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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환경 수소경제시대가 온다[1]

석유, 천연가스, 석탄 등의 화석연료는 한정된 자원이다. 멈출 줄 모르는 고유가 기조가 방증하듯 고갈 시기는 이미 가시권 내에 들어왔다. 때문에 이를 대체할 미래에너지의 개발은 인류 존속과 국가발전의 필수 요소가 됐다.

과연 포스트 화석연료시대를 이끌 차세대 주자는 누구일까. 세계 각국은 수소를 그 주인공으로 꼽는다. 그리고 수소경제시대로의 원활한 이행을 목표로 범국가적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파퓰러사이언스는 한국과학창의재단과 공동으로 머지않은 미래에 우리 삶을 바꿔놓을 수소에너지의 가치와 연구개발 현황, 과제와 비전을 3회에 걸쳐 살펴본다.


양철승 기자 csyang@sed.co.kr

1. 인류를 구원할 고효율 청정에너지
‘지구상에서 가장 풍부한 자원인 수소가 석유를 대체하게 될 것이다.’

세계적 경제학자이자 미래학자인 제레미 리프킨은 2002년 자신의 저서 ‘수소혁명’을 통해 이렇게 예견했다. 화석연료가 고갈 위기에 직면하면서 수소가 인류발전의 새로운 동력원으로 부상한다는 것이다.

그의 전망은 어김없이 들어맞았다. 국제유가의 고공행진이 이어지면서 세계 각국은 지속가능한 국가성장과 에너지 안보를 위해 수소에너지의 상용화에 대대적 투자를 단행 중이다. 미 에너지국(DOE) 집계에 의하면 2008년부터 작년까지 수소 및 연료전지 분야에 투자된 벤처캐피탈과 사모펀드 자본만 6억3,000만 달러에 달한다. 정부와 기업 투자액을 포함하면 최소 수십억 달러에 이를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에너지 독립 실현할 꿈의 에너지
수소에너지가 다양한 신 재생에너지 중에서 유독 각광받는 이유는 명확하다. 김종 원 고효율 수소에너지 제조·저장·이용기술개발사업단장은 “신에너지는 화석연료의 유한성과 환경문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며 “수소는 이를 실현할 최적이자 현존하는 유일한 대안”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수소는 중량을 기준으로 에너지량이 휘발유의 3배나 되는 고효율 에너지며 연소 시 유해물질을 거의 배출하지 않는 청정에너지다. 미 연료전지협회(USFCC)의 2010년 시장분석보고서를 보면 휘발유자동차 1대를 수소연료전지 차로 교체했을 때 연간 3톤, 디젤버스를 수소연료전지 버스로 교체하면 연간 30톤의 이산화탄소 저감효과가 발휘된다.

또한 수소는 물을 전기분해해 생산할 수 있다. 고갈될 우려가 전혀 없다는 얘기다. 김 단장은 “수소는 천연가스·석탄·바이오매스·원자력 등 다양한 방법으로 제조 가능하지만 궁극적 지향점은 태양광·풍력 등 자연에너지로 전기를 생산해 물을 전기분해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경우 연료생산에서 활용에 이르는 모든 과정을 통틀어 화석연료 사용과 온실가스 배출은 완벽히 제로가 되며 전 세계 모든 국가가 사실상 에너지 자립을 이룰 수 있게 된다. 인류를 에너지난으로부터 영원히 해방시킬 꿈의 에너지라 해도 실언은 아닌 셈이다.



환상의 짝꿍, 연료전지
특히 석유에게 내연기관이 있었다면 수소에게는 연료전지라는 환상의 짝꿍이 있다. 수소를 전기에너지로 변환해주는 연료전지를 통해 수소는 운송수단의 연료, 발전, 전원공급장치, 난방 등 화석연료를 능가하는 무궁무진한 활용도를 지닌다.

