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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량 살인, 그 악몽의 심리학

이슈분석: 해병대 총기사고

당신은 극한 상황에 처하면 한 점의 망설임도, 한 점의 후회도 없이 타인의 목숨을 빼앗을 수 있나? 아마도 이 물음에 빠르게 답변을 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따금씩 터지는 대량 살인 사건을 보면 인간의 본성 자체가 악하다는 '성악설(性惡說)'이 진실처럼 느껴진다. 한 사람도 아닌 다수의 사람을 동시점에 살해하는 대량 살인은 과연 어떤 심리학적 과정을 거쳐 일어나는 것일까.
글_이동훈과학칼럼니스트 enitel@hanmail.net


지난 7월 4일. 인천 강화도 해병부대 생활관에서 김 모 상병이 K-2 소총으로 동료들을 쏘고 수류탄을 터뜨려 자살을 기도 한 사건이 발생했다.

김 상병은 사건 당일 오전 7시 30분께 창고에 숨겨 뒀던 소주 한 병을 마시고는 공범인 정 모 이병을 창고로 불러내 함께 범행을 모의한 것으로 조사됐다. 피해자 중 3 명은 현장에서 사망했으며 1명은 병원 이송 도중 안타까운 생을 마감했다.

김 상병은 범행동기에 대해 사건 당일 평소 자신에게 선임 대접을 해주지 않은 후임병이 선임병과 웃으며 대화하는 모습을 보고 소외된 기분에 자살 충동을 느꼈다고 진술했다. 김 상병은 자신이 '기수열외'라는 집단따돌림을 당하지는 않았지만 앞으로 기수열외 대상이 될 것으로 생각했다고 한다.

공범인 정이 병 역시 선임병들의 가혹행위로 괴로워하다가 김 상병과 함께 범행을 모의했다고 진술했다. 우리 사회에 커다란 충격을 안겨준 이 사건은 비교적 철저한 계획과 명확한 범행동기, 그리고 특정 다수를 표적으로 겨냥해 벌어진 전형적인 대량 살인 사건이다.

대량 살인과 연쇄 살인

대량 살인은 단어 자체에서도 알 수 있듯 다수(보통 4명 이상)의 사람을 동시에, 또는 비교적 짧은 시간(약 24시간 이내) 내에 살해하는 행위를 말한다. 여러 명을 살해했다는 점에서 연쇄 살인과 공통점이 있지만 연쇄 살인은 한 번에 한 명씩을 살해하고, 살인 행위 사이에 약 1개월 이상의 휴지기가 있으며, 피해자를 고문하거나 강간하는 등 가학적인 양상을 띤다는 사실에서 구별된다. 이렇게 놓고 보면 대량 살인의 범주에는 꽤나 많은 살인 행위가 포함됨을 알 수 있다.

개인이나 소집단에 의한 살인 외에도 과거 독일 나치의 홀로코스트처럼 국가가 정책적으로 주도한 학살 행위, 알카에다의 9·11 테러 같은 테러 행위 역시 분명한 대량 살인이다.

분류자에 따라서는 저항이 불가능한 불특정 다수의적 국민간인을 일격에 살상하는 군사 작전, 예를 들어 제2 차 세계대전 중 연합국의 함부르크 공습이나 히로시마 및 나가사키 원자폭탄 투하를 대량 살인의 카테고리에 넣기도 한다. 또한 의도적인 것은 아니지만 결과론적으로 다수의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국가 정책을 대량 살인으로 보기도 한다. 20세기 중국의 대약진운동, 문화대혁명 등이 이에 해당된다.

하지만 대개는 이번 해병대 총기난사 사건처럼 주로 개인, 또는 2인 정도의 소규모 집단에 의해 벌어지는 경우가 많다. 또한 이는 다시 범인과 피해자의 관계에 따라 가족·직장·학생 등 면식범에 의한 대량 살인과 비 면식범이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벌이는 대량 살인으로 분류할 수 있다. 범행 동기 부분은 그 종류가 너무 다양한 탓에 한두 가지로 단정 짓기 어렵다.

다만 확실한 게 하나 있다면 상당수의 대량 살인범은 많은 사람을 죽임으로써 자신의 존재와 힘을 알리고자 한다는 점이다. 이는 국가나 테러 단체 등에서 실시하는 조직적 대량 살인에서도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현상이다. 개인적 대량 살인은 보통 몇 가지 두드러진 특징을 띠는데 사용된 무기가 보통 총기류라는 것이 그 첫 번째다.

