대로 일을 해냈다. 70~80년대를 거 쳐 90년대까지 공단 동네에서 먹던 그때 그 피 자 그대로였다. 내 판단이 옳았다. 최고는 바로 이것이었다.

그 다음은, 뭐랄까, 끝이었다. 닉의 행적을 찾아내고, 여행을 계획해 이곳에 왔지만 그 다 음 상황은 불과 몇 분 만에 종료되었다. 피자 를 먹는 일은 다 그런 법이다. 코키스는 예전에 도 피자의 샹그릴라였고 이번에도 마찬가지였 다. 15년이라는 세월이 흐른 것 말고는 변한 것 이 거의 없었다. 자리에서 일어난 닉은 늘 그렇 듯 부엌으로 돌아가 반죽을 했고, 우리는 식당 에서 나와 차에 올랐다. 이제 언제 다시 그곳에 갈 수 있으려나?

그 피자 만드는 법을 알아 왔어야 하는 건 데. 후회가 밀려왔다.

번역 염세라 serah.yeom@gmail.com

fortune.com이나 아이패드, 갤럭시, 플레이북판 포춘에서 닉의 피자 만들기 테크닉을 비디오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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