대통령 직속 녹색성장위원회 위원인 홍성안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연료전지연구센터 책임연구원도 “인류의 주 에너지원이 나무, 석탄, 석유로 진화한 것은 각각 증기기관과 내연기관의 등장 때문”이라며 “연료전지야말로 수소 경제 구현의 원천”이라고 설명했다.

연료전지의 최대 강점은 탁월한 에너지 이용 효율이다.

기존 내연기관이 휘발유가 지닌 에너지의 20~30%만 이용하고 나머지는 열, 소음 등으로 소실되는 반면 연료전지는 지금도 수소가 가진 에너지의 50~60%를 쓸 수 있다. 홍 책임연구원은 “연구결과, 수소연료전지차는 수소를 천연가스에서 생산해 공급하더라도 연료전지의 효율성에 힘입어 전체 에너지 효율이 36%나 된다”며 “이는 내연기관자동차의 16~20%를 비롯해 하이브리드카와 전기자동차의 26%, 21%보다도 높은 수치”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일각에서 수소에너지가 기술적·경제적 이유로 당분간 천연가스로부터 생산돼야 한다는 점을 들어 친환경성을 비하하곤 한다”며 “수치에서 드러나듯 과도기적 상황에서조차 수소는 화석연료 사용량을 크게 줄일 수 있어 수소로의 에너지 패러다임 변화는 당연한 귀결”이라고 강조했다.

2015년 개화, 2020년 만개
물론 150년이나 된 석유와 내연기관 중심의 에너지시스템 개혁이 쉬울 리는 만무하다.

1990년대 미국, 일본, 독일 등 선진국들을 필두로 하여 2000년대 우리나라를 포함한 후발주자들이 수소에너지 연구에 속속 뛰어들었지만 아직도 많은 기술적 난제들이 산적해 있는 상태다.

하지만 그간의 노력에 의해 수소의 제조·저장·활용 전반에서 괄목할만한 진전이 이뤄지면서 수소경제는 손에 잡힐 듯 다가와 있다. 전문가들은 수소연료전지차의 상용화가 예고된 2015년을 전후해 수소에너지 시대가 개화되고 2020 년경 수소경제 진입이 본격화될 것으로 내다본다. 이와 관련 미국 시장조사기관 파이크리서치는 지난달 세계 수소 연료 수요량이 2010년 77만5,000㎏에서 2015년 5,500만㎏, 2020년 4억1,800만㎏로 폭증할 것이라는 예측을 내놓기도 했다.

그렇다면 현 시점에서 우리나라의 기술력은 어느 정도 수준일까. 김 단장은 “계층분석기법(AHP) 평가 결과, 미국·일본·독일·중국·캐나다에 이어 6위에 해당됐다”며 “우 리의 주력분야는 기술력에서 가장 앞서 있는 미국의 70%선에 이른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10여년 뒤늦게 연구개발을 시작했음을 감안하면 괄목할 만한 성과임에 틀림없다. 다만 관련업계를 중심으로 최근 몇 년간 수소연료전지 분야에 대한 국가적 관심이 약화되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불거지고 있다. 홍 책임연구원은 “현 정권이 녹색성장에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고 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수소연료전지 분야가 상대적으로 소외된 듯한 느낌을 받는 것이 사실”이라며 “장기적 관점에서 체계적 방향 설정에 따른 선택과 집중이 요구된다”고 강조했다.

INTERVIEW
김종원 고효율 수소에너지 제조·저장·이용기술개발사업단장



Q. 수소가 대체에너지로 부각된 계기는
연료로서의 수소는 1960년대 우주항공분야에서 로켓연료로 액체수소를 사용한 것을 효시로 볼 수 있다.

이후 1970년대 석유파동을 겪으며 미국 등 선진국들이 국가적 차원의 대형 수소개발프로젝트를 출범시키면서 대체에너지의 하나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Q. 국내연구는 어떤가
우리나라는 1988년 기초연구가 수행됐지만 본격화된 것은 2000년대 들어서부터다. 특히 2003년 교육과학기술부가 수소제조와 저장기술 중심의 원천기술 확보를 목표로 10년간 1,000억원을 투입하는 고효율 수소에너지 사업단을 출범시켰고 이듬해 지식경제부가 단위과제 중심에서 집중적 연구를 위해 5년간 1,500억원을 투입한 수소연료전지사업단을 조성한 것이 연구 활성화의 결정적 계기가 됐다.