아무리 방심하고 비무장인상대라고 해도 맨주먹이나 칼로는 자신이 제압당하기 전까지 다수를 살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때로는 인화성 물질이나 폭발물을 사용하는 방식도 있으며 2003년 대구 지하철 방화 참사가 증명하듯 이 경우는 희생자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 수 있다. 두 번째는 희생자의 숫자로서 평균 8명 정도가 된다.



이보다 희생자가 많다면 어떤 부분에서든 대처가 미흡했다거나 국가·사회 안전망에 구멍이 뚫렸다고 볼 수 있다. 이외에도 가해자의 95% 이상이 남성이라는 점, 거의 모든 가해자는 사건 이후 자살 또는 사살로 삶을 마감한다는 점도 특징으로 꼽힌다.

이중 가해자의 사망은 대량 살인의 동기나 발생 배경, 범행 경위 등의 수사에 엄청난 어려움을 겪게 하는 요인이 된다.

본성을 압도하는 질투와 분노

성악설을 주창한 순자(荀子)의 생각과 달리 적어도 과학적 견지에서 볼 때 인간의 본성이 악하다는 증거는 없다. 선과 악이라는 가치판단 자체가 과학의 영역이 아닌 종교와 철학의 영역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더구나 악한 것을 넘어 살인까지 하는 것이 인간의 보편적 성향이라고 볼 근거는 더욱 없다.

이는 인간이 살인을 좋아한다고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지를 생각해보면 이해가 쉽다. 인간에게 살인은 개체 수를 죽이는 행위다. 만일 그런 행위를 좋아했다면 질병, 맹수의 습격, 천재지변 등 지금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자연적 원인으로 죽어가던 원시 시대에 인류는 스스로가 저지른 동족살해 행위로 진즉에 멸종했어야 할 것이다.

이 점에서 인간은 종의 생존을 위해 살인을 기피하려는 본성이 있다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 다른 동물종의 행태도 이를 방증한다. 많은 동물들이 생존을 위해 다른 종을 잡아먹지만 영역 다툼, 번식(짝짓기) 등 생존과 직결된 특수상황이 아니면 서로를 죽이는 행위는 거의 볼 수 없다.

그렇다면 인간은 도대체 어떤 요인에 의해 이토록 본능적인 제한을 무력화하고 대량 살인에 이르게 되는 것일까. 이와 관련해 미국 컬럼비아 의과대학의 임상 정신의학 교수인 마이클 스톤은 살인 행위의 동기와 양상을 악독성을 기준으로 A에서 F까지 6등급으로 분류했다.

이중 가장 악독성이 적은 A등급의 '정당한 살인'을 비롯해 E등급의 '반복적 가혹행위를 위한 연쇄살인', F 등급의 '고문을 주목적으로 한 연쇄 살인'은 대량 살인의 모습과는 다르다. 거의 모든 대량살인의 양상은 B등급의 '질투 및 기타 충동이 동기가 된 살인', C등급의 '방해되는 사람의 제거를 위한 비계획적 살인', 그리고 D등급의 '방해가 되는 사람의 제거를 위한 계획적 살인'에 포함된다.

간단히 말해 대량 살인은 매우 강한 심리적 충동이 유발됐거나 희생자를 더 이상 인간으로 보지 않고 반드시 없애야 할 방해물로 여기는 심리 상태에 기초한다고 볼 수 있다. 바로 이런 심리가 본성과 이성을 압도할 때 대량 살인이 발생한다는 얘기다. 여기서 심리적 충동은 질투와 분노의 비중이 가장 높다.



두 가지 모두 무언가를 추구하는 욕구가 거부 혹은 차단됐을 때 발현되는 감정으로서 욕구가 클수록 거부당했을 때 느끼는 질투와 분노의 파괴력도 커지기 마련이다.

심한 경우 욕구를 차단한 사람의 생명을 빼앗거나, 좌절감을 못 이겨 자살을 하거나, 혹은 상대방을 살해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고 싶다는 극단적 생각을 하게 된다.