Q. 수소연료전지차 상용화가 임박했는데
현대·기아차를 포함한 주요 완성차 메이커들이 2015년경 상용화를 목표로 실증프로그램을 진행 중이다. 상용화의 최대 걸림돌은 가격이다. 기술발전에 따라 2010년 현재 대당 제조단가가 2008년 대비 3분의 1 수준인 약 1억5,000만원까지 낮아진 상태며 2012년 6분의 1, 2015년까지 20분의 1로 낮추는 것이 목표다.

Q. 언제쯤 실용성 있는 수준에 도달할까
상당히 어려운 예측이다. 단지 대량생산과 신기술이 적용이 된다면 2020년대에는 2008년 대비 40분의 1 가격으로 생산하는 것도 가능할 것으로 본다. 자동차 업계에서는 일단 6,000만원선을 상용화 초기의 목표가격으로 잡고 있다. 물론 실질 구매로 이어지려면 하이브리드카처럼 정부 보조금 등 구매자에 대한 인센티브 정책 마련이 필요할 것이다.

Q. 국내 수소경제 구현의 과제가 있다면
적극적 연구개발로 관련기술의 효율과 내구성을 높여 경제성을 갖추는 일이 중요하다. 또한 수소충전소 같은 인프라와 안전 법규의 정비, 표준화 등에서도 산·학·연의 공동보조가 필수적이다. 표준화의 경우 국제표준화 관련 기구인 ISO/TC197, IEC/TC105에서 1990년도부터 검토를 시작해 수소분야 13개, 연료전지분야 9개의 표준이 제정된 상태다. 덧붙여 수소 등 신재생에너지의 중요성을 정부주도로 국민들에게 인식시키는 노력이 수반돼야 한다.

우리나라처럼 천연자원이 부족한 국가에서 신재생에너지 투자를 게을리 한다면 소위 ‘자원전쟁’에서 큰 위기를 겪을 수 있다.



2. 수소 생산·공급시스템 연구개발 이슈

친환경 수소에너지에 대한 세계 각국의 관심은 지대하다. 하지만 수소는 에너지로서 지닌 무한한 가능성만큼 불확실성 또한 적지 않다. 2015년경 수소연료전지차의 상용화를 기점으로 수소경제 진입이 예고돼 있지만 아직도 수소의 제조·저장·배송에 있어 기술적·경제적 상용성을 갖춘 확고한 선도기술이 존재하지 않고 있는 것. 수소경제가 시기상조며 어쩌면 허상일수도 있다는 일부 회의론자들의 주장도 바로 여기서 기인한다. 수년 뒤 우리 눈앞에 나타날 수소경제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천연가스 증기개질(SMR) 은 현존하는 가장 저렴한 수소 생산방식이지만 화석연료를 사용, 제조과정에서 온실가스가 배출된다.

천연가스와 물
연료로서 수소의 강점 중 하나는 제조법의 다양성에 있다. 천연가스 증기개질(SMR), 나프타 분해, 석탄가스화, 바이오매스 가스화, 물 전기분해, 광화학 분해, 열화학 분해 등의 공정으로 생산이 가능하다. 이 덕분에 유한한 천연자원에 의존했던 화석연료와 달리 수소경제시대에서는 에너지 자원의 빈익빈 부익부가 사라지게 된다.

문제는 현재 이들 중 어떤 기술도 친환경에너지, 무한에너지라는 수소 본연의 가치를 충족시키면서 확고한 상용성을 지니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3대 수소제조기술로 꼽히는 SMR, 물 전기분해, 그리고 원자력 열화학 공정은 각각 친환경성, 경제성, 기술력에서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국내 최대 산업용 수소 제조업체인 덕양의 홍진경 이사는 “SMR은 현존하는 가장 저렴한 수소 생산방식이지만 화석연료를 사용, 제조과정에서 온실가스가 배출된다는 게 한계”라고 설명했다.

물 전기분해 또한 기술 개발은 완료돼 있는 반면 값비싼 전기료 때문에 화석연료 수준의 가격경쟁력 확보가 불가능한 실정이다. 천연가스나 석탄을 태운 화력발전에 의해 생산된 전기를 이용하면 친환경성도 떨어진다. 홍성안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연료전지연구센터 책임연 구원은 “태양광·풍력 등 자연에너지로 전기를 얻어 물을 전기분해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라며 “다만 지금은 태양광·풍력발전조차 발전차액 지원제도가 시행 중일 정도로 발전 단가가 비싸서 수소제조에 적용되려 면 꽤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원자력 공정의 경우 4세대 원자로인 초고온가스로 (VHTR)의 열에너지를 활용하는 것으로서 VHTR 1기당 연 간 6만톤에 달하는 대량 수소생산기술로 주목받고 있다. 하 지만 2020년 이후에야 실증로 건설이 예정돼 있을 만큼 전 세계적으로 연구개발이 초기단계다.



화석연료로 수소를 만드는 초기의 기형적 수소생산시스템은 수소에너지 기술발전과 조기 상용화를 위한 차선책이다.

액체와 기체의 패권 다툼
이런 이유로 수소에너지 전문가들은 당분간 천연가스 SMR 공정이 수소경제를 주도할 것으로 내다본다. 미 에너지국(DOE) 역시 SMR 방식이 이미 휘발유 1갤런과 동일한 에너지를 내는 1gge의 수소 연료를 3달러에 생산할 수 있음을 지적하며 2020년에 이르러도 SMR의 수소생산 비중이 가장 클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그런데 이처럼 화석연료로 수소를 만든다면 수소경제는 결국 화석연료시대의 연장에 불과한 것이 아닐까. 김종원 고효율 수소에너지 제조·저장·이용기술개발사업단장은 이것이 과도기적 조치임을 직시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김 단장은 “화석연료의 가격적 혜택을 누릴 수 있을 때 고갈에 대비한 대체에너지 기술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며 “초기의 다소 기형적 수소생산시스템은 수소에너지 기술발전과 조기 상용화를 위한 차선책”이라고 밝혔다. 김 단장은 또 “DOE의 수소 목표가격은 1㎏당 2~4달러”라며 “2020~2030년경 이에 도달할 것으로 예측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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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소 제조와 마찬가지로 저장과 배송기술에서는 기체와 액체가 패권 다툼을 벌이고 있다. 생산된 수소를 가압(加 壓)하여 고압기체로 저장·배송할지, 액화시킨 뒤 초저온 액체 상태로 취급할지가 관건이다. 2008년 연세대 문일 박사팀은 액체 방식이 국내 실정에 부합한다는 연구결과를 내놓기도 했지만 전문가들은 기체의 우위를 점친다.

홍 책임연구원은 “저장·배송 효율은 액체가 좋더라도 액화공정에 상당한 에너지 투입이 요구되고 저장과정에서 연료 손실률이 높다”며 “저장용기 가격도 액체가 월등히 높다” 고 설명했다. 홍 이사 또한 “비용적 문제로 국내에서 생산되는 연간 8,300만N㎥의 산업용 수소는 전량 기체로 저장·배송된다”고 전했다.

저장 압력 700bar
이외에 금속수소화물, 탄소나노튜브 등 안전성과 효율을 개선한 새로운 수소저장매체 개발이 속속 이뤄지고 있지만 아직은 연구단계에 머물러 있다.