충동과 실행의 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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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잠시 잠깐일지언정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도 자신에게 극도의 고통을 주는 누군가를 죽이고 싶다거나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이를 실질적인 행동으로 옮기지는 않는다. 생각과 충동이 행동으로 이어지려면 살인을 억제하는 많은 빗장들이 추가적으로 풀려야 한다.

이때 정신질환, 약물, 뇌손상 등의 요인들이 빗장을 푸는 열쇠가 될 수 있다. 살인을 쉽게 만드는 정신질환에는 범죄행위에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반 사회적 인격 장애를 포함해 과대망상증, 자폐증, 분열성 인격 장애 등이 있다. 약물의 경우 술(알코올), 마약 등이 폭력 및 살인 성향을 부추기는 물질로 지적된다.

해병대 총기난사 사건에서도 주범 김 상병은 소주를 마시고 범행을 저질렀다. 특징적인 사실은 성별과 호르몬도 한 요인이 된다는 것이다. 대량 살인범의 절대 다수가 남성이라는 게 이와 유관하다. 원래 남성의 뇌는 여성보다 공격적 성향이 강한 대신 감정이입 능력은 떨어지는데 감정조절에 관여하는 신경전달물질인 세로토닌의 농도까지 낮아질 경우 대단히 높은 공격성이 표출될 수 있다.

연령 요인도 의외로 간과할 수 없다. 청소년기 뇌의 전두엽 신경세포는 일종의 보호막인 미엘린(myelin)이 제대로 싸고 있지 않아 외부자극에 취약하다. 18~30세 사이의 남성 인구들이 중장년층 대비폭력성향이 강한 이유 가 이 때문이다. 외부적 요인으로는 범인의 성장배경, 범행 당시의 환경 등 환경적 요인이 제일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설령 반 사회성 인격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아이라도 올바른 환경에서 양육되기만 하면 교육을 통해 잘못된 행위를 교정, 살인 충동의 억제가 가능하다.

반면 정상적인 아이지만 어렸을 적부터 지속적인 학대를 당한다면 정신적 트라우마로 인해 충동을 제어하지 못하고 살인자가 될 소지가 있다. 덧붙여 피해자와의 물리적·정서적 거리도 살인 실행의 빗장을 걷어낼 심리 요소다. 보통 이러한 거리가 멀수록 살인에 대한 내적 저항감이 낮아진다.

아무래도 가족이나 친구보다는 모르는 사람이, 옆집 이웃보다는 옆 동네 사람이 거부감이 적은 것이다. 가용 가능한 전략, 즉 상대방을 살해할 방법이 있는지의 존재 여부도 마찬가지다. 상대가 24시간 보디가드들에게 둘러싸여 있다거나 하면 살해 충동이 일어나도 실행하기는 어렵다.

마지막으로 살인에 따른 기대 보수를 들 수 있다. 살인으로 인해 어느 정도의 심리적, 실질적 이득이 오는지의 부분이다. 득보다 실이 많다면 충동은 억제될 수 있다. 김 상병의 경우에도 소초장에게는 사격을 가하지 않았는 데 이는 그가 무차별적 살인을 시도한 것이 아니라 기대 보수에 따른 자기 나름의 타당성과 규칙을 갖고 있었다는 증거가 된다.

군대는 대량 살인 유발자?!

이유와 과정이 어찌 됐든 모든 범죄행위는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 살인, 그것도 다수의 고귀한 인명을 살상한 대량 살인이라면 두말할 나위조차 없다. 설령 가해자가 살인에 이르기까지 남 모르는 극도의 고통에 몸부림쳤을지라도 말이다.

살인은 원상복구가 절대로 불가능하며 그 어떤 대가를 치러도 완벽히 사죄할 수 없는 인간성 상실의 전형임에 틀림없다. 이토록 크나큰 피해를 주는 일이기에 우리는 더욱 대량 살인 범죄의 예방에 사회적·국가적 노력을 쏟아야 한다.

특히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를 보면 지난해 우리나라의 출산율은 1.22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저를 기록했다. 이 같은 저출산 상황에서 대량 살인은 글자 그대로 한 가정의 대를 끊어버리는 만행이 될 수 있다. 사실상 군대는 다른 조직사회들보다 대량 살인 범죄에 대한 취약성이 월등히 크다.