같은 맥락에서 수소저장용기의 최대 수요처가 될 수소 연료전지차에도 고압기체 저장용기의 채용이 확실시된다.

현대·기아자동차, GM, 혼다 등 글로벌 완성차 메이커 8개 사가 참여해 수소연료전지차를 실증 중인 미국 캘리포니아 연료전지 파트너십(CaFCP)의 실무책임자 캐서린 던우디는 “지금껏 개발된 수소차 모델의 절대다수가 고압 기체수소 저장탱크를 탑재하고 있다”며 “액체 연료 방식은 세계에서 BMW가 유일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단지 기체저장에 있어서는 저장압력이 연구개발의 핫 이슈다. 캐서린은 “대다수 수소차 실증모델에 충전압력 350bar 용기가 장착돼 있는데 상용모델은 이의 두 배인 700bar 고압저장이 필수적”이라며 “수소는 부피 기준 에너지 밀도가 휘발유의 3분의 1에 불과해 700bar가 돼야 1회 연료충전으로 현 휘발유자동차 수준의 주행거리를 갖출 수 있다”고 밝혔다.

이 정도 압력을 견디기 위해 차량용 수소용기는 금속 혹은 비금속 용기(라이너) 전체를 탄소섬유나 유리섬유 복합 재료로 실타래처럼 휘감은 복합용기가 쓰인다. 현재 금속 라이너를 쓰는 타입-3와 비금속 라이너의 타입-4 용기가 주도권 싸움을 벌이고 있으며 전자는 안전성, 후자는 경량 성과 가격에서 강점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업계에 따르면 최근 들어 타입-4의 안전성이 강화되면서 타입-3가 잡고 있던 관련시장에 변화의 조짐이 감지되고 있다. 국내 최초로 타입-4 700bar 복합용기를 개발한 전북 완주 소재 일진컴포지트의 지용찬 사장은 “유명 타입-3 복합용기 제조업체인 캐나다 다이나텍의 제품과 비교해 가격이 70% 이상 저렴하다”며 “올해 말 국제인증을 획득하면 내년에 현대차가 생산할 200여대의 수소연료전지차에 당사 700bar 용기를 납품키로 했다”고 밝혔다.



INTERVIEW
김용완 한국원자력연구원 수소생산원자로기술개발부장



Q. 원자력 수소 생산공정을 구체적으로 설명해 달라
원자력 수소 생산은 4세대 원전인 초고온가스로(VHTR)에서 발생되는 900℃ 이상의 열을 이용한 열화학적공정이다. 크게 황산(H2SO4)과 요오드(HI)가 결합과 분리를 반복하는 분젠반응에 물과 고온을 공급하는 방식과 물 전기분해 공정에 열에너지를 가해 수소생산효율을 획기적으로 높이는 고온 물 전기분해 공정으로 구분된다.

Q. 연구개발은 어떻게 이뤄지고 있나
현재 미국, 유럽, 일본, 중국 등 9개국이 VHTR을 개발 중이다. 일본은 지난해 실험로인 HTTR을 건설하고 950℃에서 50일간 장기운전에 성공했다. 미국의 경우 총 2조원을 투자, 수소 및 전기생산 실증로 NGNP를 2021년까지 건설한다는 계획이다. 우리나라는 올해까지 핵심·원천기술을 확보하고 2017년 시스템 핵심기술 성능검증, 2022년 실증로 건설·운용을 목표로 하고 있다.

Q. 실증로의 규모와 수소생산량은
VHTR은 안전을 위해 직경 0.5㎜의 우라늄 연료를 세 번 코팅한 직경 1mm의 피복입자연료를 사용한다. 때문에 단위부피에서 생산되는 열량이 작아 원자로 용기가 커져야 하므로 대형화가 힘들다. 현 원자로 용기 제조기술을 볼 때 VHTR 1기는 열출력 600MWt 정도며 연간 6만톤의 수소생산이 가능하다. 국내에서 건설할 실증로는 연간 2만톤의 수소를 생산할 수 있는 200MWt급 규모다.

Q. 국내 기술력은 어느 정도 수준인가
중점적으로 연구 중인 몇몇 핵심기술은 선진국과도 경쟁할 수 있는 수준이다.

고온가스로 건설경험이 없어 전체적 기술은 뒤쳐져 있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연구개발 초기단계인 만큼 집중적 투자가 이뤄지면 단시간 내에 따라잡을 수 있을 것으로 본다.

Q. VHTR의 안전성은 어떤가
최근 일본 원전 사고로 인해 원전의 안전성 우려가 새삼 커지고 있다. 하지만 VHTR은 4세대 원자로 중에서도 안전성과 경제성이 가장 우수하다. 냉각제로 헬륨을, 감속재로 흑연을 사용하고 있어 사고 발생 시 핵연료용융 가능성이 없고 방사능 유출 확률도 매우 낮다. 원자로에 물과 지르코늄 합금을 쓰지 않아 수소폭발 우려도 없다. 특히 전원이 상실된 채 아무리 오랜 시간이 흘러도, 헬륨 냉각제가 누출돼 사라져도 공기순환에 의한 원자로 표면의 복사냉각으로 전체 출력의 0.1~0.2%인 잔열이 지속 제거된다.



3. 수소에너지는 수소폭탄!?

수소경제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꼭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 이 있다. 바로 안전성이다. 수소는 친환경에너지의 대명사지만 분명 강력한 폭발력을 내재하고 있는 가연성 가스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수소에너지를 논할 때면 적지 않은 사람들이 수소폭탄을 떠올리며 불안감을 표명한다. 수소의 진정한 얼굴은 지킬박사일까, 아니면 하이드일까.

작년 12월 울산 소재 SK에너지 중질유분해공장에서 수소생산설비(PSA)의 배관설치 작업 중 수소가스가 누출, 폭발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1명이 숨지고 7명이 부상을 당했다. 2003년에는 한국과학기술원(KAIST) 실험실에서 고압수소용기가 폭발, 박사과정 학생 1명이 숨지고 1명이 다리가 절단되는 중상을 입었다. 이는 모두 수소의 위험성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화석연료보다 안전성 확보 용이
실제로 수소는 확산성이 천연가스의 4배, 휘발유 증기의 12배에 달해 폭발범위가 넓다. 착화 온도도 낮아 쉽게 발화한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모든 종류의 연료가 폭발위험을 안고 있어 세심한 주의를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 수소는 여타 탄화수소계 화석연료들보다 안전성 확보가 용이한 물질이라 지적한다.

김종원 고효율 수소에너지 제조·저장·이용기술개발사 업단장은 “수소는 이미 산업 분야에서 연간 약 5,000만톤, 우리나라도 연 290만톤이 생산·유통되고 있다”며 “수소 자체의 위험성과는 별도로 현 기술로도 충분히 안전한 제어와 활용이 가능한 에너지”라고 밝혔다.

김동묵 동신대 수소에너지학과장의 경우 수소 화재 및 폭발 가능성이 생각만큼 높지 않다고 설명한다. 김 교수는 “수소가스의 높은 확산성은 안전에 있어 오히려 장점으로 작용한다”며 “수소 누출 시 특정공간에 잘 축적되지 않고 신속히 사라질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지난 1963년부터 작년까지 47년간 발생한 국내 수소가스 관련 사고가 총 54건, 연간 1.1건에 불과한 것이 이를 방증한다. 김 교수는 또 미 에너지국(DOE) 등의 연구·실험자료를 인용, 수소의 안전적 이점은 이뿐만이 아니라고 전했다. 연소 시 독성가스를 배출하지 않고 순식간에 연소되는 만큼 질식의 우려가 매우 적고, 수소 화염의 복사열도 화석 연료의 10%에 불과해 일정거리만 유지하면 화상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우며 2차 화재 유발 가능성도 적다는 것.