살인 무기가 지천에 널려 있고 많은 훈련들이 인명 살상 능력 배양과 관련이 깊다.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북한과 대치 중인 우리나라 군대는 다른 국가들의 군대보다도 그 정도가 심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군 입대자들은 인성과 학문을 모두 발달시키는 균형 잡힌 교육이 아닌 입시와 학점 중심의 경쟁상황에 던져져 있었던 인적자원들이다.

때문에 남을 헤아리기 보다는 본인 중심의 사고에 길들여져 있다. 또한 입대 전까지 스스로 모든 것을 결정하고 행동해서 그 결과에 책임져 본 경험들도 거의 없다. 그러니 군 생활을 하는 동안 올바른 전우애와 리더십이 키워지지 못하고 구시대의 악습만 되풀이 하는 상황이 연출된다고 볼 수 있다.

이게다가 아니다. 병사들의 의식주나 복지도 사회인에 비해 결코 내세울만한 것이 없으며 신체검사 과정에서 정신적 문제 등 위험요소를 안고 있는 자원을 걸러내는 과정도 상당히 형식적이다.

아울러 이번 김 상병 사건의 수사 과정에서 총기와 탄약 관리의 허술함도 충분히 드러났다. 이미 우리 군에는 대량 살인이 일어날 만한 '멍석'이 깔려있었다고

표현해도 지나친 실언이라 매도할 수 없는 셈이다. 여기에다가 군은 사건 발생 후 충분히 살릴 수 있던 부상자를 후송이 늦어 숨지게 하는 등 사고 수습의 허점 또한 여실히 드러냈다. 가히 총체적 난국이라 할 수 있다. 우리 군과 사회, 국가는 이러한 근본적인 문제의 시정에 나서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 2005년 8명의 사망자와 4명의 부상자를 낸 일명 '김일병 총기 난사 사건' 때처럼 '폭력적 컴퓨터 게임이 문제'라는 식의 몇몇 눈에 띄는 꼬투리를 잡아 희생양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

그것이 제2, 제3의 김일병 사건을 불러온다는 것은 이번 사고로 충분히 증명되고도 남음이 있다. 우리에게 더 이상 미룰 시간은 없다. 그 시간 동안 내 가족, 내 친구가 될 수도 있는 이 땅의 젊은이들이 안타까 이 스러져 갈 테니 말이다.



대량 살인의 역사

개인 또는 소집단이 피해자를 직접 살인하는 형태의 대량 살인 사건은 과거에서부터 세계 각국에서 빈번하게 일어났다.

1950년대 벨기에령 콩고와 탕가니아에서 각각 21명과 36명을 살해한 윌리엄 우넥이 대표적이며 콜롬비아 보고타의 캄포 엘리아스 델가도(30명, 1986년 12월 4일), 영국 헝거포드의 마이클 로버트 라이언(16명, 1987년 8월 19일), 호주 태즈메이니아섬 포트아서의 마틴 존 브라이언트(35명, 1996년 4월 28~29일) 등도 대량 살인을 말할 때 꼭 언급되는 사건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피해자의 숫자를 기준으로 이 분야 최악의 대량 살인은 다름 아닌 우리나라에서 발생했다. 1982년 4월 26일 경남 의령군 궁류면에서 벌어진 총기 난사 사건이 바로 그 주인공. 당시 현직 경찰이었던 가해자 우범곤은 애인과의 말다툼 끝에 예비군 무기고를 털어 M-2 카빈 소총 2정과 탄약 180발, 수류탄 7발 등을 절취했다.

그리고는 우체국을 공격, 외부와의 통신을 두절시킨 뒤 궁류면 일대 4개 마을을 돌며 눈에 띄는 모든 사람에게 사격을 가했다. 이 사건으로 숨진 피해자는 무려 55명에 달한다. 범인은 사건 다음날 새벽, 수류탄으로 자폭해 생을 마쳤다.

이 사건은 '단시간 내에 최대 인원을 살해한 대량 살인 사건'으로 기네스북에 등재되기도 했다. 물론 화재, 폭발물 등 간접적 방식의 대량 살인은 더욱 피해가 크다.

1961년 12월 15일 브라질의 노동자 아딜손 마르셀리노 알베스가 세상에 불만을 품고 서커스장에 방화를 저질러 323명(자료에 따라 최대 500명)의 사망자를 낸 것이 이 부문 최고 기록이다. 우리나라에서도 2003년 대구 지하철 방화 사건으로 198명이 사망한 아픈 역사가 있다.

파퓰러사이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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