같은 맥락에서 미국 조지워싱턴대학 산하 혁신기술연구소(BTI)도 2008년 ‘수소와 법제도-안전과 책임’ 제하의 보고서를 통해 수소가 기존 연료보다 높은 안전성을 지니고 있다고 결론내린 바 있다.



수소연료전지차에 장착되는 수소용기가 물리적 충격으로 파손돼도 폭발은 일어나지 않는다.

수소연료전지차 폭발은 기우
안전성과 관련 일반인들이 가장 많은 우려를 표명하는 대상은 수소연료전지차다. 자칫 폭발하면 사망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는 불안 탓이다. 하지만 이는 기우에 불과하다는 게 전 세계 에너지 전문가와 안전관리기관들의 일관된 입장이다.

그 이유는 차량에 장착되는 수소용기에 있다. 차량용 수소용기는 700bar 수준의 고압을 견디기 위해 용기 전체를 탄소섬유나 유리섬유 복합재료로 20㎜ 이상 휘감은 복합용기를 쓴다. 때문에 물리적 충격으로 파손돼도 용기의 폭발은 일어나지 않는다.

단지 찢어져 파열될 뿐이다. 수소복합용기 개발업체 일진컴포지트의 지용찬 사장은 “수소복합용기는 설계파열압 이 사용압력의 2.25배 이상, 사용연한은 최대 충전회수의 3 배 이상이 되도록 제작된다”며 “350bar 용기를 프레스로 압축했을 때 150톤을 견뎠고 2톤의 충돌하중에 문제가 없었다는 해외 실험자료도 있다”고 밝혔다.

수소연료전지차의 안전성은 2003년 BTI의 실험으로 실증되기도 했다. 휘발유자동차와 수소연료전지차의 연료를 강제 누출시켜 화재를 일으켰는데 휘발유 차량은 1분만에 차량 전체가 화염에 휩싸여 전소됐다. 반면 수소차는 순간적으로 불길이 치솟았을 뿐 차량에 큰 피해 없이 1분 30초 후 불길이 사라졌다.

2008년 진행된 현대·기아자동차의 실험에서 또한 이와 유사한 결과가 나타났다. 이 회사에 따르면 수소저장용기 탑재 차량을 전면, 측면, 후방에 걸쳐 수차례 충돌 실험했는데 부품 이탈, 파손, 수소가스 누출이 전혀 없었다. 화재 실험에서도 휘발유자동차 보다 화염의 규모와 지속 시간에서 안전성이 높다는 결과가 도출됐다.



전문가들은 수소의 안전성과 관련 인재(人災)에 의한 사고에 철저한 대비와 체계적 대처방안 수립이 요구된다고 강조한다.

제도 및 표준화가 관건
현대·기아차의 한 관계자는 “안전 한 수소연료전지차 개발을 위해 극한 상황에서 충돌 테스트를 계속 진행 중”이라며 “차량의 안전성 확보는 사실상 이미 완료된 상태”라고 자신감을 피력했다.

다만 미국 캘리포니아 연료전지 파트너십(CaFCP)의 안전관리책임자인 제니퍼 해밀턴은 수소 화재가 낮에는 육안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 유의해야한다고 설명한다. 해밀턴은 “때문에 DOE와 CaFCP에서 수소차 상용화에 앞서 소방관 대상의 수소화재 진압 교육프로그램을 운용 중”이라며 “한국에서도 이런 노력들이 선행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특히 전문가들은 수소의 안전성과 관련 인재(人災)에 의한 사고에 철저한 대비와 체계적 대처방안 수립이 요구된다고 강조한다. 아무리 완벽한 안전기준을 마련해도 이를 지키지 않거나 부주의에 따른 사고 개연성은 상존한다는 이유에서다. 자칫 1994년 서울 아현동 도시가스 폭발사고처럼 지하공동구에 고농도의 수소가 축적, 폭발하면 메머드급 피해가 불가피하다.

이와 함께 관련 제도 및 안전기준 표준화도 핵심 사안이다. 김 단장은 “안전 법규 정비와 표준화 등에서 산·학·연관의 공동보조가 필요하다”며 “일례로 고압가스안전관리법 에서 규정하는 압력용기 설계기준, 사용 가능 강재의 제약 등 규제 분야를 기술 데이터와 해외 사례를 검토해 재정비 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김 단장은 덧붙여 “수소경제시대의 수소에너지는 대상이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이라는 점에서 한층 확고한 안전기준을 요한다”며 “하지만 특성을 이해하고 제어한다면 현재의 휘발유만큼 안전하게 쓸 수 있다”고 재차 강조했다.

INTERVIEW
김동묵 동신대학 수소에너지학과장



Q. 아직 많은 사람들이 수소에너지에 불안감을 느끼고 있는데
수소폭탄은 수소 동위원소의 원자핵이 수천만도 이상의 고온에서 핵융합 할 때 발생하는 에너지를 이용한다. 이보다 훨씬 낮은 온도에서 일반적 화학반응을 활용하는 수소에너지와는 완전히 다르다.

또한 수소 사고의 대명사 격으로 인식되고 있는 힌덴부르그호 수소비행선 폭발사고도 그 원인이 인화성 도료에 의한 것으로 공식 발표된 바 있다. 일반인들의 불안감은 대부분 이처럼 잘못된 정보에 의한 것이다.

Q. 후쿠시마 원전 수소폭발과도 관계가 없나
이 사고는 연료봉 냉각수의 온도가 높아져 수소와 산소로 분해됐기 때문에 일어난 사고다. 애초에 수소에너지를 활용한 자동차나 연료전지와는 관계가 없다. 게다가 이는 정상적으로 안전장치가 가동됐다면 일어날 수 없는 일이며 안전장치의 고장에 따른 위험은 기존 화석연료들도 모두 마찬가지다.

Q. 수소 안전기술 개발 트렌드는
주로 고온·고압의 형태로 쓰이는 수소에너지의 활용 특성상 금속과의 반응이 잘 일어난다. 그래서 저장용기나 파이프라인의 부식 가능성이 있다. 수소침식으로 불리는 이 현상을 막기 위해 기능성 내벽 연구가 다양하게 진행 중이다. 일본 산업기술종합연구소가 탄소섬유강화플라스틱과 점토필름을 적층해 만든 고밀도 수소차단막 등이 대표적이다. 수소 누출감지에 있어서도 연세대 연구팀의 나노 갭 수소센서 등 성과들이 속속 도출되고 있다.

Q. 일반인들의 불신을 없애기 위한 해법이 있다면
기술 개발만큼 중요한 것이 국민들에게 익숙하도록 만들어주는 일이다. 우리가 LPG 자동차의 안전성을 의심하지 않는 것도 주변에서 많은 LPG 차량이 문제없이 운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의 경우 가정용연료전지 보급에 정부가 전폭적인 지원을 한 결과, 시민들의 신뢰도가 향상됐다. 우리나라도 정책적으로 수소 관련 인프라를 확충하거나 공무원 출퇴근 차량을 수소연료전지차로 배치하는 등 대국민 노출과 친근감 제고가 필요하다.

Q. 추가적으로 강조하고 싶은 내용은
많은 준비에도 불구하고 실제 상용화 단계에 이르면 수소에너지는 여러 기술적·사회적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또한 그것이 안전성 관련 논란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처음부터 완벽한 기술은 없다. 모든 기술과 시스템이 시행착오를 겪으며 더 발전했듯 수소에너지도 그런 과정을 거쳐 난관을 극복하면서 더 정교하고 효율적인 미래에너지원이 될 것이다.

파퓰러사이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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